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의 얼굴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알겠습니다. 주소는……”그의 말이 끝나자 소찬식이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소은호가 감탄하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엄지가 척 내밀어졌다.소찬식의 표정이 어두웠다.“너는 여기서 셋째와 구조를 돕거라. 내가 네 동생을 데리러 갈 테니까. 이따가 바로 호텔에서 만나면 되겠어.”소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뭔가 떠올랐는지 그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아버지, 제 기억에 여기 우리 별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거기로 갈까요?”소찬식이 고개를 저었다.“일단은 호텔로 가. 네 동생이 깨나는 대로 다시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소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차 문을 열며 기사에게 당부했다.“운전 조심히 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소찬식이 한숨을 내쉬고 차 문을 닫았다.“됐다. 가서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아보거라.”소은호는 소찬식이 가는 모습을 배웅한 후에야 소은해를 보러 갔다.인파 속에서 유달리 돋보이던 귀공자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지진이 난 후, 작게 비까지 내린 상황이었다.바닥은 빗물과 흙으로 이미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구조를 돕다 여러 번 넘어진 그는 이미 온몸에 흙투성이였다.수백, 수천을 호가하는 값비싼 명품들은 이미 본 모습을 잃은지 오랬다.그래도 소은해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통통해 보이는 남자와 함께 다리가 다친 환자를 들것에 싣고 구호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그의 뒷모습이 불쌍해 보이긴 했지만 그만큼 용감해 보였다.그 순간은 아무도 그가 우주 대스타 소은해인 줄 몰랐다.하지만 소은호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동생이 어쩌다 선행을 베푸는 모습이 기뻤다.그가 휴대폰을 꺼내 동생의 초라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모습을 인쇄해 나중에 소은호 생일에 그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그럼 그가 앞으로 더 많은 선행을 할지도 몰랐다.날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
소찬식이 소은정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의사를 불렀다.다행히 호텔의 대주주가 SC 그룹이었기에 호텔 전문 닥터가 있었다.의사가 간단하게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그녀의 안색이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그래도 보험용으로 피를 뽑아 검사해 보기로 했다.“회장님,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확실히 아가씨는 깊은 잠에 빠지신 게 맞습니다. 아마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깊은 수면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수면은 몸에 해로운 게 아니기에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두시는 게 좋습니다. 일단 저는 돌아가서 피 검사를 마저 해보겠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소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엄숙한 표정으로 의사를 배웅했다.그는 딸이 걱정되는 한편, 또 그녀의 수면을 방해할까 봐 스위트룸에 딸린 옆방으로 가서 소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연한 하늘빛이 짙은 어둠을 천천히 몰아내고 있었다.어느새 태양도 슬금슬금 기어올라 부드럽게 구름층을 뚫고 대지를 비추었다.뉴스에는 이미 온통 지진에 관한 소식뿐이었다.지금껏 확인된 사망 인수는 16명이었다. 현장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황폐하고 처참했다.수많은 구조대와 의료 종사자, 그리고 자원봉사자까지 모여, 일선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소찬식은 소리 없이 방영되고 있는 뉴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화면에 소은해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화면 속 남자가 정말로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는 데다 결벽증까지 있는 자기 아들이 맞단 말인가?남자는 온몸에 흙투성이인 아이를 업고 구급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의 몸과 얼굴에 온통 흙으로 범벅되어 있었다.하지만 그 순간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소은해의 등에 업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아이는 은해의 목을 끌어안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바로 그 장면을 포착한 기자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영상에 편집해 넣은 것이다.비록 꾀죄죄한 몰골에 머리도 산발이고
소은정은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당장 사람을 찾아 나섰다.그녀는 몇 걸음을 걷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미간을 찌푸렸다. 다행히 몸이 무거운 것 외에 다른 불편한 점은 없었다.이 정도면 박수혁도 그녀한테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문을 나서자 소찬식이 새봄이를 데리고 노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아빠?”소찬식은 고개를 쳐들었다.그는 소은정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드디어 깨어났네, 어디 불편한데 없어?”소은정은 머리를 만져 보았다. “없어요, 저 얼마나 잤어요?”소찬식은 입술을 오므렸다. 이런 상황에 사달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얼마 안 돼, 제 시간에 깨났어, 너무 피곤하고 정서도 불안정해서 깊은 잠을 잔다고 의사 선생님이 얘기해 주셨어”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빠, 여긴 어쩐 일이야, 여기는......”“호텔이야, 첫째, 셋째도 같이 왔어, 박수혁이한테서 너를 데려왔으니 인젠 걱정하지마, 우리가 너의 곁을 지켜줄거야”소은정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동하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새봄이가 눈치 챌가봐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 참았다.바로 눈물을 닦았다.“아빠, 일이 있어서 바로 지진 현장에 다녀와야 해요”소찬식은 그녀의 넋이 나간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근데 뭐 좀 먹고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 못 버텨, 새봄이도 엄마 걱정할거야”소은정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그녀는 손짓 했다.새봄이는 깡충깡충 뛰어갔다.새봄이는 소은정의 불안한 정서를 대뜸 알아차리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소은정을 쳐다보았다.“엄마, 잠에서 깼어?”방금 전까지 그녀는 아무리 불러도 깨나지 못했다.소찬식은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잠을 많이 자야 깨여난다고 타일렀다. 새봄이는 꾹 참고 있다가 엄마가 잠에서 깨어난 모습을 보고
소은정은 어두운 표정으로 노란 파도가 언덕에 부딪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평하고 우뚝 솟은 협곡은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했다.머릿속에 갑자기 한 그림자가 강물에 추락하는 장면이 떠올라 이를 꽉 물었다.‘참 잔인한 사람이야. 한 마디도 없이 가 버리면 난 어떡하라고.’먼 발치에서 소은호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언제든 그녀를 데려갈 준비가 되었다.정말 여동생이 강물에 뛰어내릴까 봐 마음이 초조했다.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날이 점점 어두워졌다.박수혁이 떠나기 전에 소은정을 걱정했었다.소은호가 그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박 대표님, 안심하고 가세요. 제 동생은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소은호는 더는 참지 못했다.“넷째야. 큰오빠는 너를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모르겠다. 찾지 못해도 괜찮다. 며칠이 지나면 돌아올 지도 모르잖아.”그 말에 소은정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큰오빠, 그 사람은 이제 돌아오지 않아. 내가 이틀이나 찾아다녔어. 죽은 게 틀림없어.”전동하가 죽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소은정은 그래도 기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기적은 그녀의 간절함을 헤아려 주지 않았다.소은호는 가슴이 아려 왔다.저도 모르게 소은정의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였다.“알아. 그래도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잖아. 아버지가 너 때문에 한잠도 주무시지 못했어. 그리고 새봄이도 있어. 그가 돌아오지 않아도 그를 위해서라도 새봄이를 더 사랑해주고 보살펴야 해. 전동하의 딸에게 이제 사랑을 못 받는다는 걸 알게 해서는 안 돼.”소은호는 감정이 벅차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큰오빠. 나 여기 서 있으면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어. 그런데 아무리 스스로 설득해도 새봄에게 이젠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소은호는 그 심정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가 여기서라도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내버려두었다.오직 이 곳에서만 슬픔 감정을 토로할 수 있으니까.시간이 일
김하늘은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갔다. 오후에 소은정과 함께 있으려고 미리 일을 처리할 계획이었다.소찬식은 아직도 자고 있는 소은해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그저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잠시 후, 소은해가 두 눈을 비비며 내려왔다.“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내 아침밥은 남겼어요?”소찬식이 입꼬리를 실룩거렸다.“넌 어쩌면 먹는 것밖에 모르냐? 먹는 거 외에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니?”그 말에 소은해는 울상을 지었다.지진 대피 구역에서 며칠이나 바삐 돌아 치는 바람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소은정 때문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고택에 돌아와 잠을 보충한 것뿐인데 늦잠 좀 잤다고 잔소리까지 들어야 하다니.어처구니없어서 한숨이 나왔다.“아버지. 소한테 일을 시키면서 밥도 안 먹여요?”옆에 있던 집사가 그 소리에 웃으면서 다가왔다.“셋째 도련님, 아침 식사를 남겨두었어요. 주방에 있습니다.”그제야 소은해가 웃었다.“그럴 줄 알았어요. 내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날 굶겨 죽일 리가 없죠.”소찬식이 째려봤다.“네 큰형은 아침 댓바람부터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형수를 회사에 데려다 줬다. 너는 뭐니? 네 와이프가 언제 집을 나섰는지도 모르고 퍼져서 자기만 하고. 그런 말이 나오냐?”소은해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아버지, 저도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촬영한 거잖아요? 아침 일찍 나가고 밤 늦게 들어오는 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에요. 얼굴로 먹고사는 내가 큰형과 어떻게 같아요?”소찬식은 한심한 눈빛으로 째려봤다. 게을러 터져도 이토록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소은해밖에 없을 것이다.집사가 껄껄 웃으면서 소은해가 먹을 아침 밥을 들고 왔다.“좀 더 자도 괜찮아요. 아직 점잖습니까.”소찬식은 더는 혼내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스케쥴 다 빼고 나 대신 일 좀 해라.”소은해가 먹으면서 고개를 끄떡였다.“좋아요. 무슨 일이든 할게요.”“은정이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나
장욱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 몹시 후회됐다.자신이 우러러 바라보던 남자가 세상을 떠나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소은정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것에 안타까웠다.소은정이 왜 이 프로젝트를 다시 언급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모두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다시 재건축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소은정이 잠시 머뭇거리다 차갑게 말했다.“장 대표, 관련 부서도 재해 복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어요. 그들도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되지 않을까요?”“하지만 전동하가 그곳에서…”소은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소 대표님. 재건축할 필요 있을까요?”소은정이 입술을 오므렸다.“맞아요. 당신 말이 틀리지 않았어요. 전동하가 거기 있기 때문이에요.”솔직히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공간이 필요했다.앞으로 그곳을 언급할 때 바로 낯 색이 변하고 뒷걸음을 치면서 전동하 혼자 그 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 소은정은 그곳을 고급 리조트 호텔로 건축해 놓고 그 사람을 자주 보러 가려고 했다.장욱이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표님이 투자하시고 저는 건의만 제기할게요.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저도 같이 의식에 참여하겠습니다.”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장욱이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소은정이 인상을 풀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비서가 연락할 거예요. 서둘러 공사를 진행하세요.”“알겠습니다.”소은정은 장욱을 배웅하고 나서야 소은해를 돌아봤다.소은해는 맞은편에 선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방금 자신이 장욱과 얘기하던 표정과 다르게 평온했다.그때 소은해가 손짓을 하며 불렀다.“넷째야. 이리 와.”소은해가 주인 노릇하는 행동에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다.소은정이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소은해가 웃으면서 말했다.“이분은 해외에서 돌아온 유명한 심리학자야. 나라에서 재
”소 대표님, 점심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제가 밖에서 포장해서 올까요 아니면 직원식당에 가시겠어요?”소은정이 머뭇거렸다. 이미 뉴스에 보도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기 싫었다.그렇다고 혼자 밥을 먹자니 어딘가 불편했다.망설이는 사이에 김하늘이 레스토랑 위치를 메시지로 보냈다. “얼른 여기로 와. 나랑 같이 밥 먹자.”소은정이 웃으면서 휴대폰을 챙겼다.“됐어요. 약속 있어요.”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조금은 안심했다. 소은정은 혼자 있길 좋아했다. 하지만 전동하가 떠난 이후 집이든 사무실이든 고택이든 혼자 있는 걸 너무나 싫어했다. 소은정은 가끔 회사 아래에 내려가면 한 남자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다가올 것만 같았다. 그녀가 퇴근하길 기다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고 쇼핑하면서 옷을 사주거나 재료를 주러 오는 등 일상 생활에 사소한 부분이라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느덧 전동하라는 사람은 소은정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해버린 것이다.그런데 예고도 없이 자신의 삶에서 그의 존재를 도려내야 한다니 살을 에는 듯이 고통스러웠다.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주변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위로하지만 전혀 그럴 수 없었다.이미 그가 있는 삶에 익숙해졌는데 어떻게 그가 없는 삶에 적응하란 말인가?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이렇게 잊어버린다면 너무 잔인하잖아?소은정이 조용히 떠났다. 소찬식은 컨디션이 안 좋은 소은정에게 기사 최성문를 붙였다. 어디를 가든 꼭 붙어서 안전하게 모시라고 당부했다.소은정은 거절하기도 귀찮아 그저 안배하는 대로 따랐다.김하늘이 레스토랑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소은정이 테이블에 다가갔더니 테이블에 수저 세트 3개가 놓여있었다.“또 누가 와?”김하늘이 얼버무렸다.“이 레스토랑이 개업해서부터 유라가 오고 싶어 했거든. 그래서 수저만 얹어 놓았어.”소은정이 자리에 앉아 잠시 침묵했다.“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고나서 이제 볼 수
소은정은 선생님의 태도를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선생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교실의 문을 열며 말했다.“새봄아, 엄마가 데리러 왔어.”새봄이가 고개를 돌렸다. 작은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재빨리 달려와 엄마에게 안기는 새봄이었다.“엄마!”소은정은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녹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이 사랑스러운 딸에게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소은정이 새봄이를 품에 안자 새봄이가 엄마에게 입을 맞추고는 목을 끌어안으며 칭얼거렸다.“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소은정은 마음 한편이 찌릿해났다. 그동안 딸에게 신경을 못써준 것이 너무 미안했다. 어린아이들은 변화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아마 엄마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차가워졌다는 걸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봄이는 전혀 원망하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녀는 새봄이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자신이 전동하를 대신해 두배로 사랑을 줄 것이라고 다짐했다.“딸, 오늘 너무 속상했지? 엄마도 할아버지도 다 옆에 없고 혼자 낯선 환경에서 얼마나 힘들었어. 앞으로는 엄마랑 잘 지내보자.”회사에 데리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이 헛기침을 하더니 새봄이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지혁이랑 다른 친구들이 선생님 사무실에 있는데 새봄이 먼저 오빠들이랑 놀고 있을래?”새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소은정의 품에서 벗어나 옆방으로 갔다. 소은정은 몹시 아쉬웠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마침 잘 오셨어요. 할 말이 있었거든요.”“말씀하세요 선생님.”“오늘 새봄이가 친구를 여섯 명이나 때려서 울렸어요... 그중 다섯 명은 지혁이가 잘 달래서 새봄이를 용서해 줬는데 한 친구가 유독 심하게 맞아서 어쩔 수 없이 학부모님께 알려드렸거든요...”소은정은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은 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걸까? 여섯 명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