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라는 잔뜩 신난 목소리로 새 친구들에게 불평을 이어갔다.“소은정 그 여자 박수혁 대표랑 이혼한 건 다들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여자... 욕심이 어찌나 많은지. 전동하 대표랑 썸타고 있으면서도 박수혁 대표한테 계속 집착하는 거 있지? 나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거지 뭐.”“설마... 신포그룹에서 나온 것도... 소은정 때문이라는 거야? 언니가 박수혁 대표 옆에 있는 게 질투나서?”양미라의 눈이 커다래졌다.“당연하지. 박 대표님이 신포그룹 대표라는 게 밝혀지기 전까지 나 되게 잘 나갔었어. 한국지사 지사장 후보로까지 올라갔었다고. 그런데 박 대표님의 신분이 밝혀나고 여러 사건이 터지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지.”윤시라가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세 사람 중 윤시라, 양미라를 제외한 다른 여자, 이한채가 입을 열었다.“소은정 그 여자가 워낙 드센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긴 했지만... 이번 일은 좀 심했네. 친구들한테서 들었는데 부모님들이 단단히 당부했다잖아요. 소은정 대표는 건드리지 말라고. 시라 언니도 이제 겨우 친아빠를 만났잖아요. 앞으로 인생 핀 거나 마찬가지인데 괜히 건드리지 말아요.”하지만 윤시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코웃음을 쳤다.“하, 나 이제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윤시라가 아니야. 나도 아빠백 있다고. 그 여자가 나한테 함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양미라가 질세라 아부를 건넸다.“그러니까. 이제 언니도 재벌 2세야. 돈 많겠다 이쁘겠다. 언니가 소은정 그 여자한테 꿀리는 게 뭔데? 게다가 언니는 혼자 힘으로 신포그룹에서 입사했고 지사장 후보까지 올라갔던 능력자잖아.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난 그 여자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언니가 회사를 물려받으면 분명 잘해낼 수 있을 거야.”양미라의 말에 한유라가 웃음을 터트렸다.세 사람의 시선이 잠깐 동안 한유라에게 쏠렸지만 마스크팩을 하고 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사실 박수혁 대표 같은 사람한테는 언니가
그 모습에 소은정이 입꼬리를 올렸다.뭐야?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겁 먹은 것 좀 봐.윤시라와 이한채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게다가 이한채는 한 술 더 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소은정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소 대표님, 안녕하세요!”“풉!”그 모습에 한유라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역시 마스크 팩을 떼어냈다.잔뜩 당황한 얼굴로 마른 침만 삼키던 양미라가 변명을 시작했다.“그게 제가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대화에 맞장구만 치다 보니...”바로 손절하는 양미라의 모습에 윤시라가 매서운 눈초리를 날렸다.좋다고 같이 험담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우시겠다?하지만 소은정은 애초에 두 엑스트라한테는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윤시라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려면 이 두 사람만으로는 부족할 거예요. 애초에 이 바닥에서 이 두 여자는 아무 영향력도 없거든요. 기생충처럼 다른 사람한테 기대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기대하는 사람들이죠. 뭐 그러니까... 당신한테 들러붙은 거겠지만.”소은정의 팩폭에 양미라, 이한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올랐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찍 소리도 하지 못했다.박예리가 있을 때는 그 옆에 붙어 이런저런 파티에도 참석해 나름 대접을 받았지만 호구가 사라지니 덩달아 낙동갈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두 사람이었다.박수혁 같은 남자 하나 잡아 제대로 취집하는 게 두 사람의 목표였지만 그녀들에게 다가오는 건 그저 한 번 놀아보려는 어중이떠중이들 뿐.아니. 좀 논다 하는 재벌 2세들은 오히려 인플루언서들과 놀아나는 게 요즘 트렌드였다. 괜히 건드렸다가 정략 결혼으로 이어지면 골치 아파 질 테니까.물론 소은정에게 그깟 남자들 역시 벌레 같은 존재였지만.치졸한 마음이 들켰다는 생각에 윤시라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곧 바로 마음을 다잡았다.나도 이제 재벌 2세야. 나도 부자 아빠 있다고... 예전과 달라...게다가 아빠는 30년 만에 날 만나고 내가 해달라는 건 다 들여줄 것 같은 눈
하지만 한유라는 여유로운 미소로 응수했다.“심한 말? 아직 진짜 심한 말은 시작도 안 했는데요? 당신 아버지가 지금 가진 재산 다 당신한테 물려줄 것 같아요? 아니요. 그 티끌만한 재산도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미 유서 공증까지 다 끝났답니다. 그러니까 당신 몫은 없다는 뜻이에요.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신포그룹 한국지사 지사장 후보까지 올랐다는 건 나름 실무 경험도 많다는 뜻일 텐데... 회사로 나가서 일하라는 말은 듣지도 못했죠?”한유라의 말에 윤시라가 몸을 움찔했다. 요염한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그래... 뭔가 이상하긴 했어. 회사일을 돕겠다고 말할 때마다 아빠도 말을 피하는 것 같았고... 언니, 오빠라는 사람들도 내 앞에서 회사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어.다들 친절하게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니 푹 쉬라”고만 말해서 진짜 내가 사랑받는 공주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설마...한유라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그제야 한유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멍청한 것...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한편 이 의미없는 대화에 환멸이 난 소은정이 말했다.“됐어. 그런 거 말해 줘서 뭐하게. 윤시라 씨, 자기 주제 파악 똑똑히 하길 바랄게요. 아, 현실 파악에 도움이 될만한 선물 좀 할까요? 뒷담화에서 앞담화가 되긴 했지만 나에 대한 루머를 퍼트린 건 사실이니. 벌은 줘야겠죠?”소은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윤시라. 괜히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또 참았는데 호의가 계속 되니까 정말 날 호구로 알잖아?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줄 거야.동시에 휴대폰을 터치하던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자리를 떴다.지금쯤이면 꽤 시끌벅적해졌겠는데?다시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볼 거야.소은정과 한유라가 탈의실로 향하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한유라가 물었다.“도대체 무슨 선물인데?”“SNS 확인해 봐.”한유라가 의아한 얼굴로 휴대폰을 켰고 소은정의 계정을 클릭했다.방금 전 그녀가 올린 영상이 게시되
이로서 다들 손호영이 SC그룹 신제품 CF 모델로 발탁된 것이 윤시라의 함정이었음이 밝혀졌다.소은정의 당당한 복수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손호영이란 인물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가정폭력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그렇게 비이성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적어도 윤시라와 함께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SNS에서 소은정을 팔로우한 사람들은 각 그룹 재벌 2세들이나 각 기업 엘리트들, 이제 다들 윤시라가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윤시라의 집안과는 비즈니스적인 협력도 뚝 끊길 게 분명했다.소은정과 한유라가 여유롭게 에스테틱을 나서던 그때 이성을 잃은 듯한 윤시라가 달려들었다.“소은정, 너 미쳤어? 그 영상 뭐야? 감히 몰카를 해? 난 그렇다 치고 우리 집 체면은 어떡할 건데. 아니지. 너희 집안은 무사할 것 같아?”당황한 윤시라가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윤시라는 소은정의 자태에서 흘러나오는 우월감이 죽도록 싫었다. 비록 연예계 사람은 아니지만 영향력은 웬만한 톱 연예인들보다 더 대단했고 이런저런 스캔들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녀의 편을 드는 네티즌들도 미웠다.개돼지보다 못한 대중들... 도대체 저딴 애가 뭐가 좋다고...윤시라의 말에 소은정이 차갑게 웃었다.“아니요. 우리 집안은 멀쩡할 거예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그쪽 집안이겠죠. 아 아저씨와 아빠가 한때 막역한 사이였던 건 맞지만 지금은 그 조차도 과거 일에 불과하죠. 게다가 영상만 보면 우리 SC그룹이 피해자이니 아빠도 이해할 거라 믿어요.”소은정이 말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윤시라의 휴대폰은 알림을 멈추지 않았다.가족들이 보낸 문자 테러였다. 30년만에 만난 딸, 동생이라며 오냐오냐 해주던 사람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확 바뀐 태도에 윤시라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여전히 여유로운 소은정의 모습에 윤시라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얼음장 같은 한기가 발가락 끝부터 몸 구석구석, 모공 하나하나를 침식하는 듯한 느낌이 들
나였으면 윤시라 그 여자를 납치를 하든 뭘 하든 아예 없애버렸을 텐데.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나 몰라. 속도 좋지.아니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손호영... 윤시라 그 여자랑 함께 놀아나진 않았지만 정정당당하게 들어온 것도 아니고...”손호영의 이미지 세탁까지 하면서까지 CF 모델로 써야 하나?아직도 손호영에 대한 반감이 남아있는 소은해였다.“CF 모델은 일단 교체하지 않는 게 좋겠어. 사실 우리 신제품과 손호영의 이미지... 은근 잘 들어맞는단 말이야. 진중한 스타일의 제품이라 상큼한 신인보다 손호영이 더 나을지도 몰라. 그 남자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로운 매력이 있어...”소은정이 설명하던 그때 집사가 우유 한 잔을 들고 다가왔다.“아가씨, 회장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회장님 옛 친구분이시라는군요. 회장님은 제가 모시고 오겠습니다.”하, 빨리도 왔네. 엔간히 급했나 봐?소은정과 소은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두 사람 모두 소찬식의 옛 친구라고 칭하는 이가 다른 사람이 아닌 윤시라의 친부, 천한강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온 거래?”소은해가 코웃음을 치고 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휴대폰을 건넸다.“아저씨. 아빠한테 일단 이 영상부터 보여주세요. 보시고 나서 아마 만나실지 마실지 결정하실 거예요.”휴대폰을 받은 집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소찬식이 낚시 중인 정원으로 향했다.그리고 잠시 후 집사가 액정이 깨진 휴대폰을 들고 돌아왔다.“회장님께서 화가 너무 많이 나셔서... 이걸 어쩌죠?”“아니에요. 이제 바꿀 때도 됐죠 뭐.”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아빠도 참... 화 많이 나셨나 보네. 이참에 신상으로 바꿔야겠다.이때 소찬식이 구시렁대며 집으로 들어왔다.“천한강 그 자식...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찾아와! 애 잃어버리고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 친하게 지낸 건데... 그 딸은 또 뭐야? 감히 우리 그룹에 그딴 짓을 해?”“아빠, 아저씨도 아마 모르셨을 거예요. 정말 아셨다면 이렇게 급하게 달려오지
소은정이 소찬식을 힐끗 바라보았다.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소찬식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고 한숨을 내쉬었다.“은정이 말이 맞다. 혁신을 추구하는 나와 달리 천한강 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걸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회사 상황이 어려워진 거기도 하고. 하지만 윤시라 그 여자는 천한강이 직접 기른 아이도 아니잖아? 되찾은 지 며칠밖에 안 되는 딸 때문에 체면 불구하고 여기까지 찾아왔으니까 비즈니스적으로는 복수하지 않는 게 좋겠어. 하지만 그래도 윤시라 그 여자에 대해서는 이대로 쉽게 넘어가면 안 돼.”소찬식이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천한강과는 그 동안 쌓은 정이 있으니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었지만 윤시라는 아니었으니까.아버지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애초에 쉽게 놓아줄 생각도 없었어요, 아버지... 그쪽이 먼저 시비를 걸어온 이상, 저도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요.잠시 후, 집사가 다시 돌아왔다.“손님분 돌아가셨습니다.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시더군요. 그리고 아가씨께서 뭘 좋아하시는지 물으셨습니다.”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래도 눈치는 빠르네. 누가 실세인지 바로 알아채고...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아빠도 오빠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겠지.“흥, 남의 딸 취향은 왜 묻는대?”소찬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사실 천한강을 만나 윤시라의 악행을 낱낱이 밝히는 게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아버지의 옛 친구를 그것도 아버지 앞에서 난처하게 만드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포기했지만 말이다.2층에 예비용 휴대폰이 있다는 걸 떠올린 소은정이 방으로 올라갔다.그리고 서버가 다운되어 버린 소호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베란다에 있는 그네에 머리를 올려둔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꼭 목을 매달아 죽은 호랑이 같았다.소은정은 다급하게 신나리에게 영상통화를 걸었고 신나리의 원격 조종 덕에 소호랑은 동그란 눈을 다시 뜰 수 있었다.“왜 갑자기 서버가 다운된 거죠?”“혼자
문이 열리고 소은정이 생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마이크를 내려다 보았다.“안녕!”마이크가 귀여운 잠옷을 입은 채 쪼르르 달려갔다.“예쁜 누나다! 누나가 오늘 날 보러 올 거라고 내가 그랬거든요? 그런데 아빠가 안 믿는 거 있죠? 그러면서 나더러 일찍 잠이나 자라고... 아빠 말 안 듣고 일찍 안 자서 다행이에요!”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던 소은정이 케이크 상자를 들어보였다.“누나가 케이크 사왔다? 조금만 먹어...”마이크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마이크와 커플 잠옷을 입은 전동하가 방에서 걸어나왔다.방금 전에 샤워를 마쳤는지 머리는 젖어있고 항상 살짝 창백하다 싶던 얼굴에도 홍조가 살짝 올라있었다.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목선을 따라 쇄골에 맺히고 부드러움속에 섹시함까지 느껴지는...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그 모습에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그와의 뜨거웠던 키스를 떠올렸다.안 돼! 지금 뭐 하는 거야! 생각하지 마!고개를 살짝 흔들던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동하 씨도 케이크 먹을래요?”소은정이 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전동하는 살짝 멈칫하다 바로 미소를 띄웠다.“이 시간에 어떻게 왔어요?”“당연히 내가 보고 싶어서 왔겠죠!”마이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쩜 이렇게 귀여울까?소은정이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당연하지. 우리 마이크 너무 보고 싶어서 왔지.”그 모습에 덩달아 전동하도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의 말이 꼭 그에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마이크는 잔뜩 흥분한 채 케이크 상자를 열더니 소은정에게 한 조각, 자기에게 한 조각을 덜어주었다.접시에 담긴 케이크를 바라보는 소은정이 반짝였다.수십 억짜리 계약서를 볼 때도 뛰지 않던 심장이 디저트 앞에서 콩닥대기 시작했다.두 사람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케이크 한 조각에 두 사람 다 되게 좋아하네...그러던 도중...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낀 전동하가 마이크를 바라보았다.“아빠 거는 없어?”“아빠가 말했잖
소은정도 포크를 들어 케이크 한 귀퉁이를 콕 집었다.“다른 케이크보다 설탕이 덜 들어갔어요. 크림도 최대한 건강하게 만들었고요. 가끔씩 야식으로 이 정도는 괜찮다고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도 미소를 지었지만 조심스레 포크를 내려놓았다.맛이 없진 않았지만 설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두 번은 먹고 싶지 않았다.소은정도 먹는 걸로 억지를 부리고 싶지 않아 트집없이 마이크와 함께 케이크를 전부 해치웠다.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취향이 존재하는 법이니까.잠시 후, 야밤의 식사를 거하게 마친 마이크가 양치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고 전동하는 웬일로 소파에서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마쳤다.별 생각없이 집문을 나섰지만 곧 휴대폰을 두고 온 걸 발견하고 소은정이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그런데... 거실 화장실에서 전동하가 가슴을 움켜쥔 채 토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설... 설마 케이크 때문에?소은정의 낯빛이 창백해졌다.하지만 그녀가 다가가기 전에 인기척을 느낀 전동하가 고개를 들었다.순간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지만 저 멀리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을 보고 곧 무슨 상황인지 이해한 듯 피식 웃었다.변기 위에서 일어나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전동하의 눈동자는 핏발까지 선 상태였다.“놀랐어요?”“미안해요. 난 그냥 정말 장난으로 그런 건데... 알레르기까지 있는 줄은...”자신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가슴에 둔기를 맞은 듯 욱신거렸다.그녀를 향해 한 발 다가가던 전동하가 다급하게 손을 내밀었다.“아, 잠깐만요. 나 세수 좀 하고 올게요.”1분 뒤, 세수와 양치질을 마친 전동하의 눈에 여전히 죄책감 가득한 얼굴의 소은정이 들어왔다.“은정 씨 때문 아니에요.”하지만 고개를 숙인 소은정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나랑 상관이 없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알레르기 아니에요. 설탕에 알레르기가 있었으면 다른 음식도 못 먹는 게 많았겠죠. 그냥... 케이크 자체에 트라우마가 있어서요.”소은정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전동하는 남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