구름이 걷히고 비가 멈췄다.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사실 한 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그 누구도 다시 할 생각이 없었다.그들은 그렇게 서로 말없이 껴안고 있으며 하민희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몸과 영혼 모두 같은 주파수를 지니고 있었다.한참 지나자 땀도 식어갔다.조은혁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너랑 송도윤은...”조은혁은 박연희에게 송도윤과 어디까지 갔는지 묻고 싶었다.남자들은 그런 게 신경 쓰였다.목까지 차오르는 말이었지만 조은혁은 자신이 그럴 신분이 안 된다고 생각해 다시 말을 삼켰다. 하지만 박연희는 그가 묻고 싶은 말을 눈치챘다.박연희가 몸을 일으켜 소파 한쪽에 기대었다.가운으로 몸을 가렸지만 고문 살결과 붉은 자국은 가려지지 않았다.그녀가 눈을 내렸다. 기다란 속눈썹이 불빛 아래 촘촘한 그림자를 드리워 그녀의 얼굴에 세련된 느낌을 더해주었다. 박연희가 담담히 답했다.“은혁 씨, 오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부담 없이 한 행위라고 생각해 주세요. 오늘이 지나면 없던 일로 하는 거예요.”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박연희의 말을 들은 조은혁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조은혁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고, 그녀와 송도윤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 없었다.박연희가 싱겁게 웃으며 답했다.“제가 그 사람과 관계를 맺었든 안 맺었든 은혁 씨랑은 관계가 없잖아요. 은혁 씨, 우리 몸은 서로 자유로워요.”그녀의 말에 화가 난 조은혁이 거친 말을 내뱉었다.“방금 신나서 신음을 내던데 송도윤이 너를 만족시키지 못하나 봐?”“상관없잖아요.”박연희는 그에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이였다.오늘 사건은 사고였고 앞으로 다시는 없을 일이었다. 박연희는 조은혁과 감정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가운을 걸치고 젖어
조은혁이 누구인가?모를 리가 없었다.그는 사실 박연희가 그와 관계 맺은 것을 후회한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의 태도로 조은혁에게 변한 것은 없다는 의지를 전했다.가는 내내 그녀를 바라보는 조은혁의 눈빛은 어둡기 그지없었다.그들은 서둘러 B시로 돌아갔고 집에 들를 틈도 없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주치의는 그들을 만나 골수 일치 여부를 확인했고 조은혁과의 개인적인 면담을 요청했다.조은혁이 멈칫했다.이어 그가 박연희와 심경서에게 말했다.“의사랑 얘기 나눌 테니까 먼저 가서 애 보고 있어. 며칠 동안 못 봤잖아.”박연희는 조은혁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심경서는 탐색의 눈빛으로 조은혁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들이 떠나고 조은혁이 문을 닫고 돌아서 의사를 바라보았다.“임 원장님, 할 말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세요.”임 원장이 머뭇거리다 말했다.“은혁 씨, 최근 건강검진 보고서를 봤습니다. 1년 전에 한 번 간을 기증한 적이 있더군요. 비록 새로운 간은 잘 자랐지만, 기타 수치는 골수 기증 지표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꼭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골수 기증 후 면역 체계가 균형을 잃는다면 은혁 씨의 건강은 피라미드처럼 갑자기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일 거예요. 그러니 이번의 기증은 큰 위험을 감수하셔야 합니다.”임 원장은 하민희가 조은혁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임 원장은 조은혁에게 다시 고려해 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결국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조은혁의 눈빛이 이글거렸다.“제가 기증하지 않으면요?”임 원장이 조용히 답했다.“적합한 골수는 기다리지 못한다면 반년도 못살 것이고 몇 달이 지나 적합한 골수를 찾는다고 해도 이식이 가능한 조건일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은혁 씨,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기증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제 아내에게 알리지 말아주세요.
조은혁의 말문이 막혔다.“장씨 아주머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셨어요?”장씨 아주머니가 당당한 모습으로 답했다.“최근에 전쟁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의 주인공이 그렇게 말했어요. 연기 잘하더라고요. 하지만 감정적인 연기는 은혁 씨보다 별로였어요.”조은혁은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병실 안에 있던 최민정이 피식 웃었다.그녀가 박연희를 잡아당겨 조용히 그녀에게 물었다.“둘이 다시 만나요? 제가 보기에 두 사람 표정이 뭔가 달라졌는데... 연희 씨, 저 속이면 안 돼요! 여자의 직감이 가장 정확해요. 분명 무슨 일이 있었어요! 맞죠?”박연희는 고개를 숙여 사과를 씻었다.그녀는 최민정에게 숨기지 않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와이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는 있었지만 별일은 아니었어요. 더 이상 감정적인 교류는 없을 거예요!”최민정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생각을 하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며칠 전 아버님과 오빠가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아버님은 여전히 조은혁을 좋아하더라고요. 연희 씨, 인생은 한 번뿐이고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결정을 하든 저는 무조건 응원해요! 여자는 남자를 위해 살면 안 돼요.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야 해요. 감정이건 뭐건, 누구와 함께 있는 게 즐겁고 편하다면 그 사람이 옳은 사람이에요.”박연희가 옅게 웃었다.“새언니가 그런 생각하는지는 몰랐네요.”기분이 좋은 최민정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모두 얘기해 버렸다.“오빠한테 얘기하면 안 왜요!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이 정말 뛰어나단 말이에요. 평소에는 과묵한 것 같아보이잠 중요한 때에는 사람을 괴롭히는데 선수예요.”가까이 있던 박연희는 저도 모르게 최민정의 팔을 껴안았다.문은 작은 틈을 두고 열려있었다.밖에 얼마나 있었는지 모를 조은혁의 얼굴은 누구보다 어두웠다.그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오후에 박연희는 심씨 저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병원에서 나왔다.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려고 할 때, 옆 차의 창문이 반쯤 내려지며 수려하고 멋진 조은혁의 옆모습이
박연희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조은혁을 바라보았다.한참 지나서야 박연희는 자신의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은혁 씨, 인우 오빠의 손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잊은 건 아닐 거예요. 은혁 씨가 진시아를 구하겠다고 고집부리지만 않았어도 인우 오빠 부부는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민희도 고아가 될 일은 없었겠죠. 그런데 지금, 감히 부양권을 달라고요? 성을 바꾸라고요? 은혁 씨, 자정에 꿈을 꾸면 하인우 부부가 밤낮으로 당신을 괴롭힐까 봐 두렵지 않나요?”“나도 잊지 않았어!”조은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차 정면을 응시했다“어쩌면 하인우 부부에게 갚으며 살라고 하늘이...”박연희가 그의 말을 잘랐다.“그건 갚으며 사는 게 아니라 강점이에요!”박연희의 입술이 계속 떨렸다.조은혁의 마음은 약해지지 않았다.그도 박연희가 그를 미워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비열한 수법으로 그녀를 위협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박연희는 조은혁의 예상대로 그에게 실망하고 있었다.하와이에 있을 때, 그가 민희를 위해 무릎 꿇었던 사실은 박연희의 호감을 샀다.당시 그녀는 조은혁이 구제 불능이 아니라 마음속에 일말의 온정도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그런데 며칠 만에 그는 또 이를 드러냈다.박연희의 목소리에 무기력함이 가득했다.“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여전히 포악하고 사람을 존중하지 않네요!”그녀는 말하며 울먹거렸다.조은혁과 함께 있기 싫어진 박연희가 손을 뻗어 차에서 내렸다.조은혁은 막지 않았다.마침 저녁 무렵이나 하늘에는 붉은 태양이 눈 부신 빛을 내뿜으며 도시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또한 그 빛은 조은혁의 눈도 아프게 했다.박연희가 심씨 저택 저택으로 돌아왔다.차가 멈춰서자 사용인이 다가왔다.“아가씨, 어르신께서 서재로 오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개를 끄덕인 박연희가 차에서 내려 서재로 향했다.서재에 다가서자 안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
박연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 송도윤을 향해 작별 인사를 했다.심씨 가문에서 그에게 식사를 권하지 않았으니 송도윤도 멋대로 남기 어려웠다. 그도 심씨 가문의 의중을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와 박연희를 진심으로 맺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두 가문의 친분으로 인해 굳이 말리지 않을 뿐이었다.떠나는 송도윤의 모습은 사뭇 처량했다.심경서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아쉽지 않아요? 송씨 가문은 문화계에서 명망 높으니 송도윤의 미래도 나쁘지 않을텐 데요?”박연희가 심경서와 나란히 걸었다.한참 후, 그녀가 가볍게 말을 이었다.“아쉽지 않아요. 같은 길을 걸을 사람이 아닌걸요.”심경서가 살짝 웃었다.식사를 마치고 박연희는 걱정을 숨긴 채 혼자 방으로 돌아와 문에 등을 기대었다.그녀는 눈을 감은 채 조은혁을 생각했고, 하민희의 상태를 생각하고 있었다.조은혁과 부부로 지낸 시간이 있다 보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모진지 박연희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런 사람에게 하민희의 부양권을 주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로 골수 기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연희는 그와 함께 있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었다.시린 달빛 아래, 박연희의 눈에서 처연한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조은혁이 왜 여전히 과거의 감정을 고수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옆에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면서 말이다.박연희는 저녁 내내 잠을 설쳤다.한밤중에 겨우 잠이 든 그녀는 꿈속에서 하인우 부부를 만난 듯했다.꿈속에서, 전소미는 끊임없이 하인우를 부르고 있었다.꿈속에서, 전소미는 심씨 저택으로 와 박연희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나랑 인우 씨의 아이는 연희 씨한테 부탁할게요! 어른이 될 때까지 잘 키워주세요. 저랑 인우 씨는 하늘에서 감사해하며 있을게요.”박연히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그녀의 등 뒤는 식은땀으로 인해 젖어있어 축축하고 차가웠다.그녀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조은혁은 마음이 아파졌다.그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앞으로 자주 그녀를 볼 수 있었지만, 박연희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를 더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개의치 않았다. 정말 개의치 않았다.당일 김 비서가 변호사를 불러 관련 절차를 밟았다. 앞으로는 법적으로도 하민희가 조민희로 되었고, 조은혁의 친딸로 주민등록등본에 등재되었다.절차를 마친 후, 박연희는 조민희라는 이름을 보며 한참 동안 멍해 있었다.일주일 뒤, 조민희는 골수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조은혁의 몸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모든 일이 순조로웠다.조은혁도 민희를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했지만 박연희의 마음을 동하게 하지는 못했다.악어의 눈물에 감동할 사람은 없었다.조민희가 퇴원한 날은 봄바람이 부는 2월이었다.박연희가 병실에서 그녀의 짐을 싸주며 눈에는 아쉬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옆에 있던 장씨 아주머니가 말했다.“아니면, 은혁 씨한테 다시 한번 부탁해 보는 건 어때요?”박연희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정말 마음이 여렸다면 오늘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진작에 동의해 줬겠죠.”비록 같은 도시에 있었지만 박연희는 세심하게 모든 물건을 정리해서 쌌다. 그녀는 장씨 아주머니도 함께 조은혁의 아파틍에 보냈다. 조민희가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장씨 아주머니가 눈물을 금치 못하며 박연희를 향해 맹세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민희가 굶은 일은 없을 거예요! 가끔 문안도 오실거니 민희도 힘들지 않을 거예요.”박연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문 앞에 와있던 조은혁은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박연희 손에 든 캐리어를 받아 들고 한 손으로 조민희를 안아 들며 부드럽게 말했다.“아빠랑 집에 가자!”조민희도 그를 매우 잘 따랐다.민희가 조은혁의 목을 껴안으며 동글한 눈동자로 박연희를 보며 말했다.“엄마... 같이... 민희는 엄마도...”박연희는 눈물을
조은혁이 손바닥으로 그녀를 감쌌다.그의 검은 눈동자는 박연희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그녀를 한번 또 한 번 건드렸다. 가끔 견딜 수 없었던 박연희의 작은 콧방울이 윙윙거리며 떨려 나는데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녀와 자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박연희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고개를 살짝 젖히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왜 울어!”조은혁이 다가와 그녀의 눈물에 가볍게 입술을 포갰다.“하와이에 있을 때는 좋았잖아. 우린 분명 딱 한 번 했는데 넌 두 번이나 절정에 이르렀고.”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연희의 손이 매섭게 그의 뺨을 스쳤다.얼굴이 화끈거리며 아파 났다.간의 부위는 더욱 둔한 통증이 밀려왔다.그러나 조은혁은 무심코 그 부위를 살짝 스쳐 지난 듯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한편, 박연희는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고 지그시 눈을 감은 뒤, 산산조각이 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조은혁 씨, 당신 또 이러면 나 다시는 여기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 강요하지 마요.”“강요하지 않아.”조은혁은 박연희를 일어나 앉히기 위해 가볍게 몸을 옮겼다.옷이 흐트러지고 단정하게 걷어 올린 검은 머리카락도 전부 흩어지며 능멸의 아름다움이 그녀의 온몸에 떨치고 있었다. 박연희는 침대 옆에 기대어 손가락을 떨며 옷을 정리했지만 하염없이 떨려 나는 손가락은 쌀알만 한 단추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러자 조은혁이 다가와 박연희의 손을 잡고 그녀를 대신하여 단추를 잘 채워주었다.그는 그녀의 매혹적인 볼륨을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목젖은 절로 움찔거렸다.그 모습을 눈치챈 박연희가 다급히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밖으로 뛰쳐나가던 박연희는 마침 장씨 아주머니와 마주치게 되었고 장씨 아주머니는 유경험자로서 단번에 안에서 일어난 일을 짐작하고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읊조렸다.“대표님은 정말 짐승만도 못하네요.”박연희의 손가락은 아직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그녀는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더니 장씨
물도 없이 허겁지겁 진통제를 삼켰고 약을 삼키는 순간은 사실 더 아팠지만 조금 있으니 통증도 많이 완화되었다.통증이 완화되고 그의 검은 눈동자에도 다시 생기가 감돌았다. 그는 그녀의 무너진 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차 문을 열었다.“타. 데려다줄게.”“저 혼자 운전할 수 있어요.”“박연희, 말 들어.”이 한 마디는 마치 신혼 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녀는 그를 오빠라고 불렀고... 그녀의 일이라면 전부 조은혁이 결정해주니 그녀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다만.그것도 결국 이별로 끝을 맺지 않았는가.조은혁은 차 문을 당겨 박연희를 강제로 밀어 넣은 뒤 곧 다른 쪽으로 돌아 운전석으로 향했다.차에 올라탄 뒤 그는 또 차 안의 온도를 높이고 그녀더러 젖은 옷을 벗도록 하였다.그러나 박연희는 두 팔로 몸을 감싸 안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됐어요. 어차피 멀지도 않은데.”조은혁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그가 가속 페달을 밟자 하얀색 BMW가 큰 빗줄기를 뚫고 심씨 집안 저택 쪽으로 향했다. 비가 많이 오는지라 조은혁은 매우 느리게 운전했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 하얀색 차는 마치 회색빛의 물 막을 뚫고 다른 세계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그 세계에는 오직 두 사람, 조은혁과 박연희만이 있을 뿐이다.다른 사람 한 명 없이, 은혜와 원한 하나 없고 상처와 과거도 없는 그저 그런 세계.콧방울이 계속하여 붉게 타오르며 박연희는 얼굴을 돌렸다... 그렇게 차 안에는 침묵과 슬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사랑과 미움, 어리석음과 원망만이 남았을 뿐이다.한 시간 후, 조은혁은 박연희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오후에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며 하늘과 땅 사이에 기괴한 빛이 나타나 두려운 기색을 띠었다.차가 천천히 멈춰서고 박연희는 차에 앉아 낮고 쉰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도 인정사정없는 것은 아니었다.“차 가지고 돌아가세요. 차는 나중에 제가 가지러 갈게요.”하지만 조은혁은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그는 우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