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비록 퇴근하기에는 이른 시각이지만 이안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유선우는 일찍 회사를 나왔다.물론 조은서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다. 요즘 날씨가 유난히도 추운지라 그녀에게 어울릴 것 같은 루이뷔통의 연한 핑크색 캐시미어 머플러를 하나 골라 샀다.검은색 캠핑카가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눈보라가 점점 거세져 땅에는 눈이 벌써 얇게 깔려있었다.차는 한 길목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그 사이에 기사는 백미러를 닦으며 말했다.“눈이 제법 많이 내릴 것 같은데요. 아마 또 도로가 막힐 겁니다. 대표님, 내일 아침은 제가 일찍 도착해서...”“내일은 크리스마스라서 집에서 아이랑 같이 보낼 겁니다.”뒷좌석에 앉아 이안이에게 주려고 산 장난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유선우가 말했다.기사가 듣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애가 있으니, 대표님도 가정적이 되신 것 같아요.”그 말에 유선우도 가볍게 웃었다.파란불이 되어 차가 다시 시동을 거는데, 한 젊은 여자애가 차창을 두드렸다.백서윤이 조심스러우면서 살짝 수줍어하는 얼굴로 밖에 서 있었다.몇 초 동안 지켜보다가 유선우는 창문을 내렸다.백서윤이 조급한 듯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말을 꺼냈다. “대표님, 저 좀 급한 일이 있어 그러는데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눈이 와서... 택시가 안 잡혀요.”대표님 차가 손 흔들어 세워 타는 택시로 아는지.기사는 한마디 따끔하게 하고 싶었는데, 유선우는 백서윤의 얼굴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추워서 그런가, 새하얀 얼굴에는 연한 핑크빛이 돌고 있었다.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조은서의 차가운 얼굴과는 다르게.한참 후, 유선우는 서늘한 표정으로 그녀한테 차에 타라고 했다.잠깐 망설이더니 백서윤은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사실 이건 매우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평소 진 비서가 이 차에 탈 때도 앞좌석에만 탔었는데 고작 인턴일 뿐인 그녀가 대표님과 같이 뒷좌석에 앉는다는 게.뭔가 눈치를 챈 기
유선우가 별장에 돌아온 시간은 저녁 7시가 거의 돼가는 때였다.조은서는 이미 저녁 식사를 마쳤다. 요즘 그녀는 컨디션이 조금 돌아왔다.하지만 별장의 경계는 풀리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눈을 맞으며 별장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차가 마당에 멈춰 섰고, 유선우는 빈손으로 차에서 내렸다. 의외의 선물로 조은서한테 서프라이즈를 안겨주고 싶었다.현관을 지나 검은색 코트를 벗어 고용인에게 넘겨주며 습관적으로 거실을 훑었다.“작은 사모님은 식사했어요?”고용인은 코트를 넘겨받으며 정겹게 웃었다.“네. 드셨어요. 오후에는 작은 아가씨를 안고 1층 통창 앞에서 눈 내리는 구경도 시켜줬어요. 작은 아가씨 고 어린 것이 뭘 알긴 아는지, 눈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더라고요. 눈을 아주 좋아하나 봐요.”유선우의 남성적인 이목구비에 부드러움이 번졌다. 슬리퍼를 갈아신고 2층 안방으로 곧장 향했다.방안에는 노란 등불이 켜져 있었고, 난방이 따뜻하게 실내를 데워 포근하기 그지없었다.연분홍색의 울 원피스를 입은 조은서는 아기침대 옆에 기대 부드러운 눈길로 아이랑 놀고 있었다. 집에만 계속 있은 그녀는 머리를 대충 말아 올렸다. 하얗고 긴 목선은 여실히 드러나 우아함이 묻어났고 얼굴 옆 라인은 여전히 정교했다.유선우는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기척을 내지 않았다.꿈에 그리던 장면 아니었는가.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집안 분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예전의 상처들은 깡그리 사라지고 사랑하는 부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때 눈을 든 조은서는 그의 부드러운 눈길과 시선이 닿았다.유선우는 걸어와 그녀와 아기침대 앞에 서서 다정한 말투로 얘기했다.“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왔는데 깜박하고 차에 두고 내렸어. 가서 가져올래?”그는 아이랑 눈을 마주치며 손으로 아이의 볼을 만졌다. 이안이가 그를 알아보고 기뻐서 새물새물 웃으며 개구리가 헤엄치듯 발을 버둥거렸다.유선우의 표정이 더 부드러워졌다. 그는 딸아이의 조막만 한 얼굴에 뽀뽀하고 또 뽀뽀했다.외투를 걸친 조은서가
유선우는 이안을 아기침대에 눕혀놓고 뒤에서 조은서를 껴안았다. 얇은 입술을 그녀의 귓전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네 선물도 한번 봐봐.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유선우와의 신체접촉이 싫은 듯 조은서는 그가 껴안은 손을 풀어헤치며 박스를 열었다.박스 안에는 연분홍색의 머플러가 들어있었다.유선우는 머플러를 꺼내 둘러주며 나직하게 말했다.“너랑 잘 어울려.”그녀의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 유선우는 저도 모르게 그녀와 살갗을 맞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난번부터 그는 꽤 오래 그녀의 살결을 만져보지 못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이기도 하니, 분위기에 이끌려 그녀가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백허그를 하며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귀 안에 불어넣었다. 끓어오르는 마음에 목소리까지 한껏 잠겼다.“은서야... 우리, 그거 할까? 네가 기분 나쁘다고 하면 멈출게.”말하자마자 그녀를 들어 소파에 앉혔다.소파 등받이에 한 손을 짚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감싸쥐었다. 강한 키스가 아닌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키스를 이어가며 낮게 읊조렸다. 네가 기분 좋은 방식으로, 뭐든 다 너한테 맞춰서 하겠다고.길고 검게 윤기 나는 머릿결이 순백의 등에 떨어지며 부채처럼 펼쳐졌다.눈초리를 내리깔아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한없이 다정한 모습의 이 사람. 그는 알기나 할까, 몸에서 딴 여자의 향수 냄새가 나는지는?그건 옅은 오렌지 향, 풋풋한 소녀의 향기였다.고개를 돌리며 조은서는 밋밋한 반응으로 그를 거부했다.창문으로 아래층에 있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선우 씨, 난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대체 난 언제 나갈 수 있어요?”그 말에 유선우는 멈칫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일말의 욕구도 없는 냉담하기만 한 그녀의 눈동자를 눈에 담았다.여자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수컷의 욕구는 점점 사그라들었다.아무리 몸에서 불덩어리가 타올라도 이런 반응은 자존심이 상하기 마련이었다.그녀의 어깻죽
그들은 또 여느 때와 같이 불쾌하게 대화를 끝냈다.그 후, 그들의 관계는 점점 살얼음판과도 같았다. 오로지 유선우만의 집념만으로 이 불안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듯싶었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그가 몰랐던 건, 백서윤의 출현으로 조은서의 산후 우울증 증세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우울증 치료를 위해 약을 먹기 시작했고, 부득이 모유 수유를 중단해야만 했다. 생후 몇 달 안 되는 어린 이안의 수유는 전부 분유로 바뀌었다.이 또한 유선우는 모르고 있었다.잘 보상하겠다고 했던 남자의 약속은 금이 간 부부관계 앞에서 그토록 취약하고 보잘것없었다.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여전히 조은서일지는 몰라도, 차가운 그녀의 얼굴보다 그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을 더 마주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남자는 밖을 나돌며 집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연말에 가까워지며 조은서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매일 밤 수면제로 간신히 잠을 청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알씩 먹다가 나중에는 세 알씩 먹어야 잠이 들까 말까 했고 가끔은 약을 먹고 나서도 밤중에 애가 우는 기척만 나면 쉽게 놀라 깨곤 했다. 그렇게 깨어나면 아이를 안고 방안에서 밤새 왔다 갔다 하며 애를 달래는 자장가를 불러주었다.이러한 상황 역시 유선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는 있지만, 누군가의 얘기처럼, 익숙하고도 낯선 사람, 그게 바로 그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날 선 가시가 되어 상대를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약속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외면으로 일관했다.그렇게 찬 기운이 계속 유지되는 사이, 유선우는 여전히 남성 매력을 발산하며 뭇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지만 조은서는 시들기 시작한 장미꽃처럼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왕년 YS그룹 송년회에서 조은서는 그룹 안주인으로서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달랐다.그들 부부가 금실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아마 B시 전체가 알고 있을
백서윤은 그와의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다.하지만 유선우는 그녀의 어깨 옆을 스치며 쓱 가버렸다.망연했다. 분명 자신이 방금 나타났을 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자신한테 관심이 있어 보였는데. 저번에도 차에 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도 그의 표정과 눈빛은 그녀한테 관심 간다는 것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었다.그런데 왜 그녀의 마음을 알고도 외면하는 거지?실망에 빠져 있는 백서윤을 함은숙은 예리한 눈으로 아래위 훑었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는 진 비서한테 물었다.“쟤가 바로 그 인턴?”진유라는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네. 주제 파악을 영 못하는 어린애예요. 별 같지도 않은 핑곗거리로 대표님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대표님은...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요.”함은숙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씨익 웃었다.“꿩 대신 닭이 기승을 부리네. 그래봤자 지는 닭일 텐데 말이야.”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백서윤은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저도 유부남한테 치근덕대고는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유선우를 좋아하는 마음을!......이틀 후, 진유라는 서류를 전달하러 별장으로 왔다.서재에서 유선우는 한창 화상회의 중이었고, 진유라는 서류를 위층 거실에 갖다 놓고 온 김에 조은서와 이안을 보고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마침 거실에 조은서가 앉아있었다.진유라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일부러 그중에 있는 연간지를 제일 위에 올려놓았다. 무언의 귀띔이었다.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조은서는 그 연간지를 펼쳤다. 남편과 젊은 여자애가 나란히 서있는 사진으로 일면이 채워져 있었다. 여자애가 입은 드레스도 예전에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라 눈에 익었다. 백서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을 텐데. 신경을 이만저만하게 쓴 게 아니란 티가 팍팍 났다.그런데 그것보다도 재미있는 건 유선우의 눈빛이었다. 그냥 눈길이 아니라 남자 대 여자로 보는 눈빛. 여자인 그녀가 장님이 아닌 이상 못 느낄 수가 없었다. 둘은 매우 친밀한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
화상회의를 마치니 이미 저녁 8시였다.유선우는 침실로 바로 가지 않고 서재의 통창 앞에 서서 담배를 두어 대 피웠다.담배 연기가 피어올라 서재를 뽀얗게 뒤덮었다.통창 유리에는 김이 서려있었다. 손으로 닦아내고 보니 바깥 땅바닥에는 이미 눈이 10센티 정도 쌓여있었다.이번 겨울은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리는 것 같았다.기다란 손가락사이에 담배를 끼고 유선우는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 바깥을 내다보는 새카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손에 쥔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 갈 때쯤 그는 꽁초를 비벼 불씨를 꺼버리고 서재를 나왔다.안방 바깥에 딸린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그 연간지를 발견했다.아주 보란 듯이 놓여있었다.연간지를 집어 들어 대충 몇 페이지를 펼치니 그와 백서연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사진상 분위기는 좀 야릇하였다.그는 조은서가 이 연간지를 봤을 거라 확신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연간지를 덮어버리고 그는 안방에 들어갔다.밖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고 조은서는 아기를 안고 창밖에 앉아 상냥하게 아이를 달래며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한참을 지켜보다가 유선우는 셔츠 단추를 두세 개 풀어헤치며 덤덤하게 물었다.“왜 모유 수유는 안 해?”젖을 끊은지 반달 남짓 되었지만 유선우는 모르고 있었다.“수면제를 먹고 있어서 모유를 끊었어요.”조은서는 무심한 듯 얘기했다.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항상 뭔가 조짐을 보이거나 주변 사람에게 신호를 내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지금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하지만 냉전 중인 남자는 그걸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쳤다.아이 곁으로 와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분유도 나쁘지 않아.”순간 조은서는 입매가 살짝 굳어지며 눈을 끔벅였다.그 후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고, 유선우는 이 무미건조함을 견디기 싫어 욕실로 들어갔다.샤워하면서도 가끔 조은서의 그 서늘하고 쌀쌀한 얼굴이 떠올랐다. 슬슬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결혼생활을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유선우는 방을 나갔다.방문을 열자 찬 바람이 조금 불어 들어왔는데 아기 침대에서 자고 있던 이안이가 그걸 느꼈는지 낮은 소리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조은서는 얼른 일어나 아이를 안고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잠시 후, 유선우가 돌아왔다.조은서를 한 번 힐끔 하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그의 말소리가 드레스룸에서부터 들려왔다.“나갔다 올게. 이안이랑 먼저 자.”조은서는 아이를 안고 드레스룸으로 가서 입구에 섰다.몸에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던지고 그는 셔츠와 편하고 맵시 있는 난방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눈바람이 불어치는 심야에 젊은 여자애를 만나러, 그가 스타일에 꽤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는 곁눈질로 조은서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물었다.“안 자고 뭐 해?”품에 안긴 이안을 내려다보며 조은서는 대답했다.“애가 좀 보채서요... 선우 씨, 그 여자애가 그렇게 신경 쓰이면 그냥 그 여자랑 결혼하지 그래요.”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늘에는 백아현, 내일에는 정아현, 이아현이 또 나타나겠지... 항상 이런 식이었고 그녀는 지쳤다. 이 집구석에서 하루빨리 해방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에서 유선우는 옷매무시를 정리했다.그가 반듯하게 차려입기까지 하니,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그녀의 모습이 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한참 후에 그는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럼 너도 나한테 애원해 보지 그래, 나가지 말라고.”그녀는 그럴 리 만무했고, 몸을 돌려 애를 안고 침실로 갔다. 부드러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하여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이안을 보는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다정하고 상냥했다.유선우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아이를 대하는 다정함의 십분의 일이라도 그한테 할애했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인데. 아마 그랬더라면 지금쯤 둘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한 쌍의 부부였을 것이다.끝내, 유선우는 집을 나섰다. 칠흑 같은 밤에 다른 여자를 만나러.
새벽 시간. 유선우의 차는 한 오피스텔 앞에 멈췄다.온밤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정문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여자애는 유선우를 보자 달려와 와락 끌어안고 품속을 파고들었다.“대표님, 저 너무 무서워요. 미정이가 수면제를 네 알이나 먹었대요. 목숨이 위태로운 줄 알았어요.”백서윤은 유선우의 품에 고개를 파묻고 작게 읊조렸다.유선우는 한 손으로 차 문을 닫으며 품 안에 안긴 여자애를 고개 숙여 바라보았다. 예상치 않은 스킨십. 그녀가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기 시작한 것이다. 꾸짖음 따위는 없이 유선우는 그저 가볍게 그녀를 밀어냈다.“사람은 지금 괜찮아?”백서윤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큰 눈망울로 유선우를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미정이 가족들이 와서 한창 돌보는 중이에요. 지금은 아마 숙소에 들어가기 좀 그럴 것 같은데...”다 말하고 나서 백서윤은 부끄럽고도 불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녀가 우물쭈물하는 그때, 유선우는 이미 조수석의 차 문을 열고는 담담하게 얘기했다.“일단 타.”백서윤은 눈앞의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심야에 그녀 때문에 와주었으면서, 품에 안긴 그녀를 또 밀어내었다.또 이제는 차에 타라고 한다. 그것도 조수석에.남자의 조수석은 아내나 여자친구만 탈 수 있는 자리라고 들었는데, 그 자리에 앉으라는 건 그녀의 위치를 인정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는지?마음속에서는 기쁨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조수석에 올라탔다.유선우는 차 문을 닫아주고 차 머리를 빙 돌아 운전석에 올라탔다. 히터를 켜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차 안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 둘을 휘감고 있었다.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매우 매력적이었다.백서윤은 넋이 나갈 뻔하였고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며 얼굴이 붉어졌다.그러나 한참 동안 기다려도 그는 담배만 피울 뿐 말이 없었다. 그녀한테 눈길도 주지 않았다.조금은 들뜨고 기뻤던 마음이 실망으로 가라앉았다.차 밖에는 쌀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