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은 요리에 재능이 없다.소은해도 천부적인 재능이 전혀 없다. 소은정이 갔을 때 그들이 만든 요리가 고작 오이무침과 양파무침이 전부였으며 옆에는 타버린 몇몇 해산물이 달랑 놓여 있었는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김하늘이 웃으며 소은정을 끌어당겼다.“내가 방금 만국호텔에서 네가 좋아하는 해산물이랑 회를 시켰으니까 우리 가만있어도 돼.”소은정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예전에 요리를 좀 연구한 편이기는 하나 전동하와 함께 한 뒤로는 별로 주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지라 진작에 서먹서먹해졌던 것이다.당장 뭐라도 하는 게 벅찼던 그 또한 공감을 표시하며 음식 배달이 오기를 기다렸다.그러던 와중에 나오다가 전동하를 걱정하는 소찬식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소은해는 헛기침을 하며 불만을 토했다.“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친아들은 저라고요!”소찬식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꼭 그렇지는 않지, 병원에서 잘못 데려왔을 수도 있으니까.”그 말에 소은해가 반박했다.“저요, 집에서 태어났다고요!”소찬식도 질세라 대답했다.“오오오, 내가 깜빡했네......”이에 김하늘은 허리를 못 펼 정도로 웃고 있다.소은정도 입을 가리고 몰래 웃고 있다.한시연이 꽃잎으로 장식된 예쁜 케이크를 들고 나오는데 소은호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그녀를 보필했다.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되어서.“아저씨, 잘 만들지는 못했으니까 개의치 마세요.”집사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너무 예뻐서 입에 넣기조차 아까운데요.”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밖에서 주차하는 기척이 들렸다.그때 전동하가 일어서며 말했다.“새봄이랑 준서가 왔네요.”과연 그 순간 새봄이가 신이 나서 뛰어 들어왔고, 문준서가 뒤따라 뛰어들어오는데 손에 작은 가방 두 개를 들고 힘겹게 숨을 헐떡거렸지만 짜증 나는 기색이라고는 없다.“집사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집사 아저씨가 즐거워하며 빙그레 웃었다.“고마워요, 새봄이 어린
옆에 있던 문준서가 털썩 일어섰다.“새봄아, 목마르거나 배고프거나 피곤하면 말해, 내가 대신 업어줄 테니까.”그 말에 새봄은 이내 대답했다.“응!”전동하는 마음속으로 가식적인 놈이라고 외쳤다.문준서는 즐겁게 웃으며 위로 올라갔다. 작은 몸매가 비록 말랐지만 소은정이 잡아줄 필요 없이 아주 날랬다.그는 피곤하지 않은 데다가 그저 새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했을 뿐이다. 곧 목적지에 도달하기 직전이라 계속하는 건 당연한 거다!전동하는 어이없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새봄이한테 심각하게 세뇌당하고 말았다.이따금씩 뽀뽀하며 껴안고, 또 전동하의 땀도 닦아주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라고 하며, 자기 아빠가 너무 잘 생긴 게 문준서보다도 더 잘 생겼다면서 앞으로 자기도 엄마처럼 아빠와 같은 남자친구를 찾겠다고 재잘거렸으니까. 잠시 후, 새봄을 안은 전동하의 흥은 처음보다 많이 고조되었다.심지어 피곤하다는 말도 없이 활기 있는 게 소은정이 봐도 고개를 흔들 정도다.새봄이, 어린 게 앞날이 창창한데!하지만 2/3쯤 갔을 무렵,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소은정은 전동하에게 한사코 새봄이를 내려놓으라고 하면서 내려와서 애들 데려가라고 미리 도착한 비서를 호출했다.그렇게 그들은 불과 40분 만에 산에 도착했다.새봄이는 대충 보고 나서 그냥 자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소은정은 부득불 사람을 시켜 새봄이와 문준서를 호텔로 데려가도록 했다.그 시각 전동하는 외투까지 벗고, 심플하고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서 있는데, 키가 크고 훤칠해서 보는 사람이 눈을 뗄 수가 없다.피곤해서 서 있는 소은정도 정상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노라니 마음속의 초조함이 싹 가셔졌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엷은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고 있고 짙푸르고 울창한 산간은 끊임없이 기복을 이루는 게 마치 선경과도 흡사했다.거기 서서 내려다보면 아슬아슬함은 느껴지지 않고 순간적으로 마음이 차분해지면서후련하고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눈을 감고 긴장을 풀고 있는 소은정을 보는 전동하의
지진의 심한 흔들림 때문에 그녀는 미처 피하지 못했고 머리 위의 어슴푸레한 등불이 순식간에 꺼져 어두컴컴해졌다.순간 적응되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간담이 서늘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엄마......”그녀는 흠칫 놀라며, 흥분해서 떨면서 새봄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이때 비서들이 아이 한 명씩 안고 나왔다.“대표님, 얼른 나가요. 여기 뒤쪽이 이미 내려앉았다고요.”비서가 초조해하며 입을 열었다.어둠에 적응되면서 그녀는 여비서가 품에 새봄이를 안고 있는데 무언가에 맞은 듯이 이마에 멍이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소은정은 다급히 새봄이를 훑어보는데 다행히 아이는 여비서가 품으로 보호해줘서 그저 많이 놀랐을 뿐이다. 소은정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비서를 한번 쳐다보았다.“고마워, 얼른 가자.”그녀는 손을 뻗어 비서의 품에서 새봄이를 안아온 후, 머리를 쓰다듬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문준서도 얌전히 남비서의 품에 안겨있었는데 많이 놀란 모양이다.남비서는 별일 없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들은 돌아서서 뒤로 되돌아갔다.소은정은 새봄이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다만 모퉁이를 막 지나려고 할 때 여진이 덮쳐왔다.이번 충격은 이전보다 몇 배 더 강하게 느껴졌다.사람이 거의 바닥에 서 있을 수 없는 정도라 그들은 피할 곳을 찾지 못했고 방안의 벽이 반쯤 무너지다가 순간 폐허가 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비명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살려달라는 소리 또한 귀청이 터질 듯하다.1초 전까지만 해도 앞에서 뛰던 사람이, 1초 뒤엔 떨어지는 뭔가에 맞아 쓰러졌다.이 시점에서, 그녀가 어떻게 새봄이를 버리고 모르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심장이 심하게 조여오는데 그런 공포는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동하 씨가 안 와서 다행이지, 그래, 밖에 있어서 다행인 거지.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갑자기 눈앞에 빛이 번쩍였다.머리 위의 시멘트가 떨어진 것이다.뒤에 있던 사람이 막혔지만 다행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 속에 소은정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절절한 울음소리와 비명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극도의 두려움에 하얗게 질려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그들이 느끼는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보이지 않는 벽이 그녀를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창백한 얼굴을 한 그녀가 눈앞의 폐허 더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장욱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구조를 도왔던 그는 온몸이 먼지투성이여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를 응시하던 그는 뭔가를 말하려다 도로 삼켰다. 그의 처진 눈에는 많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지진이 시작되면서 바닥이 갈라졌고 제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마침 여기에 서 계셨던 전 대표님과 3명의 일행분들이 모두 아래로 떨어졌어요.”너무 가혹한 말이었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었다.소은정의 얼굴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저 사라진 단면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그곳은 여전히 약간의 흔들림이 남아있었고 많은 사람으로 둘러싸여 있었다.조금 전까지도 그는 멀쩡했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줬었다. 그의 따뜻했던 온기를 아직 느낄 수 있었다.어찌 이럴 수 있는가?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녀는 도무지 어떤 단어로 자신의 기분을 형용해야 할지 몰랐다.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 온몸을 휘감았다. 급기야 공포로 점점 변했다. 작디작은 신경 세포까지도 모조리 마비시키며 그녀를 아프게 했다.그것은 마치 목을 조르며 생명을 위협하는 것 같아 그녀는 숨쉬기조차 어려웠다.재차 확인하려 그곳으로 걸음을 옮긴 그녀를 장욱이 막았다.“안 돼요. 아직 여진이 남아있으니 위험해요.”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된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더 가까이에 가서 상황을 보고 싶었다. 혹시라도 전동하가
“대표님...”“사모님...”“엄마...”자신을 부르는 무수히 많은 소리에 그녀의 귀가 먹먹해졌다.그 소리들은 한 층의 창문을 통해 들리는 것처럼 희미했고 계속해서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소은정은 극심한 고통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그녀는 씩씩하게 이겨내고 싶었다.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전동하가 진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가봐 두려웠다.그가 없는 그녀의 인생은 영원히 생기를 잃게 될 것이다.얼마나 지났을까.주위가 조용해지고 드디어 고요함을 되찾았다.그녀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등산했던 일은 꿈을 꾼 것 같이 자극적이고 스릴넘쳤다.그렇게 많던 사체도, 비명도 없었다. 땅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으며 사방을 뒤덮었던 자욱한 안개도 없었다.......어둠속.의사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훤칠한 키의 한 남자가 창문앞에 서있었다. 그는 어둠으로 드리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여기에서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는 가까이 다가가 그녀 옆에 앉았다. 그는 섬세하게 그녀를 눈에 담았다. 그녀의 하나하나가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미련이 남아 욕심났지만 꾹꾹 참아냈다.그 누가 사랑은 놓아주는 거라고 했는가?그리고 또 어느 누가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다고 했는가?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조금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하며 자신을 마비시켜도 보고 소은정이 위험천만한 그의 곁으로 돌아오면 안 된다고 수시로 되뇌이기도 했다. 그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틈만 나면 그녀가 보고싶었다.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였다.평생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더라도 그녀만 행복하면 된다며 그래야 자신도 편안해 질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끝내 설득을 시켰다.이것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전부이자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그는 그녀를 존중하기로 했다.당당하게 그녀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그는 지금 이 순간에 마음껏 몰
소은정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한 치의 흐트러짐도 찾아볼 수 없었다.얼굴에 조금 남아있는 창백함을 빼면 한 남자 때문에 꿈속에서까지 실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비록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박수혁이지만 이내 꼭꼭 숨겼다.그는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괜찮아?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의사 선생더러 다시 한번 검사 해달라고 해야겠어.”손에 휴대폰을 집어 든 그는 의사를 호출하려 했다.하지만 짜증 섞인 소은정의 말에 제지당했다.“도대체 그 지진은 어떻게 된 거야. 정말 꿈이야? 그럼, 동하 씨는?”그는 왜 나타나지 않는 건가.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슬픔을 굳이 더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고 싶지 않았다.박수혁은 그녀를 바라보다 낮게 대답했다.“꿈 아니야. 우리가 그곳을 지날 때 구조요청을 받았고 도착해 보니 거기에는 네가 쓰러져 있었어. 그리고 여기로 데려왔지. 함께 있던 다른 아이는 너의 두 비서가 데려갔고 새봄은 여기에 남아 너의 곁을 지키도록 했어. 여기는 지진 재해 구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내 건물이야. 병원은 이미 환자로 넘쳐나기도 했고 구조대가 육속 도착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울 것 같아 너희는 여기에 남아야 한다고 내가 주장했어.”그의 말투는 담담했다.울먹이는 그녀의 눈시울이 빨개졌다.“그래서 동하 씨의 생사를 모른다는 거야?”그녀 역시 박수혁이 발 벗고 나서서 전동하를 구할 거라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박수혁은 잠깐 멈칫했다.“그는 이미 죽었어. 살아 있을 확률이 너무 낮아. 너도 알다시피 몇천 미터의 높이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떨어졌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이야.”“안 믿어.”소은정이 입술을 깨물었다.한참 말이 없던 박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미 두 시체 일부분은 찾았어. 심지어 시체라고도 할 수 없어. 4명의 혈액샘플을 찾아 분석하고 DNA 검사 결과 신분이 그들과 일치했어. 관련 부문에서는 불필요한 공황을 초래하게 될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지?’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하인을 바라봤다.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 사실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해요. 이 저택은 지진 방지 기능이 되어 있어 집이 무너진다고 해도 사람이 다치지 않을 거예요. 외부와 연결하려면 아마도 내일이나 더 늦어야 될 겁니다.”그 말에 소은정은 가슴이 서늘해졌다.‘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지만 전동하가 기다려 줄까?’1분1초가 시급한 상황에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만일 전동하가 어디선가 구조해 주길 기다린다면 반드시 구하러 가야 한다.소은정의 안색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주먹을 너무 세게 쥔 탓에 신경마저 팽팽해졌다.‘근데 연락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앉아서 죽길 기다려야 하나?’시선을 들어 박수혁을 바라봤다.“나 좀 도와줘.”“알았어.”박수혁은 가슴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비록 자신이 이득 보는 도움이 아니지만 소은정이 처음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니 거절하지 않았다.“내게 사람 몇 명 붙여줘. 수색 팀을 만들어도 되고 절벽 아래에 내려가서 사람 찾아야겠어.”박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너도 알잖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가망이…”“그래. 알아. 안다고. 근데 믿어지지 않아. 살았든 죽었든 직접 봐야겠어. 그깟 혈액 검사 도움이 안 돼. 만약 근처에서 다치고 피를 흘리고 있다면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눈물이 글썽해서 현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은 가슴 한 구석이 숨막히듯 조여왔다.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었다.“알았어. 내가 사람 불러서 찾으라고 할게.”박수혁은 심호흡을 했다.어쨌든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다.‘죽은 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하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소은정이 입술을 오므렸다.“나도 갈 거야.”“안 돼. 네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어.”“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이가 중요해. 나 꼭 가야겠어.”소은정은 상의할
박수혁이 소은정을 구해줬다고 속박할 자격은 없었다.어둠 속에서 박수혁의 눈빛이 심오하게 굳어지더니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은정, 객관적으로 볼 때 넌 여자로서 체력과 인내심이 저기 사람들보다 많이 떨어져. 만약 여진이라도 와서 사고가 난다면 우린 또 너를 돌봐야겠지. 그렇게 되면 사람을 구조할 시기를 미루게 되잖아.”어둡기도 했고 소은정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어 미처 박수혁의 눈가에 스친 걱정과 긴장을 보지 못했다.소은정이 침묵하면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박수혁이 타협했다고 생각했을 때,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차라리 잘 된 거지. 구하지 마.”박수혁의 심장이 비틀리는 듯이 아파왔다.‘전동하가 그렇게 좋아?’이런 느낌은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더는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 가고 싶다면 가세요. 하지만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아니면 정말 한 눈 팔게 되니까요. 수색대원을 따라가서 구조에 참여해도 되세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큼성큼 걸어갔다.박수혁은 쓸데없이 참견한 사람을 차갑게 노려보았다.그 사람이 눈치를 채고 말소리를 낮췄다.“박 대표님. 저도 여러 상황을 겪어서 압니다. 이렇게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족은 드물어요. 만약 아가씨가 직접 찾지 못하게 막는다면 며칠 밤을 잘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보내세요. 지치면 잠도 잘 오고 나중엔 다 지나간 일이 되겠지요.”박수혁은 목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상대방 손에서 손전등을 앗아오며 말했다.“내가 따라갈 테니까 당신들 할 일이나 하세요.”“알겠습니다. 박 대표님.”박수혁이 바로 뒤를 따랐다.소은정은 앞에 수색대원이 호미를 들고 갈라진 틈에서 흙을 파내는 걸 지켜보았다.왜 파는지 궁금해하자 수색대원이 이렇게 설명했다.“지진이 일어나면 사람이 가끔 틈새로 말려들 때가 있거든요. 지면에서 찾지 못하니 혹시나 옷이라도 있는지 보려는 거예요.”그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