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도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소은정은 그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곧바로 운전기사가 대기 중인 차로 향했다.윤이한은 그 뒤를 바짝 따랐다.이때 그들의 앞으로 진기종이라는 자가 다가왔다. 그의 옆에는 금발의 미인이 동행하고 있었다.“소은정 씨, 잠깐만요.”소은정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약간 인상을 썼다.“진기종 씨?”요트에 있던 선객들 중, 진기종은 가장 인상 깊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결혼을 세 번이나 했던 것도 임팩트도 있었지만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그 입재주가 장난이 아니었다.진기종은 그녀에게 다가서더니 명함 한장을 내밀었다.“제 명함입니다. 곧 집으로 돌아가게 돼서 앞으로 자주 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래도 연락하면서 지내요.”소은정은 곧바로 윤이한에게 눈짓을 보냈고 윤이한이 명함 한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그녀는 그 명함을 진기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제 명함이에요. 그런데 프로젝트에 꽤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벌써 돌아가시는 거예요?”진기종은 한숨을 내쉬고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생각해 봤는데 이 투자는 리스크가 너무 커요. 돌아가면 마누라 네 명이나 건사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골로 갈 수도 있는 사업에 손대고 싶지는 않아요.”소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네 명이요? 세 명 아니었나요?”진기종은 피식 웃고는 옆에 있는 금발 미녀를 가리켰다.“얘가 네 번째 애인이죠. 같이 돌아간다고 약속했으니 곧 네 번째 결혼을 할지도 모르겠군요!”소은정은 순간 길 가다가 똥 밟은 느낌이 들었다.정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무책임하다고 말하자면 그래도 부인들에게 꽤 괜찮은 생활을 보장해 주는 편이었다.하지만 이런 행동 자체가 역겹고 반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다행인 점이라면 앞으로 서로 얼굴 마주하고 교류할 일은 거의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소은정은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축하드려요.”그녀는 이대로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그런데 이쪽으로 다가
문준서는 흥분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문준서의 부모님이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은정 씨, 이렇게 또 폐를 끼치게 되었네요. 어젯밤에 데려오려고 했는데 준서가 잠들어서 오늘 같이 왔어요.”소은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아이랑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더 중요하죠. 어차피 왔는데 식사는 하고 가실 거죠?”문선이 웃으며 말했다.“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식사는 나중에 해야겠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리가 맛있는 밥 살게요.”“그렇게까지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어요.”“격식이라뇨. 은정 씨가 우리 준서 신경 써주신데 대한 보답이죠. 준서는 여기 있을 때 더 행복해 보여서 마음이 놓여요.”그녀는 조금 전에 소은정이 아이의 땀을 닦아주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아이에게 이렇게까지 자상한 사람이라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준서에게 평소에 소홀이 대했더라면 조금전과 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문예성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함 한장을 소은정에게 건넸다.“이건 제 명함입니다.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이쪽으로 언제든 연락주세요.”명함을 확인한 소은정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성세그룹이요?”문예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성세그룹을 알아요?”문선은 남편의 팔을 잡으며 눈치를 주었다.“은정 씨도 사업하는 사람인데 당연히 들어봤겠죠. 그리고 성세는 여기서도 인지도가 꽤 높아요.”문예성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어제 파티에 참석했는데 성세그룹에서 주최한 파티라고 들었어요. 요트여행, 이거 성세에서 기획한 거죠?”그녀는 어쩐지 누군가가 그녀와 성세를 자꾸 엮으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소은정의 어두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혹시 장기 제작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문예성 부부는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문예성은 긴장한 표정으로 소은정에게 다가서며 말했다.“그건 우리 그룹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아
“뭐라고요?”소은정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이건 사실 성세그룹 내부 기밀이에요. 몇십 년 전부터 진행해 오던 연구였죠. 몇 년 사이에 조금 진전이 있었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런 실험은 중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실험은 중단되었죠. 그러니까 우린 진짜 인체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한 적도 없고 이걸 어디 공개하지도 않았어요. 성세는 이 점을 이용해서 과감하게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페이퍼컴퍼니를 창설했죠. 사실상 임상실험은 진행되기 어려워요. 기사회생했다는 그 여자도 사실 이 프로젝트의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고요.”소은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저도 모르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제니퍼의 눈빛이 떠올랐다.만약 성세의 프로젝트가 완벽하지 않다면, 실패했다면 암환자 조지와 같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게 아닌가?그리고 제니퍼 역시….진기종은 그가 성세의 실험품이 될 거라고 예언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제니퍼는 안 그래도 참담한 인생이 더 나락으로 추락할 게 분명했다.그녀는 제니퍼에 대한 윤이한의 평가를 사실 믿지 않았다.소은정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잠시만요. 전화 좀 하고 올게요.”문선 부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은 바로 소은호에게 연락했다.아마 한국은 밤중이라 자고 있었을 텐데, 그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막내야, 무슨 일 있어?”다른 사람의 전화였으면 짜증부터 냈겠지만 소은정은 그 부분에 포함되지 않았다.옆에 있던 한시연도 잠에서 깼는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전화야? 무슨 일 있대?”소은호는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아내에게 말했다.“별일 아니니까 당신은 먼저 자고 있어. 난 서재로 좀 가볼게.”소은정은 다급히 용건부터 꺼냈다.“오빠, 캐나다 국적의 제니퍼에 대한 사람에 대해 좀 알아봐줘. 혹시 이 사람 알아? 투자 전문이라고 들었는데.”소은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아니. 그런 사람은 못 들어봤어. 전에 캐나다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는
소은정은 긴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드디어 결과가 나왔다.늦지는 않았겠지?그녀는 문예성 부부에게 양해를 구한 뒤,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은정아, 알아봤는데 캐나다에는 제니퍼라는 사람이 없어. 투자 업계에도 없고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야. 현지 경찰에게도 협조를 요청했는데 페이퍼컴퍼니 대표에 제니퍼라는 사람의 이름이 올라와 있지만 전혀 연락처나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었어. 게다가 이 사람은 지금 캐나다에 없어. 이 사람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둔기에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제니퍼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리고 페이퍼컴퍼니.그렇다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람은 제니퍼 본인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소은정은 바로 전화를 끊고 흥분을 삭혔다.그녀는 갑판에 고독하게 앉아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사람을 떠올렸다.표정에는 전혀 생기가 없었고 주변에 온통 절망과 슬픔만 가득해 보이던 사람.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았다.그렇다는 건 요트에서 육지에 상륙하지 않고 바닷속에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이상하리만치 두렵고 오싹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왜 그 사람에게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그녀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분명 전에 알던 사이도 아닌데.정말 그가 줬던 느낌이 전동하랑 많이 닮아서, 그런 이유일 뿐일까?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발이 떨리고 추위가 느껴졌다.만약 그가 실험품을 자처했다면 안 그래도 어두운 그의 인생은 깊은 심연으로 처박힐 것이 분명했다.불쌍한 사람!문선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은정 씨, 우리가 그곳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어서 빨리 이 황당한 연극을 끝내야 해요. 안 그러면 더 많은 희생이 이어질 거예요!”소은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그녀도 그곳을 찾고 싶었다.그녀는 윤이한을 호출했다.윤이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
겉으로는 의젓하게 보여도 사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소은정은 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준서야, 엄마랑 아빠한테 작별인사는 해야지?”“엄마, 아빠, 조심히 가. 준서는 얌전히 사고 안 치고 지낼게.”아이가 먼저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었다.문선은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며 소은정에게 말했다.“손님도 오셨는데 배웅은 여기까지만 해요. 우리를 도와줘서 정말 감사했어요.”소은정은 미소를 짓고는 그들을 대문까지 바래다주었다.그들이 차를 타고 떠나자 준서는 잔뜩 기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소은정은 한숨을 내쉬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중에 은호 삼촌이 출장 갈 때 따라가. 그러면 또 부모님 만날 수 있잖아. 은호 삼촌은 이곳으로 출장을 자주 오시거든.”준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표정을 피고 그녀에게 물었다.“새봄이랑 은해 삼촌은 오고 있대?”준서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지금 새봄이랑 쇼핑 중이래요. 새봄이가 제 선물 많이 샀다고 하던데요?”소은정은 아이가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서 덩달아 안심이 되었다.“그래? 그럼 들어가서 기다리자. 이모는 손님이 오셔서 잠깐 자리를 비울 거야.”“네!”아이는 다시 놀이방으로 뛰어갔다.소은정의 옆에서 대기하던 집사가 말했다.“손님은 서쪽 별채에 모셨습니다.”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채를 향해 갔다.별채는 본채보다 아담한 컨셉이었다.소은정이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겉보기에 4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금발의 웨이브진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무척이나 우아하게 보였다.푸른 벽안을 가진 미인이었다. 서방 특유의 우아함과 신비스러운 매력이 풍기는 여자였다.소은정은 잠시 상대를 관찰하다가 급기야 누구인지 알아차렸다.여자는 다가가서 웃으며 소은정을 훑어보더니 먼저 악수를 청했다.“반가워요, 린다예요.”소은정도 그녀의 손을 마주잡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마이크의 이모님 되시죠?”린다가 살짝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동하가 과거에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마이크의 장래를 린다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비난하고 있었다.하지만 그걸 반박할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마치 전세계가 그에게 온갖 오물을 퍼붓고 있는 느낌이었다.이런 이질감은 소은정을 괴롭게 했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냉랭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쏘아보며 말했다.“린다 씨는 마이크와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었죠. 그러니 동하 씨의 교육방식을 비난할 자격도 없어요. 당신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요? 마이크가 당신 곁으로 가면 정말 손에 피 한방울 안 묻히고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그녀의 강경한 태도에 린다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겉보기에 유약해 보이는 이 여자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린다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하며 반박했다.“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마이크가 나한테 오면 일반인들은 꿈도 못 꿀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겠죠? 난 돈도 넘쳐나고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요. 가히 완벽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죠. 전 대표가 꼰대처럼 아이를 붙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마이크는 지금까지 왕자님 생활을 누리고 살았을 거예요.”린다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건 린다 씨 생각이죠. 마이크가 당신과 같은 길을 걸었다면 평생 사람들의 경멸을 샀을 거예요.”그녀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대고 비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린다를 빤히 바라봤다.린다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린다 씨가 혼자 일구어낸 성과를 부정하지는 않을게요. 같은 여자로서 감탄할 정도죠. 하지만 마이크는 안 돼요. 그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야 해요. 우리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삶의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고 목적의식을 키워주는 것뿐이죠.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실패할지는 마이크의 노력에 달렸어요. 부와 권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됐어요. 어차피 찾지 못할 거면 괜히 시간낭비 할 거 없어요. 짐 정리하고 내일 귀국하는 거로 하죠.”두 비서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멀리서 새봄이와 준서가 뛰노는 소리가 들려왔다.쇼핑 나갔던 소은해와 새봄이가 돌아온 모양이었다.고용인들은 커다란 쇼핑백을 가득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윤이한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오히려 우연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가족들 줄 선물이죠. 셋째 도련님이 손이 좀 크시거든요.”윤이한은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평소에 전동하는 그에게 선물을 준비하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거의 없었다.소은해가 싱글벙글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은정이 어디 있어요?”우연준이 웃으며 대답했다.“안에 있어요.”소은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부탁한 뒤, 별채로 들어갔다.소은정은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고소한 커피향이 아늑한 별채를 가득 채워서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그녀는 양반다리를 하고 소파에 앉아 들어온 소은해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오빠, 늦었네?”소은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새봄이가 너 꼭 닮았다니까. 물건 고를 때도 자기주장이 강해. 나한테 물건 고르는 센스 없다고 막 뭐라고 하잖아. 성격 고약한 것도 너 닮았어.”소은정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내 딸이니까 당연히 날 닮았지. 여자애라서 품위에 신경 쓰는 것도 좋아.”집사가 커피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자 소은해는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우연준과 윤이한이 애들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자 그는 그제야 진지한 표정으로 소은정에게 다가갔다.“나 길에서 누구 만났어.”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윤이영이라고 해야 하나, 안진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박수혁 전처 말이야.”소은정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윤이영 씨 만났어?”소은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윤이영은 눈시울이 벌개서 소은정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안쓰러울 정도로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녀는 잠시 소은정을 바라보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넸다.“소은정 씨?”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제가 친구 두 명이랑 같이 왔는데 들어가서 대화 좀 나눠도 될까요?”사실은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는데 윤이영의 처지가 딱하기도 했고 그녀에게 겁을 주고 싶지 않았다.윤이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켰다.문선도 여자였기에 윤이영이 별로 경계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그러나 건장한 체구의 문예성은 상대에게 무언의 압박감을 주었다.윤이영은 그의 진입을 거부하고 싶었지만 소은정은 이미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기에 딱히 말은 하지 않았다.안으로 들어간 문선은 먼저 윤이영의 상태를 관찰했다.소은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윤이영에게 물었다.“윤이영 씨는 어떻게 나왔어요? 처음에 오빠한테 소식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어요.”“그 사람이 은정 씨 오빠였어요? TV에서 본 것 같은데… 좀 무서웠어요. 저한테 밖에 절대 나가지 말라고 하셨거든요.”윤이영은 약간 넋이 나간 상태였다.소은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제가 사과할게요. 사실 나쁜 마음은 없어요. 이영 씨를 누군가랑 착각해서 실례 되는 행동을 했네요.”문선은 다급한 표정으로 소은정에게 눈치를 주었다.소은정이 웃으며 말했다.“이영 씨, 성세 대표를 피해서 도망 나온 거죠?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잖아요.”요트에 있을 때, 윤이영은 항상 성세를 감싸고 그에게 득이 되는 말만 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녀는 무언가 알아차리고 성세에게 등을 돌린 것 같았다.윤이영은 주먹을 꼭 쥐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사실 도움은 필요 없어요. 그냥 바깥 세상이 궁금했어요. 새 삶을 얻었는데 대표님이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해서 계속 바다 속에서 생활했거든요. 저도 정상적인 생활 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