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럼 다음 분, 다들 체험 끝나면 저희 콜라보에 대해 얘기하죠.”많은 사람들의 눈빛은 의혹에서 기대감으로 변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아직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소은정과 박수혁이다.소은정은 아예 관심없었고 박수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내려오는 제니퍼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다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은정과 박수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어두운 눈동자 속에 감정을 자제하면서도 꾹 참고 있었다.그는 억지로 버텼고 고민되었다.“내장이 다양한 정도의 손상을 받았고 두 다리는 분쇄성 골절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그래도 정강이 아래를 절단하시라고 제안드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괴사가 발생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전문적인 치료 방안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만약 저희로부터 장기 주문 제작을 원하신다면, 절단 후 일주일 안에 새로운 다리가 절개부에 합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 안에 자유롭게 서서 생활하실수 있으시며 1년 뒤에는 뛰면서 격렬한 운동도 할 수 있죠.즉시 결정을 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부드러운 그 말소리는 부드럽게 그 잔인한 사실을 얘기해버렸다.동시에 그의 입장을 뒤집을 만한 유혹도 던져버렸다.그렇게 유혹적인데 어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사실 이 자리에 그녀를 한번이라도 보려고 나왔었다.한번만 본다고 해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하지만 이 시각, 그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만약 성세가 정말 그를 예전으로 돌려놓아 그녀 곁에 당당하게 서게 해준다면, 다시 살아나는 거와 다름없으니까.하지만 그는 성세의 이 프로젝트가 비록 실력은 있지만 너무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일단 공개되면 세계적으로 욕을 먹고 단속당하는 것은 물론이다.인간성과 도덕성, 그의 마음속 저울대가 흔들리고 있다.소은정의 옆에 다가가 성세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소 대표님, 정말 체험하고 싶지
윤이영은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있다가 힘이 빠져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미간 사이에 놀라움과 고통이 가득하다.그녀도 사실 이 실험이 아주 잔인하다고 여겼다.그러나 성세에게 세뇌당해 왔기 때문에 그녀는 이런 희생이 모두 가치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박수혁이 직설적으로 그녀가 살아남은 것이 잘못이라고 비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웠다.소은정은 입술을 오무리며 박수혁을 쳐다보았다.“당신, 안진에 대한 감정을 다른 사람한테 해소하지 마. 똑똑히 봐, 이 사람 안진 아니야.”박수혁은 목이 메어와 고개를 돌리는데 안색이 어둡다.소은정은 그제야 윤이영을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을 건겠다.“죄송해요, 윤이영 씨, 아무도 누구한테 살아있는 게 그르다고 비난할 수 없어요. 저 사람도 안 돼요. 마음에 두지 말고, 일단 먼저 들어가요.”소은정이 안쪽을 들여다보니 성세가 그녀를 찾는 것 같았다.윤이영은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수혁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서 뛰어갔다.소은정은 심호흡을 하고나서 입을 뗐다.“당신은 지금 건강하고 병도 없고, 한창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는 관심없는 거야. 하지만 막상 필요로 할 때,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라.”박수혁은 눈썹을 찡그리며 그녀를 보는데 소은정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다.사실 그 시각 소은정은 이런 생각을 해봤다.만약 전동하한테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걸고라도 해보라고 하고 싶다고 말이다.인성과 도덕에서 그녀는 전동하를 택하고 싶었다.박수혁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성세가 훤한 얼굴로 걸어나왔다.“네, 그럼 그렇게 결정하죠. 우 대표님, 저희의 콜라보가 순조롭길 기원합니다!”보아하니 성세는 이미 최고의 투자자를 찾은 것 같다.모두가 방금 전의 도도함을 묻어버리고 지금은 오히려 성세를 에워싸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뒤에 있는 제니퍼가 오히려 이방인같았다.마음이 무거운 소은정도 얼른 일어나 따라갔다.성세가 그들을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소 대표님
윤이한이 이렇게도 말해 보고 저렇게도 말해보나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다.윤이한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얼굴의 땀을 닦았다.새봄이가 작은 엉덩이를 쳐들고 흐느끼며 눈물을 훔치는데, 가엾기 짝이 없다.“아빠, 이한 삼촌 얼른 가라고 해. 나 싫단 말이야.”윤이한은 난감한 얼굴빛으로 멈칫하고 있다.어린 새봄이가 전동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까봐 소은정은 줄곧 아이한테 이 소식을 숨기고 있었다.그래서 곁에 있는 그들 또한 약간의 소문도 흘려서는 안되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이 어떻게 과거에 패기만만했던 전동하일 수 있겠는가?잠깐 멈칫하던 윤이한은 미안한 표정으로 제니퍼를 바라보았다.“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아가씨가 사람을 잘못 보셔서요. 달리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얼른 소 대표님 모셔오겠습니다.”윤이한은 할 수 없이 휴대폰을 꺼냈다.이 일을 해결하게끔 소은정에게 전화를 하려던 찰나, 휠체어를 타고 있던 남자가 잠시 후, 마침내 컬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어린애잖아요. 너무 귀여운데요. 저한테 방해되지 않아요.”그는 손을 아이의 몸에 놓고 가볍게 토닥이더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이렇게 이쁜 공주님은 어디서 왔을까요?”전동하가 장난치는 줄로 알고 새봄이는 기뻐하며 고개를 들고 웃으면서 말을 내뱉었다.“나 아빠 강아지잖아......”제니퍼는 어두운 눈빛으로 새봄이를 쳐다보았다. 말랑말랑한 아이가 악의없이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그 느낌은 마치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생생하게 도려내는 것 같았다.아픈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니 말이다.그는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면서 새봄을 보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윤이한이 서둘러 다가와 두 손으로 새봄이의 작을 팔을 받쳐 들었다.“새봄 아가씨, 잘 봐봐요. 이 분 아가씨 아빠 아니에요. 사람을 잘못 봤잖아요?”아이가 마지못해 힐긋 쳐다보는데 그제야 마스크 뒤에 숨어 있는 제니프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게 되었다.새봄의 여리고 작은 얼굴
이 말은 정말로 윤이한의 마음에 와 닿았다.소씨 집안 사람들은 물론 SC그룹, 하소그룹과 콜라보하는 사람들도 감히 소은정의 딸을 나무라지 못했다.더더욱 전동하가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 있는 귀염둥이를.박수혁은 참말로 주책바가지다.박수혁은 소은정과 아직 어찔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너무 일찍 “계부” 역할에 몰입했던 것이다.윤이한은 아가씨를 일찍 데려가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되었다.박수혁을 만난 것도 재수없는 일이었다.그러나 박수혁은 제니퍼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얼굴이 싸늘해졌다.“나를 가르치는 건가요?”“바로잡아 드리는 겁니다. 하물며 이렇게 영리하고 철이 든 아이한테 그러시면 안 되죠. 박 대표님 그러시면 애가 놀랍니다.”제니퍼는 새봄이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마치 진짜 친부녀인 것 같았다.이 장면은 박수혁의 마음을 깊게 찔렀다.박시준이라면 간이 콩알만 해서 감히 그의 곁에 다가가지 못하며 그 또한 안진의 아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하지만 새봄이는 진심으로 자기 아이처럼 대했으며 앞으로도 새봄이한테 제일 좋은 것으로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새봄이는 그를 그렇게도 싫어했다.심지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보다 못하단 말인가?아니, 이 제니퍼가 사람을 속이는 수완이 있어서일 것이다.아까는 소은정을 속여 자신의 휠체어를 밀게 하더니 지금은 또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속이고 있잖은가.속셈이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악랄하다!박수혁은 약간 그윽한 눈길로 불만스러운 듯이 제니퍼를 보면서 말했다.“별 생각을 다 한 같은데 참 오지랖이 넓군요. 나 다른 사람 가르침따위 같은 건 필요없거든요.”그리고는 안색을 가라앉히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새봄이를 바라보다가 바로 손을 내밀고 말했다.“자, 새봄아, 아저씨한테로 와. 아저씨는 낯선 사람 아니지, 아저씨랑 같이 놀러 가자!”남자의 어깨에 꿈쩍도 하지 않고 기대어 있던 새봄이가 연약한 목소리로 단호히 그를 거절했다.“싫어요, 난 아빠랑 있을래요!”
박수혁은 안색이 새파래지는데 얼음처럼 차갑다.소은해를 보는 눈빛마저도 어둡다.소씨 가문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게 새봄이와 소은정 뿐이 아니었다.다른 사람들도 그러했다!“설마 제가 말이라도 잘못한 건가요? 네, 이 일은 제쳐두고, 낯선 사람이 새봄이한테 상처를 줄까봐 그리했습니다. 설마 도와주지 말아야 했나요?”박수혁은 말투가 차갑다. 마음속으로 분노를 억제하고 있다.소은해는 눈살을 찌푸리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을 힐끗 쳐다보는데 약간의 동정심이 스쳐지나갔다.지나치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고 그러다가 옆에 있는 윤이한을 힐끗 쳐다보았다.“옆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박 대표가 너무 지나치게 걱정한 건 아닌가?”윤이한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맞아요. 제가 줄곧 아가씨 옆을 지켰거든요. 아가씨가 사람을 잘못 보고, 이 분한테 억지로 매달렸고, 이 분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가씨를 달래서......”박수혁은 매서운 눈빛으로 윤이한을 힐끗 쳐다보았다.소은해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박 대표, 새봄이가 제 발로 찾아왔다면 달래면 되지, 애를 울릴 필요는 없잖아. 우리집 강아지 우는 모습 보기 드문데!”“제가......”박수혁은 말을 잇지 못했다.“박 대표의 호의는 알만한데, 하지만 위험이 없는데 일부러 위험을 조성하면 안 되지. 새봄이,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아이이고,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를 얕잡아봐서 되겠어?”앞으로 한 걸음 다가간 소은해가 박수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박 대표, 새봄이를 이용해서 내 동생이랑 잘해보려는 걸 내가 아는데, 충고하는데 방향 바꿔. 자네, 새봄이를 누가 키웠는지 몰라? 우리 매제가 직접 키웠단 말이야. 우리 매제, 새봄이가 애기때 머리카락 하나 빠져도 챙겨두면서 모았던 사람이야. 그러니까 새봄이, 눈을 감고서도 누가 잘해주는지 안다고!”박수혁의 얼굴빛이 말이 아니다. 가마솥 밑바닥처럼 까매졌다.까발리는 순간은 그가 긴장되었던 순간이었다.
윤이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그곳을 바라봤다.아니나 다를까, 새봄이가 그토록 아끼던 다이아 머리핀이 보였다.“감사합니다. 우리 아가씨가 요즘 가장 아끼는 장신구네요.”그는 다급히 허리를 숙여 장신구를 집어들었다.이걸 잃어버리면 한달 월급으로 어림도 없다!제니퍼는 휠체어를 조종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윤이한이 바닥에 떨어진 머리핀을 들고 일어서려던 순간, 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망치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속이 하얘지고 어지러웠다.제니퍼가 조금 전에 날 뭐라고 불렀지?윤 비서님?하지만 윤이한은 결단코 이 사람을 예전에 만난 적 없었다. 박수혁이 저 사람을 제니퍼라고 소개한 뒤에야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그런데 저 사람은 어떻게 날 아는 거지?게다가 윤이한의 직책이 비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윤이한은 새봄이와 함께 요트에 오른 뒤로 노는 것에만 집중했고 다른 인사들과 접촉한 적도 없었다.이 사람 뭐지?윤이한은 묵묵히 입술을 깨물었다.다가가서 어떻게 된 건지 따지고 싶었지만 제니퍼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소은정에게서 연락이 왔다.방으로 일단 들르라는 지시였다.윤이한은 사색이 된 채로 머리핀을 들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문앞에 도착한 그는 숨을 고르고 노크를 했다.들어오라는 소은정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윤이한은 제니퍼에 대해 그녀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전동하가 살아 있는 걸까?새봄이가 제니퍼를 따르는 것도 본능적으로 혈육의 감정을 느껴서일까?하지만 살아 있었으면서 왜 집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았지?하지만 그가 전동하가 아니라면 윤이한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소은정은 새봄이를 품에 안고 놀아주고 있었고 소은해도 옆을 지키고 있었다.그 덕분에 새봄이도 기분이 훨씬 좋아 보였다.아이는 들어오는 윤이한을 보자 웃으며 입을 열었다.“내 말 진짜라니까? 아저씨한테 물어봐! 아저씨도 나랑 같이 있을 때 아빠랑 마주쳤어!”소은정은 놀란 표정으로 윤이한을 바라보
“뭐?”소은해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이 스위트룸에는 오빠 방 없다고. 집사한테 방 하나 비워달라고 해!”소은해는 못 말린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나 초대장도 없이 와서 위층 방 결제 못한다고. 아래층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어.그리고 난 널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밤에 누가 너 노리고 몰래 들어오면 어떡해?”소은정은 피식 웃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대꾸했다.“오빠는 날이 가면 갈수록 뻔뻔해지는구나?”소은해는 그녀를 곱지 않게 흘기고는 말했다.“그럼 어쩔 수 없지. 새봄이랑 같은 방 써야지 뭐. 걔 어차피 몸집도 작으니까 아기 침대 쓰라고 하고 내가 큰 침대 쓰면 돼!”말을 마친 그는 당장이라도 새봄이 방으로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그만해. 저기 작은방 오빠가 써. 요즘 새봄이 혼자 자는 훈련하고 있어. 오빠 때문에 애가 심란해지면 안 되잖아.”소은해는 그제야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진작 이렇게 나왔어야지.”그는 만족스럽게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2층 스위트룸 작은방은 뷰가 아주 기가 막혔다.게다가 아래층 객실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절대 소은정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소찬식의 밀명이 있었다.그는 소은정이 잠들 때까지 그녀의 옆에 찰싹 붙어서 잘 감시하라고 주의를 주었다.아버지의 명은 황명과 다름없지!한편, 밖으로 나온 윤이한은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이 있었다. 휠체어를 탄 그 남자.남자를 발견한 윤이한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가슴이 요동쳤다.한번 시작된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복잡해졌다. 그는 새봄이가 사람을 착각해서 억지를 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윤이한은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전 대표님? 전 대표님 맞나요?”제니퍼는 굳은 표정으로 상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상
거대한 파도가 높게 치솟았다가 다시 사라졌다.소은정은 어쩐지 최근 들어 이 사람과 지나치게 자주 마주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한정된 공간이라서 그런 걸까?어쨌든 귀국하면 다시 만날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그녀는 사색 중인 제니퍼를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그건 조금 실례되는 행동이라 생각되었다.둘이 그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그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느낀 적도 있지만 마음이 흔들리 정도도 아니었다.그녀가 다시 걸음을 돌리려는데 뒤돌아 있던 남자가 다시 몸을 돌렸다.소리가 들렸나?제니퍼는 여전히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마치 모두와의 접촉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그는 소은정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소은정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죄송해요. 갑판에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제니퍼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덤덤한 어투로 말했다.“저기 앉을래요?”소은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가가서 앉았다.마주쳤는데 그냥 가기에는 조금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였다.바다를 마주보고 앉으니 파도소리가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바다는 울부짖고 있었다.파도는 커다란 요트와 기세 싸움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거세게 출렁이고 있었다.난간과 가까운 곳에 작은 의자와 탁자가 있었고 제니퍼는 난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의자에 앉은 그녀는 아래층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과 지금의 이 파도소리가 조금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윤 비서한테 얘기 들었어요. 우리 딸이 사람을 잘못 보고 생떼를 썼다면서요? 애가 많이 어리니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제니퍼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아이가 참 사랑스러워서 불쾌함 같은 건 못 느꼈어요.”소은정은 그제야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소은해의 말을 들어봤을 때 제니퍼라는 사람은 아이에게도 상냥하게 대했고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만약 그녀가 그의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