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는 서둘러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 채널로 바꾸었다.또 3시 뉴스였다.이것을 보자 신경주는 눈썹을 찌푸렸다. 지난번 백흥 타운 프로젝트를 뺏긴 후, 이 뉴스 프로그램을 보면 기분이 나빠졌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3시 뉴스입니다. 우선 오늘의 톱뉴스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국제 영화배우 안나 조는 어젯밤 성주에 도착하여 수많은 팬들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번 안나 조는 아픈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어머니의 고향인 성주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합니다. 그동안 유명 호텔인 신씨 호텔과 KS WORLD이 안나 조의 결혼식 주최권을 따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양측의 며칠간 경쟁 끝에 안나 조는 마침내 이상적인 호텔을 선택했습니다.”신경주는 마른침을 삼키며 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바로 KS WORLD입니다. 원하신 대로 안나 조의 결혼식 주최권을 따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그 순간 신경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이명이 들려오더니 머리가 뚫린 것처럼 심하게 아파났다.그러나 신효린의 얼굴에는 희색이 돌았다.‘상황이 무너질수록 신경주는 더 쓸모없어 보이면 내가 권력을 잡을 기회가 더 커지잖아!’곧이어 화면에서는 ‘3시 뉴스’의 인터뷰를 받고 있는 안나 조가 KS WORLD를 선택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는 모습이 나타났다.“신씨 호텔도 훌륭한 호텔이지만, 개인적으로 KS WORLD의 웨딩 기획안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호텔 실력과 상관없이 제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입니다…….”신광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리모컨을 들고 티비를 끄더니 힘껏 내동댕이쳤다.“허, 이젠 순간적인 득실에 신경 쓸 것도 없이 여지없이 져버렸네! 안나 조의 결혼식을 따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젯밤의 일이 남 좋은 일로 되었으니, 이걸 어떻게 해결할 거야?”얼굴이 하얗게 질린 신경주는 말을 하려는 순간 신효린이 먼저 위로를 하며 말했다.“에이, 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몸조심 해야죠.”진주가 몸소 보여 준 언행으로 신경주의 편을 들어주었다
“제가 구아람과 이혼했고 더 이상 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마세요.”안색이 어두운 신경주는 차가운 눈빛을 하며 한 걸음 다가섰다.신광구는 순간 어깨가 부르를 떨었고 부자는 눈을 마주치며 대치했다.신효린도 그 매서운 눈빛에 겁을 먹었다.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환심을 사기 위해 돌아서 신광구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아버지, 구아람 때문에 오빠랑 얼굴 붉히며 싸우지 마세요. 지금은 우세를 차지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잖아요.”“효린아, 그 뜻은…… 무슨 방법이라도 있다는 거야?”신광구도 그 말의 뜻을 눈치채고 다급하게 물었다.“아버지, 저에게 안나 조의 일을 전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그녀를 다시 되찾을 방법이 있을 거예요.”신효린은 굳게 맹세를 하며 말했다.“KS WORLD에서 결혼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고 해도, 이런 일은 계획에 따라갈 수 없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신경주는 눈썹을 찌푸렸다.그는 이복동생을 꽤 잘 아는 편이다. 야심만만하여 신씨 그룹에서 늘 일정한 권력을 얻으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욕망을 따라 줄 능력이 없다.하지만 이번에 감히 당당히 경쟁하고 모든 일을 도맡으려는 모습은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분명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어.’“좋아! 역시 믿음직한 우리 딸, 패기가 있네!”만족스러운 듯 웃는 신광구는 신효린의 손을 꼭 잡았다.“그럼 안나 조의 결혼식은 모두 너에게 맡길게, 이따가 오빠랑 인수인계를 해! 경주야, 넌 잠시 빠져있어, 또 구아람이랑 엮이지 말고, 효린이에게 맡겨!”굳어진 신경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공을 세우면 신광구는 그를 칭찬해 주지 않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늘 먼저 그를 처벌하고 제압했다.왜냐하면 사생아인 그를 업신여기고 있고 또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봐 두려워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아빠!”신이 난 신효린은 신광구를 끌어안았다.“일이 성사된다면 내가 반드시 보상을 줄게.
회장실에서 나온 신경주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사장님, 어떠셨어요? 회장님께서…… 난처하게 하진 않았어요?”한무는 미리 커피를 준비하고 걱정스럽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신경주는 소파에 걸터앉아 커피잔을 들고 우울하게 한 모금 마셨다.“그러진 않았어.”한무는 마음이 놓여 숨을 내쉬었다.“그게 가능할 거 같아?”그러자 한무는 또다시 눈을 부릅뜨고 걱정하기 시작했다.“그럴 줄 알았어요! 정말 친아버지 같지 않네요!”“허, 가끔은 진짜 친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좋겠어.”향긋한 커피도 그저 약처럼 씁쓸하게 느껴졌다.“아쉽게도 내 몸엔 그의 피가 흐르고 있어”“어휴.”마음이 답답한 한무는 한숨을 내쉬며 말문이 막혔다.“신광구는 이미 안나 조 결혼식 프로젝트를 신효린에게 맡겼어.”“네?”깜짝 놀란 한무는 화를 내며 울부짖었다.“안나 조의 결혼식을 이용해 신씨 호텔의 명성을 되살린다는 아이디어는 사장님의 생각이라는 건 둘째치고, 팀을 이끌고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결혼식 계획을 논의하며 밤낮으로 고생했잖아요. 그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원지 않아요. 왜 노력한 건 보지도 않고 그렇게 쉽게 성과를 남에게 넘겨줄 수 있어요? 분명 진주가 뒤에서 부추겼을 거예요!”“그뿐만 아니라 신효린이 이 일을 성사시키면 신씨 호텔의 경영권도 그녀의 손에 넘어갈 거야.”신경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말했다.이 말을 듣자 한무는 숨을 들이쉬며 모덜미를 잡았다.‘그 어르신이 평소 그룹을 경영할 때는 정확한 통찰력이 없어 보였는데 아들을 괴롭히는 데 일가견이 있네!’“그, 그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뺏기는 것을 보고만 있었어요?”“부녀가 맞장구를 치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 신광구가 처음부터 나의 권력을 빼앗고 싶어 했어.”신경주는 화내지도 않고 늘 침착했다.“마침 신효린이 그에게 이유를 만들어주었지.”이런 일로 화를 크게 낸다면 지금껏 살아오지 못하고 주유처럼 화병으로 죽었을 것이다.“그럼 우린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 기다려요?”달갑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토록 좌절을 느끼게 한 여자는 없었다. 김은주에게 이용하고 배신을 당해도 신경주는 그저 화가 날 뿐이었다.신씨 호텔보다 일사불란하게 잘 꾸며진 호텔 로비를 보는 신경주는 쓴웃음을 지었다.그와 결혼한 구아람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늘 당하고 사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시골 사람’ 신분을 얕잡아 보진 않았지만 자신의 세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절대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그녀의 세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그가 끈질기게 쫓아가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인 것 같았다.구아람이 모든 자존심과 존엄성을 버리고 곁에 있어주던 그 3년이 그녀와 제일 가까웠던 순간이었다.높은 자리에 있어 우러러 봐야 하는 사람은 여태껏 신경주가 아니었다.마침 호텔의 직원 두 명에게 일을 맡기고 있는 임수해는 우연히 뒤를 돌아보자 로비에 서 있는 신경주가 눈에 들어왔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게 하고, 마저 일 보세요.”“네, 임 비서님.”직원들이 떠난 후, 임수해는 싸늘하게 신경주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신 사장님, 레스토랑은 왼쪽에 있고 라운지는 오른쪽에 있습니다. 카페는 3층에 있고 방 잡으려면 카운터로 가세요.” “구 사장님을 만나고 싶습니다.”무뚝뚝한 신경주는 직설적으로 말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우리 구 사장님을 아무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차갑게 피식 웃는 임수해는 눈에 원망이 가득 찼다.호텔에서 손님을 대하는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었더라면 이미 신경주를 쫓아냈을 것이다.“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오늘은 꼭 구 사장님을 만나야겠어요.”신경주는 자신이 점점 뻔뻔스러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이라면 굴욕을 당하면 바로 떠났을 텐데, 이번에는 남으려고 못 들은 척하고 있있다.‘욕먹는 게 무슨 대수겠어, 구아람을 만나지 못하면 잠을 설칠 것 같네.’“아가씨는 당신을 만나 주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빠지거든요.
구아람은 비록 나타나지 않았지만 호텔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부 꿰뚫고 있었다. “아가씨, 신경주 사장님과 윤씨 가문 넷째 도련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임수해는 손끝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누르고 등을 돌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경주와 윤유성은 등을 꼿꼿이 펴고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날 만나? 허, 날 무슨 일로 만나는데?” “아가씨, 아마 신경주 사장님과 윤유성 씨는 오늘 아가씨를 뵙지 않으면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경비원들을 불러 저들을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임수해는 경주와 윤유성의 확고한 태도에 난처하단 듯이 말했다. “그들에게 무슨 일로 날 찾냐고 물어라.” 아람은 냉랭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아가씨께서 당신들이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냐고 물으십니다.” 임수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전 감사의 의미로 구아람 씨께 간단한 식사를 대접하려고 합니다.” 윤유성은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슬쩍 올렸다. “지난번 사인받은 앨범은 이미 저의 어머니께 전해드렸습니다. 아주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감사의 의미로 구아람 씨께 밥 한 끼를 대접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요.” 말하면서 윤유성은 싸늘한 눈빛으로 경주를 슬쩍 흘겼다. 윤유성은 아람이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이유라면 아람이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게다가 윤유성은 아람이 결코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에 그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경주보다 못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임수해는 윤유성의 말을 듣고 경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경주는 담담하게 말했다.“공적인 일입니다.” 윤유성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아람은 잠시 침묵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임수해에게 분부했다. “신경주 사장님을 모셔오거라.” 순간 윤유성과 임수해는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경주는 조각한 듯이 우아한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었다. 경주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
“아가씨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임수해는 마치 신경주와 가까이 있으면 무슨 전염병이라도 옮는 것처럼 멀찌감치 서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저의 아가씨께서 너무 착하신 것뿐이니까요. 만일 저였다면 당신을 야구 방망이로 때려 쫓아냈을 겁니다.” 말이 끝나자 임수해는 몸을 돌려 떠났다. 경주는 한숨을 내쉬며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KS WORLD 호텔의 주방은 너무 스테인리스 스틸 실버와 순백 두 가지 색상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마치 무균 식품 생산업장처럼 너무 깨끗했다.뿐만 아니라 공간은 매우 조용했는데 경주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주방의 한 모퉁이를 돌자 경주는 스테인리스 스틸 조작대 옆에 가늘고 아름다운 구아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넓고 큰 조작대는 그 가냘픈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오늘 아람은 또 한번 경주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아람은 순백의 조리복을 입고 머리칼은 전부 위생모자로 가렸으며 입과 코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핑크빛이 감도는 반죽이 들려 있었는데 오른손으로 가위를 잡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반죽을 조각하고 있었다. 아람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경주가 들어온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때 경주는 문득 오씨 아줌마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도련님, 도련님께서 드신 그 쿠키들은 밖에서 산 것도 아니고 셰프가 만든 것도 아닙니다. 전부 작은 사모님께서 직접 만든 것입니다! 셰프님도 그러는데 작은 사모님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랍니다.” “도련님께서 맛있게 드신 그 쿠키 하나에도 작은 사모님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으셨는지 압니까? 하루 종일 주방에만 틀어박혀 지내시고 허리가 뻐근해도 파스만 붙이며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순간 경주는 눈이 파르르 떨려왔고 가슴에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었다. 이건 경주가 처음으로 아람이 요리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지난 3년, 천여 일의 시간 동안 아람은 줄곧 이렇게 지내
구아람은 아름다운 눈동자가 갑자기 움츠러들더니, 순간 신경주의 단단한 가슴을 힘껏 밀면서 얼른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뒷걸음질 치더니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 있던 냉장고의 문에 부딪혔다. 아람은 숨이 가빠졌고 당황하여 심란한 가운데, 얼굴은 살짝 붉은빛을 띄었고 옥처럼 맑은 이마에는 영롱한 땀방울이 맺혔다. 투명한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아람은 여전히 경주의 입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젠장! 왜 이렇게 된 거야.’ 아람은 얼굴이 붉어졌고 숨을 헐떡이며 화가 난 듯 얼른 마스크를 벗어 땅에 내팽개쳤다. ‘못 쓰겠어. 더러워!’ 경주는 늘씬하고 단단한 몸을 느릿느릿 털고 일어나 조리대의 가장자리에 기대고 있었다. 경주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눈썹을 약간 찡그렸고 방금 배불리 식사를 마친 짐승처럼 입을 오므리고 있었다. 경주는 겉으로는 비록 아주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실 지금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안 아파, 등?” 경주는 눈빛이 흐리멍덩했는데 분명 방금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경주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썰렁한 말투로 물었다. “너랑 무슨 상관이야!” 아람은 방금 쿠키를 먹어버린 경주에게 화가 나 이를 악물고 말했다. “신경주, 누가 너더러 먹으래?! 내가 오후 내내 만든 건데, 널 먹이려던 게 아니란 말이야!” “난 네가 만든 쿠키를 못 먹은 지 너무 오래되어 그냥 먹어보고 싶었을 뿐이야. 전에 네가 자주 만들어 줬었잖아.” 경주는 식탐이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평소 바쁠 때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람이 이렇게 열심히 만든 쿠키를 보니, 경주는 마음이 근질근질하여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 홀랑 집어먹었다. 뿐만 아니라 경주는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아람의 쿠키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 옛날은 옛날일 뿐이고 지금은 지금이잖아!” 아람의 눈빛에는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
“진주는 교활한 여자니 네가 그들을 상대할 계획을 미리 세우길 바라는 것뿐이야.” 순간 구아람의 구슬 같은 눈동자는 움츠러들었다. “난 할 말 다 했으니, 볼 일 봐.” 신경주는 그윽한 눈빛으로 아람의 뒷모습을 한 번 보더니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신경주, 잠깐만.” 아람이 갑자기 경주를 불렀다. 순간 경주는 가슴이 쿵- 하여 얼른 몸을 돌렸다.“왜 이런 걸 나한테 알려주는 건데? 내가 알기로 넌 대의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아니야. 신씨 가문의 누가 안나 조의 이 프로젝트를 따내든지 모두 신씨 호텔에 도움이 되는 건 똑같아. 그리고 신씨 호텔의 영향력과 평판을 높이는 게 네가 요즘 계속 추진하고 있던 일 아니야?” 아람은 의심스러운 듯 천천히 경주를 훑어보며 말했다.“그런데 대체 지금 왜 이러는 거야?” “난 네가 이기길 원하거든.” 경주는 아람의 눈빛을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진지하게 말했다. “왜 굳이 내가 이기길 원하는데?” “하루 부부의 정은 백일 간다고 하잖아.” 순간 아람은 비웃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3년 간의 결혼생활 동안 넌 나에게 한 번도 정을 준 적 없어. 그런데 이혼했더니 갑자기 그런 정이 생겨? 신경주 사장, 너 지금 장난해?” “당장 나가. 배웅은 안 해!” 경주는 답답한 듯 마른기침을 한 번 했는데, 순간 아까 먹은 쿠키가 목구멍에 메어 숨을 쉬기 어려운 것 같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이씨 가문이었다.이소희는 오늘 저녁 신효린에게 전화를 걸어 중요한 일이 있으니 자신의 집에 오라고 초대했다. 두 사람은 이소희의 개인 피아노 연습실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소희야, 이 시간에 할 말이 뭐야?” 신효린이 궁금해서 물었다. “KS WORLD호텔이 안나 조와 협업한다는 소식을 발표한 지 5일이나 지났습니다. 구아람 그 천한 년을 상대할 방법은 찾긴 한 겁니까?” 이소희가 팔짱을 끼고 훈화하듯이 물었다. 신효린은 모두에게 떠받들여 곱게 자란 부잣집 딸이었기에 평소 진주를 제외하고는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