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은 두려웠다. 그녀는 한때 유이준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지내다 보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를 다시 좋아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녀는 스스로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지만 유이준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그의 깊은 눈빛이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며 천천히 물었다. “왜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해요? 당신은 박준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박준식과 결혼하려는 건 현실을 피하고 저한테 상처받기 싫어서였잖아요. 하지만 만약 제가 더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고 오늘 밤처럼 대한다면 여전히 박준식을 선택할 거예요? 박준식과 결혼할 거예요?” 진은영은 대답을 몰랐다.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지만 유이준은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눈 속에 담긴 감정이 너무 깊어 진은영은 착각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가 정말로 그런 눈빛을 보일 수 있을까?’ 더욱이, 그 눈빛 속엔 아련한 슬픔이 묻어 있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이 결국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은영은 그의 손을 결국 뿌리치고 먼저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차에 올라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니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유이준의 눈빛은 바다처럼 깊었다. 진은영은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속으로 울며 페달을 밟아 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후방 거울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녀의 차를 보며 유이준은 뒤돌아 잠든 진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고 고운 얼굴에 은은한 홍조가 감돌았다. 유이준은 속삭이듯 말했다. “곧 엄마도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거야.” 진별이는 들을 수 없었지만 이 밤이 너무나 아름다워 아이는 행복한 꿈을 꿀 것이었다. 진은영이 집에 돌아왔을 때, 정원에는 따스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막 새싹을 틔운 잔디가 노란빛 아래 포근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잔디를 살짝 건드리며 문득 그것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때 진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많은 시선이 그들 쪽으로 향해 있었다. 진은영은 그런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워 박준식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박준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여전히 그녀를 꽉 안고 있었다. 그는 막상 만나자마자 말할 수 없었다. 전 부인과 재결합했다는 사실을,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진은영라는 걸, 전 부인에겐 단지 연민과 책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말할 수 없었다. 이 마지막 한 번의 포옹을 간절히 원했지만 아마도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포옹일 것이다. 그는 숨이 가빠질 때까지 그녀를 놓지 않다가 비로소 힘겹게 그녀를 풀어주고 가볍게 말했다. “오는 동안 배고팠어요. 우리 밥 먹으러 갈까요?” 진은영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우리 엄마가 당신 온다고 하셔서 아침부터 닭 한 마리를 고아 두셨어요. 갓 딴 송이버섯도 넣으셨고요.” 박준식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 둘이서만 먹어요. 우리끼리만.” 진은영의 미소가 순간 굳었다. 여자는 늘 예민하다. 사실 그녀도 이미 무언가가 일어났음을, 박준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와 함께한 시간을 존중하며 가장 품위 있는 이별을 원했다. 박준식은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진은영이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고르는 동안 박준식은 호텔 스위트룸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30대 중반의 남자는 옷차림을 정돈하니 여전히 매력적이고 품위가 있었다. 진은영은 이것이 아마도 이별의 순간이겠다고 생각했다. 박준식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을 때 진은영은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위해 세트 메뉴를 주문했어요.” 박준식은 잠시 멈칫했다. 개별 요리가 아닌 세트 메뉴 두 개를 주문한 그녀의 선택은 더 이상 연인처럼 음식을 나누기보다 비즈니스 런치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미묘한 슬픔이 감돌고 있었다. 모든 말을 가슴속에 삼키며,= 두 사람은 묵묵히 식사를 했다. 텅 빈 레스토랑에서
시간은 멈춰버린 듯했다. 진은영은 조용히 유이준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그가 받쳐 든 검은 우산 위로 한 방울씩 떨어지며 천 위에서 미세한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작지만 날카롭게 귓가를 파고들었다.그 빗방울들은 마치 그녀의 얼굴로, 눈가로 옮겨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의 얼굴이 이렇게 차가울 리가 없었다.유이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며 다정하면서도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버림받아서 불쌍한 것.”이 말에 진은영은 저도 모르게 온몸이 떨렸고 가슴이 쿵쾅거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남자는 손바닥을 펴서 그녀의 얼굴을 완전히 감쌌다.도망칠 곳이 없어진 그녀는 억지로 말했다.“난 버림받지 않았거든요.”유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니라고?”진은영은 그를 노려보았지만, 자신의 눈에 고인 물기가 얼마나 애처로워 보이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 모습에 유이준은 가슴이 아려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곁으로 돌아와 줄래요? 다른 사람은 은영 씨를 원하지 않아도, 나는 원해요. 은영 씨, 난 당신을 원한다고요!”...진은영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그녀는 온몸을 떨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말했다.“하지만 난 이준 씨가 싫어요.”유이준은 조금도 화내지 않고 우산을 진은영의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손바닥으로 그녀의 손을 덮었다. 차가운 이른 봄비 속에서 그의 손은 너무나 따뜻했고 목소리는 더없이 부드러웠다.“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그 한마디에 진은영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시간은 빗물처럼 흘러갔다...유이준은 그녀가 걱정되어 집까지 바래다주려 했다. 처음에 진은영은 거절했지만, 유이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어쩌겠어요. 전 여자친구가 실연당했는데 내가 전 남자 친구로서 좀 챙겨 줘야죠.”진은영은 화가 나서 욕을 하고 싶었지만, 순간 강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남자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촉촉한 빗속, 온 세상이 젖어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닿자 그녀
유이준은 거의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감사합니다, 아줌마.”진은영은 그의 뻔뻔함에 속으로 혀를 찼지만, 그는 그녀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안 돼요? 아줌마께서 친히 초대해 주셨는데... 맞죠?”하연은 자세한 상황을 몰랐지만, 딸과 박준식의 결혼이 깨진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이준의 태도가 이렇게 적극적이니 어머니로서 딸이 좋은 남자와 맺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연하지.”말을 마친 하연은 딸을 흘끗 쳐다보며 덧붙였다.“이준이도 널 데려다주느라 고생했잖니.”효녀인 진은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식사실에 들어가서는 유이준과 거리를 두고 앉아 말도 걸지 않고 그저 티슈로 옷에 묻은 물방울만 닦아냈다.유이준은 진은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진은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준 씨, 여자를 처음 봐요?”그러자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네. 처음 봐요. 특히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은.”그가 염치없어도 진은영은 체면이 있었다.진은영은 그를 꾸짖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하연이가 삼계탕을 들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그 민망한 대화를 듣고 말았다. 여자를 본 적이 없다느니, 옷을 입지 않았다느니.예전에 귀부인이었던 하연은 늘 품위 있는 곳에만 드나들었기에 저런 노골적인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갈 수도 없어서 애써 태연한 척 삼계탕을 들고 들어와 유이준에게 권했다.“비 오는 날은 습하니까 따뜻한 걸 좀 먹어줘야 해.”유이준은 여전히 진은영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어색하게 가볍게 기침을 했다. 그제야 유이준은 시선을 거두고 하연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작에 삼계탕이 먹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외식만 하느라 집밥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아줌마의 삼계탕 한번 먹어봐야겠네요.”하연은 그와 살갑게 대화하며 얼른 두 그릇을 떠서 각각 앞에 놓아주었다.진은영은 말없이
하지만 식사실 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원래 유이준은 식사를 마치면 예의상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위쪽 천장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어서 두 방울의 물이 그의 높은 콧등에 떨어졌다.유이준이 위를 올려다보니 하얀 벽에 물 얼룩이 번져 있었다.별장 지붕에서 물이 새고 있었던 것이다.진은영과 하연도 위를 쳐다보다가 하연이가 멍하니 말했다.“이 집 지은 지 몇 년 됐다고 벌써 물이 새? 부실공사잖아! 어떤 사기꾼이 지었는지, 정말 신고해야겠어.”유이준은 진은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JH 그룹 계열사에서 지은 건데 아줌마, 제가 한 가지 제안할게요. JH 그룹 회장 조진범을 찾아가세요. 제 외삼촌 아들이니까 아줌마도 아실 거예요.”하연은 멍해졌다. 조진범이면 그녀의 사위가 아닌가!진은영은 유이준이 일부러 그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가 아직도 과거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이준은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지하실에 가서 보수할 재료가 있는지 볼게요. 있으면 제가 수리해 드릴게요.”하연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준은 집수리도 할 줄 알아?”유이준은 다시 진은영을 그윽한 눈빛으로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사기꾼에게서 배웠죠.”진은영은 정말 그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유이준은 지하실로 가는 길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의 뒷모습은 꽤 멋있었다.유이준의 뒷모습을 보던 하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아준은 항상 저렇게 담배를 피워? 혹시 아이를 갖는 데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진은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하연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다행히 별이는 건강하네.”진은영: “...”이때 유이준이 갑자기 돌아왔다. 그는 담배꽁초를 한 모금 빨고 쓰레기통에 버린 후 말했다.“아줌마, 안심하세요. 다음에 은영 씨와 아이를 가질 때는 먼저 담배를 끊을 테니까.”하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
진은영이 멍하니 있는 사이, 유이준은 뒤에서 발소리를 들은 듯 돌아서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먹물을 머금은 듯 도무지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진은영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참 만에 겨우 입을 열었다.“엄마가 걱정돼서 올라와 보라고 하셨어요.”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지만 이젠 아주 잔잔했다. 유이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그럼 은영 씨는? 은영 씨는 나 걱정 안 했어요? 나를 잃을까 봐, 다시는 못 볼까 봐... 조금도 두렵지 않았어요?”진은영은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우비도 없이 우산을 쓰고 올라온 그녀의 우산은 이미 바람에 날려 옥상 한구석에 처량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그렇게 고요한 빗속에서 서로를 응시했다...갑자기 유이준은 손가락으로 담뱃불을 끄고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진은영이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남자는 그녀의 뒤통수를 잡더니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탄탄한 팔에 허리가 휘감기자 그녀의 가는 허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유이준의 몸에 밀착되었다.그는 눈을 뜨고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려는 듯 강렬한 눈빛이었다. 진은영은 그의 공세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비는 부드럽게 내렸고 두 사람도 서로에게 부드럽게 얽혔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품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옥상 한구석에서 누군가 힘겹게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하연이었다. 위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자 걱정된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올라온 것이었다. 그리고 옥상에서 마주한 것은 서로를 꼭 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조금 쓸쓸해 보이는 풍경이었다.하연도 인생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남녀 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이 안쓰러워 이 광경에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진은영은 너무 고생했고 누구보다 행복할 자격이 있었다.빗물이 몸에 닿았지만, 하연은 춥지
진은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성인이었으니 일시적인 감정과 평생의 약속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이준에게 호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과거의 불쾌한 기억은 단순히 '재결합'이라는 세 글자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진안영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이준 씨가 좋은 결혼 상대인지! 오늘은 나한테 잘해 주지만 며칠 지나면 내가 그의 덕을 보려고 접근했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워. 이준 씨는 내 모든 걸 쥐락펴락할 수 있는 사람이고 우리 사이엔 아직 풀지 못한 문제들이 많아! 안영아, 난 한 번도 열등감을 느껴본 적 없는데 그의 앞에서는 그런 감정이 들어. 난 그가 나를 무시할까 봐 두려워. 그리고 전에...”그녀는 조진범을 좋아했었다.그래서 그 뒷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던 것이다.진안영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녀도 언니가 이렇게 속상해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언니는 유이준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좋아하기 때문에 앞뒤를 재고, 좋아하기 때문에 얻고 잃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겠는가.진은영은 보지 못했지만, 유이준은 화장실 문 앞에 서서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분석하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환한 불빛 아래 유이준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그는 후회했다. 그녀를 좀 더 일찍 사랑하지 않은 것, 다른 남자처럼 아이 달래듯 그녀를 달래주지 않은 것, 늘 그녀를 상업적 인물인 진은영으로만 여겼던 것 그리고 그녀도 사실은 사랑을 갈망하는 소녀라는 것을 간과했던 것에 대한 후회였다.진안영은 그를 보았다.유이준은 진안영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조용히 떠났다.진안영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이준 씨도 이제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 같네.’...깊은 밤, 그녀는 조진범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부부는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
밤늦은 시간, 진은영은 소파에서 깨어났다.어머니를 보려 했던 것이다.그런데 눈을 뜨자 그녀는 침대 옆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 유이준을 보았다. 그는 이미 검은 셔츠에 정장 바지로 갈아입었는데 멋지고 우아해 보였다.그는 자지 않고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은영의 시각에서 그의 측면은 마치 조각상처럼 잘 생겼다.그녀가 입을 열자 목소리가 갈라졌다.“왜 아직 안 갔어요?”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유이준은 노트북을 닫고 그녀 옆에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옆에 앉아 손을 내밀어 이마에 손을 얹어 보고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열이 좀 내렸네요.”어?진은영은 얼떨떨하게 물었다.“내가 열이 났었나요?”그러자 유이준은 진지하게 대답했다.“열이 좀 있었어요! 아니면 왜 자면서 나를 붙잡고 놓지 않았겠어요? 은영 씨, 나를 안고 자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진은영은 머릿속이 멈춰버렸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남자는 이미 그녀의 마음을 간파한 듯했다.방금 열이 있다고 말하던 그는 곧 그녀의 몸 양옆으로 손을 짚고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몇 초간 키스한 후 그는 잠시 멈추고는 나지막이 속삭였다.“아까 그 키스는 아직 안 끝났어요. 지금 마저 해야죠.”진은영은 온몸에 힘이 없었다. ‘열 때문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정신이 말짱한데 왜 저항하지 못하는 걸까.’한밤중, 하연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또다시 그 아찔한 광경인 걸 보자 그녀는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눈을 감으면 남은 한쪽 다리는 지킬 수 있을 테니까...나이가 들었으니 더 이상 다치고 싶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진은영이 깨나 보니 유이준은 없었다.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자신의 입술을 만졌다.어젯밤은 마치 꿈같았다. 유이준으로 가득한 춘몽...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속에는 안정감이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 일은 잠시 미뤄 두기로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