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여진숙이 노승아를 보내고 여씨 가문에서 여태까지 혼자 지내온 이유가 뭐란 말인가?온지유는 입꼬리를 올려세우며 여진숙을 내쫓았다.“저는 예전부터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 제가 여진그룹에서 제일 큰 주주예요. 그러니 제가 뱉어내든 말든 어머님이 알 바 아니에요. 이분을 밖으로 잘 모셔다드려 주세요.”말이 끝날 무렵 온지유의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여진숙은 자기가 이 많은 사람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문밖으로 나가기 전 그녀는 온지유를 매서운 눈길로 째려보았다.‘오늘 일을 그대로 갚아줄 거야. 어디 한번 두고 봐. 내가 죽지 않으면 온지유 네가 죽는 거야.’여진숙이 떠난 뒤 온지유는 멀리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를 향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배진호 씨, 저에게 사람을 더 붙여 주세요. 그리고 여진그룹 쪽엔 주주 회의를 한번 열어야겠어요.”여이현이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모든 재산을 넘겨주었다. 여이현의 사망 소식이 널리 알려졌고 그녀가 오래 자리를 비운 탓에 다른 주주들이 소란을 피울 것이 분명했다.게다가 여진숙이 혼란을 틈타 다른 주주들을 꼬드겨서 그녀를 끌어내리려 할 것이 뻔한 일이다.비록 온지유도 거액의 재산을 관리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진숙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눈 뜨고 보고 있을 순 없었다.“지유 씨, 면이 불었어요. 아직 한 입도 드시지 못했는데 한 그릇 바꿔 달라고 할까요?”배진호가 온지유에게 다가와서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진호 씨도 일찍 쉬세요.”온지유는 머리를 저으며 거절하고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배진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대표님이 살아계신다면 두 사람이 함께 비지니스계를 휘젓고 다닐 텐데. 하늘의 뜻은 예측할 수 없이 변덕스러웠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대표님이 너무 아쉬웠다.온지유가 떠나가는 뒷모습은 배진호뿐만 아니라 인명
홍혜주는 인명진이 무언가 알고 있으며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홍혜주의 물음에 인명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내가 뭘 안다고 그래? 내가 알고 있는 소식들은 이미 널리 알려져서 비밀이라고 하기 어려워.”인명진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첫눈에 율이를 알아본 것이다.그가 노승아와 손을 잡은 것도 사실은 율과 여이현을 갈라놓기 위해서였다.그는 단지 이 기회를 타서 율의 곁으로 가고 싶었을 뿐이다.하지만 그의 부주의로 율은 흉터남에게 잡혀갔다. 그러는 바람에 홍혜주도 율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에게 독약을 주입했다.“그래? 알겠어. 일찍 쉬어.”홍혜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객실로 가버렸다.내일 그녀는 온지유 곁에 있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들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한편, Y국에서.신무열과 법로는 의사당에 있었다.법로는 벽에 걸린 지도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지도의 북쪽에 빨간 펜으로 원을 하나 그렸다. 그와 동시에 또 지도의 남쪽에 두 개의 긴 화살표를 그렸다.“이 노석명이라는 반역자는 Y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화국까지 끌어들이려 하고 있어. 누구 마음대로!”“원으로 그려놓은 지역에 사람을 배치하도록. 이곳은 반드시 지켜내야 해. 연합군이 차지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 말이야. 그리고 화살표 쪽에도 두 개의 병력을 배치해 적을 유인하도록 하게.”신무열은 법로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그는 지도 앞으로 걸어가 S국의 국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노석명이 싸움을 원한다면 S국을 끌어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화국이라면... 한번 시도해볼 수는 있어요.”지금의 화국은 백 년 전의 화국이 아니었지만 이길 승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화국을 완전히 뒤엎을 수는 없더라도 화국으로 하여금 일련의 조치를 취하게 하여 Y국의 국제지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지금의 Y국은 국제적으로 너무 낮은 지위에 처해 있었으니 말이다.법로
법로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온지유가 율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부터 가면을 쓰려 하지 않았다.지금 법로는 기분이 아주 나빠 보였다.신무열은 법로의 뜻대로 온지유를 설득해볼 수도 있고 좋은 말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법로가 벌인 일 중 일부는 그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신무열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아버지께서 직접 안배하세요.”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나섰다.S국, 대통령 청사.좀 전에 대통령이 치료해주라고 한 남자는 이미 깨어났다. 그의 얼굴에 있는 큰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약을 바르고 흰 붕대를 감아서인지 마치 백색 천으로 싸인 미라같아 보였다.대통령은 침대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남자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나한테 성질을 쓰고 있는 거야?”그가 항상 남자의 주변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면 여기서 눈을 굴리며 누워있을 기회없이 하늘나라로 직행했을 것이다.“아닙니다.”너무 오래동안 말을 해본적이 없어서인지 남자의 목소리는 사포처럼 거칠었다.대통령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 마음이 없었다면 네가 이런 태도일 리가 있겠니? 넌 몸이나 잘 챙겨. 아주 심하게 다쳤더군. 네가 목숨을 지키고,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돌아가고 싶다면 내 말을 잘 들어야 할 것이야.”남자는 그 말을 이어받지 않고 몇 초 동안의 망설임 끝에 천천히 “알겠어요.”라고 대답했다.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밤하늘에 떠 있는 둥글고 밝은 달은 마치 커다란 원반 같아 보였다.내일은 한 가족이 함께 모이는 추석날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온지유는 아침 일찍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핸드폰을 들어보니 아버지 온경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비록 법로가 그녀의 친아버지라는 신분이 밝혀졌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양육의 은혜가 낳아준 은혜보다 크다고 생각했다.그녀의 부모님은 영원히 온경준과 정미리일뿐이다.전화를 받자마자 온경준의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이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발을 삐끗할 뻔했다.중심을 잘 잡지 못한 지유는 그렇게 이현의 몸에 기댔다.이현은 지유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손으로 지유의 허리를 잡아줬다.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지유는 어젯밤 그가 저돌적으로 그녀를 덮치던 화면이 떠올랐다.지유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이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이현의 눈동자는 매우 진지했고 그 속엔 질문과 의혹도 담겨 있었다. 눈빛은 지유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지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이현과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아까 나간 그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이현은 불같이 화를 냈는데 여기서 만약 지유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후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억울했다.만약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라는 걸 이현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겁나 고개를 숙인 채로 물어봤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는 사실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현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지유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어쩌면 이현은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가 아니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계약 결혼일뿐이니 말이다.게다가 며칠만 더 지나면 계약도 끝나간다순간 이현이 지유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지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사하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지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발버둥 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현이 지유를 전신 거울 앞으로 바짝 몰아갔다.“뭐 하는 거예요?”지유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너 정말 사무실에서 잠들었어?”지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혹시나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결혼한 첫날 밤, 지유는
고개를 들어보니 승아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국자를 들고 있었다.지유를 본 승아는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인사했다.“아주머니 손님이에요? 마침 삼계탕을 조금 더 끓였는데 같이 와서 먹어볼래요?”승아의 느긋한 태도는 마치 그녀가 이곳의 안주인인 것 같았다.오히려 지유가 멀리서 찾아온 손님처럼 보였다.하긴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유는 곧 이 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지유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미간이 찌푸려졌다.이현과 결혼할 때 모든 사람에게 알렸고 승아도 축복을 보내왔기에 지유가 이현의 와이프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승아는 지유가 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자 얼른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왔으면 손님이죠. 얼른 들어와요.”승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옅은 재스민 향이 풍겨왔다. 이현은 작년 생일에 지유에게 똑같은 향수를 선물했다.지유는 목구멍이 점점 메어와 숨쉬기가 힘들었고 다리가 천근만근인 듯 움직이기 힘들었다.여진숙은 지유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자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유야, 여기 서서 뭐 하는 거야?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내와야지.”지유는 승아와 겨뤄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어머님, 승아 씨가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예요?”여진숙이 답했다.“승아도 오랜만에 귀국했으니 한 번쯤은 나 보러 와야 할 거 아니니? 왜? 승아가 우리 집에 오면 안 돼? 현이도 뭐라 안 하는데 네가 뭐라고 시비야?”“그런 뜻 아니에요.”지유가 고개를 푹 숙였다.“아, 지유 언니였구나. 이현 오빠가 결혼사진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못 알아봤네요. 기분 상했다면 죄송해요.”지유는 환하게 웃는 승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허.’하긴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한 사진을 보여줄 리가 없지.이때 여진숙이 호통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얼른 승아한테 차를 내주지 않고 뭐 해?”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놓은 주전자를 들었다.승아는 여진숙과 웃고 떠들며
“지유 언니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다면서 오기 싫다고 해서 내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승아는 얼른 손에 난 덴 자국을 일부러 보여주며 말했다.“오빠도 지유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마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일을 그르친 건 아니죠?”지유가 회사의 서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이현은 안색이 너무 어두웠지만 승아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야.”이현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왔으니 앉아.”이현의 말에 승아는 내심 기뻤다. 그녀를 받아준다는 건 그래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회의하러 간다면서요? 내가 방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이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말했다.“회의 시간 뒤로 30분 미루세요.”승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에 인사도 없이 떠나서 혹시나 이현이 원망하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메꾸면 된다.소파에 앉은 승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해명하려 했다.“오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때 내가 인사도 없이 떠난 거 잘못한 거 알아요. 근데 지금은 다시 돌아왔으니까...”“먼저 일 처리 좀 할게.”이현이 승아의 말을 잘라버렸다.승아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바빠 보이는 이현의 모습에 승아는 별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오빠 일 끝나는 거 기다릴게.”승아는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은 반 시간 중 얼마나 더 앉아 있어야 마주 보고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약간 이현의 속내를 맞히기 어려웠다.진호가 안으로 들어와서야 이현은 하던 일을 멈췄다.이현이 걸어오자 승아가 웃으며 말했다.“오빠, 나...”“손은 아직도 아파?”그녀의 상처를 발견했다는 건 그녀를 걱정한다는 걸까?승아가 잽싸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제 안 아파요.”“응.”이현이 가볍게 대답하더니 진호의 손에서 한약을 받아왔다.“귀국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목
지유는 걸음을 멈췄다. 이현과는 부부 관계에서 오는 조화로움보다는 위계질서에서 오는 거리감이 더 컸다.“대표님, 지시 사항 있으신가요?”이현이 고개를 돌리더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지유의 얼굴을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앉아.”지유는 이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이현이 지유 쪽으로 걸어갔다.지유는 자신과 가까워지는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순간 이현이 어딘가 달라 보였고 이에 지유는 숨이 가빠졌다.긴장하기도 하면서 어딘가 이상했다.그녀가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이현이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현의 따듯한 손이 지유의 몸에 닿자 그녀는 마치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이현이 너무 꽉 잡고 있어 빼려고 해도 뺄 수가 없었다. 이현은 지유를 확 끌어당기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손 다쳤잖아, 몰랐어?”이현의 관심이 지유는 퍽 의외였다.“난... 괜찮아요.”“수포까지 났어.”이현이 물었다.“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야?”이현이 큰 손으로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지유는 그런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유는 이현의 손을 잡고 그가 따듯함으로 그녀를 이끌어주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지유가 포기하려 할 때마다 이현은 다시 희망을 주었다.“큰일 아니에요. 며칠이면 나아요.”지유가 대답했다.“연고 좀 가져오라고 할게.”지유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이제 좀 보상받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유는 이성적이었다. 이현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이현은 연고를 가져와 그녀의 상처에 발라줬다. 지유는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이는 이현에 혹시 자신도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상처가 나니 그래도 눈길을 주는 이현이었다.7년이나 옆을 지키면서 극진하게 챙겨주기보다 차라리 조그마한 상처를 내는 게 그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더 낫겠다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다친 게 아깝지 않았다.하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