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병실은 벽면이 모두 연분홍으로 되어있어 매우 아늑하다.이안이는 여전히 매우 허약했고 흰 베개에 몸을 기대어 누워있더니 처음으로 걱정되었는지 조은서에게 물었다.“엄마, 저 혹시 죽어요?”조은서는 마음속으로 너무 속상했지만 아이 앞에서는 애써 감정을 참아내고 미소까지 지으며 이안이를 달래주었다.“당연히 아니지.”여전히 어지럼증이 심한 이안이는 엄마에게 몸을 기대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엄마, 저는 왜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 못 가요? 엄마, 만약 엄마 아빠가 남동생 한 명 더 낳으면 걔는 꼭 건강해야 해요. 그리고 남동생은 조금 더 예쁘게 낳아야 해요. 그러면 이안이가 없어도 엄마, 아빠한테는 예쁜 아이가 남아있잖아요.”이 말들은 대체 어디에서 배워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은서는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울먹이는 목소리로 급히 심정희에게 이안이를 맡겨두고 복도로 뛰쳐나왔다...그녀는 진정이 필요했다. 아니면 정말 당장이라도 미쳐버릴지 모른다.문 앞에 서 있던 유선우가 조은서를 가로막았고 그녀를 데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따뜻한 햇볕, 따뜻한 물, 하지만 이것들로 조은서의 마음속 두려움을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선우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안이 병세가 또 악화했어요. 이안이... 아마 그 아이 기다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유선우는 조은서의 어깨를 꼭 쥐고는 낮은 목소리로 진정하라고 타일렀다.하지만 조은서는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조금 전 의사의 선포는 그녀의 앞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의 문을 닫아버린 것과 같은데 대체 어떻게 진정하란 말인가. 게다가 그 어린 아이가 자기 입으로 자신이 죽는 것 아니냐고 묻는데 대체 어떻게...사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조은서는 유선우의 어깨에 기대 그의 어깨를 죽일 듯이 꽉 물었다.“선우 씨, 이안이가 사실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다고요...”유선우는 계속하여 조은서를 꽉 끌어안아 주며 그녀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냈다
“전 그럴 수 없어요! 이안이도 중요하지만 저에겐 은서도 똑같이 중요해요. 게다가 은서에게 미안한 것도 그렇게 많은데.”...유선우는 잠깐 멈칫하고는 주먹에 꽉 힘을 주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선배가 은서 좋아한다는 거 알아요. 은서도 전에 선배한테 흔들린적 있고요...”그러자 허민우가 그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갑자기 왜 통쾌해졌어?”유선우는 눈을 내리깔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이윽고 그는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허민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과거 제 마음속에는 권세밖에 없었거든요. 아내와 아이는 단지 부속품이었을 뿐이고요.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제 목숨으로 아이의 목숨을 바꿀 날이 오리라고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한 명이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 안 그래요?”“하지만 이안이는 저와 은서가 낳은 아이예요. 전 그 사람을 무척 사랑해요.”...유선우는 그 사람이 조은서인지 이안이인지 명확히 짚어내지 않았다.허민우도 굳이 묻지 않았다.그는 더 이상 그의 선택에 반대하지 않았다. 허민우 역시 유선우의 굳건한 결심과 유선우의 용맹함을 보아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것이었다.유선우는 조은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햇살이 여기저기 흩뿌려지고 가만히 듣고 있던 허민우가 입을 열었다.“내가 네 집도의가 되어줄게. 그런데 유선우, 내가 명령하는데 죽지 마. 불구가 되어도 열심히 살아...”몸을 돌려 떠나가는 허민우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리고 허민우는 이번 생에는 절대 조은서와 부부가 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유선우의 사랑과 원망이 그렇게도 강렬하게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애초에 그들의 감정은 절대 타인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과거, 유선우는 조은서의 첫사랑이었다.그렇다면 미래에도 유선우는 그녀의 영원한 사랑이고 애인일 것이다... 이번 생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런 절세의 사랑 말이다....이안이에게 새로운 치료 방안이 생겼
세날 뒤, 이안이는 순조롭게 퇴원할 수 있었다.그들은 병원에서 떠나 다시 진이 정원에 돌아왔고 수술하기 전의 그 한 달은 참으로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함께 이안이를 돌보고 가끔 유선우가 사교 모임에 나갈 땐 조은서도 함께 데리고 나갔다. 이제야 정말 진정한 부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이 시간이 그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르기에 유선우와 조은서 모두 예전의 상처와 과거는 더 이상 입에 담지 않았고 모두 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전에 계속 야근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과는 달리 유선우는 매일 밤 꼭 이안이가 잠들기 전에 집에 도착하곤 했다.그는 집에 돌아와 이안이에게 목욕을 시켜주고 깨끗한 가운에 담요까지 잘 덮여준 뒤 아이가 자신의 품속에 엎드려 잠을 청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은은하고 따스한 주황빛 조명 아래, 이안이가 잠들 때까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안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안이가 잠들면 유선우는 그제야 서재에 들어가 남은 회사업무를 처리한다. 업무를 모두 처리하면 어느새 새벽 1, 2시가 다 되어갔고 조은서와 이안이는 모두 진즉 잠들어 있었다...업무를 마친 유선우는 뒤늦게야 그들의 옆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지만 그에게 있어 이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일상이었다.하지만 행복 또한 결국 끝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수술 전날, 유선우는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종일 이안이를 놀아주며 집에 박혀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온 세상이 고요해지자 이안이도 얌전히 유선우의 품속에 누워 잠자리에 들었다. 고르고 달콤한 숨소리는 듣기만 해도 참으로 아름다웠다...유선우는 훤칠한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이안이의 검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이안이의 작고 귀여운 얼굴은 아무리 봐도 부족하게 느껴졌다.이튿날.이튿날이 되면 그는 아마 다시는 이렇게 이안이를 안고 그녀를 바라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슬프고 속상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의 사랑과 원망도 이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재회하고 난 뒤, 조은서는 처음으로 주동적으로 유선우에게 다가갔다.그녀는 자발적으로 그의 품에 기대어 평범한 부부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꺼냈다.“지혜와 성훈 씨 결혼식이 연말로 결정됐는데 그쯤이면 이안이 몸도 다 나았겠죠... 그러면 이안이 데리고 하와이에 가서 결혼식에 참석할 텐데. 결혼선물은 뭐로 준비해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이에요.”유선우는 입을 열지 않았다.그는 땀에 젖은 그녀의 긴 생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 순간의 평화를 즐겼다.조은서도 평화로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시 입을 열 때는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선우 씨는 참석할 거예요? 며칠 전 지혜한테서 들었는데 요즘 반 대표님과 비즈니스 거래도 한다면서요.”그러자 유선우는 고개를 숙이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내가 결혼식에 갔으면 좋겠어?”조은서는 그의 물음에 즉답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유선우의 준수한 이목구비를 쓰다듬으며 갑자기 서미연 일가족의 얘기를 꺼냈다.“성진그룹 사모님도 가신대요. 서 사모님께서도 반 대표님과 거래가 있어요. 게다가 요즘에는 이 대표님께서 재혼을 원하시는데 사모님이 아직 동의 안 하셨다는 얘기도...”조은서는 아무런 두서도 없는 이야기를 마구 지껄이다가 결국 자신도 당황한 나머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하지만 그녀와 달리 유선우는 계속하여 인내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조금 잠긴듯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계속 말하지 않는 거야? 난 듣고 싶은데...”그러나 조은서는 말없이 그저 유선우의 품에 살포시 안겼다...그동안 너무나도 많은 시련을 겪어오며 입 밖에 내놓을 수 없는 얘기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조은서는 그중 한마디만 꺼내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조은서는 애써 설레는 심장을 억누르며 시시각각 자신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유선우는 안된다고. 더 이상 사랑할 용기가 없다고 말이다...유선우
“앉아있어. 내가 물 끓여올게.”유선우는 그런 유문호의 호의를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비좁은 부엌에 들어가 엉성하게 찻잔을 꺼내오는 유문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밤바람이 조금 찼는지 분주히 움직이던 유문호는 이따금씩 기침을 하기도 했다.유선우가 물었다.“아픈데 왜 병원에 안 가세요?”갑작스러운 물음에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린 유문호는 곧바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답했다.“고질병이야. 큰일도 아닌데 뭐. 감기약 조금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이 또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유문호의 모습을 봐서는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린 게 분명했다.하지만 유선우는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았고 조용히 집안의 책들을 펼쳐보았다.그 후, 유문호는 물을 끓여와 싼값의 찻잎을 우려내어 유선우에게 권했다. 단지 차를 권하는 것뿐인데도 유문호의 기색은 매우 불안해 보였고 얼굴에는 심지어 씁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사전에 준비해둔 게 없어서 조금 초라하네.”유선우는 한 모금만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이런 염가 차를 마셔본 적이 별로 없으니 유선우의 입에 맞지 않으리라는 것은 유문호도잘 알고 있다. 하여 그는 차는 뒤로 하고 곧바로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집안의 상황을 물었다. 물론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은 이안이의 병이었다...잠깐 넋을 잃은 유선우는 이내 담담하게 답해주었다.“내일이면 수술할 거라 곧 나을 거예요.”그러자 유문호는 눈에 띄게 기뻐하였다. 그러고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축하해주며 그에게 찻물을 우려주었다.“수술할 수만 있다면 괜찮아. 이제 괜찮아. 은서가 잘 가르쳤겠지만 아이가 참으로 귀엽더구나.”손녀를 보는 재미를 느깔 수 없다는 것이 내심 아쉬운 모양이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그가 자처한 것이니 남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유선우가 그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탓할 수 없다...지금처럼 이따금씩 그의 집에 방문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유문호는 이미 충분히 감사할 노릇이다.유선우도 그와 많은 얘기는 나
유선우가 침대 옆에 앉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잠깐 일 보고 왔어. 꿈꿨어?” 조은서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꿈이 불길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유선우에게 꿈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 유선우가 그녀 옆에 누웠을 때, 그녀는 먼저 손을 잡았다... 그의 따스한 촉감을 느끼면서 그녀는 마음이 점점 놓이게 됐다. 꿈은 현실과 반대되기에 그녀는 이게 별 의미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다.이윽고 거의 잠들 무렵, 그녀는 유선우가 귓가에서 속삭이는 얘기를 들었다. 유선우는 오늘 밤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의 이름을 유이준이라고 짓자고 했다...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면서 조은서는 꿈을 되풀이하며 그게 꿈이었다는 것을 확신하려 했다.유선우는 그녀가 너무 긴장한 탓이라고 했지만, 조은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점점 강해지며 이안이의 수술에 대한 불안감도 더욱 커지게 되었다.수술 전에 검사를 받으면서 불안감이 극에 달한 조은서는 심지어 유선우에게 수술을 며칠 더 미루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어떨까 하고 물었다... 유선우는 몸을 숙여 이안이를 안아주더니 또 아이의 작은 얼굴에 입을 맞추며 무서운지 물었다. 그러자 이안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껴안고 무섭다고 칭얼거렸다.유선우는 무서워하는 이안이를 안아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아빠가 지켜줄 거야. 우리 이안이가 푹 자고 일어나면... 병이 다 나아 있을 거야.” 이안이는 작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그의 목을 안고 놓기 싫어했지만, 유선우는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야 했다.그는 부드럽게 이안이의 작은 팔을 내리고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이안이에게 계속해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일어설 때 그는 조은서를 품에 안고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마치 진짜 남편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수술실에서 이안이를 지켜줄 거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조은서는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끼면서 중얼
수술은 장시간 지속되였고 거의 16시간가량 걸렸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수술은 성공적이었다.다만, 유선우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이안이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것도, 이안이가 수술실에서 나왔다는 것도 모르고 수술대 위에 조용히 누워있었다...그는 자신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그는 그저 조용히 누워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했다. 허민우는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 그가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계 위의 숫자들은 경악할 정도의 수치였고 유선우의 생명 징후가 아주 약한 상태라는 의미이며... 이 상태로라면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의사로서 허민우는 이미 생사에 무덤덤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유선우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은서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너 그냥 이렇게 떠날 거야?” 유선우는 대답이 없었다. 조용히 누워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는 유선우의 모습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다... 그 순간, 허민우는 과거의 많은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모든 기억 속의 유선우는 다 살아 숨 쉬는 모습이었다.허민우는 거의 눈물이 없었지만, 이 순간에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그의 조수가 다가와서 조용히 말했다.“교수님, 밖에 가서 설명을 해드려야 할 듯싶습니다...”허민우는 살짝 고개를 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알겠어.” 그는 수술실을 나왔다. 밖에는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조씨 가문과 유씨 가문 사람들이 다 와서 이안이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유선우도 안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고 유선우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도 알 리가 없었다... 허민우는 조은서의 앞으로 걸어갔다.그는 가볍게 말했다.“수술이 아주 성공적이야.”조은서는 입을 막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심정희를 바라보았다... 심정희 역시 아주 흥분하여 보살이 지켜 준 덕분이라고 하면서 돌아가면 향을 피우겠다고 했다. 허민우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며칠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경과를
그녀는 H시의 일이 너무 복잡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가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유선우는 이안이를 아주 사랑했다. 그는 절대 회사 일 때문에 아무런 메시지도 회신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녀는 전화를 걸까 생각도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녀를 주저하게 했다. 그녀는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당장 내일 유선우한테서 연락이 올 수도 있고 내일 바로 H시에서 돌아올 수도 있다. ...YS 병원, 중환자실. 유선우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는 자신의 거의 절반이 되는 골수를 뽑아냈고 거의 1/3이 되는 피로 이안이의 피를 한번 바꿔주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으로 이안이의 생명을 연장한 것이다. 사찰에서 가져온 부적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고 실제로 이안이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한때 그는 부처님 앞에서 무릎 꿇고 진심이 무엇인지 물었었고 부처님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에게 돌아오는 길까지 알려주지는 않으셨다. 허민우는 계속 유선우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밤을 계속 새고 있던 그의 눈에는 핏줄이 섰지만, 유선우의 상태는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그때,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사모님, 여기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곳은 중환자실이에요... 교수님...” 간호사는 들어오는 함은숙을 막지 못했다. 늦가을의 밤, 함은숙은 문가에 서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유선우와 너무 닮아있었고 그의 체격도 유선우와 너무 닮아 있었다... 하지만 제 아들이 어떻게 여기에 누워 있단 말인가?그녀의 아들은 항상 자신감 넘치고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그런 아들이 어떻게 여기에 누워서 꼼짝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건 잘못 본 것이다. 반드시 잘못 본 것이어야만 한다.유선우가 여기에 누워 있을 리가 없다. 그는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할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함은숙에게서 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그녀는 절대로 유선우에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