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야, 이분은…….”범 선생은 임수해를 바라보았다.“아! 이분은…… 사촌 오빠예요.”아람은 대충 거짓말을 했다.평소 삼림에만 있어 세상 일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그녀가 최근 성주를 떠들썩하게 만든 구씨 가문의 아가씨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백소아 씨, 집안 유전자가 정말 훌륭하네요! 사촌 오빠가 너무 잘 생겼어요!”하 팀장은 솔직하게 칭찬했다.그러자 수해는 기뻐서 얼굴이 붉어졌다.‘커플이 될 수 없다면 사촌 오빠도 괜찮네.’“소아야, 요즘 날씨가 많이 변해서 언제 폭우가 쏟아질지 몰라.”범 선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반가워, 힘들게 산까지 올라갈 필요 없어.”“힘들지 않아요. 잊으셨어요? 저는 ‘여자 산신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훌륭한 삼림 보호원이에요!”아람은 자랑스럽게 가슴을 두드렸다.“하하, 위대한 신령님을 한꺼번에 두 분이나 모시다니, 얼마나 큰 축복이야!”범 선생은 크게 웃었다.그러자 아람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네? 저랑 경쟁하는 사람이 누구예요?”“신씨 그룹의 신 사장님!”하 팀장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네?”아람과 수해는 깜짝 놀랐다.“신씨 그룹의 사장인 신경주! 예상치 못했죠?”하 팀장은 경주를 마음에 들어 하는 듯 눈을 반짝거렸다.“저도 2년 전에 정체를 알게 되었어요. 등산 실력을 보면 정말 고귀한 사장님 같지 않아요! 재작년에 범 선생과 함께 산에 올라 폭우에 갇힌 등산객 두 명을 구했어요. 자신의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사람들을 구해서 ‘남자 산신령’이라고 불렸어요!”“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수 없다는데, 어떻게 신령님 두 명이 있을 수 있어.”아람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기억이 해일처럼 밀려오더니 복잡한 감정이 느껴져 중얼거렸다.“나야말로 산신령이야. 신경주는 산귀신이지.”“소아야, 뭐라고 했어?”범 선생이 물었다.“네? 신 사장님은 정말 착한 분이라고요!”아람은 억지로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그럼, 신 사장님은 정말
“좋아! 나도 같이 가자!”범 선생은 딴말 없었다.“사부님! 오늘 날씨가 불안정해서요. 몸 상태도…….”하 팀장의 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괜찮아. 난 건강해, 견딜 수 있어!”“범 선생님, 걱정하지 마시고 하 팀장과 저에게 맡기세요!”아람은 범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되어 급히 말했다.“제가 군의관을 했었어요. 생명 위험이 있으면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어요!”군의관을 했었다는 그녀의 말에 하 팀장은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 그래.”범 선생님은 폐를 끼칠까 봐 아람의 손을 꼭 잡았다.“소아야, 부탁할게.”……신경주는 혼자 차를 몰고 삼림공원으로 들어갔다.그도 눈에 띄지 않는 차로 바꾸었다. 그래서 등산 입구에 주차한 아람의 차와 지나쳤을 때 수해에게 들키지 않았다.검은색 SUV는 캠프 정문 밖 산기슭으로 향했다.“범 선생님. 선생님?”짙은 녹색 등산복을 입은 경주가 차에서 내리자 그의 눈빛은 별처럼 빛났고 온몸에 강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언뜻 보기에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특전사처럼 보였다.“신 사장님!”범 선생은 자상한 미소를 머금고 재빨리 맞이하러 나왔다.“날도 안 좋고, 평소에 바쁘실 텐데 왜 왔어?”“너무 바빠서 오늘 오지 않으면 오랫동안 올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요.”경주는 한숨을 내쉬었다.“선생님, 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그냥 경주라고 불러주시면 돼요.”“예전에는 열일곱 살이나 열여덟 살인 아이를 부르는 거야. 이제 그룹 사장이 되었는데 또 그렇게 부르면 짜증 나서 기부를 안 하면 어떡해?”범 선생은 농담을 던졌다.“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경주는 진지하게 말했다.“저는 이미 비서 한무의 이름으로 거액을 저축했어요. 만약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비서가 매년 산림 공원에 기부할 겁니다.”범 선생은 이 청년이 그렇게 진지할 줄 몰라서 그의 팔을 툭툭 때렸다.“퉤퉤! 왜 이런 불길한 말을 해! 농담하는 거야.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네. 오늘 무슨 날이지 모르겠어, 내가 제
우르릉-이때 흐른 하늘이 매우 상황에 맞게 번개를 쳤다.경주는 마치 이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타오르는 심장만이 미친 듯이 뛰었고 복잡한 감정이 그의 마음을 뒤집고 있다.“범 선생님, 백소아 씨가 순찰하러 온 지 얼마나 됐어요?”경주는 강한 감정을 억누르는 듯 긴장되고 둔탁했다.“3년 됐어. 지난 3년 동안 도와주러 자주 왔었어.”그 3년은 그들이 결혼한 3년이었다.경주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씁쓸한 감정이 밀려들어와 숨쉬기 힘들었다.‘백소아…… 구아람…… 수년 동안 숨기면서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네? 난 이유가 있지만, 넌 무슨 이유로 이렇게 하는 거야?’경주의 머리가 또다시 심하게 아팠고 밀려오는 궁금증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비가 오겠네!”범 선생은 비가 쏟아 내릴 듯한 하늘을 보며 무전기를 꺼내 하 팀장에게 급히 연락했다.“동우야, 폭우가 내릴 것 같아. 구조할 때 팀원들의 안전을 잘 챙기고 위험을 감수하지 마! 특히 소아를 잘 지켜줘야 해!”“걱정 마세요. 사부님!”하 팀장은 재빨리 대답했다.경주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를 악물고 기락산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신 사장! 어디 가!”범 선생은 소리를 쳤다.하지만 경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찾으러 가야 돼.’……하늘이 흐려지고 먹구름이 몰려왔다.분명 낮인데도 마치 밤이 내려앉은 것처럼 음침했다.하늘이 번쩍거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산속 숨은 팀원들을 사납게 추방하는 것 같았다.“어이가 없네!”모두가 힘겹게 나가가면서 불평을 털어놓았다.“요즘 폭풍이 닥칠 거라고 했는데, 왜 아직도 등산하는 사람이 있어?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이미 일어난 일에 불평하지 마. 보호팀으로 우리의 임무는 등산객의 안전을 지키는 거야!”폭우로 온몸이 흠뻑 젖은 하 팀장이 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팀장님, 여기 좀 보세요!”아람은 예리한 눈빛으로 바위 틈새에서 실종된 등산객의 핸드폰을 발견했다.“그 등산객의
“제가 내려가겠습니다!”아람은 망설이지 않고 자진해서 나섰다.“제 몸무게가 가벼워서 감당할 수 있을 거예요!”모두들 걱정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백소아 씨, 그래도 안 돼요!”순간이 다가오자 하 팀장은 겁에 질려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사부님과 약속을 했어요. 백소아 씨의 안전을 지켜야 해요. 제가 내려갈게요.”“안됩니다. 팀장님! 남자의 몸무게를 전혀 견디지 못한다는 걸 아시잖아요!”팀원들은 당황했다.“팀장님, 전 전문적이고 자격을 갖춘 살림 보호원이에요!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요!”말을 하자 아람은 허리에 밧줄을 묶고 다른 밧줄을 들고 산비탈로 내려갔다.그녀는 매우 능숙하고 전문적으로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하지만 폭우로 인해 절벽이 미끄러운 진흙으로 덮여 있어서 구조가 더 어려워졌다.“제가 왔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마침내 아람은 진흙투성이가 된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발…… 발이…… 움직일 수 없어요.”그녀는 주체할 수없이 흐느꼈고, 배고픔과 추위 때문에 이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졌다.아람은 아주 훌륭한 외과의사여서 발이 골절이 되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았다.그녀는 여인을 안고 허리에 밧줄을 단단히 고정시켜주었다.이때, 아람은 발밑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은 무서운 떨림을 느꼈다.“안 돼! 산사태야! 빨리 끌어당겨요!”하 팀장은 겁에 질려 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에 공포가 느껴졌고, 손으로 밧줄을 힘겹게 잡아당겼다.하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발은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졌다.“안 돼요, 팀장님!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죽어요!”“팀장님, 더는 못 버티겠어요!”“팀장님! 한 명만 살릴 수 있어요! 지금 가지 않으면 너무 늦어요!”말하는 순간, 흙이 뒤섞인 파편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급류처럼 끊임없이 밀려들었다.하 팀장은 온 힘을 다하며 히스테릭한 소리를 질렀다.산사태의 마지막 순간,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마침내 한 여자를
푹우, 자갈, 진흙, 짙은 연기…….구아람이 의식이 희미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절망적이었다.그러나 재난이 닥치기 전,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등산객을 밀어 올렸다.희미한 희망이라도 그녀가 살아남길길 바랐다.모든 위험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보호팀 의상을 입을 자격도 없고, 이 자리에 나타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만일 죽음이 가치 있는 것이라면, 이 시끌벅적한 인생이 헛되지 않을 것 같았다.사실 전까지 그렇게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죽음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세 사모님이 아픈 아람을 데리고 주사를 놓으러 가도 온 하루 울며 떼를 쓰던 어린 아이였다.열한 살 때 경주와 이곳에서 만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그의 용기와 끈기는 깊은 바닷속의 등대처럼 반짝이는 길로 안내해 주었고, 우연한 만남이지만 그녀와 생사를 함께하는 정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아람에게 처음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었다.나중에 그와 결혼했더라도,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더라도 인정해야만 했다.경주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삶을 바꾼 것이었다.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많은 것이 변해 버렸지만, 아람은 그 모든 것을 감사히 받아들였다.……모든 것이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잠시 혼수상태에 빠진 아람은 길고 이상한 꿈을 꿨다.부모님 곁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어렸을 때 오빠들과 생일을 함께 보낸 꿈을 꾸었다.큰오빠는 그녀를 안고 산더미 같은 선물 위에 올려놓았고, 둘째 오빠는 음 이탈한 생일 노래를 불렀으며, 셋째 오빠는 케이크를 들고 촛불을 불었고, 넷째 오빠는 그녀가 항상 꿈꿔왔던 장난감 총을 작은 손에 쥐여주었다.그리고…… 경주도 있었다.생사를 걸고 나란히 싸웠던 것이 떠올랐고, 할아버지 곁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의 눈빛, 그리고 경주가 이혼 합의서를 내던지며 차갑게 떠나라고 했을 때의 모습도 떠올랐다.갑자기 뼈를 찌르는 고통이 온몸으로 퍼졌다.아람은 벌떡 깨어나 익사한
구아람의 친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 세 사모님의 손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강소연은 종종 그녀와 함께 복싱, 승마, 양궁, 암벽 타기를 즐겼고, 이 또한 두 사람의 공동 취미로 되었다.이 취미가 지금 도움이 되었다.아람이 곧 산 정상에 오르자 갑자기 몸 아래에서 또 다른 강한 떨림이 느껴졌고 귀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무수히 많은 작은 자갈들이 계속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산사태가 다시 일어났다.“하느님은 정말 의리가 없네요! 제가 일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선행을 베풀고 돈을 기부하며 덕을 쌓았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예요?”갑자기 아람이가 밟고 있던 바위가 무너져 내려 몸은 순식간에 공중에 떴고 모든 지지대가 사라졌다.“안 돼! 살려주세요!”절망감이 몰려오면서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떴다.절벽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헛디디면 몸이 산산조각으로 될 것이다.아람의 눈 끝에서 달갑지 않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구아람!”곧 크고 거친 손이 갑자기 아람의 가느다란 손목을 움켜쥐고 저승문에서 그녀를 끌어당겼다.떨어지는 느낌이 사라지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별처럼 밝고 강렬한 경주의 눈빛과 마주치더니 심장 박동과 호흡이 동시에 멈춰진 것 같았다.“신경주…….”‘꿈인가? 환각일까?’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걱정 마! 내가 여기 있잖아!”경주의 시선이 아람의 창백한 얼굴로 옮기자 두려움, 당황, 기쁨, 아픔…… 모든 감정이 한데 섞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감쌌다.땀을 뻘뻘 흘리며 왼손으로 땅바닥의 진흙을 파고 있었고, 그녀를 잡고 있던 붉은 손은 떨고 있었다.그는 자신의 몸도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쩌면 둘이 함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신경주…….”아람은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눈물은 창백한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나 죽기 싫어…….”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여기까지 올라왔고 늘 강인했다.하지만 경주를 본 순간, 단단했던 몸과 마음이
경주는 충격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왜냐하면 절벽이 무너지기 적전이었기 때문이다.“소아야! 빨리!”경주는 조급한 마음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을 외쳤다.그러자 아람은 눈을 부릅뜨고 가슴이 두근거렸다.그 소리에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순식간에 절벽을 기어올라 경주의 품으로 덮였다.남자는 팔을 꽉 조여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았다.우르릉-무너지려는 순간, 경주는 몸으로 아람을 감싸고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구르며 마침내 탈출했다.“악…….”등뼈가 바위에 세게 부딪히자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충격이 가볍지 않아 아파서 얼굴에 흘리는 식은땀은 비와 빠르게 섞였다.“다쳤어?”품에 안긴 아람은 고개를 들어 급히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아니.”경주는 통증을 참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람은 기절할 듯이 놀라 그의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늘어진 채 한숨을 쉬었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경주는 젖은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쉰 목소리로 물었다.“뭐?”아람은 가슴이 떨려 그의 반짝이는 눈을 피했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우리 처음 만난 게 13년 전이잖아? 왜 네가 바로 내가 구해주었던 여자아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어?”경주는 내장이 모두 녹아내릴 듯한 씁쓸함을 느꼈고 숨을 헐떡이며 말을 내뱉었다.아람의 지저분한 작은 얼굴이 너무 하얘져 투명해지기 직전이다.‘갑자기 소아라고 부른 건…… 기억이 난 건가? 왜 하필 이때 기억해 낸 거야? 13년이나 늦었네…… 차라리 평생 기억하지 말지.’“말해줘, 구아람……. 말해!”경주는 격렬한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고, 손끝으로 아람의 턱을 꼬집어 눈을 마주하게 했다.“내가 너와 결혼했을 때, 왜 내가 소아라고 하는지 기억나?”아람은 그를 깊이 바라보며 가슴이 내려앉았다.순간 경주의 안색이 변했고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에 가슴이 아팠다.‘당연히 기억나지. 이름을 물었는데 말이 없어서 내가 아무렇지 않게 소아라고 불렀었지.’하지만 경주는 농담처
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구아람은 손이 따뜻하다고 느꼈다.신경주의 손바닥이 이미 감각이 없어진 그녀의 새끼손가락까지 전례 없는 부드러운 열기로 감쌌다.아람은 마치 죽은 신경이 살아난 것 같았다.그녀는 편안하게 눈을 감고 그의 넓은 등에 기대었다. 차가운 손은 서서히 따뜻해져 만족스러운 듯 손을 움켜쥐었다.가슴이 두근거리는 경주는 그녀가 싫어하며 손을 뺄까 봐 두려워 손에 힘을 주었다.“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그의 목소리는 엄숙하며 분노가 담겨 있었고, 척추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하지만 아람이가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며 아픔을 참았다.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신뢰를 얻고 싶었고,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음…… 추워. 빨리 가.”아람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좀만 버텨. 곧 비를 피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경주의 거친 헐떡거림에 하얀 수증기가 눈을 가렸고, 발을 내딛기가 어려웠다.“못 찾으면 어떡해…….”아람은 정말 힘이 없어 목소리가 부드러웠다.“그럼 내 품에 숨어.”경주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싫, 싫어! 딴 생각 하지 마!”당황한 아람은 가슴이 떨려 눈을 깜빡거렸다.경주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몸부림을 치는 여인을 엎고 있지만 온몸에 무한한 에너지로 가득 차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건드리지 말고 빨리 가자. 어차피 도망도 못 가는데.’그들은 서로 가까이 있으며 호흡도 심장 박동도 일치했다.마치 13년 전의 스릴 넘치는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다만 등에 업힌 소녀가 이미 컸다.심지어 그와 결혼하여 3년 동안 그의 아내가 되었다.……한편.임수해는 아람이가 걱정되어 우산을 들고 폭우를 무릅쓰고 캠프로 달려갔다.캠프에 도착했을 때, 그가 들고 있던 검은 우산은 이미 망가졌고, 반듯한 양복은 모두 젖었으며 깨끗한 구두와 바지는 흙으로 덮여있었다.“아가씨!”수해가 문을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레인코트를 입은 범 선생과 한무와 부딪혔다.‘앞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