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우와 탄 차는 또 리조트를 향했다. 리조트에 도착한 후 배현우는 혼자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갔다. 미행은 본인이 해 놓고 오히려 화를 내는 이 상황에 너무 어이가 없었다.기사 아저씨도 같이 따라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지아 아가씨!”나는 차에서 내려 기사 아저씨를 바라봤다. 기사 아저씨는 저 멀리 걷고 있는 배현우를 보며 나에게 말했다. “도련님이 일주일 내내 쉬지도 못했는데 일 끝나자마자 아가씨 만나려고 평택에서 급히 올라온거예요. 아직 저녁도 못 드셨는데 아가씨가...”“빨리 따라와요!”배현우의 성난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 아저씨는 하던 얘기를 멈췄지만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많이 남은 듯 나를 계속 쳐다봤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배현우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왜 갑자기 화를 냈는지도 너무 잘 알 것 같다.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빠른 걸음으로 배현우 뒤를 따랐다. 그제야 배현우의 차가운 뒷모습도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은 듯했다. 현관으로 들어간 배현우는 외투를 벗어 손에 쥔 채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나도 뒤따라갔다. 배현우는 손에 쥔 외투를 소파에 던진 후 안지 않고 오히려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멈춰 섰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걷다가 배현우 가슴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배현우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나를 소파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뒤로 넘어지면서 소파에 누웠고 배현우는 내 위로 덮쳤다. 순간 배현우는 내 얼굴을 향해 거친 키스를 퍼부었고 아무런 준비 없이 들이닥친 그의 입술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배현우의 키스는 거칠었고 화가 나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한참 후에야 배현우는 천천히 입술을 뗐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나 보고 싶었어요? 말해봐요.”그의 거침없는 모습에 나는 민망하여 눈을 피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나는 화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녁 좀 준비해 줄게요. 배고프죠?”“말해 봐요.
풍성하게 차려진 밥상에 앉은 배현우 얼굴에는 뭔지 모를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는 듯했다.배현우는 내가 건넨 국과 밥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빨라진 젓가락 속도로 봐서는 배가 여간 고픈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나는 배현우 옆을 지켰다. 턱을 괴고 앉아 배현우의 동작 하나부터 순간의 표정까지 전부 눈에 담고 있었다. 배현우의 일거수일투족, 그리고 가끔 찡긋거리는 눈썹까지 모두 나를 빠져들게 했다.배현우는 식사하면서도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봤다.“실컷 봐요. 아직도 부족하죠?” 배현우는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를 보며 말했다. 밥상의 요리들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요리 솜씨가 정말 훌륭하네요.”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건 요리하는 사람들이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이에요!”설거지하려고 일어나자, 배현우는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밖에 나가 좀 걸어요. 다른 사람이랑 그만큼 오래 있었으면 나랑도 그만큼 같이 걸어야 해요.”열 살 아이보다 유치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려요? 현우 씨랑 한 것들 그 사람이랑은 아직 하지 않았어요.”“하기만 해봐요!” 배현우는 화가 난 듯 쏘아붙였다. 질투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는 배현우를 꼭 끌어안았다. 배현우는 손으로 내 양볼을 감싸더니 내 입술을 꼭 깨물며 말한다. “경고하는데 지아 씨의 소유권은 나에게만 있어요. 알겠죠?”“악... 아퍼... 혹시 개띠세요?” 나는 깨물린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배현우를 밀쳤다. “아프지 않으면 기억 못 할까 봐요.” 배현우는 입술을 가린 내 손을 잡고 내리며 깨물린 자리를 한참 보더니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아직도 아파요?”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아프죠!”배현우는 씻고 나서 남색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실크 잠옷은 배현우의 훤칠함을 더 돋보이게 했고 날 위해 준비한 짙은 파란색 긴 치마와 커플 잠옷임을 알 수 있었다.
배현우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 내가 을이라는 느낌을 더 짙게 한다. 갑과 을이 된 것 같은 상황은 늘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내 불안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배현우 눈을 피했고 허리를 꼭 감싸 안았다. 배현우에 대한 마음이 좋아하는 감정 이상이라는 것을 자주 느낀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배현우라는 늪에 내가 더 깊게 빠져들고 있다. 함정이다. 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큰 함정에 빠져있다. 그러나 배현우는 의외로 확실했다. 캄캄한 바다에서도 길을 정확히 알고 있는 타수처럼 배현우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전부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나는 배현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배현우의 좋아한다는 표현이 그저 듣기 좋게 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배현우의 좋아한다는 표현이 진심인지 아닌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배현우의 신분, 위치, 외모, 나이... 이 모든 게 나와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이제 막 4살인 딸도 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실패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여자든 배현우 옆에 있고 싶어 할 것이다. 배현우 옆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할 것이다.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현우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내 마음과 몸, 그리고 머릿속까지 모두 배현우를 생각하고 있었다.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루빨리 배현우 곁을 떠나 마음 정리를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상처받을 사람도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내 전화를 안 받은 진짜 이유는, 나를 피하려고 그런 거죠?” 배현우는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나도 모르게 두 발짝 뒤로 물러나 그를 애틋하게 바라봤다. 정원 내부를 비추는 불빛이 배현우 얼굴을 밝게 비췄다.“맞아요. 피한 거예요. 더 이상 현우 씨에게 빠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요. 왜냐면... 누가 봐도 내가 아주 부족해요. 어쩌면 나 혼자 김칫국물 마시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현우 씨는 전혀 생각도 없
한참 지나서야 배현우는 나를 꼭 껴안은 팔을 내렸고 내 귀에 쐐기 박듯 얘기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도 말아요!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예요. 두 번 다시 얘기하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알겠죠?”나는 배현우를 멍하니 바라볼 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배현우는 내 눈물을 닦아 주고는 나와 다시 깍지를 끼고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꼭대기에 올라갔다. 옥상은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처럼 주위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옆 벤치에 와인과 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배현우는 와인 한 잔을 따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마셔봐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나는 배현우의 늠름한 모습과 잘생긴 얼굴에 홀린 듯 와인을 꿀꺽꿀꺽 마셨다. 다 마시고 나니 진짜 배현우 말대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배현우는 난간 옆으로 나를 이끌었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정월 대보름처럼 큰 달이 걸려있었고 우리 둘만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배현우는 등 뒤에서 나를 꼭 안은 채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을 비워요. 저기 저 크고 둥근 달처럼 깨끗하게. 그리고 모든 걸 나에게 맡겨요.”배현우는 나를 품에 껴안으며 얘기했다. “강가에서 지아 씨를 처음 구할 때부터 다짐했어요. 지아 씨를 꼭 지키겠다고. 우리 뒤돌아보지 말고 이제 앞만 봐요.”“이게 내 마음이에요.” 배현우는 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아무 말 없이 배현우 품에 안겼다. 고개를 드니 달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었다.이날 밤, 우리는 리조트에서 달을 감상하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나는 배현우의 품에 안겨 술에 취해 천천히 잠들었다.잠에서 깼을 땐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일어나 휴대전화부터 찾았다. 그러나 배현우의 굵은 팔이 나를 다시 침대로 잡아당겼다.“오늘만큼은 휴가 냈다고 생각해요.”배현우 품은 따뜻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와 연락이 안 돼서 급해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점심이 돼서야 우리
이해월은 사무실 문 앞에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해요. 우리 회사에 온 이상 다 고객이죠.”이해월은 멋쩍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게 왠지 불안하네요.”“어차피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어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어요.” 나는 덤덤한 태도로 계속 말했다. “스스로 찾아온 고객인데 돌려보내면 안 되죠. 들어오시라고 해요.”“알겠습니다. 그럼, 모시고 오겠습니다. 대표님! 긴장하지 마세요.” 이해월은 밖으로 걸어 나갔고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해월은 우리 회사에 정말 필요한 직원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월이 양대수를 데려왔다. 30대를 훨씬 넘어 40대처럼 보이는 느끼한 아저씨가 사무실로 들어왔고 나를 향해 굽신거리며 인사했다. “한 대표님. 안녕하세요.”“양 주임님.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나는 책상 앞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고객 접대용 소파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양대수는 연신 인사를 하며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드디어 한 대표님을 뵙네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 사업을 크게 하고 계신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나는 양대수의 아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양 주임님. 정보가 잘 못 된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업계에서는 다 알고 있을 텐데요? 우리 회사 곧 문 닫기 직전입니다. 양 주임님이 말씀하신 큰 사업은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양대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잘못된 정보라니요. 한 대표님 너무 겸손하십니다.”나는 정색해서 다시 물었다. “양 주임님.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오신 이유가...?”“아... 네!" 양대수는 옷매무시를 가다듬더니 정색하며 말한다. “제가 온 이유는요. 한 대표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최근 형원그룹에서 담당한 복층 건물이 이슈가 있어 준공이 늦어지다 보니 메인 구역은 전부 완성되었는데 몇 동의 복층 건물만 아직 안 돼서 난처한 상황이라고 했다.
나는 일부러 가격을 더 높게 불렀다. 무슨 목적으로 왔든 이렇게 온 이상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나는 나의 의사를 전달하고는 양대수의 표정을 한번 살펴보았다.양대수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바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문제없습니다. 한 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도 형원 그룹 아시잖아요. 서울에서 꽤 잘나가는 회사로서 상품의 질에 대한 추구는 엄청 납니다. 저는 전적으로 우리 대표님 말을 따르겠습니다! 다 이유가 있으시겠죠.”양대수의 말을 듣다 보니 나는 자신이 생겨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린 신흥을 방금 인수 했고, 전에 저와 신호연이 이혼 문제 때문에 살짝 삐끗했던지라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란 말이죠. 그 때문에 우린 모든 고객을 정말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고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론 그쪽도 저를 심사하고 감시해야하겠지만, 우리 쪽에서는... 지금 협력하는 기초로 예산의 30%를 선불로 내는 걸 조건으로 걸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진중하게 그에게 말을 꺼냈다.하지만 이 조건들은 내가 들어도 너무했다. 하... 너무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었다.원한다면 하는거고 원하지 않다면 그냥 이 일은 없었던 거로 하면 됐다.양대수는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 분명 속으로 이렇게 염치가 없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우리에게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이번엔 양대수도 정말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 아, 한 대표님! 우리 이럽시다! 서로 딱 한 발짝씩만 양보해요. 사업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서로 좋게 좋게 가는 거죠!”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설계도를 보여주면 우리가 그에 맞춰서 가격을 제시할게요. 어때요? 이러면 그냥 아무 근거 없이 흥정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 같은데. 양 실장님이 보기엔 어떠신가요?”양대수는 듣고는 희망이라도 생긴 듯 얼른 말했다. “어휴! 너무 좋죠! 역시 우리 한 대표님이 머리가 잘 돌아가네요! 좋
생각이 확실해지자 나는 장영식과 전에 건이가 극구 반대를 하던 그 몇몇 공급업체들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았다.나는 건이를 불러들여 같이 전략을 짜보았다. 그리고 저녁에 건이가 이해월과 함께 남아서 회식 장소를 토론하고 수원 레스토랑으로 룸 하나를 예약했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렇게 겉치레를 막 차린 적은 없었다. 직원들에게 가끔 밥을 사준 적은 있어도 이렇게 정식적인 장소에서 음식을 대접하는건 처음이었다.모두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특히나 신입 사원들은 더더욱 흥분한 상태였다.이 수원 레스토랑은 원래 전문적으로 모임이나 연회를 하기 위해 준비된 그런 장소였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는 사람은 보통 대접할 때나 모임을 열 때 많이 오는 곳이었다.가던 길에서 배현우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배현우는 내가 어디서 대접하는지 물었고 나는 수원 레스토랑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그는 덤덤하게 ‘네’ 한마디 하더니 덧붙여 말했다. “술은 안 돼요!”“네? 제가 우리 직원들하고 밥 먹는다는데 이것까지 뭐라 하면서 상관하는 건 좀 아니죠!”나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기뻤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배현우의 간섭을 받는 게 좋았다.“지아 씨는 제 여자잖아요. 이 정도 간섭도 안 돼요?” 그가 반박하자 나는 푸흡 웃음이 나왔다. 눈앞에 배현우의 웃는 모습이 막 그려지는 거 같았으니까.“그럼 바쁜데 끊을게요! 너무 늦으면 안 돼요!” 그는 당부하고는 바로 끊어버렸다.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배현우가 ‘지아 씨는 제 여자잖아요’ 라 하는 말이 너무 좋았다. 그의 박력은 늘 나에게 귀속감을 주었다.메뉴는 이해월이 미리 예약을 해두었고 우리가 도착하자 바로 요리들이 나왔다. 이해월은 정말 가성비가 좋은 메뉴들로만 잔뜩 시켜놨다. 마음에 쏙 들었다.그녀는 정말 유용한 조수다. 비록 며칠 못 봤지만 우리의 케미는 여전히 좋았고 호흡이 척척 맞았다. 정말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어시스트였다. 특히 그녀의 기억력은 정말 내가 본 사람들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룸안 전체에 울려 퍼졌다.나는 이해월이 나를 위해 애써 수습을 시도했다는 걸 안다. 장영식은 나를 힐끔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고 그 웃음은 내 마음을 살짝 불편하게 만들었다.이미연, 너무너무 밉다. 왜 장영식에 관해서 그런 말을 해서... 몰랐다면 그냥 태연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마음을 안 이상 왠지 모르게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딘가 어색진 느낌이었다.장영식은 착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같이 있을 때 항상 그냥 사업상의 얘기만 할 뿐 딱히 말을 꺼내지 않았다.회식을 끝마치고 계산하러 가자 이해월은 조용히 나에게 이미 계산이 다 됐다며 알려주었다.이런 특별 대우에 나는 적응이 전혀 안 돼 정신을 못 차렸다.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차에 타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안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뭐예요, 진짜 저 미행하는 거 아니죠?”“네.” 배현우가 대답을 마치자 한줄기 강렬한 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앞이 새하얘져 아무것도 안 보였다. 곧이어 불이 꺼지고 암흑이 내 눈을 가렸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분명 배현우라는 것을.이 사람은 정말 신출귀몰했다. 설마 또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건 아니겠지?하지만 왠지 모르게 감동이었다.나는 그 차 앞으로 걸어갔다. 차 문이 자동으로 열렸고 그가 보였다. “타요!”나는 어제도 집에 안 들어간 지라 살짝 머뭇거렸다. 오늘도 집에 안 들어가면 앞으로 어떻게 가족들의 얼굴을 보겠어?이때 차 안에서 배현우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고 차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고는 얼른 말했다. “저 오늘은 반드시 집에 가야 해요!”“원래는 집에 안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좋네요, 아주 좋아요!” 그는 피식 웃으며 내 속을 간지럽혔다.“절대 안 돼요! 저는 외박한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에요. 어제 집에 안 들어간 건만으로도 충분하단 말이에요!”배현우는 부끄러워서 새빨개진 내 얼굴을 보며 일부로 놀리며 말했다. “무슨 일박 이박 하면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