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온지유가 그의 가면을 힘껏 벗기려던 찰나, 남자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사람 잘못 보신 겁니다. 전...”“제가 잘못 알아본 거라면 당신이 저를 구한 이유는 뭐죠?”남자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온지유는 그의 말을 끊었다.온지유의 검은 눈동자는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은색 가면을 쓴 남자는 얇은 입술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한 쌍의 검은 눈이 가면 사이로 엿보였다.남자의 몸짓에 익숙함을 느낀 온지유는 단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이 순간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남자가 바로 여이현이라는것을.“나한테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뻔히 살아 있으면서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흘려보내고, 5년간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그 아이에 대해서도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대체 왜 이렇게 잔인하게 굴 수 있는 거야?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온지유는 마음속에서 울렁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여이현을 향해 미치광이처럼 소리를 질렀다.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딱딱하게 한마디 내뱉을 뿐이었다.“아가씨, 저는 정말 그 사람이 아닙니다. 임무가 있어서 Y국에 왔을 뿐이에요.”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온지유를 밀어내고 거리를 뒀다.떨어진 거리는 멀지 않았으나 온지유는 남자와 영원히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190이 되는 키.그리고 익숙한 체형.그가 여이현이 아니라는 것을 온지유는 믿기 어려웠다.무슨 임무가 있었기에 하필이면 Y국에 왔고, 하필이면 온지유를 구해줬을까.온지유는 몸에 항상 권총을 지니고 있었다.이 총은 S국에 갔을 때 인명진이 손수 만들어준 것이었다. 하지만 늘 보호받아 왔던 온지유는 이 5년간 권총을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온지유는 권총을 꺼내 들고 남자의 발가에 한 발 쐈다.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다시 고개를 돌리자 온지유의 권총은 이미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온지유는 섬찟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당신이 정말 여이현이 아니라면 난 여기서
여이현은 이런 온지유를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 5년간 온지유는 전쟁터에서 힘겹게 살아 남아왔다. 깨어나고 온지유의 위치를 확인 한 뒤 여이현은 바로 온지유의 곁으로 향했다.만나러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오지 못했던 것이다. 감히.온지유는 더 이상 그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맞아. 내가 협박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아직 그 가면을 쓰고 우스운 연기를 계속하고 있었겠지. 나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여이현은 분명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모든 재산을 넘겨주고, 모든 길을 터 주 고, 준비를 해두었다.하지만 지금은...여이현은 그녀를 몇 년이고 내버려두고 사라졌다. 소식을 들려주기만 했어도 온지유가 이렇게 마음을 썩힐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무너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여이현은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목에 뭐라도 걸린 듯 먹먹했다. 여이현은 숨이 막혔다. 한마디도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대로 온지유를 확 안아 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온지유가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은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이현 씨, 대답하라고! 아무 말이라도 하란 말이야!”온지유는 악을 쓰며 다시 고함을 질렀다.온지유는 눈을 붉히며 여이현을 바라봤다. 눈물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주체할 수 없었다.여이현은 숨을 내리쉬었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여이현은 급히 다시 가면을 썼다. 그는 온지유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지유야, 널 안 찾아온게 아니라 여러 사정 때문에 못 찾아온 거였어. 여기서 잘 지내야 해.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으니까 다 끝내면 꼭 다시 돌아올게.”말을 마치고 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여이현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온지유는 숨을 멈췄다. 단숨에 주위의 모든 공기가 사라진 기분이었다.온지유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땅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율아!”조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노석명은 실험실로 버려졌다.실험실에 있던 독약들은 모두 노석명의 입안으로 들어갔다.노석명은 창백한 얼굴로 고통에 몸부림치며 거품을 토해냈다.하지만 그에게 자비를 베풀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법로는 특히 더 했다.노석명이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틈을 타 법로는 칼로 그의 살을 하나하나 도려냈다.“너만 아니었으면 율이가 우리와 갈라질 일도 없었고 나를 원망하지도 않았어! 게다가 마지막에는 가짜를 데려와서는 나를 놀려 먹었지. 무열이가 의심하지 않았더라면 내 율이는 이미 죽었다고!”법로는 끝까지 율이가 가장 걱정이었다. 노석명이 법로의 지위를 찬탈하려던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딸과 그렇게도 오랜 시간 떨어져 있으며 매일 밤 매일 낮 걱정에 시달렸다.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곳곳을 찾아다니며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드디어 딸을 찾아내고 그간 부족했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간절히 빌어도 딸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지어는!노석명은 그런 율이를 실험실에 가두고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그러니 노석명에게는 죽는 게 차라리 낫다 생각할 정도로 고통을 주리라.노석명을 고문한 뒤 법로는 그의 손발을 잘라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그가 혀를 깨물어 자살할까 봐 혀도 뽑아버렸다.마지막 성과물에 법로는 충분히 만족했다.그는 신무열에게 전했다.“율이를 괴롭힌 놈은 이미 응당한 벌을 받았다. 가서 율에게 전해주거라. 이 모습을 보고 분이라도 풀리게.”“예.”신무열은 짤막히 대답하고 온지유를 찾으러 갔다.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법로가 다시 불렀다.“그래, 율이에게 내가 보고 싶어 한다고도 좀 전해줘.”“알겠어요.신무열은 실험실을 떠났다.”...온지유 측.여이현을 만난 뒤로 온지유의 마음은 늘 허공에 떠 있었다.왜 여이현은 죽지 않았으면서 5년간 온지유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감추고 있는 고민이 있나 봐?”낮은 목소리가 주위에서 울렸다.온지유는 시선을 올려 바라보
고문!예전이라면 책이나 영화에서나 들어 봤을 생소한 단어를 바로 눈앞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법로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Y국에서 못 할 일이야 뭐가 있을까.온지유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Y국 일에 관심은 없어요. 올 때 이미 다 말한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하지만 지유야, 우리 사이의 혈연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야. 그렇다고 평생 우리를 부정하고 살 셈이야?”신무열은 한 번도 온지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온지유에게 무거운 말을 꺼낸 적도 물론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지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 사이의 인연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이라고.“앞으로의 일은 아직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전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무열 씨...”“오빠라고 불러.”백무열은 온지유에게 강제로 무언가 요구 하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5년이 지나도 온지유는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온지유는 말을 잇지 않았다. 신무열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골랐다.온지유가 신무열에게 전한 대로 어릴 적 기억은 경성에서 시작되고 경성에서 자라왔다.Y국에는 티끌만큼의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다. 운명의 이끌림을 따라가고 싶다 하더라도 감정의 기반이 없는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온지유는 갑갑했다.“못 하겠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제힘을 빌려도 좋아요. 하지만 법로는...”“아버지가 왜? 아무리 나쁜 일을 했던 사람이었대도 지유 너에게는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는 분이셔. 네가 아버지 딸이 아니었으면 인명진과 홍혜주는 어떻게 만날 수 있었다고 그래? 너의 방도 네가 떠난 이후로 한 번도 건드린 적이 없었어. 오히려 수리를 하고 보강했지. 지유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네가 마음을 열어줄 거야?”신무열의 눈빛에는 진심이 어려있었다.온지유는 그에게서 진심을 읽어 냈다. 죽음조차도 각오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죽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온지유는 목이
온지유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같이 몇 초 만에 여이현의 가슴을 헤집어놨다.여이현의 마음은 난도질을 당해 만신창이였다.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온지유는 자신보다 더 아플 것이고, 더 많은 것들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지유야, 진정 해. 이 일에 대해서는 꼭 만족스러운 해답을 줄게. 조금만 더 기다려 줘.”여이현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어떻게든 일단 온지유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다.하지만 그의 이런 말들을 온지유는 한치도 듣고 싶지 않았다.“이현 씨, 나는 이미 5년을 참아왔어.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여이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온지유는 또 소리를 질렀다.“한평생을 기다리라고? 내 아이는 대체 어디에 있는데?”‘뚜... 뚜... 뚜...’연결이 끊겼다. 여이현에게 온지유의 말은 이미 들리지 않았다.왜 여이현이 전화를 끊었는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온지유는 다시 걸어도 여이현은 받지 않으리라는것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이미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온지유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온지유는 아픈 가슴을 움켜잡고 숨을 골랐다.신무열이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다가왔다.신무열은 티슈를 온지유에게 건네고 다른 한 손으로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지유야, 이 일은 내가 꼭 알아볼게. 너희 앞에 어떤 일들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나와 아버지가 해결해 줄 거야.”그들은 영원히 온지유의 든든한 뒷배가 될 것이다.온지유가 관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몇 마디 나누러 와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온지유는 고개를 저었다.“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에요.”그러고는 재빨리 눈물을 닦았다.온지유도 사람이니 감정이 폭발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곧 다시 감정을 추슬렀다.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에서 살아남은 그녀는 눈물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역경과 난제는 사람의 손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법이다.“네가 어떻게 한다는 건데. 아무리 인맥을 쌓아 왔다고 해도 우리보다야
온지유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매번 용서해 보려고 해도 입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고, 다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었다.법로와 노석명이 저질렀던 일들과 여태 온지유가 봐왔던 장면들은 영화처럼 뇌리에서 되새겨지며 지워지지 않았다.법로는 온지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말이 없어도 전달되었다.신무열은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다 온지유를 향해 말했다.“지유야, 지금 이 시각에도 아버지가 나쁜 사람으로 보여?”하늘 아래 모든 부모는 거의 다 자식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보살펴 줄 것이다.아들과 딸 앞에서의 법로도 물론 악인이 아니었다.입장이 달랐다 하더라도 온지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사람을 해치지 않고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교육 받아왔던 온지유는 법로의 행위를 인정할 수 없었다.매번 떠올릴 때마다 머리가 아파왔다.그러면 생각하지 않으면 될 일 아닌가.“그만 해주시겠어요? 무열 씨도 쭉 법로의 곁에 있었으면 아시잖아요. 어떤일을 해왔는지.”“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구해주는 너인데, 아버지도 그냥 잘못을 저지른 아이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되겠어?”온지유가 말을 채 다 하기도 전에 신무열이 앞질렀다.온지유는 말문이 막혔다.몇 초 뒤 온지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렇게 많은 생명이 법로의 손에서 죽어갔어요. 나더러 그런 사람을 잘못을 저지른 아이라고 생각하라니요,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을 온지유는 생생히 기억 해 낼 수 있었다. 온지유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게다가 Y국이 깨어나기 전까지 여이현과 법로는 대치하고 있었다. 온지유도 화국인이었고 말이다.온지유는 차창에 기대고 낮게 중얼거렸다.“지금은 좀 지쳤어요.”온지유는 눈을 감았다. 손을 잡고 있는 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얌전했다....S국.최근 전쟁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S국은 연합 한 주위 작은 나라들을 한 번에 쓸어 엎으려 큰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
여이현은 대통령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여이현은 가면을 쓰지 않았다.지금의 그는 S국 대통령의 셋째 아들로, 가면을 쓰지 않는다면 이미 죽은 여이현이 다시 나타난 셈이 된다.한때 화국의 고위 지도자였던 여이현이 S국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을 일이다.그러나 여이현은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조금 전 여이현은 이미 온지유와 재회한 것이 분명했다.“네가 온지유와 무슨 약속을 했든, 무슨 계획을 세웠든 상관없어. 하지만 넌 이제 S국의 사람이 되었으니 내 말대로만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우려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다 이뤄줄 테야!”대통령은 그 말을 남기고 헬리콥터에 올랐다.그가 여기 온 것은 직접 여이현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할 말은 다 했다. 여이현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하지만 여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옮기지도 않았다. 그저 휴대폰을 꽉 쥐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갔다....온지유는 S국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찍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영상 속의 소녀는 폐허 앞에서 고깃덩이를 찾아 줍고 있었다.온지유는 마이크를 들고 소녀에게 물었다.“고기를 가져가 먹으려고 하는 거야?”“아니요.”소녀의 갈색 눈동자는 차분하게 깜빡였다. 소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아니요, 이건 제 부모님이에요.”소녀는 울지도, 떼를 쓰지도 않았다. 그녀는 겨우 일곱 여덟 살의 어린아이였다.영상과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노석명 연합군은 큰 비난을 받았다.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갔다.S국 대통령 역시 성명을 발표했다.S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평화를 갈망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국민들의 고통을 심히 이해하고 있다고.그가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평화를 갈구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전쟁이 계속된다면 그는 지구를 자연의 품으로 돌려놓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네티즌들은 그 발언
온지유는 별이가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별이는 온지유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러시다면 저희 쪽에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후에 아이의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도 아이를 데리고 가서 신분 등록을 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을 거예요.”“알겠습니다.”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별이와 함께 대사관에서 서류가 준비되기를 기다렸다.서류 발급은 불과 몇 분 만에 끝났다.온지유가 별이와 함께 대사관을 나서는 순간 햇살이 그들 위로 내리쬐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겹쳐진 두 그림자를 본 온지유는 잠시 정신이 팔렸다. 자신의 아이가 곁에 있었다면 역시 이렇게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게다가 온지유의 아이도 아마 지금쯤 별이만큼 컸을 것이다.아이를 생각하자 온지유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까지도 여이현은 아이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다.온지유는 참지 못하고 여이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랜 시간 연결음이 울리고, 온지유가 포기할 무렵 전화 너머에서 여이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유야.”여이현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였다.봐라, 전화는 분명 연결이 되는데 그날 이후로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온지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당신 계획이 뭔지도 모르겠고 이제 알고 싶지도 않아. 이현 씨는 이현 씨의 입장과 임무가 있을 테고 나도 거기에 화를 낼 일은 아니었어. 하지만 아이의 행방은 알려줘. 나는 그 아이의 엄마야. 나에겐 내 아이의 행방을 알 권리가 있어.”그녀의 아이. 온지유는 아이를 잠깐 봤을 뿐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별이를 입양하려는 것도 자신도 엄마이기에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었다.“알겠어, 지유야. 난 네가 행복하게 지내길 바랄 뿐이야. 아이는...”“또 아이가 죽었다고만 말하려는 거야?”온지유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여이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전화는 다시 끊어졌다.‘뚜둑’ 하는 통화 종료음이 휴대폰에서 들려왔다. 온지유는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올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