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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작가: 류한나
하지만 여이현의 마음은 여전히 아팠다. 여이현은 심호흡한 뒤,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온지유의 얼굴을 매만졌다.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스러웠다.

“지유야, 난 네가 쉬운 여자가 아니란 걸 알아.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고 변수는 항상 존재해. 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잖아. 배진호의 도움을 받으면 다 잘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업무를 보거나 사업을 이어갈 때 곁에 배진호가 있었고 홍혜주도 온지유 곁에 남았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온지유가 Y 국에 오지 않고 경성에서 원하던 삶을 산다고 해도 여이현과 아이가 없는 삶은 여전히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감정은 너무 복잡해서 아직도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게다가 온지유는 평생 나민우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지유야, 사랑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너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서 널 만나지 않았을 거야.”

여이현은 떨리는 손으로 온지유의 손을 잡은 채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따뜻한 말과 차가운 말을 동시에 내뱉는 여이현은 온지유와 스쳐 지나갔다면 온지유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후회했다.

온지유는 문뜩 떠오른 낯선 기억이 분명 예전에 일어났던 일 중 하나라고 여겼다. 이 세상은 운명의 굴레 속에서 이어지기에 그 기억도 무언가를 암시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온지유는 여이현의 손을 붙잡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 씨, 지금 말해봐도 소용없어요. 이현 씨는 나의 이상형, 롤모델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할아버지를 구해준 날, 할아버지는 이현 씨와 결혼하라고 하셨죠.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난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온지유는 시련으로 가득 찬 인생을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여이현의 진심에 감동했는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동안 온지유는 이런 말을 여이현에게 한 적이 없었다. 여이현도 진심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했었다.

하지만 애틋한 사랑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여이현은 온지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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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렸고 여이현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신무열을 바라보았다. 몸이 허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신무열을 바라보는 눈빛에 살기로 가득 찼다.하지만 신무열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밖에서는 한창 싸우고 있는데 두 사람은 이 안에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네요? 그럴 시간에 저한테 인명진이 어디로 갔는지나 말해요.”인명진의 이름을 내뱉는 순간, 신무열의 표정은 삽시에 굳어졌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온지유를 훑어보았고 솟구쳐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신무열은 겉보기에는 다정한 사람이지만 이럴 때는 악마보다 더 무서운 기운을 뿜어냈다. 인명진을 찾으려 하는 건 인명진이 온지유에게 팔찌를 준 이유와 궁금했던 것에 대한 해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신무열의 태도는 어느샌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온지유가 얼마 전에 요한한테 맞아서 쓰러졌을 때, 신무열은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손을 썼을 것이다. 신무열이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 건 온지유가 원하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온지유는 긴 한숨을 내쉬었고 의문이 들었다.만약 온지유가 율이 아니라면 인명진이 온지유를 율이라고 부르면서 팔찌를 주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가끔 떠오르는 낯선 기억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온지유는 약물 때문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원래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인명진이 어디에 있는지 저도 몰라요.”온지유는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고 있다고 해도 자신을 친구처럼 챙겨준 인명진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인명진은 온지유를 치료하기 위해 애써주었다.신무열은 여이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눈빛에 살기가 돌았고 보는 사람마저 소름이 돋았다. 이때 여이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신무열 씨한테 협조할 사람으로 보여요?”여이현은 검은색 권총을 꺼냈다. 신무열이 요한을 통해 여이현과 온지유에게 전달한 호신용 무기였는데 여이현이 권총을 자신에게 겨눌 줄은 몰랐을 것이다. 신무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지금 이러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55화

    온지유는 관건적인 인물이었기에 여이현을 보내서 인명진을 불러내야 했다. 신무열은 여이현과 적이 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인명진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적이 되든 친구가 되든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해야만 했다.온지유는 한참 고민했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신무열 뜻대로 할 생각이었다.“만약 인명진에게 연락하고 싶다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이곳에서 내보내 주세요.”여이현은 온지유 앞을 막으면서 말했다. 온지유를 혼자 이곳에 두고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무열이 갑자기 온지유한테 눈짓하더니 입을 열었다.“여이현 씨를 위해서 저번에 나한테 그걸 물어봤었죠? 원하는 대로 해드릴게요.”온지유만 이곳에 남는다면 여이현, 홍혜주와 나민우를 내보낼 수 있고 여이현한테 해독제를 구해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이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네, 제가 이곳에 남을게요.”온지유는 여이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신무열을 향해 말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나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맞춰줄 생각이었다.“지유야, 안돼.”여이현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온지유를 혼자 이곳에 남겨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신무열이 갑자기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여이현 씨가 이곳에 남으면 저한테 뭘 줄 수 있나요?”신무열은 여이현이 몰래 이곳에 잠입한 건 온지유를 찾고 나서 이곳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이현은 소대장이었기에 여이현이 잡혔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화국에서 가만있을 리 없었다.“여이현 씨, 당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예요. 지금 보내줄 때 가요.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 다 못 나가요.”신무열이 차갑게 말했다. 신무열은 율이 온지유를 데리고 올 줄 몰랐었다. 그래서 요한을 온지유 곁에 두고 온지유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알아내려던 것을 조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여이현마저 이곳으로 들어왔다.계획이 전부 틀어진 신무열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여이현 씨, 고민할 것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56화

    온지유의 협박은 먹히지 않았다. 신무열은 재빨리 온지유의 팔목을 가격했고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신무열은 온지유의 목을 조르면서 말했다.“여이현 씨, 그쪽 사람들이 온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나가요. 온지유를 구하고 싶으면 인명진을 데리고 오세요.”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온지유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게 나았다. 온지유는 여이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이현 씨, 얼른 가요! 빨리요!”온지유를 바라보는 여이현의 눈빛에 슬픔이 가득 묻어있었다. 여이현은 온지유를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이어 울려 퍼지는 폭발음과 함께 군인들이 달려 들어왔다.용경호와 성재민은 위치 추적을 통해 여이현을 찾아냈다.“대장님, 법로와 충돌을 일으키지 말라는 명을 받았습니다.”“이현 씨, 빨리 나가요!”온지유가 소리를 지르자 여이현은 다른 군인이 끌고 나갔다. 얼마 후, 폭격 맞은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소름 돋는 적막이 이어졌다. 신무열이 온지유를 놓아주면서 물었다.“무술을 더 배워볼 생각 없어요?”조금 전에 신무열이 온지유의 손목을 가격할 때, 온지유도 반격했었다. 가장 간단한 호신술을 끊임없이 연마한 온지유는 힘을 조절해서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었다.온지유가 차갑게 대답했다.“없는데요.”말을 마친 온지유는 뒤돌아갔다. 여이현이 무척 걱정되었고 자신을 위해 이곳까지 들어온 여이현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경성으로 돌아간 여이현은 인명진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닐 것이다. 하지만 온지유는 인명진을 이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온지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신무열은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삼키고 말았다.한편, 여이현은 용경호의 손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고 용경호를 때리려고 했었다. 용경호와 성재민은 힘을 합쳐 여이현을 제압했고 여이현이 방심한 틈을 타서 들고 뛰었다. 한참 후, 여이현은 부대가 잠시 묵고 있는 천막에서 깨어났다. 여이현은 벌떡 일어나서 온지유를 찾으러 가려고 했다. 이때 용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57화

    연결음이 한참 울리고 난 뒤에야 인명진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인명진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무슨 일로 전화했어요?”“지유가 법로한테 감금당했어요.”여이현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고 깜짝 놀란 인명진은 다급히 물었다.“뭐라고요?”인명진은 솟구쳐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여이현 씨, 온지유를 꼭 보호해 주겠다고 저랑 약속하지 않았나요?”게다가 온지유 곁에는 홍혜주도 있었다. 여이현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고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온지유가 감금당한 건 여이현이 무능해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온지유가 중독될 일도 없었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이별하지 않아도 되었다.“신무열이 인명진 씨를 만나고 싶대요.”“알겠어요.”인명진은 덤덤하게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인명진은 온지유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러 갈 것이다. 한편, 온지유는 노예 수용소가 아닌 신무열이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장 좋은 음식을 대접받았고 신무열은 새 옷을 선물해 주었다. 온지유는 신무열이 인명진을 만나기 위해 여이현을 조종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온지유의 안전을 보장했기에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온지유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맛있는 밥을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법로 때문에 깜짝 놀랐다. 법로는 소름 돋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두 손을 허리 뒤에 진 채 온지유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법로의 조사에 의하면 온지유는 성형하지 않은 자연 미인이었기 때문이다.온지유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어머니 정미리, 아버지 온경준과 함께 지냈었다. 그리고 여이현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었다.“네 남편 때문에 하마터면 우리 부대가 전멸할 뻔했어. 이런 예쁜 아내를 두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내 아들이 너를 관심하는 것도 이해되더라고...”법로가 낮은 목소리로 온지유를 향해 말했다. 온지유는 법로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법로의 가면이 소름 돋기도 했고 법로의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58화

    율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바로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율은 과일과 간식을 준비하고는 신무열을 만나러 갔다.하지만 신무열은 여전히 차가웠다.“이런 건 필요 없어.”율더러 다시 가져가란 뜻이었다. 율은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서 신무열을 바라보았다.“오빠, 이건 온지유를 위해서 준비한 거야. 온지유를 만나게 해줘.”“아니, 온지유도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아.”신무열이 차갑게 대답했다. 만약 율이 온지유와 진심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 이곳에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무열은 율이 여전히 온지유를 괴롭히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일부러 친해지고 싶은 척 연기한다고 생각했다. 율은 가식적인 여동생이었다.“온지유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오빠가 어떻게 알아? 오빠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오빠가 지내는 곳에서 내가 어떻게 온지유한테 손을 대? 아직도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율이 간절하게 말했지만 신무열은 율을 차갑게 노려보다가 뒤돌아 갔다. 율은 주먹을 꽉 쥔 채 손을 덜덜 떨었다. 온지유가 계속 방에만 있을 리 없었기에 율은 온지유가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면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한편, 여이현은 온지유가 걱정되어서 미칠 것 같았다. 지도를 보면서 당장 달려가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비록 국가를 보호하고 모든 행동에 책임져야 할 군인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인간 여이현으로서 사랑하는 여자 온지유를 보호하고 싶었다. 같이 죽더라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온지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가족과 상봉하지도 않았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온지유를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온지유가 한 말을 떠올려보면 잠시나마 안전한 상황일 것이다. 생각에 잠긴 여이현은 노예 수용소에서 같이 나온 홍혜주와 나민우를 만나러 갔다. 용경호가 홍혜주를 보살피고 있었지만 기억을 전부 잃은 상태였고 온몸에 상처가 수없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홍혜주의 손과 발의 힘줄을 누군가가 일부러 잘랐다가 다시 이어놓아서 행동이 민첩하지 못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59화

    “군의관을 불러서 내 몸도 한 번 검사해 봐야겠어.”만약 나민우에게 신장을 기증할 조건이 된다면 고민 없이 기증할 것이다. 그럼 여이현이 온지유 대신 나민우한테 보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재민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여이현을 쳐다보면서 물었다.“대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대장님도...”“괜찮으니까 군의관 불러.”여이현이 집요하게 밀어붙이자 성재민이 군의관을 불러왔다. 이곳은 정밀 검사를 할 수 있는 기계가 없었기에 병원으로 가야 했다. 군의관이 여이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대장님, 이런 말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만약 지금 신장을 기증하신다면 다른 동맹군을 포함한 Y 국 주변의 나라에서 먼저 공격할 것입니다. 그럼 공격에 대응할지 말아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만약 반격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놀림당할 것이고 반격한다면 큰 전쟁으로 번져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이현이 몇 분 동안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비밀리에 진행하면 돼.”군의관이 엄숙하게 말했다.“그렇게 안 된다는 걸 대장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곳에 보는 눈이 많습니다. 국가에서 새 대장을 임명하기 전 즉 대장님이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이 일은 절대 진행할 수 없습니다.”군의관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침대에 누워있던 나민우가 격렬하게 기침했다. 여이현의 눈빛에 압도된 군의관이 입을 꾹 다물었다. 여이현이 나민우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나민우 씨, 정신이 들어요?”“지금 저한테 하는 말인가요?”나민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여이현을 경계했다. 여이현은 나민우도 홍혜주만큼 상처가 많아서 충격받았는데 나민우마저 기억을 잃었다. 여이현이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당신이 나민우예요.”나민우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당신은 저의 친구인가요?”“네...”예전에 여이현은 온지유를 감싸고 도느라 나민우를 업신여겼다. 하지만 온지유와 여이현 사이에 아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민우는 온지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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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이현은 멈칫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온지유는 제 아내예요.”자신의 여자라고 선포하는 게 아니라 나민우를 속이기 싫었던 것이다. 나민우는 기억을 잃었지만 여전히 온지유를 기억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 여이현은 죽을 것이고 나민우와 온지유가 행복하게 잘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온지유를 사랑하는 여이현은 이대로 나민우에게 온지유를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나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빠르게 스쳐 가는 기억의 조각을 붙잡고 싶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지유에 관한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고 눈앞에 서 있는 여이현에 대해서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여이현의 말을 들은 나민우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유부녀를 사랑하게 된 나민우에게 여이현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지유를 만나기 전부터 두 사람은 아는 사이였거든요. 나민우 씨가 지유 이웃 오빠였어요.”예전에 나민우가 온지유와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비밀리에 조사한 적이 있었다. 여이현은 나민우가 바로 석이인 줄 알았다.“그럼 온지유는요?”나민우는 지난 기억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민우가 기억을 잃은 것도 운명일 것이다. 나민우는 지금 누워있는 곳을 두리번거리면서 왜 갑자기 온지유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는지 궁금했다. 이때 여이현이 입을 열었다.“나민우 씨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지유는 아직도 그곳에 있어요. 잘 치료받고 있으면 제가 지유를 데리고 올 거예요. 두 사람이 만나는 날까지 치료 잘 받고 있어요.”그때가 되면 여이현은 앞날을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나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민우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한편, 인명진은 다급히 Y 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법로의 부대에 둘러싸였고 꼼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노석명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노석명은 피식 웃더니 차갑게 말했다.“인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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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지유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기회를 준 거라고요?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예요.”온지유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신무열은 미소를 짓더니 의자를 끌어와서 온지유 앞에 앉았다.“온지유 씨가 나한테 나민우, 홍혜주 그리고 여이현을 찾는다고 한 거 기억 안 나요? 얼마나 지났다고 여이현을 포기하는 거예요?”신무열은 대놓고 온지유를 조롱하고 있었다.“내가 여이현을 포기하든 말든 신무열 씨랑 아무 상관 없어요. 신무열 씨가 물어보는 말에 난 대답했고 알고 싶은 건 다 알아내지 않았나요? 예전에 날 보내주겠다고 한 약속 꼭 지켜요.”온지유는 입술을 깨문 채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신무열은 온지유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하지만 오래전 기억이라 온지유가 어머니와 닮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고 아버지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의 혈액으로 검증도 했지만 온지유는 신무열의 혈육이 아니었다. 의문이 깊어지는 와중에 온지유는 인명진에게서 이 푸른 구슬을 받았다고 했다. 예전에 율이 이곳에 있었을 때, 인명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신무열은 인명진이 왜 푸른 구슬을 온지유에게 주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검증 결과가 가짜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신무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요한, 이리 와봐.”요한은 신무열의 부름을 받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요한은 신무열의 눈빛만 보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온지유가 방심한 틈을 타서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미 들켰다.온지유는 굳은 표정을 하고서 물었다.“설마 피를 뽑아서 검증하려는 건가요?”온지유는 신무열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미 한 번 피를 뽑았기에 더 이상 검증에 협조하고 싶지 않았다.“다시 해봐도 소용없어요. 운명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에요.”온지유가 의식이 또렷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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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손에 있는 일을 무턱대고 모두 남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 과한 부담을 주는 일이다.문지원은 비서를 사무실로 불렀다.“올해 25살이죠?”비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나이는 모두가 다 아는데 문지원 회장이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혹시 소개팅을 시켜주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비서는 고마웠지만 거절하며 말했다.“문 사장님, 저는 아직 젊어서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전 당신더러 결혼하라고 하는게 아니에요.”문지원은 펜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냥 평소에 잡다한 일들을 맡기고 싶어서요.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은 평소에 굳이 내게 제출하지 않아도 돼요.”비서는 그 뜻을 이해했다.이건 곧 그녀에게 승진과 급여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문지원이 그녀의 의견을 확인한 후 급여를 조금 올려줬고 비서에게 몇 명의 적합한 인재를 추가로 모집해서 예비 인력으로 두라고 지시했다.“평소에 내가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보고하면 돼요.”비서는 한숨을 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녀 혼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일정이 정리되자 문지원은 업무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고 긴급 통지가 오면 또 회의를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이제는 오후 4시 반쯤이면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비서가 몇 명을 더 찾아서 양성해 두었기에 업무가 적절히 분배되어 모두 바빠 죽을 정도가 아니라 적당히 딱 맞는 분량을 처리할 수 있었다.그 덕에 문지원은 지석훈과 함께 결혼 후의 삶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다.지석훈도 이에 매우 만족해했다.“널 주려고 선물을 챙겨왔어. 들어가서 한번 봐.”그가 집 문 앞에 다가서더니 걸음을 멈췄다.문지원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은 어두컴컴했다.“뭐 숨겨놨어요? 아직 불도 켜지 않았네요, 수상하게.”탁! 하며 불이 켜지자 거실의 모든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030화

    문지원은 이 주제가 다소 위험하다고 느꼈다. 비록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배석훈이 결혼한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돼지고기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돼지가 뛰어다니 것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문지원은 그러면서도 반쯤 빚어놓은 만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에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희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아이를 가져야지. 평소에 좀 더 노력해야 한단다.”문지원은 잔소리를 듣고 나서 나오니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시어머니는 문지원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거의 마음을 쏟아붓는 수준이었다. 비록 문지원의 집안 사정이 좋은 것을 알면서도 혼수 때 오랜 세월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사서 선물해 주었다. 사실 지석훈도 자기 집이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다. “너희 집도 너희의 것이지만, 이건 내가 어른으로서 선물하는 거란다.”게다가 그 집에는 문지원의 이름도 함께 올려져 있었다.그래서 시어머니의 출산 독촉에도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버텨야만 했다. 다행히도 시어머니는 어린 이들에게 엄격하게 구는 편은 아니었다. 만두를 빚을 때 한 번 그런 말을 했고 또 떠나면서도 지석훈을 불러 몇 마디 잔소리했다. 문지원은 그 모자간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돌아가는 길에 문지원은 약간 궁금해져 지석훈에게 물었다.“나갈 때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요?”“정말 알고 싶어?”“네.”그러자 지석훈은 문지원의 머리를 숙이게 한 후 그녀의 흩어진 머리칼을 살며시 넘겨주며 귀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우리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하셨어.”남자의 낮고 진한 목소리는 얼굴을 붉히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해 문지원의 귀가 금세 붉어지고 말았다.저녁이 되자 지석훈은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문지원의 머리를 받치고 이마를 맞대며 낮은 숨소리를 내쉬었다. 문지원은 마치 파도 속에 잠긴 것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029화

    그 눈빛 속에서 조용히 터져 나오는 그 소유욕. 마치 옛 시대의 군벌과 그의 부인 같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운 없는 사람이 되어 몰래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자신의 상상에 자극받아 목소리가 떨렸다.“지석훈 씨,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봐주세요.”지석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진작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진작가는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 후에도 그들은 여러 세트의 사진을 찍었고 찍은 사진들은 모두 문지원에게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문지원은 모든 사진에 다 만족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었다.“대략 며칠 안에 나오나요?” 그녀가 물었다.사진작가는 답했다.“빠르면 이삼 일정도 걸릴 겁니다. 그때 완성된 사진들을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는데 혹시 두 분께서 응해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바로 아까 찍은 사진 중 몇 장이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어서 사진관 벽에 걸어두고 싶습니다.”문지원은 사진관에 들어올 때 봤던 사진 벽이 생각났다.“그 벽에 걸어두시겠다는 건가요?”“네.”사진작가는 그 벽은 사진관의 특별한 기념 및 홍보 방법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잘 나온 사진들은 사진 주인에게 동의를 구한 뒤 동의하면 벽에 전시한다고 한다..문지원은 옆에 있던 지석훈을 바라봤다. “저는 괜찮은데, 당신은요?” 지석훈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마음대로 하도록 해.”며칠 후 문지원은 사진작가가 보내온 사진을 받아 소중히 간직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 사진관 벽에 전시된 사진들이 곧 사람들의 눈에 띄어 사진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간 것이다.잘생긴 남성과 아름다운 여인의 조합과 최상의 촬영 기술 덕분에 순식간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네티즌들은 저마다 아아 소리를 냈고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마치 옛 시대의 군벌 부인 같다.”“완전 대박이다.”“3분 안에 그들의 모든 정보를 알고 싶다.” 하지만 이 모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028화

    문지원은 약간 마음이 움직였다.하지만 웨딩 촬영은 이미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섬에서 몇 세트 찍었고 그 후 결혼식 현장에서 또 몇 세트 찍어 셀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이번 촬영은 개인 예약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사진관이 꽤 유명하다고 들었다.물론 사진관 이름에 걸맞게 예약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이 정도면 지석훈이 얼마나 큰 노력을 들여 예약을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웨딩사진만 찍는 데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하지만 문지원 역시 이런 곳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기에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몰랐다.“한번 보세요. 이건 저희가 예전부터 선보였던 스타일들이에요.”사진작가는 친절하게 앨범 한 권을 꺼내 보였다.앨범에는 이전 고객들이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스타일이 있었고 모두 아름다웠다.이 사진관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정말 최고였다.문지원은 그중에서도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요?”사진작가는 그녀가 가리키는 사진을 한 번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됩니다. 먼저 메이크업하고 옷을 갈아입으세요. 직원들이 촬영 스튜디오를 설치할게요.”옷은 사진관에서 준비한 것으로 하고 지석훈의 요구에 따라 전부 새 옷이었다.사실 문지원은 소품용 옷을 입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한 번 입었다가 나중에 벗으면 되는 거고 몸에 달라붙지 않아서 안에 옷을 받쳐 입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석훈은 직업병이 발동했고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었다.결국,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급히 새 옷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원래 걸리던 시간에서 15분이 더 추가되었고 메이크업 등 기타 과정도 진행해야 했다.문지원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2시간이 지난 후였다.그러나 결과는 확실했다.곧은 치파오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쌌고 문지원은 옷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마치 지난 옛 시대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027화

    결혼 후 문지원은 휴가를 내서 신혼여행을 갈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요즘 지석훈이 거의 계속 병원에 머무르며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을 떠올리며 본의 아니게 한숨이 나왔다. 비록 이미 익숙해졌긴 했지만 실망을 감추기는 어려웠다.비서도 그녀에게 물었다.“문 사장님, 신혼여행 가고 싶지 않으세요? 제 동창 중 한 명이 며칠 전에 결혼했는데 요즘 여기저기서 신혼여행 정보를 알아보며 준비 중이에요. 신혼여행이 없는 결혼은 반은 실패한 거랑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제대로 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비서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그렇지 않으면... 문 사장님, 지 의사님이 일하시는 곳에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어쨌든 문지원은 요즘 정신이 산만하여 업무에 집중할 기색도 없었다.문지원은 비서의 시선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와도 지석훈을 보지 못해 한참 혼란스러워했던 자신을 깨달으며 약간 부끄러워졌다.“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기획서 한 부 복사해 가져다주세요.”점심 무렵, 문지원은 막 일을 끝내고 밥 먹으러 가려던 찰나, 핸드폰에 지석훈의 메시지가 떴다. 같이 밥을 먹자는 메시지에 문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이 장면을 본 직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터뜨렸다.문지원은 재빨리 열쇠를 챙기고 회사를 떠났다. 지석훈은 그녀를 새로 오픈한 가게로 데려갔다.식사를 마친 후 문지원은 지석훈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물었다.“병원에 다시 돌아갈 거예요?”“응?”지석훈은 눈썹을 치켜들며 고의적으로 물었다. “내가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순간 당황했다. 사실 그녀는 지석훈이 자신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길 바랐는데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업무에만 매달려 밤에야 겨우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그녀는 그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지석훈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026화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지석훈은 항상 선을 지켰지만 오늘 밤엔 조금 달랐다. 그는 그녀를 침실에서 욕실로 다시 침대로 옮겨가며 몸 곳곳에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문지원은 여전히 몸속 깊이 스며든 감각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예상대로 휴가를 냈고 이틀이 지나서야 회사에 다시 나왔다.회사 사람들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문지원이 출근하자 하나같이 말했다.“문 사장님, 결혼 축하드려요.’문지원은 무려 사흘이나 결근했지만 다들 그 사흘 동안 무얼 했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짐작이 갔다.분명 부부 생활이 아주 좋았겠지, 아니었으면 일까지 내팽개치고 안 나왔을 리가 없다.문지원은 직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얼굴을 들 수도 없어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지난번에 당한 적이 있었던 터라 문지원은 이제 출근 전에 거울 앞에서 꼼꼼히 점검했다.몸에 키스 자국이 드러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회사를 향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 흔적들을 들켰을 경우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문지원이 예상치 못했던 건 며칠 지나지 않아 결혼을 축하하는 선물이 회사로 배달됐다는 것이다.문지원은 처음에 여울이 보낸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어보니 아니었다.택배 상자의 외관을 살펴봐도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아 더욱 수상했다.“이거 가져온 사람이 누가 보낸 건지 말했어요?”문지원이 로비 직원에게 물었다.로비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두고 바로 가버렸어요.”문지원은 뭔가 직감적으로 찜찜한 마음이 들어 그 택배를 챙겼고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상자를 열었다.그 안에는 브로치 하나와 축하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문지원은 축하 카드를 집어 들어보니 카드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결혼 축하해요.”글씨체는 아주 정갈하고 예뻐 여성의 필체 같았다.그녀는 곧바로 짐작이 갔다.문지원은 그 브로치를 지석훈에게 보여주자 그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아무 말 없이 브로치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025화

    여울은 아직 최주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최주하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문지원이 알기로 여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고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몰랐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 일에 깊이 관여하는 것도 괜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게다가 얼마 전 지석훈이 슬쩍 귀띔하듯 말했다.“며칠 전에 여울 씨가 병원에 재검진받으러 왔는데 주하가 데리고 왔었어.”그 말을 듣고 문지원은 혀를 끌끌 찼다.평소에 말도 없고 조용하던 여울이 은근히 비밀 많은 타입이었던 모양이었다.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덧 다음 달 중순이 되었다.지석훈은 아예 와인 농장을 통째로 빌려 며칠에 걸쳐 그곳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놓았다.결혼식을 올릴 장소는 바로 거기였다.그 와인 농장은 웬만한 호텔 못지않게 컸고 내부에는 수년간 숙성된 고급 와인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고 결혼식 날 손님들이 오면 바로 꺼내어 대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들은 결혼 소식을 널리 알리진 않았다.이건 문지원이 원한 방식이었다.그녀는 온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그런 결혼식보다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해서 조용히 축하받는 걸 선호했다.행복은 굳이 남들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그런데 결혼식이 한창일 때 지석훈이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프러포즈했다.해변에서 했던 프러포즈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진중한 분위기였다.“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예전엔 내가 사랑인 줄도 모르고 놓쳐버렸던 순간이 많아. 이제는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앞으로 남은 인생... 너랑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그의 말이 끝나자 하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문지원은 무대 위에서 입을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식이 끝날 무렵, 문지원은 멀리서 검은색 카이엔 SUV가 그녀의 친구 여울을 데리러 오는 걸 보았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가자 예상대로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주하였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024화

    문지원은 문득 자신이 계획에 철저히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처음부터 계획한 거죠?”“응.”지석훈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실, 그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오래전부터 숨겨온 것이었다....해변에서의 프러포즈 이후 문지원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손가락에 반짝이는 반지가 생겼다는 점이었다.이 반지는 지석훈이 특별히 맞춤 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그의 휴대폰을 보다가 두 달 전에 이미 주문이 들어가 있었다는 구매 기록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접한 지석훈의 부모님은 곧바로 혼인신고부터 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지원은 우연히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고 타이르는 말을 듣게 되었다.“네 아빠랑 난 애초에 너한테 기대도 안 했어.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니 너 같은 애한테 누가 시집오겠나 싶었거든. 그런데 다행히 네가 능력 있어서 지원이 같은 좋은 아이를 데려왔으니 얼른 확실히 붙잡아야지. 빨리 혼인신고부터 해. 나중에 그 아이가 너 버리고 떠나버리면 그땐 어디 가서 울어도 소용없어!”문지원은 그 대화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그런데 신기한 건 지석훈이 워낙 점잖고 진지한 사람이어서 집안 분위기도 매우 조용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퇴직해 한가로운 성격으로 매일 독서나 산책을 즐기는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는 커리어 우먼이었고 호탕한 성격으로 남편에게 엄격하면서도 친화력이 강한 사람이었다.두 분 모두 차분한 듯하면서도 내면에 장난기를 숨기고 있는 아들을 낳을 것 같진 않았는데 이게 바로 유전자의 신비인가 싶었다.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그녀를 좋아해 주는 모습에 문지원도 안심했다. 확실히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한편 문지원의 아버지는 지석훈과 따로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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