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거절을 남자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하도경의 사랑은 깊이가 있다. 그는 기혼여자를 굳이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를 언론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하도경이 계속 고백하지 않고 그녀의 주위만 맴도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하도경은 사무실을 떠나 뜨거운 햇살 아래까지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원래 햇빛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아무리 억눌러도 하도경은 자연스레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매일 임지유가 보양식을 보내오는 덕분에 입이 마를 날이 없었다. 사실 그녀가 매일 보양식을 살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사실 다 하도경이 사고 그녀가 달여서 보내주는 것이다. 물론 임지유가 돈을 쓰게 놔둘 수는 없어 진안영도 계속하여 몰래 보태서 돌려주곤 한다.시간이 흐르며 하도경은 줄곧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안영을 보살펴주고 돌봐주었다.가끔 그는 캠퍼스에서 진안영과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물론 진안영은 아는 것이 없다. 그녀는 유부녀의 선을 지키며 항상 하도경과의 거리를 유지하지만 남자가 진심으로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 눈빛은 숨길 수 없다. 하여 하도경이 진안영을 좋아하는 것은 학교에서도 비밀이 아닐 지경이다....JH그룹 회장실.조진범은 중요한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후 가죽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안정을 취했다. 잠시 후 그는 또 초조한 마음에 손을 들어 양미간을 주물렀다.한편, 이 비서는 자리에 서서 업무를 보고하고 있었다.공적인 이야기를 마친 조진범은 잠시 손을 뻗어 서랍을 열고 사진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던졌는데 그 사진들은 역시 진안영과 하도경의 사진이었다.대부분 캠퍼스의 반얀나무 대로 위의 사진이었다.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은 결코 별다른 기류가 흐르진 않았지만 하도경의 눈빛에 담긴 애정은 도무지 속일 수 없어 남편인 조진범은 진안영과 이에 관해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조진범은 고개를 숙인 채 고급 패션 가방을 가지고 놀며 이리저리 손가락 장난을 했다.잠시 후, 그는 다시 가방을 내려놓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전화를 끊은 후, 그는 아내와의 몇 안 되는 데이트를 떠올렸다. 비록 전부 진심이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는 진안영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특유의 우아한 기질이 있어 함께 지내면 편안함이 느껴질 정도다.진안영이 유산한 후에도 그는 짬짬이 시간을 내서 그녀와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노력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침대에서 키스할 때마다 진안영은 분명 그 순간의 스킨쉽을 전부 건성으로 대했고 어느 날 만약 정말로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되면 그의 몸 아래에서 잠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의 마음이 딴 데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이런 결혼은 정말 냉담하고 무미건조한 결혼임이 틀림없다....저녁 6시, 조진범은 정시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갔다.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이 메인 저택 앞에 멈춰서고 조진범은 긴 다리로 운전석 도어를 열고 차체를 넘어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검은 머리카락 끝은 석양 아래서 거무스름하게 빛나며 순수한 남성의 기운을 더해주었다.현관을 지날 때, 고용인은 자연스럽게 그의 외투를 받아 그에게 보고했다.“아까 사돈께서 사모님을 찾아오셨는데 사모님께서 계시지 않아 다시 돌아가셨습니다.”진철수는 분명 그들에게 사정하러 온 것이 틀림없다.하여 그는 말을 아끼고 화제를 돌려 고용인에게 말을 건넸다.“그나저나 부인은요? 오늘 저녁 식사하러 왔을 텐데.”고용인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두 손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아, 사모님께서는 학생 집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조진범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들어와 손을 씻은 후 식당에 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용인은 저녁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저녁 식사는 모두 여섯
어둠 속에 서 있는 훤칠한 얼굴의 조진범은 그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아내의 팔을 잡아당기고 하도경에게 작별을 고했다.하도경이 진안영을 바라보았다.그가 아무리 그녀를 사모하고 좋아한다고 해도 진안영은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기에 그녀의 남편 앞에서는 조금도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잠시 후 하도경은 씁쓸한 목소리로 덩달아 작별을 고했다.“그럼 안녕히 가세요. 진 쌤.”은은한 달빛이 나무 아래에 서 있는 하도경의 머리 위로 추적추적 쏟아져 내렸다.반은 달빛에 새기고 반은 어둠에 새겼다.조진범의 손에 붙잡힌 진안영도 애써 입술을 달싹이며 작별인사를 했다.“그럼 잘 자요.”잠시 후, 차에 탔을 때 조진범은 안전벨트를 맨 채 무심한 척 물었다.“하도경이 가서 아쉬워?”조수석에 앉은 진안영은 바깥의 끝없는 어둠을 바라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진범 씨, 지금 이게 무슨 뜻이에요? 도경 씨를 보내는 거... 설마 진범 씨 뜻이에요?”“맞아.”조진범은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내 뜻 맞아. 그 사람이 내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남자라면, 특히 내 위치에 있는 남자라면 아무도 아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것을 참을 수 없을거야.”진안영이 눈시울을 붉히며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해명했다.“저랑 도경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러자 조진범은 굵은 손바닥으로 핸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담담하게 답했다.“물론 아직은 아무것도 아닐수 있지. 만약 두 사람 사이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다면 단지 H시로 전근 가는 거로 끝나진 않았겠지.”말을 이으며 그는 또 한 손을 들어 아내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주었다.“아름다움이 화의 근원이잖아. 뭐 어쩌겠어.”그러나 진안영은 모질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얼굴을 홱 돌려 반대편 차창을 바라보았다. 가슴팍이 부르르 떨려 나며 커다란 기복을 이루고 있었다... 분명 사석에서 처리한 일이지만 진안영은 여전히 간통을 당한 아내가 되어 남편에게 무자비하게 공개
진안영은 움직이지 않았다.차 안에 있는 조진범만이 그녀를 곁눈질로 힐끗 보며 몸을 기울여 한쪽 차 문을 열어주었다.“내려.”진안영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현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조진범은 담배를 피우며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는 그녀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조진범의 눈빛은 깊었고 마음속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진안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사랑이라는 감정은 생기지 않는 것 같았다.그렇다고 이혼을 생각하자니 이혼도 하고 싶지 않았다.조진범도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에 빠진 적은 처음이었다.그는 차 안에서 담배 두 세대를 더 피우고 나서야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그가 뒤늦게 저택 거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진안영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다이닝룸에 있던 두 하인이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조진범을 발견한 하인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신 모양이에요. 두어 술 뜨시더니 바로 올라가시더라고요.”하인의 말에 조진범이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는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도착했다. 침실 문을 열어봤지만 진안영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옆에 있던 욕실에서 물소리가 흘러나왔다…조진범은 입고 있던 검은 코트를 벗어 소파 등받이에 던져놓고는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저 길고 가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계속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욕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샤워가운을 입은 진안영이 걸어 나왔다. 갓 샤워를 마친 진안영의 온몸에서는 물기 어린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작은 계란형 얼굴은 하얗고도 부드러웠다.조진범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그녀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게다가 오늘 밤은 하도경 일로 골머리까지 앓았던 탓에 조진범은 지금 아내를 굉장히 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이 그
조은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조진범은 한 손으로 아내의 몸 곁을 짚고는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아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조은혁은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당장 부부 모두 집으로 돌아오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조은희에게 큰일이 났다는 소식이었다.어떤 일인지는 전화로 자세히 얘기하기 곤란하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전화를 끊은 조진범은 몸을 옆으로 돌리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우리 집에 좀 갔다 와야겠어.”진안영이 원하던 바였다.그녀는 조진범과 한 침대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만지는 것도, 털끝 하나 건드리는 것조차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녀는 천천히 천장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어요.”조진범은 고개를 돌려 깊은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30분 정도 지나자 조진범은 진안영과 함께 조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늦은 밤이었지만 조씨 가문 저택의 불은 환히 켜져 있었다.두 사람이 현관에 다다르자마자 조은혁의 고함이 들려왔다.“당장 헤어져!”조진범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는 아내를 한 번 쳐다보더니 빠르게 거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은혁 부부가 무거운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조은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곁에 서 있었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조은희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조은혁이 딸에게 이런 식으로 화를 낸 적은 처음이었다.조은혁이 화가 나면 조진범과 진안영이 와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조은혁이 자신의 막내딸을 향해 소리쳤다.“내 기억으론 그 진석이라는 사람, 네 가정 교사 아니었니? 게다가 지금 교수로 앞날도 창창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너희 둘이 엮인 거냐? 엮이는 건 그렇다고 쳐도 왜 본가에 민며느리가 있을 거라는 건 알아보지도 않은 거야? 그 여자가 B시까지 와서 울고불고 난리 치다가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반신불수가 됐다더구나. 이제 그 여자는 책임을 진석에게 묻겠지.”“넌
봄날의 밤.밖에서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무섭게 떨어지는 빗줄기가 장대 같았다. 거실에서는 아내가 자신의 동생을 위로하고 있었고 조진범은 검은 셔츠를 입은 채 발코니에 서서 담배를 치우며 저택 문 앞에 주차되어 있는 SUV 차량을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후, 차에서는 한 남자가 내렸다.키와 체격으로 보아하니 아마 진석이라는 남자인 것 같았다.진석은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그는 10분 정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진석은 곧이어 얼굴에 흐르는 빗물을 닦으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조진범은 그런 진석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진석은 전화를 끊고 다시 빗속에 서 있다가 1~2분 정도 지나자 다시 차에 올라타더니 자리를 떠났다. 조진범은 아마 진석에게 급한 일이 있어 떠나야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진석 또한 선생님이었다.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인 하도경을 떠올렸다.조진범은 가느다란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는 천천히 한 모금씩 빨아들였다. 준수한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조진범은 SUV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다시 거실에 있는 아내와 여동생을 바라보았다.부드러운 조명이 거실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조은희 역시 자신이 이탈리아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진안영에게 말했다.“새언니, 저 진석 씨 진심으로 좋아해요. 저 사람은 그냥 가문에서 정해준 약혼자일 뿐이지, 단 한 번도 저 사람한테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저가 먼저 진석 씨 좋아한 거였단 말이에요. 처음에는 진석 씨도 저 멀리했다가 제가 하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니까 결국 받아준 거예요.”그때의 조은희는 꽃다운 나이 18살이었다.진석은 대학교를 막 졸업하려던 참이었고 그의 지도교수는 조은혁과 꽤 깊은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조은희에게 가정 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도교수가 진석을 조은혁에게 추천해준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냉정하기도 유명한 진석이 어린
마침 안으로 들어온 박연희가 조은희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 넓은 안방에는 조진범 부부만 남게 되었다.진안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조진범은 샤워 가운을 챙겨 샤워하고 나왔다. 나와보니 진안영은 이미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아마 조진범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불 속에 몸을 꼭 숨긴 진안영은 조진범을 등지고 있었다.욕실에서 나온 조진범은 진안영의 곁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그는 팔을 뻗어 침대 머리맡에 있는 무드등을 껐다. 방안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따뜻한 숨결이 목덜미를 스치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조진범의 숨결이 훑고 지나가자 진안영의 민감하고도 부드러운 피부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아있었다. 한참 지나자 등 뒤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희 일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두 사람이 정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넌 두 사람 응원할 수 있어?”…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진안영이 되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조진범은 진안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후, 그녀의 목덜미를 훑던 따뜻한 숨결이 멀어졌다. 똑바로 누운 조진범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어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도경과 나란히 걷고 있는 아내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진안영에게 하도경을 좋아하냐고 물어도 봤지만 그녀의 확실한 답변을 얻지는 못했다.하지만 조금의 호감이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적어도 하도경이 싫지는 않겠지!조진범 역시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진안영의 삶에 다른 남자가 들어오는 것이 은근 신경 쓰였다. 설령 그것이 단순 업무적인 필요일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그렇게 조진범은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이른 아침부터 조씨 가문의 저택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조은희가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그녀는 이탈리아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확고하게 마음먹은 조은혁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그는 전용기를 타고 직접 조은희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데리고
그는 아주 뛰어난 젊은이였다.외모도 출중했고 말투도 세련됐다.조진범의 여동생은 안목이 아주 좋은 편이었다.하지만 진석의 가정 배경 때문에 이 사랑은 조씨 가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조은희는 집에서 사랑받는 막내딸이었지만 둘의 연애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조은혁은 그녀를 방에 가두고 휴대폰까지 압수해버렸다. 그렇게 그녀는 진석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눈부시도록 흰 셔츠를 입은 조진범의 모습은 기품 있고 단정했다.그의 길고 얇은 손가락 사이에는 하얀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옅은 연기가 두 사람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조진범의 얼굴에는 여느 때처럼 아주 표정도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선생이라는 직업에 호감을 느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조진범이 덤덤하게 말했다.“진석 씨, 저는 굳이 돌려 말할 생각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은희와 진석 씨를 반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은희도 오늘 아침 이미 출국한 상태고요. 아마 2~3년 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진석 씨도 이탈리아로 가는 항공권을 못 구하실 거고요.”“저는 두 분의 관계를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하지만, 진석 씨랑 은희는 어울리지 않아요. 계속 이렇게 기다리다가는 진석 씨 명예도 잃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듣기로는 진석 씨 집안이 그 지역에서 유구한 토박이라고 하더군요. 은희를 위해 집안의 모든 걸 포기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헤어지세요. 그게 두 사람에게는 최선입니다. 계속 고집부려봤자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긴 침묵이 흐르자 진석이 조용히 물었다.“진범 씨, 진범 씨의 세상에서는 모든 사랑이 이익 관계로만 계산되시나 보죠? 경제적으로만 맞으면 그게 완벽한 결혼인가요?”조진범의 눈빛이 새까매졌다. 그 검은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진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대표님의 결혼생활은 분명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