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몸놀림으로 스시를 집는 박수혁의 모습은 우아한 예술 행위 그 자체였다.“그렇게 해야 철이 빨리 들 것 같아서.”소은정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박수혁이 말을 이어갔다.“운 좋게 재벌가에서 태어난 게 다면서 항상 다른 사람 하대하고. 그럼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매장에서 직접 일해 보라고 했어. 갑질 같은 것도 당해보면 느끼는 바가 있겠지.”그제야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뭐, 오빠의 애타는 마음과 달리 박예리는 성깔을 전혀 고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말이다.소은정은 빠르게 아침을 먹고 회사로 향했다.텅 빈 집 박수혁, 오한진 두 사람만 남자 오 집사가 두 눈을 반짝이며 다가갔다.“대표님, 어제 분위기 어떠셨습니까?”하, 이 자식 감히 그 사건을 입에 올려?어제 당했던 수모가 떠오르며 박수혁은 매섭게 오한진을 노려본 뒤 말없이 휠체어를 끌고 서재로 들어갔다.......SC그룹, 소은정은 출근 후 바로 전동하에게 계약서 초안을 작성해 메일로 보냈고 거성그룹 임춘식과도 바로 컨택을 시작해 계약서 세부사항은 거성그룹에서 작성하기로 결정을 내렸다.세 회사가 계약서 세부사항에 대해 상의를 나누는 장소는 거성그룹으로 정했다. 전동하가 거성그룹의 연구실 수준을 보고 싶다는 말도 장소를 정하는데 한몫했다.오후 미팅을 나서기 전 회사 사원 명단을 쭉 훑어보던 소은정은 이번 프로젝트에 그녀와 함께 할 직원을 한 명 골랐다.그녀의 눈에 든 건 바로 인턴사원 남종석, 수많은 엘리트 사원들 사이에서 그녀가 남종석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아직 인턴사원인 남종석은 별다른 백도 없었고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다 보니 순수하고 올곶은 면이 있었다. 적어도 그의 눈동자에서는 그 어떤 야심과 탐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온전히 그녀가 키워낸 사원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전동하와 소은정 일행은 거성그룹에 도착한 뒤로 바로 임춘식이 마련한 임시 사무실로 향했다.임춘식은 낯선 얼굴인 남종석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
살짝 언짢긴 해도 예의상 딱히 묻지 않았지만 소은정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눈치챈 전동하가 싱긋 미소 지었다.“마이크가 굳이 소 대표님한테 선물로 가져다주라더군요. 대표님께서 좋아하실 거라고. 뭐,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어깨를 으쓱한 뒤 전동하는 테이블에 꽃을 내려놓고 임춘식과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참나, 이 자식... 국화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걸 믿은 내가 바보지...한편, 마이크가 고집을 부렸다는 말에 그제야 소은정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꼬맹이, 며칠 안 봤다고 벌써 보고 싶네.각 회사 직원들 사이에 인사도 끝나고 임춘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자, 그럼 가시죠.”회의실에 도착한 소은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박수혁이 직접 왔다고? 휠체어에 앉아있긴 했지만 그 날카로운 눈빛에 담긴 차가운 포스만은 여전했다.굳이 다친 다리를 끌고 여기까지 와야 했나 싶다가도 워낙 태한그룹에도 중요한 프로젝트니 직접 온 것이지 싶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늘은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라 회의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40분 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중 전동하는 따로 소은정과 상의할 일이 있다며 소은정과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두 사람이 나란히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박수혁의 눈동자에 살짝 질투가 서렸다.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임춘식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왜요? 질투 나십니까?”“저 옆에 있는 비서는 뭡니까?”생각지 못한 질문에 항상 침착한 분위기의 임춘식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박수혁의 생각은 이러했다. 전동하는 아들도 있는 싱글 대디인데다 세상을 뜬 와이프를 아직도 깊이 사랑하고 있으니 소은정과 잘 될 리가 없다고. 오히려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건 소은정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새 수행비서였다.그는 임춘식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기 전 오한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대표님, 명심하세요. 절대 다른 남자들에게 기회를 주시면 안 됩니다. 물론 그 어떤 남자도 대표님과 비교할 수는 없겠
직급으로 제대로 눌러주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자 임춘식이 입을 삐죽거렸다.“소은정 대표가 공과 사를 구분 못 할 정도로 엉망인 대표는 아니니까요.”그런 임춘식을 쏘아보던 박수혁이 덤덤하게 말했다.조금이라도 잘난 구석이 있으면 바로 견제에 들어갔겠지만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듯한 어린애에게 소은정이 마음을 빼앗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한편, 임시 사무실로 돌아온 소은정과 전동하는 거의 모든 면에서 의견이 일치했고 덕분에 순조롭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대화를 마치고 전동하는 볼일 때문에 호텔로 돌아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소은정은 그런 전동하를 배웅했다.“요즘 마이크가 안 보이네요. 저번 교통사고 때문에 많이 놀랐나 봐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가 싱긋 웃엇다.“테러도 겪어본 애가 그런 사고에 겁을 먹을 리가요. 가정교사 몇 명 붙여줬는데 숙제가 조금... 많아서 공부 중입니다.”“아...”불쌍한 마이크. 여기나 저기나 부모들 등쌀에 애들만 죽어나가는구만.“얼굴 보고 싶으시면 호텔로 바로 가시죠. 마이크도 은정 누나 보고 싶다며 아주 매일 울고불고 난리입니다.”“네, 그럴게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때, 뒤편에서 박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제 퇴근하는 거야?”소은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 인간 왜 아직도 안 가고 여기 있어?전동하는 예의상 고개를 까닥해 보였고 박수혁도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동하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도 박수혁의 눈빛은 소은정에게만 향해 있었다.“얘기 다 나눴으면 더 할 일 없는 거 아닌가 해서. 같이 집 갈래?”저 인간이 정말. 여기가 어디라고. 뭐? 같이 집을 가? 사람들이 오해라도 하면 어쩌려고!이때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전동하는 젠틀하게 소은정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박수혁은 스스로 휠체어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탈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듯 뻔뻔한 눈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나더러
"네, 알겠어요."계단을 오르던 그때, 또다시 들리는 문소리에 소은정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최성문과 박수혁이었다.이번에도 오한진은 오버스럽게 반가워하며 다가갔다.“박 대표님 오셨습니까? 오늘 몸은 불편하지 않으셨죠? 우리 대표님도 참, 아프시면 얼굴이 상할 만도 한데 여전히 멋지시다니까요. 이렇게 보면 은정 대표님과 정말 잘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박수혁을 집까지 모신 뒤 소은정의 뒤를 따르던 최성문이 흠칫 멈춰 서더니 고개를 돌렸다.“오 집사님, 다시 박수혁 대표님과 저희 아가씨를 엮으면 정말 가만히 안 있습니다.”하지만 오한진은 그런 그의 말에 겁을 먹기는커녕 잔뜩 감동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매섭게 노려보기만 하던 그가 뭔가 리액션을 보였다는 건 분명 좋은 신호였으니까.최성문의 말에 소은정도 웃음을 터트렸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관리했다. 딱 봐도 일이 자기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데... 아무리 밉다지만 생명의 은인한테 너무한 게 아닌가 죄책감이 들어서였다.“큼큼, 대표로서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는 방법 중 하나니까요.”누가 봐도 어색하고 형식적인 칭찬이었지만 박수혁은 기분이 꽤나 좋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역시 은정이가 뭘 좀 알아.”겉치레뿐인 칭찬이라 해도 좋았다 이렇게 소은정이 그를 칭찬해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휴, 남자들도 참 단순해. 칭찬은 고래도 춤 추게 한다더니 진짜였구만?최성문도 방금 전 자신의 말이 조금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대표님, 오늘도 샤워하실 겁니까?”말주변이 워낙 없는 그인지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순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진지한 최성문의 얼굴과 차갑게 가라앉은 박수혁의 표정을 본 순간, 어제 완벽했던 계획이 모두 실패했음을 눈치채고 바로 주방으로 도망쳤다.......잠시 후, 방으로 돌아온 소은정은 전동하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비즈니스 파티가 열리는
소은정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전동하 대표가 교통사고에 관한 단서를 알아냈대. 오늘 늦게 들어올 수도 있어.”“조심해.”박수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소은정과 최성문이 집을 나서려던 그때 이때 오한진이 헐레벌떡 달려왔다.“저도 갈래요. 은정 대표님,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네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오한진이 상처를 받을까 꾹 참는 오한진이었다.“제가 있는 한 아가씨는 안전하십니다.”최성문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더 안전하지 않겠어요?”오한진은 기대 섞인 눈빛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뭐라고 말씀 좀 해보십시오!잠시 고민하던 박수혁이 결국 입을 열었다.“데리고 가. 혹시라도 위험하면 방패로라도 쓰게.”“그래.”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했다.파티장, 최성문이 먼저 차에서 내려 소은정을 에스코트했다.고급 정장을 빼입은 전동하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주위는 저희가 통제하고 있습니다.”생각지 못한 위험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는 말이었다.전동하의 배려에 소은정이 싱긋 미소 지었다.소은정과 전동하가 파티장으로 들어가고 최성문은 두 사람과 살짝 거리를 둔 채 뒤를 따랐다. 이때 오한진이 바싹 붙으며 소곤댔다.“저분은 누구세요?”“모릅니다.”괜히 이름을 말했다간 더 귀찮게 달라붙을 것 같은 느낌에 최성문은 모른다고 말한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오한진이 아니었다.“설마 은정 대표님한테 관심있는 거 아니에요? 좀 가까이 가봐요. 보디가드잖아요.”부드럽지만 포스있는 자태, 조각같은 이목구비, 딱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다 분위기가 묘하게 박수혁과 비슷했다.이러다 뺏기는 거 아니야?하지만 최성문은 오한진을 힐끗 바라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런, 내 말은 죽어도 안 듣는다 그거지? 어쩔 수 없지. 이 몸이 직접 나설 수밖에.한편, 전동하와 함께 파티장으로 들어간 소은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은은한 음악, 럭셔리하지만 과하지 않은 장식
성천호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중 조준안이 성천호의 어깨를 두드렸다.“돌싱도 괜찮으면 나는 어때?”뻔뻔한 조준안의 말에 성천호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하하...”옆에서 가만히 있던 예정한이 소은정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보아하니 이번 프로젝트는 SC그룹이 하기로 결정난 것 같군요. 미리 축하드립니다.”소은정도 예정한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감사합니다.”이때 예정한이 두 눈을 반짝였다.“아, 태한그룹 박 대표님 말입니다.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세요? 며칠 전에 골프나 같이 치려고 했더니 이 비서가 알려주지 뭡니까. 병문안이라도 가봐야 하는데 좀처럼 시간이 안 나네요.”“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그녀가 박수혁의 집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양쪽 부모님을 제외하고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이상한 소문이 돌 게 분명했다.소은정의 대답에 예정한이 피식 웃었다.“하긴요. 두 분 헤어지셨으니까 잘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왠지 비아냥거리는 듯한 예정한의 말투에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이런 자리에서 굳이 두 사람이 이혼한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가 뭘까?소은정의 반응에 예정한은 짐짓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어머, 전 대표님은 모르셨나 봐요.”한편 성천호와 조준안 또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소은정이 돌싱인 걸 안다면 게다가 전 남편이 박수혁이라는 걸 안다면 전동하, 소은정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질 테고 프로젝트도 진행시키지 못할 게 분명하니 다시 기회가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소은정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이혼이 자랑도 아니고 자기소개에 돌싱이라고 꼭 말해야 하나요?”전동하도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리고 저와 소은정 대표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습니다. 소은정 대표에 관한 일은 굳이 예 대표님이 말씀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이에 예정한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아,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이때
오한진의 주접에 소은정은 말없이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오한진 이 남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두 사람의 대화는 당연하게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예정한은 다시 술잔을 들고 다가오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오한진을 훑어보았다.“이분은...”하지만 소은정은 오한진을 소개할 생각이 없는 듯 침묵을 유지했다.이때 오한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항상 얼굴에 넉살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오한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아이고, 오랜만이네요.”그 모습에 오히려 예정한이 당항하기 시작했다.먼저 인사를 건네는 걸 보면 아는 사이가 분명한데 도무지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오한진의 손을 잡았다.“소 대표님과 한창 대화 중이시던데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오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옷차림은 촌스러워도 시원시원한 행동거지만 보면 이런 파티에 여러 번 참석해 본 듯 익숙했다.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예정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미모가 좋긴 좋네요. 어딜 가나 보디가드들이 따르니...”“저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소 대표님을 바라보겠어요?”예정한의 말을 끊어버린 오한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예정한을 바라보았다.사실 오한진과 예정한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었다. 보아하니 돈 좀 있는 회사 대표인 것 같은데 그래봤자 우리 박 대표님만 하겠어?“제 얼굴 좀 보십시오. 뚱뚱하고 못생겼죠. 대표님도 나이가 꽤 있으신 것 같은데 오르지도 못할 나무 바라보지 맙시다. 박수혁 대표님 정도는 되어야 소 대표님과 어울리죠.”오한진의 말에 예정한의 얼굴에 걸려있던 여유로운 미소가 살짝 굳었다.뭐? 나이가 많아?“실례입니다만... 어느 회사 대표님이시죠?”어느 구멍가게 대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당장 문 닫게 해주지. “제가 대답해야 하나요?”오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순간,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고
동하는 입술을 오므렸다. 흑갈색의 보석 같은 눈동자에 싸늘한 빛이 번쩍였다.차가 병원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내리지 않았고 성문이 다가갔다.5분도 안 돼서 성문이 전화를 걸어왔다."아가씨, 사람 잡았어요!"은정의 눈은 반짝였고, 휴대전화에서 또 다른 용서를 구하는 소리가 들렸다.낯선 사람이다.동하는 전화를 받아 "예정호가 시킨 건가요?" 라고 직설적으로 물었다.알고 보니 그가 의심한 것도 예한 이었다.“아니요, 아니요. 예한 그룹의 회장님은 아니에요!” 뭔가 감추려는 듯 낯선 이의 날카롭고 다급한 목소리였다.하지만 예한그룹의 회장님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미 모든 것이 폭로되었다.동하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예정호를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전화 반대편의 사람은 순간 망설였다.“대표님이 오셨습니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예정호를 잡았습니다.동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그는 전화를 끊고 은정을 바라보았다."보아하니 대표님은 목표를 이미 알고 계셨나 보군요, 우리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니."은정의 눈빛이 번뜩였다, 요 며칠 수혁을 따라다니며, 그가 계속 이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니, 이렇게 빨리 배후를 찾다니.하지만 돌이켜보면, 수혁은 여태껏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이번에 이렇게 큰 손해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아마 처음부터 그는 암암리에 조사했을 것이다."가서 볼래요?"동하가 제안하였다."아니요, 집에 갈래요." 은정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녀가 보려고 하는 것은 결코 부하가 아니다.그녀는 큰 물고기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다.동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에게 지시를 한 뒤 차에서 내려 기사에게 그녀를 데려다주라고 한 뒤 혼자 병원에 들어갔다.배후를 찾았으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은정은 불안한 마음이 여전했다.쇼핑몰에서의 일은 이익을 분배하기 위해서였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가지는 건데, 어째서 죽느냐 사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