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는 웃음소리가 가득한 행복한 시간이었다.윤유성은 컬렉션 급 와인 한 병을 준비했다. 그러나 윤씨 사모님은 아람에게 과일 주스만 마시게 했다. 아람은 식사 내내 오렌지 주스, 포도 주스, 파인애플 주스를 마셨다. 그녀의 위장에서 과수원을 열 수 있을 정도였다.식사 후 주 씨 아줌마는 사모님과 함께 놀러 갔다. 도련님과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단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윤유성은 아람을 데리고 자신의 별장을 구경했다. 명나라의 그림, 송나라의 그림, 청나라 왕실의 꽃병 등 골동품과 서예품을 보여주기도 했다.‘이 보물들을 바자회에 내놓으면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겠네!’테이블 앞에 서서 돋보기를 들고 고대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아람의 눈은 반짝거렸고 기쁜 마음이 넘쳐흘렀다.“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들면 제가 포장해 줄 테니 가져가세요.”윤유성은 침대에 긴 팔을 걸고 고개를 기울여 미소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아람은 그림을 감상하고 윤유성은 아람을 감상했다.“포장이요?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수십억의 가치가 있어요. 모두 진품이에요. 옛날 황제들도 남에게 하사할 엄두도 못 냈을 텐데, 그걸 다 포장해서 가져가라고요?”아람은 몸을 세우며 장난스럽게 돋보기를 통해 대범한 윤유성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골동품 컬렉터예요, 아니면 골동품을 갖고 노는 거예요. 정말 애호가라면 우리 구회장처럼 남 주기는커녕, 건드리기만 해도 화를 내거든요.”윤유성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부드럽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오직 두 사람에게만 대범하게 대해요. 하나는 아람 씨고 하나는 아저씨예요.”아람은 움찔하여 입술을 다물었다.윤유성과 신경주는 완전히 극과 극인 것 같았다. 한 사람은 오글거리는 말을 끊임없이 내뱉고, 다른 한 사람은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어도 좋은 말을 듣기 어려운 사람이다.“구회장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대범한 것을 본다면, 끝까지 욕심을 부릴 거예요.”“아저씨가 좋아하시면 가져가면
경주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아람에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윤유성은 라이벌이 온 전화를 보자 눈에는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그는 나지막하게 불렀다.“아람 씨.”아람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여전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순간 윤유성의 눈은 실망으로 가득 찼다. 그의 마음은 경주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찼다.이 순간 경주는 밝은 창문을 보았다. 그는 그 뒤에 아람이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경주의 쉰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아람아, 눈이 왔어. 성주의 첫눈이야.”“응.”아람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그래서 왜 전화 왔어?”경주는 말문이 막혔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용기를 내어 진지하게 물었다.“오늘 밤 함께 눈 구경을 할까?”“신 사장님은 물고기야? 기억력이 7초밖에 안 돼?”아람은 의아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아니야.”“내가 너랑 무슨 사이인데, 같이 눈 구경을 하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윤유성보다는 어울려.”경주는 질투를 했다.이 말을 듣자 아람은 화가 나면서도 웃겼다.“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구아람, 오늘 밤에 널 보지 못하면 난 떠나지 않을 거야.”그는 고집을 부렸다.“네가 안 가면 오늘 밤 여기서 떠나지 않을 거야.”아람은 그보다 더 고집이 셌다.“구아람…… 날 화나게 하려는 거야?”경주는 붉은 눈을 부릅떴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어려운 것 같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목에는 피 냄새가 느껴졌다.“윤유서의 집에서 자겠다고?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기나 해?”아람의 가슴에 화가 치솟았다.그녀는 윤유성을 등지고 구석으로 갔더니 한숨을 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신 사장님, 지난번에 목숨을 구해준 건 고마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을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야.”“난 그냥 너랑 첫눈을 보고 싶을 뿐이야!”“나는 싫어! 신경주, 나는 정말 너랑 보기 싫어.”아람의 통제 불능의 포효는 경주를 놀라게 했다.윤유성은 재빨
아람이가 쓰러지는 순간, 윤유성은 그녀를 깊숙이 품에 안았다.어두워진 안색, 그리고 분노가 만연해 점차 미쳐갔다.……경주는 머리와 어깨에 하얀 눈으로 덮인 채 추운 곳에 서 있었다.그는 이미 밤새도록 이곳에 머물 준비를 하고 집요하게 기다렸다.갑자기 별장의 문이 열렸다.경주는 죽을 무렵에 잠깐 정신이 맑아진 듯 깜짝 놀랐다. 그러나 바로 실망을 했다.창백하고 우울한 얼굴로 그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윤유성이었다.“아람은?”경주는 주먹을 꽉 쥐고 맹렬하게 눈을 마주쳤다.윤유성은 안경을 밀고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에는 승자의 오만함으로 가득했다.“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지낼 거예요. 집으로 안 가요. 신 사장님과 함께 눈을 구경할 일은 더더욱 없어요. 아람은 이미 쉬고 있어요. 어엿하고 자존심이 있다면 당장 떠나세요. 전 돌아가서 아람 곁에 있을 거예요.”경주는 벼락 맞은 듯 목소리가 음침해졌다.“윤유성…… 자랑스러워? 속임수와 꿍꿍이로 가득 찬 네 마음만으로는 아람의 곁에 있을 수없어!”“네, 그래서요?”윤유성은 늑대 같은 잔인한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은 아람 앞에서 있는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저는 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어요. 양심에 물어도 한 점 부끄러울 게 없어요. 어떤 사람과는 달리, 나쁜 놈이면서 패방을 세우진 않아요. 분명 쓰레기인데 아람의 앞에서 순정남인척하네요.”“윤유성!”경주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목구멍에서 피 맛이 점점 느껴졌다.“제가 알기로는 아람과 결혼한 3년 동안, 함께 명절을 보낸 적도 없죠? 첫해의 발렌타인데이, 두 번째 해의 크리스마스. 하지만 김은주 씨의 생일은 같이 보내주셨죠?”윤유성은 웃으며 비아냥거렸다.“오늘처럼 로맨틱한 날에도 김은주 씨에게 가야죠. 아람에게 모욕을 주려고 온 거예요?”경주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듯 아팠다.“신경주 씨, 연적이자 라이벌로서 조사한 건, 아람이가 안타가워서 그
다음날 이른 아침, 아람의 머릿속은 여전히 멍하고 의식이 약간 혼미했다.그러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녀는 검은색, 흰색, 회색의 배색인 방에 있었다. 공기 속에 정신을 안정시키는 향기로 가득 차서 그녀를 편안하게 했다.“남자의 방…… 윤유성?”아람의 머리에는 몽둥이에 맞은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어젯밤 경주와 다투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는 취해서 필름이 깨진 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졌다.가슴이 쿵쾅거리는 아람은 일어나 재빨리 방을 나갔다.깨끗한 흰 셔츠를 입은 윤유성은 아래층 부엌에 있었다. 그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후 아람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이른 아침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그의 몸을 비추었다. 그의 유난히 잘생긴 얼굴에 더 부드러운 느낌을 더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그는 요리를 많이 하지만 앞치마를 입지 않는다. 같은 양복도 두 번 입지 않았다.“윤 도련님.”아람의 목소리를 들은 윤유성은 고개를 들고 부드럽게 바라보았다.“아람 씨, 깨어났어요? 몸은 좀 어때요?”“윤 도련님, 어젯밤에…….”“아람 씨, 말했었잖아요. 앞으로는 유성이라고 불러요.”윤유성은 꾸짖는 말투로 말했다. 그는 마치 어여쁜 며느리처럼 일하느라 바빴다.“어젯밤 몸이 좋지 않아서 우리 집에서 쓰러졌어요. 저혈당과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해서 그랬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제 방에서 잤지만 전 아람 씨를 건드리지 않았어요.”“알아요.”아람은 피곤한 듯 이마를 잡았다. 그녀는 순수한 소녀가 아니기에 웬만한 것은 알고 있었다.저혈당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젯밤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과거는 여전히 그녀에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였다. 살짝만 건드려도 너무 아팠다.그저 그 고통으로 기절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신경주 나쁜 자식이 독하네.’“아침 식사가 다 됐어요. 아람 씨, 와서 먹어요.”윤유성은 그릇을 정돈하게 놓으며 부드럽게 재촉했다.그 모습은 마치
“아람아, 지금 나와 네 둘째 오빠, 일곱째 오빠, 그리고 수해까지 모두 윤유성의 별장 밖에 있어.”구윤의 목소리는 하늘에 울리는 천둥 같았다.쓸모없는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전감과 억압감은 고스란히 전해졌다.“오빠, 나 괜찮아. 너무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네.......”아람은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다.“너무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다고? 아람아, 네가 남자의 집에서 밤을 보냈어! 온밤 들어오지 않았다고! 오빠들의 마음이 얼마 급한지 알아?”구진은 목이 찢어질 듯 소리 질렀다.“아람아, 윤씨 가문 그 녀석이 널 건드렸어? 네가 자발적으로 간 거야? 아니면 억지로 끌려간 거야? 오빠는 이미 수갑을 준비해놨어!”구도현 역시 열혈 경찰이었기에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윤유성을 체포할 것 같았다.“진정해, 모두 진정해!”아람은 서둘러 하이힐을 신고 문을 밀고 나갔다.문밖에는 수많은 고급차가 윤유성의 별장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아가씨!”가장 먼저 달려온 임수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괜찮아요? 윤유성이 아무 짓도 안 했죠?”“누가 감히 나한테 그런 짓을 해? 구씨 가문이 그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는데.”아람은 그들이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아람아!”세 오빠들도 모두 모였다. 아람의 안색이 괜찮고 옷차림이 정돈된 것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형님들 좋은 아침입니다.”윤유성은 봄날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구도현을 바라보았다.“도현아, 너도 왔구나. 경찰 업무가 그렇게 바쁘지 않나 봐.”구도현은 이를 악물었다.‘확 수갑을 채워버리고 싶네!’구진은 화가 났다.“형이라고 부르지 마,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하지 않잖아. 도련님이라고 불러. 아니면 구 검사님이라고 부르던지!”“그러네요. 제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감정도 사라졌겠네요.”윤유성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아람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저를 어떻게
구윤은 눈을 내리깔고 손목을 들어 시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윤 도련님, 전 아람을 잘 알아요.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남자 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젯밤에는 도련님 집에 묵었네요. 설명 좀 해줘야겠어요.”“아람 씨가 외박하는 건 동의 안 하시는데, 결혼 사실을 숨기는 건 동의했네요? 3년 동안 아저씨를 속이면서 쓰레기 같은 놈과 유명무실한 결혼을 했어요. 시댁에서 3년 내내 고통을 받게 내버려 두었어요?”윤유성은 여전히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구윤의 맞은편에 여유롭게 앉았다.구윤은 숨이 막혀 입꼬리를 살짝 내렸다.“그게 같아요? 슬쩍 바꿔치기하네요? 아람은 한때 신경주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한 거예요. 아람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거고 원해서 그런 거예요. 오빠로서 동의하지 않지만 아람의 의견을 존중해요. 하지만 도련님은 달라요.”윤유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평온했던 그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전 잘 알고 있어요. 아람은 도련님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람의 마음속에는 도련님이 없어요. 계속 강요하면 아람은 싫어할 거예요. 그리고 저도 도련님을 다시 볼 것 같아요.”구윤의 눈빛은 엄숙하고 차가운 기색이 맴돌아 매우 위협적이었다.윤유성은 금색 안경을 올리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른침을 삼키며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어젯밤, 저와 어머니가 아람 씨가 보고 싶어서 저희 집으로 초대했어요. 저녁에 함께 식사하고 수다를 떨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 후 신경주가 전화 왔어요. 통화할 때 신경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람 씨가 엄청 화를 냈어요. 그리고 아람이 쓰러졌고요.”윤유성은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자 눈시울을 붉혔다.이 말을 들은 구윤은 눈썹을 찌푸렸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믿을 수는 없었다.“그런데도 우리한테 말도 없이 아람을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했네요. 이 일은 아무리 설명해도 말이 안 돼요. 오빠는 아버지의 존재와 같아요. 아람은 아버지의 가장 소중한 딸이에요.
밤이 되자 이유희의 개인 비행기가 성주 공항에 착륙했다.이소희는 아름다운 갈색 곱슬머리에 화려한 고가의 모피를 두르고 천천히 사다리를 내려와 고급 승용차에 올라탔다.지난번 신효린의 조작 사건 이후, 이유희는 그녀가 나쁜 짓을 배울까 봐 불량한 친구들과 왕래를 끊으려 했다. 그래서 외출을 금지하고 휴대폰까지 압수했다. 그러자 그녀는 울고불고 난동을 부렸고, 결국 단식 투쟁도 벌였다.이씨 사모님은 그런 딸이 너무 마음이 아파 이유희를 설득했다. 그래서 그는 외출 금지를 풀었고 제대로 반성하라고 Y 국으로 보냈다. 겨울이 돼서야 이유희는 마지못해 그녀를 돌려보냈다.‘Y 국에 너무 오래 있어서 곰팡이 끼겠어. 오빠는 한 번도 날 보러 오지 않았네. 너무해!’“오빠는 어디 있어? 왜 날 데리러 오지 않는 거야?”이소희는 이유희의 경호원인 윤범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녀는 두 발로 조수석을 찼다.윤범도 이소희를 어릴 때부터 봐왔다. 그는 이유희가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이소희의 곁을 지켜주었다. 이 순간 그는 다소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말투는 모호했다.“도련님께서…… 요즘 많이 바쁘십니다.”“오빠가 변했어! 더 이상 나에게 잘 해주지 않아!”이소희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손으로 좌석을 두드렸다.“오빠는 예전에는 아무리 바빠도 나를 데리러 왔어! 이렇게 오랫동안 전화 한 통도 없었어! 더 이상 나를 동생으로 생각하지도 않아!”그녀는 울고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윤범은 마음이 아팠다.마침내 그는 용기를 내어 나지막하게 말했다.“아가씨,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절대 화내지 마세요.”“뭔데?”이소희는 경호원이 건네 준 휴지를 받아 눈물을 닦았다.“그동안 도련님이 연락 안 한 건, 신씨 가문의 넷째 아가씨와 얽혔기 때문입니다.”“뭐, 뭐라고?”이소희는 깜짝 놀랐다.“그 뿐만 아니라…….”윤범은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모든 일을 말했다.“지난 며칠 동안 도련님은 넷째 아가씨
신효정이 눈사람에게 달려가자 밀리언은 눈사람의 머리를 굴러왔다.그녀는 큰 눈덩이를 집어 들고 까치발을 들어 눈사람의 머리를 다시 설치했다. 밀리언은 꼬리를 흔들리며 이 아름다운 소녀 주위에서 맴돌며 발밑에서 뒹굴었다.“하하…… 밀러언, 안 추워? 언니가 스웨터를 만들어 줄까?”“월윌!”밀리언은 알아들은 듯 꼬리를 흔들며 신나게 신효정의 품에 안겼다. 강아지는 혀로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핥았다.“하하하…… 간지러워! 밀리언, 그만해!”신효정과 강아지는 신나게 눈밭에서 굴렀다.이유희는 보기 드물게 따뜻하고 유쾌한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가 신효정을 바라보는 눈빛은 다정하고 부드러웠다.이렇게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효정이 그에게 그런 삶을 선사할 줄은 몰랐다. 다른 남자들이 가진 것을 이유희도 가지게 되었다.“도련님, 정말 생각도 못 했네요. 어릴 때부터 사람만 보면 물어뜯고, 도련님의 말만 듣던 밀리언이 아가씨와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네요.”정연이 다가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밀리언이 변태라서 그래!”정연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그 주인에 그 강아지구나…….’이유희는 신효정에게 달려드는 밀리언을 보자 마음이 씁쓸하며 질투가 났다.‘젠장, 내가 지금 강아지 때문에 질투하는 거야?’“밀리언! 저리 가!”이유희는 포효하며 큰 손으로 온몸에 눈이 붙어있는 신효정을 부축했다.“땅이 차가워, 여자아이들은 몸이 차가우면 안 돼.”그는 허리를 굽혀 신효정의 몸에 있는 눈을 털어주었다.“고마워요. 유희 오빠.”“고맙다는 말 하지 마.”이유희는 설레게 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았다. 뜨거운 숨결은 붉어진 그녀의 작은 얼굴에 쏟아졌다.“효정아, 넌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너와 함께해서 정말 행복해. 고맙다고 해야 할 사람은 나야.”“하지만…… 전 아무것도 안 했어요.”신효정은 멍해졌다.“많이 했어.”이유희는 얼어붙은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바닥은 계속 그녀의 손을 비비고 감싸주며
‘아. 너무 멋있어! 너무 매력적이고 남자다워. 너무 섹시해! 구아람 씨가 무슨 안목이야. 왜 우리 윤 사장님처럼 훌륭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이때 저 멀리서 목표물이 천천히 움직였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 목표물은 경주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유성이 연속으로 쏜 세 발은 정확히 경주의 머리를 조준했다.“너무 대단하세요! 윤 사장님의 사격 수준은 정말 신과 같아요. 한 발도 놓치지 않으셨어요!”우 비서는 바로 박수 치며 아부를 했다.“아쉽네.”유성은 총을 거두며 창백한 입술을 열었다.“아쉬워요?”“사진일 뿐 실제 사람이 아니잖아.”유성은 우 비서를 보지 않고 슈트 바지 주머니에서 네모난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총을 닦았다.“무슨 일이야?”“윤 사장님, 구 회장님을 미행하던 사람이 소식을 전해왔어요. 구 회장님께서 오늘 밤 구아람 씨와 신경주를 찾으러 갔는데, 구아람 씨를 데려가지 않았어요.”이 말을 하자 우 비서는 식은땀을 흘렸다. 역시 유성의 눈빛도 점차 어두워졌다.“아람을 데려가지 않았어? 그럼 아람은 아직도 신경주와 함께 이유희 집에 있다는 거야?”“네.”우 비서의 목소리까지 떨렸다. 유성의 눈빛이 사나워지며 갑자기 총알을 장전하더니 바닥을 향해 몇 발을 쏘아댔다. 총알은 우 비서의 발 아래에 터지자 겁에 질려 혼비백산했지만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 총알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유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시울을 붉혔다.“차 준비해!”...구만복이 해장원에 돌아올 때 이미 새벽 12시가 되었다. 아람을 찾으러 갈 때 안색이 엄청 어두웠지만, 지금은 이미 생각을 마친 것 같았다. 아람이 경주의 보살핌을 받아 살진 모습을 생각하자 걱정되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심지어 약간의 후회도 있었다. 당시 아람을 강력하게 감금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람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창문을 뛰어내려 탈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두근거리네. 만약에 아람이 뛰어내리다가 큰 사고가 나면 나도
유희도 마른침을 삼켰다. 순간 욕망이 불타오르며 오늘 밤 효정과 어떻게 사랑을 나눌지 생각을 마쳤다.“이 변태야!”아람은 입술을 깨물고 팔꿈치로 경주의 갈비뼈를 힘껏 때렸다. 세 사람은 거실로 돌아와 앉았다. 이 시간 효정은 이미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정연은 효정을 챙겨주고 아람과 경주, 유희에게 차를 준비해 주었다. 유희를 바라보며 말할지 말지 고민했다. 아직 보고할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았다.“본가에 갔었어.”유희는 눈을 내리깔고 차를 한 모금 하셨다. 말투는 나지막하고 죄책감이 가득 찼다.“경주야, 아람아. 우선 먼저 사과하고 싶어. 할아버지가 결국 이소희를 꺼냈어.”이 이름을 듣자 경주의 눈빛은 순간 차가워졌다.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어.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을 정도는 아니야. 열흘 정도 구속되면 풀려날 거야. 이미 예상했어.”아람은 감정 기복이 없었고 오히려 침착했다.“하지만 풀려도 이소희가 국내에서 이미 얼굴을 들지 못할 거야. 스캔들 때문에 명예를 완전히 잃을 거야.”“이소희 그 계집애의 얼굴을 내밀고 불빛 아래 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던 꿈은 완전히 깨졌어. 이씨 가문 출신이라도 이미 공식적으로 차단 되었어.”“공식 생사, 방송국, 심지어 라이브에도 나타나면 안 돼. 피아니스트가 되는 건 말할 것도 없어. 성주에서 악명이 높은 두 여자, 진주랑 이소희. 둘 다 오래도록 유명해질 거야.” “부족해. 너무 부족해.”경주의 눈에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 듯 분노의 불김이 잠재웠다. 손에 힘을 주자 아람의 손까지 아프게 했다.“아람에게 준 상처는 목숨으로 죄를 치러도 과분하지 않아. 이런 벌은 너무 부족해. 법이 이소희를 풀어주었다고 해도 난 그러지 않을 거야. 이소희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람의 가슴이 잔잔히 떨리며 경주의 어깨에 기대었다.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느껴졌다.“어휴, 경주야, 넌 나설 기회도 없을 거야. 내가 이미 보내버렸어.”유희는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눈썹을 찌푸렸다.“할
도현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곧바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했다. 유희는 눈을 부릅뜨며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긴장했다. ‘유희 오빠는 효정이만 부를 수 있는 애칭인데,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렇게 불러?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집까지 쳐들어왔어?’“오빠, 아직 안 갔어?”대치를 할 때 아람과 경주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날카로운 아람은 두 남자가 상대하는 모습을 보자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봤다.“아, 내가 문을 못 열었어. 마침 유희 도련님이 돌아와서 문을 열어줬어. 지금 갈 거야.”도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람을 향해 활짝 웃었다.“아람아, 오빠가 바쁜 일정을 마치면 같이 여행이나 가자. 맨날 같은 남자랑 붙어있지 마. 심심하잖아.”경주는 말문이 막혔다.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친오빠라는 것도 알지만 질투하기 시작했다. 도현이 떠난 후에도 유희는 침착하지 못하고 경계했다. 집에 없는 동안 도현이 효정을 만났고,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유희야,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경주는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유희는 답답한 듯 숨을 내쉬었다.“미안해. 내가 오빠보고 자료를 가져오라고 했어. 너한테 미리 말하지 못했네.”아람처럼 예리한 사람은 바로 유희의 마음을 알아채고 주동적으로 사과했다.“넌 경주랑 친구잖아. 하지만 여긴 너와 효정의 집이야. 우린 잠깐 있는 건데, 외부인을 들여보낸 건 확실히 실례였어. 다음부터 그러지 않을게.”경주는 깜짝 놀라 아람의 허리를 안고 급히 유희 대신 해명했다.“아람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유희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은 아니야.”유희는 눈을 부릅뜨고 손을 흔들었다.“형수님, 그런 말을 하는 건 날 깎아내리는 거잖아. 네가 와서 지내는 건 나도 기쁘고 경주도 기뻐. 우리 와이프도 좋아해. 네가 온 후로 효정의 기분이 엄청 좋아. 말도 많아졌어. 너희들이 쭉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난 절대 반대하지 않아!”아람은 경주의 품에 안기며 다정하게 눈을 마주쳤다.“이렇게
“다른 건 다 괜찮아. 엄마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아람의 말에 좀 상처받았어.”구만복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불빛 아래 비추어진 처량한 속눈썹이 촉촉해졌다.“이 혼탁한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도연을 잘 알겠어.”“구 회장님, 아가씨는 혈기 왕성해요. 예전에 많은 일을 경험하지 못해서 잘 모를 거예요.”기 비서는 한숨을 쉬었다.“나중에 사모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 기회가 있다면, 아가씨도 회장님의 좋은 의도를 이해할 거예요.”...구만복을 배웅하고 정연은 효정을 위층으로 데려가 쉬게 했다. 아람, 경주 그리고 도현이 거식에 앉아 얘기를 했다.“아람아, 맹세해. 내가 말한 거 아니야!”도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맹세하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알아, 우리 구씨 가문 자식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경주에게 가장 적대적인 백진 오빠도 아빠를 이용해 우리에게 압박을 주지 않아. 그런 비겁한 짓을 하지 않을 거야.”아람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가족을 무조건 믿었다. “그동안 계속 여기 살았는데, 소식을 알고 있었으면 아빠는 진작에 찾아왔어. 무조건 누가 말을 했어. 너희들이 잘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야!”도현은 의아한 듯 턱을 쓰다듬었다.“음, 누굴까.”“윤유성 그 나쁜 자식이겠지.”아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요즘 답답해서 경주에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했었어. 성주에 윤유성의 사람이 많아. 우리의 행방을 발견하고 따라와서 아빠에게 일렀을 거야. 존재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엄청 커.”유성을 의심하는 건 점점 자연스러웠다. 유성은 아람의 마음속에서 이미 나쁜 사람으로 찍혔다.“젠장, 윤유성 그 자식이 그렇게 한가해? 소질이 없네.”도현은 혀를 차며 이를 악물었다.“상관없어. 그런 수단이 좋으면 쓰라고 해. 나랑 경주가 여기 있으면 아무렇지 않아.”아람은 경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경주는 다정하게 바라보며 곁에 있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를 했다. 그녀는 키스해달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경주는 늘 적극적이었다.
저녁 식사는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구만복과 아람은 마음이 통하여 아무도 서로를 불쾌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헐, 몰래 밥을 먹어?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돌아다니다 지친 도현은 배도 고파서 식탁으로 달려가 앉았다.“아람아, 넌 의리가 없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날 부르지 않아? 내가 많이 먹어도 구진 형보다 하겠어? 내가 네 밥을 뺏어 먹을까 봐 그래?”구만복과 아람은 도현을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아, 널 잊었네.”...저녁 식사를 마친 구만복은 떠날 준비를 했다. 아람은 계단에 서서 구만복과 기 비서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경주는 실례를 할까 봐 구만복을 차까지 배웅했다. 차에 타기 전 구만복의 훤칠한 몸은 갑자기 멈칫거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경주를 바라보았다.“득의양양하지 마. 오늘 밤 내가 남은 건 우리 딸이 보고 싶어서야. 아람과 오래 있고 싶어. 내가 널 인정하지 않았고, 용서하지도 않았어.” 경주는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지만 목은 쉬었고 씁쓸하게 느껴졌다.“알아요. 제가 너무 못난 거. 그래서 회장님의 용서를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저 저에게 아람에게 잘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요. 전혀 아깝지 않아요.”구만복은 깜짝 놀라며 차갑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신경주, 네가 아람 앞에서 어떻게 하든 그건 네 일이야. 하지만 내 앞에서 깊은 애정이 있는 척할 필요 없어.”“난 가족 외에 누구한테도 차갑게 굴어. 네가 내 딸을 위해 목숨을 포기해도 싫어. 여전히 네가 싫어. 너희들 사이를 여전히 반대하고 있어. 결국 네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그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제 인생에서 후회되는 건 딱 한 가지예요.”경주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지며 입을 떨며 말했다.“처음부터 제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거예요. 마지막까지 아람과 좋은 결과가 없어도 평생 지켜줄 거예요. 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요.”구만복은 경주를 한
한 시간 동안 고생한 결과,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간단한 요리는 괜찮지만 난의도가 올라가니 경주가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 보였다. 이것도 아람의 감독과 지도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주 혼자 하면 아마 밤을 새울 것이다. 요리하느라 바쁜 경주는 이마에 땀이 맺혔고, 입고 있는 흰 셔츠도 땀에 푹 젖었다. 아람이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파 휴지로 땀을 닦아주며 입을 삐죽거렸다.“아빠 정말 짜증 나. 집에 셰프도 많고 능력자 연서 이모도 있어서 맛있는 음식을 가득 먹을 수 있는데, 꼭 남아서 사람을 괴롭혀?”“아람아, 구 회장님과 오랜만에 만나잖아. 그리고 너도 내가 만든 음식을 구 회장님께 드리고 싶다고 했잖아.”경주는 전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하는 아람과 함께 요리를 하는 순간을 즐겼다. 아람은 말을 잘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그건 화나서 한 말이야. 아빠는 내 뜻을 알지도 못해!”“괜찮아, 아람아.”경주는 긴 팔로 아람의 허리를 끌어안고 나지막하게 위로했다.“나도 구 회장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간단한 요리라도 좋아.”“잘 보이고 싶어?”아람은 경주의 몸에 밀착하며 코끝이 닿을락 말락 했다.“그 생각을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아빠는 고집이 세. 네가 아무리 잘 보여도 아빠는 투덜거릴 거야. 네가 잘 보일 이유도 없어. 우리 둘이 만나는 건 아빠의 의견이 필요 없어.”“켁.”구만복은 기침을 하며 두 사람의 말을 방해했다. 아람은 째려보았다.‘이 늙은이가 정말 흥을 깨네!’“허, 고생했네, 신 사장님. 아침을 차려 주는 줄 알았어.”구만복은 피식 웃더니 우아하게 앉았다.“허, 밥을 먹겠다는 건 아빠야. 강요한 사람이 없어.”아람은 비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경주는 나 말고 누구한테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없어. 영광인 줄 알아. 투정 부리지 말고.”구만복은 말문이 막혔다. 경주도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다. 구만복과 아람의 말투와 분위기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아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치마를 경주에게 둘러주고 뒤로 돌아와 묶어주었다.“그런데 우리 아빠의 입은 그동안 연서 이모의 대접을 받아서 엄청 까다롭고 식탐이 많아.”경주는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걱정 마. 내가 옆에서 가르쳐줄게. 내 말대로 천천히 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어.”경주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튼튼한 팔로 아람을 품으로 끌어당기며 이마에 키스를 했다.“명령대로 할게요. 우리 사령관님.”...“야야, 고기를 먼저 넣어야지, 순서가 틀렸어!”“야야! 식초를 너무 많이 넣었어!”“아, 타잖아. 빨리 뒤집어!”두 사람은 부엌에서 시끌벅적하게 요리를 하며 어수선했다. 구만복은 원래 거실에 앉아 눈을 감가 쉬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자 눈을 뜨고 저도 모르게 부엌을 바라보았다. 별장 1층에 있는 주방은 개방형 구조여서 거실과 거리는 멀지만 구만복의 위치에서 안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경주의 훤칠한 뒷모습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람은 옆에서 가르쳐주며 가끔 장난스럽게 엉덩이로 경주를 부딪치며 머리를 툭툭 치는 모습도 보였다. 경주는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웃었다.‘바보 같네. 아람은 도대체 신경주를 왜 좋아하는 거야!’구만복은 비록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점차 부드러워진 시선은 아람과 경주에게서 뗄 수 없었다. 순간 화목한 가족 느낌이 들었다. 이런 편한 분위기와 단순한 행복이 바로 구만복이 그토록 추구하던 것이었다.“구 회장님, 아가씨를 보세요. 얼마나 행복하게 웃고 있어요. 아가씨가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시죠?”곁에 서 있는 기 비서는 흐뭇하게 웃었다.“흥, 당당한 나 구만복이 어떻게 이런 사랑만 모르는 딸을 낳았을까. 나중에 눈물을 흘릴 거야!”구만복은 화를 내며 중얼거렸다. 기 비서는 웃으며 타일렀다.“사랑에 빠지면 빠졌죠. 우리 아가씨의 능력과 미모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어요. 어마어마한 재산을 매일 KS 옥상에서 뿌려도 충분해요.
“정말이에요?”도현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러자 효정이 갈색 곰인형을 품에 안은 채 눈을 내리깔고 소심하고 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도현은 다정하게 웃었다.“당연하지, 진심으로 얘기한 거야. 네가 그렸어?”“네.”효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신경을 썼겠네. 감정도 많이 표현된 것 같아. 많이 힘들었지?”“네, 괜찮아요. 무엇보다도 유희 오빠가 좋아하거든요.”유희를 언급하자 효정의 맑은 눈에는 달콤한 미소를 머금으며 얼굴이 붉어졌다.“유희 오빠가 너무 잘해줘요. 제가 오빠한테 줄 게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선물했어요. 싫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도현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랫동안 경찰로 일하면서 매일 어두운 세상에서 사회의 수많은 사악한 악마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렇게 순수한 눈동자를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눈앞에 있는 효정은 먼지 하나 없는 밝은 달빛과 같아 순간 어두운 마음한 구석을 비춰주었다.“형사님?”도현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효정은 혼란스러운 듯 눈을 깜빡였다. 도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꼬리를 올렸다.“지난번 셋째 사모님 생일 연회에서 아람보고 새언니라고 불렀었지? 그럼 낯설게 굴지 말고 새언니처럼 날 오빠라고 불러.”“도현, 오빠?”효정도 얌전히 시키는 대로 불렀다.“도현 도련님. 효정 아가씨는 저희 도련님의 여자예요. 사적으로 사모님과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정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도현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재빨리 효정의 곁으로 다가가 유희를 도와 여자를 지켜주었다. 도현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담담하게 웃었다.“제가 무슨 실수를 해서 이렇게 경비하는지 모르겠네요. 왜요, 이유희의 여자가 되면 정상적인 소통을 할 권리도 없어요? 얘기를 나눈 남자는 죽어야 해요? 이건 집착이에요,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거예요?”“너!”정연은 이를 악물며 분노가 눈에서 타오르듯 했다. 아람의 친오빠가 아니었다면 정연은 이미 뺨을 날렸을 것이다.“연이 언니.”효정은
거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서리처럼 차가워졌다. 도현은 구만복을 설득하지 못하고, 설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느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정연도 효정을 데리고 갔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경주는 숨이 막혔다. 떨리는 손이 저도 모르게 아람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손을 움켜쥐며 동작을 멈추었다.‘아람아, 정말, 널 보내고 싶지 않아.’경주는 겁쟁이가 아니다.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고 미워하면 끝까지 미워하는 스타일이다. 아람에게 빚을 졌을 뿐만 아니라 구만복에게도 죄책감을 느꼈다. 3년간의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이나 아람이 잃어버린 아이도 모두 자신의 잘못 같았다. 자신이 구만복의 소중한 딸에게 상처를 주어 용서할 수없는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구만복이 욕설을 퍼붓고 다시 경주를 때려도 화가 풀릴 때까지 맞아줄 수 있었다.“아빠, 무슨 생각해.”아람은 피식 웃으며 단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아빠의 말을 듣는다면 애초에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가출하지 않았어. 내 걱정은 하지 마.”“내가 이국땅을 떠돌며 방황하는 그 긴 세월 동안 아빠가 나를 찾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내 행복을 망치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네.”경주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앞으로 다가가 불안에 가득 찬 눈으로 아람의 단호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구아람, 너!”구만복은 순간 화가 나서 안색이 창백해지며 숨을 헐떡였다.“지금 네 모습을 봐! 여전히 우리 구씨 가문의 아가씨야? 직접 마트에 가? 설마 그동안 네가 직접 요리를 했어? 신씨 가문에게 공짜로 3년 동안 일했는데, 아직도 모자라? 이게 네가 원하는 사랑이고, 원하는 삶이야?”구만복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 사랑하는 여자의 유일한 딸은 사랑만 받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억울함과 고생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신경주 저 나쁜 자식!’“아빠,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야. 평범한 인생.”아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감정으로 치솟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