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우는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며 조은서를 생각했고 그녀의 병을 생각해보았다.의사는 조은서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기쁘게 해주라고 당부했지만, 그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조은서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마치 그는 어떻게 해도 잘못된 것처럼 말이다.그의 뒤에서 누군가의 가느다란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백서윤이었다.그녀는 차마 유선우를 방해할 수가 없었다.그저 먼 곳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백서윤은 왠지 모르게 유선우가 무척 외로워 보였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가정이 있지 않은가? 아내와 딸이 있는데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그런데 왜 전혀 안 행복해 보이는 거지?유선우는 원래 담배 두 개 정도만 피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몸을 돌리자마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서윤을 발견하게 되었다.유선우와 같은 성숙한 남자 앞에서 백서윤과 같은 어린 여자아이의 마음은 무척 투명했다.그는 단번에 백서윤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음을 눈치챘다.이어 유선우는 그윽한 눈빛으로 백서윤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백서윤의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선우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말을 걸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경 그들은 서로 알고 있지 않은가?하지만 그녀는 유선우가 정말 한마디도 없이 바로 그녀를 지나쳐갈 줄 예상하지 못했다.백서윤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아마 유선우는 아직도 자신의 아내를 매우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유선우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탔다.조은서는 뒷좌석에 앉아 매우 상냥한 모습으로 배고파하는 이안에게 젖을 먹여주고 있었다... 브라운 코트는 한쪽에 벗어두고 안에는 연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추를 열어젖히니 조은서의 여리고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유선우는 차 문을 닫고 몸을 돌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감출 수 없는 부드러움이 흘러나왔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그들을 힐끔거리던 아주머니도
이윽고 조은서는 정신을 차린 뒤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빨간 입술은 살짝 벌어진 채 이따금 숨을 헐떡였다. 아직 조금 전의 감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인지 조은서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로 가득 물들어 있었고 동시에 청순한 유혹감을 가지고 있었다.이윽고 조은서는 곧바로 얼굴을 베개 사이에 파묻었다.그녀는 유선우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조금 전에 느꼈던 몸의 쾌락을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다.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죄악으로 가득 차버렸다.하지만 유선우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돌려놓고는 몸을 숙여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이윽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해보겠느냐고 물었다.유선우의 들끓고 있는 몸은 조은서와의 관계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조은서가 낮은 목소리로 싫다고 거절했지만 남자는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듯싶었다. 욕구에 눈이 먼 남자는 그저 여자의 몸으로 위안이 필요할 뿐 싫다는 거절 따위는 들릴 리가 없었다.자신이 기분이 좋으니 그녀 역시 기분이 좋으리라 생각했다.남자의 강인함과 여자의 부드러움이 만나... 그 순간 조은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결국 신음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이는 몸의 고통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찢어지며 느낀 고통이다.그녀는 유선우가 싫었고 그가 자신을 만지는 것은 더욱 싫었다.조은서의 가녀린 손가락은 침대 헤드라이트를 쥐었고 계속하여 싫다고 거절했지만, 강압적인 부드러움 속에서 그녀는 결국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 헤드라이트를 그대로 유선우의 이마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피가 이마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갑작스러운 고통에 유선우가 신음을 냈다.그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몸 아래에 누워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기분 좋은 순간에 조은서가 자신을 내리찍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꼭 껴안으며 부드럽게 물었다.“어디 아팠어? 왜 그래?”조은서는 이내 유선우를 힘껏 밀어냈다.그녀는 유선우를 마주하기 싫었고 침대 머리맡에 가녀린 몸을 쪼그리고
유선우는 백서윤의 이력서를 한편에 던져두었고 비서의 말에 동의한 셈이다.그러자 진 비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바로 그때, 이력서에서 한 장의 7인치 사진이 흘러나왔는데 그건 다름 아닌 백서윤의 증명사진이었다... 붉은 바탕에 흰 셔츠, 긴 생머리에 포니테일을 묶은 새까만 머리카락, 그리고 생기가 도는 맑은 눈동자까지.그렇게 얼떨결에 사진을 보니 열여덟 살의 조은서와 매우 닮아 보였다.눈치가 빠른 진 비서는 다급히 사진을 서류 안에 집어넣고 자리를 뜨려 했다.그러나 유선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잠깐만!”유선우는 다시 서류를 건네받은 뒤 사진을 빼내어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다시 서류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그냥 남겨둬. 특별한 배려 없이 평범한 인턴으로 일하게 하면 돼.”그러자 진 비서가 당황하며 항의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아시면 불쾌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신분이 워낙 특수하여 만약...”그러자 유선우는 더욱 덤덤한 어투로 그녀의 말을 잘라 지시를 내렸다.“내 말대로 해.”지시를 내렸지만 계속 움직이지 않는 진 비서에 유선우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진 비서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꺼냈다.“대표님, 전 예전에 대표님께서 정말 은서 씨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인제 와서 보니 대표님께서 사랑하는 건 대표님을 열렬하게 사랑하던 그 시절의 은서 씨군요... 현재의 사모님이 아니라.”이윽고 그녀는 손안의 이력서를 흔들어 보이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대표님, 언젠가는 후회하실 겁니다.”그러자 유선우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이더니 조금 화가 난듯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진유라 씨, 신분을 주의해주세요!”진 비서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더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도 유선우가 여전히 그녀의 하이힐 소리를 똑똑하게 들을 수 있는걸 보아하니 그녀 역시 못지않게 화가 난 모양이다....백서윤이 YS 그룹에 이력서를 넣은 건 확실히 어느 정도의 사심이 들어있다.전
오후 4시. 비록 퇴근하기에는 이른 시각이지만 이안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유선우는 일찍 회사를 나왔다.물론 조은서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다. 요즘 날씨가 유난히도 추운지라 그녀에게 어울릴 것 같은 루이뷔통의 연한 핑크색 캐시미어 머플러를 하나 골라 샀다.검은색 캠핑카가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눈보라가 점점 거세져 땅에는 눈이 벌써 얇게 깔려있었다.차는 한 길목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그 사이에 기사는 백미러를 닦으며 말했다.“눈이 제법 많이 내릴 것 같은데요. 아마 또 도로가 막힐 겁니다. 대표님, 내일 아침은 제가 일찍 도착해서...”“내일은 크리스마스라서 집에서 아이랑 같이 보낼 겁니다.”뒷좌석에 앉아 이안이에게 주려고 산 장난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유선우가 말했다.기사가 듣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애가 있으니, 대표님도 가정적이 되신 것 같아요.”그 말에 유선우도 가볍게 웃었다.파란불이 되어 차가 다시 시동을 거는데, 한 젊은 여자애가 차창을 두드렸다.백서윤이 조심스러우면서 살짝 수줍어하는 얼굴로 밖에 서 있었다.몇 초 동안 지켜보다가 유선우는 창문을 내렸다.백서윤이 조급한 듯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말을 꺼냈다. “대표님, 저 좀 급한 일이 있어 그러는데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눈이 와서... 택시가 안 잡혀요.”대표님 차가 손 흔들어 세워 타는 택시로 아는지.기사는 한마디 따끔하게 하고 싶었는데, 유선우는 백서윤의 얼굴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추워서 그런가, 새하얀 얼굴에는 연한 핑크빛이 돌고 있었다.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조은서의 차가운 얼굴과는 다르게.한참 후, 유선우는 서늘한 표정으로 그녀한테 차에 타라고 했다.잠깐 망설이더니 백서윤은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사실 이건 매우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평소 진 비서가 이 차에 탈 때도 앞좌석에만 탔었는데 고작 인턴일 뿐인 그녀가 대표님과 같이 뒷좌석에 앉는다는 게.뭔가 눈치를 챈 기
유선우가 별장에 돌아온 시간은 저녁 7시가 거의 돼가는 때였다.조은서는 이미 저녁 식사를 마쳤다. 요즘 그녀는 컨디션이 조금 돌아왔다.하지만 별장의 경계는 풀리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눈을 맞으며 별장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차가 마당에 멈춰 섰고, 유선우는 빈손으로 차에서 내렸다. 의외의 선물로 조은서한테 서프라이즈를 안겨주고 싶었다.현관을 지나 검은색 코트를 벗어 고용인에게 넘겨주며 습관적으로 거실을 훑었다.“작은 사모님은 식사했어요?”고용인은 코트를 넘겨받으며 정겹게 웃었다.“네. 드셨어요. 오후에는 작은 아가씨를 안고 1층 통창 앞에서 눈 내리는 구경도 시켜줬어요. 작은 아가씨 고 어린 것이 뭘 알긴 아는지, 눈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더라고요. 눈을 아주 좋아하나 봐요.”유선우의 남성적인 이목구비에 부드러움이 번졌다. 슬리퍼를 갈아신고 2층 안방으로 곧장 향했다.방안에는 노란 등불이 켜져 있었고, 난방이 따뜻하게 실내를 데워 포근하기 그지없었다.연분홍색의 울 원피스를 입은 조은서는 아기침대 옆에 기대 부드러운 눈길로 아이랑 놀고 있었다. 집에만 계속 있은 그녀는 머리를 대충 말아 올렸다. 하얗고 긴 목선은 여실히 드러나 우아함이 묻어났고 얼굴 옆 라인은 여전히 정교했다.유선우는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기척을 내지 않았다.꿈에 그리던 장면 아니었는가.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집안 분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예전의 상처들은 깡그리 사라지고 사랑하는 부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때 눈을 든 조은서는 그의 부드러운 눈길과 시선이 닿았다.유선우는 걸어와 그녀와 아기침대 앞에 서서 다정한 말투로 얘기했다.“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왔는데 깜박하고 차에 두고 내렸어. 가서 가져올래?”그는 아이랑 눈을 마주치며 손으로 아이의 볼을 만졌다. 이안이가 그를 알아보고 기뻐서 새물새물 웃으며 개구리가 헤엄치듯 발을 버둥거렸다.유선우의 표정이 더 부드러워졌다. 그는 딸아이의 조막만 한 얼굴에 뽀뽀하고 또 뽀뽀했다.외투를 걸친 조은서가
유선우는 이안을 아기침대에 눕혀놓고 뒤에서 조은서를 껴안았다. 얇은 입술을 그녀의 귓전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네 선물도 한번 봐봐.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유선우와의 신체접촉이 싫은 듯 조은서는 그가 껴안은 손을 풀어헤치며 박스를 열었다.박스 안에는 연분홍색의 머플러가 들어있었다.유선우는 머플러를 꺼내 둘러주며 나직하게 말했다.“너랑 잘 어울려.”그녀의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 유선우는 저도 모르게 그녀와 살갗을 맞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난번부터 그는 꽤 오래 그녀의 살결을 만져보지 못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이기도 하니, 분위기에 이끌려 그녀가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백허그를 하며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귀 안에 불어넣었다. 끓어오르는 마음에 목소리까지 한껏 잠겼다.“은서야... 우리, 그거 할까? 네가 기분 나쁘다고 하면 멈출게.”말하자마자 그녀를 들어 소파에 앉혔다.소파 등받이에 한 손을 짚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감싸쥐었다. 강한 키스가 아닌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키스를 이어가며 낮게 읊조렸다. 네가 기분 좋은 방식으로, 뭐든 다 너한테 맞춰서 하겠다고.길고 검게 윤기 나는 머릿결이 순백의 등에 떨어지며 부채처럼 펼쳐졌다.눈초리를 내리깔아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한없이 다정한 모습의 이 사람. 그는 알기나 할까, 몸에서 딴 여자의 향수 냄새가 나는지는?그건 옅은 오렌지 향, 풋풋한 소녀의 향기였다.고개를 돌리며 조은서는 밋밋한 반응으로 그를 거부했다.창문으로 아래층에 있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선우 씨, 난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대체 난 언제 나갈 수 있어요?”그 말에 유선우는 멈칫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일말의 욕구도 없는 냉담하기만 한 그녀의 눈동자를 눈에 담았다.여자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수컷의 욕구는 점점 사그라들었다.아무리 몸에서 불덩어리가 타올라도 이런 반응은 자존심이 상하기 마련이었다.그녀의 어깻죽
그들은 또 여느 때와 같이 불쾌하게 대화를 끝냈다.그 후, 그들의 관계는 점점 살얼음판과도 같았다. 오로지 유선우만의 집념만으로 이 불안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듯싶었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그가 몰랐던 건, 백서윤의 출현으로 조은서의 산후 우울증 증세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우울증 치료를 위해 약을 먹기 시작했고, 부득이 모유 수유를 중단해야만 했다. 생후 몇 달 안 되는 어린 이안의 수유는 전부 분유로 바뀌었다.이 또한 유선우는 모르고 있었다.잘 보상하겠다고 했던 남자의 약속은 금이 간 부부관계 앞에서 그토록 취약하고 보잘것없었다.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여전히 조은서일지는 몰라도, 차가운 그녀의 얼굴보다 그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을 더 마주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남자는 밖을 나돌며 집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연말에 가까워지며 조은서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매일 밤 수면제로 간신히 잠을 청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알씩 먹다가 나중에는 세 알씩 먹어야 잠이 들까 말까 했고 가끔은 약을 먹고 나서도 밤중에 애가 우는 기척만 나면 쉽게 놀라 깨곤 했다. 그렇게 깨어나면 아이를 안고 방안에서 밤새 왔다 갔다 하며 애를 달래는 자장가를 불러주었다.이러한 상황 역시 유선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는 있지만, 누군가의 얘기처럼, 익숙하고도 낯선 사람, 그게 바로 그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날 선 가시가 되어 상대를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약속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외면으로 일관했다.그렇게 찬 기운이 계속 유지되는 사이, 유선우는 여전히 남성 매력을 발산하며 뭇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지만 조은서는 시들기 시작한 장미꽃처럼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왕년 YS그룹 송년회에서 조은서는 그룹 안주인으로서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달랐다.그들 부부가 금실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아마 B시 전체가 알고 있을
백서윤은 그와의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다.하지만 유선우는 그녀의 어깨 옆을 스치며 쓱 가버렸다.망연했다. 분명 자신이 방금 나타났을 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자신한테 관심이 있어 보였는데. 저번에도 차에 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도 그의 표정과 눈빛은 그녀한테 관심 간다는 것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었다.그런데 왜 그녀의 마음을 알고도 외면하는 거지?실망에 빠져 있는 백서윤을 함은숙은 예리한 눈으로 아래위 훑었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는 진 비서한테 물었다.“쟤가 바로 그 인턴?”진유라는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네. 주제 파악을 영 못하는 어린애예요. 별 같지도 않은 핑곗거리로 대표님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대표님은...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요.”함은숙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씨익 웃었다.“꿩 대신 닭이 기승을 부리네. 그래봤자 지는 닭일 텐데 말이야.”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백서윤은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저도 유부남한테 치근덕대고는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유선우를 좋아하는 마음을!......이틀 후, 진유라는 서류를 전달하러 별장으로 왔다.서재에서 유선우는 한창 화상회의 중이었고, 진유라는 서류를 위층 거실에 갖다 놓고 온 김에 조은서와 이안을 보고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마침 거실에 조은서가 앉아있었다.진유라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일부러 그중에 있는 연간지를 제일 위에 올려놓았다. 무언의 귀띔이었다.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조은서는 그 연간지를 펼쳤다. 남편과 젊은 여자애가 나란히 서있는 사진으로 일면이 채워져 있었다. 여자애가 입은 드레스도 예전에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라 눈에 익었다. 백서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을 텐데. 신경을 이만저만하게 쓴 게 아니란 티가 팍팍 났다.그런데 그것보다도 재미있는 건 유선우의 눈빛이었다. 그냥 눈길이 아니라 남자 대 여자로 보는 눈빛. 여자인 그녀가 장님이 아닌 이상 못 느낄 수가 없었다. 둘은 매우 친밀한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