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임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온지유에게 다가갔다.전보다 태도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온지유도 따라서 웃으면서 인사했다.“괜찮습니다. 송서연 씨, 여기 와서 인사하세요.”아무리 강하임의 태도가 좋아졌다고 해도 여이현이 시킨 대로 이번 건은 송서연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강하임은 내심 불쾌했지만 그래도 애써 괜찮은 척했다.“온 비서님께서는 요즘 후임을 양성하시나 봐요?”이채현도 모자라 송서연까지, 그런데 여이현은 끝내 나타나지 않을 줄 몰랐다.강하임은 이 상황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뭐라고 할 수 없었다.그저 온지유와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갈 뿐이다.“혹시 비즈니스에 영향이 갈까 봐 그러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프로젝트는 대표님께서 직접 관리하고 계십니다.”강하임이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그러면 여진 그룹에 가서 얘기하는 건 어떤가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 온 비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뒤늦게야 온지유가 여이현을 7년이나 모신 비서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온지유를 통해 직접 여이현을 만나고 싶었는데 또 온지유가 올 줄 몰랐다.온지유가 웃으면서 말했다.“아직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계약서 체결 15일 이후 매일 20% 기준으로 돌려준다는 건 무슨 뜻이죠?”이채현은 그날 금강 그룹 책임자 데리러만 왔지 계약서를 만져보지도 못했다.그런데 오늘은 미리 계약서를 미리 확인하고 찾아왔다.물어본 김에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고 했다.강하임이 웃으면서 말했다.“저희 첫 계약서잖아요. 온 비서님께서는 아직 계약서를 잘 확인하지 않으셨나요? 마지막 세 번째 조항에 한 달 내에 모두 갚는다고 되어있어요.”온지유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강하임 씨, 이런 계약서는 본 적도 없습니다. 계약 첫날 일정한 계약금을 내고 나머지 계약금을 갚는 날짜를 정하는 것입니다. 이 계약서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강하임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여 대표님도 문제없다고 하는데 온 비서님이 여기
강하임이 커피잔을 놓친다는 건 온지유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하임 씨가 놓칠 줄 몰랐어요.”온지유가 빠르게 차가워지는 강하임의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내가 놓쳐요? 내가 커피잔 하나도 제대로 못 든단 말이에요? 여 대표님, 계약 좀 잘 마무리해보려고 왔는데 비서가 일을 너무 못하네요.”강하임은 연속 되물으며 온지유에게 핀잔을 주었다.그리고 마지막에는 여이현을 향해 언짢은 티를 내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여이현은 냉소를 흘리고는 말했다.“CCTV 한번 돌려드릴까요?”온지유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여이현이 강하임의 말을 받아쳤다.강하임이 일부러 시비를 거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아직 퇴사 전이니 자신의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 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 상황에서 여이현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다.한편 강하임은 한낱 비서를 대신해 나서는 여이현에 표정을 굳혔다.“여 대표님이 직원 챙기는 건 이해하는데 커피가 내 손에 떨어졌잖아요. 우리 쪽 직원이 이런 실수를 했다면 대표님은 기분이 어떠셨을까요?”이때 온지유가 담담히 말했다.“만약 제 실수라면 저는 바로 인정했을 겁니다. 비서로서 실수까지 했는데 그걸 떠넘길 수 있을 만큼 양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제가. 강하임 씨가 계속 제 실수라고 생각하시면 사람 불러서 확인해 보셔도 좋아요.”자신의 잘못이 아닌 건 절대 사과하지 않는 게 바로 온지유였다.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 사람까지 불러서 확인하는 건 너무 자존심이 상했기에 강하임은 화를 누르며 이쯤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그럴 필요까진 없고요. 내가 손까지 뎄는데 화가 안 나겠어요? 그리고 이 일 전에도 트러블이 좀 있었잖아요 우리.”강하임은 여전히 삐딱한 태도로 말했지만 온지유는 더는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단호하게 말했다.“강하임 씨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두 회사가 파트너 계약을 맺는 자
그에 강하임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여 대표님,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온 비서와 저 사이에 트러블이 좀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까는 제가 충분히 온 비서의 고의라고 오해할만한 상황 아닌가요?”“그리고 내가 누군지 정말 잊은 거예요?”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막 나가는 강하임에 여이현은 표정이 굳은 정도가 아니라 서늘하기까지 했다.“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그리고 만약 고의라 해도 나는 상관없어요. 안될 건 없잖아요?”여이현의 말에 강하임은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리고 마지막 질문만 의도적으로 빼놓고 대답을 한 거 보면 여이현은 정말 저를 기억 못 하는 것 같아 강하임은 그게 더 분하고 부끄러웠다.“강하임 씨, 얼음 가져왔어요.”그때 얼음을 들고 온 온지유가 부드럽게 말했다.온지유의 차분한 표정은 아까의 일을 전부 잊기라도 한 듯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여이현은 서늘한 표정을 유지한 채 강하임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마치 지금 당장 사과를 하지 않으면 이 계약은 체결하지 않겠다는 듯이.게다가 이 계약 건은 강하임이 아빠와 오빠를 한 달 넘게 졸라 따낸 일이었기에 이렇게 망쳐버릴 수도 없었다.그래서 강하임은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온 비서님, 아까는 죄송했어요, 내가 놓친 건데 집에서 이러던 게 습관이 돼서 괜히 온 비서한테 화풀이했네요. 용서해 주세요.”갑자기 태도가 바뀐 강하임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온지유가 여이현을 바라보았다.역시나 굳은 표정에 누구 하나 잡아먹어 버릴듯한 눈빛, 여이현이 강하임에게 사과를 시킨 게 틀림없었다.그래서 온지유도 억지로 웃으며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이 얘기는 아까 다 끝났잖아요, 마음 쓰지 않으셔도 돼요.”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빨리 끝나길 바랐던 온지유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얼음팩부터 일단 대고 계세요. 그럼 두 분 말씀 천천히 나누세요, 전 먼저 나가 있을게요. 필요하면 부르세요.”온지유가 나가고 여이현이 강하임을 보며 입을 열었
지금 2할이나 양보하는 건 당연히 큰 손해였고 계약을 따낸다 해도 별로 이득이 없었다. 하지만 강하임이 이 계약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여이현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 있었던 것이다.역시나 여이현의 예상대로 강하임은 웃으며 말했다.“협업이라는 게 원래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거잖아요, 지금이야 조금 손해를 보겠지만 이런 방법을 써서라도 여진그룹 같은 큰 회사랑 계약한다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 2할이 최대에요. 저도 더는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그래요.”그제야 여이현이 강하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강하임은 여이현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그럼 계약 건도 마무리되었으니 내일 제가 단풍 별장에서 여는 파티엔 와 주실 거죠?”“네, 가야죠.”금방 계약을 체결하고 파티 참석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기에 여이현은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했다.“그럼 전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강하임이 인사를 하며 말하자 여이현은 온지유를 불렀다.“온 비서, 손님 배웅해드려요.”강하임은 그 배웅이 내키진 않았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여이현이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해서야 온지유에게 삐딱한 투로 말했다.“내가 오늘 온 비서한테 사과한 건 여 대표님을 봐서예요.”강하임은 오늘의 치욕을 꼭 갚아주겠다는 투로 말했지만 온지유는 오히려 웃으며 그 말을 받아쳤다.“그 얘기는 아까 이미 끝난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강하임 씨가 굳이 강조하지 않으셔도 알고 있었어요. 이제 지나간 일은 그만 언급하죠, 전 앞으로도 여 대표님 옆에 계속 있을 건데 서로 얼굴 붉히면 불편하잖아요.”온지유는 저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강하임의 속내를 알고 일부러 더 뾰족하게 쏘아붙였다.이 계약에서 더 절실한 쪽은 강하임이었고 계약의 갑이 바로 제 상사인 여이현이니 더 이상 여이현 앞에서 저를 곤란하게 만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어차피 그래봤자 소용이 없을 테니까. 온지유는 여이현이 늘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그래
“F 국 가는 거 앞당겨도 돼요?”온지유의 질문에 여이현은 대답하지 않고 표정을 굳혔다. 살짝 찌푸려지는 미간이 그의 어이없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나민우와 그렇게 사이가 좋으면서 F 국 일정을 앞당겨달라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대답이 없는 여이현에 온지유는 포기하고 말을 돌렸다.“취소하시고 싶으시면 취소하셔도 돼요, 뭐 다른 거 시키실 일 있으세요?”여이현은 생각을 멈추고 담담히 말했다.“차 한잔 부탁해.”“네.”몇 분 뒤, 온지유는 따뜻한 차를 들고 들어왔다.녹차를 유독 좋아하는 여이현이기에 일부러 손님용 차와 다른 걸로 내왔다.“강하임 씨는 네가 계속 맡아, 내일 나랑 단풍 별장에 같이 가자.”여이현의 말에 이의가 없었던 온지유는 그렇게 방을 나섰다. 그사이 동기들 단톡방에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내일 반장 개인 사정 때문에 만월 파티 좀 앞당길게, 저녁 9시로 하자.]그 문자를 본 온지유는 따로 도세원에게 연락하여 100만 원을 보내주었다.[나는 일 때문에 파티 참석 못 할 것 같아, 이건 네가 반장한테 잘 전해줘.][그래.]도세원은 빠르게 돈을 받고 이내 답장을 보내왔다.[몸조심해.]온지유는 그 문자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사실 저 문자의 의미는 그녀가 임산부 상태니까 저녁에 진행하는 술자리에 못 오는 건 당연한 일이니 마음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한 시간 뒤쯤 여이현이 사무실에서 나와 온지유의 책상을 지나쳐갔다.그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다 지나고 나니 여이현이 문자를 보내왔다.“저녁 준비해놔.”“알겠어요.”그 문자에 여이현은 5시 반에 퇴근을 하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마트에 있는 티비 속에서 여이현이 나오고 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지만.여이현은 검은 정장을 입고 신사답게 노승아를 보호하며 카메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그리고는 멀찍이 떨어져서 마이크 앞에선 노승아를 지켜보고 있었다.마이크를 잡은 노승아는 화장을 마친 예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기자님들
노승아가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여이현이 나서며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오늘 기자회견은 독 같은 건 애초에 없었고 누가 누구를 시해하려는 행동도 없었음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제목 어그로는 자제 부탁드립니다.”표정을 굳힌 채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며 180㎝가 넘는 큰 키로 기자들을 압도하는 그 포스에 온지유는 어딘가 씁쓸했다.이렇게 노승아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남자가 저한테만 매정한 것이 서운했다.아마도 여이현을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노승아뿐인 것 같았다.온지유가 그만 돌아서려 할 때 화면에 또 다른 자막이 달렷다.이번에는 카메라가 노승아가 아닌 여이현의 얼굴을 잡으며 물었다.“여 대표님이 오늘 노승아 씨를 대변하는 건 공적인 마음입니까 아니면 사적인 마음입니까?”“둘 다라고 해두죠.”여이현의 말이 흘러나옴에 따라 자막도 바뀌는 것을 본 온지유는 갑자기 무언가가 심장을 짓누르는 것만 같이 답답해졌다.“그럼 노승아 씨와 앞으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시단 말씀인가요?”그 질문에 노승아는 여이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가로챘다.“이건 저희 둘만의 사적인 얘기인 것 같네요, 만약 좋은 소식이 있다면 꼭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말을 마친 노승아가 여이현의 팔짱을 끼며 다정하게 올려다보는 모습에 온지유는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몸을 돌렸다.하필 오늘따라 검은색과 흰색으로 맞춰 입어 더욱 선남선녀같이 잘 어울렸다.“저기요, 계산 안 해요? 안 살 거면 빨리 비켜요! 다들 여기서 줄 서고 있잖아요!”그때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호통에 온지유는 생각을 접고 말했다.“봉투 주세요, 큰 걸로요.”노승아와 여이현 사이는 어차피 뻔한 결말이었다. 여이현이 해외에서 돌아온 노승아를 위해 매니지먼트를 차려주고 그녀만을 케어해 줄 때부터 둘이 잘 될 거란 걸 예견해왔었기에 온지유는 점점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었다.기자회견이 아니라 결혼 발표를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사이였다.그래서 온지유는
노승아가 차에서 내리려 할 때 그녀에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노승아 씨, 택배 왔는데 좀 많아요. 내려와서 받아가세요.”노승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택배기사를 볼 수 있었다.작은 끌차에 택배를 빼곡히 채운 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노승아는 이때다 싶어 여이현에게 부탁을 해왔다.“오빠,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집에 조명이 고장 나서 전구 좀 샀거든요.”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서 따라 내려서는 노승아의 집으로 향했다.5분 뒤, 노승아의 집에 들어온 여이현은 배진호에게 눈짓했다.그리고 그 의미를 알아차린 배진호는 팔을 걷고 나서서 전구를 갈기 시작했다.온지유에게 전화를 하려고 여이현이 금방 뒤를 돌았을 때 노승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블루베리 주스를 여이현의 셔츠 위로 쏟아버렸다.언짢아진 여이현의 미간을 찌푸리자 노승아는 바로 자책하며 사과를 해왔다.“미안해요, 오빠. 이 블루베리 주스는 내 친구 회사에서 직접 만든 거라 나한테 보내준 건데 맛있는 것 같아서 오빠도 주려고 했는데... 나는 진짜 왜 이렇게 제대로 하는 일이 없을까요?”“괜찮아.”여이현은 천천히 말하고는 블루베리 주스에 흠뻑 젖은 옷보다 바닥에 놀린 유리 조각에 먼저 시선을 돌렸다.그때 노승아가 허리를 굽혀 유리 조각을 쓸어 담으며 말했다.“근데 오빠 옷... 우리 집에 일회용 가운 있으니까 일단 가서 씻어요, 오빠 집 가려면 아직 한참 있어야 하잖아요. 배 비서님한테 깨끗한 옷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요, 나는 이거 먼저 치울게요.”그런데 바닥을 치우던 노승아가 갑자기 손가락을 잡으며 신음을 내뱉었다.그 칠칠찮은 모습에 여이현은 낮게 잠긴 목소리로 한소리 했다.“그냥 입주 가정부를 구하는 게 어때? 집에 밴드 있어?”“혼자 지내는 거 좋아해요, 밴드는 아마 있을 텐데, 내가 찾아볼게요.”“어딨는데, 내가 가져올게.”짤막하게 말하던 여이현은 피가 멈추지 않는 노승아의 손가락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 지금 못 찾잖아, 그러
여이현은 몇 초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3일 뒤 F 국 가는 티켓 끊어놔, 온지유 이름으로.”“네.”배진호의 대답이 들리자 차에서 내린 여이현은 수려원 안으로 들어갔다.그 사이 주방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던 온지유는 여이현이 현관을 지날 때 마침 다 된 음식들을 들고나오며 말했다.“왔어요? 마침 준비 다 했는데, 얼른 밥 먹어요.”여이현을 한번 쳐다본 온지유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그런데 여이현은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썹을 치켜세우고 온지유에게로 다가갔다.온지유도 그제야 여이현 셔츠에 번진 자국을 볼 수 있었다.“아주머니, 가서 남은 음식들 좀 들고나와 주세요.”“당신은 일단 가서 씻어요, 옷은 내가 찾아놓을게요.”온지유는 말을 하며 앞치마를 벗었다.여이현 옷에 가득한 자국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고 표정도 평온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참다못한 여이현이 입을 열었다.“온지유, 너는 네가 정말 좋은 아내라고 생각해?”여이현과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던 온지유가 차분함을 유지한 채 답했다.“말하고 싶으면 당신이 알아서 말하겠죠.”온지유의 말은 여이현이 말하지 않는 일이면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그리고 여이현이 노승아와 같이 있다 온 걸 알기에 온지유는 그 자국의 출처가 알고 싶지도 않았다.“석훈 씨한테 연락할까요?”“됐어.”말을 마친 여이현은 온지유를 지나쳐갔지만 온지유는 이내 그 뒤를 따라가 갈아입을 옷을 찾아주었다.그렇게 검은색 홈웨어를 든 온지유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말했다.“옷 여기 찾아놨어요.”“들고 들어와.”여이현의 말에 온지유는 한숨을 쉬며 화장실 문을 열었지만 입구에만 서 있었다.그런 온지유를 본 여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팔이 그렇게 길진 않아.”그 말에 온지유가 할 수 없이 몇 발자국 더 가자 여이현은 온지유를 끌어당겨 벽에 붙이고는 도망가지 못하게 가두어버렸다.열기로 가득한 욕실에서 고개를 숙인 채 드러낸 온지유의 목선은 오늘도 여이현을 흔들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