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의 말에 그녀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그녀는 자기가 지금 어떤 동요나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어떤 감동이나 충격, 아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마치 낯선 사람과 마주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박수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그녀는 나긋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수혁 씨, 내가 당신 호의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당신 간곡함을 거절한 거야. 내 말 이해했어?”박수혁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박수혁은 눈썹을 찡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왜지? 이미 떠났잖아. 당신이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아 한다는 건 나도 이해해,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살 수 없잖아. 고통에서 도망치려면 우선 그 남자에 대한 감정에서부터 걸어 나와야 하잖아. 안 그래?”소은정은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아니, 난 동하 씨를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난 단 한 번도 고통에서 도망치려 한 적 없어. 고통을 잠깐 중지시킨 거지, 망각한 건 아니야. 난 그를 사랑해, 그는 쉽게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혹시나 그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난 그의 옆에 있을 거야.”전동하는 그녀에게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줬다. 그녀가 준 사랑의 10배는 더 되는 사랑으로 그녀의 사랑에 보답했다.순간마다 그녀를 향해 베푸는 전동하의 배려와 사랑은 그녀에게 덧없는 안정감을 선사했다. 이 세상 누구도 전동하 만큼 자기를 사랑해 줄 수 없다고 그녀는 확신했다.박수혁에게 받은 상처는 진작에 전동하의 사랑을 통해 완전히 아물었다. 넘치는 사랑을 주는 전동하 대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박수혁과 그녀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전동하에 대한 애정이 어린 말과 그를 사랑한다는 그녀의 말에 박수혁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짙게 깔린 눈빛에서 분노가 차올랐지만 박수혁은 자기 입술을 깨물며 분노를 억눌렀다.“당신도 예전에는 날 이렇게 사랑했던 건가?”3년이
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았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서 다시 새봄이와 장난을 치면서 놀았다.소은정은 창밖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동하 씨도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살아있었다면 분명히 내 곁으로 돌아왔겠지?'소은정이 생각에 빠진 사이에 별장에 도착했다.이 별장은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었고 엔티크한 분위기가 마치 귀족들만 사는 마법의 성과 같았다.집사 한 분이 별장에서 살면서 꾸준히 집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집이 매우 깨끗했다.새봄이는 마이크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고 집사는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새봄이가 돌아온 것을 본 문준서가 달려가서 새봄이를 안았다.문준서를 본 소은정은 잠시 멍때렸다."준서야, 엄마 아빠 만나러 집으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문준서는 억울한 표정을 짓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 옆에서 우연준은 기침하며 설명하려고 다가왔다."제가 준서랑 같이 부모님을 뵈러 갔었는데, 얼굴만 잠깐 보고 밥도 안 먹이고 저보고 다시 데려가라고 하더라고요.”소은정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문준서를 바라보았다.비록 문준서가 소은정의 집에서 살면서 내색은 안 해도 마음속으로는 집이 그리웠을 그 아이의 생각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소은정은 다가와서 문준서의 머리를 만지며 웃으며 말했다."우리 준서, 먹을 복이 많네. 점심은 네가 좋아하는 치즈 랍스터를 해 줄게. 그리고 내일 다 같이 놀러 갈까?"새봄이도 해외여행은 처음이라서 맘껏 즐기고 집에 보낼 생각이었다.문준서의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빛나더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우와 신난당, 저희는 놀이공원에 가서 퍼레이드 쇼를 보고 싶어요.""좋아, 그럼 네가 새봄이를 잘 지켜줘야 해. 알겠지?""네! 그럴게요. 저한테만 맡겨주세요!"문준서의 말솜씨는 주변 사람들을 아주 행복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한편, 새봄이는 오빠에 대한 동경으로 하루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어쩐지 윤이한 씨가 일부러 날 끌고 오더라니.’“사모님, 전 대표님께서 자리에 계셨다면 그들을 견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미 대표님께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런 소란을 만든 겁니다.”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이에 따라 치러야 할 대가가 컸다.이 역시 전동하가 힘들게 이 프로젝트를 따낸 이유이기도 했다.국내의 제품을 수입해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파는 게 전동하가 그린 그림이었다.그녀는 씁쓸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전동하는 올바른 성정 때문에, 정의로운 마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그녀는 이번에야말로 다시 한번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기회가 생긴 것 같았다.한편으로는 전동하가 그녀에게 이 일과 관련된 일절 얘기를 하지 않은 게 의외였다.어쩌면 전동하는 정말로 이 일을 하찮은 일 따위로 여긴 것일지도 몰랐다.‘대단한 사람이라니까.’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윤이한은 그녀에게 위층을 가리켰다.“저희는 좀 더 올라가야 해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언제 있었던 일이에요?”“사모님과 결혼하신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에요.”옅은 한숨을 내쉰 윤이한이 무심히 웃었다.“사실 사모님을 만나신 뒤로 대표님께서 많이 달라지셨어요. 제가 알던 분이 아니세요. 미국에서 대표님을 처음 만났어요. 대표님께서는 각국의 경제 형세에 대한 통찰력이 아주 높으신 분이세요. 중국의 사업을 중요하게 여긴 건 맞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목을 매시진 않으셨어요. 어쨌든 중국은 해외 투자에 제약이 많은 나라이니까요. 하지만 사모님을 만나신 뒤로 자기가 신앙심이 없는 사업가라는 걸 잊으신 것처럼 매일 책이며 신분이며 빼놓지 않고 읽으셨어요. 국내 시장 현황에 대해 어찌나 관심을 가지시는지, 당신을 책임감 있는 사업가로 여기시는 것 같았어요.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이 나라 사람인 줄 알았을 거예요!”윤이한의 발언에 오히려 그녀가 몸을 살짝 떨었다.가슴 끝에 깃털이 스치
윤이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우리 사모님이 못 알아듣겠어요? 우리 사모님은 집에서 빨래나 하는 가정주부가 아니라 SC 그룹의 총수이세요. 변호사들도 서류 하나하나 빠트린 게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하는데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재촉하시는 겁니까? “ 잭은 못 알아들은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누구라고? “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물었다. 소은정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윤이한은 그녀를 대신해 말했다.순간 얼굴이 굳어진 잭은 자기의 경솔했던 행동들을 반성하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SC 그룹? 총수? 소 대표님?” 그는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SC 그룹 산하의 몇몇 병원은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매우 선호하는 연합 병원입니다. 가능하다면 우리도 SC 그룹 연합 병원들과 협력하는 데 매우 관심이 있어요. 우리 제품이…“ 소은정은 그의 말을 끊고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SC 그룹과의 협력은 나중에 논의합시다. 저는 이 자리에 전 대표님을 대신해서 온 자리입니다. 서류 내용들이 저희에게 부당하네요. 이 나라의 국가 산업 규범에 따르면 지분을 처분하려면 전 대표님의 동의가 있어야지만 가능합니다. 전 대표님과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전 대표님께서 이 자리에 제 의견이 최종 답변이 되겠네요.”“이 문제는 이사회에서 이미 만장일치로 결정 난 사안입니다만…“ “우리가 2대 주주 아닌가요? 당사자가 없는 주총 회의는 의미가 없고 인정할 수 없어요. “ 소은정은 가볍게 라떼 한 모금 마시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이 이렇게 나오니 법적절차를 밟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질 것 같습니까? “ 비록 그들 나라에는 상대적인 보호조치가 있다지만 법적 절차를 밟게 되는 순간 회사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실추될 수밖에 없었다. 순수 유럽계 혈통이라는 배너는 달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소비자를 기만한 게 될 것이다.시간을 끌면 끌수록 제
윤이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잭은 사모님에게 전혀 속지 않았어요. 그 감정은 모두 헛수고가 됐어요. 근데 사모님은 왜 이렇게 ZF 연합 병원rhk 협력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소은정은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ZF 연합 병원은 세계 최고의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브랜드의 가치와 품질이 좋다는 증명이긴 하지만 세계 다른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아직 미미한 실력이에요."줄곧 성장할 기회를 노리긴 했지만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한 것 같았다."그렇군요. 사모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정말 까다로워질 뻔했어요."윤이한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름을 놓았다.소은정의 초전 승리는 그에게 큰 자신감을 가지게 했다.몇초간 생각에 잠겼던 소은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프라이빗 파티에 참석하는 분들의 명단 있어요?"그녀는 이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 관한 정보가 궁금했다.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전 단지 프라이빗 파티가 호화로운 요트에서 진행된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10명만 초대된 파티에 사모님도 계시고요. 세계적인 과학 기술의 거물 조지와 로위가 있고, 참, 주의하셔야 할 분이 있는데... 바로 마이크의 이모님이세요. 나머지 분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없어요."소은정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마이크의 이모가 왜 가는 거죠?"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워낙 파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이번 술자리를 통해 인맥을 넓히려는 목적이 아닐까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파티에서 사모님을 초대하셨어요. 사회적으로 유명한 분들 몇 명 계신 파티인데 친분을 쌓기 위해 만들어진 파티니 사모님 뜻대로 하셔도 됩니다."윤이한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꽤 시끌벅적한데, 제가 새봄이 아가씨를 모시고 갈까요?"그녀는 난감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때 가서 얘기해요. 새봄이가 워낙 다루기 어려운 아이라 분명 사고 칠 거예요."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그녀는 별장으로 돌아올 수
소은정을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빛이 침울해졌다.똑똑"들어오세요"소은정이 대답했다.집사는 커피를 박수혁에게 건넸다.평소와 다르게 고맙다고 말하는 박수혁을 그녀는 힐끗 바라보았다.소은정은 차 한잔을 손에 들고 무덤덤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수혁 씨, 방금 그거 무슨 말이야?"박수혁은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알기로는 그 과학 기술 전시회는 함정이야.""무슨 함정?""인공지능과 감정의 상호작용은 이미 윤리에 어긋났어. 임계점에 와 있는 실험을 진행한다는 건 과거의 단순 복제와 달리 이번에는 DNA를 이용한 유전자 복제, 정확히 말하면 인류가 기술을 이용해 생명을 개조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잖아. 국내에서는 허가되지 않은 실험이야."박수혁은 가라앉은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아. 이건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야. 세계적인 기술 거물인 조지가 암에 걸렸는데, 그가 지금 단순한 파티를 할 겨를이 있겠어?”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 깨달은 눈치였다."수혁 씨 뜻은 그들이 부자들을 위한 생명 연장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거잖아. 인간의 윤리를 어기면서 유전자를 편집한다는 거야?"박수혁은 뿌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맞아, 바로 그거야."소은정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온 거지 아직 확정된 건 없어. 걱정 안 해도 돼."유전자 편집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에서는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이번 파티가 단순하게 유전자 편집에 관한 거라면 이렇게 대대적으로 일을 벌여서 과학기술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전시회까지 열 필요가 없었다.그녀는 은연중 다른 기획 의도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박수혁은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당신이 날 얼마나 믿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이야. 혼자 위험에 빠지는 걸 볼 수 없었어. 내가 지켜줄게.”박수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은정이 들고 있던 컵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뜨겁네. 집사님, 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새봄이와 문준서를 바라보았다."서로 잘 보살펴 줄 수 있지?"새봄이는 기분이 나쁜 듯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새봄이는 엄마가 같이 있었으면좋겠어요... 새봄이는 괴물이 무섭단 말이에요..."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럼 우리 보지 말까?""아니에요. 참아볼게요! 엄마는 뒤로 가세요, 전 용감한 아이니까 참을 수 있어요!"새봄이는 조그마한 두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옆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던 여자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딸이에요? 어쩜, 이리도 귀여워요! 우리 애보다 어려 보이는데 의사 표현도 이렇게 잘하고, 총명하기도 해라..."새봄이를 칭찬하는 말에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새봄이는 자기를 칭찬하는 여자에게 살풋이 웃었다."고마워요, 이모! 이모 아가도 귀여워요!"새봄이의 말에 여자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기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새봄이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문준서에게 말했다."준서도 용감하지?"준서는 새봄이의 손을 꼭 잡고 용감하게 말했다."엄마, 준서가 동생을 잘 지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착하네~ 퍼레이드가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뒤에서 보고 있으니까 안전에 조심하고, 알겠지?"소은정의 당부에 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선생님과 전동하에게 이미 수없이 들은 얘기를 소은정이 한 번 더 하자 아이들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알고 있다고요!'"진짜 고마워요. 끝나고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소은정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괜찮아요.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도와야죠. 자리가 어디예요?" 여자는 얼른 주머니에서 티켓 표를 꺼내 소은정과 교환했다.아주 짧은 시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그녀의 자리는 복도 근처에 있는 뒤로 두번째 자리였다.뒤로 걸어가자 사람들은 어느새 앉아있었고 그녀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좌석으로 가
공연이 거의 끝날 때쯤 공연장은 사람들로 점점 더 붐비고 있었고 소은정은 두 아이를 먼저 데리고 나왔다.그녀는 밖으로 빠져나와 우연준과 윤이한을 기다리고 있었다.아까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품에 아이를 안고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아까 정말 고마웠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제 아이는 그 자리에서 분명 소란을 피웠을 거예요. 더군다나 해외라서 말도 안 통하고 힘들 뻔했는데 정말 고마워요."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음에 티켓 살 때는 연속번호로 사세요. 다음에는 이런 행운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여자는 한숨을 쉬며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당신이 예약한 가운데 세 자리만 묶음 판매했고 다른 자리들은 각각 한 장씩밖에 구매가 안 됐어요. 자리 하나 예매하고 옆자리 봤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 예매했더라고요."소은정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하나씩 만 판다고요? 저는 한 번에 세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어요."그녀는 마음이 찝찝했고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을 느꼈다.그 여자도 의아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시스템 장애가 생겼던 게 아닐까요? 저는 당신이 이 놀이공원의 VIP 고객이라서 운이 좋은 줄 알았어요."'이런 우연의 일치?'소은정은 눈을 살짝 내리깔고 미소를 지었다."제가 운이 좋았나 봐요."그 여자는 소은정에게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몇 마디 더했다."그러게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오늘 무대도 예정된 무대가 아니라 며칠 전에 급작스럽게 변경이 된 거거든요. 솔직히 말해 이 놀이공원의 연극은 100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 번도 변한적 없었어요. 운 좋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울트라맨 공연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울트라맨 연극을 프랑스에서 볼 줄이야. 정말 놀랍지 않나요?"상대방이 말할수록 소은정의 얼굴이 굳어졌다.우연치곤 너무 치밀했다.마치 누군가를 위해 일부러 준비한 것 같았다.하지만 울트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