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저렇게 짜증이 난 걸까?남유주가 욕실 문을 따고 들어가기를 바랐던 걸까?남유주는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리며 의자에 걸린 옷을 가리켰다.“안 입었던 새옷이에요. 좀 큰 사이즈로 샀으니 몸에 맞을 거예요. 저것도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박수혁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차라리 내 옷을 가져가서 드라이세탁하고 가져다주지 그랬어요?”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입지 않을 옷이지만 저런 것을 몸에 걸치는 것보다는 나았다.남유주는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저기요. 난 댁의 가정부가 아니에요. 내가 왜 그런 것까지 해야 하죠?”박수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나 좋아한다면서요? 좋아하면 이런 건 원해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말투에 남유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이 남자는 항상 여자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시하며 살아온 걸까?그녀는 정색하며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그쪽을 좋아하지만 그쪽은 나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왜 가정부 노릇을 자처해요?”그 말에 박수혁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정말 현실적이네.’박수혁은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티셔츠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남유주는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잠시 후, 박수혁이 옷을 다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남유주는 어느 정도 그의 성향을 알 것 같았다.그녀가 열정적으로 다가가면 그는 오히려 위축된다.그녀가 싸늘하게 대하면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다고 의심했다.심플한 티셔츠를 입은 박수혁은 평소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였다.‘좀 색다르긴 하네.’빚쟁이 같은 저 구린 표정만 아니었다면 아마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더 많았을 것 같았다.그녀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박 대표님, 이 옷을 입고 밖에 나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뭐라고요?”“아니면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잘래요? 내일 이 비서님한테 옷을 새로 가져다달라고 하면 되잖아요?”남유주는 기대에
눈깜빡할 사이 한 달이 지나가고 이날은 첫눈이 왔다.거리에 눈꽃이 흩날리는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아쉽게도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버려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첫눈은 남유주가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끝나 버렸다.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박수혁은 그녀를 기피하고 있었다.그날 밤 이후로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남유주는 아주 즐겁게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이한석이 디저트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남유주는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이 비서님, 오랜만이에요. 뭘 이런 걸 다 들고 오셨어요? 오늘 술은 제가 살게요!”“아니요, 유주 씨. 저 차 가져왔어요. 오는 길에 맛있어 보여서 사왔어요. 빈손으로 올 수는 없잖아요.”이한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디저트를 그녀에게 건넸다.유명 베이커리의 히트상품이었는데 세심하게도 무설탕 제품으로 구매했다.남유주는 그의 자상함에 감동했다.“박 대표님이 이 비서님만큼 자상했으면 진작에 솔로 탈출했을 거예요.”그 말이 끝나자 이한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게… 사실은 박 대표님이 보내서 왔어요.”찬장에서 술을 꺼내던 남유주가 그 말을 듣고 바로 다시 찬장을 닫았다.이한석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별일은 아니고 얼마 전에 대표님이 가게에 겉옷 한 벌을 놓고 가셨다고 들어서요.”남유주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그러자 그녀를 바라보는 이한석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남유주는 다급히 해명했다.“그날 어떤 여자가 대표님 옷에 술을 쏟았거든요.”“네, 그 얘기는 이미 대표님께 전해들었어요.”이한석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박수혁이 말한 남유주는 싫은 사람한테 끝까지 들이대는 찰거머리 같은 여자였다.그래서 더 싫다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남유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그 옷 돌려달래요? 그럼 지금 가서 가져올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침실로 올라갔다.‘진작에 돌려줬
태한그룹.이한석과 동행했기에 번거로운 신분확인 절차는 생략했다.그래서 그런지 남유주는 직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예쁘장한 외모에 기품도 남달랐고 게다가 이한석이 직접 모시고 온 여자라 더 주목을 받았다.회사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남유주는 속으로 분을 삭히기에 바빴다.이한석은 앞에서 성큼성큼 걷는 그녀를 숨가쁘게 따라갔다.남유주는 곧장 대표 사무실로 직행했다.평소라면 비서실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한석이 있었기에 그런 절차도 필요 없었다.마침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이한석이 따라 들어가는데 뒤에 있던 남직원이 말했다.“이 비서님, 대표님은 지금 손님을 만나고 계신데….”이한석은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남유주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서 쇼핑백을 짜증스럽게 바닥에 던졌다.그리고 앙칼진 목소리로 욕설부터 퍼부었다.“박수혁 이 나쁜 자식아! 안에 도대체 뭘 집어넣고 이런 식으로 사람 모함하는 거야? 내가 물건을 훔쳐? 지나가는 개도 너 같은 인간보다는 품행이 바를 거야!”이한석은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지금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대기할지 고민했다.옆에 있던 동료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이 비서님, 저 여자분은 도대체 누군데 다짜고짜 욕부터 퍼부어요? 설마….”“신경 끄고 일이나 해!”이한석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상사의 생각은 그조차도 아리송했다.잠시 후, 사무실이 조용해졌다.그는 조심스럽게 밖에서 상황을 살폈다.남유주는 한바탕 욕설을 퍼부은 뒤에야 사무실이 비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안에 없어?’그녀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탐색했다. 앞에 가벽으로 보이는 게 있었는데 살짝 손길이 닿자 움직였다.남유주는 살짝 벌어진 통로에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박수혁,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무고죄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하지만 그 순간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박수혁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박시준.아이는 금방 잠에서 깼는지 몽롱한 눈을 비비며 조심스
박시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긴장한 말투로 대답했다.“아직 채 못 봤어요.”박수혁은 바로 인상을 썼다.“설마 여태 잔 거야? 난 회의를 두 개나 마쳤는데 넌 여태 잠만 잤다고?”그는 싸늘하게 아이를 다그쳤다.사무실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숨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옆에서 듣고 있는 남유주도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그녀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이런 억압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커서 박수혁 같은 변태가 될까 봐 걱정도 되었다.아주 먼 미래에 박수혁을 닮은 박시준이 싸늘한 얼굴로 그녀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갑자기 닭살이 돋았다.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이 무거운 정적을 깼다.“박수혁 씨, 시준이 나이의 어린애들은 원래 충족한 수면을 보장해야 해요. 당신이 잠자기 싫다고 애까지 잠 못 자게 괴롭히는 게 어디 있어요?”“잠을 적게 자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밤에 늦게 자면 아침에 늦게 깨는 게 당연하죠. 당신은 늦잠 자본 적 없어요?”그녀는 아동학대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박수혁의 행위를 두고 볼 수 없었다.박시준은 감동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이는 남유주의 이런 면이 좋았다.하지만 아빠는 한 사람을 좋아하면 통찰력이 줄어들고 멍청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그래서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큐브도 박수혁은 금지시켰다.아이는 대놓고 남유주를 좋아한다고 티를 낼 수 없었다.하지만 눈빛에서 흘러나온 무한한 신뢰는 숨길 수 없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박수혁이 싸늘하게 말했다.“늦잠 자본 적 없어요. 돈이 없고 삶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이 그런 게으른 생각을 하면서 신체의 본능에 모든 걸 맡기겠죠.”그 말에 남유주는 경악했다.저게 사람인가?그는 그녀까지 빗대어 욕하고 있었다.남유주는 더 이상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사그라들었던 분노의 불길이 다시 치솟자, 그녀는 이를 갈며 말했다.“그래요.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네요. 그래서 우리보다 얼마나 더 오래 살 거 같아요? 당신이 창조한 막대한 경제적
그는 중도에 포기한 여자가 얄미웠다.그래서 그녀의 생각이 궁금하고 또 무슨 이상한 술수를 부리나 궁금해서 이한석을 보낸 것이었다.만약 그녀가 그 옷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면 아직도 그에게 마음이 있는 거라 생각했다.그리고 얼핏 보면 그의 예상이 적중한 것처럼 보였다.역시! 입만 살은 여자로군!박수혁은 입을 꾹 닫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회원 전용 카드였는데 그냥 확인 차 물어본 것뿐이었어요. 거기 없다면 어쩔 수 없죠.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만들면 돼요.”그 말을 들은 남유주는 더 큰 화가 치밀었다.“그러니까 그까짓 회원 카드 때문에 사람을 도둑으로 모함했다고요? 어디 업소예요? 잃어버렸으면 그냥 분실신고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요? 왜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요? 설마 내가 당신 카드 들고 나가서 흥청망청 놀았겟어요?”“정말 아무에게도 들키면 안 되는 불법 업소 출입카드인가요? 그래서 경찰에 신고조차 못한 거예요?”그녀는 이 일 때문에 여기까지 달려온 것을 후회했다.‘나도 바쁜 사람인데!’박수혁의 얼굴이 점점 음침하게 굳어갔다.그는 최대한 분노를 억제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하지만 남유주는 그의 인내심을 더 자극하려는 듯이 비아냥거리는 말을 쏟아냈다.“당신 같을 사람들은 돈밖에 모르는 비열한 족속들이죠. 더 얘기하고 싶지도 않아요. 옷 여기 가져왔으니까 잘 확인해요. 우리 집에 더 놓고 간 거 없겠죠?”말을 마친 그녀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박수혁은 너무 분노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박시준은 남유주를 따라 밖으로 달려나갔다.“이모, 같이 밥 먹기로 했잖아요.”남유주는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주변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너무 부담스러웠다.‘대표 사무실이니 방음은 잘 되어 있겠지?’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아이에게 말했다.“미안해, 시준아. 아까도 봤겠지만 네 아빠랑 다퉈서 이모가 지금 밥 먹을 기분이 아니
남유주는 게 다리살 하나를 맛보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금방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신선한 바다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박시준은 짬뽕 국물을 호로록 마시고는 코를 훌쩍였다.남유주가 물었다.“너 매운 거 좋아해?”박시준이 웃으며 말했다.“며칠 전에 비서 누나랑 같이 여기 온 적 있었는데 제가 뭘 먹을지 몰라서 헤매니까 짜장면이랑 짬뽕을 추천해 주셨어요. 너무 맛이 있어서 감탄했어요!”남유주가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넌 아직 어리니까 자극적인 음식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아.”“알아요. 아빠한테는 비밀이에요. 아빠는 절대 이런 거 못 먹게 하거든요!”남유주는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너무 잣대가 엄격해. 내가 그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박시준은 생긋 웃고는 고개를 숙이고 식사에 전념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즐겼다.그런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 없이 그들에게 다가왔다.구내식당 담당자가 다급히 이쪽으로 다가오며 인사했다.“대표님 오셨어요?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식사 중이던 박시준과 남유주는 흠칫하며 표정이 굳었다.조금 전까지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식어버렸다.‘내가 비싼 해산물 파스타 주문했다고 물어내라고 하지는 않겠지?’박시준은 먹지 말라는 음식을 먹다가 들켜서 그런지 많이 긴장한 표정이었다.박수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고는 담당자에게 말했다.“아니, 됐어. 아직 점심시간도 아니고. 그냥 둘러보러 온 거야. 누가 일하는 시간에 걸신 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밥 먹으러 왔는지 궁금해서!”구내식당 담당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다행히 식당 안에 직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린애와 못 보던 여자 한 명만 있었다.박시준은 티슈로 입가를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아빠….”남유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식사에 전념했다.어차피 여기 직원도 아니고
상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선배, 같이 수업도 들었는데 나 누군지 모르겠어?”남유주는 흠칫하며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흐릿한 기억 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그녀를 2년이나 끈질기게 쫓아다녔던 대학교 후배였다.그때는 이형욱과 결혼하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졌을 때라 주변 눈치를 보며 살아가던 때였다.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녀가 또래의 남자와 가까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눈앞의 위풍당당한 소방관이 그때 그 꼬맹이 주희철이라고?남유주는 갑자기 마음이 착잡해졌다.주희철의 외모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예전에는 그냥 철 모르는 어린애였는데 지금 보니 꽃미남으로 훌륭하게 성장했다.남유주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안전통로 점검을 끝낸 주희철은 소화전을 살펴보겠다고 했다.그런데 그가 심각한 얼굴로 소화전을 내려보았다.“소화전이 규격에 맞지 않네요. 내일도 영업 정지예요.”남유주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왜? 이거 새로 산 건데?”주희철은 서류에 꼼꼼히 기입한 뒤,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선배, 설마 내가 과거 일로 시비를 건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나 공사는 분명한 사람이야.”남유주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과거에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 내 생각엔 별일 없었는데?”남자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래도 기억은 해주네?”남유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잊었을 리가 없잖아.”그녀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긴 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그래서 새로 산 소화전이 왜 규격에 안 맞는다는 거야? 따지려는 건 아니고 정말 모르겠어서 그래.”주희철이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선배가 구매한 액상형 소화기는 불이 났을 때, 표면에만 뿌려지게 되는데 수용성 가연물질에 취약해. 가게에 술도 많으니 액상형 소화전은 거의 힘을 못 쓸 거야. 화재가 발생한다면 아무 쓸모도 없어.”남유주가 웃으며 대답했다.“난 전혀 못 알아듣겠네. 네가 전문가니까 추천해줄래?
주희철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상사가 오라는데 가야지. 거절했다가 또 무슨 봉변을 당하라고.”남유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가방을 챙겨 그쪽으로 가려는데 주희철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사악한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선배, 박수혁이랑 무슨 사이야?”“그냥 아는 사이.”주희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러네. 일반인이 그러 사람이랑 알고 지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저 사람 아직 솔로라던데 여자를 만나도 학력이 최소 박사가 되어야 한다며?”남유주는 그 말을 듣고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주희철이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우리 선배가 아깝지. 선배의 미모는 아무나 못 따라오는 것이니까.”남유주는 그제야 안 좋았던 기분이 싹 사라지고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룸으로 가자 박수혁과 진 서장 옆자리에 각각 하나씩 자리가 남아 있었다.남유주는 박수혁의 옆에 앉기 싫어서 웃으며 진 서장에게 말을 건넸다.“진 서장님….”박수혁이 음침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진 서장은 재빨리 눈치를 채고 주희철에게 말했다.“희철아, 여기 와서 앉아.”주희철은 남유주를 힐끗 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가서 앉았다.눈앞에 여러 명의 거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긴장한 기색이 아니었다.다른 사람들도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이곳에서 남유주가 아는 사람이라곤 박수혁뿐이었다.그녀가 자리에 앉자 박수혁은 사람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진 서장 외에도 유명 IT기업 사장 마윤석이 있었는데 평소 취미가 바다낚시라고 했다.실제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도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찍은 사진이 많았다.그리고 금융업계 종사자도 있었고 정부기관 관료도 있었다.남유주는 처음으로 박수혁은 참 바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다행히 높으신 분들이 성격은 나쁘지 않아서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가장 이 자리가 불편한 사람은 주희철이었다.박수혁은 틈만 나면 주희철을 관찰했다.젊고 잘생긴 남자, 첫인상은 그게 전부였다.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