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아직 시간은 많다.언젠가는 이 저택의 여주인이 될 것이다.지금도 한 걸음 가까워지지 않았는가.노승아는 함께 들어 온 배진호를 바라보았다.그는 여이현의 측근이다. 배진호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노승아에게도 유리했다.“배 비서님, 이현 오빠는 여기에 자주 묵나요?”배진호가 휴대폰에 타이핑 했다.'최근에는 자주 여기서 묵고 계십니다. 하지만 대표님도 이 며칠간은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저택에는 안 돌아가시는 건가요?”노승아도 오랜 시간 여진숙과 연락하지 않았다.일이 바빠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몇 번 여진숙에게서 메시지가 왔었지만 회신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대표님은 돌아가시죠. 사모님께서 저택에 돌아가시기를 꺼리셔서 대표님도 자주 돌아가지 않으실 뿐입니다.'노승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럼 최근에는 여기에 돌아오실까요?”'그건 잘 모르겠네요. 대표님도 일이 바쁘시니 사모님을 보러 가실지도 모르겠고요.'배진호의 말은 노승아에게 자기 주제를 알라는 의미가 있었다.노승아는 미소를 지었다.“지유 언니가 방송국으로 옮겨 간 건 저도 이미 알고 있어요. 이현 오빠를 떠난 걸 보니 이미 이혼했나 보죠?”'아직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배진호가 선을 그었다.“그럴 의향은 있으신지요?”노승아가 더 캐물었다.배진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건 두분 사이의 일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필요한 말은 하되, 말할 필요가 없는 말은 알리지 않는다.노승아도 배진호가 온지유를 감싸고 있다는 것에 눈치를 챘다.오랜 시간 함께 일을 해온 사이이니 온지유에게 정이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여이현과 결혼하면 이번에는 누구 쪽으로 갈지 잘 파악할 수 있으리라 노승아는 믿었다.그때가 오면 신경 거슬리게 하는 사람이 배진호라 하더라도 노승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을 거다.지금은 아직 그와 신경전을 벌일 때가 아니다.노승아는 수려원을 자신의 구역이라 여기고 주인 행세를 했다.
‘지금! 지금 당장이라도 좋지!’노승아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여진숙이 노승아를 만나고 싶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노승아는 자리에 앉아 여진숙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노승아는 수려원 안을 둘러보다가 역시 호기심을 못 이겨 안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꽤 오랜 시간 사람이 들어오지 않은 티가 났다.옷장을 열어보니 여성용 잠옷이 여러 벌 걸려있었다.태그를 뜯은 것, 아직 안 뜯은 것도.관능적인 스타일의 것도 걸려 있었다.노승아는 몇 벌 꺼내 자기 몸에 대 보았다. 거울 앞에서 몇 번 빙그르르 돌아보기도 했다.노승아가 이 옷들을 입고 여이현의 앞에서 뽐내 본다면 그도 분명 만족스러워 할 것이다.노승아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기회는 더 기다리면 주어질 것이다.노승아는 눈앞의 큰 침대를 보며 여이현과 이곳에서 뜻깊은 밤을 지새울 것이라 상상했다.20분 뒤.여진숙이 수려원 앞에 도착했다.그녀는 입구에서부터 소란을 떨었다.“승아야, 승아야!”하지만 노승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여진숙은 노승아가 리빙에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승아는요? 수려원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승아 씨는 위층에 계십니다.”도우미가 말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떠올라 한마디 덧붙였다.“아가씨는 지금 귀가 들리지 않으십니다. 아마 직접 올라가셔야 할 겁니다.”“뭐요?”여진숙이 깜짝 놀라 부리나케 위층으로 달려갔다.객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바로 외쳤다.“승아야!”노승아는 뒤 돌아보지 않았다.여진숙은 노승아가 정말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노승아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승아야.”노승아가 머리를 돌렸다.“아주머니.”여진숙은 홀쭉해진 노승아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떻게 된 거야 이게. 어쩌다 귀를 다친 거야? 누가 그랬어!”말하다 말고 여진숙은 눈시울을 붉혔다.노승아는 열심히 그녀의 입모습을 보고 말했다.“아주머니, 전 아무 일 없어요... 요즘 휴가를 받아서 만나 뵈려고 한 거예요.”여진숙은
여희영은 여진숙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었기에 깜짝 놀라 같이 언성을 높였다.“내가 뭘 했는데요? 노승아가 뭐라고 했나 보죠? 내가 뭘 했는지 말해 봐요!”“당신 지금 어디 있는데요?”여진숙의 머릿속에는 여희영을 찾아가 직접 따지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내가 왜 그걸 알려 줘야 해요? 당신이 뭐라고?”여희영은 손에 들었던 안주를 던졌다. 마침 가슴 속에 쌓인 울분을 뱉을 곳이 없었던 참이었다.여진숙이 비웃었다.“무섭나 보죠? 내가 무슨 일이라도 치를까 봐. 당신네 미용원이 박살 난 것도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놀란 거북이처럼 숨어서 안 나오는 게 눈에 훤히 보이네요.”“내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당신이 여재호과 결혼만 안 했어도 한 집의 사람이라 인정도 안 했어요!”여희영이 각박하게 말했다.“그래요, 나야 좋지. 얼굴 맞대고 한번 겨뤄보죠.”여진숙이 말했다.“나오라면 나오지 뭐. 그러신다면 저도 더 이상 안 봐줄 거예요.”그 말을 끝으로 여희영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가방을 들고 바로 밖으로 나갈 기세였다.그 모습을 본 온지유가 외쳤다.“고모님, 어디 가시려고 그러세요! 저도 같이 가요.”여희영이 온지유를 향해 말했다.“넌 가만있어. 여진숙은 지금 노승아를 지키려고 이 짓을 하는 거야. 내가 이 기회를 줄 테니까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보자고.”“고모님...”온지유는 쫓아 나갔지만 여희영은 이미 택시를 타고 떠난 뒤였다.“민우야, 나도 가봐야할것 같아.”온지유는 이게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이미 네티즌들의 여론은 노승아를 향해있다. 만일 여희영의 행적이 발각되면 문제가 생겼을 때 곁에서 편을 들어 주는 사람도 없게 된다.“내가 데려다줄게.”온지유의 조급한 마음을 잘 아는 나민우가 바로 대답했다.여희영은 여진숙이 말한 곳에 도착했다.한 묘원이었다.차에서 내린 여희영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여진숙이 이런 곳을 지목할 줄은 몰랐다.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여진숙이 그녀의 아버지 묘비 앞에 서
“그래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한 가정, 또 한 가정을 망가뜨려 왔나 봐요? 자기 탓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나 보죠?”“내 탓이 뭐가 있는데요!”여진숙이 흥분하며 말했다.“다 당신들이 이렇게 만든 것 아니에요!”노승아는 격분하여 언성이 점점 높아져 가는 두 사람을 말렸다.“고모님, 아주머님과 싸우지 마세요. 아주머님도 잠깐 화가 올라오셨을 뿐이세요. 전 괜찮으니, 아주머님도 한발 물러서는 게 어떠세요? 이러지 마세요.”“너랑은 상관없어! 내 탓을 하는 게 아니라면 여진숙한테는 왜 일러바친 거래? 대신 싸워주길 바란 게 아니냐? 입만 번지르르해서는. 난 너 같은 사람이 제일 싫어.”여희영이 노승아를 향해 큰 소리로 욕했다.그에 여진숙이 여희영을 밀어냈다.“누굴 욕하는 거예요? 승아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욕을 해? 대체 얼마나 더 밑바닥까지 내려가려는 거예요?”“내가 밑바닥이라 해도 당신보다야 더하겠어요?”여희영도 여진숙을 밀쳤다.“지금 내 몸에 손을 댄 거예요?”여진숙이 눈을 부릅떴다.“오늘 한번 끝장을 보죠!”“내가 가만둘 줄 알아!”여희영은 두말없이 여진숙과 몸싸움을 시작했다.뒤따라온 온지유와 나민우가 마침 그 광경을 목격했다.둘은 조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노승 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제 자리에 서 있었다.“고모님!”묘원은 계단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처럼 뒤엉켜있으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었다.온지유의 심장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와 있었다.온지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둘을 떼어 놓으려 뛰쳐나갔다.나민우는 온지유를 걱정해 그 뒤를 따랐다.“지유야, 조심해!”행여 온지유가 다치기라도 할이 조심스러웠다.여진숙과 여희영은 누구도 먼저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머리카락도 서로 잡아당겨 헝클어져 있었다.“당신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해대니 아들이 나를 소원하게 된 거죠! 그것도 모자라 이젠 승아에게도 손을 대! 오늘에야말로 아버지 눈 아래에서 승부를 내고 말 거에요. 아버지께서 보고 계신다면 당
“이현아.”여희영과 싸우던 도중에 여진숙은 그의 존재를 발견하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온지유도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이현은 그들의 발언이 전혀 의외이지 않았다는 듯 차가운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여이현은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여희영은 여이현의 눈빛을 보고 충격받았다.그 순간, 여희영은 자신이 흥분해 여이현의 출신을 밝혀버린 것에 후회했다.여이현에게는 충격이 얼마나 크겠는가.여희영은 정신이 혼미해 여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이현아...”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이들이 묘원에 온 것을 알고,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지 걱정되어 와본 것뿐이다.여진숙은 더더욱 화가 났다.“여희영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요? 날 해코지하려고 악을 쓰더니, 곱게 죽지 못할 거예요!”그녀는 여희영을 힘껏 밀쳤다.여희영의 정신은 여이현에게 팔려있었고, 기세도 누그러들어 있었다. 여이현에게 상처라도 낼까 손도 내렸다.그 탓에 여진숙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단김에 밀려 계단 밑으로 떨어졌다.온지유는 연이은 충격에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 여희영이 계단 밑으로 넘어지는 것을 보고 소리 질렀다.“고모님!”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됐다.여이현의 얼굴에도 걱정이 어렸다.여희영은 열몇 층의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온몸에 상처가 났지만 가장 심한 건 머리에 난 상처였다.온지유가 가장 먼저 여희영의 곁으로 달려왔다.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옆에서 외칠 뿐이었다.“고모님, 일어나세요!”여희영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여진숙은 놀라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진 여희영을 바라보았다.자기 손이 피투성이가 된 것만 같았다.“난... 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저 사람이 날 놀리지만 않았어도 밀칠 것까진 없었는데. 어쨌든 난 모르는 일이에요!”여이현이 걸어와 여희영을 안아 올렸다.“고모님!”불러도 대답이 없자 여이현은 바로 자리를 옮겼다.“빨리 병원으로 가!”그는 여희영을 안고 묘원 밖으로 향했다.
"아니야..."여진숙이 말했다."넌 그래도 내 아들이야. 나도 후회하고 있어. 최대한 보답할게...""필요 없어요."여이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했다."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제 최대의 인내에요. 그 정도로 만족하시죠."여진숙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너 나한테 그러면 안 돼. 너희 아버지처럼 굴 거야? 내가 너를 왜 데려온 줄 알기나 해?"여이현이 대꾸했다."제가 있어서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게 헛수고였었죠."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진숙의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그녀와 여재호의 결혼은 웃음거리일 뿐이었다. 그녀가 억지로 여재호에게 시집간 것이었으니까.여재호는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혐오했다.그녀는 결혼만 하면 여재호가 자신의 것이 될 거로 생각했다.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다. 여진호는 그 뒤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는 늘 홀로 빈방을 지켜야 했다.남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여진숙은 큰 노력을 기울였다.심지어는 그의 아이를 가지려고까지 했다.여진숙은 여재호가 아들을 원하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들을 낳으면 여재호가 자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고, 그가 마음을 돌려 그녀 곁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여진숙은 완벽한 가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결국 여진숙은 아들을 입양할 수밖에 없었다.그 아이가 바로 여이현이였다.하지만 여재호의 마음은 냉혹했다. 그녀가 자기 배로 아들을 낳았어도, 여재호는 여진숙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여재호는 아들조차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실망한 여진숙은 모든 책임을 갓난아기인 여이현에게 돌렸다.여진숙은 여이현을 학대하기 시작했다.밥도 주지 않으며 아이를 굶겨 죽이려 했다.여진숙은 여이현의 생사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다행히도 여희영이 이를 발견하고 여이현을 그 환경에서 벗어
여진숙이 노승아를 감싸고 있던 바로 그때, 온지유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여진숙이 다시 말했다.“지유야, 승아가 지금 이런 상태인데, 더 이상 상처 주지 마."여진숙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식’을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온지유는 노승아가 연약한 모습으로 우는 것을 보고 말했다."왜 말하면 안 되죠? 누구 하나라도 고모님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나요? 어머님은 아들이 떠날지 걱정하고, 노승아는 누군가 자신을 탓할까 봐 걱정하며 동정표를 얻으려 연기를 하고 있잖아요. 고모님이 계단에서 밀려 떨어진 건 제가 두 눈으로 다 봤어요. 실행한 건 어머니고, 배후에서 주도한 사람은 노승아겠죠!"고모님은 심각한 부상으로 수술실에 들어갔고, 온지유는 그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여지도 주고 싶지 않았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여진숙이 호통쳤다."내가 밀긴 했지만, 아주 가볍게 건드린 것뿐이었어. 왜 여희영이 일부러 넘어졌다고는 하지 않는 거니?"온지유는 여진숙을 바라보며 말했다."절대 가볍지 않았어요.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여진숙은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나서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지유 너 나한테 이런 말투로 말하는 거니? 그래도 너의 시어머니고, 너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야. 너 진짜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싶긴 한 거야?"온지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나쁜 짓을 해놓고 할 말이 없으니 이제 와서 어른이라는 이유로 입을 막으려고요? 절 인정하지 않았던 것도 어머니잖아요? 노승아 때문에 이젠 모든 걸 다 인정하는 거예요? 도대체 노승아가 어머니께 무슨 사람이기에 이렇게 보호하려고 애쓰는 거예요?"여진숙은 노승아의 팔을 더 꽉 잡으며 말했다."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네가 여희영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승아에게 손을 대지 않았을 거고, 승아가 청력을 잃을 일은 없었을 거야!"온지유의 시선이 다시 노승아에게 향했다. 노승아는 여전히 흐느끼며 눈물을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모습은 참으로 가련해 보였다.자신이 듣지 못한다는 것을 핑계 삼아,
여진숙은 여이현의 냉담한 태도에 당황했다."이현아!"여이현은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차가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여진숙은 여이현에게 몇 마디 더 말하고 싶었지만 노승아가 주저앉아 울고 있어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여진숙은 결국 노승아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승아야, 울지 말고 빨리 일어나."노승아는 일어서서 여진숙의 품에 엎드려 울며 말했다."이모님, 제가 그렇게 나빠요? 그래서 모두가 저를 싫어하는 건가요?""아니야, 아니야, 나도 널 좋아하고, 모두가 널 좋아해."여진숙은 노승아의 등을 두드리며 그녀를 달랬다.노승아는 계속 여진숙의 품에 엎드린 채 울었다.이러고 있으면, 잘못이 있더라도 피해자로 보여 누구도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여기가 병원이 아니고 사람들이 없었다면, 온지유는 손을 올려서라도 노승아의 가면을 벗겨냈을 것이다. 얼마나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는지, 좋은 볼거리가 될 것이다.물론 온지유는 알고 있었다. 노승아가 한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여진숙은 변함없이 그녀를 보호하리라는 것을.그들 사이의 관계는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그때,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온지유가 고개를 들어보니, 여재호가 다가오고 있었다.정장을 입고 있었고, 키는 여이현과 비슷했다. 머리카락은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비록 나이가 오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젊어 보였으며, 외모도 준수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여희영의 사고에 대해 약간의 걱정을 드러냈다.여희영은 그의 친여동생이었으니, 아무리 그래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온지유는 여가 집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살면서도 여재호를 몇 번밖에 본 적이 없었다.매번 그는 일에 바빠 보였다..그도 여호산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관계는 그리 좋지 않은 듯 보였다.밖에서는 여씨 성을 감추고 현재호라 말하고 다녔으니 말이다.지난 몇 년 동안, 할아버지는 그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돌아가신 뒤 여진그
문지원은 더 이상 이런 문제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어디로 찾아갈지도 모르는 마당에 지금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래서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지금 날 보러 온 이유가 그거야?”여울은 이쑤시개에 꽂은 사과 조각을 입에 물며 투덜거렸다.“언니 진짜 답답하다니까.”문지원은 사과를 깎던 손을 멈췄다.“지금이라도 최주하 다시 불러줄까?”“아니야, 미안. 내가 답답하지. 내가.”여울은 급히 말을 바꿨다.평소였다면 문지원이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여울을 놀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서로 입장 차이가 없으니 누가 누구를 탓할 상황이 아니었다.“그럼 언니 계속 모르는 척만 할 거야?”여울이 다시 묻자 문지원은 침묵했다.모르는 척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지석훈에게 직접 따지기도 애매했다.“당연히 직접 물어봐야지!”여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문지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물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내가 볼 때 지석훈 씨는 양다리 걸칠 사람 같진 않아. 분명히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문지원이 조금 흔들리는 듯하자 여울이 급히 덧붙였다.“게다가 언니가 전에 말했잖아. 석훈 씨가 언니랑 강윤슬 문제에 직접 개입한 적 있다고. 그럼 이미 강윤슬과 언니 사이에서 언니를 택한 거 아냐? 그러니 뭐가 겁날 게 있어?”여울의 말이 문지원의 머릿속을 환하게 밝혀주었다.문지원은 들고 있던 사과칼을 내려놓고 바로 옆에 둔 가방을 집어 들더니 벌떡 일어나 병실 문을 향했다.“어디 가? 날 줄 사과 아직 채 못 깎았잖아!”여울이 외쳤지만 문지원은 이미 병실을 나섰고 그녀는 들뜬 기분으로 병원을 나와 지석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어느새 거리는 어두워졌고 도로 위엔 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가운데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었다.지석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뭘 보고 있었어?”문지원은 살짝 긴장해 하며 미소를 지었다.“그냥 회사 문서들을 봤어요.”“늦었는데 일 그만해.”지석훈은 전혀 의심하는 기색이 없었다.문지원은 안도하고 더 이상 몰래 훔쳐보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워낙 예민한 성격의 지석훈이기에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너무 난감했을 것이다.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굳이 건드리고 싶어 한다.깊은 밤, 문지원은 지석훈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테이블에 손을 올려 살금살금 이동했는데 끝내 그녀가 눈독을 들였던 휴대폰에 손이 닿았다.그런데 마침 그 찰나에 지석훈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고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잠이 안 와? 설마 하고 싶어?”순간 문지원은 몸이 경직되었다.만약 지석훈이 지금 정신을 차렸다면 분명 그녀가 뭘 하려고 했는지 알아챘을 것인데 다행히 그건 아니어서 문지원은 간신히 안도하며 뻗었던 손을 거두고 가만히 있지 않는 지석훈의 손을 밀어내면서 거절 의사를 전했다.“안 돼요. 내일 회사에 나가봐야 해요.”지석훈은 곧바로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녀의 이마에 뽀뽀하고 말했다.“그럼 빨리 자. 안 그러면 나 더 참을 수 없어.”문지원은 서둘러 눈을 감았는데 마음속에 일이 있으니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역시나 그녀는 결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채로 집을 나가게 되었다.다행히 나가기 전에 파운데이션으로 가려서 아무도 그녀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대표님께서 확인하셔야 하는 서류들입니다.”“알았어요. 거기 두세요.”문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비서가 나가려고 할 때 문지원이 그녀를 부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화진 그룹에서는 오늘도 아무 소식 없어요?”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 본 문지원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나가보라고 했다.문지원은 본인이 너무 예민한 거라고 생각했다.강윤슬이 직접 지석훈과 끝났다고 했기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의사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문지원이 잽싸게 다가가서 물었다.“제 친구의 상태는 지금 어떤가요?”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말했다.“환자는 간이 칼에 찔려서 내출혈이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서 생명의 위험은 없습니다. 이제 잘 휴식을 취하면서 회복하시면 됩니다.”문지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옆에 있던 최주하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미간은 조금 전보다 펴진 것 같았다.여울은 마취가 덜 풀려 계속 혼수 상태였고 문지원은 병실에 들어가서 보다가 다시 나왔다.그때 최주하가 부하에게 지시하고 있었다.“합의는 없다고 하고 변호사를 찾아서 살인 미수로 신고해.”부하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살인 미수는 너무 무겁지 않을까요?”“그 정도가 뭐가 무거워?”최주하가 코웃음을 지었다.여울이를 다치게 했는데 살려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라는 눈치였다.문지원이 병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얘기하던 최주하가 고개를 돌렸는데 그의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다만 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최주하는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다.“최 대표님.”문지원이 앞으로 다가가며 최주하를 불렀다.부하를 보내고 최주하가 말했다.“무슨 일이죠?”“최 대표님 때문에 다친 건데 들어가서 보지 않을 거예요?”최주하의 태도에 문지원은 화를 억지로 참고 물었다.여울이와 최주하의 일은 우연히 조금 들었는데 문지원은 최주하가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게다가 지금의 최주하를 봤을 때 더욱더 못마땅했다.여울이가 최주하 때문에 다쳐서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데 병실에 들어가려 하질 않으니 말이다.최주하가 이마를 찌푸린 채 병실 쪽을 보는 모습을 보며 문지원이 또 말했다.“최 대표님, 잘 생각하고 선택하세요. 오늘 들어가지 않을 거면 앞으로도 절대 들어가지 마시고 다시는 여울이를 만나지도 말아요.”최주하는 문지원이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워낙 사람들에게 해명하지 않는 성격이라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문지원의
문지원과 여울은 쇼핑몰에 가서 구경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못 만났고, 또 모처럼 나왔으니 그렇게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다만 누구도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저 사람 강도에요. 잡아줘요.”갑자기 한 남자가 달려오자, 문지원은 잽싸게 피했는데 여울은 피하지 못하고 칼을 든 남자에게 인질로 잡혔다.강도는 과일칼을 여울의 목에 들이대고 외쳤다.“아무도 다가오지 마!”문지원이 경찰에 신고하려는 것을 보고 강도가 또 외쳤다.“경찰에 신고하면 이 여자를 죽여버릴 거야.”“알았어요. 신고하지 않을게요.”문지원은 강도가 정말로 여울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흥분하지 말아요. 사람을 죽이면 당신은 살인자가 되는 거예요.”문지원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강도는 더 이상 흥분하지 않았는데, 인질은 결코 풀어주지 않았다.쇼핑몰의 보안 인원들이 순식간에 강도 주변을 둘러쌌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봉변을 당할까 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그 때문에 쇼핑몰 1층은 순식간에 그들 외 텅 비었다.강도는 여울을 인질로 잡고 모두를 후퇴시켰다.같은 시각 쇼핑몰 2층에서.“왜 이렇게 시끄러워?”최주하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1층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순간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여울이다!최주하가 어찌나 빨리 1층으로 움직였는지 그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천천히 가세요.”여울이도 가까이에 있는 과일칼을 보더니 두려움에 떨었다.강도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모두 뒤로 물러서!”여울은 눈을 감고 지금 죽고 싶지 않으니 누구든 자기를 구해달라고 빌었다.어쩌면 그녀의 기도가 정말로 효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때 강도 손에 있던 칼이 걷어차였고 여울이는 누군가에 의해 구원이 되었다.이 변화는 주변에 있던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여울은 순간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받으면서 눈을 깜빡였는데 아주 익숙한 품에 안기게 되었다.“최 대표님?”여울은 도저히 믿을 수
문이 쿵 하고 닫히고 문지원과 지석훈은 현관에서부터 거실 소파까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소파에 쓰러질 때 문지원이 머리를 부딪힐까 봐 지석훈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었는데 키스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서로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잠깐만요.”문지원이 말했다.지석훈이 멈추려 하지 않자, 그녀는 아예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내려가서 사와요.”지석훈은 붉게 달아오른 문지원의 얼굴을 보며 무언가 떠올리더니 고의로 안 간다고 했다.“안 써도 돼.”그는 문지원의 귓불을 깨물었고 숨소리도 점점 더 거칠어졌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한번 건드리면 멈출 수가 없었다.하지만 문지원은 확고했다.“안 돼요. 사 와요.”지석훈은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문지원의 입술에 입 맞추고 옷을 입었다.“알았어. 기다려.”아파트 입구에 바로 편의점이 있기에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지석훈은 얼마나 급했는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에 핑크색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그동안 그의 욕망은 추호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활활 타올랐다.지석훈은 뒤에서 문지원을 껴안으며 속삭였다.“당신이 뜯어줘.”문지원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직접 해요.”“해줘.”문지원은 하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비닐 포장을 뜯었다.지석훈은 그녀를 들어 올렸고 문지원은 그가 리드하는 대로 움직였다.일이 끝난 다음에도 지석훈은 부족했던지 문지원의 쇄골에 키스하더니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왜 갑자기 이렇게 열정적이야?”“싫어요? 그럼, 다음부터 조심할게요.”“아니, 너무 좋아. 다음에도 계속해.”지석훈은 그녀의 얼굴을 돌려 키스하며 말했다.두 사람은 그 뒤로도 이러한 관계를 서로 묵인했다.문지원은 가끔은 자기 집에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지석훈의 집에서 지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석훈의 집에는 그녀의 물건들이 화장품부터 시작해서 일상용품, 그리고 여성용품들까지 추가되었다.그들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금방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지석훈이 말했다.“그 사람을 괴롭히지 마.”지석훈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강윤슬도 잘 알고 있다.강윤슬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이 떨릴 정도의 차가움에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숨기며 말했다.“석훈아, 오랜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그거야?”“선배, 너무 심했어. 나는 혁수가 아니라서 선배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그러니까 나한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혁수한테 신경 써.”“혁수는 이제 아이까지 있어. 그리고 나한테 이제 관심이 없어.”지석훈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나도 선배에게 관심이 없어.”강윤슬은 한 사람의 말에 이토록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강윤슬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지석훈은 또 말했다.“선배가 나를 받아준 적이 없으니 우리 사이에 끝나고 말고 할 건 없잖아. 그리고 우리 사이 일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강윤슬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석훈아, 너한테 문지원 씨가 다른 사람이야?”지석훈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강윤슬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는데 사진에는 지석훈이 젊은 시절의 최고의 미소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를 향했던 지석훈의 최고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져서 안타까울 뿐이었다.그리고 지금 강윤슬은 똑같은 눈빛으로 문지원을 바라보고 있다.문지원은 강윤슬의 눈빛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편했다.“윤슬 씨,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거죠?”두 사람은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강윤슬은 길거리에 오고 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문지원을 향해 물었다.“석훈이한테서 저에 대해 들은 적 있어요?”“조금요.”강윤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렇겠죠. 석훈이랑 나 워낙 아무런 관계가 아니니까요. 다만 예전에는 내가 석훈이를 쳐다보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후회했죠. 시작한 적도 없는 관계이니... 그냥 방금 한 얘기는 잊어버려요.”문지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강윤슬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문지원은 어른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지석훈은 그녀가 반쯤 울리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도 속일 생각하고 있어?”문지원은 뭐라고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지석훈은 그녀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은 듯 다른 말로 그녀를 앉혀 식사 하게 하였다.마침, 문지원은 급하게 회사에서 나와서 아직 먹지 않았다.오늘뿐만 아니라, 요 며칠 동안 주주들과 상의 하느라 바빠서 그녀는 종종 하루에 두 번, 심지어 하루에 한 번 밥을 먹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초췌하여 지 씨 아버지께서 한눈에 알아차리지 않았을 것이다.지석훈은 병원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가져왔다.병원의 식당은 바깥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영양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그는 마치 진작에 그녀와 함께 식사하기로 계획한 것처럼 미리 두 개를 준비하였다.조용히 도시락을 먹으며 문지원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여 지석훈이 입을 열었을 때도 반응하지 못하였다.“요즘 뜻대로 안 돼?”“조금.”문지원은 무의식으로 대답하고 살짝 굳었는데 지석훈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지 의사 선생님, 계세요?”밖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곧 수술이 있기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네, 알겠어요.”지석훈이 대꾸하자 곧 밖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떠났다.문지원은 이제야 그녀가 바빠서 몸을 뺄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선츠도 비슷하고, 심지어 지나쳐도 모자랄 정도였다는것을 깨달았다. 의사는 워낙 바쁜 직업이라.그런데 그는 이렇게 바쁜데도 시간을 내서 문지원을 위로하려고 하다니... 문지원은 갑자기 양심이 은근히 아파 났다.지석훈은 한쪽에 걸려 있는 흰 가운 외투를 입고 문지원을 쳐다보았다.“난 먼저 일하러 갈게 넌 여기 있을래 아니면 먼저 돌아갈래? 먼저 돌아가면 저녁에 널 찾으러 갈게.”문지원은 도시락을 다 먹고 내려놓았다. “먼저 돌아가 있을게요.”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돌아간 후 지석훈이 그녀를
그 남자는 분명히 강윤슬한테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니 문지원은 돌아가서 주의하기로 결정했다.“화닝 빌딩의 프로젝트에 대해 귀 그룹의 요구 사항을 문정 그룹에서 보았어요. 우리 그룹에서는 두 가지 사항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 우리는 보수와 지불이 불균형하다고 생각해요. 귀사는 모든 재료를 최고 수준으로 배분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익은 10% 미만만 이에요.”“둘째, 우리는 자체 인력이 있으며, 채용 측면에서 귀 그룹에서는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요.”이것이 바로 문지원이 오늘에 온 목적이었다.문지원은 성격이 매우 좋은 사람이기에 일반적으로 갑방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그녀는 그 조건들을 진지하게 경청하지만 이번에 강윤슬은 너무 심했다.심지어 강윤슬 자신조차도, 한 짓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갑방이 협력 파트너에게 이래라저래라 심지어 무슨 사람을 쓰는지까지 상관 한다니 한 일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10%도 안 되는 이윤을 양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약서에서 말하는 ‘두 그룹이 함께 이기자'는 말장난을 하는 것은 문자께임으로 사람을 놀리는 거짓말인 것같앗다.강윤슬은 그녀가 왜 왔는지 진작 알고 있기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너무하다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고객이 신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아.”“고객이 이렇다 하지만 갑방이 프로젝트를 당신들에게 맡기고 당신들도 받아들였는데 지금 할 수 없다고 하면 계약을 위반한 것이야. 계약을 위반하면 두 배의 계약금을 물어내야 하는데, 이 돈을 문정 그룹에서 감당할 수 있어?”그 전에 문지원은 강윤슬에 대해 악감정이 없었다.비록 그녀와 지석훈은 알려지지 않은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문지원은 정말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상대방의 악의를 느낄 수 있지만, 왜 사람들은 모두 근거 없는 악의를 가지고있는지 몰랐다.문지원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강윤슬 씨, 저에게 불만이 있으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그러나 협력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았
문지원은 강윤슬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반드시 가야 했다.한바탕 망설인 후, 그녀는 빠르게 결정 하였다. 가야 할 바엔 가자, 무슨 칼산 불바다도 아니고...강윤슬이 근무하는 회사는 규모가 상당했고, 국내에서 10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큰 회사답게 프런트 데스크 직원도 교육이 잘 되어 있다.“문 대표님, 강윤슬 대표님이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프런트 데스크에서 엘리베이터로 안내하였다. “이쪽으로 오세요.”문지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있는 강윤슬의 사무실에 도착했다.문지원은 강윤슬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녀의 비서가 말했다.“대표님이 회의하느라 바쁘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문지원은 이 말투가 아주 익숙하였다. 그녀는 강윤슬이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소심인 배 한 것이 아니라 전화는 부재중이고,직접 왔는데 바쁘다고 하니, 일부러 그녀를 피하는 것 같았다.문지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협력을 위해 특별히 진심으로 여러분을 찾아왔는데 만약 여러분이 문 씨와 협력할 마음이 없다면, 직접 말하면 될 테니 저를 원숭이로 놀릴 필요는 없어요.”“그럴 리가요.”비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 하였다.아마도 그들은 생김새가 온화하고 사람들에게도 대부분 선의를 가진 문지원이 이렇게 기세등등한 면이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든 간에 문지원은 이미 결정하였다. “5분, 5분만 더 기다릴게요.”“5분후에 오지 안으면 합작이 무산된 걸로 칠 것이에요.”협력은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리는것은 안 되였다. 적어도 문지원은 그런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그녀는 강윤슬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지만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니 급하지 않았다.5분이 지나자, 문지원은 떠날 준비를 했다.강윤슬은 하이힐에 리듬을 타며 느릿느릿 걸어왔다.“일이 좀 있어서 늦었어. 죄송하네.”그녀는 손을 내밀고 입가에 선의의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으로 문지원을 응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