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은 온지유와 지선율을 바라보며 이 긴장된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온지유도 더 이상 노승아를 바라보지 않았고 여이현에게 어떤 답변도 기대하지 않았다.이제 여이현은 완전히 노승아 편에 섰으니, 그가 못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이현의 이번 행동은 이미 힘겨운 길을 더 험난하게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노승아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저 여자는 내가 잘되는 걸 못 보고 저주라도 하려는 것 같아요.”노승아는 다시 여이현을 바라보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도 이현 씨가 날 지켜줘서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나 괴롭힘당했을 거예요.”“가자, 저 드라마는 공중파에 오를 수 없을 거야.”여이현은 확신에 차 있었다.노승아는 속이 후련한 듯 말했다.“이현 씨의 눈썰미는 정말 대단해요. 그 하나의 문제점을 짚어내서 그들이 공중파에 오르지 못하게 막았잖아요.”여이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노승아는 사랑에 빠져 있었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맞다, 아빠와 이야기했어요. 우리 다 같이 식사할 시간도 잡아요.”여이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언제쯤?”“아직 정하진 않았어요, 제가 다시 물어볼게요.”총국 사무실 안.“국장님, 정말 공중파 방영은 불가능한가요?” 온지유가 다시 물었다.국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심의 기준이 매우 엄격한 건 알잖아. 공중파 방영을 위한 조건은 더 까다로워. 너희 드라마의 소재는 공중파에 적합하지 않아.”지선율은 급하게 말했다.“국장님, 저희는 꼭 공중파에 올라야 해요. 이 드라마에 모든 걸 쏟았어요. 뭔가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되잖아요. 고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국장은 한참 말이 없다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이건 내가 혼자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야. 위원회가 결정한 사항이지. 만약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나에게 부탁하려는 거라면, 난 여기서 물러날 수밖에 없어. 더 이상 부탁하지 마. 위원회 결정은 번복되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여이현은 노석명의 구체적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노석명은 뛰어난 반수사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뒤부터 행방불명되어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비록 노승아는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연계는 끊을 수 없었다. 노석명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딸 노승아 뿐이었으니까. 노승아의 정체는 더 말할 나위 없이 확고해졌다. 노석명의 도움으로 노승아는 법로의 독약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이현은 노승아를 이용하여 반드시 노석명을 찾아낼 것이다. 바로 그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이 번호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번호이며 마지막으로 나타난 장소는 한 전화 부스입니다.”여이현은 이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시도해 보았다. 만약 노석명이 전화카드를 바꾸지 않았다면 현재 그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이현은 이번 수사로부터 노석명은 치밀하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성격이니 반드시 미끼를 던져야만 그를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두운 밤. 노석명은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수시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살피는 그는 온몸을 무장한 채 암흑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 총을 차고 있었고 호신용으로 비수 두 개를 숨겨두었다. 사방이 수림인 은밀한 곳에 들어가서야 그는 경계심을 조금 낮추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운 밤, 정글 깊은 곳에서 등불이 밝게 빛나고 있다.“거기 누구야!”밖을 지키던 사람이 기척을 느끼자 총을 겨누며 다가왔다노석명은 냉담한 표정으로 모자를 벗었다. “내가 잘 안 보이나?”총을 겨누던 사람은 재빨리 총을 거두며 노석명을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삐었나 봅니다.”정글 안에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가옥으로서 한 채 한 채 겹쳐져 있어 번화하지는 않지만 작고 정교했다. 노석명은
노석명은 점점 더 차가워지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 여자 시체들은 어떻게 된 거야?”흉터남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술 한 잔을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자네 혹시 지금 날 의심하는 건가?”노석명이 대답했다. “지금 법로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모두 경거망동해서는 안 돼. 이것은 법로의 명령이야. 자네는 명령을 거역한 후과를 잘 알고 있을 거야.”“어차피 법로는 지금 외국에 있잖아.”그 말을 들은 노석명은 흉터남의 말속에 숨은 뜻이 있음을 알아차렸다.“그래서 사실을 인정하는 거야?”흉터남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손을 썼다는 증거가 없잖아. 하지만 노석명,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고 지위도 등등하잖나. 자네가 오자마자 내 죄를 묻는다면 말이 안 되지. 게다가 나는 자네를 잘 대접했고, 내 세력의 절반을 자네에게 주려 하는데 너무 심한 거 아닌가!”노석명은 차가운 얼굴로 비웃으며 “조직을 배신할 생각인가?”라고 물었다. 그의 말에 흉터남의 표정이 싸해졌다. “노석명 자네는 또 나에게 죄명을 씌우는군.”“자네가 본업을 시작했으니 산을 점령해 왕 노릇을 하며 조직을 배신하려 한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군.”여자 시체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이상하다.흉터남이 장기를 팔기 시작하면서 다시 본업에 종사하게 되었다.법로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마당에 흉터남이 큰 소동을 벌였으니 경찰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그것도 노석명이 금방 출소한 시기에 일이 벌어졌으니 경찰 측은 노석명을 첫 번째 목표로 의심할 것이다.동시에 조직도 경찰 측의 의심을 면할 수 없다.그렇게 되면 흉터남이 누워서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하하하하하하하!”흉터남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노석명은 흉터남이 이렇게 날뛰는 것을 보고 안색이 변하고 또 변했다. “그래 내가 한 일이야. 그래서 뭘 어쩌려고?”흉터남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만했다. “법로께 말하려고?”노석명은
노석명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흉터남이 득의양양하게 노석명의 운명을 손에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또 노석명을 불쾌하게 한다. “자리를 내주는 것은 사양하겠네. 왕은 자네가 하는 게 나아.”노석명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흉터남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와 한패가 될 리가 없었다. 흉터남은 노석명이 얌전하게 그와 다투지도 않는 것을 보고, 노석명의 명줄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했다. 노석명이 아무리 법로에게 충성스럽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목숨은 보전해야 할 것이다.노석명 자기 목숨뿐만 아니라 그의 딸 목숨까지도 말이다. 흉터남은 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노석명의 출소는 그에게 아무런 위협을 줄 수 없었다. 노석명은 어두운 얼굴로 건물을 떠났다. 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흉터남의 입가에 시큰둥한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쉽게 보내 주셨다가 법로께 고자질하면 어떡합니까?”흉터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럴 리 없어. 노동명에게 그럴 담도 없고. 그리고 그를 건드리면 우리 계획이 법로에게 드러나잖아.”흉터남은 노석명을 건드리지 못한다. 노석명이 사망한다면 법로의 의심을 사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흉터남의 평온한 생활도 끝을 보기 마련이다. 노석명은 현재 몸을 숨기는 장소인 버려진 공장으로 돌아갔다.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사람이 거의 오지 않았기에 평소에 그는 이곳에 숨어있었다. 이곳은 폐공장처럼 보이지만 아래층만 허름할 뿐 위층은 실험실이다. 갑자기 인기척을 느낀 노석명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리쳤다. “누구야!”“아버지.”노승아는 무성한 잡초밭을 가로질러 모습을 드러냈다. 노석명은 딸을 보고도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날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미행당하지는 않았지?”“걱정 마세요. 제가 차를 여러 번 갈아타서 왔어요.”노석명의 시선은 여전히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에 이 부근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CCTV 화면이 떴다. 수상한 사람이 있었
노승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랑 약속하신 겁니다. 오빠가 알면 기뻐할 거에요.”노석명은 딸이 걱정되어 신신당부했다.“조심해서 돌아가. 여자 시체가 발견됐어, 지금 도시안이 안전하지 않아.”그 말을 들은 노승아는 물었다. “아버지, 설마 또 조직이 출동했나요? 저도 가끔 오빠와 그의 부하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어요.”노석명은 고개를 들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여이현이 이 일을 조사하고 있니?”노승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라고 했다. 이때 좋은 아이디어가 노석명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갑자기 웃으며 노승아에게 말했다. “그럼 소식하나 전해주렴. 빨리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이야.”——“안절부절못하고 급해 죽을 지경이네.”지선율은 마치 엉덩이에 못이 박혀 앉기 어려운 것처럼 매우 초조하게 여기저기 서성거렸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뭐가 그리 급해요? 전에 감독님 이런 모습 본 적 없네요.”“지유 씨는 이해 못 해요, 이것은 저의 심혈이에요, 당연히 좋은 결과를 얻기 바라죠. 아직 시작하지 않았으니 더 걱정되는 겁니다.”“알았으니 앉으세요.”온지유는 팽이처럼 돌고 있는 지선율을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좋고 나쁨은 오늘 저녁 8시에 결정돼요. 결과가 그다지 좋지 못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기회가 있잖아요.”“아니, 우리 재산을 탕진했는데 꼭 성공해야지! 지유 씨는 이제 애도 키워야 하고.”두 사람 어깨에 짊어진 책임이 막중했기에 지선율은 걱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온지유도 마음속의 긴장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했고 그 결과가 근심되었다. 그러나 일단 일을 시작했으니 물러설 곳이 없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생각해야 한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투자비 외에 선전비 등등을 써야 했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거 알아요? 《요골》도 오늘 8시 드라마래요. 일부러 우리의 시간과 같이 맞춰 시청률을 빼앗으려는 거
백지희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되찾게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모두 기대가 높았는데 마음속의 이상치에 이르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지선율은 급기야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제 대본이 너무 별로였나요? 왜 이렇게 차이가 심한 거죠. 저는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했는데.”“아니에요!”온지유는 큰 타격을 받고 자신감이 꺾인 지선율을 위로했다. “저희는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아서 인기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제 막 방송을 시작했잖아요. 며칠 있다가 상황을 봐야죠.”지선율은 새빨간 눈으로 울먹이며 대답했다. “저는 처음부터 반응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저희 드라마 반응이 꽤 좋아요.”온지유는 시청자들이 남긴 댓글을 읽어보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보고 나서 장르가 새롭고 보는 게 속이 트여서 더 보고 싶대요.”“하지만 인기가 올라가지 못하잖아요. 시청률이 플랫폼 2위로 1위랑 한참 뒤떨어져 있는데 호평하면 뭐해요.”“인기는 꼭 올라 갈 거예요.”온지유는 주눅이 든 지선율을 격려했다. “오늘이 첮 번째 날인데 벌써 맥을 못 주시면 안되죠!”지선율은 온지유의 말이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일어섰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온지유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실시간 검색어 속 《글로리》의 댓글을 보기 시작했다. 사실 드라마는 따질 곳이 없이 훌륭했다. 본 사람들은 모두 재밌다며 ‘좋아요’를 눌었다. 하지만 《요골》의 첫날 시청률은 올해 최고 기록을 돌파했다. 그에 비하면 《글로리》는 이미 크게 뒤떨어졌다. 그것도 웹드라마였으니 시청률을 올리기 힘들었다. 지금, 노승아는 이미 축하파티를 열고 있었다!“승아 씨, 감독님 축하해요! 드라마 방영 첫날 부터 기록을 깼으니 꼭 대박 날 거에요.”“모두 감사해요.”노승아는 밝은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 사이에서 빛을 내며 서 있었다.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좋
비록 그들은 이혼했지만, 이런 악몽을 꾸면 온지유는 여전히 가슴이 떨렸다. 악몽 때문에 그녀는 잠이 확 깨버렸다. 그녀는 불을 켠 뒤 배를 움켜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물 마시러 나갔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고 다시 인터넷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이때 인터넷이 외부 소식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길이였다. 여성 시체 사건에 대한 소식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기에 그녀는 걱정을 멈추지 못했다.온지유는 갑자기 인명진이 떠올랐다. 지난번에 그의 작업실에서 본 이후로 그녀는 다시는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일이 하도 바쁜지라 그녀는 옆집에 인기척이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밤이 깊어 바늘이 땅에 떨어져도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온지유는 인명진의 집 문 앞에 서 있었지만 어떤 마음으로 인명진을 맞이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타인들에게 페를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서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인명진이 온지유가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바로 문을 열었다. “인명진 씨.”“들어오세요, 지유 씨.”인명진은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온지유는 아무 생각 없이 그의 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들어가 보니 예전보다 더 짙은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명진은 즉시 우유를 데워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온지유는 소파에 앉아 뜨끈뜨끈한 우유를 손에 쥐고 한 모금 마셨더니 달콤한 우유였다. “이건 어떻게 아셨나요?”온지유가 의혹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인명진은 그녀에게 이런 습관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여이현 씨가 알려줬어요. 지유 씨가 이미 알고 있으니 저도 숨기기 싫습니다, 지유 씨가 쓰러진 날, 제가 제때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이현 씨가 저에게 말해줬기 때문이에요. 여이현 씨는 제가 지유 씨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온지유는 안쓰러운 마음에 입술을 씹었지만, 의혹을 이기지 못하고
금방 잠에서 깬 온지유는 아직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세요?”“드라마 말이야! 우리 역습 성공이야!”지선율의 말에 온지유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녀는 바로 일어나 휴대폰을 켜고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어제만 해도 2위였는데 지금은 1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어제 실시간 조회 수보다 오늘 아침에 조회 수가 몇 배나 늘었고 드라마에 대한 평점도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이미 요 며칠 동안의 실시간 인기 신기록을 돌파했다. 이 결과는 온지유에게 큰 놀라움과 기쁨을 주었다. 만약 인기가 계속 오르면 드라마 스토리가 무너지지 않는 한 좋은 결과를 얻을것이다. 온지유는 한동안 걱정했던 마음을 놓고 날아갈 듯 즐거웠다.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노력만 충분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그녀는 재빨리 세수를 하고 동료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나가는 길에 아래층에서 우연히 인명진을 마주쳤다. 그는 벤츠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어디 가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온지유는 기분이 워낙 좋아서 그를 거절하지 않았다.차 문을 열고, 그녀는 그와 좋은 소식을 공유할 준비를 했는데 인명진이 먼저 축하 인사를 보냈다. “축하해요, 지유 씨 드라마 대박 났던데요.”“감사해요. 하늘은 노력하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아요. 사실 손해만 안 보면 돼요, 제 아들의 생활비를 벌 수 있으면 되죠.”온지유는 모든 재산으로 도박을 벌였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녀는 틀림없이 손해를 보지 않고 도리여 조금 더 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온지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였다. 드라마가 잘 된다면 투자자와 출연자 모두에게 나쁘지 않았다.인명진이 웃으며 물었다. “왜 아들이라고 확신하는 거죠?”온지유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사실 딸도 좋아해요. 아들이든 딸이든 다름이 없는데 느낌이 딱 남자아이인 것 같아요.” 육감이 그녀에게 아들이라고 말해주었다. 인명진은 더는 말을 건네지 않고 그녀의 배만 바라보았다. 온
하지만 감동보다는 오히려 속이 울렁거렸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문지원은 당장 얼굴이 일그러지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지석훈도 뒤따라 들어오며 물었다.“속이 안 좋아?”“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요즘 세 끼 식사도 꽤 규칙적으로 하고 날것 이거나 차갑거나 매운 음식도 먹지 않았는데...”문지원은 배를 움켜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지석훈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듯 방으로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가져왔다.문지원은 놀라며 물었다.“언제 산 거예요?”지석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문지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5분 후, 그녀는 복잡한 얼굴로 다시 나왔다. 한 손은 여전히 배 위에 올려져 있었고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정말 임신한 것이다!그녀와 지석훈이 결혼한 지 겨우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임신하다니.지석훈은 오히려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보면 그 역시 겉모습처럼 평온하지 않고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정말 임신한 거예요?”문지원은 아직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번 달 초에 생리가 끝났기 때문이다.“아마 생리가 끝난 후 며칠 사이일 거야.”지석훈의 목소리는 문지원에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니 그녀의 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임신 테스트기는 가끔 틀릴 수도 있으니 이런 일은 직접 검사를 받아보고 확인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손에 든 검사지를 보고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의사는 마침 지석훈과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축하합니다, 지 원장님. 부인께서 임신 2주 차입니다.”“감사합니다.”지석훈은 침착하게 그녀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병원 진료실을 막 나오자마자 지석훈은 문지원을 품에 안았다.“너무 좋아. 우리 아이가 생겼어.”문지원은 남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을 보며 멍하
물론 손에 있는 일을 무턱대고 모두 남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 과한 부담을 주는 일이다.문지원은 비서를 사무실로 불렀다.“올해 25살이죠?”비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나이는 모두가 다 아는데 문지원 회장이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혹시 소개팅을 시켜주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비서는 고마웠지만 거절하며 말했다.“문 사장님, 저는 아직 젊어서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전 당신더러 결혼하라고 하는게 아니에요.”문지원은 펜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냥 평소에 잡다한 일들을 맡기고 싶어서요.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은 평소에 굳이 내게 제출하지 않아도 돼요.”비서는 그 뜻을 이해했다.이건 곧 그녀에게 승진과 급여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문지원이 그녀의 의견을 확인한 후 급여를 조금 올려줬고 비서에게 몇 명의 적합한 인재를 추가로 모집해서 예비 인력으로 두라고 지시했다.“평소에 내가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보고하면 돼요.”비서는 한숨을 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녀 혼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일정이 정리되자 문지원은 업무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고 긴급 통지가 오면 또 회의를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이제는 오후 4시 반쯤이면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비서가 몇 명을 더 찾아서 양성해 두었기에 업무가 적절히 분배되어 모두 바빠 죽을 정도가 아니라 적당히 딱 맞는 분량을 처리할 수 있었다.그 덕에 문지원은 지석훈과 함께 결혼 후의 삶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다.지석훈도 이에 매우 만족해했다.“널 주려고 선물을 챙겨왔어. 들어가서 한번 봐.”그가 집 문 앞에 다가서더니 걸음을 멈췄다.문지원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은 어두컴컴했다.“뭐 숨겨놨어요? 아직 불도 켜지 않았네요, 수상하게.”탁! 하며 불이 켜지자 거실의 모든
문지원은 이 주제가 다소 위험하다고 느꼈다. 비록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배석훈이 결혼한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돼지고기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돼지가 뛰어다니 것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문지원은 그러면서도 반쯤 빚어놓은 만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에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희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아이를 가져야지. 평소에 좀 더 노력해야 한단다.”문지원은 잔소리를 듣고 나서 나오니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시어머니는 문지원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거의 마음을 쏟아붓는 수준이었다. 비록 문지원의 집안 사정이 좋은 것을 알면서도 혼수 때 오랜 세월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사서 선물해 주었다. 사실 지석훈도 자기 집이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다. “너희 집도 너희의 것이지만, 이건 내가 어른으로서 선물하는 거란다.”게다가 그 집에는 문지원의 이름도 함께 올려져 있었다.그래서 시어머니의 출산 독촉에도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버텨야만 했다. 다행히도 시어머니는 어린 이들에게 엄격하게 구는 편은 아니었다. 만두를 빚을 때 한 번 그런 말을 했고 또 떠나면서도 지석훈을 불러 몇 마디 잔소리했다. 문지원은 그 모자간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돌아가는 길에 문지원은 약간 궁금해져 지석훈에게 물었다.“나갈 때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요?”“정말 알고 싶어?”“네.”그러자 지석훈은 문지원의 머리를 숙이게 한 후 그녀의 흩어진 머리칼을 살며시 넘겨주며 귀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우리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하셨어.”남자의 낮고 진한 목소리는 얼굴을 붉히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해 문지원의 귀가 금세 붉어지고 말았다.저녁이 되자 지석훈은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문지원의 머리를 받치고 이마를 맞대며 낮은 숨소리를 내쉬었다. 문지원은 마치 파도 속에 잠긴 것
그 눈빛 속에서 조용히 터져 나오는 그 소유욕. 마치 옛 시대의 군벌과 그의 부인 같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운 없는 사람이 되어 몰래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자신의 상상에 자극받아 목소리가 떨렸다.“지석훈 씨,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봐주세요.”지석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진작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진작가는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 후에도 그들은 여러 세트의 사진을 찍었고 찍은 사진들은 모두 문지원에게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문지원은 모든 사진에 다 만족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었다.“대략 며칠 안에 나오나요?” 그녀가 물었다.사진작가는 답했다.“빠르면 이삼 일정도 걸릴 겁니다. 그때 완성된 사진들을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는데 혹시 두 분께서 응해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바로 아까 찍은 사진 중 몇 장이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어서 사진관 벽에 걸어두고 싶습니다.”문지원은 사진관에 들어올 때 봤던 사진 벽이 생각났다.“그 벽에 걸어두시겠다는 건가요?”“네.”사진작가는 그 벽은 사진관의 특별한 기념 및 홍보 방법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잘 나온 사진들은 사진 주인에게 동의를 구한 뒤 동의하면 벽에 전시한다고 한다..문지원은 옆에 있던 지석훈을 바라봤다. “저는 괜찮은데, 당신은요?” 지석훈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마음대로 하도록 해.”며칠 후 문지원은 사진작가가 보내온 사진을 받아 소중히 간직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 사진관 벽에 전시된 사진들이 곧 사람들의 눈에 띄어 사진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간 것이다.잘생긴 남성과 아름다운 여인의 조합과 최상의 촬영 기술 덕분에 순식간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네티즌들은 저마다 아아 소리를 냈고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마치 옛 시대의 군벌 부인 같다.”“완전 대박이다.”“3분 안에 그들의 모든 정보를 알고 싶다.” 하지만 이 모
문지원은 약간 마음이 움직였다.하지만 웨딩 촬영은 이미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섬에서 몇 세트 찍었고 그 후 결혼식 현장에서 또 몇 세트 찍어 셀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이번 촬영은 개인 예약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사진관이 꽤 유명하다고 들었다.물론 사진관 이름에 걸맞게 예약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이 정도면 지석훈이 얼마나 큰 노력을 들여 예약을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웨딩사진만 찍는 데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하지만 문지원 역시 이런 곳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기에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몰랐다.“한번 보세요. 이건 저희가 예전부터 선보였던 스타일들이에요.”사진작가는 친절하게 앨범 한 권을 꺼내 보였다.앨범에는 이전 고객들이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스타일이 있었고 모두 아름다웠다.이 사진관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정말 최고였다.문지원은 그중에서도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요?”사진작가는 그녀가 가리키는 사진을 한 번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됩니다. 먼저 메이크업하고 옷을 갈아입으세요. 직원들이 촬영 스튜디오를 설치할게요.”옷은 사진관에서 준비한 것으로 하고 지석훈의 요구에 따라 전부 새 옷이었다.사실 문지원은 소품용 옷을 입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한 번 입었다가 나중에 벗으면 되는 거고 몸에 달라붙지 않아서 안에 옷을 받쳐 입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석훈은 직업병이 발동했고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었다.결국,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급히 새 옷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원래 걸리던 시간에서 15분이 더 추가되었고 메이크업 등 기타 과정도 진행해야 했다.문지원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2시간이 지난 후였다.그러나 결과는 확실했다.곧은 치파오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쌌고 문지원은 옷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마치 지난 옛 시대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결혼 후 문지원은 휴가를 내서 신혼여행을 갈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요즘 지석훈이 거의 계속 병원에 머무르며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을 떠올리며 본의 아니게 한숨이 나왔다. 비록 이미 익숙해졌긴 했지만 실망을 감추기는 어려웠다.비서도 그녀에게 물었다.“문 사장님, 신혼여행 가고 싶지 않으세요? 제 동창 중 한 명이 며칠 전에 결혼했는데 요즘 여기저기서 신혼여행 정보를 알아보며 준비 중이에요. 신혼여행이 없는 결혼은 반은 실패한 거랑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제대로 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비서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그렇지 않으면... 문 사장님, 지 의사님이 일하시는 곳에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어쨌든 문지원은 요즘 정신이 산만하여 업무에 집중할 기색도 없었다.문지원은 비서의 시선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와도 지석훈을 보지 못해 한참 혼란스러워했던 자신을 깨달으며 약간 부끄러워졌다.“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기획서 한 부 복사해 가져다주세요.”점심 무렵, 문지원은 막 일을 끝내고 밥 먹으러 가려던 찰나, 핸드폰에 지석훈의 메시지가 떴다. 같이 밥을 먹자는 메시지에 문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이 장면을 본 직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터뜨렸다.문지원은 재빨리 열쇠를 챙기고 회사를 떠났다. 지석훈은 그녀를 새로 오픈한 가게로 데려갔다.식사를 마친 후 문지원은 지석훈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물었다.“병원에 다시 돌아갈 거예요?”“응?”지석훈은 눈썹을 치켜들며 고의적으로 물었다. “내가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순간 당황했다. 사실 그녀는 지석훈이 자신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길 바랐는데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업무에만 매달려 밤에야 겨우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그녀는 그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지석훈은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지석훈은 항상 선을 지켰지만 오늘 밤엔 조금 달랐다. 그는 그녀를 침실에서 욕실로 다시 침대로 옮겨가며 몸 곳곳에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문지원은 여전히 몸속 깊이 스며든 감각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예상대로 휴가를 냈고 이틀이 지나서야 회사에 다시 나왔다.회사 사람들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문지원이 출근하자 하나같이 말했다.“문 사장님, 결혼 축하드려요.’문지원은 무려 사흘이나 결근했지만 다들 그 사흘 동안 무얼 했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짐작이 갔다.분명 부부 생활이 아주 좋았겠지, 아니었으면 일까지 내팽개치고 안 나왔을 리가 없다.문지원은 직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얼굴을 들 수도 없어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지난번에 당한 적이 있었던 터라 문지원은 이제 출근 전에 거울 앞에서 꼼꼼히 점검했다.몸에 키스 자국이 드러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회사를 향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 흔적들을 들켰을 경우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문지원이 예상치 못했던 건 며칠 지나지 않아 결혼을 축하하는 선물이 회사로 배달됐다는 것이다.문지원은 처음에 여울이 보낸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어보니 아니었다.택배 상자의 외관을 살펴봐도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아 더욱 수상했다.“이거 가져온 사람이 누가 보낸 건지 말했어요?”문지원이 로비 직원에게 물었다.로비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두고 바로 가버렸어요.”문지원은 뭔가 직감적으로 찜찜한 마음이 들어 그 택배를 챙겼고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상자를 열었다.그 안에는 브로치 하나와 축하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문지원은 축하 카드를 집어 들어보니 카드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결혼 축하해요.”글씨체는 아주 정갈하고 예뻐 여성의 필체 같았다.그녀는 곧바로 짐작이 갔다.문지원은 그 브로치를 지석훈에게 보여주자 그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아무 말 없이 브로치
여울은 아직 최주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최주하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문지원이 알기로 여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고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몰랐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 일에 깊이 관여하는 것도 괜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게다가 얼마 전 지석훈이 슬쩍 귀띔하듯 말했다.“며칠 전에 여울 씨가 병원에 재검진받으러 왔는데 주하가 데리고 왔었어.”그 말을 듣고 문지원은 혀를 끌끌 찼다.평소에 말도 없고 조용하던 여울이 은근히 비밀 많은 타입이었던 모양이었다.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덧 다음 달 중순이 되었다.지석훈은 아예 와인 농장을 통째로 빌려 며칠에 걸쳐 그곳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놓았다.결혼식을 올릴 장소는 바로 거기였다.그 와인 농장은 웬만한 호텔 못지않게 컸고 내부에는 수년간 숙성된 고급 와인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고 결혼식 날 손님들이 오면 바로 꺼내어 대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들은 결혼 소식을 널리 알리진 않았다.이건 문지원이 원한 방식이었다.그녀는 온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그런 결혼식보다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해서 조용히 축하받는 걸 선호했다.행복은 굳이 남들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그런데 결혼식이 한창일 때 지석훈이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프러포즈했다.해변에서 했던 프러포즈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진중한 분위기였다.“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예전엔 내가 사랑인 줄도 모르고 놓쳐버렸던 순간이 많아. 이제는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앞으로 남은 인생... 너랑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그의 말이 끝나자 하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문지원은 무대 위에서 입을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식이 끝날 무렵, 문지원은 멀리서 검은색 카이엔 SUV가 그녀의 친구 여울을 데리러 오는 걸 보았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가자 예상대로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주하였다
문지원은 문득 자신이 계획에 철저히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처음부터 계획한 거죠?”“응.”지석훈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실, 그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오래전부터 숨겨온 것이었다....해변에서의 프러포즈 이후 문지원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손가락에 반짝이는 반지가 생겼다는 점이었다.이 반지는 지석훈이 특별히 맞춤 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그의 휴대폰을 보다가 두 달 전에 이미 주문이 들어가 있었다는 구매 기록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접한 지석훈의 부모님은 곧바로 혼인신고부터 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지원은 우연히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고 타이르는 말을 듣게 되었다.“네 아빠랑 난 애초에 너한테 기대도 안 했어.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니 너 같은 애한테 누가 시집오겠나 싶었거든. 그런데 다행히 네가 능력 있어서 지원이 같은 좋은 아이를 데려왔으니 얼른 확실히 붙잡아야지. 빨리 혼인신고부터 해. 나중에 그 아이가 너 버리고 떠나버리면 그땐 어디 가서 울어도 소용없어!”문지원은 그 대화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그런데 신기한 건 지석훈이 워낙 점잖고 진지한 사람이어서 집안 분위기도 매우 조용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퇴직해 한가로운 성격으로 매일 독서나 산책을 즐기는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는 커리어 우먼이었고 호탕한 성격으로 남편에게 엄격하면서도 친화력이 강한 사람이었다.두 분 모두 차분한 듯하면서도 내면에 장난기를 숨기고 있는 아들을 낳을 것 같진 않았는데 이게 바로 유전자의 신비인가 싶었다.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그녀를 좋아해 주는 모습에 문지원도 안심했다. 확실히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한편 문지원의 아버지는 지석훈과 따로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