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정우연은 잠깐 멈칫하더니 다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준호 씨!”빠른 걸음으로 차준호를 따라나선 정우연은 곧바로 소방 통로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차준호는 복도 끝에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정우연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몸까지 부르르 떨며 언성을 높였다.“결혼한다니까 속상해서 그래요? 준호 씨, 임지혜와 헤어진 지 몇 년인데 아직도 미련 남았어요? 그렇게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으면서 왜 유독 임지혜는 못 잊어서 안달이에요? 임지혜한테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면 침대에서 유독 더 특별했나요?”그 순간, 차준호가 손을 들어 정우연의 뺨을 내리쳤다.정우연은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멍하니 차준호를 바라보더니 한참 뒤, 가슴이 찢어질 듯 언성을 높여 울부짖기 시작했다.“당신 지금 임지혜 때문에 나한테 손찌검한 거예요? 준호 씨, 저 임신했다고요!”“네 배 속에 있는 거 내 아이 아니야.”차준호의 목소리는 쌀쌀하기 그지없었다.그리고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정우연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미쳤어요? 차준호 씨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차준호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더니 훤칠한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있는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난 이미 3년 전에 전립선결찰술을 마쳤어. 그러니 사모님, 이 말은 즉 당신은 절대 내 아이를 밸 수 없단 말이야. 원래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는데 이제 와 보니 다 의미가 없어졌군... 차씨 가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이니 낳을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해.”차준호의 말은 조금의 여지도 없이 잔인하기 그지없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우연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차준호 씨, 당신은 정말 악독하기 그지없군요. 어떻게 이렇게도 매정할 수 있어요? 당신은 이 아이가 당신
사실 조은서도 유문호를 기억하고 있다.어릴 적 조씨 가문과 유씨 가문 사이에 거래가 오가며 가끔 부모님과 함께 유씨 가문의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 유문호는 줄곧 자애롭고 품격 있는 사람이었다.그해 유문호가 떠나지 않았다면 유선우 역시 지금보다는 훨씬 점잖은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다.이때, 유문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랜만에 들은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았던 그 모습처럼 부드럽고 품격 있었다.“은서야, 잠깐 얘기 좀 나눠도 될까?”조은서는 말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오랜 세월이 지나 두 사람은 다시 마주 섰다. 서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공통한 가족과 혈육이 있었기에 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과거의 일은 뒤로 한 채 유문호는 유선우와 이안이의 근황과 어르신의 일을 물었다.조은서는 잠깐 침묵을 지킨 뒤,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어르신께서는 생전 아버님을 평생 기다리셨어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아버님만 찾으셨고요. 마지막에는 선우 씨를 아버님으로 착각하시고 나서야 눈을 감으셨어요. 그러니 여유가 된다면 한 번쯤은 꼭 어르신을 찾아뵈세요. 어르신께서는 평생 너무 힘들게 사셨잖아요.”조은서의 말에 유문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래. 찾아뵈어야지.”그 당시 별다른 준비 없이 경솔하게 결혼을 맞이한 결과, 결혼생활이 맞지 않는 탓에 그와 함은숙 사이에는 매일매일 말다툼이 오갔다. 게다가 그 뒤에는 함은숙이 유문호와 정주현의 관계를 의심하며 정주현을 모욕한 것도 모자라 정주현의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주며 그녀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결국, 참다못한 유문호는 별거를 선택했고 집을 떠나던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것이 생사 하나 확인할 수 없는 이별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유문호는 기분 전환 겸 바다에 나갔다가 유람선에서 추락해 기억을 잃었고 반평생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기억을 되찾고 다시 B시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해있었고 그의 아내는 그를 원망하고 그의 아들은 그를
조은서는 유선우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다시 빼앗아온 뒤, 계속하여 시선을 서류에 고정한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건 그 사람들 업무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불필요한 일을 더 시킬 필요는 없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면 결국 불평불만이 나오기 마련이고요. 그리고 유선우 씨 전에는 이렇게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여전히 담담한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선우는 두근두근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한참 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그래? 그럼 나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데?”조은서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서류를 내려놓으며 답했다.“사람이 아니었죠.”유선우는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애정이 어린 키스였지만 조은서는 여전히 그의 스킨쉽을 거절했다.“이안이가 봐요.”유선우도 곧바로 행동을 멈추고는 그윽한 눈으로 조은서를 바라보았다.“방금 정희 아주머님께서 나한테 만두 끓여주셨어.”조명 아래 비친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맑은 빛깔이 감돌았고 조은서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더욱 담담한 말투로 그의 말에 답했다.“오후에 아주머니께서 만두를 많이 빚으셨더라고요. 집에 있는 정원사와 경비원들도 모두 드셨는걸요.”그러자 유선우는 조은서의 귀를 살짝 깨물며 밉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 약 올리려고 작정했지?”그들의 관계는 이미 아이만 낳기 위한 계약관계를 훨씬 넘어버렸다. 물론 조은서도 과도하게 친밀해진 그들의 관계를 알아차렸다...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유선우는 내심 서운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맹세했다.“걱정하지 마.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떠나도 돼. 붙잡지 않을게.”말을 마치고 유선우는 이안이와 놀아주기 위해 자리를 떴다.이안이는 핑크 곰 인형을 단정하게 바닥에 놓아두고 종이와 펜을 가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아직 4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이지만 제법 잘 그렸다.그러나 유선우는 그 곰 인형을 가져와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갑자기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오빠!”조은서는 조은혁을 꽉 끌어안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어쩌다가 먼저 나오게 된 거야?”그러자 옆에 있던 심정희가 눈물을 훔치며 한마디 거들었다.“네 생일이라고 먼저 나왔잖니.”하지만 조은서는 유선우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조은혁도 예정보다 먼저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고 싶었다...하여 유선우는 이를 위해 일찍이 진이 정원을 떠났다.조은서는 유선우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조은혁도 마찬가지이다.심정희는 오랜만에 돌아온 조은혁을 위해 특별히 소금을 챙겨왔다.과거, 조은혁은 이런 미신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심정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소금을 가져와 어깨너머에 조금 뿌렸다... 소금을 다 뿌리고 심정희는 조은혁의 손을 꼭 쥐여주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네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나도 이제야 네 아버지를 볼 면목이 있겠다.”조은혁은 그저 묵묵히 심정희를 끌어안으며 그녀를 위로해주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심정희는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며 눈물을 닦았다.“먼저 네 아버지 보러 가자. 그동안 네가 무척 보고 싶었을 거야.”아버지 소리에 조은혁의 마음도 축축이 젖어갔다.바로 그때, 이안이가 집안에서 뛰쳐나와 귀여운 목소리로 삼촌을 불렀다.조은혁은 곧바로 허리를 숙여 이안이를 안아 들었다.조그마한 아이는 조은서의 어린 시절을 쏙 빼닮았고 6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며 마음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 어느새 무정한 냉혈인간이 되어버린 조은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따뜻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었다.이안이는 하늘에서 조씨 가문에게 내려준 가장 큰 위로이다.그러나 이안이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조은혁 역시 진즉 알고 있었다. 그는 이안이의 작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를 매우 아꼈다....조은혁은 단독으로 묘원을 찾아갔다.금빛 찬란한 햇빛이 그의 몸에 흩뿌려졌지만 조
밤이 오자 조은서는 조은혁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조은혁은 조은서가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지내기로 했고 그곳은 부지가 매우 좋고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하지만 이 또한 일시적인 계책일 뿐이다.밤이 어둑어둑 깊어지고 그들의 차는 아파트 입구에 멈춰 섰다. 조은혁은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그는 여동생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6년 동안 떨어져 지내고 조은서가 엄마가 됐다 할지라도 그들의 감정은 줄곧 변하지 않았다. 조은혁의 마음속 조은서는 여전히 오빠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던 어린 소녀이다.“오빠.”조은서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지금은 그들 남매 두 사람만이 한 공간에 있기에 유선우와 박연준을 포함한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다.조은혁은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무뚝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해, 아버지께서 조금 거친 방법으로 회사를 인수하시며 간접적으로 상대방이 파산하게 되었어. 그 사람은 빚을 가득 짊어지고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그 사람의 자녀는 길거리를 떠돌게 되었지... 아버지께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특별히 그 남매를 지원해주기로 했고 후에 남매 중 오빠가 출세하며 국내 유명한 변호사가 되었어.”조은서는 잠깐 멈칫하더니 곧바로 그 사람의 정체를 눈치챘다.“박연준!”그러자 조은혁은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고 입에 문 담배를 다시 꺼내려는데 손가락마저 덜덜 떨리고 있었다.역사는 항상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고 그와 조은서도 이제 서로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박연준, 네가 이겼다.’한참 뒤, 그는 고개를 돌려 조은서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비록 그동안 계속 감옥 안에 갇혀있었지만 난 단 한 번도 진실을 포기한 적이 없어. 며칠 전, 유선우가 믿을 만한 소식을 들고 왔는데... 당시 아버지 옆에서 일하던 비서가 사실 박연준의 비서래.”조은서는 시트에 기대앉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도무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씨 가문을 무너뜨린 사람이 박연준이
조은서는 곧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고 조용히 차 안에 남아 오늘 밤 접한 소식들을 천천히 곱씹었다.깊은 밤, 이제 집에 돌아가려고 준비하던 그때, 차 앞에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오늘 밤 조은서와 조은혁이 토론하던 대상... 박연준이었다.그는 깊은 밤에도 여전히 단정한 옷차림에 신사적인 모습이다.올백 머리에 영국식 양복 차림.박연준은 차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조은서를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현재의 그는 아마 모든 위장을 벗어던진 후일 것이다... 현재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조은서는 박연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기 시작했다.이윽고 그녀는 갑자기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박연준은 흰 스포츠카가 자신을 향해 맹렬히 다가오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전혀 피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은 복잡함의 극치에 달아올랐다….최근 몇 년간 그의 몸부림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는 조은서를 사랑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사실 그는 몇 번이나 조씨 가문의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지만 차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조은서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해서는 안 될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그는 가장 저급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조승철이 죽고 그는 원래 조은서의 곁에서 사라져야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이윽고 귀가 째지는 듯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가 급하게 멈춰 섰다.차 안에 앉아있는 조은서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핸들을 꽉 잡고 있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조은서는 여전히 차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속에는 이제 낯선 감정만 남아있었다.그 순간, 조은서는 박연준의 사랑을 눈치챘다.하지만 박연준에 대한 조은서의 마음은 오직 원망만이 남아버렸다...*조은서가 진이 정원에 돌아올 땐 이미 밤 열 시가 다 되어갔다.심정희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조은서에
유선우는 그녀를 종일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마음속으로는 내심 실망했지만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조은서의 생일이니까. 이윽고 그는 조은서에게 드레스룸에 가족, 친구들과 지인이 준 많은 선물이 놓여 있다고 알려주었다...조은서도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샤워하고 열어볼게요.”그러자 유선우는 갑자기 조은서의 몸을 끌어당기더니 그녀의 옷을 사이에 두고 유혹하기 시작했다.“같이 씻자.”하지만 조은서는 가볍게 거절했다.“안돼요. 생리 왔어요.”유선우는 그윽한 눈빛으로 조은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녀를 가로 안아 욕실로 향했다. 물론 생리가 올 때 강박적으로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다... 게다가 오늘 생일이라 그저 조은서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그러나 유선우가 잘할수록 조은서는 점점 더 아쉬워졌다.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한번 놓치면 평생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샤워를 마치고도 여전히 잠이 오지 않자 조은서는 드레스룸에 쌓인 선물을 열어보기로 했다. 일부 선물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성진그룹 사모님이 주신 명주 손수건이다.마지막까지 선물을 풀자 제왕록의 비취 팔찌가 들어있었다.이토록 귀중한 물품은 B시 전체를 뒤져본다고 해도 몇 가지 없기에 조은서는 선물을 보자마자 곧바로 선물을 보낸 사람을 알아챘다.함은숙이 보낸 것이다.조은서는 갑작스러운 인물에 잠깐 멈칫했고 뒤이어 드레스룸에 들어온 유선우 역시 팔찌를 발견했다.그 역시 팔찌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곧바로 누가 보내준 것인지 눈치채고 물건을 아무 데나 던져놓은 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갖고 싶지 않으면 내일 다시 돌려보낼게.”조은서는 고개를 쳐들고 물끄러미 유선우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별장에 갇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유선우만을 기다리던 그 날 밤을 떠올렸다... 유선우가 찾아갔을 땐 이미 보름이나 지난 뒤였고 하염없이 그를 기다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고 유선우는 본가에 다녀왔다.경비원은 문을 열어다가 뜻밖의 인물에 잠깐 넋을 잃고 말았다. 왜냐하면, 유선우는 이미 3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검은색 벤틀리 차가 주차장에 천천히 멈춰 섰다.유선우는 차에서 내려 문을 닫은 뒤, 주위의 모든 것을 쭉 둘러보기 시작했다.오래된 냉랭함과 함께 낡은 주택은 이미 생기를 잃어버렸고 주택 주위에는 무겁고 살기가 가득한 기운이 맴돌았다... 어르신께서는 생전 분명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가장 좋아하셨는데 말이다.별장 안의 고용인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이윽고 유선우는 홀에 들어섰고 그의 구두가 깨끗한 마룻바닥을 밟으며 경쾌한 소리를 내었는데 커다란 홀 안에 울려 퍼지는 구두 소리가 더욱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작은 법당 안에는 어르신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어르신은 여전히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유선우는 미련이 가득한 듯 손가락으로 할머니의 사진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속삭였다.“아버지께서 돌아오셨어요.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이니 이제 마음 놓으세요.”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사진 속의 찬란한 웃음뿐 세상을 뜬 사람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어르신의 사진을 보노라니 마음 한편이 쓰라려 왔다.그는 어르신께 향을 피우며 이안이가 100살까지 장수할 수 있도록 보우해달라고 부탁했다.그러고 나서 찬란하면서도 환히 빛나는 그 미소를 바라보며 축축이 젖어 든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할머니께서도 제 선택을 존중하겠죠?”“선우야!”그때, 함은숙이 다급히 2층에서 뛰어 내려왔다.그녀는 계단 위에 서서 믿기지 않는다는 눈길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자기 아들이 정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감격에 겨운 나머지 유선우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떨려왔다.유선우도 고개를 들어 함은숙을 바라보았지만, 함은숙의 감격에 비해 그의 눈빛은 낯선 사람을 쳐다보는 것 마냥 냉담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자단 상자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앞으로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