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에게 옮은 걸 수도 있다는 소은정의 말에 마이크의 하얀 얼굴에 초조함이 실렸다.잔뜩 긴장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던 마이크가 말했다.“바로 의사선생님부터 부를게요.”소은정이 휴대폰을 가지러 달려가는 마이크의 손목을 잡았다.아이고. 얘도 참. 아까 동하 씨가 아플 때는 일단 아무 약이나 막 먹이고 보더니... 얘도 은근 불효자라니까.“괜찮아. 누나도 약 먹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배고프지? 누나가 죽 끓여줄까?”소은정이 웃으며 물었다.동하 씨도 아프고... 담백한 게 좋지 않을까?소은정의 질문에 마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다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죽 끓이는 거 번거롭잖아요. 예쁜 누나 고생하는 거 싫어요. 그냥 굶을래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의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렸다.“괜찮아. 하나도 안 번거로워. 30분이면 끓일 걸?”말과 함께 소은정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하늘이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소은정과 마이크는 간단하게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4시쯤, 마이크는 공부할 시간이라며 쪼르르 방으로 들어갔다.소은정도 전동하 방문을 살짝 열었다.곤히 잠든 전동하에게로 다가간 소은정이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다행이다. 열은 내렸네.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때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소은정은 다시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우 비서님, 무슨 일이에요?”“급하게 검토하셔야 할 파일이 있습니다.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이런 급한 일거리도 이미 익숙해진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메일로 보내줘요.”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식탁 위에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바로 위아래층이라 다행이네... 일 잠깐 하고 다시 올라와도 늦진 않을 거야.서재에 있는 컴퓨터로 파일을 확인한 소은정은 수정해야 할 점들을 표시한 뒤 다시 우연준에게 보내주었다.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우연준이 보낸 수정판까지 다시 검토하고나니 급격히 잠이 몰려왔다.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문자도, 부재중통화도 없었다.아직도 자는 건가? 괜히 방해
도망치 듯 가버린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누나 얼굴 또 빨개졌어요. 아직도 열이 나는 걸까요?”“경호원 아저씨가 아파트 아래서 기다리고 있어. 얼른 도서관이나 가...”전동하가 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 자식... 은정 씨 얼굴 보고 갈 거라고 떼만 안 썼으면 진작 치워버리는 건데. 많이 봐줬으니까 얼른 가라...한편 아빠의 말에 마이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빠 매일 아팠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옆에 꼭 붙어서 보살펴 드릴 텐데. 휴, 난 역시 효자라니까....얼마 후, 며칠 내내 기분이 다운되어 있던 한유라가 갑자기 기운을 차렸는지 소은정을 불러냈다.“야, 이럴 때일 수록 돈도 좀 써주고 해야 해. 나 요즘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피부도 푸석해졌단 말이야. 우리 피부 관리 받으러 가자~ 응?”“하늘이는?”“하늘이는 바쁘대. 강희도 괜히 나한테 짜증만 내고... 너 밖에 없단 말이야.”“휴... 그래.”그렇게 한유라, 소은정 두 사람은 vip 에스테틱으로 향했다. 2시간 뒤, 온갖 관리를 받은 두 사람이 빛나는 얼굴로 안마의자에 앉아 마지막 여유를 즐기기 시작했다.한유라의 눈치를 살피던 소은정은 한시연과 소은호가 곧 약혼식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잠깐 동안 침묵하던 한유라가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이 세상에 정말 동화 같은 사랑이 있긴 하네. 나 이제 다시 사랑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부드러운 한유라의 목소리를 들은 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은호 오빠를 정말 놓아주기로 했나 보네... 그래, 유라도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겠지.그 뒤로 두 사람은 최근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민하준은 이혼 뒤에도 한유라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않았으며 한유라의 약혼 기사를 보고 미친 듯이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다행인지 불행인지 한유라의 엄마도 집에 있었고 바로 경호원에게 끌려났지만 말이다.그 과정에서 다리도 부러졌다고 하긴 하지만... 적어도 한유
윤시라는 잔뜩 신난 목소리로 새 친구들에게 불평을 이어갔다.“소은정 그 여자 박수혁 대표랑 이혼한 건 다들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여자... 욕심이 어찌나 많은지. 전동하 대표랑 썸타고 있으면서도 박수혁 대표한테 계속 집착하는 거 있지? 나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거지 뭐.”“설마... 신포그룹에서 나온 것도... 소은정 때문이라는 거야? 언니가 박수혁 대표 옆에 있는 게 질투나서?”양미라의 눈이 커다래졌다.“당연하지. 박 대표님이 신포그룹 대표라는 게 밝혀지기 전까지 나 되게 잘 나갔었어. 한국지사 지사장 후보로까지 올라갔었다고. 그런데 박 대표님의 신분이 밝혀나고 여러 사건이 터지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지.”윤시라가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세 사람 중 윤시라, 양미라를 제외한 다른 여자, 이한채가 입을 열었다.“소은정 그 여자가 워낙 드센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긴 했지만... 이번 일은 좀 심했네. 친구들한테서 들었는데 부모님들이 단단히 당부했다잖아요. 소은정 대표는 건드리지 말라고. 시라 언니도 이제 겨우 친아빠를 만났잖아요. 앞으로 인생 핀 거나 마찬가지인데 괜히 건드리지 말아요.”하지만 윤시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코웃음을 쳤다.“하, 나 이제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윤시라가 아니야. 나도 아빠백 있다고. 그 여자가 나한테 함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양미라가 질세라 아부를 건넸다.“그러니까. 이제 언니도 재벌 2세야. 돈 많겠다 이쁘겠다. 언니가 소은정 그 여자한테 꿀리는 게 뭔데? 게다가 언니는 혼자 힘으로 신포그룹에서 입사했고 지사장 후보까지 올라갔던 능력자잖아.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난 그 여자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언니가 회사를 물려받으면 분명 잘해낼 수 있을 거야.”양미라의 말에 한유라가 웃음을 터트렸다.세 사람의 시선이 잠깐 동안 한유라에게 쏠렸지만 마스크팩을 하고 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사실 박수혁 대표 같은 사람한테는 언니가
그 모습에 소은정이 입꼬리를 올렸다.뭐야?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겁 먹은 것 좀 봐.윤시라와 이한채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게다가 이한채는 한 술 더 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소은정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소 대표님, 안녕하세요!”“풉!”그 모습에 한유라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역시 마스크 팩을 떼어냈다.잔뜩 당황한 얼굴로 마른 침만 삼키던 양미라가 변명을 시작했다.“그게 제가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대화에 맞장구만 치다 보니...”바로 손절하는 양미라의 모습에 윤시라가 매서운 눈초리를 날렸다.좋다고 같이 험담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우시겠다?하지만 소은정은 애초에 두 엑스트라한테는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윤시라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려면 이 두 사람만으로는 부족할 거예요. 애초에 이 바닥에서 이 두 여자는 아무 영향력도 없거든요. 기생충처럼 다른 사람한테 기대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기대하는 사람들이죠. 뭐 그러니까... 당신한테 들러붙은 거겠지만.”소은정의 팩폭에 양미라, 이한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올랐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찍 소리도 하지 못했다.박예리가 있을 때는 그 옆에 붙어 이런저런 파티에도 참석해 나름 대접을 받았지만 호구가 사라지니 덩달아 낙동갈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두 사람이었다.박수혁 같은 남자 하나 잡아 제대로 취집하는 게 두 사람의 목표였지만 그녀들에게 다가오는 건 그저 한 번 놀아보려는 어중이떠중이들 뿐.아니. 좀 논다 하는 재벌 2세들은 오히려 인플루언서들과 놀아나는 게 요즘 트렌드였다. 괜히 건드렸다가 정략 결혼으로 이어지면 골치 아파 질 테니까.물론 소은정에게 그깟 남자들 역시 벌레 같은 존재였지만.치졸한 마음이 들켰다는 생각에 윤시라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곧 바로 마음을 다잡았다.나도 이제 재벌 2세야. 나도 부자 아빠 있다고... 예전과 달라...게다가 아빠는 30년 만에 날 만나고 내가 해달라는 건 다 들여줄 것 같은 눈
하지만 한유라는 여유로운 미소로 응수했다.“심한 말? 아직 진짜 심한 말은 시작도 안 했는데요? 당신 아버지가 지금 가진 재산 다 당신한테 물려줄 것 같아요? 아니요. 그 티끌만한 재산도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미 유서 공증까지 다 끝났답니다. 그러니까 당신 몫은 없다는 뜻이에요.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신포그룹 한국지사 지사장 후보까지 올랐다는 건 나름 실무 경험도 많다는 뜻일 텐데... 회사로 나가서 일하라는 말은 듣지도 못했죠?”한유라의 말에 윤시라가 몸을 움찔했다. 요염한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그래... 뭔가 이상하긴 했어. 회사일을 돕겠다고 말할 때마다 아빠도 말을 피하는 것 같았고... 언니, 오빠라는 사람들도 내 앞에서 회사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어.다들 친절하게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니 푹 쉬라”고만 말해서 진짜 내가 사랑받는 공주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설마...한유라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그제야 한유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멍청한 것...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한편 이 의미없는 대화에 환멸이 난 소은정이 말했다.“됐어. 그런 거 말해 줘서 뭐하게. 윤시라 씨, 자기 주제 파악 똑똑히 하길 바랄게요. 아, 현실 파악에 도움이 될만한 선물 좀 할까요? 뒷담화에서 앞담화가 되긴 했지만 나에 대한 루머를 퍼트린 건 사실이니. 벌은 줘야겠죠?”소은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윤시라. 괜히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또 참았는데 호의가 계속 되니까 정말 날 호구로 알잖아?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줄 거야.동시에 휴대폰을 터치하던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자리를 떴다.지금쯤이면 꽤 시끌벅적해졌겠는데?다시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볼 거야.소은정과 한유라가 탈의실로 향하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한유라가 물었다.“도대체 무슨 선물인데?”“SNS 확인해 봐.”한유라가 의아한 얼굴로 휴대폰을 켰고 소은정의 계정을 클릭했다.방금 전 그녀가 올린 영상이 게시되
이로서 다들 손호영이 SC그룹 신제품 CF 모델로 발탁된 것이 윤시라의 함정이었음이 밝혀졌다.소은정의 당당한 복수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손호영이란 인물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가정폭력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그렇게 비이성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적어도 윤시라와 함께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SNS에서 소은정을 팔로우한 사람들은 각 그룹 재벌 2세들이나 각 기업 엘리트들, 이제 다들 윤시라가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윤시라의 집안과는 비즈니스적인 협력도 뚝 끊길 게 분명했다.소은정과 한유라가 여유롭게 에스테틱을 나서던 그때 이성을 잃은 듯한 윤시라가 달려들었다.“소은정, 너 미쳤어? 그 영상 뭐야? 감히 몰카를 해? 난 그렇다 치고 우리 집 체면은 어떡할 건데. 아니지. 너희 집안은 무사할 것 같아?”당황한 윤시라가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윤시라는 소은정의 자태에서 흘러나오는 우월감이 죽도록 싫었다. 비록 연예계 사람은 아니지만 영향력은 웬만한 톱 연예인들보다 더 대단했고 이런저런 스캔들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녀의 편을 드는 네티즌들도 미웠다.개돼지보다 못한 대중들... 도대체 저딴 애가 뭐가 좋다고...윤시라의 말에 소은정이 차갑게 웃었다.“아니요. 우리 집안은 멀쩡할 거예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그쪽 집안이겠죠. 아 아저씨와 아빠가 한때 막역한 사이였던 건 맞지만 지금은 그 조차도 과거 일에 불과하죠. 게다가 영상만 보면 우리 SC그룹이 피해자이니 아빠도 이해할 거라 믿어요.”소은정이 말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윤시라의 휴대폰은 알림을 멈추지 않았다.가족들이 보낸 문자 테러였다. 30년만에 만난 딸, 동생이라며 오냐오냐 해주던 사람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확 바뀐 태도에 윤시라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여전히 여유로운 소은정의 모습에 윤시라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얼음장 같은 한기가 발가락 끝부터 몸 구석구석, 모공 하나하나를 침식하는 듯한 느낌이 들
나였으면 윤시라 그 여자를 납치를 하든 뭘 하든 아예 없애버렸을 텐데.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나 몰라. 속도 좋지.아니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손호영... 윤시라 그 여자랑 함께 놀아나진 않았지만 정정당당하게 들어온 것도 아니고...”손호영의 이미지 세탁까지 하면서까지 CF 모델로 써야 하나?아직도 손호영에 대한 반감이 남아있는 소은해였다.“CF 모델은 일단 교체하지 않는 게 좋겠어. 사실 우리 신제품과 손호영의 이미지... 은근 잘 들어맞는단 말이야. 진중한 스타일의 제품이라 상큼한 신인보다 손호영이 더 나을지도 몰라. 그 남자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로운 매력이 있어...”소은정이 설명하던 그때 집사가 우유 한 잔을 들고 다가왔다.“아가씨, 회장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회장님 옛 친구분이시라는군요. 회장님은 제가 모시고 오겠습니다.”하, 빨리도 왔네. 엔간히 급했나 봐?소은정과 소은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두 사람 모두 소찬식의 옛 친구라고 칭하는 이가 다른 사람이 아닌 윤시라의 친부, 천한강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온 거래?”소은해가 코웃음을 치고 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휴대폰을 건넸다.“아저씨. 아빠한테 일단 이 영상부터 보여주세요. 보시고 나서 아마 만나실지 마실지 결정하실 거예요.”휴대폰을 받은 집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소찬식이 낚시 중인 정원으로 향했다.그리고 잠시 후 집사가 액정이 깨진 휴대폰을 들고 돌아왔다.“회장님께서 화가 너무 많이 나셔서... 이걸 어쩌죠?”“아니에요. 이제 바꿀 때도 됐죠 뭐.”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아빠도 참... 화 많이 나셨나 보네. 이참에 신상으로 바꿔야겠다.이때 소찬식이 구시렁대며 집으로 들어왔다.“천한강 그 자식...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찾아와! 애 잃어버리고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 친하게 지낸 건데... 그 딸은 또 뭐야? 감히 우리 그룹에 그딴 짓을 해?”“아빠, 아저씨도 아마 모르셨을 거예요. 정말 아셨다면 이렇게 급하게 달려오지
소은정이 소찬식을 힐끗 바라보았다.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소찬식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고 한숨을 내쉬었다.“은정이 말이 맞다. 혁신을 추구하는 나와 달리 천한강 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걸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회사 상황이 어려워진 거기도 하고. 하지만 윤시라 그 여자는 천한강이 직접 기른 아이도 아니잖아? 되찾은 지 며칠밖에 안 되는 딸 때문에 체면 불구하고 여기까지 찾아왔으니까 비즈니스적으로는 복수하지 않는 게 좋겠어. 하지만 그래도 윤시라 그 여자에 대해서는 이대로 쉽게 넘어가면 안 돼.”소찬식이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천한강과는 그 동안 쌓은 정이 있으니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었지만 윤시라는 아니었으니까.아버지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애초에 쉽게 놓아줄 생각도 없었어요, 아버지... 그쪽이 먼저 시비를 걸어온 이상, 저도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요.잠시 후, 집사가 다시 돌아왔다.“손님분 돌아가셨습니다.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시더군요. 그리고 아가씨께서 뭘 좋아하시는지 물으셨습니다.”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래도 눈치는 빠르네. 누가 실세인지 바로 알아채고...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아빠도 오빠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겠지.“흥, 남의 딸 취향은 왜 묻는대?”소찬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사실 천한강을 만나 윤시라의 악행을 낱낱이 밝히는 게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아버지의 옛 친구를 그것도 아버지 앞에서 난처하게 만드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포기했지만 말이다.2층에 예비용 휴대폰이 있다는 걸 떠올린 소은정이 방으로 올라갔다.그리고 서버가 다운되어 버린 소호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베란다에 있는 그네에 머리를 올려둔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꼭 목을 매달아 죽은 호랑이 같았다.소은정은 다급하게 신나리에게 영상통화를 걸었고 신나리의 원격 조종 덕에 소호랑은 동그란 눈을 다시 뜰 수 있었다.“왜 갑자기 서버가 다운된 거죠?”“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