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안은 성현준을 사랑했다. 아니, 사랑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아니다.검은 벤틀리가 어두운 밤을 뚫고 노란 가로등을 가르며 유이안의 곁을 천천히 떠나간다. 이 짧은 시간은 유이안에게 있어 마치 그들이 함께했던 7년의 결혼생활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만 같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행복하지만 악랄한... 악랄하지만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왔다.성현준이 쫓아오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를 멈춰 세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몇 마디 인사치레나 나누고 헤어질까?하지만 그런 재회 방식은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 지금과 같은 이런 협력관계야말로 최고의 결말일 것이다. 적어도 영원히 씻겨지지 않는 원한은 남기지 않았으니까. 성현준이 고통스럽거나 말거나 하는 문제는 이제 정말 그녀와 관계가 없었다. 모든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하지만 답답해 나는 마음은 차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자동차가 아파트로 들어서고 현관문의 조명이 환히 빛나고 나서야 유이안은 천천히 몸에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막 옆에 있는 옷장에 걸어두려는데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확인해보니 강원영이 보낸 카톡 메시지였다.[어머니께서 수제 소고기 만두를 만드셔서 몇 개 가져왔어요. 이미 다 요리된 거니까 조금만 데우면 먹을 수 있어요.][냉장고에 신선한 우유도 있으니 똑같이 데워 마시고 편히 주무세요.][--강원영]...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다 보니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자연히 펴져 있었다. 애인은 꽃과 같다고 강원영처럼 자상한 애인을 옆에 둔다면 지난날의 불쾌함 정도는 쉽사리 잊을 수 있다.강원영의 당부대로 소고기 만두와 우유를 데워놓고 음반 한 장을 틀어놓은 뒤, 부엌에 앉아 혼자 식사를 시작했다. 식탁에는 강원영이 저녁 무렵 왔을 때 함께 가져다준 꽃다발도 놓여있었다. 강원영은 많은 꽃 중에서도 유독 꽃 생강을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며 유이안도 점차 강원영이 가져다주는 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하여 가끔
오후 4시, 유이안은 일찍이 퇴근했다.그녀는 비서에게 이틀간 휴가를 간다고 말해주었고 비서도 덩달아 기뻐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원장님 진즉에 편히 쉬셨어야 했어요. 매일 바쁘게 보내시니 개인 시간도 별로 없었잖아요.”그러나 유이안은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 말없이 흰 가운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검은 벤틀리에 앉았다.시간을 계산해보니 강원영은 아직 회의 중일 테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그녀는 바로 차를 몰고 강윤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시내의 귀족 유치원으로 각 방면의 조건이 매우 훌륭한 곳이었다.따스한 햇볕이 온몸을 감싸고 저녁노을이 하늘을 아름답게 비춰주기 시작했다. 날씨가 참 좋았다.30분 후, 유이안은 예정 시간에 맞춰 유치원 입구에 차를 세웠다. 카톡으로 강윤의 지도 교사에게 연락하여 윤이를 교문 앞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 아니면 유이안이 직접 들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것도 상관없었다.그런데 30분 후,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게다가 목소리는 약간 흐리멍덩하게 느껴졌다.“이안 씨, 윤이는 윤이 엄마가 이미 데려갔어요.”‘소운?’곧바로 정신을 차린 뒤, 유이안은 곧바로 담임 선생님의 실책을 콕 짚어 나무랐다.“소운 씨는 현재 강윤의 법적 보호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왜 강원영 씨의 동의도 없이 멋대로 아이를 맡깁니까?”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해명을 늘어놓았다.“소운 씨가 아이의 출생 증명서를 가지고 왔어요.”유이안은 운전석에 앉아 골치가 아픈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소운이 무슨 짓을 할지 대충 짐작이 갔다. 마침 소운은 권하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그녀에게 있어 윤이는 어떨지, 다치지는 않을지에 대한 여부는 고려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생각을 마친 유이안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심지어 강원영과 상의도 없이 직접 전화를 한 통 걸었다. 신호음이 몇
그렇게 강원영과 유이안은 강윤의 손을 꼭 잡고 병원을 떠났고 소운은 다급히 그들의 뒤를 쫓으며 달려왔다.날이 어두워지고 찬란한 금빛을 자랑하는 황혼이 소운의 초췌함을 가려주었지만 그녀의 죄악을 가려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윽고 소운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원영, 나 윤이 엄마야.”몸이 멈칫하더니 잠시 후 강원영은 뒷좌석 문을 열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말을 건넸다.“먼저 윤이를 데리고 차에 있어요.”이제 직접 소운을 처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곧바로 상황 파악을 끝낸 유이안은 강원영의 말대로 강윤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심지어 소운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강원영과 약 10초간 눈을 마주칠 뿐 유이안은 곧바로 몸을 돌려버렸다.한편, 강원영은 어둠을 사이에 두고 소운을 바라보았다.“엄마? 네가 정말 윤이 엄마가 될 자격이 있기는 해?”대세가 기울어졌다는 건 소운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 이 일이 있고 난 뒤, 다시 강윤에게 접근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질 것이다. 아마 강원영은 아예 윤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떠나버리겠지. 생각을 마친 소운은 다급히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말을 꺼냈다.“원영아, 나는 원빈이 아내이고 윤이는 나와 원빈이 사이에 태어난 사랑의 결정체야. 너에게 날 아이와 만나게 하지 못할 자격은...”순간, 감정이 격해진 소운은 차 안에 앉은 유이안을 가리키며 울분을 토해냈다.“낯선 여자에게 내 아이를 맡기면서, 그 여자가 내 아이를 뺏어가도록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서... 원영아, 너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연기에 속아 넘어갔겠지만 강원영은 그럴 리 만무하다.소운의 연기는 이미 강원영의 형을 죽였다. 그러니 강원영은 더 이상 소운이 주변인들을 다치게 하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강원영 역시 소운에게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B시를 떠나. 이제부터 다시는 강윤 앞에 나타나지 말고.”강원영은 마
강원영의 부모는 두 분 모두 지식인이었고 놀란 아이를 마주하자 아이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 아닌 소리 없는 포옹을 선택했다. 강원영의 어머니인 이다빈은 손녀를 안아 들어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겨주었다. 아이를 달래주기 위함인 것인지 비누도 오리 모양의 귀여운 비누였다.할머니의 다독임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 강윤이 까르륵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윤은 원래도 성격이 매우 좋은 아이였고 뒤끝 없이 명쾌한 성격을 지니고 태어났다.화장실에서 나온 이다빈은 어린 손녀를 안고 식탁 앞에 앉았지만 강원영은 어디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한편, 유이안은 강윤에게 따끈따끈한 프랑스식 꼬리곰탕을 한 그릇 떠주며 이다빈에게 말을 건넸다.“원영이는 서재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잠깐 자리를 비웠어요.”자식의 생각은 부모가 가장 잘 안다고, 단번에 아들의 마음을 눈치챈 이다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먼저 먹자.”...같은 시각, 별장 2층의 서재에는 히터가 켜져 있지 않아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강원영은 책상 앞에 앉아 휴대폰을 손에 쥐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앞에는 노트북이 켜져 있었고 그 안에는 일반인들이 쉽사리 알아볼 수 없는 은행 데이터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다름 아닌 소운에 대한 비밀정보였다.푸른빛이 얼굴에 비쳐 음침하고 사나운 분위기를 조성했다.전화 건너편에서는 웬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 사장님, 안심하세요. 저에게 40억을 보내주신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 여사의 전 재산을 주식에 탕진시켜 백수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돈을 따는 건 두렵지 않아요. 속지 않을까 봐 두려울 뿐이죠.”강원영이 긴 손가락에 담배를 끼고 깊게 한 모급 빨았다.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섹시하지만 그의 몸은 온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담배를 다 피운 후, 강원영은 재떨이에 담배를 꽂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상황에 맞게 행동하고 무슨 일 있으면 메시지 주세요.”전화를 끊고 노트북의 사진 폴더를 뒤져보
유이안이 멈칫 그 자리에 멈춰 섰다.이윽고 강원영이 힘을 주어 당기자 유이안은 그대로 강원영의 품속으로 넘어지고 말았다.서재는 창문이 열려 있어 온도가 높지 않았다. 강원영의 몸도 특별히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유이안을 껴안고 있던 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온기를 되찾기 시작했다.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이안의 뒷목에 얼굴을 묻고는 다정하게 포옹을 이어갔다. 한참 뒤 강원영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오늘 당신이 아니었다면 강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소운이 강윤을 데려갔을지도 모르겠네요.”유이안은 곧바로 남자의 마음속에 숨겨진 그 연약함을 느꼈다.강원영과 같은 남자는 자신의 연약함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 말은 즉 강윤은 강원영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유이안은 그러한 강원영을 이해할 수 있었다.한때 그녀의 외삼촌과 조민희도 서로에게 이런 감정을 품고 있었고 그녀와 그녀의 엄마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런 감정을 품은 적이 있었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의지였다.유이안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강원영의 머리를 천천히 껴안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이러면 어때? 모성애가 느껴져?”유이안의 물음에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던 따뜻한 감정도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그래도 덕분에 온기를 되찾은 강원영은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는 장난스럽게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모성애는 모르겠고 장난스러운 건 잘 알겠네요.”유이안이 피식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안 되겠다. 그냥 밥 먹으러 내려갈게요. 당신은 윤이와 함께 좀 있어 줘요.”...유이안은 강윤을 씻겨주고 있었고 강원영은 아래층에서 식사하고 있었다.그의 부모님 역시 모두 부엌에 앉아 강원영의 입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평생 단아한 지식인으로 살아오며 소운과 같이 미친 여자를 만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이다빈은 직접 아들에게 소면 한 그릇을 끓여주었고 강
...차 문이 열리고 조진범이 조은혁을 대신하여 손님을 맞이했다.강원영과 조진범은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만난 셈이다. 양측 모두 비즈니스계에서의 베테랑이라 인사말이 무색할 정도 자연스럽게 악수를 주고받았다.잠깐의 소란이 지나가고 강원영은 물건을 들고, 조진범은 강윤을 번쩍 안아 올려 별장 내부로 향했다.강윤은 예쁜 얼굴로 조진범의 목을 끌어안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며 사랑스럽게 말을 꺼냈다.“삼촌 우리 아빠만큼 잘생겼어요.”마침 그때, 진안영이 진아현을 안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조진범은 얼른 진안영에게 자랑하듯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방금 애가 한 말 들었지? 나 강원영 씨랑 똑같이 잘생겼다잖아.”말을 이어가며 강윤을 건네주어 8개월 된 작은 아현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초롱초롱하고 까만 두 눈이 반짝거리니 말로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강윤은 진아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애지중지해주었다.물론 진안영도 강윤을 좋아했다.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도 남편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그렇게 잘생겨서 뭐해요? 이제 시장 가치도 없는데.”“결국, 네 손에 잡혔지 뭐.”진안영을 향한 조진범의 눈길은 꿀이 뚝뚝 떨어지며 한없이 부드러웠다.이윽고 진안영은 강원영과 유이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손님도 있는데 저 방정맞은 입을 어떡하지...그러나 강원영은 그저 싱긋 미소를 지을 뿐,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성을 보아서는 아마 결혼 후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 모양이다. 그러니 아이가 생긴 후에도 여전히 달콤하고 유별난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거겠지.그때 조은혁과 박연희가 2층에서 걸어 내려오고 있었고 그들의 뒤에는 조우현도 있었다.곧이어 홀 안이 본격적으로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모두가 강윤을 좋아했지만 강원영과는 오히려 쇼핑몰에서 한두 번 정도 만난 적이 있기에 그다지 신선감이 있지는 않았다. 아무튼, 현장은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강원영은 부러운 눈길로 화목하게 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유이준이 혀로 입천장을 쓱 쓸었다.괜찮네. 마침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진은영, 이건 반드시 진은영에게 직접 물어야 하는 일이다.진은영은 진안영에게 물건을 전해주러 특별히 방문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아현 어린이에게 물건을 전달하러 온 것이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그녀를 맞이한 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유이준이었다.검은 사냥복을 입고 정원에 서 있는 모습, 검은빛에 둘러싸여 저녁 햇살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진은영은 고개를 젖히고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막상 눈에 보이는 건 입체적인 낯선 이목구비일 뿐이었다.그래, 낯선 사람은 멀리해야 하는 법이다.애초에 그들은 평화롭게 헤어진 사이가 아니다. 오랫동안 서로 사업장에서 만나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고 유이준도 예전처럼 그녀에게 왜 함께하면 안되는지 묻지 않았다.모든 것은 그녀의 선택이었고 원망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그런데 왜 의젓하게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까? 유이준이 곧 선을 보러 간다는 소식 때문인 걸까? 하지만 진은영은 유이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YS그룹을 계승하고 유씨 가문의 혈통을 이어가야 하는 사명을 지녔기 때문이다.픽하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불빛이 피어올랐다.유이준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둠 속 유일한 유광 속에서 진은영의 얼굴을 유심히 훑어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유이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지난번 성현준이 결혼할 때, 주차장에서 당신 차를 봤어요. 차 안에 어린아이가 타고 있던데... 누구 집 애입니까? 난 왜 본 적이 없죠?”진은영의 몸이 움찔하고 떨려 났다.진별이를 아는 걸까?지금 의심하고 있는 걸까?한참을 고민하던 진은영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친구 아이예요. 당시 일이 있어서 하루 정도 봐줬고요.”유이준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녀의 머리를 관통하려는 듯 뚫어지라 바라보았고 진은영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소운은 호텔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차를 몰고 술집에 들어왔고 취기를 빌려서라도 사무치는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다. 소운은 강원영을 잊고 싶었다.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이 모진 남자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소운에게 있어 강원영은 너무나도 잔인한 남자였다.그렇다. 강원영은 잔인한 남자이다.소운은 가장 독한 술을 주문했고 아니나 다를까 한 모금만 마셨을 뿐인데도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코올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쓰라리고 아파 났다. 심지어 몽롱한 의식을 파고들고 아직도 강원영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아니, 다시 보니 강원영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그는 강원영보다 더 젊고 예쁜 남자였다.흰 셔츠에 가는 금테 안경알이 참으로 점잖아 보였다.소운은 자리에 앉는 남자의 모습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도무지 자신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 세상에 이렇게까지 닮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거지? 심지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질도 비슷했다.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엄청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진자현은 원래 비즈니스계의 엘리트로서 술집에 자주 드나드는 편이었기에 소운을 발견하고는 자연스럽게 톤을 바꾸며 외국 와인 한잔을 쥐고 소운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그녀와 명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매우 품위 있는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긴 머리카락을 어깨에 늘어뜨린 채 소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자에게 물었다.“내가 누군지 알아요?”“소 여사님이시잖아요. 작가님 마음껏 드세요.”남자의 말에 소운은 곧바로 교활한 목소리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충분히 웃고 나니 소운은 곧바로 눈앞의 남자에게 도발적인 표정을 지으며 가늘고 긴 손가락을 들어 남자의 단단한 팔을 쓸어내렸다. 다부진 근육이 잘 잡혀 있는 것을 보니 평소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모양이었다.소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도 더 고와졌다.“그럼 당신은 내 이름을 따라서 온 거예요, 아니면 내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