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가 멈칫했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남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은정을 쳐다봤다. 눈매가 매우 깊고 쓸쓸해 보였다. 처음 보는 눈이었다. 하지만 소은정은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가 실례지만 마스크를 벗겨보려 했다. 하지만 남성이 단번에 그 손길을 제지했다. 거친 손에 꽤 많은 흉터들이 남아있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전동하의 길고 가는 그 예쁜 손과 완전히 달랐다. 그 사람은 분명 밝은 사람이었는데 눈앞의 이 남성은 너무도 어둡다. 그는 마스크에 손을 올리더니 천천히 마스크를 내렸다. 소은정은 잔뜩 긴장해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마스크를 벗은 그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오관이 또렷했으나 안색이 창백했다. 몸이 매우 허약한 모습이었다. 눈가 주위에는 자잘한 흉터들이 있었다. 소은정은 손을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서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미소를 지은 제니퍼는 전혀 그녀를 책망하려는 것 같지 않았다. “제가 결례를 범했네요,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의심스러우셨을 거예요. 몸이 안 좋아서 주목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랬습니다. 죄송해요.”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몹시 따뜻한 사람이었다. 연회장에 있는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소은정은 방금 자신이 너무 충동적이었고 또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사람이 많지 않아 제니퍼는 크게 방해받지 않았다. 다들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성세는 웃으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모르는 분이시죠?”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이나마 기대했던 마음이 또다시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버렸다. 희망을 보았다가 다시 실망에 젖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확실히 전동하가 아니었다. 그녀는 철저히 마음을 접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마음속의 환상을 낯선 이에게 투영했다. 저 남성은 전동하가 아니었다. 그녀의 실망
박수혁은 눈썹을 찡그리며 안색이 어두워졌다.“은정아, 나 믿어. 진짜로 내가 그 자식이 몰래 너를 미행하는 걸 봤다니까.”소은정은 냉담한 얼굴로 미안하다는 듯이 성세와 제니퍼를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이곳을 떠나 진기종이 있는 데로 갔다.그녀는 갑자기 진기종이 박수혁처럼 말을 귀에 거슬리게 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그는 이미 미쳐있었다!제니퍼는 소은정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슬쩍 엿보는데 눈빛을 차분하게 거둬들이고는 차갑게 박수혁을 바라보며 미지근한 어투로 말했다.“내가 왜 그곳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목적을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박 대표님이 궁금하셔서 한마디 할게요. 나는 거기서 친구를 기다렸고, 친구가 마중 와서, 친구 차를 타고 바로 떠났거든요. 박 대표님과 소 대표님은 아예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 와중에, 박 대표님은 참말로 저한테 관심이 많으시네요. 아무렇게나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쪽한테 떠돌이 취급 받아야 합니까?”박수혁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는데 성세가 옆에서 기침 소리를 한번 내며 말을 뗐다.“됐어요 됐어요. 다 오해잖아요. 그만하세요. 두 분 개인적인 원한도 없는데 볼썽사납게 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소 대표님이 많이 난처해하신다고요. 박 대표님, 눈치채지 못하셨나요?”그가 이렇게 주의를 주자 박수혁의 안색이 약간 변하기 시작했다.그는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느라 소은정이 떠날 때의 어이가 없는 눈빛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그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말했다."내가 쓸데없는 생각 했다면 사과할게요,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네요."박수혁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성세가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가가 휠체어를 밀어보는데 휠체어가 앞으로 나가지 않자 그제야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제니퍼의 휠체어는 타인의 도움 없이도 직접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제니퍼, 기분 상해 하지 마요. 제니퍼가 와준 것만으로 난 기뻐요.”제니퍼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가서 일 보세요. 본격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속도가 빠르지도 느리지 않아 마침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아래로 내려가면서 보니 그녀가 올때 보았던 사막과 바닷속은 아니었다.밑층에는 술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어대고 있었고 다만 엘리베이터를 통해 밖이 보일 뿐, 바깥 사람들은 이 엘리베이터를 발견할 수 없다.이것 또한 비밀 통로 중 하나였던 것이다.박수혁은 그런대로 담담한 편이다. 그가 겪지 않았던 세상 물정이 없었던 터라 이런 잔재주는 그가 보건대에는 고작 사람들 심리에 영합하여 호감을 얻는 격에 불과했다.이때 소은정이 웃으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마디했다.“성 대표님께서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집사가 웃으며 맞장구쳤다.“그렇죠. 소 대표님. 이 엘리베이터가 해저까지 직통할 수 있는데 우리 대표님께서 거액을 들여 만드신 해저 실험실이랍니다. 크루즈선에 설치하는 이 방법 아무도 모를걸요. 사람들은 따라와서 그저 즐기기만 하죠.”소은정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크루즈선의 엘리베이터가 해저까지 직통할 수 있다니!그렇다면 이 해저 실험실은 정말 얕볼 수 없다.하지만 그녀는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지 못했다. 바깥 세상에서 보았던 바다밑 세계가 보이지 않았고 바다 속에서 숨이 막힐 듯한 질식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에는 유화 전시가 펼쳐졌었고 세계 명화는 마치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황홀한 매력이 있었다.이 연회에 대한 그녀의 호감이 은근슬쩍 몇 점 추가되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엘리베이터가 얼마나 빨리 내려가지는 않은 같은데 3분도 안 돼서 도착한 걸 보아 너무 느리지도 않은 것 같았다.다만 아무런 불편함도, 위아래 무중력 상태도 없는 것으로 보아 엘리베이터에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박수혁이 갑자기 뒤에서 입을 열었다:“제니퍼 씨는 어디서 취직하고 계시는지요?”소은정은 꼬치꼬치 캐묻는 박수혁의 행동이 싫었지만 섣불리 끼어들지는 않았다.잠깐 멈칫하던 제니퍼가 천천히 입꼬
성세가 웃으며 급히 걸어갔다.“여기는 구경할 곳이 아니라서 불편하실 것 같으니 들어가지 맙시다.”“뭐하는 곳인데 이렇게 미스터리로 말씀하시죠, 우리가 불편할리가요. 성 대표님, 혹시 좋은 거 숨겨놓고 못 보게 하시는 게 아닙니까?”그 말에 성세가 겸손하게 웃었다.“저긴 실험실인데요, 바깥과는 아예 다르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해부실이에요. 과정이 좀 피비린내가 나서 체통이 있으신 여러분들한테는 안 맞으니까 그냥 결과를 보시는게 낫겠죠.”이렇게 말하며 감추려고 하는 성세의 태도는 더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소은정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피비린내?그녀가 반대하기도 전에 진기종이 보고싶어 안달이다. “성 대표님, 결과만 보면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다들 다각도로 대표님의 프로젝트를 답사하고 있으니까, 우리도 좀 눈을 뜨게 해줘봐요!”옆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맞장구를 쳤다.“그러게요, 봅시다!”“봅시다. 오기까지 했는데, 성 대표님 숨기지 말고요!”......성세가 약간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망설이며 소은정이 있는 방향을 봤다.“그래요. 다만 소 대표님, 혹시 겁이 많으시면 보지 마세요. 여자분들 보기에 적절하지 않는 부분도 확실히 있으니까요.”소은정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저 신경쓰지 마세요.”성세가 그렇게 말하니 소은정은 더 궁금해졌다.성세가 문 앞에 가서 심호흡을 한 후에 문을 열자 사람들이 웃으며 들어갔다.하지만 다들 곧장 입을 가리고 토할 것 같은 모습으로 뛰쳐나왔는데 안색이 새파랗고 흉측했으며 방금 전의 떳떳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게다가 모든 사람이 다 그러했다.특히 진기종은 토를 너무 심하게 해서 안색이 죽상이 되었다.소은정도 놀래서 멍해졌다. 박수혁은 얼굴을 찡그리고 엉겹걸에 그녀를 보았다.입술을 오므리던 박수혁이 말을 내뱉었다.“넌 일단 가지마, 내가 가보고 다시 결정해.”그러고는 걸어갔다.박수혁은 들어간 지 1분도 안 돼서 나왔다.다른 사람들처럼 허리잡고
소은정은 조금 숨을 돌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물을 받아 입을 헹구나 삼키지 못하고 토했버렸다.제니퍼가 앉아서 그녀를 올려다보는데 미간에 온화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며 따뜻하게 소은정을 위로했다.“소 대표님, 괜찮으세요, 조금만 더 버티세요, 조금 있으면 여기를 떠날 수 있어요.”소은정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연약하지 않은 그녀인데도 제니퍼의 말을 듣는 순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따뜻한 느낌이 느껴졌다.그러나 전혀 낯선 얼굴을 보자마자 알 것 같던 그 느낌 또한 스르르 사라져버렸다.손수건을 든 박수혁의 손이 아직 허공에 머물러 있고, 이 광경을 보노라니 안색이 더더욱 어두워졌다.순간 박수혁은 서투르게 손수건으로 그녀 입가의 물기를 닦아주는데 동작이 갑작스럽지만 그녀를 다치게 할까봐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녀의 입가를 닦는 순간, 힘을 조금 덜 주느라 어색했으며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박 대표님, 파티에 참석하신 목적 다른 데 있네요.”진기종의 빌어먹을 혀가 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험담하기 시작했다.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적어도 기분만은 좀 풀렸다.소은정은 박수혁을 매섭게 쏘아보고는 손수건을 가져다 직접 닦는다.이 미치광이가 또 무슨 다른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이렇게 화를 내는 소은정을 보며 박수혁은 오히려 기뻐했다. 게다가 곁눈질로 제니퍼의 굳은 기색을 확인하고는 더더욱 마음이 들떴다.눈길을 돌리는 제니퍼는 얼굴의 온화함이 약간 사그라지고 형언하기 어려운 저조된 기색을 띠고 있다. 그는 결국 비린내를 맡을 수 없다는 핑계로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자신을 가렸다.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그리고는 천천히 휠체어를 후진시켜 소은정의 곁을 떠났다.성세가 옆에서 비밀스럽게 사람들을 데리고 앞에 있는 곳으로 갔다.박수혁은 그런 상황을 목격하고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휠체어를 탄 제니퍼가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을 발견했다.아
성세가 웃으면서 말했다.“그 아가씨를 제가 동남아 투자 유치 갔을 때 만났거든요. 그리고 겸사겸사 쁘띠 성형을 제가 도왔고요.”“ 쁘띠 성형이요? 그럼 얼굴 바꾼 거나 다름없잖아요?”소은정은 참지 못하고 빈정거렸다.지나간 일이 갑자기 모두 해명되었다.안진의 성형을 도운 사람이 앞에 있는 성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기술치고는 정말 흠잡을 데가 없다. 설령 최첨단 성형 기술이라고 해도 그의 앞에선 진심으로 탄복할만한 수준이다.그들은 안진이 성형했다는 실마리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었다.그러니 그녀의 성형수술이 얼마나 성공적이겠는가!성세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이죠. 다만 이걸 봐봐요.”성세는 자신의 보물을 추천하 듯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이 사람은 우리 실험품인데, 이번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어떻게 이해하면 되죠?”누군가가 물었다.옆에서 무표정하게 뚫어져라 쳐다보던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진짜 윤이영은 이미 죽지 않았습니까?”많은 사람들이 놀라하며 쳐다보았다.그러자 성세가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렇죠. 사실 이미 죽었는데 제가 데려왔습니다. 길에서 72시간이 걸렸고, 돌아온 후 피도 갈아주고 부서진 내장도 맞춤 제작했거든요. 그래서 모두들 보시다시피 지금 우리 앞에 이렇게 떡하니 서있는 겁니다!”모두들 깜짝 놀라 두 사람을 보고 있다.정말 믿을 수가 없고 그야말로 현재 상황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이해를 초월했다.박수혁의 눈빛이 차갑다.“왜 그 사람이었죠?”“대신해 줄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진짜 그 사람은 자연스레 중요하지 않을 수 밖에요.”성세는 싱긋 웃으며 담담하게 해석했다.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목소리가 엄숙해졌다.“여러분, 사람한테 생로병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누가 더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특히 여러분처럼 돈도 있고 빽도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한평생을 고생하여 얻은 돈은 몇 평생 다 쓰지 못할 것 아닙니까. 진정 고통과 생사에 시달릴 때
성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럼 다음 분, 다들 체험 끝나면 저희 콜라보에 대해 얘기하죠.”많은 사람들의 눈빛은 의혹에서 기대감으로 변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아직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소은정과 박수혁이다.소은정은 아예 관심없었고 박수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내려오는 제니퍼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다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은정과 박수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어두운 눈동자 속에 감정을 자제하면서도 꾹 참고 있었다.그는 억지로 버텼고 고민되었다.“내장이 다양한 정도의 손상을 받았고 두 다리는 분쇄성 골절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그래도 정강이 아래를 절단하시라고 제안드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괴사가 발생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전문적인 치료 방안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만약 저희로부터 장기 주문 제작을 원하신다면, 절단 후 일주일 안에 새로운 다리가 절개부에 합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 안에 자유롭게 서서 생활하실수 있으시며 1년 뒤에는 뛰면서 격렬한 운동도 할 수 있죠.즉시 결정을 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부드러운 그 말소리는 부드럽게 그 잔인한 사실을 얘기해버렸다.동시에 그의 입장을 뒤집을 만한 유혹도 던져버렸다.그렇게 유혹적인데 어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사실 이 자리에 그녀를 한번이라도 보려고 나왔었다.한번만 본다고 해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하지만 이 시각, 그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만약 성세가 정말 그를 예전으로 돌려놓아 그녀 곁에 당당하게 서게 해준다면, 다시 살아나는 거와 다름없으니까.하지만 그는 성세의 이 프로젝트가 비록 실력은 있지만 너무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일단 공개되면 세계적으로 욕을 먹고 단속당하는 것은 물론이다.인간성과 도덕성, 그의 마음속 저울대가 흔들리고 있다.소은정의 옆에 다가가 성세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소 대표님, 정말 체험하고 싶지
윤이영은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있다가 힘이 빠져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미간 사이에 놀라움과 고통이 가득하다.그녀도 사실 이 실험이 아주 잔인하다고 여겼다.그러나 성세에게 세뇌당해 왔기 때문에 그녀는 이런 희생이 모두 가치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박수혁이 직설적으로 그녀가 살아남은 것이 잘못이라고 비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웠다.소은정은 입술을 오무리며 박수혁을 쳐다보았다.“당신, 안진에 대한 감정을 다른 사람한테 해소하지 마. 똑똑히 봐, 이 사람 안진 아니야.”박수혁은 목이 메어와 고개를 돌리는데 안색이 어둡다.소은정은 그제야 윤이영을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을 건겠다.“죄송해요, 윤이영 씨, 아무도 누구한테 살아있는 게 그르다고 비난할 수 없어요. 저 사람도 안 돼요. 마음에 두지 말고, 일단 먼저 들어가요.”소은정이 안쪽을 들여다보니 성세가 그녀를 찾는 것 같았다.윤이영은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수혁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서 뛰어갔다.소은정은 심호흡을 하고나서 입을 뗐다.“당신은 지금 건강하고 병도 없고, 한창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는 관심없는 거야. 하지만 막상 필요로 할 때,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라.”박수혁은 눈썹을 찡그리며 그녀를 보는데 소은정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다.사실 그 시각 소은정은 이런 생각을 해봤다.만약 전동하한테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걸고라도 해보라고 하고 싶다고 말이다.인성과 도덕에서 그녀는 전동하를 택하고 싶었다.박수혁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성세가 훤한 얼굴로 걸어나왔다.“네, 그럼 그렇게 결정하죠. 우 대표님, 저희의 콜라보가 순조롭길 기원합니다!”보아하니 성세는 이미 최고의 투자자를 찾은 것 같다.모두가 방금 전의 도도함을 묻어버리고 지금은 오히려 성세를 에워싸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뒤에 있는 제니퍼가 오히려 이방인같았다.마음이 무거운 소은정도 얼른 일어나 따라갔다.성세가 그들을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소 대표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