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네 배 속의 아이는 뭔데?”여이현은 거의 소리치듯 외쳤고,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그 말을 듣고 온지유는 눈을 크게 뜨며 충격을 받았다.여이현이 갑자기 온지유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고, 순간적 적절한 변명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여이현은 그녀의 멍해진 눈빛을 보며 모든 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그는 비웃으며 말했다.“할 말도 없나? 평생 누구에게도 배신당한 적이 없는데, 네가 첫 번째네.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온지유는 그의 뜨겁고도 위험한 손길을 느끼며 그가 지금 와서야 자신을 찾은 이유가 임신 소식을 알게 되어서라는 것을 깨달았다.여이현의 위험한 눈빛을 보며 그녀는 더욱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한 손으로 배를 감싸며 말했다.“임신한 게 사실이라 해도, 우리 사이의 계약을 어긴 건 아니에요.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한 건 당신이 한 말이니, 약속을 지키길 바라요. 어차피 우리 결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혼하면 당신도 다시 결혼할 수 있잖아요.”“아이의 아빠는 누구야?”여이현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떨며 눈을 감았다.“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당신은 아니에요!”“석이의 아이야?”여이현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석이가 대체 누군데? 나민우...?”“아니에요!”온지유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누구야?”여이현은 그 사람에 대해 매우 궁금했다. 온지유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온지유는 다시 말했다.“제 사생활일 뿐이에요. 지금 말할 의무는 없어요. 그럼, 대표님, 이미 늦었으니 저는 돌아가서 쉬어야 할것같네요. 내일도 출근해야 하거든요.”온지유는 그의 손을 피해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여이현이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배 속의 아이도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자신의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여이현은 온지유가 떠나려 하자 얼굴이 차갑게 변하며 다시 품속에 끌어안아 가두
온지유는 여이현의 뺨을 세게 때렸다.여이현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손길을 받았다.얼굴에는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그는 고개를 잠시 돌렸다가 다시 온지유를 차갑게 쳐다보았다.온지유 역시 충격을 받아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힘이 많이 들어가 손이 얼얼했다.온지유는 이렇게 반응한 것에 본인도 매우 놀랐다.여이현과 7년을 함께 지내면서 어떤 갈등이 있어도 손을 대본 적이 없었다.그녀뿐만 아니라 여이현도 자라면서 아무에게도 맞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온지유...”여이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온지유는 저리는 손을 거두며 변명했다.“고의가 아니었어요… 당신이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때릴 일 없었잖아요!”여이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온지유는 이제 자신을 떠날 용기도 생기고, 때릴 용기도 생겼다. 꽉 쥔 주먹의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화난 여이현의 모습에 온지유는 조금 두려웠고, 그가 마찬가지로 손을 올릴까 봐 겁이 났다.하지만 여이현은 그저 온지유를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그 남자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야?”온지유는 아이의 진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여이현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이 아이는 그녀가 결정할 문제다.이기적일 수는 있지만, 그가 노승아와 몰래 눈치 보며 얽혀있는 것보다야, 차라리 시원하게 관계를 끊는 것이 나았다.여이현이 만약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면, 아이를 지우든, 낳아 키우든, 어떤 선택도 온지유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온지유는 여이현과 아무런 연관도 갖고 싶지 않았고, 이 아이가 온지유의 것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아이의 존재를 안 여이현이 오늘은 남기길 용서한다 해도,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이혼을 원할 것이고, 아이의 양육권은 그에게 박탈될 것이다.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여이현이 자신과 잘 지내리라고 믿을 수 없었다.예전에는 많이 양보를 해왔지만, 이번만
심지어 약까지 써가며!아이를 지우라는 요구조차도 듣지 않으려 한다.눈앞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감히 이 여이현을 두고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여이현은 결국 온지유의 손을 놓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눈빛은 차가웠고 이미 온지유에게 크게 실망한 모습이었다.“온지유, 넌 꼭 후회할 거야!”단호한 몇 마디였다.그 말을 들은 온지유의 상처 입은 얼굴을 뒤로 한 채 돌아섰다.온지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렸지만, 고집을 꺾지는 않았다.여이현은 더 이상 뒤돌아보지도 않고 온지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온지유는 그 자리에 웅크려 앉아, 붉어진 자기 손목을 꽉 잡고 고개를 떨구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회오리쳤다.온지유는 공허했다.그러나 이런 공허함을 처음부터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단지 몇 번이나 실망을 겪고 나서야 혼자 있는 것이 좋다고, 이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온지유는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더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여이현은 다시 나타났다.다시 절망의 날들로 데려갔다.그래, 온지유는 더 이상 불안한 삶을 원하지 않았다.그녀의 선택은 옳았다.그리고 후회해서는 안 된다.온지유는 흐르지 말았어야 할 눈물을 닦고, 일어서서 다시 용기를 내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앞으로의 삶은 나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 좋아질 것이다.온지유는 여이현이 모든 것을 잘 이해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또한, 이번 일을 겪고 난 여이현도 다시는 온지유를 찾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남자란 자존심이 있어야 하고, 체면도 중요하니까.미련이 남아 있었더라도, 온지유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밴 것을 알고 났으니, 이제는 더욱더 그녀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집으로 걸어갔다.피곤했다. 그냥 푹 자고 싶었다.--여이현은 차 안에 앉아 차갑게 굳은 얼굴로 앞을 주시하며 칼날 같은 시선을 보냈다.그래도 풀리
몇 초간의 정적 후, 온지유가 안정희를 보며 말했다.“제가 여진그룹 대표의 인터뷰를 맡는다는 말씀인가요?”안정희는 손을 모으고 일어나며 여유롭게 말했다.“맞아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여이현씨를 인터뷰하는 일은 쉽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당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온지유는 파일을 닫으며 말했다.“제가 여진그룹에서 나왔다는 건 이력서에서 잘 확인하셨을 거라 믿어요. 제게 다시 돌아가라 하시는 건가요?”온지유는 방송사에 입사할 때 여진그룹에 알리지 않고 떠났었다. 여이현과 결코 가볍지 않은 갈등을 안고 있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었다. 여이현의 말처럼 후회하게 될 것이다.안정희가 온지유와 여이현 사이의 관계를 알 리가 없었다.“지유 씨가 여진그룹에서 나왔으니 서로 조금은 아는 사이잖아요. 이 일은 지유 씨 밖에 못 해요.”온지유는 파일을 책상 위에 놓으며 말했다.“편집장님, 죄송해요. 전 못 맡겠어요...”온지유는 죽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신분을 바꿔서여도 마찬가지였다. 여이현과는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 여이현이 더는 그녀에게 좋은 얼굴을 해주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이나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았다.나정희가 말했다.“아까도 말했잖아요? 익숙함을 벗어나야 한다고요. 여이현씨를 인터뷰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그도 옛 동료인 지유 씨에게는 호의적일 거예요.”이 작업은 계속 지연되었고,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온지유가 이곳에 온 것은 운명이나 다름없었다.“이 일을 마치면 온지유씨의 능력도 증명될 거고, 앞으로의 업무 배치도 더 수월해질 거예요. 좋은 기회가 보이면 가장 먼저 지유 씨를 생각할게요.”안정희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유 씨가 여진그룹이라는 큰 나무를 버리고 방송사에 온 것도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서겠죠. 이번 일은 좋은 기회이지 않나요?”온지유는 이유를 물었다.“편집장님은 제가 여진그룹과의 갈등으로 회사를 나왔다고는 생각하
온지유는 방송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동료들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모든 사람과 말을 나눠 본 것은 아니었다.눈앞의 채미소와도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그렇다고 들었어요.”온지유는 파일을 주워서 정리했다.채미소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편집장님이 왜 이런 중요한 일을 지유 씨에게 맡긴 거죠? 지유 씨는 이제 온 지 얼마 안 되는데,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온지유는 채미소의 말에서 비꼬는 느낌을 받았다.“저도 제가 이 일을 맡기에는 능력 부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이런 상황에 익숙했던 온지유는, 이 일이 매력적인 과제일 수 있음을 알고, 채미소를 쳐다보며 물었다.“이 일, 하고 싶어요?”채미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온지유와 더 이상 엮이는 것이 자신의 급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 편집장의 사무실로 들어갔다.온지유는 채미소의 오만함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이 일을 맡고, 편집장님이 동의해 주는 것이 온지유에게는 더 좋았다. 방송국의 경쟁은 치열해서 많은 사람들이 10년을 일해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온지유는 큰 기업들을 상대하는 데서 경험이 많았고, 여이현과의 인터뷰는 있으나 마나였다. 안정희가 온지유를 이 일에 배정한 것은 능력을 봐서가 아니라, 온지유가 여이현 옆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 인터뷰를 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지유 씨, 미소 씨는 원래 이런 성격이에요. 자존심 강하고 자기가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옆자리 동료인 공아영이 말했다.공아영은 나이가 많지 않았고, 방송국에 온 지 1년도 안 된 신입이다. 뉴스 관련 전공 졸업생이지만 경력이 부족해 주로 글 작성만 해왔다. 귀엽고 순진한 여자아이였다.온지유는 파일을 정리한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고마워요, 전에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 본 적 있어서 어떤 타입인지 알겠네요.”경쟁이 심한 곳일수록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방송국에서는
“그래요.”온지유는 가볍게 응답했다.채미소는 기대하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본래 하려던 말을 접었다. 신입인 온지유를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파일을 챙기고 고개를 꼿꼿이 들고 힐을 또각또각 소리 내며 돌아갔다.공아영은 채미소의 뒷모습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온지유는 공아영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물었다.“채미소가 아영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했어요?”공아영이 말했다.“여기저기 괴롭히고 다녀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요. 아무도 감히 반발하지 못해요. 미소씨가 여기서 가장 성과가 좋으니까요.”“성과가 좋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미소씨는 도전하고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니까요.”온지유가 말했다.공아영이 대답했다.“그것뿐이 아니에요. 채미소는 무조건 빼앗으려 해요. 전에 제가 맡았던 프로젝트도 꽤 괜찮았었는데... 제가 성공했다면 여기서 이렇게 힘들게 타이핑만 하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어쩌다 찾아온 기회인데, 그 기회도 채미소에게 빼앗겼어요. 채미소는 신입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해요. 방송국의 편집장 역할을 노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볼 때, 채미소는 앞으로 편집장 자리뿐이 아니라, 더 높은 자리도 노릴 거예요!”공아영은 채미소의 야망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온지유는 공아영의 이야기로 채미소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그렇다면 미소씨는 적이 많겠네요.”“성과만 중요하고 동료는 필요하지 않아 보이니까요.”공아영이 말했다.“히히호호 웃으면서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몇몇도,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등을 돌릴 사람들일 거예요,”공아영의 시선을 따라 온지유도 그 사람들을 보았다. 웃으며 채미소를 도와 일하는 그들은 공아영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아마 채미소의 남은 기회를 노리고 있거나, 그녀가 자신들에게 기회를 줄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그런데...”공아영이 다시 온지유에게 말했다.“예전에도 미소씨는 이 인터뷰에 성공해 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도 잘 될지 모르겠네요. 안되
채미소는 물병을 받아 들고, 웃으며 말했다.“이번에 내가 성공하면, 분명 승진할 수 있을 거야. 내부 소식에 따르면, 편집장의 자리가 조정될 예정이니까, 내가 제일 두드러진 성과를 올리면 그 자리는 내 것이 될 거야. 그러면 너희들도 잘 보살펴줄게!”“정말요! 고마워요 언니!”둘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것도 채미소가 편집장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에 달려 있었다.채미소는 이번에도 여진그룹에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었다. 예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스스로 경쟁하고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4시간 동안 차를 몰아 여진그룹 건물 앞에 도착했다. 채미소는 경비원에 돈을 쥐여주며, 여러 번 확인했다.“정말 여이현 씨가 오후 5시에 이 문을 나설 거죠?”“확실합니다. 대표님은 일반적으로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지만,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차량을 정문에 세우고, 직접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쪽으로 오십니다.”경비원이 대답했다.“최근 대표님은 항상 5시에 퇴근하시니, 지금 이 시간대가 그를 만날 기회가 가장 많습니다!”“무슨 중요한 일인가요?”채미소는 호기심을 가지며 물었다. 인터뷰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왜 이렇게 급히 퇴근하시는 거죠? 5시면 꽤 이르지 않나요?”경비원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그 부분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길 대표님이 이혼한다더군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부인이 누구인지도 저는 잘 모릅니다. 추측만 무성할 뿐, 정확한 정보는 전혀 없어요.”“결혼과 이혼…”채미소는 큰 건을 하나 잡았다고 생각했다.“이혼이 사실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결혼은 사실입니다!”“여이현씨가 정말 결혼했어요?”채미소가 다시 확인했다.경비원이 대답했다.“모르세요? 대표님이 직접 결혼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후에는 인터넷에서 삭제되었지만, 아마도 그래서 못 보셨나 보네요.”“더 상세히 알고 싶어요. 다 말해 주세요.”채미소는
“KTBC, 저는 KTBC의 직원이에요!”여이현이 응답하자, 채미소는 기쁜 마음에 보안 요원의 저항을 뚫고 여이현의 앞에 나섰다.“제 명함입니다. 저는 정식 방송국 소속으로서 여러 유명 인사의 인터뷰를 맡아왔습니다. 대표님, 제 인터뷰를 수락하시면, 명성과 이익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채미소는 자신의 성과를 늘어놓으며, 여이현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줄 수 있음을 어필했다.그러나 여이현의 관심은 방송국에 있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온지유가 바로 이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다.여이현은 온지유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함께 있던 여러 해 동안, 이 자리에서 충분히 좋은 인맥과 자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방송국에 가기를 선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온지유가 낯선 환경에서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온지유는 이미 사리 분별을 못하고 꿈을 좇을 만한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채미소를 바라보면서, 여이현은 온지유가 이런 곳에서 괴롭힘을 당할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적어도 여이현의 곁에 있었다면 어떤 괴롭힘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채미소가 자기소개를 마친 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말을 했지만, 여이현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결국 채미소가 여이현을 불렀다.“대표님?”여이현은 정신을 차리고 채미소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KTBC의 좋은 일거리는 모두 미소씨한테 가는 건가요?”그 말에 채미소는 잠깐 멈칫했다.“대표님을 인터뷰하는 건은 좋은 기회이긴 했습니다마는, 이 기회는 제가 쟁취해 온 겁니다.”여이현은 시선을 돌리고 그녀를 무시하며 말했다.“그럼 돌아가서 더 적합한 사람을 찾아오세요.”말이 끝나자마자 차 문이 닫혔다.채미소는 여이현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어떤 방송국 소속인지 물어본 것만으로도 인터뷰가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차 문은 닫혔고, 채미소는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대표님, 잠시만요! 좀 더 얘길 들어주세요!”차는 그녀 앞에서 아무런 말 없이 떠나갔다.채미소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싶
어둠이 내려앉자 경성은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오늘은 밸런타인데이였던지라 곳곳의 가게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밸런타인데이를 삼켜버릴 것처럼 말이다.온지유는 여희영이 알려준 호텔로 왔으나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커다란 창가로 여희영이 알려준 파란 장미를 든 남자를 찾아보고 있었다.테이블마다 한 쌍씩 앉아 있었지만 여희영이 말한 남자는 없었다.전화를 들어 여희영에게 상대가 기다리다가 지쳐 먼저 돌아간 것은 아닌지 물어보려고 한순간 익숙한 형체를 발견하게 되었다.여이현이 코너를 돌며 2층의 룸으로 올라갔다.밸런타인데이에 귀가하지 않고 이곳에 와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온지유의 머릿속에 순간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여이현이 바람을 피웠다는 가능성이었다.그녀는 씩씩대며 호텔 안으로 들어간 뒤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어서 오세요, 몇 분이실까요?”직원이 그녀를 붙잡았다.온지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이 안에 몇 분이 예약되었는지 알려주시면 이 돈을 전부 드리죠.”그녀는 통 크게 돈뭉치를 꺼내 직원에게 주었다. 직원은 눈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였다.밸런타인데이에 호텔에 혼자 오는 사람은 없었다.그녀는 바로 발을 들어 문을 차버리곤 코웃음을 쳤다.“이현 씨, 즐거운가 봐. 나한테 들켰다고...”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룸 안에 여이현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온지유는 바로 고개를 돌려 직원에게 따져 물었다.“안에 둘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대표님께선 두 명으로 예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내 분이 도착하지 않으셨다고...”“이제 가도 됩니다. 여긴 제가 설명하죠.”여이현은 직원에게 물러나라고 하곤 문을 닫으려 했으나 그제야 문이 뜯겨 나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내 빙긋 웃었다.“룸을 바꿔야 할 것 같네.”직원은 눈치껏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온지유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바람 피우는 현장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직원은 그녀에게 여이현의 아내가 아직 도착하지 않
“얼른 여이현한테 전화해서 여진을 나한테 넘기라고 말해. 그리고 여씨 가문의 모든 재산도 전부 나한테 주라고 해. 안 그러면 지금 이곳이 곧 너의 무덤이 될 테니까.”여재호는 뒤를 돌아보라는 턱짓을 했다.온지유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이현 씨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니까 헛된 망상은 그만하시죠.”“여이현이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 널 죽여버리면 돼. 그리고 네 아들을 여기로 잡아 오는 거지. 여이현이 그럼에도 넘기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네 아들도 죽이는 거지 뭐.”여재호는 칼을 꺼낸 후 온지유의 앞으로 갔다. 그녀의 턱을 꽉 잡으며 뺨을 때렸다.“가능한 어떻게든 여이현을 설득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서늘한 칼날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온지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여재호는 돈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계속 이 세상에 남는다면 세상은 앞으로 불안만 가득해질 것이다.무언가 떠오른 온지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제가 이현 씨를 설득해볼게요. 그런데 저한테 핸드폰이라도 줘야 설득해보는 거 아닌가요? 핸드폰도 없이 제가 어떻게 말을 해보죠?”여재호는 머릿수가 많다는 이유로 방심하면서 온지유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어차피 산 아래에도 그의 사람들이 깔려 있었으니까.바로 옆 사람에게 지시를 내려 온지유에게 핸드폰을 주었다.자유를 되찾은 온지유는 뻐근한 손목을 돌리며 여이현에게 전화를 거는 척했다.“이현 씨, 나 지금 사방이 무덤인 산에 있어. 얼른 와줘...”“씨X, 지금 날 속여?”여재호는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확 빼앗았다. 온지유는 그를 꽉 끌어안더니 벼랑 끝으로 뛰어내렸다.“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여재호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차정혁이 얼른 사람들과 함께 벼랑 끝으로 달려와 내려다보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온지유는 죽지 않았다. 이미 전에 더 험한 일을 당했었던지라 여재호를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여재호가 그 말을 하자마자 그녀는
두 사람은 익숙하게 별장으로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희영을 부축하면서 나왔다.온지유는 여희영이 입원한 병원으로 왔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여희영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여희영은 그런 온지유의 손등을 토닥이며 달랬다.“괜찮아. 정말이야.”“저희가 너무 소홀했어요.”“너희 탓이 아니야. 이것도 다 내 운명인 거지. 이런 오빠의 동생으로 태어난 게 잘못이지.”여희영은 말을 마친 후 여이현을 보았다.“여재호가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놨어. 얼른 다시 원상복구 해야 해. 절대 다른 사람이 빈틈을 노리게 해서는 안 돼. 그리고 여재호는 고민할 것 없어. 그냥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처리해.”여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계획이 있었다. 이번 일을 겪은 후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회사 쪽은 여희영이 입원해 있는 동안 전부 깔끔하게 정리했다.속도는 빠르게 진행도이었다. 아무리 여재호가 업소녀에게 돈을 주며 입막음을 했다고 해도 늦었다. 경찰이 너무도 빠르게 도착했기 때문이다.여재호의 사람들을 전부 해고했다. 그리고 그가 매수한 거래처들과도 전부 거래를 끊어버렸다.여재호에게 처음으로 매수당한 고객은 차정혁이었다.그는 가짜를 진품처럼 팔고 품질이 안 좋은 물건을 대놓고 팔았다. 여재호에게 매수당하지 않았어도 여이현은 그와 거래를 끊을 생각이었다.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차정혁은 바로 여재호에게 자료 한 부를 건넸다. 그 자료에는 여진 그룹 서류뿐만 아니라 온지유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시간도 적혀 있었다.여재호는 미간을 찌푸렸다.“여이현의 여자를 건들라고? 죽고 싶어?”“대표님, 정말로 판을 뒤엎고 싶다면 이것이 마지막으로 남은 기횝니다. 아니면 정말로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밟히고 싶은 겁니까. 잊지 마세요, 여진 그룹을 물려받아야 할 사람은 응당 대표님이십니다.”차정혁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이 일은 제가 다 준비를 해뒀으니 대표님께선 지시만 내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제 사람들이 바로
“날 조롱할 것 없어. 여이현, 네가 날 찾아왔다는 건 내가 여진을 조정하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찾아왔다는 의미겠지. 그래, 여진은 내가 반드시 손에 넣을 거야. 여진뿐만 아니라 여씨 가문 모든 재산을 손에 넣을 거라고.”여재호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말했다. 꼭 반항기가 흘러넘치는 청소년처럼 말이다.여이현은 술을 한잔 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모는 어디에 있어요.”그는 회사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여재호에게 고모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 찾아왔다.오는 길에 이미 여희영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으나 여희영을 찾을 수 없었고 그의 추측이 거의 확신이 되어갔다.여재호의 표정이 부자연스럽게 굳어지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멈추었다.“여희영을 데려가도 돼. 하지만 내일 회사로 가서 계약서에 사인해. 여진의 모든 지분과 운영할 권리는 내게 넘긴다고.”“제가 싫다고 하면요?”“그럼 여희영을 만날 생각은 하지 마. 희영이가 걱정되지?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여희영한테 그렇게 네 편에 서지 말라고 말했는데 말이야. 오빠인 내 말을 안 듣더라고.”여재호는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이현은 그와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차 키를 들고 일어나며 싸늘한 시선으로 여재호를 보았다.“그동안 꽤나 많은 돈을 빼돌리고 계셨나 봐요. 집까지 업소녀를 부르고 말이에요. 지금 신경 써야 할 게 명성이 아닌가요? 이미지 나락으로 빠지고 싶은 거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거예요.”여재호는 코웃음을 쳤다.“저의 일 처리 방식이 어떤지 그동안 봐서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고 자비도 베풀지 않는 사람이죠.”말을 마친 여이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여재호는 여이현의 말에 순간 겁을 먹게 되었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방으로 올라간 여자에게 화풀이했다.여재호에게서 단서를 알아내지 못한 여이현은 다시 회사로 돌아와 모든 CCTV를 돌려보았다.여희영이
“날 오빠 취급하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돈 생기고 권력이 생기면 내가 원하는 걸 전부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니까.”여재호는 결국 여희영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폭행한 후 작은 다락방에 가둬버렸다.밤이 되니 온지유와 여이현이 탑승한 비행기도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광고판에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공항에 설치된 가장 큰 광고판에는 여진 그룹에서 출시하여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화장품 영상을 틀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음식 밀키트 광고로 바뀌었다.여이현의 동의도 없이 광고를 바꿨다는 건 너무도 이상했다.두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은 경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온지유가 입을 열려던 순간 여이현의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를 건 사람은 기획부 부장이었고 여진 그룹의 원로라고 할 수도 있는 존재였고 여진을 향한 충성이 아주 높았다..“서 부장님, 마침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공항 광고판 광고가 왜 바뀐 거죠?”“대표님, 안 그래도 이 일로 연락드렸습니다. 얼른 저의 집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다들 대표님만 기다리고 계십니다.”서철민은 다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이현과 온지유는 더는 묻지 않고 바로 서철민의 집으로 출발했다.서철민의 집 서재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이현을 보자마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님.”모든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여이현은 그들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한 뒤 입을 열었다.“저를 찾으신 이유를 말해보세요.”그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으나 증거가 없었기에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여재호가 저희 회사 재무부장과 구매부 부장, 그리고 일부 고객들을 매수했습니다. 현재 여진이 여재호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하...”서철민과 일부 사람들이 까발린 여재호의 만행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경성으로 돌아오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줄 알았으나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이현에게 연락하며 상황을 알렸다.하지만 그는 배진호와 함께 비행기에 있어 전화를 받지 못했다.여재호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돈과 지위를 얻는 것이었다.과거에 자신이 손에 넣지 못했던 재산을 이번에는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이었다.그가 여진그룹에서 큰 소동을 일으키자 결국 여희영도 나서게 되었다.여희영은 직접 찾아와 그를 말렸다.“할 말은 이미 다 했어. 그날 결혼식에서 이현이의 태도가 얼마나 분명했는지 오빠도 직접 봤잖아. 그런데 왜 또 이러는 거야?”“이현이는 너를 홀대한 적이 없잖아?”여진 그룹이 위태로웠던 시절 여이현의 뛰어난 능력 덕분에 그룹은 조금씩 번창하며 오늘날의 위치에 올랐다.하지만 지금...여재호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이현이 여진 그룹을 이 정도로 키운 건 맞아. 그런데 문제는 나도 빈손으로 남을 수는 없다는 거야.”“네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너를 불러들였을 때엔 왜 거절하지 않았대?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여희영는 직설적인 성격이었다.그녀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일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말하는 성격이었다.게다가 그녀의 오빠는 지금까지 제대로 한 일이 없었을뿐더러 지금은 더 악랄하게 굴고 있었다.“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어이가 없어서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할 말이 없으면 하지 마. 내가 하는 일이 네게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 뭘 걱정하는 건데? 여희영, 너도 알잖아. 이현이는 가문의 사람이 아니야. 왜 네 팔은 밖으로만 굽는 거야?”여재호는 돈을 받지 못하고 여이현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것만으로도 이미 인내심이 폭발할 지경이었다.여기에 여희영의 말까지 더해지자 그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었다.여희영도 화가 치밀었다.“내 팔이 밖으로 굽는다고? 오빠가 가문을 내팽개쳤을 때 나는 가문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아버지와 이현이에게 일을 다 떠넘기고는 이제 와서
“전 무열 씨의 의지력을 믿어요. 당신이라면 분명히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는 제가 계속 상태를 관리할게요.”인명진은 부드럽게 말했다.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약물 금단 증상은 고통스러웠지만 신무열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특히 김혜연은 늘 그의 주변에 함께 있어 주었다.덕분에 신무열은 일주일 만에 약물 의존을 끊어냈다.이는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었고, 특히 김혜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무열 씨, 우리 현장에도 내려가 봐요. 현장에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김혜연의 생각은 간단했다. 함께 일에 몰두하면 그는 아린의 죽음을 떠올릴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동안 신무열은 막 결혼한 상태에서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더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신무열은 김혜연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좋은 생각이야. 현장으로 가자. 이쪽의 일은 내가 처리해 둘게. 요한도 있으니까 걱정 마.”“좋아요.”그들의 결정을 들은 법로는 남아서 Y국의 상황을 관리하기로 했다.그는 별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경성에서 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매우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이번은 신무열과 김혜연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Y국에 온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져 버렸다.“별아, 이번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돌아가면 말 잘 들어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나중에 보러 갈게.”법로는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외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아빠랑 엄마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돌아오시면 꼭 다시 만나요!”“그래.”법로는 그들을 공항까지 직접 배웅했다.업무적으로는 배진호가 있었지만 온지유와 관련된 부분은 온지유의 결정을 존중했다.배진호는 먼저 제안했다.“대표님, 아드님을 제가 먼저 데려가서 학교에 보내겠습니다. 두 분은 Y국에서 조금 더 머무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모님의 양부모님들과
신무열은 김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걱정 끼쳐서 미안해.”“무열 씨, 제발 꼭 좋아져야 해요. 이렇게 날 떠나면 안 돼요. 우리... 우리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다 아쉬움으로 남았잖아요.”김혜연은 신무열을 꼭 끌어안으며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간절히 말했다.그녀는 정말로 두려웠다.만약 신무열의 마음속에 모든 분야에 출중한 완벽한 존재가 있었다면 그녀는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아린의 경우는 달랐다. 모든 조건을 떼어 놓고 보면 말이다.김혜연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졌지만 선택을 하지 않은 건 그녀 자신이었다.김혜연은 신무열의 남은 생이 죄책감 속에서 허비되지 않기를 바랐다.신무열은 김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하려는 말 다 알아. 걱정하지 마. 나도 최선을 다해 이전의 일들에서 벗어나려고 할게.”김혜연은 그런 문제들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신무열은 그녀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이때, 인명진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신무열의 약물 의존은 법로가 책임지고 있었고, 인명진은 그의 심리 치료를 맡게 되었다.신무열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아린이 자신의 품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마음의 상처를 도저히 치유할 수 없었다.인명진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그는 최면을 통해 신무열의 내면을 하나씩 풀어가며 그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신무열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저 때문에 죽어가요. 죽음이 이렇게도 불공평하고 아무 소리도 없이 다가온다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신무열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나왔다.인명진은 낮은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모든 일에는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무열 씨는 최선을 다했고 아린을 방치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현실은 잔혹해요. 무열 씨에게는 방법이 없었고, 아린에게는 죽음이 오히려 해방이었을지도 모르죠.”“노예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수천, 수만 명이었어요
신무열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통스럽게 절규했다.그의 이런 모습을 본 온지유는 가슴이 찢어졌다. 매일 곁에서 지켜보는 김혜연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다.온지유는 신무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오빠,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아요...”하지만 신무열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힘겹게 말했다.“아니, 내 잘못이야. 만약 내가 더 잘했다면 아린은 희생하지 않았을 거야. 죽음을 많이 봐왔지만 이번처럼 고통스러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지유야, 너도 알잖아? 난 아린이 눈앞에서 죽는 걸 직접 봤어...”그의 목소리는 쉰 듯한 낮은 톤으로 하나하나 쏟아져 나왔고, 온지유는 처음으로 신무열이 이렇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게됐다.도와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그녀는 무력감을 느꼈다.신무열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스스로를 해칠까 두려웠던 온지유는 급히 법로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법로는 실험실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신무열의 상태를 본 법로는 마음이 아팠다.신무열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다!상태를 점검한 법로는 신무열이 몰래 페노바르비탈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더욱 심각한 것은, 이 약물은 한때 법로거 개량했던 중독성을 유발하는 형태였다는 점이었다.신무열의 방금 전 감정 폭발은 약을 제때 복용하지 못해 나타난 금단 증상이었다.법로는 즉시 실험실의 약물 사용 규정을 엄격히 강화했다.앞으로는 모든 약물 사용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령했다.또한, 신무열이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철저히 관리했다.신무열은 Y국의 수령으로, 많은 이들이 그를 끌어내리고 새 인물을 세우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만약 그의 약물 복용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반드시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이 분명했다.김혜연은 신무열의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법로가 이를 막아섰다.“신무열이 자리를 비우는 건 공적인 이유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네가 자리를 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