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하준은 뚫어지게 그녀를 응시했다.“한유라, 너 아닌 거 알아. 너랑 상관없는 거 아니까 기다려.”다시 찾아갈게, 기다려!사다리는 그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하지만 이걸 잡는 순간 총탄이 날아올 것이다.그가 사다리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등 뒤에 손을 감추고 있던 한유라가 팔을 뻗었다.“민하준, 내가 말했지? 넌 내 손에 죽을 거라고!”민하준은 경직된 자세로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공기마저 냉각된 기분.방시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유라를 쏘아보았다.“형님, 빨리 가세요!”겨우 지탱하고 있던 민하준의 마음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있었다.그녀가 했던 그 말, 한 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홧김에 그냥 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짜증이 날 때면 유사한 말을 많이 했다.이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에는 그녀만 보였다.그는 입가에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유라, 넌 쏘지 못해.”그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그녀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하지만 그녀는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없었다.어느 정도는 그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며칠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마음이 자신에게 기우는 것을 확인했다. 더 이상 그와의 스킨십을 거부하지 않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의 상처를 바라본 것도 확인했다.그들도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했다.탕!찢어질 듯한 총성이 적막을 깨뜨렸다.민하준의 마음도 같이 부서졌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닥에 쓰러지는 방시혁을 바라보았다.방시혁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한유라였다.민하준을 향해 쏘았지만 방시혁이 대신 맞았다.정말 방아쇠를 당길 줄이야!방시혁은 민하준의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형님, 빨리 가세요!”민하준은 음산한 표정으로 한유라를 쏘아보았
한유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았다.민하준을 알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가 죽기까지 그는 시종일관 그녀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공장을 나섰으나 독사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모든 게 끝이 났다.이제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차에 오르자 곽현이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넸다.“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연락해요.”한유라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힘들게 여기까지 버텼는데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그녀는 가장 먼저 김현숙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지친 모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시죠?”“엄마, 저예요.”“유라? 유라니? 너 괜찮아?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잖아!”김현숙은 울먹이며 안부부터 물었다.한유라는 최대한 상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이제 괜찮아요. 걱정시켜서 정말 죄송해요!”“너만 괜찮으면 됐어. 이제 안심했어!”김현숙은 전화기를 붙잡고 오열하다가 몇 마디 당부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한유라는 곽현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며 물었다.“오늘 작전 알고 있었어요?”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민하준은 겉으로는 날 신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중하게 행동했어요. 나한테는 독사랑 접선하라고 하면서 사적으로 자기가 다 준비했죠. 날 견제하기 위해. 거래 지점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계획이 틀어진지 몰랐어요. 다행히 한유라 씨가 제때 형사들에게 알려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죠. 내가 알기로 독사가 도움 주겠다고 나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누가 중간에서 압력을 넣은 것 같네요.”한유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영감님이요. 독사가 민하준이랑 하는 얘기 들었어요.”곽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영감님뿐이 아니겠죠. 그 귀걸이 선물하신 분이 구조요청을 받고 판을 짰다고 보면 돼요. 형사와 마약조직의 협력이라니, 전대미문의 사건이죠. 그분한테 고마워하셔야겠네요. 독사가 적극 협조하지 않았으면 형사들도 찾기 어려웠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영감님 쪽이 문제인데… 한유라 씨가 그 사람이랑 무슨 관
전동하도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한유라 씨 돌아오고 알아보면 되겠네요. 한유라 씨만 굳건하게 마음을 먹으면 사실이 공개돼도 받아들일 수는 있을 거예요.”소은정은 한숨을 쉬며 푸념하듯 말했다.“우리 유라 빨리 정신을 추슬러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전동하는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게나 말이에요.”동남아.눈 깜빡할 사이에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곽현은 경찰과 협조해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민하준 일당은 한명도 남김없이 모두 검거되었다.한유라의 옆에는 여형사 한 명이 하루종일 붙어 있었다.그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감시하기 위한 목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한유라도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이날은 곽현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한유라 씨랑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습니다.”여형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방을 나섰다.한유라는 소파에서 와인을 마시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 예상 외로 그녀는 무덤덤했다.한유라는 원래 삶의 질을 굉장히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민하준과 있을 때와는 다르게 표정이 많이 편안해 보였다.처음에 곽현은 그녀가 자신의 신분을 어디에 폭로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녀는 생각보다 영리했다.처음 그녀를 봤을 때는 곱게 길러진 재벌2세라 멍청하고 아둔할 줄 알았는데 그냥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한유라 씨, 잘 지내셨나요?”한유라는 미소로 그를 맞아주었다.“네. 그럭저럭… 곽 형사님이라고 해야겠네요.”곽현은 피곤한 기색으로 그녀의 앞에 가서 마주앉았다.“이곳 작업은 곧 끝나가요. 우리는 내일 오후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한유라의 두 눈에 기쁨과 희열이 차올랐다.“고마워요.”곽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방시혁은 목숨을 건졌어요. 며칠 전에 치료한다고 국내로 보냈고요. 아마 빠른 시일안에 재판받을 겁니다.”한유라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사람을 죽였
긴 통로를 빠져나오니 사람들 틈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심강열이 보였다.그는 전보다 살이 많이 빠졌는지 옷도 평소보다 많이 헐렁해 보였다.한유라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그리웠던 감정과 서러웠던 감정이 뒤엉켜 당장이라도 터뜨릴 것 같았다.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저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같이 할 사람.한유라가 웃으며 사람들 쪽으로 다가가려는데 누군가가 그의 팔을 툭 쳤다.사람이 하도 많아서 그녀는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그 상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그 순간 한유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방시혁….”방시혁은 식지를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그러더니 음침한 표정을 짓고 그녀를 반대방향으로 끌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심강열도 그녀를 발견했는지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다시 주저앉았다.한유라는 방시혁의 손길을 뿌리치고 달려가고 싶었지만 우악스러운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한유라, 사람들 많은데서 남편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그는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그녀를 협박했다.한유라는 당황한 얼굴로 방시혁을 바라보았다.자세히 보니 외투 안쪽에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병원에서 몰래 도망친 모양이었다.방시혁은 짜증스럽게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압박했다.평소에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주방장의 모습은 더는 없었다.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한유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지금 뭐 하는 거지? 여기 공항이야!”형사들도 근처에 있었다.살려달라고 소리치면 달려올 수 있는 거리였다.방시혁은 그녀를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가서 바닥에 패대기치며 말했다.“한유라, 널 죽일 생각이었어.”그가 이를 갈며 말했다.“방시혁, 나한테 총 맞아서 복수하러 온 거야?”방시혁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그거 민하준 향해 쏜 거야. 너랑 아무 상관없다고!”한유라는 눈물을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고 서로를 제외한 모든 게 모자이크로 보였다.한유라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살아 숨쉬는 심강열을 빤히 바라보았다.기분이 좋았다.비행기에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게 현실이 되었다.그녀는 과거의 자신이 참 다채롭게 살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순간에야 제대로 보였다. 결혼한 뒤로 자신이 얼마나 안정감 있는 삶을 살았는지.그들은 서로를 시험하다가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그리고 그 호감이 커져서 사랑이 되었다.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올라오는데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다.그런데 입을 열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옆을 보니 다시 중심을 잡은 방시혁이 사람들을 제치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그녀와 심강열은 3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방시혁이 총을 들었다.한유라는 다시 몸을 돌려 방시혁이 총을 겨눈 방향을 향해 뛰었다.탕!아찔한 비명소리가 현장에 울렸다.도망치는 사람,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람들이 도망치면서 방시혁의 시야를 가렸다.다시 총을 쏘고 싶었지만 더 이상 기회는 없었다.공항을 지키던 형사들이 달려와서 방시혁을 제압했다.바닥에 쓰러진 한유라는 눈을 크게 뜨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심강열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그녀의 상처를 보듬었다.피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정말 아픈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좀 부딪히고 까져도 아프다고 울고 짜증을 부리던 사람이었는데 그를 대신해 총을 맞았다.심강열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유라야, 정신 차려. 의사가 곧 도착할 거야. 조금만 참아.”그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렸다.한유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죽기 전에 말을 정말 많이 하던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아쉽고 한탄스러웠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안아보고 싶었고 내일은 뭐 할지 의논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영감은 당황한 것처럼 오랫동안 중얼거렸다. 평생 동안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딸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죄를 받았다.형사가 그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했다.영감은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서 파란만장한 삶을 겪은 김현숙을 바라보는데 온통 후회와 자책의 눈빛으로 가득하다.“미안해, 평생 그 아이를 만나지도 인정하지도 않겠다고, 당신 삶에 끼어들지도 않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결국 오늘 이 지경까지 되다니, 미안해.”그녀를 바라보는 영감의 눈빛에는 절제된 감정이 짙게 배어 있지만 감히 조금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김현숙의 눈에서 혐오와 불쾌함이 느껴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그러나 상대방은 반응이 없다.눈을 감고 그는 형사를 따라갔다.심강열은 그곳에 서서 한유라를 그윽이 바라보았다.분위기가 싸늘하고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심호흡을 하던 김현숙이 겨우 입을 열었다.“강열아, 돌아가, 넌 좋은 아이니까 유라가 널 꼭 기억할 거야. 앞으로 꼭 잘 살아.”그녀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등을 돌리는데 소은영과 김하늘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떠나갔다.가랑비 속에 서 있는 심강열을 보고 있는 소은영은 갑자기 안쓰러워졌다.그때 스튜어디스한테서 가져온 물건이 생각나서 그녀가 앞으로 다가갔다.“이건 유라가 귀국하면서 비행기에서 남긴 것인데 스튜어디스가 이걸 버리지 않았대요. 보관하세요.”심강열은 멍한 안색으로 손을 내밀어 물건을 받아갔다.소은정은 마지막으로 한유라를 한 번 더 보고 나서 발길을 돌렸다.그들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뒤에서 들려오는 심강열의 무거운 흐느낌 소리를 들었다.그 가시지 않은 슬픔이 가랑비와 함께 뼈속까지 스며들었다.(한유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그들이 한유라의 죽음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어쩌면 그들은 한유라가 죽지 않고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한유라가 소은정에게 보낸 택배는 세관에 거의 한 달 동안 묶여있었다. 그 택배를 받은
장욱은 그들이 협력하기로 한 프로젝트를 얘기한 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사실 다른 프로젝트를 지켜보고 있는데 아직 성사될지는 모르겠네요.”이 말에 소은정이 한번 대꾸했다.“말해봐요.”그러자 장욱은 한번 혀를 차더니 얼굴에 붙인 팩도 무시하고 말을 꺼냈다.“패왕산에서 온천을 파냈다는 찌라시를 내가 입수했는데, 만약 그곳에 온천산장이나 리조트를 세운다면 반드시 돈이 될 걸요.”소은정은 상기된 그의 표정을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찌라시라고요?”그 말에 장욱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내 남동생, 충실한 클라이밍 애호가인데요, 패왕산에 수십 번 갔는데 이번에 돌아와서 나한테 알려주더라고요.”소은정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관련 부서에서 보고가 나왔나요?”이에 장욱은 웃으며 답했다.“나왔다면야 찌라시가 아니죠. 다만 거리가 멀어서 제가 좀 긴가민가이긴 한데 소 대표님께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나중에 약속 잡아 함께 가보시죠? 진짜가 아니더라도 등산도 하고 기분전환도 할 수 있잖아요!”처음에 소은정은 별로 관심 없었지만 얘기하면서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전동하와 새봄이를 데리고 같이 휴가를 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출국은 시간을 오래 잡아야 해서 겨를이 없을 것 같으니 지방으로 가는 것 또한 괜찮다고 그녀는 생각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답했다.“좋죠.”그러던 와중에 얼마 안 되어 전동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마중 온 그가 이미 문 앞에 도착했던 것이다.소은정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마무리 짓고는 환한 얼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뒤따르던 장욱이가 웃으면서 입을 뗐다.“소 대표님, 피부가 진짜 좋으시네요. 혹시 외국에 나가서 정기적으로 성형이라도 하십니까?”그 말에 소은정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타고난 미모라서 어쩔 수 없네요.”그녀도 장욱이의 말이 다소 과장된 건 알지만 어떤 여자라도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게 사실이다.이때 문 앞에 서
김하늘은 요리에 재능이 없다.소은해도 천부적인 재능이 전혀 없다. 소은정이 갔을 때 그들이 만든 요리가 고작 오이무침과 양파무침이 전부였으며 옆에는 타버린 몇몇 해산물이 달랑 놓여 있었는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김하늘이 웃으며 소은정을 끌어당겼다.“내가 방금 만국호텔에서 네가 좋아하는 해산물이랑 회를 시켰으니까 우리 가만있어도 돼.”소은정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예전에 요리를 좀 연구한 편이기는 하나 전동하와 함께 한 뒤로는 별로 주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지라 진작에 서먹서먹해졌던 것이다.당장 뭐라도 하는 게 벅찼던 그 또한 공감을 표시하며 음식 배달이 오기를 기다렸다.그러던 와중에 나오다가 전동하를 걱정하는 소찬식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소은해는 헛기침을 하며 불만을 토했다.“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친아들은 저라고요!”소찬식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꼭 그렇지는 않지, 병원에서 잘못 데려왔을 수도 있으니까.”그 말에 소은해가 반박했다.“저요, 집에서 태어났다고요!”소찬식도 질세라 대답했다.“오오오, 내가 깜빡했네......”이에 김하늘은 허리를 못 펼 정도로 웃고 있다.소은정도 입을 가리고 몰래 웃고 있다.한시연이 꽃잎으로 장식된 예쁜 케이크를 들고 나오는데 소은호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그녀를 보필했다.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되어서.“아저씨, 잘 만들지는 못했으니까 개의치 마세요.”집사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너무 예뻐서 입에 넣기조차 아까운데요.”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밖에서 주차하는 기척이 들렸다.그때 전동하가 일어서며 말했다.“새봄이랑 준서가 왔네요.”과연 그 순간 새봄이가 신이 나서 뛰어 들어왔고, 문준서가 뒤따라 뛰어들어오는데 손에 작은 가방 두 개를 들고 힘겹게 숨을 헐떡거렸지만 짜증 나는 기색이라고는 없다.“집사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집사 아저씨가 즐거워하며 빙그레 웃었다.“고마워요, 새봄이 어린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