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할지 몰랐다. 분명 같이 식사하자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자신인데 결국 박시준만 그들에게 초대받았다. 박시준은 새봄이 자신을 먼저 초대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순식간에 많이 나아졌다. 그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박수혁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는 새봄이랑 갈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러고 두 사람은 다정하게 손을 잡은 채 소은정과 문준서를 쫓아갔다. 문준서는 박시준을 보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다. 소은정은 무슨 대단한 식사를 준비한 게 아니었다. 그저 그곳에 특색이 있는 거리가 있어서 거기에 가서 좀 돌아다닐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박시준이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박시준에 대해 딱히 큰 생각이 없었다. 그의 엄마가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이미 그에 따른 벌을 받았기에 그 죄를 아이에게까지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눈치만 보고 사는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래서 박시준을 불러 세운 것도 한순간의 충동으로 인한 행동이었다. 박수혁이 냉담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니 박시준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박수혁은 항상 그랬다.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과 일에 대해서는 조금의 시간과 정력도 들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박시준은 성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만약 계속 학교를 다니게 된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수도 있었다. 새봄이는 신이 나서 공연을 보고 있었고 박시준은 새봄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듯 새봄이를 향해 기쁜 얼굴로 뛰어갔다. 그저 문준서만이 뾰로통한 얼굴로 소은정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난 쟤 싫어. 왜 초대해? 동생을 물에 밀어 넣은 게 쟨데.” 준서는 아직도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적대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박시준이 지금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어도 언제든지 다시 새봄이를 괴롭힐 거라고 생각했다. 준서는 이런 사람이 새봄이와 가깝게 지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
그 의심스러운 그림자를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박수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멀지 않은 곳에 숨어있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성은 몸을 구부린 채 계속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의도가 불순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박수혁은 경계의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더 이상 소은정이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박수혁은 전화기를 꺼내들고 보디가드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소은정에게로 다가갔다. 소은정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박수혁이 자신의 말을 못알아들어서 이러는 걸까? “당신...” 소은정이 입을 떼기도 전에 박수혁은 그녀를 끌고 도로 중심으로 갔다. 그리고는 새봄이와 나머지 두 아이들에게 낮은 어조로 말했다. “그만 놀고 돌아가자. 여긴 위험해.” 소은정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위험? 무슨 위험?” 국외의 치안이 국내보다 못하다고 해도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하필 자신에게 생길 줄이야!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전혀 이상한 징후가 없었다. 무슨 위험이 있다는 걸까? 박수혁은 그녀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서 아까 그 수상한 사람이 있던 곳을 가리켰다. “저길 보면...” 하지만 그가 가리킨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은정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혹시 저녁 요청을 거절해서 일부러 이러는 거야? 내 휴식시간을 방해할 이유로 고작 이런 걸 찾았어?” 박수혁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런 게 아니라...” 박수혁은 누가 봐도 초조하고 조급해 보였다. 어떻게 이 일을 해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른 한 손을 잡고 있던 새봄이도 손을 뿌리치려고 하고 있었다. “아저씨, 저 손 아파요.” 새봄이가 눈물이 글썽해서 얘기를 하자 문준서가 다급히 달려와서 새봄이의 손목을 어루만져 주었다. 박시준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깜짝 놀라서는 박수혁을 바라봤다. 박수혁은 소은정의 손을 놓고 수상한 사람이 숨어있던 그곳을 바라보았다.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인기척도 내지
소은정은 왜 자신이 그 사람의 뒷모습에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기사님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녀는 차문을 열고 나가 그 사람이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이렇게나 빨리 자취를 감췄다니... 소은정은 왠지 모를 실망감을 느꼈다. 뭔가 중요한 걸 잊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최성문이 차에서 내려 뭔가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소은정은 텅 빈 거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낮은 목소리에 고독함이 묻어있었다. 착각이었을까? 한순간 그 뒷모습이 전동하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기억 속의 그는 늘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 저렇게 초라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차에 다시 올라타 휴대폰을 확인했다. 수많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나 더 이상의 답장은 없었다. “보고 싶어요. 왜 안 와요?” “오늘 새봄이가 학교에서 친구를 때렸어요. 당신이 좀 혼내줘요!” “오늘 당신이랑 되게 닮은 사람을 봤어요. 그쪽이 돌아온 줄 알았어요.” ... 모두가 잠든 밤, 소은정은 우유 한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눈앞에 놓인 약들을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정신과의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사 선생님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새벽에 전화를 걸어도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혹시 잠이 안 와요?” “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면에 이상 없다고 하셨잖아요. 왜 오늘은 잠이 안 올까요? 혹시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외부에서 강한 자극을 받을 경우 그럴 수도 있거든요.” 소은정은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며 갑자기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친절한 선생님이야말로 그 적임자가 아닐까 싶었다. “그 사람이랑 굉장히 닮은 사람을 만났어요. 아
이렇게 될 줄 알았어도 그녀는 아마 그와 함께 했을 것이다.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박수혁과 함께한 3년은 수없이 후회했지만 전동하와 함께한 매 순간 그녀는 슬프고 속상했던 적이 없었다. 전동하는 그녀에게 기쁨과 행복만을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함께할 걸 그랬어요.” 문자를 보내고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문제의 해답을 찾았으나 그는 보지 못한다. 휴대폰을 수리하지 않은 채 본가에 두고왔기에 그녀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눈만 깜박거렸다. 곧 시들어갈 백합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처량한 모습이었다. 그 시각 박수혁도 부하의 말을 들으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못 찾았다고? 그럴 리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절름발이였어. 나이는 5,60은 되어보였고 모자랑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누가봐도 수상해 보였어. 주위 노숙자들까지 다 찾아봤어?” “찾아봤는데 방금 설명하신 분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조차 찾지 못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다리가 불편하다면 멀리 가진 못했을 거고 주위에 목격자가 분명 있었을 텐데 누구도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잡아뗐습니다.” 박수혁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cctv는 찾아봤어? 이렇게 큰 도시에 cctv가 없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대표님이 말씀하신 위치의 cctv는 다 확인해 봤는데 얼마 전 해킹당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경찰서에서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서 계속 관리를 안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cctv에서는 이상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대표님이 잘못 보신건 아닐까요?” 박수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내 눈이 잘못됐다는 건가?” 부하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박수혁이 이를 꽉 깨물며 차갑게 말했다. “아니,
옆의 남성도 일어나서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 모두 문 씨 성을 가진 것도 신기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소은정은 웃으며 손을 맞잡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준서는요? 부모님 되게 보고 싶어 했는데 왜 보이지 않죠?” 문선과 문예성이 눈을 마주쳤다. 문예성이 말했다. “저번에 저희가 급한 일이 생겨서 애를 보낸 거였거든요. 화났는지 저희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네요.” 소은정이 웃었다. “괜찮아요, 조금만 있으면 먼저 올 거예요. 그렇게 속 좁은 애가 아니니까.” 문선이 따라 웃었다. 눈빛에 진심 어린 고마움이 묻어났다. “아버지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애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해요. 어떻게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희가 너무 바빴어요. 근데 저번에 그 일이 있고나서 아버지가 저희를 호되게 혼내시더라고요. 꼭 애랑 시간 보내고 오라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남편이랑 며칠을 상의해서 오늘에서야 시간이 났네요. 애 데리고 나갔다 오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소은정이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저한테 물을 필요가 있나요? 바쁘신 거 다 알아요. 그래서 이번 출장 때 준서를 데리고 온 거고요. 부모님이랑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준서는 영리하고 기특한 애예요. 제 아들이나 다름없는 애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세요. 언제 데리고 오든지 상관없어요.” 문선이 감격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마워요. 저희가 애한테 빚진 게 많아요. 부모로서 애랑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게 애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아는데 방법이 없네요. 저랑 남편이 일생을 바친 일이라 쉽게 떠날 수가 없어요.” 문예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어르신이 도와주셨는데 이젠 그쪽의 도움을 받게 되네요. 저희는 그래서 큰 걱정 안 합니다. 그저 저희 애가 민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에요, 제 딸도 준서를 엄청 좋아해요. 아이들이 많으니 집안이 흥성흥성 하네요. 전혀 민폐가 아니에요.”
소은정은 다시 한번 작별인사를 건네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건 아마 새봄이 처음으로 겪는 타격일 것이다. 준서와 부모님이 떠나자 새봄이는 혹시나 소은정이 책을 자기에게 주기라도 할까 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할 말을 잃은 소은정을 보면서 우연준이 웃었다. “제가 가르칠까요?”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이젠 어린 아이도 아니니 자기를 통제할 줄도 알아야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나중에 유치원에 가서도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거예요.” 우연준이 웃으며 소은정을 바라봤다. “아가씨는 사람도 패는데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할까요?” 소은정이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자 우연준이 급히 말을 바꿨다. “대표님은 항상 생각이 깊으시네요. 그럼 전 아가씨가 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러 가겠습니다.” 우연준이 도망치듯 떠나가자 소은정은 책을 탁자우에 올려두고 식당으로 갔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윤이한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웠지만 소은정을 발견하지 못하고 인사를 건넸다. “식사는 하셨어요?” “네, 전 다 먹었습니다. 천천히 식사하세요.” 왠지 모르게 넋이 나간듯한 모습으로 윤이한이 방으로 들어갔다. 옷은 구깃구깃했고 외투도 어제 입고 나간 그대로였다. 이상한 일이었으나 소은정은 거기에 대해 더이상 캐묻지 않고 우연준을 불렀다. “혹시 윤이한 씨랑 무슨 일 있었어요?””아니요, 저흰 그저 파트너일 뿐인걸요.” 소은정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혹시 어제 안 들어왔나요?” “어제 안 들어왔다고요?”우연준이 놀라며 말했다. 소은정이 할 말을 잃은 듯 우연준을 바라보자 그는 그제야 말을 보탰다.“아니 저야 모르죠!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어제 돌아왔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는걸요!”소은정은 한숨을 쉬었다. 아까 눈치가 빠르다고 했던 말은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대표님, 혹시 수상하다고 생각되시면 오늘 밤엔 저랑 가시죠. 저도 대표님 혼자 보내는
관리인은 세심하게도 그런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고 황급히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엘리베이터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순식간에 사막으로 변했다. 사막에는 오아시스도 보였고 바람 따라 날리는 모래알과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소은정은 좀 전에 느꼈던 공포감을 한순간에 잊어버렸다. 그녀는 놀라서 물었다. “바닷속이 아니었네요?” 좀 전에 바다속인 줄 알았던 장면도 사실 가짜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요트 안 여기저기에 쓰인 최첨단 기술이 사람을 놀라게 했다. 어쨌거나 바다가 아닌 사막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상태도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관리인이 웃으며 말했다. “바닷속이 맞습니다. 개인 잠수함으로 찍은 고화질 화면을 송출한 거예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담았죠. 손님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루 할까 봐 준비한 겁니다.” 소은정이 웃었다. “그럼 이 사막도 다 촬영한 거겠네요?” “네, 거리가 멀어서 송출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리얼하게 연출했습니다. 아, 그리고 우주를 찍은 것도 있어요. 대표님이 협찬한 통신위성으로 촬영했답니다.” 얘기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레드카펫이 금빛으로 가득한 연회장까지 이어져있었다. 내부의 분위기는 조용했지만 교향곡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게 중점이 아니었다. 관리인은 소은정을 데리고 들어갔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미 와있는 것 같았다. 열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들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를 건넸다. 관리인도 그 틈을 타 눈치 있게 물러났다. 소은정이 입장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웃으며 다가왔다. “소은정 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소은정은 만난 적은 없지만 이 사람들에 대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예의를 갖추며 인사를 건넸다. 몇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유명인사였다. 각종 유명한 잡지에 메인으로 걸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소은정은 마지못해 웃었다.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무언가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전동하가 이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없으니 아마 안 친한 사이일 것이다. 하지만 진기종이 얘기하는 것만 들었을 때는 두 사람의 관계가 막역해 보였다. 또 진기종은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재주가 있어 그런 그가 싫지는 않았다. 이제 그녀와 전동하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진기종을 대하는 태도가 저도 모르게 많이 누그러졌다. “네, 하지만 이젠 그쪽으로 자주 가지 않더라고요. 전동하가 있을 때가 그리워요. 아 맞아요, 제가 어떻게 은정 씨를 알게 됐는지 알아요?”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준이요! 그쪽에서 남아프리카의 석유사업에 투자를 할 때 바로 제 주식을 샀었거든요. 그러다가 대영그룹에서 일이 터지면서 주식을 팔았어요. 저만 땡잡은 거죠.” 진기종은 아무렇지도 않게 영업비밀을 공개했다. 소은정이 웃었다. “그래요? 이상준 씨랑도 아는 사이셨군요.” “알다마다요, 제 조카예요. 이보다 더 가까울 수 없죠. 단지 저희의 발전방향이 다를 뿐이에요. 전 해외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걸 추구하는데 저쪽은 국내를 포기하지 못하니까 연락을 자주 못하는 거죠.” 소은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영그룹이 비록 국내에서 큰 권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세력이 큰 친척이 있다는 사실은 좀 놀라웠다. “혹시 그거 들으셨어요? 오늘 성세가 준비한 게 유럽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기술이래요. 그런데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진기종과 소은정은 소곤소곤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기도 하고 웃고 떠들기도 했다. 박수혁은 옆에 우두커니 서서 진기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기종은 여유로운 사람이니만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심지어 박수혁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박수혁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헛기침을 하며 그들의 대화를 끊었다. “진대표님, 세 번째 부인이 곧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