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거의 끝날 때쯤 공연장은 사람들로 점점 더 붐비고 있었고 소은정은 두 아이를 먼저 데리고 나왔다.그녀는 밖으로 빠져나와 우연준과 윤이한을 기다리고 있었다.아까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품에 아이를 안고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아까 정말 고마웠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제 아이는 그 자리에서 분명 소란을 피웠을 거예요. 더군다나 해외라서 말도 안 통하고 힘들 뻔했는데 정말 고마워요."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음에 티켓 살 때는 연속번호로 사세요. 다음에는 이런 행운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여자는 한숨을 쉬며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당신이 예약한 가운데 세 자리만 묶음 판매했고 다른 자리들은 각각 한 장씩밖에 구매가 안 됐어요. 자리 하나 예매하고 옆자리 봤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 예매했더라고요."소은정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하나씩 만 판다고요? 저는 한 번에 세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어요."그녀는 마음이 찝찝했고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을 느꼈다.그 여자도 의아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시스템 장애가 생겼던 게 아닐까요? 저는 당신이 이 놀이공원의 VIP 고객이라서 운이 좋은 줄 알았어요."'이런 우연의 일치?'소은정은 눈을 살짝 내리깔고 미소를 지었다."제가 운이 좋았나 봐요."그 여자는 소은정에게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몇 마디 더했다."그러게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오늘 무대도 예정된 무대가 아니라 며칠 전에 급작스럽게 변경이 된 거거든요. 솔직히 말해 이 놀이공원의 연극은 100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 번도 변한적 없었어요. 운 좋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울트라맨 공연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울트라맨 연극을 프랑스에서 볼 줄이야. 정말 놀랍지 않나요?"상대방이 말할수록 소은정의 얼굴이 굳어졌다.우연치곤 너무 치밀했다.마치 누군가를 위해 일부러 준비한 것 같았다.하지만 울트
놀이공원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였다. 하지만 그들이 떠날 때까지도 소은정은 고독해 보이던 그 구부정한 뒷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두 아이는 실컷 놀고는 고분고분 말도 잘 들었다. 그래서 소은정은 선물로 풍선을 하나씩 사줬다. 손을 맞잡고 거리를 산책하는데 따뜻한 햇살이 어깨에 내리비췄다.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새봄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웃음소리를 듣노라니 문준서도 이 행복한 분위기에 취해있는 듯싶었다. 소은정은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그때 이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새봄이는 제일 먼저 그 사람과 그 옆에 서있는 오빠를 발견했다. “어! 이상한 아저씨다! 그리고 오빠도 있네!” 문준서는 희고 여린 얼굴로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다. 박시준은 해맑게 뛰어와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동생들도 안녕? 이건 선물이야.” 새봄이는 박시준은 보고 웃으며 사양 않고 선물을 받았다. 엄청 예쁜 무지개빛 솜사탕이었다. “고마워 오빠.” 문준서는 화를 내며 새봄이의 손을 놓고는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 새봄이가 염치가 없다고 화를 내는 게 분명했다. 새봄이는 냉큼 따라가서 솜사탕을 문준서에게 건넸다. “네가 좋아하는 솜사탕인데...” 문준서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고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솜사탕을 받아 들었다. 태세전환이 여간 빠른 게 아니었다. 박시준은 웃으며 새봄이를 바라봤고 박수혁도 헛기침을 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우연이네, 마침 시준이도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 하길래 데리고 왔는데 벌써 와있을 줄은 몰랐어.” 소은정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건 분명했지만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건 조금만 신경 쓰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박수혁이 여기에 나타난 목적을 추측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확실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윤이한과 우연준을 먼저 보내지 말았을 걸 하는 생각이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할지 몰랐다. 분명 같이 식사하자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자신인데 결국 박시준만 그들에게 초대받았다. 박시준은 새봄이 자신을 먼저 초대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순식간에 많이 나아졌다. 그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박수혁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는 새봄이랑 갈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러고 두 사람은 다정하게 손을 잡은 채 소은정과 문준서를 쫓아갔다. 문준서는 박시준을 보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다. 소은정은 무슨 대단한 식사를 준비한 게 아니었다. 그저 그곳에 특색이 있는 거리가 있어서 거기에 가서 좀 돌아다닐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박시준이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박시준에 대해 딱히 큰 생각이 없었다. 그의 엄마가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이미 그에 따른 벌을 받았기에 그 죄를 아이에게까지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눈치만 보고 사는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래서 박시준을 불러 세운 것도 한순간의 충동으로 인한 행동이었다. 박수혁이 냉담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니 박시준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박수혁은 항상 그랬다.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과 일에 대해서는 조금의 시간과 정력도 들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박시준은 성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만약 계속 학교를 다니게 된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수도 있었다. 새봄이는 신이 나서 공연을 보고 있었고 박시준은 새봄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듯 새봄이를 향해 기쁜 얼굴로 뛰어갔다. 그저 문준서만이 뾰로통한 얼굴로 소은정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난 쟤 싫어. 왜 초대해? 동생을 물에 밀어 넣은 게 쟨데.” 준서는 아직도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적대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박시준이 지금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어도 언제든지 다시 새봄이를 괴롭힐 거라고 생각했다. 준서는 이런 사람이 새봄이와 가깝게 지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
그 의심스러운 그림자를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박수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멀지 않은 곳에 숨어있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성은 몸을 구부린 채 계속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의도가 불순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박수혁은 경계의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더 이상 소은정이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박수혁은 전화기를 꺼내들고 보디가드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소은정에게로 다가갔다. 소은정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박수혁이 자신의 말을 못알아들어서 이러는 걸까? “당신...” 소은정이 입을 떼기도 전에 박수혁은 그녀를 끌고 도로 중심으로 갔다. 그리고는 새봄이와 나머지 두 아이들에게 낮은 어조로 말했다. “그만 놀고 돌아가자. 여긴 위험해.” 소은정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위험? 무슨 위험?” 국외의 치안이 국내보다 못하다고 해도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하필 자신에게 생길 줄이야!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전혀 이상한 징후가 없었다. 무슨 위험이 있다는 걸까? 박수혁은 그녀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서 아까 그 수상한 사람이 있던 곳을 가리켰다. “저길 보면...” 하지만 그가 가리킨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은정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혹시 저녁 요청을 거절해서 일부러 이러는 거야? 내 휴식시간을 방해할 이유로 고작 이런 걸 찾았어?” 박수혁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런 게 아니라...” 박수혁은 누가 봐도 초조하고 조급해 보였다. 어떻게 이 일을 해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른 한 손을 잡고 있던 새봄이도 손을 뿌리치려고 하고 있었다. “아저씨, 저 손 아파요.” 새봄이가 눈물이 글썽해서 얘기를 하자 문준서가 다급히 달려와서 새봄이의 손목을 어루만져 주었다. 박시준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깜짝 놀라서는 박수혁을 바라봤다. 박수혁은 소은정의 손을 놓고 수상한 사람이 숨어있던 그곳을 바라보았다.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인기척도 내지
소은정은 왜 자신이 그 사람의 뒷모습에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기사님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녀는 차문을 열고 나가 그 사람이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이렇게나 빨리 자취를 감췄다니... 소은정은 왠지 모를 실망감을 느꼈다. 뭔가 중요한 걸 잊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최성문이 차에서 내려 뭔가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소은정은 텅 빈 거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낮은 목소리에 고독함이 묻어있었다. 착각이었을까? 한순간 그 뒷모습이 전동하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기억 속의 그는 늘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 저렇게 초라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차에 다시 올라타 휴대폰을 확인했다. 수많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나 더 이상의 답장은 없었다. “보고 싶어요. 왜 안 와요?” “오늘 새봄이가 학교에서 친구를 때렸어요. 당신이 좀 혼내줘요!” “오늘 당신이랑 되게 닮은 사람을 봤어요. 그쪽이 돌아온 줄 알았어요.” ... 모두가 잠든 밤, 소은정은 우유 한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눈앞에 놓인 약들을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정신과의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사 선생님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새벽에 전화를 걸어도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혹시 잠이 안 와요?” “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면에 이상 없다고 하셨잖아요. 왜 오늘은 잠이 안 올까요? 혹시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외부에서 강한 자극을 받을 경우 그럴 수도 있거든요.” 소은정은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며 갑자기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친절한 선생님이야말로 그 적임자가 아닐까 싶었다. “그 사람이랑 굉장히 닮은 사람을 만났어요. 아
이렇게 될 줄 알았어도 그녀는 아마 그와 함께 했을 것이다.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박수혁과 함께한 3년은 수없이 후회했지만 전동하와 함께한 매 순간 그녀는 슬프고 속상했던 적이 없었다. 전동하는 그녀에게 기쁨과 행복만을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함께할 걸 그랬어요.” 문자를 보내고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문제의 해답을 찾았으나 그는 보지 못한다. 휴대폰을 수리하지 않은 채 본가에 두고왔기에 그녀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눈만 깜박거렸다. 곧 시들어갈 백합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처량한 모습이었다. 그 시각 박수혁도 부하의 말을 들으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못 찾았다고? 그럴 리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절름발이였어. 나이는 5,60은 되어보였고 모자랑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누가봐도 수상해 보였어. 주위 노숙자들까지 다 찾아봤어?” “찾아봤는데 방금 설명하신 분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조차 찾지 못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다리가 불편하다면 멀리 가진 못했을 거고 주위에 목격자가 분명 있었을 텐데 누구도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잡아뗐습니다.” 박수혁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cctv는 찾아봤어? 이렇게 큰 도시에 cctv가 없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대표님이 말씀하신 위치의 cctv는 다 확인해 봤는데 얼마 전 해킹당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경찰서에서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서 계속 관리를 안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cctv에서는 이상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대표님이 잘못 보신건 아닐까요?” 박수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내 눈이 잘못됐다는 건가?” 부하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박수혁이 이를 꽉 깨물며 차갑게 말했다. “아니,
옆의 남성도 일어나서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 모두 문 씨 성을 가진 것도 신기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소은정은 웃으며 손을 맞잡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준서는요? 부모님 되게 보고 싶어 했는데 왜 보이지 않죠?” 문선과 문예성이 눈을 마주쳤다. 문예성이 말했다. “저번에 저희가 급한 일이 생겨서 애를 보낸 거였거든요. 화났는지 저희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네요.” 소은정이 웃었다. “괜찮아요, 조금만 있으면 먼저 올 거예요. 그렇게 속 좁은 애가 아니니까.” 문선이 따라 웃었다. 눈빛에 진심 어린 고마움이 묻어났다. “아버지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애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해요. 어떻게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희가 너무 바빴어요. 근데 저번에 그 일이 있고나서 아버지가 저희를 호되게 혼내시더라고요. 꼭 애랑 시간 보내고 오라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남편이랑 며칠을 상의해서 오늘에서야 시간이 났네요. 애 데리고 나갔다 오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소은정이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저한테 물을 필요가 있나요? 바쁘신 거 다 알아요. 그래서 이번 출장 때 준서를 데리고 온 거고요. 부모님이랑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준서는 영리하고 기특한 애예요. 제 아들이나 다름없는 애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세요. 언제 데리고 오든지 상관없어요.” 문선이 감격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마워요. 저희가 애한테 빚진 게 많아요. 부모로서 애랑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게 애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아는데 방법이 없네요. 저랑 남편이 일생을 바친 일이라 쉽게 떠날 수가 없어요.” 문예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어르신이 도와주셨는데 이젠 그쪽의 도움을 받게 되네요. 저희는 그래서 큰 걱정 안 합니다. 그저 저희 애가 민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에요, 제 딸도 준서를 엄청 좋아해요. 아이들이 많으니 집안이 흥성흥성 하네요. 전혀 민폐가 아니에요.”
소은정은 다시 한번 작별인사를 건네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건 아마 새봄이 처음으로 겪는 타격일 것이다. 준서와 부모님이 떠나자 새봄이는 혹시나 소은정이 책을 자기에게 주기라도 할까 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할 말을 잃은 소은정을 보면서 우연준이 웃었다. “제가 가르칠까요?”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이젠 어린 아이도 아니니 자기를 통제할 줄도 알아야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나중에 유치원에 가서도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거예요.” 우연준이 웃으며 소은정을 바라봤다. “아가씨는 사람도 패는데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할까요?” 소은정이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자 우연준이 급히 말을 바꿨다. “대표님은 항상 생각이 깊으시네요. 그럼 전 아가씨가 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러 가겠습니다.” 우연준이 도망치듯 떠나가자 소은정은 책을 탁자우에 올려두고 식당으로 갔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윤이한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웠지만 소은정을 발견하지 못하고 인사를 건넸다. “식사는 하셨어요?” “네, 전 다 먹었습니다. 천천히 식사하세요.” 왠지 모르게 넋이 나간듯한 모습으로 윤이한이 방으로 들어갔다. 옷은 구깃구깃했고 외투도 어제 입고 나간 그대로였다. 이상한 일이었으나 소은정은 거기에 대해 더이상 캐묻지 않고 우연준을 불렀다. “혹시 윤이한 씨랑 무슨 일 있었어요?””아니요, 저흰 그저 파트너일 뿐인걸요.” 소은정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혹시 어제 안 들어왔나요?” “어제 안 들어왔다고요?”우연준이 놀라며 말했다. 소은정이 할 말을 잃은 듯 우연준을 바라보자 그는 그제야 말을 보탰다.“아니 저야 모르죠!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어제 돌아왔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는걸요!”소은정은 한숨을 쉬었다. 아까 눈치가 빠르다고 했던 말은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대표님, 혹시 수상하다고 생각되시면 오늘 밤엔 저랑 가시죠. 저도 대표님 혼자 보내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