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 지나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더라도 무슨 수로 자신이 직접 품었던 그 아이를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아이가 얼마나 처절하게 목숨을 잃었는데...그런데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차준호와 정우연에게 아이가 생겼다.임지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조은서 역시 입구에 서 있는 차준호와 정우연 부부를 보게 되자 그저 임지혜의 손을 꼭 쥐여주며 말없이 위로를 건넸다.그때, 정우연이 걸어 들어왔다...최근에 차준호가 꽤 잘해준 것인지 고질병이 또다시 도진 모양이다.자신의 남편이 여전히 임지혜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하여 거슬렸던 정우연은 임지혜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어머, 이런 우연이. 또 만났네요, 지혜 씨?”임지혜는 정우연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그녀의 피와 살덩이를 한입에 삼켜버릴 기세였다.하지만 그와 반면 조은서는 상당히 침착했고 그저 담담히 웃으며 정우연을 맞이했다.“의도적인 만남보다 우연이 더 낫다고, 사모님은 요즘 잘 지냈나 봐요.”그러자 정우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사실 정우연은 얼마 전에 차준호와 심하게 다투며 뜻대로 되지 않는 흐름에 마음고생이 꽤 심하긴 했으나 이것이 조은서의 비웃음거리가 될 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조은서는 결국 유선우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이고 애초에 그녀가 원했던 건 임지혜에게 상처를 주는 것뿐이었기에 정우연은 조은서를 걸고넘어질 생각은 없었다.이어 정우연은 아랫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아이를 가지니 운이 절로 따라주더라고요.”이윽고 다시 임지혜를 바라보며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아이가 나오면 꼭 지혜 씨를 저희 첫돌 잔치에 초대할게요. 이런 복도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잖아요.”“그만해!”차준호가 나서 그녀를 말렸다.“정우연, 너 지금 선 넘었어.”정우연은 매우 언짢았지만, 그녀를 나무라는 차준호의 말투가 전과 달리 너무 사납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마음속으로 다시 기뻐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가지니 드디
이윽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정우연은 잠깐 멈칫하더니 다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준호 씨!”빠른 걸음으로 차준호를 따라나선 정우연은 곧바로 소방 통로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차준호는 복도 끝에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정우연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몸까지 부르르 떨며 언성을 높였다.“결혼한다니까 속상해서 그래요? 준호 씨, 임지혜와 헤어진 지 몇 년인데 아직도 미련 남았어요? 그렇게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으면서 왜 유독 임지혜는 못 잊어서 안달이에요? 임지혜한테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면 침대에서 유독 더 특별했나요?”그 순간, 차준호가 손을 들어 정우연의 뺨을 내리쳤다.정우연은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멍하니 차준호를 바라보더니 한참 뒤, 가슴이 찢어질 듯 언성을 높여 울부짖기 시작했다.“당신 지금 임지혜 때문에 나한테 손찌검한 거예요? 준호 씨, 저 임신했다고요!”“네 배 속에 있는 거 내 아이 아니야.”차준호의 목소리는 쌀쌀하기 그지없었다.그리고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정우연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미쳤어요? 차준호 씨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차준호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더니 훤칠한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있는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난 이미 3년 전에 전립선결찰술을 마쳤어. 그러니 사모님, 이 말은 즉 당신은 절대 내 아이를 밸 수 없단 말이야. 원래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는데 이제 와 보니 다 의미가 없어졌군... 차씨 가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이니 낳을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해.”차준호의 말은 조금의 여지도 없이 잔인하기 그지없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우연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차준호 씨, 당신은 정말 악독하기 그지없군요. 어떻게 이렇게도 매정할 수 있어요? 당신은 이 아이가 당신
사실 조은서도 유문호를 기억하고 있다.어릴 적 조씨 가문과 유씨 가문 사이에 거래가 오가며 가끔 부모님과 함께 유씨 가문의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 유문호는 줄곧 자애롭고 품격 있는 사람이었다.그해 유문호가 떠나지 않았다면 유선우 역시 지금보다는 훨씬 점잖은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다.이때, 유문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랜만에 들은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았던 그 모습처럼 부드럽고 품격 있었다.“은서야, 잠깐 얘기 좀 나눠도 될까?”조은서는 말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오랜 세월이 지나 두 사람은 다시 마주 섰다. 서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공통한 가족과 혈육이 있었기에 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과거의 일은 뒤로 한 채 유문호는 유선우와 이안이의 근황과 어르신의 일을 물었다.조은서는 잠깐 침묵을 지킨 뒤,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어르신께서는 생전 아버님을 평생 기다리셨어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아버님만 찾으셨고요. 마지막에는 선우 씨를 아버님으로 착각하시고 나서야 눈을 감으셨어요. 그러니 여유가 된다면 한 번쯤은 꼭 어르신을 찾아뵈세요. 어르신께서는 평생 너무 힘들게 사셨잖아요.”조은서의 말에 유문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래. 찾아뵈어야지.”그 당시 별다른 준비 없이 경솔하게 결혼을 맞이한 결과, 결혼생활이 맞지 않는 탓에 그와 함은숙 사이에는 매일매일 말다툼이 오갔다. 게다가 그 뒤에는 함은숙이 유문호와 정주현의 관계를 의심하며 정주현을 모욕한 것도 모자라 정주현의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주며 그녀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결국, 참다못한 유문호는 별거를 선택했고 집을 떠나던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것이 생사 하나 확인할 수 없는 이별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유문호는 기분 전환 겸 바다에 나갔다가 유람선에서 추락해 기억을 잃었고 반평생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기억을 되찾고 다시 B시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해있었고 그의 아내는 그를 원망하고 그의 아들은 그를
조은서는 유선우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다시 빼앗아온 뒤, 계속하여 시선을 서류에 고정한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건 그 사람들 업무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불필요한 일을 더 시킬 필요는 없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면 결국 불평불만이 나오기 마련이고요. 그리고 유선우 씨 전에는 이렇게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여전히 담담한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선우는 두근두근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한참 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그래? 그럼 나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데?”조은서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서류를 내려놓으며 답했다.“사람이 아니었죠.”유선우는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애정이 어린 키스였지만 조은서는 여전히 그의 스킨쉽을 거절했다.“이안이가 봐요.”유선우도 곧바로 행동을 멈추고는 그윽한 눈으로 조은서를 바라보았다.“방금 정희 아주머님께서 나한테 만두 끓여주셨어.”조명 아래 비친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맑은 빛깔이 감돌았고 조은서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더욱 담담한 말투로 그의 말에 답했다.“오후에 아주머니께서 만두를 많이 빚으셨더라고요. 집에 있는 정원사와 경비원들도 모두 드셨는걸요.”그러자 유선우는 조은서의 귀를 살짝 깨물며 밉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 약 올리려고 작정했지?”그들의 관계는 이미 아이만 낳기 위한 계약관계를 훨씬 넘어버렸다. 물론 조은서도 과도하게 친밀해진 그들의 관계를 알아차렸다...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유선우는 내심 서운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맹세했다.“걱정하지 마.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떠나도 돼. 붙잡지 않을게.”말을 마치고 유선우는 이안이와 놀아주기 위해 자리를 떴다.이안이는 핑크 곰 인형을 단정하게 바닥에 놓아두고 종이와 펜을 가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아직 4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이지만 제법 잘 그렸다.그러나 유선우는 그 곰 인형을 가져와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갑자기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오빠!”조은서는 조은혁을 꽉 끌어안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어쩌다가 먼저 나오게 된 거야?”그러자 옆에 있던 심정희가 눈물을 훔치며 한마디 거들었다.“네 생일이라고 먼저 나왔잖니.”하지만 조은서는 유선우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조은혁도 예정보다 먼저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고 싶었다...하여 유선우는 이를 위해 일찍이 진이 정원을 떠났다.조은서는 유선우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조은혁도 마찬가지이다.심정희는 오랜만에 돌아온 조은혁을 위해 특별히 소금을 챙겨왔다.과거, 조은혁은 이런 미신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심정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소금을 가져와 어깨너머에 조금 뿌렸다... 소금을 다 뿌리고 심정희는 조은혁의 손을 꼭 쥐여주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네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나도 이제야 네 아버지를 볼 면목이 있겠다.”조은혁은 그저 묵묵히 심정희를 끌어안으며 그녀를 위로해주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심정희는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며 눈물을 닦았다.“먼저 네 아버지 보러 가자. 그동안 네가 무척 보고 싶었을 거야.”아버지 소리에 조은혁의 마음도 축축이 젖어갔다.바로 그때, 이안이가 집안에서 뛰쳐나와 귀여운 목소리로 삼촌을 불렀다.조은혁은 곧바로 허리를 숙여 이안이를 안아 들었다.조그마한 아이는 조은서의 어린 시절을 쏙 빼닮았고 6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며 마음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 어느새 무정한 냉혈인간이 되어버린 조은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따뜻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었다.이안이는 하늘에서 조씨 가문에게 내려준 가장 큰 위로이다.그러나 이안이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조은혁 역시 진즉 알고 있었다. 그는 이안이의 작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를 매우 아꼈다....조은혁은 단독으로 묘원을 찾아갔다.금빛 찬란한 햇빛이 그의 몸에 흩뿌려졌지만 조
밤이 오자 조은서는 조은혁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조은혁은 조은서가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지내기로 했고 그곳은 부지가 매우 좋고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하지만 이 또한 일시적인 계책일 뿐이다.밤이 어둑어둑 깊어지고 그들의 차는 아파트 입구에 멈춰 섰다. 조은혁은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그는 여동생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6년 동안 떨어져 지내고 조은서가 엄마가 됐다 할지라도 그들의 감정은 줄곧 변하지 않았다. 조은혁의 마음속 조은서는 여전히 오빠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던 어린 소녀이다.“오빠.”조은서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지금은 그들 남매 두 사람만이 한 공간에 있기에 유선우와 박연준을 포함한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다.조은혁은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무뚝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해, 아버지께서 조금 거친 방법으로 회사를 인수하시며 간접적으로 상대방이 파산하게 되었어. 그 사람은 빚을 가득 짊어지고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그 사람의 자녀는 길거리를 떠돌게 되었지... 아버지께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특별히 그 남매를 지원해주기로 했고 후에 남매 중 오빠가 출세하며 국내 유명한 변호사가 되었어.”조은서는 잠깐 멈칫하더니 곧바로 그 사람의 정체를 눈치챘다.“박연준!”그러자 조은혁은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고 입에 문 담배를 다시 꺼내려는데 손가락마저 덜덜 떨리고 있었다.역사는 항상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고 그와 조은서도 이제 서로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박연준, 네가 이겼다.’한참 뒤, 그는 고개를 돌려 조은서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비록 그동안 계속 감옥 안에 갇혀있었지만 난 단 한 번도 진실을 포기한 적이 없어. 며칠 전, 유선우가 믿을 만한 소식을 들고 왔는데... 당시 아버지 옆에서 일하던 비서가 사실 박연준의 비서래.”조은서는 시트에 기대앉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도무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씨 가문을 무너뜨린 사람이 박연준이
조은서는 곧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고 조용히 차 안에 남아 오늘 밤 접한 소식들을 천천히 곱씹었다.깊은 밤, 이제 집에 돌아가려고 준비하던 그때, 차 앞에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오늘 밤 조은서와 조은혁이 토론하던 대상... 박연준이었다.그는 깊은 밤에도 여전히 단정한 옷차림에 신사적인 모습이다.올백 머리에 영국식 양복 차림.박연준은 차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조은서를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현재의 그는 아마 모든 위장을 벗어던진 후일 것이다... 현재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조은서는 박연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기 시작했다.이윽고 그녀는 갑자기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박연준은 흰 스포츠카가 자신을 향해 맹렬히 다가오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전혀 피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은 복잡함의 극치에 달아올랐다….최근 몇 년간 그의 몸부림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는 조은서를 사랑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사실 그는 몇 번이나 조씨 가문의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지만 차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조은서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해서는 안 될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그는 가장 저급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조승철이 죽고 그는 원래 조은서의 곁에서 사라져야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이윽고 귀가 째지는 듯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가 급하게 멈춰 섰다.차 안에 앉아있는 조은서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핸들을 꽉 잡고 있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조은서는 여전히 차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속에는 이제 낯선 감정만 남아있었다.그 순간, 조은서는 박연준의 사랑을 눈치챘다.하지만 박연준에 대한 조은서의 마음은 오직 원망만이 남아버렸다...*조은서가 진이 정원에 돌아올 땐 이미 밤 열 시가 다 되어갔다.심정희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조은서에
유선우는 그녀를 종일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마음속으로는 내심 실망했지만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조은서의 생일이니까. 이윽고 그는 조은서에게 드레스룸에 가족, 친구들과 지인이 준 많은 선물이 놓여 있다고 알려주었다...조은서도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샤워하고 열어볼게요.”그러자 유선우는 갑자기 조은서의 몸을 끌어당기더니 그녀의 옷을 사이에 두고 유혹하기 시작했다.“같이 씻자.”하지만 조은서는 가볍게 거절했다.“안돼요. 생리 왔어요.”유선우는 그윽한 눈빛으로 조은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녀를 가로 안아 욕실로 향했다. 물론 생리가 올 때 강박적으로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다... 게다가 오늘 생일이라 그저 조은서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그러나 유선우가 잘할수록 조은서는 점점 더 아쉬워졌다.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한번 놓치면 평생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샤워를 마치고도 여전히 잠이 오지 않자 조은서는 드레스룸에 쌓인 선물을 열어보기로 했다. 일부 선물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성진그룹 사모님이 주신 명주 손수건이다.마지막까지 선물을 풀자 제왕록의 비취 팔찌가 들어있었다.이토록 귀중한 물품은 B시 전체를 뒤져본다고 해도 몇 가지 없기에 조은서는 선물을 보자마자 곧바로 선물을 보낸 사람을 알아챘다.함은숙이 보낸 것이다.조은서는 갑작스러운 인물에 잠깐 멈칫했고 뒤이어 드레스룸에 들어온 유선우 역시 팔찌를 발견했다.그 역시 팔찌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곧바로 누가 보내준 것인지 눈치채고 물건을 아무 데나 던져놓은 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갖고 싶지 않으면 내일 다시 돌려보낼게.”조은서는 고개를 쳐들고 물끄러미 유선우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별장에 갇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유선우만을 기다리던 그 날 밤을 떠올렸다... 유선우가 찾아갔을 땐 이미 보름이나 지난 뒤였고 하염없이 그를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