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영은 휴대폰을 꺼내 보니 그녀가 가르쳤던 학생인 임연서로부터 온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진 선생님, 메리 크리스마스. 선생님의 남편인 조진범 씨를 학교에서 봤어요.]...진안영은 잠시 멍해졌다.자신이 조진범과 결혼했을 때는 B시 전체가 다 알았지만 이혼 소식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임연서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진안영은 임연서에게 답장을 보냈다.[연서야,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조진범이 왜 학교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그들은 이미 이혼했으니 그 이유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새해가 지나면 그녀는 B시를 떠날 예정이었다.메시지를 보낸 후 진안영은 바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신혼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와 조진범은 이런 눈 속에서 키스하며 함께 대관람차를 보았고 그날 그는 그녀에게 금풍옥로를 선물해 주었다. 그때 그녀는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을 품고 말았다.원래 서로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였는데 그녀는 진심을 품고 말았다.진안영이 그렇게 많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녀의 배 속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배 속 아이의 첫 태동이었다... ...조진범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JH그룹에서는 매년 40억 원을 기부하는데 그는 평소에 서류에 서명만 했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서명할 때 그 기부처가 진안영이 근무했던 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서명을 마치고 서류를 이지안에게 넘기면서 그는 무심코 물었다.이지안이 말하길 오늘이 기부식이라고 했다.그래서 조진범은 학교에 오게 되었다.학교에서 그는 청소하는 임지유와 그녀의 딸 임연서를 만났다. 임지유는 진안영의 소식을 물으며 그가 혹시 그녀가 임신해서 그만둔 것인지 궁금해했다.조진범은 당황했다. 진안영이 사직한 것이다.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검은색 코트를 입은 조진범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그가 진안영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진안영 때문에 기
조진범이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냥 잠깐 걷다 왔어요.”원래 조진범은 회사로 가 회의를 열어야 했지만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조진범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이지안에게 몇 마디 지시를 내린 후 곧장 혼자 차를 몰고는 집으로 돌아갔다.이혼 후, 그는 부모님이 계신 저택으로 들어가지 않고 여전히 신혼 때 아내와 살던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차를 몰고 가던 중, 조진범은 갑자기 조미료 하나를 구할 수 없다며 불평하던 김 씨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조진범은 한 국제 마트에서 김 씨 아주머니가 원하던 그 조미료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생각난 김에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조진범은 그 마트로 차를 돌렸다.부드럽고 얇은 눈송이가 세상에 내려앉았다.얇은 모직 코트에 키도 185cm가 넘는 준수한 남자가 마트 안에 들어서자 많은 여자의 시선이 집중됐다. 조진범은 이미 그런 시선들이 익숙하다는 듯 받아들이며 곧장 양념 코너로 가 토마토소스 두 병을 집어 들었다.계산을 마치고 마트를 나서려던 조진범의 두 눈이 미세하게 좁혀졌다.그와 3~4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임신한 여성이 서 있었는데 마침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어깨를 살짝 숙인 채 수입 식자재를 고르고 있었다. 정면은 보지 못했지만 조진범은 그녀의 자태가 임신 4~5개월 정도라고 유추해낼 수 있었다.그는 임산부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몇 달 뒤면 새 생명이 태어나겠네.’그리고 그는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뱃속에서 유산된 진안영의 아이를 떠올렸다. 만약 그 아이만 있었더라면 두 사람이 이혼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조진범은 곧 자신의 헛된 망상에 헛웃음이 나왔다. 진안영과 이혼하지 3개월이 다 지난 이제 와서 무슨 만약을 말한단 말인가?조진범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는 계산대로 가 계산을 마쳤다.불과 1분 만에 그는 김 씨 아주머니가 원했던 토마토소스를 들고 마트를 나섰다. 하지
전화를 끊고 조진범은 한참 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비로소 손끝의 담배가 꺼진 것을 발견했다. 담배의 절단된 부위로부터 담뱃재가 양복바지에 떨어져 내렸고 길쭉한 손끝은 영문도 모른 채 가볍게 떨려 났다.다시 눈을 들어보니 그 임산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문득 조진범은 가속 페달을 밟은 후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뒤쫓아갔지만 백 미터 정도 달려나가더니 다시 급정거하며 차를 멈춰 세웠다. 온몸이 심하게 떨려 나고 그는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정신을 차렸다.조진범은 손가락을 떨며 담배 반 토막에 다시 불을 붙였다.뭘 하고 있는 거지?왜 미친 것마냥 처음 보는 임산부를 뒤쫓아 갔던 거지? 임산부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감정제어가 안 된다고? 아니라면 어깨에 늘어뜨린 푸른 머리카락이 전처와 똑 닮았기 때문일까?만약...만약 진안영이 임신했다면 그녀도 풍만한 몸으로 이런 슈퍼마켓에 와서 어린아이들 물건을 사고 눈 오는 날 혼자 걷지 않았을까?그렇다면 남편은?여자의 남편은 왜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았을까? 사이가 좋지 않은 걸까?조진범의 눈동자가 점차 흐릿해져 갔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왜 낯선 여자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지? 조진범은 이제 반드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그렇다. 조진범의 삶.조진범은 정지혜라는 여자와 선을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안영과 선을 본 지 이제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불과 1년 만에 그는 결국 또 실혼을 하고 또 선을 보러 간다... 모든 것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다.부드러운 가랑눈이 자동차 앞 유리에 푸슬푸슬 내려앉았다.조진범은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검은 와이퍼는 마치 이 아득한 세상 사이의 유일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는 조용히 그 와이퍼를 지켜보며 남은 담배를 천천히 피웠다.잠시 후, 차에 시동이 걸리고 조진범은 이 자욱한 눈 사이로 자취를 감춰버렸다.자동차의 바퀴 자국은 북쪽으로 향했고...조금 전 진안영의 발자국은 남쪽
조진범은 수조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재벌로서 B시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이 그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다. 하여 그와 소개팅할 수 있는 기회도 매우 흔치 않은 기회이다. 그리고 정지혜는 부잣집 귀부인이 되기 위한 기본 소양을 잘 알고 있다. 묵묵히듣고 생각하지 않고 철만 들면 된다.김유연을 이야기하고 나서 화제는 또다시 끊어졌다.정지혜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맞은편 남자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카페 밖으로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정지혜도 당황할 지경이다.“조 대표님, 왜 그러세요?”정지혜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지만 조진범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조 대표가 이토록 추태를 부리는건지 정지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급한 일이라도 생긴건가?...카페 입구.과거를 함께 했던 부부가 다시금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단지 몇 걸음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단지 석 달 동안 헤어졌을 뿐인데, 이미 수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그리고 조진범은 진안영의 배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진안영이 임신했다.진안영이 임신했다니.조진범은 아이를 가져본적이 없지만 기본적인 상식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진안영의 불러온 배 크기라면 확실히 임신 3~4개월 차이다, 즉 그들이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진안영은 바로 하도경과 함께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날 이혼 합의서에 서명한 후, 바로 사귀게 되었단 말인가?진안영의 말이 사실이었다니.진안영과 하도경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그런데 조진범은 그 와중에도 혹여나 진안영이 그를 속인건 아닐까 하는 환상에 빠져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뜻밖에 남겨진 그녀의 옷을 아련하게 바라보고 또 그녀에게 전화를 걸까, 핑계를 대며 그녀를 만나러 갈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나 했다... 같은 시각, 진안영은 이미 하도경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말이다.정말 우습기 그지없군.분노와 실망이 조진범의 모든 감정을 삼켜버렸다. 하여 그는 눈앞의 전처를 바라보며 비아
사실 진안영은 조진범과 재회할 생각이 없었다.조진범은 그녀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비아냥거리며 그녀를 조롱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여자친구도 데리고 와 그녀에게 보여주었다.그의 새 여자친구는 그와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여자였다. 이에 진안영은 저도 모르게 문득 작년 회사 송년회에 그녀를 데려가길 원하지 않았던 조진범을 떠올렸다. 그렇다. 조진범은 늘 정지혜와 같이 똑똑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여자를 좋아했다.씁쓸했지만 진안영은 애써 품격을 유지하며 예의를 차렸다.그녀는 조진범과 이미 이혼했고 과거의 일도 다 지나가 이제 과거일 뿐이다. 하여 말을 마치고 진안영은 정지혜를 향해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떠나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곧이어 조진범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다.남자의 엄청난 힘에 진안영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손목 통증이 참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퍼져서 심지어 약간의 연한 푸른빛이 비쳤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낮게 비명을 지른 후 그를 올려다보았는데 진안영의 눈빛 속에는 조진범을 향한 경고가 가득했다.‘조진범 씨, 우린 이미 이혼했어요.’‘당신의 새 여자친구가 아직 여기에 있는데 이렇게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게 정말 적합하다고 생각하세요?’하지만 진안영은 끝내 그 말들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그렇지 않으면 결국 난처한 사람은 진안영뿐일 테니까.조진범 역시 당연히 부적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진안영의 가는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단지 입에서 나온 말은 또다시 날카로운 바늘처럼 진안영의 심장을 쿡쿡 찔러댔다.“진안영 씨, 안심하세요. 만약 제가 언제 결혼하면 첫 번째로 가장 먼저 당신에게 청첩장을 보낼 거니까.”조진범과 두 눈을 마주했지만 그의 눈동자 속에 비친 감정은 한없이 싸늘했다.진안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진안영 씨.한 번의 사랑과 한 번의 결혼을 거쳐 돌아온 대답은 “진안영 씨”였다.그러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랜드로버가 조진범의 별장을 떠났다...유이준이 떠난 후, 별장의 고용인들은 바쁘게 돌아치며 일하기 시작했다. 해장국을 끓이는 사람과 조진범의 얼굴을 닦아주는 사람, 그리고 조진범이 편안할 수 있도록 그의 몸에 걸쳐진 얇은 모직 코트를 조심스럽게 벗겨주는 사람까지 사람들은 늦은 시간까지 쉴 틈 없이 돌아쳤다.김씨 아주머니는 조진범의 목을 닦아주고 있었는데 그녀는 물수건으로 그를 닦아주면서도 계속하여 구시렁거렸다. 아내가 없으니 정말 꼴불견이다. 예전의 사모님은 정말 괜찮은 분이셨는데... 가정을 돌볼 줄도 알고 남자를 살뜰히 챙길 줄도 알고 말이다.예전의 사모님이라면 진안영을 말하는 걸까?조진범은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사방의 모든 것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특히 머리 위의 크리스털 램프가 심하게 흔들거렸는데 조진범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났다...한편, 김씨 아주머니는 아직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고 있었다.반박하기도 귀찮았던 조진범은 이제 위층으로 올라가 진안영과 함께 잤던 침대에 눕고 싶어졌다. 진안영의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지만 그 위에는 그녀만의 추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하여 조진범은 애써 비틀거리며 일어나 계단을 짚고 올라갔다.그러자 김씨 아주머니는 아래에 서서 그를 불렀다.“해장국 다 끓였으니 일단 다 마시고 올라가서 주무세요.”그러나 조진범은 손사래를 치며 상관하지 말라며 허튼소리를 했다.“전 부인이 보살펴 줄 테니까 먼저 주무세요.”뜬금없는 헛소리에 고용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이 집에 웬 부인이란 말인가. 사모님은 벌써 대표님과 이혼했는데. 하지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알아차렸다. 조 대표님은 사모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한편, 조진범은 2층으로 올라가 안방 침대를 어루만졌다.이윽고 몸이 축 늘어지며 침대 위에 쓰러졌다.불을 켜지 않아 사방이 어두웠지만 조진범은 여전히 눈이 부시고 아파 났다. 손으로 눈을 가려보았지만 눈가의 뜨거운 열기를 가리기
회장실 문 앞에서는 이지안 비서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대표님, 부르셨습니까?”조진범은 시선을 살짝 내리깐 채 여전히 그 초대장을 바라보며 이지안 비서에게 말했다.“이 초대장 직접 갖고 가서 꼭 진안영에게 손수 전달해주세요. 저와 안영이 사이의 약속이니까요.“초대장을 받아든 이지안 비서는 꽤 놀란 기색을 보였다.조진범과 진안영이 이혼한 지 벌써 8개월이나 되었다. 원래라면 이제 서로 완전한 남남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대표님은 아직도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듯 보였다. 굳이 이 결혼식 초대장을 보내는 이유가 상대를 자극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자극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남녀 사이에 갑자기 어느 한쪽이 승부욕을 품는 순간, 이미 진 게임이나 다름없다.부하직원이었던 이지안은 딱히 뭐라 말도 못 하고 초대장을 직접 진안영에게 전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미 진안영 자매가 함께 사는 집을 알고 있었고 그 집을 찾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진안영의 집안일을 도와주던 둘째 아가씨는 몇 달 전 이사를 하더니 설날에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그 말에 이지안은 멍해졌다.몇 달 전에 이사했는데 설날에 오지도 않았다니?친절한 진씨 가문의 가정부는 그녀에게 다른 방법을 하나 제시해주었다.“차라리 큰 아가씨네 회사로 가보시는 게 어때요? 큰 아가씨께서는 틀림없이 둘째 아가씨의 행방을 알고 계실 거예요. 그것도 아니라면, 큰 아가씨께서 이 초대장을 둘째 아가씨한테 대신 전해줄 수도 있고요.”이지안 비서는 그녀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그녀는 진은영의 회사로 찾아갔고 다행히도 진은영이 이지안 비서를 만나주었다.진은영은 매우 바빠 보였다. 이지안 비서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도 진은영은 여전히 서류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발소리를 들었음에도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진범 씨가 보낸 사람이에요?”이지안은 민망한 듯 대답했다.“네.”진은영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이지안을 바라
이지안은 그런 조진범의 눈빛에 방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물론 진은영이 청첩장을 찢고 조진범에게 죽지도 않냐는 저주를 내렸다는 일은 생략했다. 모든 것을 알려준 이지안이 조용히 물었다.“대표님, 안영 씨 행방, 계속 찾아볼까요?”조진범은 다시 등을 돌렸다.그는 창밖의 석양을 계속 바라보았다. 이지안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그 설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조진범은 진안영이 B 시에 없다면 분명 H 시에 있는 하도경을 찾아가 함께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만 그 둘이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하도경의 집안에서 반대했기 때문이 아닐까.조진범은 눈이 시큰해질 때까지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결국, 생각 정리를 마친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그만둬요.”조진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지안은 그가 새신랑이라기보다는 실연당한 남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진범과 정지혜의 지난 6개월간의 교제를 떠올려 보았지만 정말 싱겁기 그지없었다. 조진범이 진심으로 정지혜를 사랑하는 것 같은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이지안은 하려던 말을 가까스로 삼켜냈다.이지안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조진범은 다시 한참 동안 홀로 서 있었다. 책상 위의 휴대폰이 울릴 때가 되어서야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정지혜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오늘 밤에 그녀 아버지의 생신 축하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예비 사위로서 반드시 참석해 체면을 세워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정지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조진범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알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한 시간 후, 조진범은 차를 몰고 약혼녀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특별히 희귀 와인 두 병도 따로 챙겨와 정지혜의 아버지와 함께 나눌 생각을 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정지혜의 집 앞에 멈추자 안에 있던 조진범은 고개를 들어 정씨 가문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전 부인의 본가가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정지혜의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