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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소원을 이루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삼켰다. 나의 말이 우리 사이에 찬 물을 끼얹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조금 전까지 사랑을 갈구하며 자신을 탐해놓고서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려는 걸 안다면. 어쩌면 정말 화낼지도...

나는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현우 씨 회사는 직원들에게 정말 잘해주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회사에 몸담고 있지 않았다면 저도 천우 그룹에 가서 일했을 거예요.”

그가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물었다. “왜요?”

“회사 사람들이 모두 소탈한 것을 보니 회사가 잘 대해주겠다 싶어서요.”

억지스럽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억지스럽게 갖다 붙인 티가 났다.

내 말을 들은 그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으나 더 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다.

배현우가 음식을 먹는 모습은 느긋하고 점잖아서 내가 그릇을 비우는 속도가 더 빨랐다. 정말 배고프기도 했고 그의 앞에서 옷매무새에 신경 쓰며 조신한 척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사 후 내가 집에 돌아가겠다 고집하여 그는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바래다줄게요.”

운전하고 있는 그가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 듯했다. 나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얼굴에 사정없이 맞받아치는 찬 바람이 정신을 깨우는 것 같았다. 조금 전의 모든 일이 꿈 같게 느껴졌다.

후회되지는 않았다. 당시의 나는 진실로 사랑을 갈구했으니까. 다만 지금이 좀 어색할 뿐.

신호연이 다시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쉴 틈 없이 굴러가는 운명의 굴레 속에정해진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한 몸 불태워 사랑할 수 있는, 끊임없이 탐하게 되는 그런 사람.

어떤 의미에서 사랑에 옳고 그름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이후에는 어떡하고? 가슴이 갑자기 바늘로 찌르는 듯 쑤셔왔다.

배현우는 마치 나의 싱숭생숭한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손을 감싼 채 조용히 운전했다. 소중하게 꼭 쥔 손에 그의 온기가 느껴졌는데 집에 다가올수록 나는 이유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참한 현실 세계로 내던져지는 것 같은.

나의 세상은 차갑고 복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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