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우의 강압적인 손길에 아파 났지만 조은서는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소파 위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 걸려있는 크리스탈 조명이 유난히 눈부시게 밝았다. 그녀의 기억대로라면 그 크리스탈 조명은 그들의 사이가 가장 애틋할 때 유선우가 이탈리아에서 주문한 것이다.조은서는 그 수정등을 매우 좋아했다.잠자리를 공유하던 수많은 밤, 조은서가 고개를 들기만 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탈 조명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토록 영롱하고 아름답던 빛깔은 오늘따라 이상하게 차갑고 눈부시게 느껴졌다...분명히 서로 껴안고 친밀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왜 몸은 여전히 차갑기만 한 것인지, 왜 서로 몸을 부딪쳐도 조금의 쾌락도 없이... 혐오만 남았는지.조은서의 가녀린 몸이 가볍게 떨렸다.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조은서는 결국 넋을 잃고 울부짖었다.“유선우... 아파...”그러자 유선우가 움직임을 멈췄다.그는 얼굴을 조은서의 가슴팍에 묻었고 그의 손바닥은 여전히 조은서의 가녀린 허리에 머물러 있었다. 잔뜩 헝클어진 옷과 헐떡이는 숨소리, 그들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키스와 사랑이 아닌...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하다.유선우는 조은서를 껴안고 숨을 헐떡였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손을 뻗어 조은서의 입술을 어루만지더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은서야, 아프면 말해줘... 지금처럼. 자꾸 나 무시하지 마. 나랑 말도 해줘. 내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다면 꼭 말해줘... 네가 말만 해준다면 난 뭐든 널 위해 해줄 수 있어. 어머님 부양하는 것, 네 오빠를 위해 상소하는 것... 그 무엇이라도 다 돼.”그러자 조은서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조금 뒤, 그녀는 시선을 옮겨 오만하기만 한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유선우가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그녀에게 참회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전에는 분명 그녀의 얘기를 들어줄 시간조차 없었는데...임신했다고 말하면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말했고 의 필름은 백아현
30분 뒤, 검은색 랜드로버가 천천히 YS 병원에 들어섰다.차에서 내릴 때, 조은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바로 백아현의 부모님이다.물론 그들은 혼자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옆에는 백아현보다도 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얼굴도 예쁘고 피부는 흰 눈처럼 맑고 깨끗했으며 두 눈동자는 깊은 호수처럼 영롱했다... 솔직히 말하면 백아현보다 훨씬 나았다.그 여자아이는 유선우에게 눈을 떼지 않고 그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는데 조은서가 추측하건대 이 여자아이는 백아현의 부모님이 특별히 유선우를 위해 준비한 모양이다.어쩐지 갑자기 다시 B시에 돌아왔더라니.하지만 조은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지나쳐 곧장 병원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유선우도 마치 낯선 사람을 만난 것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쳤다.그가 차 문을 닫고 자리를 뜨려던 참에 백서윤이 먼저 말을 걸었다.“선우 씨, 저분은 혹시 사모님이신가요?”백서윤도 전에 조은서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확실히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하여 방금 조은서의 실물을 본 백서윤은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전에는 사모님이 유선우와 동갑이라고 생각했으나 조금 전의 여성은 여전히 우아하고 귀해 보였지만 나이가 무척 어려 보였다. 게다가 무척 마르고 흰 피부를 보니 아이를 낳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백서윤의 마음은 뭔가 이상해졌다.그녀의 말을 들은 유선우는 그저 고개를 한번 끄덕였고 매우 덤덤한 태도였다.백서윤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유선우의 아내를 본 뒤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백서윤 본인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김춘희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이 녀석, 사랑에 빠졌나 보군.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유선우 같은 남자는 그 어떤 여자가 봐도 눈이 돌아버릴 것이다...김춘희는
유선우는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며 조은서를 생각했고 그녀의 병을 생각해보았다.의사는 조은서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기쁘게 해주라고 당부했지만, 그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조은서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마치 그는 어떻게 해도 잘못된 것처럼 말이다.그의 뒤에서 누군가의 가느다란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백서윤이었다.그녀는 차마 유선우를 방해할 수가 없었다.그저 먼 곳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백서윤은 왠지 모르게 유선우가 무척 외로워 보였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가정이 있지 않은가? 아내와 딸이 있는데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그런데 왜 전혀 안 행복해 보이는 거지?유선우는 원래 담배 두 개 정도만 피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몸을 돌리자마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서윤을 발견하게 되었다.유선우와 같은 성숙한 남자 앞에서 백서윤과 같은 어린 여자아이의 마음은 무척 투명했다.그는 단번에 백서윤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음을 눈치챘다.이어 유선우는 그윽한 눈빛으로 백서윤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백서윤의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선우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말을 걸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경 그들은 서로 알고 있지 않은가?하지만 그녀는 유선우가 정말 한마디도 없이 바로 그녀를 지나쳐갈 줄 예상하지 못했다.백서윤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아마 유선우는 아직도 자신의 아내를 매우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유선우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탔다.조은서는 뒷좌석에 앉아 매우 상냥한 모습으로 배고파하는 이안에게 젖을 먹여주고 있었다... 브라운 코트는 한쪽에 벗어두고 안에는 연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추를 열어젖히니 조은서의 여리고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유선우는 차 문을 닫고 몸을 돌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감출 수 없는 부드러움이 흘러나왔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그들을 힐끔거리던 아주머니도
이윽고 조은서는 정신을 차린 뒤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빨간 입술은 살짝 벌어진 채 이따금 숨을 헐떡였다. 아직 조금 전의 감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인지 조은서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로 가득 물들어 있었고 동시에 청순한 유혹감을 가지고 있었다.이윽고 조은서는 곧바로 얼굴을 베개 사이에 파묻었다.그녀는 유선우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조금 전에 느꼈던 몸의 쾌락을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다.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죄악으로 가득 차버렸다.하지만 유선우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돌려놓고는 몸을 숙여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이윽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해보겠느냐고 물었다.유선우의 들끓고 있는 몸은 조은서와의 관계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조은서가 낮은 목소리로 싫다고 거절했지만 남자는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듯싶었다. 욕구에 눈이 먼 남자는 그저 여자의 몸으로 위안이 필요할 뿐 싫다는 거절 따위는 들릴 리가 없었다.자신이 기분이 좋으니 그녀 역시 기분이 좋으리라 생각했다.남자의 강인함과 여자의 부드러움이 만나... 그 순간 조은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결국 신음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이는 몸의 고통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찢어지며 느낀 고통이다.그녀는 유선우가 싫었고 그가 자신을 만지는 것은 더욱 싫었다.조은서의 가녀린 손가락은 침대 헤드라이트를 쥐었고 계속하여 싫다고 거절했지만, 강압적인 부드러움 속에서 그녀는 결국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 헤드라이트를 그대로 유선우의 이마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피가 이마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갑작스러운 고통에 유선우가 신음을 냈다.그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몸 아래에 누워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기분 좋은 순간에 조은서가 자신을 내리찍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꼭 껴안으며 부드럽게 물었다.“어디 아팠어? 왜 그래?”조은서는 이내 유선우를 힘껏 밀어냈다.그녀는 유선우를 마주하기 싫었고 침대 머리맡에 가녀린 몸을 쪼그리고
유선우는 백서윤의 이력서를 한편에 던져두었고 비서의 말에 동의한 셈이다.그러자 진 비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바로 그때, 이력서에서 한 장의 7인치 사진이 흘러나왔는데 그건 다름 아닌 백서윤의 증명사진이었다... 붉은 바탕에 흰 셔츠, 긴 생머리에 포니테일을 묶은 새까만 머리카락, 그리고 생기가 도는 맑은 눈동자까지.그렇게 얼떨결에 사진을 보니 열여덟 살의 조은서와 매우 닮아 보였다.눈치가 빠른 진 비서는 다급히 사진을 서류 안에 집어넣고 자리를 뜨려 했다.그러나 유선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잠깐만!”유선우는 다시 서류를 건네받은 뒤 사진을 빼내어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다시 서류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그냥 남겨둬. 특별한 배려 없이 평범한 인턴으로 일하게 하면 돼.”그러자 진 비서가 당황하며 항의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아시면 불쾌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신분이 워낙 특수하여 만약...”그러자 유선우는 더욱 덤덤한 어투로 그녀의 말을 잘라 지시를 내렸다.“내 말대로 해.”지시를 내렸지만 계속 움직이지 않는 진 비서에 유선우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진 비서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꺼냈다.“대표님, 전 예전에 대표님께서 정말 은서 씨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인제 와서 보니 대표님께서 사랑하는 건 대표님을 열렬하게 사랑하던 그 시절의 은서 씨군요... 현재의 사모님이 아니라.”이윽고 그녀는 손안의 이력서를 흔들어 보이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대표님, 언젠가는 후회하실 겁니다.”그러자 유선우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이더니 조금 화가 난듯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진유라 씨, 신분을 주의해주세요!”진 비서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더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도 유선우가 여전히 그녀의 하이힐 소리를 똑똑하게 들을 수 있는걸 보아하니 그녀 역시 못지않게 화가 난 모양이다....백서윤이 YS 그룹에 이력서를 넣은 건 확실히 어느 정도의 사심이 들어있다.전
오후 4시. 비록 퇴근하기에는 이른 시각이지만 이안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유선우는 일찍 회사를 나왔다.물론 조은서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다. 요즘 날씨가 유난히도 추운지라 그녀에게 어울릴 것 같은 루이뷔통의 연한 핑크색 캐시미어 머플러를 하나 골라 샀다.검은색 캠핑카가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눈보라가 점점 거세져 땅에는 눈이 벌써 얇게 깔려있었다.차는 한 길목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그 사이에 기사는 백미러를 닦으며 말했다.“눈이 제법 많이 내릴 것 같은데요. 아마 또 도로가 막힐 겁니다. 대표님, 내일 아침은 제가 일찍 도착해서...”“내일은 크리스마스라서 집에서 아이랑 같이 보낼 겁니다.”뒷좌석에 앉아 이안이에게 주려고 산 장난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유선우가 말했다.기사가 듣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애가 있으니, 대표님도 가정적이 되신 것 같아요.”그 말에 유선우도 가볍게 웃었다.파란불이 되어 차가 다시 시동을 거는데, 한 젊은 여자애가 차창을 두드렸다.백서윤이 조심스러우면서 살짝 수줍어하는 얼굴로 밖에 서 있었다.몇 초 동안 지켜보다가 유선우는 창문을 내렸다.백서윤이 조급한 듯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말을 꺼냈다. “대표님, 저 좀 급한 일이 있어 그러는데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눈이 와서... 택시가 안 잡혀요.”대표님 차가 손 흔들어 세워 타는 택시로 아는지.기사는 한마디 따끔하게 하고 싶었는데, 유선우는 백서윤의 얼굴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추워서 그런가, 새하얀 얼굴에는 연한 핑크빛이 돌고 있었다.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조은서의 차가운 얼굴과는 다르게.한참 후, 유선우는 서늘한 표정으로 그녀한테 차에 타라고 했다.잠깐 망설이더니 백서윤은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사실 이건 매우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평소 진 비서가 이 차에 탈 때도 앞좌석에만 탔었는데 고작 인턴일 뿐인 그녀가 대표님과 같이 뒷좌석에 앉는다는 게.뭔가 눈치를 챈 기
유선우가 별장에 돌아온 시간은 저녁 7시가 거의 돼가는 때였다.조은서는 이미 저녁 식사를 마쳤다. 요즘 그녀는 컨디션이 조금 돌아왔다.하지만 별장의 경계는 풀리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눈을 맞으며 별장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차가 마당에 멈춰 섰고, 유선우는 빈손으로 차에서 내렸다. 의외의 선물로 조은서한테 서프라이즈를 안겨주고 싶었다.현관을 지나 검은색 코트를 벗어 고용인에게 넘겨주며 습관적으로 거실을 훑었다.“작은 사모님은 식사했어요?”고용인은 코트를 넘겨받으며 정겹게 웃었다.“네. 드셨어요. 오후에는 작은 아가씨를 안고 1층 통창 앞에서 눈 내리는 구경도 시켜줬어요. 작은 아가씨 고 어린 것이 뭘 알긴 아는지, 눈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더라고요. 눈을 아주 좋아하나 봐요.”유선우의 남성적인 이목구비에 부드러움이 번졌다. 슬리퍼를 갈아신고 2층 안방으로 곧장 향했다.방안에는 노란 등불이 켜져 있었고, 난방이 따뜻하게 실내를 데워 포근하기 그지없었다.연분홍색의 울 원피스를 입은 조은서는 아기침대 옆에 기대 부드러운 눈길로 아이랑 놀고 있었다. 집에만 계속 있은 그녀는 머리를 대충 말아 올렸다. 하얗고 긴 목선은 여실히 드러나 우아함이 묻어났고 얼굴 옆 라인은 여전히 정교했다.유선우는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기척을 내지 않았다.꿈에 그리던 장면 아니었는가.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집안 분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예전의 상처들은 깡그리 사라지고 사랑하는 부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때 눈을 든 조은서는 그의 부드러운 눈길과 시선이 닿았다.유선우는 걸어와 그녀와 아기침대 앞에 서서 다정한 말투로 얘기했다.“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왔는데 깜박하고 차에 두고 내렸어. 가서 가져올래?”그는 아이랑 눈을 마주치며 손으로 아이의 볼을 만졌다. 이안이가 그를 알아보고 기뻐서 새물새물 웃으며 개구리가 헤엄치듯 발을 버둥거렸다.유선우의 표정이 더 부드러워졌다. 그는 딸아이의 조막만 한 얼굴에 뽀뽀하고 또 뽀뽀했다.외투를 걸친 조은서가
유선우는 이안을 아기침대에 눕혀놓고 뒤에서 조은서를 껴안았다. 얇은 입술을 그녀의 귓전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네 선물도 한번 봐봐.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유선우와의 신체접촉이 싫은 듯 조은서는 그가 껴안은 손을 풀어헤치며 박스를 열었다.박스 안에는 연분홍색의 머플러가 들어있었다.유선우는 머플러를 꺼내 둘러주며 나직하게 말했다.“너랑 잘 어울려.”그녀의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 유선우는 저도 모르게 그녀와 살갗을 맞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난번부터 그는 꽤 오래 그녀의 살결을 만져보지 못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이기도 하니, 분위기에 이끌려 그녀가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백허그를 하며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귀 안에 불어넣었다. 끓어오르는 마음에 목소리까지 한껏 잠겼다.“은서야... 우리, 그거 할까? 네가 기분 나쁘다고 하면 멈출게.”말하자마자 그녀를 들어 소파에 앉혔다.소파 등받이에 한 손을 짚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감싸쥐었다. 강한 키스가 아닌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키스를 이어가며 낮게 읊조렸다. 네가 기분 좋은 방식으로, 뭐든 다 너한테 맞춰서 하겠다고.길고 검게 윤기 나는 머릿결이 순백의 등에 떨어지며 부채처럼 펼쳐졌다.눈초리를 내리깔아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한없이 다정한 모습의 이 사람. 그는 알기나 할까, 몸에서 딴 여자의 향수 냄새가 나는지는?그건 옅은 오렌지 향, 풋풋한 소녀의 향기였다.고개를 돌리며 조은서는 밋밋한 반응으로 그를 거부했다.창문으로 아래층에 있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선우 씨, 난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대체 난 언제 나갈 수 있어요?”그 말에 유선우는 멈칫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일말의 욕구도 없는 냉담하기만 한 그녀의 눈동자를 눈에 담았다.여자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수컷의 욕구는 점점 사그라들었다.아무리 몸에서 불덩어리가 타올라도 이런 반응은 자존심이 상하기 마련이었다.그녀의 어깻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