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유 씨한테 너무 불공평해요. 지금으로서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근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왜 대표님한테 연락할 방법은 찾지 않고 지유 씨만 괴롭힌대요?”“신입사원인 저한테 겁주고 싶었겠죠. 채미소 씨가 부서에서의 위치도 알릴 겸요.”공아영은 궁금한 듯 물었다.“그것보다 지유 씨가 대표님 아내라는 말 사실이에요?”그녀는 온지유의 말을 약간 믿는 눈치였다. 온지유는 잠깐 멈칫하다가 핸드폰을 끄면서 대답했다.“지금은 맞지만, 곧 아니게 될 거예요. 우리도 이만 일어날까요?”공아영이 정신 차리지 못한 와중에 온지유는 가방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아직 완벽한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반대로 공아영은 어리둥절해 있었다. 온지유의 말이 약간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상 계속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에 돌아갔다. 채미소와 아이들은 벌써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했다.“정말 대표님이랑 약속 잡았어요? 역시 우리 미소 씨가 최고예요! 못 하는 게 없어요!”“언제 만나기로 했어요? 저는 뭘 준비하면 될까요? 저 재벌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요. 따라가서 미소 씨 곁에 서 있으면 안 돼요?”채미소는 오만하게 콧방귀를 뀌었다.“두 사람도 데려갈게요. 이제 세상 물정 구경할 때도 됐잖아요. 내가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배워요.”“그럼요! 미소 씨는 우리 롤모델이에요!”채미소는 대놓고 자랑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말이다.“여이현 대표님은 다른 사람이랑 달라요. 여진그룹 실세의 인터뷰를 딴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대표님의 눈에 들 수 있다면 반평생 걱정 없이 보낼 거예요.”“역시 미소 씨예요!”채미소가 인터뷰를 따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듣고 다른 동료들도 다가왔다.“미소 씨 대단하네요. 역시 미소 씨만 한 사람 없어요. 해결 못 하는 일이 없잖아요. 이번 일 잘되면 우리 회식이라도 해요. 축하는 제대로 해야죠.”“그럼요. 그 회식 제가 쏠게요. 저를 도와준 사람은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점심에 시간 있어요?]온지유는 아래에 레스토랑 주소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채미소에게도 문자를 보냈다.[점심 12시.]온지유의 문자를 보고 채미소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여이현을 상대할 방법은 진작 생각해 놓았다....같은 시각, 여이현은 기분이 꽤 좋았다. 온지유가 먼저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다.온지유는 한 번도 먼저 약속을 잡은 적이 없었다.‘갑자기 정신 차린 건가? 이혼하기 싫어서 이러는 거 맞지?’여이현은 이게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부잣집 사모님으로 살던 그녀에게 역시 자그마한 오피스텔은 무리라고 생각했다.‘이따가 가서 괜히 도도한 척해볼까? 내가 당한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지. 나 같은 남자 세상에 어디 있어? 다시는 이혼 소리 안 나오게 할 거야.’사무실에 들어왔다가 여이현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배진호는 짧게 노크했다.“대표님, 오후에 주주 회의 있습니다.”“미뤄줘요. 점심에 갈 데가 있어요.”배진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오늘 일정은 아주 많았다. 한 일정을 미루게 되면 모든 일정을 다 미뤄야 했다.“어디에 가시는데요?”“지유 만나...”여이현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바꿨다.“지유가 날 찾아서요.”“두 분 드디어 화해하신 거예요?”여이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며 입꼬리를 올렸다.“글쎄, 지유가 하는 걸 봐서요.”배진호는 미소를 지었다.“그럼 미리 축하드릴게요.”여이현은 그를 힐끗 노려보며 말했다.“축하하긴 일러요. 내가 아직 용서하기로 한 건 아니니까.”“...”배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여이현이 이미 용서하고도 남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엄청 신이 났을 것이다.‘정말 다행이다.’배진호는 남몰래 안도했다. 여이현의 기분이 좋아야 비서인 그도 쉽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보너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을지도 몰랐다.“지금 바로 차를 준비하겠습니다.”여이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
배진호까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여이현은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결국 다 내 문제라는 건가?’“차 준비해요. 지금 바로 출발할 거예요.”...온지유는 차에 앉아서 레스토랑 정문에 도착했다. 채미소는 창문을 톡톡 두드리면서 물었다.“여기예요?”“네. 12시에 만나기로 했어요.”“좋아요.”채미소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이번에 도와준 건 기억하고 있을게요. 내가 편집장이 되면 지유 씨도 보조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이만 들어가요.”온지유는 예약한 룸의 번호를 알려줬다. 채미소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이때 온지유의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를 확인한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보육원 일이 잘 해결된 것이다.그녀는 채미소가 멀어져간 방향을 바라봤다. 당분간은 그녀의 일을 방해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곧장 보육원을 향해 달려갔다.20분 후, 여이현의 차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는 백미러로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나서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적한 복도를 따라 룸으로 걸어갔다채미소는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녀는 자세를 바로 하고 여이현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여이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변을 빙 둘러봤지만, 온지유는 안 보이고 채미소만 보였다. 원래는 평온했던 얼굴이 빠르게 어두워졌다.“여이현 대표님.”채미소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온지유가 정말 성공한 것에 약간 놀라고 있었다.“지유는요?”“지유 씨는 화장실에 갔어요. 금방 돌아올게요.”여이현도 이게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온지유를 놓칠 1%의 가능성이 있기에 참기로 했다.안으로 들어간 그는 채미소와 가장 먼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채미소는 적극적으로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조금 기다리시면 금방 돌아올 거예요. 음식도 주문해 놨어요. 그 전에 저랑 술 한잔할까요?”여이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거절했다.“저는 지유를 기다릴 거예요.”“지유 씨 만나러 오신 거 알아요. 술 마시면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채미소는 깜짝 놀랐다.“대표님?”여이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다시 한번 물을게요. 온지유, 지금 어디 있어요?”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조각과 여이현의 표정을 보고 취기는 빠르게 가셨다. 여이현이 이 정도로 매몰찬 사람일 줄은 채미소도 생각지 못했다.여이현이 싸늘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그녀는 빠르게 대답했다.“지유 씨는 여기 없어요. 여기는 저랑 대표님만 있어요.”여이현은 표정이 더욱 차가워지며 물었다.“오늘 날 만나러 온 사람이 그쪽이란 말이에요?”“네.”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던 채미소는 눈치 없이 말을 보탰다.“지유 씨가 여진그룹 직원이었다길래 제가 부탁했어요. 저는 대표님께 연락할 방법이 없지만 지유 씨는 있으니까요. 저 정말 간절해요. 그리고 지유 씨랑은...”“꺼져요.”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던 여이현은 단호하게 외쳤다. 채미소는 안색이 다 창백해졌다.“거짓말 아니에요. 지유 씨는 제 직장 동료예요. 옛정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쾅!여이현은 아예 테이블을 뒤집어 버렸다. 채미소는 완전히 말을 잃었다.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 뒤집어지는 것은 그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녀는 여이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단단히 화난 여이현은 평소처럼 감정 조절을 잘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밥 한 끼로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이현은 그녀가 건넨 술도 마시지 않았다.여이현은 도무지 화를 견딜 수가 없었다. 온지유가 이런 식으로 다른 여자와 자리를 마련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과받을 줄 알고 온 그만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내가 한참 얕봤네.’여이현은 차가운 얼굴로 나가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채미소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안에 있었다.여이현이 이런 안색으로 나온 것을 보고 배진호는 또 온지유와 다툰 줄 알았다. 그는 눈치껏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어줬다.여이현은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차갑게 말했다.“온지유
온지유의 편집장이 말했었다. 그녀의 편집 실력이 좋다고.편집장은 그녀에게 보육원의 에피소드도 예능에 편집해 넣으라고 했다.만약 더 많은 후원을 받게 되고 투자자도 생기면 고정 예능이 되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예능에 전부 담을 수 있다고 했다.온지유도 처음엔 보육원의 아이들이 새로운 집에서 살기를 바라며 찍은 것이었다.그녀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세상 모든 아이들을 챙길 수는 없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다..“이번엔 정말 고마웠어요.”온지유가 겸손하게 말했다.“뭘요. 급하게 연락했는데 이유도 묻지 않고 도와주셨잖아요. 저야말로 고마워서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지유 씨도 저를 도와주었으니 당연히 저도 지유 씨가 고맙죠.”한정민은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걱정하지 말고 이 일은 나한테 맡겨요. 보육원의 아이들도 분명 행복해질 거예요.”온지유가 들어가자 아이들은 바로 해맑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이모!”아이들은 그녀에게 모여들었다.“이모, 우리도 고기 먹을 수 있대요!”“이모이모, 이것 봐요. 예쁜 머리핀 생겼어요!”아이들은 앞다투어 서로가 가진 것을 자랑해댔다.아이들은 원래부터 순진해 작은 것에서 쉽게 만족하고 기뻐했다. 배불리 먹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아주 행복해했다.“그래, 너희들은 앞으로도 매일 고기랑 영양 가득한 반찬도 많이 먹을 수 있을 거야.”온지유는 아이들에게 말했다.“이모, 감사합니다.”“아니야,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다 이 삼촌 덕분인걸. 이 삼촌이 너희들이 고기 먹을 수 있게 도와준 거야.”“감사합니다, 삼촌.”아이들은 예의 바르게 감사 인사를 했고 자신들에게 잘해준 사람을 똑똑히 기억하려 했다.한정민은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원장은 바빴던지라 온지유와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보살폈다.“이모, 늑대 삼촌은? 늑대 삼촌은 왜 안 왔어요?”이때 한 아이가 커다란 눈을 초롱초롱 뜨며 물었다.
온지유는 메스꺼움을 꾹꾹 참아보려고 했다.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예민해진 후각 탓에 바로 구역질을 해댔다.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한정민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걱정스럽게 물었다.“지유 씨, 괜찮아요...?”온지유는 더는 참지 못하고 코와 입을 막은 채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그녀의 반응을 보던 한정민은 의아했다.‘보통 임신한 사람들이 저런 증상을 보이던데...'순간 그는 뭔가 깨달은 듯 이내 그녀가 들어간 화장실 문 앞에 서 있었다.온지유는 한참 게워냈다.입덧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메스꺼움이 사라지고 온지유는 찬물로 세수하고 나왔다.한정민은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다.“고마워요.”“왜 구역질을 하게 된 거예요? 혹시... 임신이에요?”“네, 바로 알아채셨네요.”온지유는 숨기지 않았다.한정민은 놀란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임신한 상태였다.“축하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이가 생겼을 줄은 몰랐네요.”그는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온지유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저희 다른 거 얘기해요.”한정민도 눈치챘다. 온지유가 아이의 아빠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그녀가 화제를 바꾸려 하니 한정민도 더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다만 마른 몸을 이끌고 임신한 채로 열심히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빤히 보았다.‘혹시 임신 때문에 여진에서 그만둔 건가?'비서보다 못한 직급임에도 그녀가 방송국에 취직한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한정민은 다소 이해할 수가 없었다.‘여자랑 남자는 체력부터가 다르잖아. 만약 배가 불러오기라도 하면 그때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러 다닐 건가?'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졌다.한정민은 바로 비서에게 말했다.“가서 먹을 것 좀 사 와요.”“네, 대표님.”비서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온지유는 카메라 감독과 자기 일을 하러 갔다.피비린내를 맡았을 때 그녀는 손을 올려 코와 입을 막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올라오는 메스꺼움을 꾹꾹 참고
“정민 씨를 놔줘요!”온지유는 한정민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한정민을 감싸드는 그녀의 모습에 여이현은 더욱 화가 났다.“하, 왜. 마음이 아파? 내가 오늘 이 자식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는 발을 들더니 한정민을 걷어찼다.한정민은 입을 열 새도 없이 그의 발길질에 다시 철퍼덕 쓰러졌다.놀란 온지유는 얼른 한정민을 부축하면서 일으켰다.여이현이 그런 그녀를 말리며 소리를 높였다.“지금 감히 내 앞에서 이 자식을 걱정해?!”온지유는 여이현을 보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왜 이렇게 막무가내인 거예요! 한정민 씨는 저랑 같이 새로 일하게 된 사람이라고요!”“그걸 내가 믿을 것 같아?”여이현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이 자식이 방금 널 부축하려고 했어. 네 배 속에 있는 아이가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면, 왜 임산부가 쓸 물건까지 준비해 두었겠냐고! 이 자식이 그 자식이 아니라면 왜 널 걱정하겠어? 하, 넌 지금 또 날 속이고 있잖아!”“제가 언제 이현 씨를 속였다고 그래요!”“날 속인 적 없다고?”여이현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나랑 먼저 약속을 잡은 사람은 너야. 그런데 자리에는 없고 엉뚱한 채미소가 있더라?”그의 말에 온지유는 더는 당당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그래요, 이 일로 당신을 이용하려고 했던 걸 인정할게요. 우리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지금은 한정민 씨 상태가 먼저예요.”“아직도 이 자식을 걱정하고 있어?”온지유의 한 마디 한 마디 전부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한정민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코를 꽉 잡으며 말했다.“전 괜찮아요. 두 분이 먼저 대화를 나눠서 오해를 푸세요.”온지유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녀는 여이현이 왜 이렇듯 충동적으로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와 대화가 통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정민 씨, 미안해요. 저 때문에 정민 씨가 다치셨네요. 제가 일단 상처부터 치료해 드리고 나서 사과하고 배상해 드릴게요.”“전 괜찮아요. 혼자 치료하러 갈 수 있
두 사람의 싸움에 누구도 감히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이현의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온지유의 말에 이성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그러나 온지유는 이상하리만큼 냉정했다.그녀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가슴 쪽에서 씁쓸한 감정이 밀려왔다.이혼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그와 이혼하게 되니 실망에 휩싸였다.어쩌면 그녀는 여이현이 자신에게 이렇듯 화를 낼 거라곤 예상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또 어쩌면 오늘 너무도 많은 일이 벌어져 그녀가 아직 전부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그와 다투게 되어 그런 것일 수도 있다.여이현은 그녀를 빤히 보았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온지유는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네, 그럼 동사무소에서 봬요.”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기대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그래!”여이현은 몸을 틀어 떠나버렸다.떠나기 전에 바닥에 있는 임산부를 위한 비타민을 보곤 짜증이 났는지 발로 걷어찼다.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온지유는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빤히 보았다. 감정 기복이 너무도 심했던지라 이번엔 어지럼증에서 그치지 않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온지유 씨!”보육원의 원장이 쓰러지는 그녀를 보며 바로 달려와 부축했다.“괜찮아요? 안 되겠어요. 쉬어요.”온지유는 원장의 부축을 받으며 바닥에 앉아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자, 물 좀 마셔요.”선생님이 그녀에게 물잔을 건넸다.“고마워요.”온지유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물잔을 받았다.“온지유 씨, 세상에 싸우지 않고 사는 부부는 없어요. 그래도 싸우고 나면 한 침대에서 자면서 화해해야 한다고 했어요.”그녀에게 물잔을 건넨 선생님은 그녀를 위로했다.“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사실 예전의 그녀는 여이현과 다툰 적이 거의 없었다.그녀는 불만이 있어도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여이현은 그녀를 무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