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을 나서는 순간 나는 십 년 묵은 체증이 한순간에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결혼이라는 명목 아래 나를 옥죄어 오던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졌다.아직 구 변호사를 보내기도 전에 신호연이 안에서 뛰쳐나와 겹겹 한 높은 계단을 빠르게 뛰어내려 나를 향해 달려왔다.사람들이 나를 중심으로 에워싸고 방비 태세를 취했다.함께 나온 몇몇 친구들이 방어하며 말리자 그가 의기소침하게 주눅이 든 표정으로 원망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여...” 신호연은 양심은 찔리는지 차마 뒷글자는 뱉지 못하고 삼켰다. 그의 처량하고 슬픈 눈을 보며 나도 조금은 비통한 마음이 들었다.“지아야. 가지 마...”“그만 막으시라고요!”“지아야. 한 번만 기회를 줘. 아직 할 말이 있어!”신호연은 자신을 끌고 가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지아야. 한 번만 대화할 기회를 줘! 아무리 이혼한다 해도 아직 해야 할 말이 많아. 여보! 제발...”“다시는 날 그렇게 부르지 마. 우린 이혼했고 넌 그렇게 부를 자격 없어! 그리고 우리 사이에 무슨 할 말이 더 있다고 그래?”내가 단호하고도 차갑게 쏘아붙였다.“아니. 지아야.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제발.”“그만 막으시라고요! 뭐 하시는 거예요?”방어하는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큰소리를 치는 신호연의 눈에 절박함이 비쳤다. 마치 애원하면서도 내가 돌아서서 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나는 사람들에게 그를 놓아주라고 이른 뒤 담담하게 팔짱을 끼고 말했다.“말해봐.”그가 주변에 깔린 구경꾼들을 보고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어디라도 앉아서 대화하는 게 어때. 내가 커피 살게.”신호연이 여전히 원망 어린 눈길로 나를 주시했다.“그럴 필요 없으니까 지금 여기서 말해.” 나는 그의 말을 칼같이 거절했다. 너 때문에 상했던 내 몸의 상처가 어떻게 겨우 나은 건데.그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달싹였다. 한참 동안 생각하는
나의 말을 들은 그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사뭇 서운한 감정이 내비쳤다.“신연아. 대중 앞에서 꽃뱀처럼 꼬리까지 치고, 너무 뻔뻔한 거 아니니?” 그녀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신호연의 곁으로 달려가서 팔을 꽉 껴안았다.나는 비열한 웃음을 띠며 신연아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신호연에게 말했다. “신호연, 너도 언젠가 버림받는 느낌을 이해할 때가 올 거야. 이혼 판결도 끝났으니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지 말자. 현실에서 살아 이제.”말을 마치고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는 순간 어이없게도 나는 신호연의 붉어지는 눈시울을 보았다.구 변호사에게 감사를 표한 후 나는 어머니와 미연을 데리고 새로 뽑은 차에 탔다. 백미러로 보이는 그는 쓸쓸하게 차가 멀어져가는 것을 응시하고 있었다.나는 아버지의 퇴원 수속을 돕고 집으로 모셨다. 저녁에는 나의 새로운 삶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미연이 배현우도 부를지를 묻자 나는 고민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배현우 씨, 무조건 너한테 관심 있어. 난 진작부터 알아봤지!” 이미연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뭐래, 나 방금 이혼한 돌싱녀야.” 내가 그녀를 나무라며 흘겨보자 그녀가 방정맞게 웃어댔다.말은 그렇게 해도 나는 배현우에게 먼저 연락했다. 통화가 연결되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 “축하합니다!”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요즘 사람들은 이혼하면 축하해 주네.’ 비참하게 배신당한 나는 이제 사랑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나와서 한잔하실래요?”“괜찮아요, 방금 집에서 마셨어요. 집에 부모님이 계셔서 밤늦게 돌아다니기가 그래요.” 내 거절 사유는 충분했고 그 역시 고집부리지 않았다.이후의 나날들에 나는 신흥을 인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인수할 당시의 회사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신호연은 내가 그 어떤 이익도 얻을 수 없게 아득바득 애를 썼다. 그는 자기 측근을 모조리 데려가는 동시에 모든 자원과 아
내가 이력서에서 본 그는 바로 대학 선배이자 고향 친구인 장영식이었다.전에 해외로 떠났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으므로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나는 재빨리 이해월 실장에게 면접을 통지하라 일렀다.이해월은 신흥에 오래 몸 담근 직원이다. 높지 않은 학력에 비해 갖춘 상당한 업무 실력과 영리한 판단력, 그리고 특히 탁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인재였다. 내가 그녀를 나의 비서로 일하도록 한데는 또 다른 속셈이 있었다. 그녀는 이전에 신연아와 모순이 있었기에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장영식을 면접 자리에서 만났을 때 그는 꽤 진중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내가 회사의 사장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오래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를 만난 나는 신이 나서 바로 물었다. “나 누군지 알아?”그가 입꼬리를 올리고 살짝 웃었다. “당연히 알지!”“그런데 내 회사는 아직 그릇이 작아서 너의 학력에 수준이 못 미칠 수 있어.” 나는 직설적으로 회사의 상황에 대해 간결하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아마 월급도 네 능력에 비해 적게 가질 수 있어.”장영식이 더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그럼 잘됐네. 나랑 주식을 나눠 가지면 둘 다 손해 보지 않는 남는 장사일 것 같은데.”“걱정하지 마! 열심히 할 자신 있어.”그의 말을 듣고 나는 한순간 멍해졌다. 그 높은 학력과 능력치를 가지고 설마 아무것도 재지 않고 바로 내 회사로 달려온 건가?내가 돌에 맞은 듯 멍하니 앉아 있자 그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왜? 나 못 믿어?”“당연히 믿지. 그래도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는 보고서를 내줘. 친구라 해도 아무런 근거 없이 믿고 맡기기는 어려우니까.”나는 종래로 공짜로 주는 떡은 사양하지 않았다. 이렇게 우수한 인재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하지만 노력 없이 성과를 채가는 사람은 사절이야. 잊지 마. 난 지금도 도둑질한 쥐를 내쫓고 오는 길이야.”나의 말에 그가 통쾌하게 웃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할게. 나도 네가
울산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간만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며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배현우가 생각났다. 이혼 축하 연락을 끝으로 오랫동안 배현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배현우도 나에게 주동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늪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왜인지 모르게 자꾸 생기는 실망감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절대 겉으로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 자제하고 또 자제했다.그러나 나는 착륙 후 부재중전화 목록을 보고 또 눈치 없이 쿵쿵 방망이질하는 심장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제일 위에 떠 있다.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딥니까?” 전화를 받자마자 그가 물었다.“방금 울산에 도착했어요.”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혼자예요?”“네!”“그래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그의 말투는 소원했으며 조금의 미련도 없이 금방 전화를 끊어버렸다.오히려 서운하고 답답한 것은 내 쪽이었다. 기껏 전화했다는 것이 두 마디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나?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요즘 무슨 일은 없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백 개도 넘었는데!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서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꺼버렸다.진사원은 내가 서울에 온다는 것을 듣고 사람을 보내 나를 마중 나왔다. 오랜만에 본 진사원의 모습은 표정이 한결 밝아진 상태였다.나는 공항에서 사원으로 간 후 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그리고 곧바로 프로젝트 도킹 회의를 열어 착공을 앞둔 천우 그룹의 프로젝트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고 계획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들이 만든 도면에 근거하여 전반적인 설계와 시공 방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업무 효율은 정말 높았고, 그들이 제시한 협조방안은 나의 사업에 대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어 나로 하여금 갑자기 앞날에 대한 신심이 차오르게 했다.회의는 늦게까지 계속되었고 나는 회의실에서 저녁 식사를 배달 음식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회의 후 진사원이 직접 나를 호텔로 데려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환청 같아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다시 누우려고 할 때 다시금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가로 살금살금 다가가 문에 귀를 대고 밖의 소리를 들으려 했지만 밖이 고요했으므로, 나는 긴장한 채로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세요?”밖에서 벅찬 소리가 들렸다. “저예요!”나는 귀를 의심했다. 졸음이 순간 싹 가셨다.내가 벙찐 채로 대답하지 않자 그가 다시 한번 반복했다. “저예요, 지아 씨. 문 열어요!”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이 목소리 왠지...’나는 맨발로 침대에서 뛰어내려 비틀거리며 달려갔다.문가로 가서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더니 문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빠르게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한껏 지쳐 보이는 배현우가 내 앞에 서서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았다. 이것이 꿈일까 봐 조금 두려워져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어떻게 왔어요...?”사실 어떻게 왔는지는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저 그의 따뜻한 품에 안겨 그립던 그의 심장박동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감성보다 이성이 앞섰기에 나는 할 수 없었다.그가 나를 보고 입술을 말아 물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지아 씨가 있는 곳엔 제가 당연히 있어야죠. 왜요. 싫어요?”그는 내 당혹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크게 벌려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빨리 들어가요.”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가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밖의 찬 공기가 그와 함께 따라 들어왔다. 그가 맨 발인 나를 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땅이 이렇게 찬데 슬리퍼라도 신어요, 어서.”부드러운 눈빛에 내가 듣고 싶었던 따뜻한 말.피곤함이 섞인 낮은 목소리에 가슴이 또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슬리퍼를 찾아 신었지만 당황하여 로봇처럼 삐걱삐걱하였다.그가 자연스럽게 외투를 벗자 나는 얼른
다음날.정오가 되어서야 우리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진사원의 연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나를 꼭 껴안고 놔주지 않았다.나는 그에게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고 저녁에는 반드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그제야 그는 껴안았던 팔의 힘을 빼고 함께 일어났다.함께 점심을 먹자는 그의 말에 나는 또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를 사랑하면서도 그와의 이런 관계가 도대체 어떤 관계이며,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는 관계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우리 사이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망설임이 없지만, 그는 나에게 확실한 약속을 한 적도 사랑의 맹세를 한 적도 없었다. 정상적인 교제 관계로 정의 내리기는 더욱이 이상했다. 그럼 나는 도대체 그에게 어떤 존재인가?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 물음이다.그러나 매번 그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마치 N극과 S극의 자석이 자연스레 끌리게 되듯 나는 싫은 내색 한번 없이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모두 받아주게 되었다.그와 함께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그는 나에게 원하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할 뿐이다. 본인의 마음 가는 대로.그래서 나는 감히 그에게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 말할 수도 없다. 내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까 봐.서울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는데 나는 피곤한 나머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속상한 얼굴로 나를 보며 안타깝게 고개를 저으셨다. “지아야, 이렇게까지 희생하면서 일하는 이유가 무엇이니? 아니면 우리 가족 모두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 인생도 짧은데 안일하고 즐겁게 보내는 게 더 행복하지 않겠어?”안일하고 즐겁게 보내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삶일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고.그러나 나는 서울에 너무 많은 아쉬움과 애정이 남아있다.이미 활이 시위에 당겨져 있는데 어찌 활을 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잃은 10년의 청춘은 나 스스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전체 프로젝트의 계
그들은 동시에 일어섰다. 그 여자는 배현우와 대화를 하며 손을 뻗어 팔짱을 끼려 했다. 그녀는 오만한 시선으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녀는 화려하게 이쁜 건 아니었지만 수수하면서도 뿜기는 기운이 남달랐다.배현우는 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예민한 그 여자는 배현우의 눈길을 따라 내 쪽을 보았고 그녀는 마치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표정이 매우 안 좋았다. 나는 잘못 본 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녀의 표정은 정말 예사롭지 않았다.내가 어리벙벙해 있을 때 배현우는 덤덤하게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갈 때쯤 그 여자는 다시 한번 나를 째려보았다.이미연은 내가 배현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눈치챘는지 소리 높여 말했다. “가자! 내가 보니까 너 술 몇 잔 마셔야 할 거 같은데, 빨리 가자!”나는 곧바로 찬성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술이라도 좀 마셔서 머리를 맑게 하고 싶었다.이미연은 차에 나를 태우고는 다크바로 갔다. 솔직히 말하면 좀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위스키 두 잔을 시켰고 위스키에 대해선 잘 몰랐던 나는 그녀가 주는 대로 받아서는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바텐더에게 한 잔을 더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야! 천천히 마셔! 취하고 싶은 거야?” 이미연은 소리치며 나를 말렸다. “천천히 음미해 봐. 취해가는 과정을 느껴야지. 지금 넌 빨라도 너무 빨라!”나는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를 뀌었다. 과정? 나한테 지금 남은 건 과정밖에 없는데!“아 맞다, 장영식에 대해 알려준다는 걸 깜박했네!” 이미연은 반쯤 엎드린 채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사해 보니까 이력서에 쓴 거랑 별 차이는 없었어. 이제 귀국한 지 한 달도 안 됐던데?”옆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소리가 아주 시끄러워 나는 문제 없다는 한마디밖에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술 두 잔을 들이켜자 배가 뜨거워지면서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뒤끝이 이렇게 심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나는 아직 정신이 남
’쌔앵’ 소리가 내 뒤통수 뒤로 들려왔다. 나는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예상했던 고통과는 다르게 그저 ‘쨍그랑’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술이 반쯤 깬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남자는 책상 위에 습격당한 사람처럼 드러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사나운 표정을 한 배현우가 서 있었다.그 남자는 화를 내며 다시 일어나 배현우를 향해 돌진하려 했다. 그러자 배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 남자는 아파하면서 소리를 질렀다.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몰렸다. 배현우는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고 이미연도 허겁지겁 우리의 가방을 챙기고는 뒤따라 나왔다.“한지아 씨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런 곳에 다 오고. 심지어 술까지 마셔요?” 그는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금 일 때문에 놀라서 몸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 그의 사나운 표정을 보니 진정이 됐다. ‘하! 아까 식당에서는 방긋방긋 잘도 웃더니 여기 나한테 오니까 얼굴색이 싹 변하네.’“지아야, 너 괜찮아?” 이미연은 한바탕 내 몸을 훑어보고는 배현우를 향해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여기에 오자고 했어요.”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생각했다. ‘다 마신 마당에 누가 제안했는지 알 게 뭐야.’ 나는 이미연을 보면서 명령하는 식으로 말했다. “괜찮아, 우리 집에나 가자!”이미연은 살짝 민망한지 나와 사나운 표정을 한 배현우를 이리저리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니면... 그 현우 씨가 지아 좀 데려다줄래요? 우리가 다 술 마시는 바람에 차를 몰수가 없어요.” 배현우는 차갑게 그저 “네.” 한마디만 뱉을 뿐이었다.이미연은 무슨 명령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나는 이미연을 향해 크게 욕을 했다. “...야! 이미연, 우리 사이가 이렇게 밖에 안됐냐? 저기...”나는 이미연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배현우는 긴 팔을 뻗어 나를 잡아당겼다. 나는 눈앞이 어지러워져 비틀거리다 배현우의 가슴팍에 부딪혔다.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