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 속에 소은정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절절한 울음소리와 비명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극도의 두려움에 하얗게 질려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그들이 느끼는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보이지 않는 벽이 그녀를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창백한 얼굴을 한 그녀가 눈앞의 폐허 더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장욱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구조를 도왔던 그는 온몸이 먼지투성이여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를 응시하던 그는 뭔가를 말하려다 도로 삼켰다. 그의 처진 눈에는 많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지진이 시작되면서 바닥이 갈라졌고 제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마침 여기에 서 계셨던 전 대표님과 3명의 일행분들이 모두 아래로 떨어졌어요.”너무 가혹한 말이었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었다.소은정의 얼굴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저 사라진 단면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그곳은 여전히 약간의 흔들림이 남아있었고 많은 사람으로 둘러싸여 있었다.조금 전까지도 그는 멀쩡했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줬었다. 그의 따뜻했던 온기를 아직 느낄 수 있었다.어찌 이럴 수 있는가?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녀는 도무지 어떤 단어로 자신의 기분을 형용해야 할지 몰랐다.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 온몸을 휘감았다. 급기야 공포로 점점 변했다. 작디작은 신경 세포까지도 모조리 마비시키며 그녀를 아프게 했다.그것은 마치 목을 조르며 생명을 위협하는 것 같아 그녀는 숨쉬기조차 어려웠다.재차 확인하려 그곳으로 걸음을 옮긴 그녀를 장욱이 막았다.“안 돼요. 아직 여진이 남아있으니 위험해요.”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된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더 가까이에 가서 상황을 보고 싶었다. 혹시라도 전동하가
“대표님...”“사모님...”“엄마...”자신을 부르는 무수히 많은 소리에 그녀의 귀가 먹먹해졌다.그 소리들은 한 층의 창문을 통해 들리는 것처럼 희미했고 계속해서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소은정은 극심한 고통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그녀는 씩씩하게 이겨내고 싶었다.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전동하가 진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가봐 두려웠다.그가 없는 그녀의 인생은 영원히 생기를 잃게 될 것이다.얼마나 지났을까.주위가 조용해지고 드디어 고요함을 되찾았다.그녀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등산했던 일은 꿈을 꾼 것 같이 자극적이고 스릴넘쳤다.그렇게 많던 사체도, 비명도 없었다. 땅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으며 사방을 뒤덮었던 자욱한 안개도 없었다.......어둠속.의사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훤칠한 키의 한 남자가 창문앞에 서있었다. 그는 어둠으로 드리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여기에서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는 가까이 다가가 그녀 옆에 앉았다. 그는 섬세하게 그녀를 눈에 담았다. 그녀의 하나하나가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미련이 남아 욕심났지만 꾹꾹 참아냈다.그 누가 사랑은 놓아주는 거라고 했는가?그리고 또 어느 누가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다고 했는가?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조금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하며 자신을 마비시켜도 보고 소은정이 위험천만한 그의 곁으로 돌아오면 안 된다고 수시로 되뇌이기도 했다. 그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틈만 나면 그녀가 보고싶었다.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였다.평생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더라도 그녀만 행복하면 된다며 그래야 자신도 편안해 질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끝내 설득을 시켰다.이것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전부이자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그는 그녀를 존중하기로 했다.당당하게 그녀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그는 지금 이 순간에 마음껏 몰
소은정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한 치의 흐트러짐도 찾아볼 수 없었다.얼굴에 조금 남아있는 창백함을 빼면 한 남자 때문에 꿈속에서까지 실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비록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박수혁이지만 이내 꼭꼭 숨겼다.그는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괜찮아?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의사 선생더러 다시 한번 검사 해달라고 해야겠어.”손에 휴대폰을 집어 든 그는 의사를 호출하려 했다.하지만 짜증 섞인 소은정의 말에 제지당했다.“도대체 그 지진은 어떻게 된 거야. 정말 꿈이야? 그럼, 동하 씨는?”그는 왜 나타나지 않는 건가.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슬픔을 굳이 더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고 싶지 않았다.박수혁은 그녀를 바라보다 낮게 대답했다.“꿈 아니야. 우리가 그곳을 지날 때 구조요청을 받았고 도착해 보니 거기에는 네가 쓰러져 있었어. 그리고 여기로 데려왔지. 함께 있던 다른 아이는 너의 두 비서가 데려갔고 새봄은 여기에 남아 너의 곁을 지키도록 했어. 여기는 지진 재해 구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내 건물이야. 병원은 이미 환자로 넘쳐나기도 했고 구조대가 육속 도착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울 것 같아 너희는 여기에 남아야 한다고 내가 주장했어.”그의 말투는 담담했다.울먹이는 그녀의 눈시울이 빨개졌다.“그래서 동하 씨의 생사를 모른다는 거야?”그녀 역시 박수혁이 발 벗고 나서서 전동하를 구할 거라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박수혁은 잠깐 멈칫했다.“그는 이미 죽었어. 살아 있을 확률이 너무 낮아. 너도 알다시피 몇천 미터의 높이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떨어졌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이야.”“안 믿어.”소은정이 입술을 깨물었다.한참 말이 없던 박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미 두 시체 일부분은 찾았어. 심지어 시체라고도 할 수 없어. 4명의 혈액샘플을 찾아 분석하고 DNA 검사 결과 신분이 그들과 일치했어. 관련 부문에서는 불필요한 공황을 초래하게 될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지?’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하인을 바라봤다.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 사실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해요. 이 저택은 지진 방지 기능이 되어 있어 집이 무너진다고 해도 사람이 다치지 않을 거예요. 외부와 연결하려면 아마도 내일이나 더 늦어야 될 겁니다.”그 말에 소은정은 가슴이 서늘해졌다.‘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지만 전동하가 기다려 줄까?’1분1초가 시급한 상황에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만일 전동하가 어디선가 구조해 주길 기다린다면 반드시 구하러 가야 한다.소은정의 안색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주먹을 너무 세게 쥔 탓에 신경마저 팽팽해졌다.‘근데 연락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앉아서 죽길 기다려야 하나?’시선을 들어 박수혁을 바라봤다.“나 좀 도와줘.”“알았어.”박수혁은 가슴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비록 자신이 이득 보는 도움이 아니지만 소은정이 처음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니 거절하지 않았다.“내게 사람 몇 명 붙여줘. 수색 팀을 만들어도 되고 절벽 아래에 내려가서 사람 찾아야겠어.”박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너도 알잖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가망이…”“그래. 알아. 안다고. 근데 믿어지지 않아. 살았든 죽었든 직접 봐야겠어. 그깟 혈액 검사 도움이 안 돼. 만약 근처에서 다치고 피를 흘리고 있다면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눈물이 글썽해서 현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은 가슴 한 구석이 숨막히듯 조여왔다.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었다.“알았어. 내가 사람 불러서 찾으라고 할게.”박수혁은 심호흡을 했다.어쨌든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다.‘죽은 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하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소은정이 입술을 오므렸다.“나도 갈 거야.”“안 돼. 네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어.”“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이가 중요해. 나 꼭 가야겠어.”소은정은 상의할
박수혁이 소은정을 구해줬다고 속박할 자격은 없었다.어둠 속에서 박수혁의 눈빛이 심오하게 굳어지더니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은정, 객관적으로 볼 때 넌 여자로서 체력과 인내심이 저기 사람들보다 많이 떨어져. 만약 여진이라도 와서 사고가 난다면 우린 또 너를 돌봐야겠지. 그렇게 되면 사람을 구조할 시기를 미루게 되잖아.”어둡기도 했고 소은정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어 미처 박수혁의 눈가에 스친 걱정과 긴장을 보지 못했다.소은정이 침묵하면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박수혁이 타협했다고 생각했을 때,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차라리 잘 된 거지. 구하지 마.”박수혁의 심장이 비틀리는 듯이 아파왔다.‘전동하가 그렇게 좋아?’이런 느낌은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더는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 가고 싶다면 가세요. 하지만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아니면 정말 한 눈 팔게 되니까요. 수색대원을 따라가서 구조에 참여해도 되세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큼성큼 걸어갔다.박수혁은 쓸데없이 참견한 사람을 차갑게 노려보았다.그 사람이 눈치를 채고 말소리를 낮췄다.“박 대표님. 저도 여러 상황을 겪어서 압니다. 이렇게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족은 드물어요. 만약 아가씨가 직접 찾지 못하게 막는다면 며칠 밤을 잘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보내세요. 지치면 잠도 잘 오고 나중엔 다 지나간 일이 되겠지요.”박수혁은 목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상대방 손에서 손전등을 앗아오며 말했다.“내가 따라갈 테니까 당신들 할 일이나 하세요.”“알겠습니다. 박 대표님.”박수혁이 바로 뒤를 따랐다.소은정은 앞에 수색대원이 호미를 들고 갈라진 틈에서 흙을 파내는 걸 지켜보았다.왜 파는지 궁금해하자 수색대원이 이렇게 설명했다.“지진이 일어나면 사람이 가끔 틈새로 말려들 때가 있거든요. 지면에서 찾지 못하니 혹시나 옷이라도 있는지 보려는 거예요.”그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이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것처럼 양측으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는 마치 노련한 장인이 깎아 만든 것처럼 험준했다.이렇게 가파른 곳에서 떨어졌다면 즉사할 수밖에 없었다.소은정은 순간 가슴이 콱 하고 막혔다.어슴푸레한 달빛에 조각조각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보던 그녀는 가슴이 미어져 말이 나오지 않았다.당장 울음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녀를 위로해 줄 사람이 곁에 없었다.그때.그녀의 어깨 위로 외투가 걸쳐졌다.살짝 고개를 돌리니 박수혁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가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감기 걸리니까 입어.”소은정이 옷을 벗어 그에게 건넸다.“괜찮아. 안 추워.”말을 마친 그녀가 왔던 방향으로 돌아갔다.그녀는 그가 있을 법한 위치를 어림잡아보았다. 위에서 떨어졌으니 물에 빠졌을 가능성이 희박했다. 두 곳 사이는 꽤나 멀었으니까.혹시 그녀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 거라면?“소은정, 그렇게나 내가 미워? 내 사람도 싫고, 하다못해 이젠 내 옷까지 싫어? 만약 오늘 지진이 나지 않았다면, 아마 넌 이렇게 된 것도 내가 설계한 거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그 자식을 증오하다 못해 죽어버렸으면 하니까.”그녀는 박수혁의 말투에서 그가 충분히 참고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소은정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당신 자유지만, 그걸 나한테 덮어 씌우지 마.”“그 말은 내가 억측이라도 했다는 거야?”박수혁의 말에서 그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박 대표님, 나 당신과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아. 이런 쓸모없는 말다툼으로 시간 낭비하고 싶은 마음 없어.”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미 살짝 짜증이 나 있었다.박수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쓸모없다.그녀는 자신과 나눈 모든 말이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제 그녀는 전동하한테서 의미를 찾았다.그는 이미 그녀를 잡기 위한 수많은 기회를 놓져버렸다.이제 그 기회들을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소은정은 울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녀는 오직 그가 수색대를 철수시키고 더 이상 전동하를 찾지 않는다는 것만 인식했다.그는 전동하가 죽기만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독기를 품은 그녀가 히스테릭하게 소리 질렀다.“도와줘? 날 지옥에 처넣는 게, 그게 당신이 가장 잘 하는 수법이잖아? 박수혁 당신은 지난 몇 년 동안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 당신은 그냥 어떻게든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거야!”박수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는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던 그녀가 이제 곧 무너져내리려 하고 있었다.지금은 그녀와 도리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그가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달래듯이 말했다.“그래. 네 말이 다 맞아.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나랑 돌아가. 여기 사람들은 철수 시키지 않아. 날이 밝으면 계속 찾을 거야.”“안 믿어. 거짓말하지 마. 내가 어떻게 당신 말을 믿어!”소은정은 당연히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어떻게든 이곳에 남아있어야 했다. 이곳에 있어야만 전동하를 구하러 나설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다치려 하자 그녀가 그를 밀쳐내며 피했다.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도망치려는 여자의 발을 걸었다.소은정은 그의 손만 피하려고 했지, 그가 이런 얕은수를 쓸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순간 방심한 그녀가 넘어지려고 했다.박수혁이 곧바로 그녀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러더니 강제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싸늘한 말투로 기사한테 지시를 내렸다.“운전해.”그녀가 원하는 대로 밤새 휘둘려줬으면 충분했다.소은정이 발버둥 치며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내릴 거야. 당장 여기서 내릴 거라고. 당신 도움 필요 없어. 당신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위선자일 뿐이야!”그때, 박수혁이 어디에선가 주사기를 꺼내더니 그녀의 팔에 꽂
이한석의 소리가 너무 낮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박수혁도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라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그가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말에 대답했다.“이해해 줄 거야.”이한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도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자친구와 금방 사귀었을 때에는 온갖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실수를 거듭하고 나서야 지금의 그가 있게 되었다.하지만 박수혁은 그의 특수한 신분 때문에, 모든 여자들이 그에게 큰소리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때문에 그는 남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에 대해 몰랐다.경험이 너무 적었다.“참, 태한 그룹 명의로 물품과 돈을 기부해. 액수는 네가 알아서 정하고. 난 잠시 동안은 소은정 곁에 머물 거야. 이런 때에 내가 없어서는 안 되지.”이한석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그는 이럴 때 아무리 박수혁을 말려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알겠어요. 그럼 20억으로 하죠. 저희 회사에서 매년 지불하는 자선기금으로 내겠습니다. 참, 소은정 씨 혼자 그곳에 남은 겁니까? SC 그룹에서는 아무도 안 갔나요?”박수혁이 미간을 문질렀다.“길을 통제해서 오늘은 못 들어올 거야. 아마 내일이며 비슷할 것 같아.”이한석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몸조심하시고, 원하시는 일 이루시길 바랍니다.”소 씨 가문 사람이 갔다면 박 대표가 소은정 씨 곁에 시시각각 붙어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격이 생겨야만 생기는 정도 있는 법이다.다만 박수혁은 그 도리를 절대 모르겠지만.전화를 끊은 뒤, 박수혁은 기분이 좀 나아진 것을 느꼈다.그가 서랍을 열고 새 휴대폰을 꺼냈다.술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들이켠 그가 새 휴대폰을 들고 소은정의 방으로 향했다.가사도우미가 다가가 문을 열었다.“대표님, 소은정 씨 옷은 다 갈아입혔어요. 깊게 잠드셨는지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으셨어요.”박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켜섰다.“가서 쉬세요. 아침에 그녀가 몸보신할 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