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마친 후, 신경주는 늠름한 눈빛으로 덤덤하게 식당을 떠났다.진주는 그의 냉정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덜덜 떨렸다.이때, 신광구가 그녀의 손에서 팔을 힘껏 빼내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일어섰다.“경주의 말이 맞아, 김씨 가문은 자업자득한 거야! 우리 신씨 그룹에서 전에 몇 번이나 도와주었으니 이미 모든 성의를 다했어. 지금 그들이 엄청난 사고를 저질렀는데, 우리가 도와주면 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짓 하는 것과 다름없어! 이제부터 넌 김씨 가문의 일에 참견하지 마, 이런 독종 같은 친척은 서로 발길을 끊어야 해!” “맞아, 엄마. 그녀를 왜 신경 써, 그냥 될 대로 되라고 해.”신효린은 스테이크를 씹으며 진주를 이해하지 못했다.“넌 먹을 줄밖에 모르지! 네가 뭘 알아?”진주는 화가 솟구쳐 재벌 부인의 자태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식빵 하나를 집어 들고 신효린에게 내던졌다.‘내가 이 녀석을 너무 얕잡아 보았네, 신경주의 심보는 그의 아버지보다 만 배는 더 모질어! 김씨 가문의 구멍은 내가 사비로 채워야 하는가? 내가 왜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거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신경주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고에 가서 차를 가진 후 만월교로 향했다. 비록 김은주를 해결했지만 그의 마음은 생각보다 편안하지 않았다.신씨 가문의 후계자가 된 첫날부터, 그는 항상 모든 것을 빈틈없이 잘 해내고 싶었다.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망친 것만 같았다.결혼이든 가족이든…….“구아람 씨는 정말 자애로운 마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솜씨까지 가지셨네요! 전 그때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하지만 구아람 씨가 침착하게 침을 꺼내어 빠르고 정확하게 신 선생의 머리에 있는 혈에 놓더니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었어요! 3년 만에 처음으로 구아람 씨가 의술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녀의 실력은 정말 신 선생의 개인 의사에 못지않아요!”신경주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액셀을 더 세게 밟았다.그는 그녀가 의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
“할아버지, 요 며칠 어떠셨어요? 아픈 곳이 있으면 꼭 제때에 알려주세요.”신경주는 신남준의 휠체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얼굴을 들어 할아버지와 눈을 맞추며 어렸을 때의 맑은 눈빛을 드러냈다.“아니면 저와 함께 관해 정원으로 돌아가시죠, 저와 오씨 아줌마도 할아버지를 잘 보살펴 드릴 수 있어요.”“내가 왜 그곳으로 가겠어, 너희 아버지와 그 재수 없는 며느리의 얼굴만 보면 목숨이 줄어들 것 같은데!”신남준은 진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한숨을 내쉬었다.“신광구가 이혼하지 않으면 난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었어, 여기가 엄청 좋아, 그들을 보지 않으면 속이 편해지거든. 이게 바로 장수의 비결이야!”신경주는 속절없이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이 개구쟁이 어르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네.’“이 별장은 신 선생과 사모님의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신 선생께서 이곳에 있고 싶어 하는 건 사모님이 살던 정취가 있기에 떠나기 아쉬운 겁니다.”서 비서는 마음을 잘 헤아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서 씨, 내가 정말 노망이 들었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가 많아.”신남준은 고개를 돌려 흐릿한 눈빛으로 뒤뜰을 바라보았다.“한 번은 지희가 뒤뜰에서 곤곡을 부르며 꽃밭을 다루는 모습이 보였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나를 향해 웃어주었어.”“노망이 아니라 사모님께서 신 선생의 깊은 정이 느껴졌을 겁니다. 몇 년 동안 늘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도 떠나기 아쉬워 줄곧 곁에 머물고 있는 겁니다.”서 비서는 나지막하게 위로를 했다.신경주는 순간 울컥하여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이 두터운 부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 행복한 사랑을 직접 보았었기에 그는 자신의 사랑도 순결하고 아름답기를 바랐다.그래서 그가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김은주와 함께 있는 것에 집착한 것이다.그동안 김은주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성격이 맞지 않아 함께 있으면 끝없는 이야기가 있는 게
그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질 않았는데, 오늘에 이르러 마침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구아람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보잘것없는 엄명준을 이용하여 김씨 가문을 넘어뜨렸다.신씨 그룹도 비록 영향을 받았지만 신경주는 끝내 김은주와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 역시 이 감정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다만 망신을 당하고 국민들 입에 오르는 이야깃거리로 되었을 뿐이다.사장실 안.구아람은 틈틈이 게임을 두 판 했고 임수해는 아가씨에게 포도를 까주면서 몇 가지 큰일을 보고했다.“일곱째 도련님께서 진정의 사건이 곧 일심을 열릴 것이라고 했어요, 아직까지 진정에게 변호해 줄 변호사가 없다고 합니다. 증거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재판을 하기 싫다고 하네요. 그래서 최소 20년은 무조건 선고할 수 있을 겁니다.”임수해는 자상하게 몸을 숙이고 구아람에게 포도를 먹여주었다.그녀는 한입에 삼키고 눈을 가늘게 뜨며 불그레한 윗입술을 핥았다.“음! 너무 달아!”임수해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가슴이 설레었다.“일곱째 오빠가 지나치게 예절을 차려 너무 서먹서먹하네, 이런 일은 분명히 나에게 직접 전화해서 말할 수 있는데, 너보고 전달하라고 하네. 오빠도 참…… 어휴.”구아람은 마음이 좀 답답하여 한숨을 쉬었다.구도현은 구아린과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훌륭하다, 다만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클 뿐이다.일곱째 오빠인 구도현은 그녀보다 겨우 세 살 많고, 어린 시절부터 네 명의 친 오빠들 못지않게 그녀를 보살펴 주었다.“일곱째 도련님께서는 확실히 약간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늘 대놓고 아가씨를 예뻐하지 못하고 있어요.”임수해는 방관자 임장이니 더 잘 알고 있다. 구씨 가문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역시 잘 알고 있다.“오빠는 생각이 너무 많아.”구아람은 고개를 저었다.“그도 다른 오빠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야.”“참, 엄명준도 이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둘째 도련님과 일곱째 도련님께서 아가씨
곧, 로즈라는 플레이어가 메시지를 보냈다.[로즈: 한 판 할래요?][루시퍼: 로그아웃할 겁니다, 다음에 하죠.][로즈: 그럼, KS WORLD의 카페에서 같이 커피 한잔하실래요?]……곧 구아람은 황급히 호텔 3층 커피숍에 도착했다.지금 카페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고, 오직 윤유성만 홀로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석양빛이 그의 꼿꼿한 몸매에 쏟아지며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윤 도련님.”구아람은 그에게 다가가더니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언제 온 거예요? 말이라도 하지.”“바쁘시다고 들어서, 방해가 될까 봐 말하지 않았어요. 귀국하자마자 한가해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죠.”윤유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핸드폰을 흔들었다.“제가 게임을 로그인하니 구아람 씨가 있어서 그제야 연락했어요.”“뭐 마시고 싶어요? 제가 살게요.”구아람은 이 남자가 일을 너무 꼼꼼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가 갑자기 온 것인데, 오히려 그녀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음…… 이미 세 가지 맛의 커피를 마셨어요. 지금 목은 마르지 않지만 배가 좀 고프네요.”윤유성은 금테 안경을 살짝 밀며 미소를 지었다.“구 사장님께서 저에게 호텔 요리를 맛보게 해 주실 수 있어요? 제가 줄곧 M 국에서 지내다 보니, 이미 오랫동안 정통 성주 요리를 먹지 못했어요.”구아람은 그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 거절하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그래요, 제가 살게요. 마음껏 드세요!”그녀는 임수해에게 고급 룸을 준비해라고 하고는 윤유성을 위해 호텔 셰프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로 준비해 주었다.식사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였다.임수해는 문밖에서 씁쓸하게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아가씨의 유쾌한 웃음소리는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그는 신경주를 극도로 싫어했고 윤유성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첫눈에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부터 위화감이 느껴지게 한다.임수해는 비록 구아람을 좋아하지만 남자들
신씨 그룹 사장실.금방 고위층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신경주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고 피곤함을 감추지 못했다.그와 김은주의 일은 이미 그룹에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신씨 그룹에서 그 누구도 감히 신경주에 대해 의논하지 못했다. 죽고 싶지 않고서는 의논하지 못할 것이다.이제 그는 이사회의 부위원장이 되었고 이미 명실상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그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무거웠고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진주가 김씨 그룹의 구멍을 메워 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어요. 그녀가 비휴인가, 돈을 엄청 많이 횡령했네요. 흥, 이번 기회에 다 뱉어내야겠네요.”한무는 진주가 손해를 보는 것을 보면 마음이 후련해진다.“전에는 진교가 진주을 도와 축재를 해주었어, 지금 진교가 감옥에 들어갔는데도 수십억의 거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걸 보니, 그녀의 뒤에는 여전히 축재 경로가 있네.”신경주는 서늘하게 눈을 지그시 떴다.“설마…… 그 EV라는 부티크인가요?”한무는 놀라움에 가득 차서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사장님, 그 평범한 부티크가 정말 큰돈을 긁어모으는 능력이 있어요? 그냥 백과 옷을 파는 거지, 죽도록 팔아도 돈이 몇 푼 되겠어요?”“넌 나랑 같이 다닌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도 이렇게 순진해?”신경주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전에 접은 종이비행기를 집어 들어 한무의 가슴에 정확히 던졌다.“부티크의 뒤에는 진주가 몇 년을 걸쳐 구축한 거대한 성주의 인맥들이야. 사치품을 파는 것 같아도 은밀하게 명성과 이익을 판매하고 있어, 심지어 더러운 거래들도 부지기수야.”한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그 할망구를 너무 얕잡아 봤네요!”“난 얕잡아 본 적이 없어, 적을 얕잡아보면 안 되지.”신경주는 오뚝한 콧등을 주무르며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하지만 진주를 처리하는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어. 그녀는 성주에서 세력이 강대하고 배경이 든든해, 그리고 신 회장도 그녀를 지키고 있어. 지금 그녀를 건드리기에는 증거도 부족하고 때도
이소희는 이유희의 친동생이고 신경주가 보고 자란 아이이다.장남이 아버지 노릇을 한다는 말처럼 이유희는 유일한 여동생을 각별히 애지중지한다. 동생을 사랑하는 정도가 구씨 가문의 오빠들이 구아람을 대하는 정도에 못지않다.그러자 신경주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타협을 했다.“데리러 와.”……어둠이 내려앉은 성주 국가 콘서트홀.이유희는 일찍 감치 최고의 관람석인 2층 스탠드 룸을 구입해 여동생의 모습을 볼 준비를 했다.뿐만 아니라 그는 이곳에 대포 카메라를 준비해 놓아라고 지시를 내렸었고 동생의 무대를 찍으려고 신나게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신경주는 옆에 앉아 긴 다리를 나른하게 꼬고는 파파라치보다 더 전문적인 이 도련님을 혐오스럽게 흘겨보았다.“이런 공연은 주최 측에서 녹화하고 애장품으로 각인해 출연자들에게 선물을 해줘. 그따위 장비로 체면을 구기지 마.”“너처럼 냉정한 사람은 모를 거야! 친오빠가 찍은 영상은 가족애가 담아 있는 거야, 주최 측이 찍은 것과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어?”이유희가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더니 순간 눈을 부릅 뜨고 말했다.“아람이도 왔어? 내가 잘못 본 건가? 옆에 남자는 누구야? 얼굴이 왜 그렇게 하얘, 몸이 허약한가?”신경주는 가슴이 떨리더니 벌떡 일어나 지체 없이 난간의 가장자리로 갔다.맞은편 VIP 룸 스탠드에 구아람과 윤유성이 나란히 앉아 서로 눈 맞춤을 하며 웃고 떠들었다.구아람은 맞은편에 질투쟁이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2층에는 사람이 적고 냉방이 잘 되었다. 구아람은 얇은 검푸른 프렌치 원피스만 입어 추운 듯 팔에 소름이 돋았다.윤유성의 시선은 그녀의 노출된 하얀 피부에 떨어지자, 눈을 가늘게 뜨고 양복 외투를 벗은 후 일어나서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도련님, 이건…….”구아람은 놀라 눈을 부릅떴다.순간, 그는 다짜고짜 양복 외투를 그녀의 가늘고 곧은 다리 위에 덮어주었다.“다리가 안 추우면 몸도 춥지 않을 거예요.”윤유성은 얼굴을 들고 그녀의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여성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은 차분하고 우아한 짙은 블루 벨벳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와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이 창작한 히트곡 ‘바람이 부는 사계절’을 들려주었다.사람들은 아름다운 멜로디에 취해 무대 아래는 조용했다.비록 피아노곡은 매우 듣기 좋았지만 구아람의 시선은 크리스티안이 입은 짙은 블루 드레스에 쏠려 있었다.전 세계에 딱 하나뿐인 이 고급 드레스는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인 샤론, 즉 구아람이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이다.이러한 세계적인 첨단 인재, 유명 스타, 그리고 인품과 예술 수준이 모두 뛰어나고 명성이 높은 사람만이 샤론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을 수 있다.신경주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며 공연을 감상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그는 계속 분노를 억누르며 선명하고 아름다운 구아람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때때로 윤유성과 구아람은 머리를 맞대고 속삭였다.그녀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매우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신경주는 입술을 칼날처럼 오므리고 주먹을 힘껏 움켜쥐며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그는 침울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자식이랑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아? 결혼한 3년 동안 우린 늘 마주치며 살았는데, 그땐 이 정도로 말이 많지 않았잖아!’“왜 갑자기 추워진 것 같지, 냉방을 너무 크게 틀었나.”이유희는 영문도 모른 채 몸을 움츠렸다.크리스티안이 몇 곡을 더 연주한 후, 자신의 애제자인 이소희 씨를 무대로 초대했다.무대 위의 소녀는 한창 꽃다운 나이였고 아름다운 밤색의 곱슬머리를 허리에 늘어뜨린 채 가볍게 날렸다. 자그마한 몸짓에는 화려한 녹색 치맛자락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그 위에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있어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여 그녀는 마치 숲속의 요정과도 같았다.“소희야! 소희야, 여기 봐봐, 오빠야!”이유희는 동생이 나타나자 감격에 겨워 손을 흔들었다.신경주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고 그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하지만 무대 위의 이소희
분위기도 순간 뜨거워졌다.구아람이 은근히 놀라서 신경주의 거무스름한 눈과 마주치더니 짜증이 난 듯 눈썹을 찌푸렸다.윤유성도 너무 의외인 것 같아 금테 안경을 치켜올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다.“죄송해요, 구아람 씨. 그가 이 자리에 있을 줄 몰랐어요. 사인은 필요 없으니, 이만 나갑시다.”“괜찮아요, 상관없어요.”구아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고 누군가가 나타났다고 해서 물러서지 않았다.“우리나라에서 전 남편을 만나면 회피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그리고 저도 당신이 사인을 받아 윤 사모님의 소원을 들어주길 바랍니다.”윤유성은 눈이 휘둥그레져 그녀를 바라보더니 마음이 설레었다.하지만 신경주의 표정은 이미 그늘이 지었다.그들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고 구아람의 목소리는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듯한 관통력이 있으서 그녀가 한 말들을 정확하게 들었다.콘서트 내내 그는 오장 육부가 끊는 듯한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그녀가 윤유성의 어머니까지 관심해 주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당장 구아람을 눈앞에 잡아와 물어보고 싶었다.‘윤유성과 어디까지 간 거야?’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심지어 그녀에게 어떻게 굴욕을 당할지까지 상상이 된다.그들은 이미 이혼을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계속 그의 몸, 신경, 생각을 컨트롤하고 있고 통제 불능의 상태로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게 한다.순간, 분장실의 문이 열렸다.“오빠!”꾀꼬리처럼 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렸다.신경주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눈앞이 아른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곧 오뚝한 몸은 부드러운 녹색 덩어리에 싸였다.이소희는 나무늘보처럼 그에게 안겼고 불그레한 얼굴을 꾸물거리며 애교를 부렸다.“오빠, 일부러 제 공연 보러 온 거예요? 저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는 거죠?”신경주의 안색이 변하면서 온몸이 굳어졌고 여광으로 끊임없이 얼굴이 흙빛이 된 구아람을 보고 있었다.이유희는 동생의 행동이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