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지유 씨 도대체 어디 출신이길래 이렇게 재수 없어요?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요.”“우리가 좋게 좋게 말해서 만만해 보였나 봐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미소 씨!”채미소의 아첨꾼들이 불 난 집에 부채질했다. 채미소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나한테 와서 무릎 꿇고 제발 도와주게 해달라고 싹싹 빌게 할 거라고요.”온지유는 회사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공아영은 신난 기색으로 말했다.“지유 씨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 부서에 편집장님을 제외하고는 다 미소 씨 무서워하거든요.”“제가 뭘 했다고요. 저는 그냥 사실을 말한 거예요. 미소 씨만 특별한 거 아니에요.”“하지만 미소 씨가 화난 것 같았어요. 이제 지유 씨를 괴롭히려고 할 텐데요.”공아영은 채미소의 성격을 잘 알았다.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좋아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한 번 찍은 사람은 끝까지 물고 놔주지 않았다.온지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영원히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미소 씨도 지금은 잘 나가지만, 인간관계가 엉망이면 결국 몰락하게 되어 있어요. 때가 되면 모두가 복수하려고만 할 거예요.”채미소는 이익지상주의자다. 이익만 따라다니는 그녀는 친구 한 명 없었다. 이용 가치를 잃는 순간 전부 등 돌릴 사람이었다.“지금 보육원에 가는 거예요?”“네, 편집장님이 가보라고 하셨어요. 소재 좀 찾아서 공익 광고 하는 셈으로 기사를 쓰면 된다고 했어요. 근데 이번 일 꽤 중요한 것 같아요. TV 프로그램에 실릴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그건 어디서 알게 된 소식이에요?”“편집장님이랑 얘기하다가 추측한 거예요. 이틀 뒤면 알 수 있을걸요.”온지유는 안정희의 말에 따라 추측했을 뿐이다. 물론 그녀가 틀렸을 수도 있다.어찌 됐든 그녀는 이번 일이 단순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보육원을 주제로 한 사건이 TV에 나온다면 감동적인 요소를 더해서 엄청난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요즘 TV 프로그램은 경쟁이 심했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였다.“지유 씨가 다른 사람의 것을 건드렸으니, 그들도 똑같이 돌려주겠다고 하더군요. 지유 씨더러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했어요. 안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대요. 저도 지유 씨한테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어요.”“너무해요!”공아영이 격분하며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을 건드리면 안 되죠! 그것들은 인간도 아니에요!”“원장님,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온지유도 상대가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 다른 곳도 아닌 보육원을 건드릴 줄은 말이다.“아니에요, 저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유 씨 덕분에 아이들이 이렇게 빨리 고기를 먹을 수 있었잖아요.”원장은 여전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하지만 지유 씨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을 건드린 것 같아요. 그들은 지유 씨를 노리고 온 거예요. 방송국에서 일한다면서 어쩌다 그런 일에 연루된 거예요?”“분명 채미소 씨일 거예요! 지유 씨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이런 수를 써서 협박하는 거잖아요!”온지유는 공아영를 바라보았다. 공아영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채미소 씨는 더러운 수작을 쓰고 있어요. 지유 씨가 먼저 도와줘야만 보육원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을 거예요. 채미소 씨의 일이 잘 안 되면 지유 씨의 일도 마찬가지예요. 채미소 씨는 이런 사람이었어요!”온지유와 갈등이 있는 사람이라면 채미소일 가능성이 높았다. 채미소는 그녀가 자신을 찾아와서 무릎 꿇고 빌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원장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보육원에는 50명 남짓의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근원에서 해결해야 했다.온지유는 차분하게 말했다.“알겠어요, 원장님.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이 문제 제가 직접 해결할게요. 다음 번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요.”“감사합니다, 지유 씨. 이해해 줘서 정말 감사해요.”원장은 깊이 감사했다.“이모!”아이들은 온지유를 부르며 아쉬움 가득한
채미소는 온지유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지금 뭐라고 했어요? 하, 난 정말 지유 씨를 모르겠어요. 내가 그런 말에 넘어갈 정도로 멍청해 보였어요?”그녀의 눈빛에는 무시로 가득했다. 온지유의 말을 전혀 안 믿는 눈치였다.“만약 지유 씨한테 그런 남편이 있었으면 날 찾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 자그마한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해서 나한테 빌고 있는 거잖아요. 허풍을 쳐도 믿을 만한 거로 쳐야죠.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온지유는 속으로 자신이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비록 곧 이혼할 사이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서류상 부부가 맞았다. 채미소에게 밝힌다고 해서 안 될 건 없었다.이게 바로 온지유가 생각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채미소는 믿어주지 않았다.“제가 미소 씨를 도와주면 정말 보육원 일에 간섭하지 않을 거죠?”잠시 생각에 잠겼던 온지유는 결국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이번 한 번 채미소의 말을 따르면 앞으로는 그녀에게 달렸다.채미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요? 지유 씨 연기하는 거 재밌는데 좀 더 해봐요.”온지유는 얼마든지 여이현을 불러낼 수 있었다. 채미소의 삐딱한 태도도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무시해서 얻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그들의 거래가 성사되면 서로에게 다 좋은 일이었다. 보육원 일도 안심하고 할 수 있었다. 안 된다고 해도 그녀의 책임은 없었다.온지유는 차라리 채미소를 도와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제가 대신 자리를 마련할게요.”“여진에서 그렇게 오래 일했으니, 대표님을 꼬드겨낼 핑곗거리 정도는 있겠죠? 이렇게 작은 일도 못 하면 방송국에서 일할 생각 말아요. 일한다고 해도 청소부가 될 거예요.”채미소는 승자의 자태로 말했다. 온지유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나는 지유 씨한테 인생을 가르치는 거예요. 듣기는 안 좋지만 전부 사실이라고요.”온지유는 그녀가 하는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필요 없어요.”“아무튼 좋은 소
“그래도 지유 씨한테 너무 불공평해요. 지금으로서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근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왜 대표님한테 연락할 방법은 찾지 않고 지유 씨만 괴롭힌대요?”“신입사원인 저한테 겁주고 싶었겠죠. 채미소 씨가 부서에서의 위치도 알릴 겸요.”공아영은 궁금한 듯 물었다.“그것보다 지유 씨가 대표님 아내라는 말 사실이에요?”그녀는 온지유의 말을 약간 믿는 눈치였다. 온지유는 잠깐 멈칫하다가 핸드폰을 끄면서 대답했다.“지금은 맞지만, 곧 아니게 될 거예요. 우리도 이만 일어날까요?”공아영이 정신 차리지 못한 와중에 온지유는 가방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아직 완벽한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반대로 공아영은 어리둥절해 있었다. 온지유의 말이 약간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상 계속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에 돌아갔다. 채미소와 아이들은 벌써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했다.“정말 대표님이랑 약속 잡았어요? 역시 우리 미소 씨가 최고예요! 못 하는 게 없어요!”“언제 만나기로 했어요? 저는 뭘 준비하면 될까요? 저 재벌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요. 따라가서 미소 씨 곁에 서 있으면 안 돼요?”채미소는 오만하게 콧방귀를 뀌었다.“두 사람도 데려갈게요. 이제 세상 물정 구경할 때도 됐잖아요. 내가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배워요.”“그럼요! 미소 씨는 우리 롤모델이에요!”채미소는 대놓고 자랑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말이다.“여이현 대표님은 다른 사람이랑 달라요. 여진그룹 실세의 인터뷰를 딴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대표님의 눈에 들 수 있다면 반평생 걱정 없이 보낼 거예요.”“역시 미소 씨예요!”채미소가 인터뷰를 따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듣고 다른 동료들도 다가왔다.“미소 씨 대단하네요. 역시 미소 씨만 한 사람 없어요. 해결 못 하는 일이 없잖아요. 이번 일 잘되면 우리 회식이라도 해요. 축하는 제대로 해야죠.”“그럼요. 그 회식 제가 쏠게요. 저를 도와준 사람은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점심에 시간 있어요?]온지유는 아래에 레스토랑 주소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채미소에게도 문자를 보냈다.[점심 12시.]온지유의 문자를 보고 채미소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여이현을 상대할 방법은 진작 생각해 놓았다....같은 시각, 여이현은 기분이 꽤 좋았다. 온지유가 먼저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다.온지유는 한 번도 먼저 약속을 잡은 적이 없었다.‘갑자기 정신 차린 건가? 이혼하기 싫어서 이러는 거 맞지?’여이현은 이게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부잣집 사모님으로 살던 그녀에게 역시 자그마한 오피스텔은 무리라고 생각했다.‘이따가 가서 괜히 도도한 척해볼까? 내가 당한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지. 나 같은 남자 세상에 어디 있어? 다시는 이혼 소리 안 나오게 할 거야.’사무실에 들어왔다가 여이현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배진호는 짧게 노크했다.“대표님, 오후에 주주 회의 있습니다.”“미뤄줘요. 점심에 갈 데가 있어요.”배진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오늘 일정은 아주 많았다. 한 일정을 미루게 되면 모든 일정을 다 미뤄야 했다.“어디에 가시는데요?”“지유 만나...”여이현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바꿨다.“지유가 날 찾아서요.”“두 분 드디어 화해하신 거예요?”여이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며 입꼬리를 올렸다.“글쎄, 지유가 하는 걸 봐서요.”배진호는 미소를 지었다.“그럼 미리 축하드릴게요.”여이현은 그를 힐끗 노려보며 말했다.“축하하긴 일러요. 내가 아직 용서하기로 한 건 아니니까.”“...”배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여이현이 이미 용서하고도 남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엄청 신이 났을 것이다.‘정말 다행이다.’배진호는 남몰래 안도했다. 여이현의 기분이 좋아야 비서인 그도 쉽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보너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을지도 몰랐다.“지금 바로 차를 준비하겠습니다.”여이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
배진호까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여이현은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결국 다 내 문제라는 건가?’“차 준비해요. 지금 바로 출발할 거예요.”...온지유는 차에 앉아서 레스토랑 정문에 도착했다. 채미소는 창문을 톡톡 두드리면서 물었다.“여기예요?”“네. 12시에 만나기로 했어요.”“좋아요.”채미소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이번에 도와준 건 기억하고 있을게요. 내가 편집장이 되면 지유 씨도 보조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이만 들어가요.”온지유는 예약한 룸의 번호를 알려줬다. 채미소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이때 온지유의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를 확인한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보육원 일이 잘 해결된 것이다.그녀는 채미소가 멀어져간 방향을 바라봤다. 당분간은 그녀의 일을 방해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곧장 보육원을 향해 달려갔다.20분 후, 여이현의 차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는 백미러로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나서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적한 복도를 따라 룸으로 걸어갔다채미소는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녀는 자세를 바로 하고 여이현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여이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변을 빙 둘러봤지만, 온지유는 안 보이고 채미소만 보였다. 원래는 평온했던 얼굴이 빠르게 어두워졌다.“여이현 대표님.”채미소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온지유가 정말 성공한 것에 약간 놀라고 있었다.“지유는요?”“지유 씨는 화장실에 갔어요. 금방 돌아올게요.”여이현도 이게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온지유를 놓칠 1%의 가능성이 있기에 참기로 했다.안으로 들어간 그는 채미소와 가장 먼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채미소는 적극적으로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조금 기다리시면 금방 돌아올 거예요. 음식도 주문해 놨어요. 그 전에 저랑 술 한잔할까요?”여이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거절했다.“저는 지유를 기다릴 거예요.”“지유 씨 만나러 오신 거 알아요. 술 마시면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채미소는 깜짝 놀랐다.“대표님?”여이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다시 한번 물을게요. 온지유, 지금 어디 있어요?”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조각과 여이현의 표정을 보고 취기는 빠르게 가셨다. 여이현이 이 정도로 매몰찬 사람일 줄은 채미소도 생각지 못했다.여이현이 싸늘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그녀는 빠르게 대답했다.“지유 씨는 여기 없어요. 여기는 저랑 대표님만 있어요.”여이현은 표정이 더욱 차가워지며 물었다.“오늘 날 만나러 온 사람이 그쪽이란 말이에요?”“네.”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던 채미소는 눈치 없이 말을 보탰다.“지유 씨가 여진그룹 직원이었다길래 제가 부탁했어요. 저는 대표님께 연락할 방법이 없지만 지유 씨는 있으니까요. 저 정말 간절해요. 그리고 지유 씨랑은...”“꺼져요.”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던 여이현은 단호하게 외쳤다. 채미소는 안색이 다 창백해졌다.“거짓말 아니에요. 지유 씨는 제 직장 동료예요. 옛정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쾅!여이현은 아예 테이블을 뒤집어 버렸다. 채미소는 완전히 말을 잃었다.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 뒤집어지는 것은 그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녀는 여이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단단히 화난 여이현은 평소처럼 감정 조절을 잘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밥 한 끼로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이현은 그녀가 건넨 술도 마시지 않았다.여이현은 도무지 화를 견딜 수가 없었다. 온지유가 이런 식으로 다른 여자와 자리를 마련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과받을 줄 알고 온 그만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내가 한참 얕봤네.’여이현은 차가운 얼굴로 나가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채미소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안에 있었다.여이현이 이런 안색으로 나온 것을 보고 배진호는 또 온지유와 다툰 줄 알았다. 그는 눈치껏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어줬다.여이현은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차갑게 말했다.“온지유
온지유의 편집장이 말했었다. 그녀의 편집 실력이 좋다고.편집장은 그녀에게 보육원의 에피소드도 예능에 편집해 넣으라고 했다.만약 더 많은 후원을 받게 되고 투자자도 생기면 고정 예능이 되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예능에 전부 담을 수 있다고 했다.온지유도 처음엔 보육원의 아이들이 새로운 집에서 살기를 바라며 찍은 것이었다.그녀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세상 모든 아이들을 챙길 수는 없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다..“이번엔 정말 고마웠어요.”온지유가 겸손하게 말했다.“뭘요. 급하게 연락했는데 이유도 묻지 않고 도와주셨잖아요. 저야말로 고마워서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지유 씨도 저를 도와주었으니 당연히 저도 지유 씨가 고맙죠.”한정민은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걱정하지 말고 이 일은 나한테 맡겨요. 보육원의 아이들도 분명 행복해질 거예요.”온지유가 들어가자 아이들은 바로 해맑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이모!”아이들은 그녀에게 모여들었다.“이모, 우리도 고기 먹을 수 있대요!”“이모이모, 이것 봐요. 예쁜 머리핀 생겼어요!”아이들은 앞다투어 서로가 가진 것을 자랑해댔다.아이들은 원래부터 순진해 작은 것에서 쉽게 만족하고 기뻐했다. 배불리 먹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아주 행복해했다.“그래, 너희들은 앞으로도 매일 고기랑 영양 가득한 반찬도 많이 먹을 수 있을 거야.”온지유는 아이들에게 말했다.“이모, 감사합니다.”“아니야,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다 이 삼촌 덕분인걸. 이 삼촌이 너희들이 고기 먹을 수 있게 도와준 거야.”“감사합니다, 삼촌.”아이들은 예의 바르게 감사 인사를 했고 자신들에게 잘해준 사람을 똑똑히 기억하려 했다.한정민은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원장은 바빴던지라 온지유와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보살폈다.“이모, 늑대 삼촌은? 늑대 삼촌은 왜 안 왔어요?”이때 한 아이가 커다란 눈을 초롱초롱 뜨며 물었다.
어둠이 내려앉자 경성은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오늘은 밸런타인데이였던지라 곳곳의 가게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밸런타인데이를 삼켜버릴 것처럼 말이다.온지유는 여희영이 알려준 호텔로 왔으나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커다란 창가로 여희영이 알려준 파란 장미를 든 남자를 찾아보고 있었다.테이블마다 한 쌍씩 앉아 있었지만 여희영이 말한 남자는 없었다.전화를 들어 여희영에게 상대가 기다리다가 지쳐 먼저 돌아간 것은 아닌지 물어보려고 한순간 익숙한 형체를 발견하게 되었다.여이현이 코너를 돌며 2층의 룸으로 올라갔다.밸런타인데이에 귀가하지 않고 이곳에 와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온지유의 머릿속에 순간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여이현이 바람을 피웠다는 가능성이었다.그녀는 씩씩대며 호텔 안으로 들어간 뒤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어서 오세요, 몇 분이실까요?”직원이 그녀를 붙잡았다.온지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이 안에 몇 분이 예약되었는지 알려주시면 이 돈을 전부 드리죠.”그녀는 통 크게 돈뭉치를 꺼내 직원에게 주었다. 직원은 눈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였다.밸런타인데이에 호텔에 혼자 오는 사람은 없었다.그녀는 바로 발을 들어 문을 차버리곤 코웃음을 쳤다.“이현 씨, 즐거운가 봐. 나한테 들켰다고...”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룸 안에 여이현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온지유는 바로 고개를 돌려 직원에게 따져 물었다.“안에 둘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대표님께선 두 명으로 예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내 분이 도착하지 않으셨다고...”“이제 가도 됩니다. 여긴 제가 설명하죠.”여이현은 직원에게 물러나라고 하곤 문을 닫으려 했으나 그제야 문이 뜯겨 나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내 빙긋 웃었다.“룸을 바꿔야 할 것 같네.”직원은 눈치껏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온지유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바람 피우는 현장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직원은 그녀에게 여이현의 아내가 아직 도착하지 않
“얼른 여이현한테 전화해서 여진을 나한테 넘기라고 말해. 그리고 여씨 가문의 모든 재산도 전부 나한테 주라고 해. 안 그러면 지금 이곳이 곧 너의 무덤이 될 테니까.”여재호는 뒤를 돌아보라는 턱짓을 했다.온지유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이현 씨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니까 헛된 망상은 그만하시죠.”“여이현이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 널 죽여버리면 돼. 그리고 네 아들을 여기로 잡아 오는 거지. 여이현이 그럼에도 넘기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네 아들도 죽이는 거지 뭐.”여재호는 칼을 꺼낸 후 온지유의 앞으로 갔다. 그녀의 턱을 꽉 잡으며 뺨을 때렸다.“가능한 어떻게든 여이현을 설득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서늘한 칼날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온지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여재호는 돈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계속 이 세상에 남는다면 세상은 앞으로 불안만 가득해질 것이다.무언가 떠오른 온지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제가 이현 씨를 설득해볼게요. 그런데 저한테 핸드폰이라도 줘야 설득해보는 거 아닌가요? 핸드폰도 없이 제가 어떻게 말을 해보죠?”여재호는 머릿수가 많다는 이유로 방심하면서 온지유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어차피 산 아래에도 그의 사람들이 깔려 있었으니까.바로 옆 사람에게 지시를 내려 온지유에게 핸드폰을 주었다.자유를 되찾은 온지유는 뻐근한 손목을 돌리며 여이현에게 전화를 거는 척했다.“이현 씨, 나 지금 사방이 무덤인 산에 있어. 얼른 와줘...”“씨X, 지금 날 속여?”여재호는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확 빼앗았다. 온지유는 그를 꽉 끌어안더니 벼랑 끝으로 뛰어내렸다.“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여재호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차정혁이 얼른 사람들과 함께 벼랑 끝으로 달려와 내려다보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온지유는 죽지 않았다. 이미 전에 더 험한 일을 당했었던지라 여재호를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여재호가 그 말을 하자마자 그녀는
두 사람은 익숙하게 별장으로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희영을 부축하면서 나왔다.온지유는 여희영이 입원한 병원으로 왔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여희영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여희영은 그런 온지유의 손등을 토닥이며 달랬다.“괜찮아. 정말이야.”“저희가 너무 소홀했어요.”“너희 탓이 아니야. 이것도 다 내 운명인 거지. 이런 오빠의 동생으로 태어난 게 잘못이지.”여희영은 말을 마친 후 여이현을 보았다.“여재호가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놨어. 얼른 다시 원상복구 해야 해. 절대 다른 사람이 빈틈을 노리게 해서는 안 돼. 그리고 여재호는 고민할 것 없어. 그냥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처리해.”여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계획이 있었다. 이번 일을 겪은 후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회사 쪽은 여희영이 입원해 있는 동안 전부 깔끔하게 정리했다.속도는 빠르게 진행도이었다. 아무리 여재호가 업소녀에게 돈을 주며 입막음을 했다고 해도 늦었다. 경찰이 너무도 빠르게 도착했기 때문이다.여재호의 사람들을 전부 해고했다. 그리고 그가 매수한 거래처들과도 전부 거래를 끊어버렸다.여재호에게 처음으로 매수당한 고객은 차정혁이었다.그는 가짜를 진품처럼 팔고 품질이 안 좋은 물건을 대놓고 팔았다. 여재호에게 매수당하지 않았어도 여이현은 그와 거래를 끊을 생각이었다.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차정혁은 바로 여재호에게 자료 한 부를 건넸다. 그 자료에는 여진 그룹 서류뿐만 아니라 온지유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시간도 적혀 있었다.여재호는 미간을 찌푸렸다.“여이현의 여자를 건들라고? 죽고 싶어?”“대표님, 정말로 판을 뒤엎고 싶다면 이것이 마지막으로 남은 기횝니다. 아니면 정말로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밟히고 싶은 겁니까. 잊지 마세요, 여진 그룹을 물려받아야 할 사람은 응당 대표님이십니다.”차정혁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이 일은 제가 다 준비를 해뒀으니 대표님께선 지시만 내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제 사람들이 바로
“날 조롱할 것 없어. 여이현, 네가 날 찾아왔다는 건 내가 여진을 조정하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찾아왔다는 의미겠지. 그래, 여진은 내가 반드시 손에 넣을 거야. 여진뿐만 아니라 여씨 가문 모든 재산을 손에 넣을 거라고.”여재호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말했다. 꼭 반항기가 흘러넘치는 청소년처럼 말이다.여이현은 술을 한잔 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모는 어디에 있어요.”그는 회사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여재호에게 고모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 찾아왔다.오는 길에 이미 여희영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으나 여희영을 찾을 수 없었고 그의 추측이 거의 확신이 되어갔다.여재호의 표정이 부자연스럽게 굳어지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멈추었다.“여희영을 데려가도 돼. 하지만 내일 회사로 가서 계약서에 사인해. 여진의 모든 지분과 운영할 권리는 내게 넘긴다고.”“제가 싫다고 하면요?”“그럼 여희영을 만날 생각은 하지 마. 희영이가 걱정되지?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여희영한테 그렇게 네 편에 서지 말라고 말했는데 말이야. 오빠인 내 말을 안 듣더라고.”여재호는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이현은 그와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차 키를 들고 일어나며 싸늘한 시선으로 여재호를 보았다.“그동안 꽤나 많은 돈을 빼돌리고 계셨나 봐요. 집까지 업소녀를 부르고 말이에요. 지금 신경 써야 할 게 명성이 아닌가요? 이미지 나락으로 빠지고 싶은 거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거예요.”여재호는 코웃음을 쳤다.“저의 일 처리 방식이 어떤지 그동안 봐서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고 자비도 베풀지 않는 사람이죠.”말을 마친 여이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여재호는 여이현의 말에 순간 겁을 먹게 되었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방으로 올라간 여자에게 화풀이했다.여재호에게서 단서를 알아내지 못한 여이현은 다시 회사로 돌아와 모든 CCTV를 돌려보았다.여희영이
“날 오빠 취급하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돈 생기고 권력이 생기면 내가 원하는 걸 전부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니까.”여재호는 결국 여희영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폭행한 후 작은 다락방에 가둬버렸다.밤이 되니 온지유와 여이현이 탑승한 비행기도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광고판에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공항에 설치된 가장 큰 광고판에는 여진 그룹에서 출시하여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화장품 영상을 틀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음식 밀키트 광고로 바뀌었다.여이현의 동의도 없이 광고를 바꿨다는 건 너무도 이상했다.두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은 경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온지유가 입을 열려던 순간 여이현의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를 건 사람은 기획부 부장이었고 여진 그룹의 원로라고 할 수도 있는 존재였고 여진을 향한 충성이 아주 높았다..“서 부장님, 마침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공항 광고판 광고가 왜 바뀐 거죠?”“대표님, 안 그래도 이 일로 연락드렸습니다. 얼른 저의 집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다들 대표님만 기다리고 계십니다.”서철민은 다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이현과 온지유는 더는 묻지 않고 바로 서철민의 집으로 출발했다.서철민의 집 서재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이현을 보자마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님.”모든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여이현은 그들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한 뒤 입을 열었다.“저를 찾으신 이유를 말해보세요.”그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으나 증거가 없었기에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여재호가 저희 회사 재무부장과 구매부 부장, 그리고 일부 고객들을 매수했습니다. 현재 여진이 여재호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하...”서철민과 일부 사람들이 까발린 여재호의 만행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경성으로 돌아오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줄 알았으나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이현에게 연락하며 상황을 알렸다.하지만 그는 배진호와 함께 비행기에 있어 전화를 받지 못했다.여재호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돈과 지위를 얻는 것이었다.과거에 자신이 손에 넣지 못했던 재산을 이번에는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이었다.그가 여진그룹에서 큰 소동을 일으키자 결국 여희영도 나서게 되었다.여희영은 직접 찾아와 그를 말렸다.“할 말은 이미 다 했어. 그날 결혼식에서 이현이의 태도가 얼마나 분명했는지 오빠도 직접 봤잖아. 그런데 왜 또 이러는 거야?”“이현이는 너를 홀대한 적이 없잖아?”여진 그룹이 위태로웠던 시절 여이현의 뛰어난 능력 덕분에 그룹은 조금씩 번창하며 오늘날의 위치에 올랐다.하지만 지금...여재호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이현이 여진 그룹을 이 정도로 키운 건 맞아. 그런데 문제는 나도 빈손으로 남을 수는 없다는 거야.”“네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너를 불러들였을 때엔 왜 거절하지 않았대?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여희영는 직설적인 성격이었다.그녀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일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말하는 성격이었다.게다가 그녀의 오빠는 지금까지 제대로 한 일이 없었을뿐더러 지금은 더 악랄하게 굴고 있었다.“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어이가 없어서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할 말이 없으면 하지 마. 내가 하는 일이 네게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 뭘 걱정하는 건데? 여희영, 너도 알잖아. 이현이는 가문의 사람이 아니야. 왜 네 팔은 밖으로만 굽는 거야?”여재호는 돈을 받지 못하고 여이현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것만으로도 이미 인내심이 폭발할 지경이었다.여기에 여희영의 말까지 더해지자 그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었다.여희영도 화가 치밀었다.“내 팔이 밖으로 굽는다고? 오빠가 가문을 내팽개쳤을 때 나는 가문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아버지와 이현이에게 일을 다 떠넘기고는 이제 와서
“전 무열 씨의 의지력을 믿어요. 당신이라면 분명히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는 제가 계속 상태를 관리할게요.”인명진은 부드럽게 말했다.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약물 금단 증상은 고통스러웠지만 신무열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특히 김혜연은 늘 그의 주변에 함께 있어 주었다.덕분에 신무열은 일주일 만에 약물 의존을 끊어냈다.이는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었고, 특히 김혜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무열 씨, 우리 현장에도 내려가 봐요. 현장에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김혜연의 생각은 간단했다. 함께 일에 몰두하면 그는 아린의 죽음을 떠올릴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동안 신무열은 막 결혼한 상태에서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더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신무열은 김혜연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좋은 생각이야. 현장으로 가자. 이쪽의 일은 내가 처리해 둘게. 요한도 있으니까 걱정 마.”“좋아요.”그들의 결정을 들은 법로는 남아서 Y국의 상황을 관리하기로 했다.그는 별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경성에서 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매우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이번은 신무열과 김혜연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Y국에 온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져 버렸다.“별아, 이번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돌아가면 말 잘 들어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나중에 보러 갈게.”법로는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외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아빠랑 엄마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돌아오시면 꼭 다시 만나요!”“그래.”법로는 그들을 공항까지 직접 배웅했다.업무적으로는 배진호가 있었지만 온지유와 관련된 부분은 온지유의 결정을 존중했다.배진호는 먼저 제안했다.“대표님, 아드님을 제가 먼저 데려가서 학교에 보내겠습니다. 두 분은 Y국에서 조금 더 머무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모님의 양부모님들과
신무열은 김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걱정 끼쳐서 미안해.”“무열 씨, 제발 꼭 좋아져야 해요. 이렇게 날 떠나면 안 돼요. 우리... 우리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다 아쉬움으로 남았잖아요.”김혜연은 신무열을 꼭 끌어안으며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간절히 말했다.그녀는 정말로 두려웠다.만약 신무열의 마음속에 모든 분야에 출중한 완벽한 존재가 있었다면 그녀는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아린의 경우는 달랐다. 모든 조건을 떼어 놓고 보면 말이다.김혜연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졌지만 선택을 하지 않은 건 그녀 자신이었다.김혜연은 신무열의 남은 생이 죄책감 속에서 허비되지 않기를 바랐다.신무열은 김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하려는 말 다 알아. 걱정하지 마. 나도 최선을 다해 이전의 일들에서 벗어나려고 할게.”김혜연은 그런 문제들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신무열은 그녀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이때, 인명진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신무열의 약물 의존은 법로가 책임지고 있었고, 인명진은 그의 심리 치료를 맡게 되었다.신무열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아린이 자신의 품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마음의 상처를 도저히 치유할 수 없었다.인명진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그는 최면을 통해 신무열의 내면을 하나씩 풀어가며 그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신무열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저 때문에 죽어가요. 죽음이 이렇게도 불공평하고 아무 소리도 없이 다가온다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신무열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나왔다.인명진은 낮은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모든 일에는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무열 씨는 최선을 다했고 아린을 방치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현실은 잔혹해요. 무열 씨에게는 방법이 없었고, 아린에게는 죽음이 오히려 해방이었을지도 모르죠.”“노예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수천, 수만 명이었어요
신무열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통스럽게 절규했다.그의 이런 모습을 본 온지유는 가슴이 찢어졌다. 매일 곁에서 지켜보는 김혜연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다.온지유는 신무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오빠,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아요...”하지만 신무열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힘겹게 말했다.“아니, 내 잘못이야. 만약 내가 더 잘했다면 아린은 희생하지 않았을 거야. 죽음을 많이 봐왔지만 이번처럼 고통스러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지유야, 너도 알잖아? 난 아린이 눈앞에서 죽는 걸 직접 봤어...”그의 목소리는 쉰 듯한 낮은 톤으로 하나하나 쏟아져 나왔고, 온지유는 처음으로 신무열이 이렇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게됐다.도와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그녀는 무력감을 느꼈다.신무열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스스로를 해칠까 두려웠던 온지유는 급히 법로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법로는 실험실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신무열의 상태를 본 법로는 마음이 아팠다.신무열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다!상태를 점검한 법로는 신무열이 몰래 페노바르비탈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더욱 심각한 것은, 이 약물은 한때 법로거 개량했던 중독성을 유발하는 형태였다는 점이었다.신무열의 방금 전 감정 폭발은 약을 제때 복용하지 못해 나타난 금단 증상이었다.법로는 즉시 실험실의 약물 사용 규정을 엄격히 강화했다.앞으로는 모든 약물 사용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령했다.또한, 신무열이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철저히 관리했다.신무열은 Y국의 수령으로, 많은 이들이 그를 끌어내리고 새 인물을 세우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만약 그의 약물 복용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반드시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이 분명했다.김혜연은 신무열의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법로가 이를 막아섰다.“신무열이 자리를 비우는 건 공적인 이유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네가 자리를 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