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그곳을 바라봤다.아니나 다를까, 새봄이가 그토록 아끼던 다이아 머리핀이 보였다.“감사합니다. 우리 아가씨가 요즘 가장 아끼는 장신구네요.”그는 다급히 허리를 숙여 장신구를 집어들었다.이걸 잃어버리면 한달 월급으로 어림도 없다!제니퍼는 휠체어를 조종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윤이한이 바닥에 떨어진 머리핀을 들고 일어서려던 순간, 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망치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속이 하얘지고 어지러웠다.제니퍼가 조금 전에 날 뭐라고 불렀지?윤 비서님?하지만 윤이한은 결단코 이 사람을 예전에 만난 적 없었다. 박수혁이 저 사람을 제니퍼라고 소개한 뒤에야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그런데 저 사람은 어떻게 날 아는 거지?게다가 윤이한의 직책이 비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윤이한은 새봄이와 함께 요트에 오른 뒤로 노는 것에만 집중했고 다른 인사들과 접촉한 적도 없었다.이 사람 뭐지?윤이한은 묵묵히 입술을 깨물었다.다가가서 어떻게 된 건지 따지고 싶었지만 제니퍼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소은정에게서 연락이 왔다.방으로 일단 들르라는 지시였다.윤이한은 사색이 된 채로 머리핀을 들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문앞에 도착한 그는 숨을 고르고 노크를 했다.들어오라는 소은정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윤이한은 제니퍼에 대해 그녀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전동하가 살아 있는 걸까?새봄이가 제니퍼를 따르는 것도 본능적으로 혈육의 감정을 느껴서일까?하지만 살아 있었으면서 왜 집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았지?하지만 그가 전동하가 아니라면 윤이한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소은정은 새봄이를 품에 안고 놀아주고 있었고 소은해도 옆을 지키고 있었다.그 덕분에 새봄이도 기분이 훨씬 좋아 보였다.아이는 들어오는 윤이한을 보자 웃으며 입을 열었다.“내 말 진짜라니까? 아저씨한테 물어봐! 아저씨도 나랑 같이 있을 때 아빠랑 마주쳤어!”소은정은 놀란 표정으로 윤이한을 바라보
“뭐?”소은해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이 스위트룸에는 오빠 방 없다고. 집사한테 방 하나 비워달라고 해!”소은해는 못 말린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나 초대장도 없이 와서 위층 방 결제 못한다고. 아래층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어.그리고 난 널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밤에 누가 너 노리고 몰래 들어오면 어떡해?”소은정은 피식 웃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대꾸했다.“오빠는 날이 가면 갈수록 뻔뻔해지는구나?”소은해는 그녀를 곱지 않게 흘기고는 말했다.“그럼 어쩔 수 없지. 새봄이랑 같은 방 써야지 뭐. 걔 어차피 몸집도 작으니까 아기 침대 쓰라고 하고 내가 큰 침대 쓰면 돼!”말을 마친 그는 당장이라도 새봄이 방으로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그만해. 저기 작은방 오빠가 써. 요즘 새봄이 혼자 자는 훈련하고 있어. 오빠 때문에 애가 심란해지면 안 되잖아.”소은해는 그제야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진작 이렇게 나왔어야지.”그는 만족스럽게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2층 스위트룸 작은방은 뷰가 아주 기가 막혔다.게다가 아래층 객실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절대 소은정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소찬식의 밀명이 있었다.그는 소은정이 잠들 때까지 그녀의 옆에 찰싹 붙어서 잘 감시하라고 주의를 주었다.아버지의 명은 황명과 다름없지!한편, 밖으로 나온 윤이한은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이 있었다. 휠체어를 탄 그 남자.남자를 발견한 윤이한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가슴이 요동쳤다.한번 시작된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복잡해졌다. 그는 새봄이가 사람을 착각해서 억지를 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윤이한은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전 대표님? 전 대표님 맞나요?”제니퍼는 굳은 표정으로 상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상
거대한 파도가 높게 치솟았다가 다시 사라졌다.소은정은 어쩐지 최근 들어 이 사람과 지나치게 자주 마주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한정된 공간이라서 그런 걸까?어쨌든 귀국하면 다시 만날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그녀는 사색 중인 제니퍼를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그건 조금 실례되는 행동이라 생각되었다.둘이 그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그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느낀 적도 있지만 마음이 흔들리 정도도 아니었다.그녀가 다시 걸음을 돌리려는데 뒤돌아 있던 남자가 다시 몸을 돌렸다.소리가 들렸나?제니퍼는 여전히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마치 모두와의 접촉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그는 소은정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소은정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죄송해요. 갑판에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제니퍼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덤덤한 어투로 말했다.“저기 앉을래요?”소은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가가서 앉았다.마주쳤는데 그냥 가기에는 조금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였다.바다를 마주보고 앉으니 파도소리가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바다는 울부짖고 있었다.파도는 커다란 요트와 기세 싸움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거세게 출렁이고 있었다.난간과 가까운 곳에 작은 의자와 탁자가 있었고 제니퍼는 난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의자에 앉은 그녀는 아래층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과 지금의 이 파도소리가 조금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윤 비서한테 얘기 들었어요. 우리 딸이 사람을 잘못 보고 생떼를 썼다면서요? 애가 많이 어리니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제니퍼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아이가 참 사랑스러워서 불쾌함 같은 건 못 느꼈어요.”소은정은 그제야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소은해의 말을 들어봤을 때 제니퍼라는 사람은 아이에게도 상냥하게 대했고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만약 그녀가 그의 얼
소은정은 어쩐지 이 사람 앞에서는 털어놓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족들에게도 하소연한 적 없던 말이었다.낯선 사람과 바다를 마주하고 같이 앉아 있어서 감성적으로 변해버린 걸까? 아니면 모르는 사람이라서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그녀의 상황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일까?어쨌든 앞으로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이었다.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해버리자.제니퍼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반응을 보였다.“어디가 닮았나요? 외모요?”소은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요. 외모는 전혀 다른데 분위기가 많이 닮았어요.”그녀 역시 곤혹스러웠다. 왜 외모는 다른데 전동하 느낌이 나는 걸까?제니퍼는 긴장을 풀고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듣고 보니 참 신기하네요. 기회만 된다면 그분 한번 직접 뵙고 싶어요.”소은정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가슴은 날카로운 것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아마 그럴 기회는 없을 거예요.”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제니퍼는 즉각 자신이 했던 말을 후회했다.전동하의 부재가 소은정에게 어떤 상처였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제니퍼 본인이 이렇게 힘든데 소은정이라고 편할까?그는 이를 악물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가벼운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그래요? 왜죠?”스스로 말하고도 정말 잔인한 질문이었다.소은정은 부드럽고 애잔한 목소리로 잔인한 현실을 이야기했다.“운이 좋으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테고 운이 나빴으면 이세상 사람이 아니겠죠.”그 얘기가 끝나자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바닷바람이 차가웠다.두 사람은 그들만의 공간에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제니퍼는 날카로운 것에 심장을 찔린 느낌이었다.고통스럽고 잔인한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그는 지금 매일 밤낮을 그리워하던 이와 마주하고 있다.하지만 자신의 진짜 신분을 이 사람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소은정은 완벽한 여자였고 더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었다.그녀의 옆을 지키는 사람은 평판과 인품이 훌륭하고
소은정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씁쓸하게 대답했다.“그래요. 나쁜 생각을 품으면 안 되죠. 가족들이 슬퍼할 테니까요. 아무리 아파도 남편을 잃었다고 그 사람 뒤를 따라갈 수는 없겠죠.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겠죠.”깊은 슬픔이 담긴 애잔한 목소리가 바람 타고 사라졌다.그녀의 매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들어와서 깊게 박혔다.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심장에서 저릿한 통증이 전해졌지만 여자는 여전히 단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그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그는 살면서 세 번째로 무기력감을 느꼈다.첫 번째는 그의 출생이었다. 가족을 선택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감.그리고 두 번째는 지진이 났을 당시였다. 산기슭에서 추락할 때, 자연의 재앙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세 번째가 지금이었다.거센 파도소리가 그의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듯이 거칠게 휘몰아쳤다.아무도 그의 마음 속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그는 울고 싶었고 저주스러운 운명이 한탄스러웠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그는 억지로 생각을 가다듬었다.나는 제시퍼다.나는 전동하가 아니다.그녀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그는 방관자일 뿐,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는 않으리라.그는 단 한마디 위로도 꺼낼 수 없었다. 그의 가슴은 애달프게 울고 있었지만.다행히 슬픔에 잠긴 소은정은 그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읽지는 못했다.한참이 지난 뒤,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소은해가 걸어온 화상통화였다.소은정은 바로 통화를 수락했다.“엄마, 자고 깼는데 엄마가 없어서 놀랐어. 언제 와?”새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애교스럽게 말했다.옆에 있던 소은해가 기죽은 표정으로 말했다.“새봄이가 우유를 마시기 싫다잖아. 네가 준 거 아니면 안 먹겠다고.”소은정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딸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짓던 표정과는 완전히 상반된 표정이었다.“새봄이 착하지. 우유 마셔야 키가 쑥쑥 클 수 있어. 그래야 몬스터 때려잡지.”새봄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
소은정은 그에게 진솔함과 인자함, 그리고 선량함을 가르쳤다.여기 도착했을 때 매력적인 제안에 흔들린 적도 있었다.하지만 소은정과 박수혁이 협력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두 사람이 같이 떠나던 뒷모습을 목격했을 때,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그 두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이득을 챙기려는 그의 비열한 행복을 비난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두 사람 사이에서 도태된 느낌까지 들었다.박수혁의 항상 당당한 모습에 그는 질투를 느꼈다.정작 소은정은 그런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만.하지만 그는 저도 모르게 암흑 같은 자신의 처지와 밝고 빛나는 박수혁을 비교했다.그랬다.소은정 옆에는 차라리 저런 사람이 어울린다. 이기심 때문에 그녀를 계속 잡고 있을 수는 없다.그는 태생이 이기적인 사람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어둠의 자식이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태어났고 그런 환경을 보고 자랐다.그래서 그는 그곳을 떠났고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을 감춘 채, 소은정에게 다가갔었다.그는 자신이 소은정이나 박수혁과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제니퍼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눈이 건조하고 뻑뻑해서 자꾸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스친 곳에 얼룩이 졌지만 위층으로 올라가 세수를 할 수도 없었다.약물이 없다면 금방 들켜버릴 것이다.“성 대표, 전에도 말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리스크가 너무 커요. 그러다가 국제 경찰의 주의를 끌어 중단될 수도 있어요.”성세는 피식 웃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이미 퇴로는 확보한 상황입니다. 새로운 신분도 준비했고 벌어들인 돈은 차명계좌에 입금될 겁니다. 이 프로젝트로 큰돈을 땡기고 경찰들이 움직이기 전에 발을 빼면 됩니다. 게다가 단기 프로젝트도 아니고 10년이나 걸리는 프로젝트예요. 이 프로젝트로 인간 사회가 변화할 수도 있어요. 좋은 일 아닌가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거금을 들여 우리 제품을 구매할 겁니다.”성세는 앞으로 다가가서 제
소은정은 애써 표정을 추스르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새봄이는 얌전히 밥 먹었어?”소은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불만을 토로했다.“밥은 먹었지. 그런데 애가 왜 이렇게 생떼를 부려? 너 어렸을 때랑 똑같아. 밥 먹을 때도 누가 옆에서 노래 불러줘야 하고 재미나게 해달라고 하잖아. 20년 전에 나 혼자 너 돌볼 때 생각났어!”이제 서른이 넘어서 좀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에게 또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소은정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오빠, 새봄이 우리랑 밥 먹을 때 한 번도 그러지 않았거든? 오빠가 애를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래!”소은해는 힘없이 소파에 축 늘어졌다.“안 예뻐해 주면 어떡해? 애가 울려고 하는데! 그 녀석 정말 사악하다니까?”소은정이 웃으며 물었다.“오빠는 뭐 좀 먹었고?”“응. 배달 시켰어. 새봄이는 놀다가 지금 자고 있어.”소은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새봄이 자는 거 보고 올라가서 씻을래. 오빠도 일찍 쉬어!”방으로 돌아가려던 소은해가 현관에 놓인 선물 박스를 보고 물었다.“저거… 박수혁이 준 거지?”소은정은 움찔하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은해가 웃으며 말했다.“저렇게 상대 취향 생각 안 하고 선물하는 사람은 그 녀석뿐이니까. 그래도 성의를 보였으니 된 거지 뭐. 애가 붙임성도 없고 세심하지 못해서 그래.”소은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지금 당장 쉬러 갈 거 아니면 저거 돌려주고 와.”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소은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그날 밤은 매우 평화로웠다.그들이 잠에서 깼을 때, 요트는 이미 부두에 도착해 있었다.꽤 괜찮은 바다 여행이었다.소은정은 정리할 짐이 별로 없었기에 가벼운 차림으로 밖으로 나왔다.새봄이는 아침을 먹은 뒤 신나서 방 안을 뛰어다니다가 소은해에게 잡혀 밖으로 향했다.윤이한은 여전히 핼쑥한 얼굴로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뱃멀미 는 좀 괜찮아요?”소은정의 질문에 그는 움찔하며 연신 고개를
박수혁도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소은정은 그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곧바로 운전기사가 대기 중인 차로 향했다.윤이한은 그 뒤를 바짝 따랐다.이때 그들의 앞으로 진기종이라는 자가 다가왔다. 그의 옆에는 금발의 미인이 동행하고 있었다.“소은정 씨, 잠깐만요.”소은정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약간 인상을 썼다.“진기종 씨?”요트에 있던 선객들 중, 진기종은 가장 인상 깊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결혼을 세 번이나 했던 것도 임팩트도 있었지만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그 입재주가 장난이 아니었다.진기종은 그녀에게 다가서더니 명함 한장을 내밀었다.“제 명함입니다. 곧 집으로 돌아가게 돼서 앞으로 자주 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래도 연락하면서 지내요.”소은정은 곧바로 윤이한에게 눈짓을 보냈고 윤이한이 명함 한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그녀는 그 명함을 진기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제 명함이에요. 그런데 프로젝트에 꽤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벌써 돌아가시는 거예요?”진기종은 한숨을 내쉬고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생각해 봤는데 이 투자는 리스크가 너무 커요. 돌아가면 마누라 네 명이나 건사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골로 갈 수도 있는 사업에 손대고 싶지는 않아요.”소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네 명이요? 세 명 아니었나요?”진기종은 피식 웃고는 옆에 있는 금발 미녀를 가리켰다.“얘가 네 번째 애인이죠. 같이 돌아간다고 약속했으니 곧 네 번째 결혼을 할지도 모르겠군요!”소은정은 순간 길 가다가 똥 밟은 느낌이 들었다.정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무책임하다고 말하자면 그래도 부인들에게 꽤 괜찮은 생활을 보장해 주는 편이었다.하지만 이런 행동 자체가 역겹고 반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다행인 점이라면 앞으로 서로 얼굴 마주하고 교류할 일은 거의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소은정은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축하드려요.”그녀는 이대로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그런데 이쪽으로 다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