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어두운 표정으로 노란 파도가 언덕에 부딪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평하고 우뚝 솟은 협곡은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했다.머릿속에 갑자기 한 그림자가 강물에 추락하는 장면이 떠올라 이를 꽉 물었다.‘참 잔인한 사람이야. 한 마디도 없이 가 버리면 난 어떡하라고.’먼 발치에서 소은호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언제든 그녀를 데려갈 준비가 되었다.정말 여동생이 강물에 뛰어내릴까 봐 마음이 초조했다.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날이 점점 어두워졌다.박수혁이 떠나기 전에 소은정을 걱정했었다.소은호가 그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박 대표님, 안심하고 가세요. 제 동생은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소은호는 더는 참지 못했다.“넷째야. 큰오빠는 너를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모르겠다. 찾지 못해도 괜찮다. 며칠이 지나면 돌아올 지도 모르잖아.”그 말에 소은정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큰오빠, 그 사람은 이제 돌아오지 않아. 내가 이틀이나 찾아다녔어. 죽은 게 틀림없어.”전동하가 죽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소은정은 그래도 기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기적은 그녀의 간절함을 헤아려 주지 않았다.소은호는 가슴이 아려 왔다.저도 모르게 소은정의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였다.“알아. 그래도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잖아. 아버지가 너 때문에 한잠도 주무시지 못했어. 그리고 새봄이도 있어. 그가 돌아오지 않아도 그를 위해서라도 새봄이를 더 사랑해주고 보살펴야 해. 전동하의 딸에게 이제 사랑을 못 받는다는 걸 알게 해서는 안 돼.”소은호는 감정이 벅차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큰오빠. 나 여기 서 있으면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어. 그런데 아무리 스스로 설득해도 새봄에게 이젠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소은호는 그 심정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가 여기서라도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내버려두었다.오직 이 곳에서만 슬픔 감정을 토로할 수 있으니까.시간이 일
김하늘은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갔다. 오후에 소은정과 함께 있으려고 미리 일을 처리할 계획이었다.소찬식은 아직도 자고 있는 소은해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그저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잠시 후, 소은해가 두 눈을 비비며 내려왔다.“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내 아침밥은 남겼어요?”소찬식이 입꼬리를 실룩거렸다.“넌 어쩌면 먹는 것밖에 모르냐? 먹는 거 외에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니?”그 말에 소은해는 울상을 지었다.지진 대피 구역에서 며칠이나 바삐 돌아 치는 바람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소은정 때문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고택에 돌아와 잠을 보충한 것뿐인데 늦잠 좀 잤다고 잔소리까지 들어야 하다니.어처구니없어서 한숨이 나왔다.“아버지. 소한테 일을 시키면서 밥도 안 먹여요?”옆에 있던 집사가 그 소리에 웃으면서 다가왔다.“셋째 도련님, 아침 식사를 남겨두었어요. 주방에 있습니다.”그제야 소은해가 웃었다.“그럴 줄 알았어요. 내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날 굶겨 죽일 리가 없죠.”소찬식이 째려봤다.“네 큰형은 아침 댓바람부터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형수를 회사에 데려다 줬다. 너는 뭐니? 네 와이프가 언제 집을 나섰는지도 모르고 퍼져서 자기만 하고. 그런 말이 나오냐?”소은해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아버지, 저도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촬영한 거잖아요? 아침 일찍 나가고 밤 늦게 들어오는 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에요. 얼굴로 먹고사는 내가 큰형과 어떻게 같아요?”소찬식은 한심한 눈빛으로 째려봤다. 게을러 터져도 이토록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소은해밖에 없을 것이다.집사가 껄껄 웃으면서 소은해가 먹을 아침 밥을 들고 왔다.“좀 더 자도 괜찮아요. 아직 점잖습니까.”소찬식은 더는 혼내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스케쥴 다 빼고 나 대신 일 좀 해라.”소은해가 먹으면서 고개를 끄떡였다.“좋아요. 무슨 일이든 할게요.”“은정이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나
장욱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 몹시 후회됐다.자신이 우러러 바라보던 남자가 세상을 떠나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소은정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것에 안타까웠다.소은정이 왜 이 프로젝트를 다시 언급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모두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다시 재건축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소은정이 잠시 머뭇거리다 차갑게 말했다.“장 대표, 관련 부서도 재해 복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어요. 그들도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되지 않을까요?”“하지만 전동하가 그곳에서…”소은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소 대표님. 재건축할 필요 있을까요?”소은정이 입술을 오므렸다.“맞아요. 당신 말이 틀리지 않았어요. 전동하가 거기 있기 때문이에요.”솔직히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공간이 필요했다.앞으로 그곳을 언급할 때 바로 낯 색이 변하고 뒷걸음을 치면서 전동하 혼자 그 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 소은정은 그곳을 고급 리조트 호텔로 건축해 놓고 그 사람을 자주 보러 가려고 했다.장욱이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표님이 투자하시고 저는 건의만 제기할게요.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저도 같이 의식에 참여하겠습니다.”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장욱이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소은정이 인상을 풀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비서가 연락할 거예요. 서둘러 공사를 진행하세요.”“알겠습니다.”소은정은 장욱을 배웅하고 나서야 소은해를 돌아봤다.소은해는 맞은편에 선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방금 자신이 장욱과 얘기하던 표정과 다르게 평온했다.그때 소은해가 손짓을 하며 불렀다.“넷째야. 이리 와.”소은해가 주인 노릇하는 행동에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다.소은정이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소은해가 웃으면서 말했다.“이분은 해외에서 돌아온 유명한 심리학자야. 나라에서 재
”소 대표님, 점심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제가 밖에서 포장해서 올까요 아니면 직원식당에 가시겠어요?”소은정이 머뭇거렸다. 이미 뉴스에 보도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기 싫었다.그렇다고 혼자 밥을 먹자니 어딘가 불편했다.망설이는 사이에 김하늘이 레스토랑 위치를 메시지로 보냈다. “얼른 여기로 와. 나랑 같이 밥 먹자.”소은정이 웃으면서 휴대폰을 챙겼다.“됐어요. 약속 있어요.”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조금은 안심했다. 소은정은 혼자 있길 좋아했다. 하지만 전동하가 떠난 이후 집이든 사무실이든 고택이든 혼자 있는 걸 너무나 싫어했다. 소은정은 가끔 회사 아래에 내려가면 한 남자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다가올 것만 같았다. 그녀가 퇴근하길 기다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고 쇼핑하면서 옷을 사주거나 재료를 주러 오는 등 일상 생활에 사소한 부분이라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느덧 전동하라는 사람은 소은정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해버린 것이다.그런데 예고도 없이 자신의 삶에서 그의 존재를 도려내야 한다니 살을 에는 듯이 고통스러웠다.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주변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위로하지만 전혀 그럴 수 없었다.이미 그가 있는 삶에 익숙해졌는데 어떻게 그가 없는 삶에 적응하란 말인가?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이렇게 잊어버린다면 너무 잔인하잖아?소은정이 조용히 떠났다. 소찬식은 컨디션이 안 좋은 소은정에게 기사 최성문를 붙였다. 어디를 가든 꼭 붙어서 안전하게 모시라고 당부했다.소은정은 거절하기도 귀찮아 그저 안배하는 대로 따랐다.김하늘이 레스토랑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소은정이 테이블에 다가갔더니 테이블에 수저 세트 3개가 놓여있었다.“또 누가 와?”김하늘이 얼버무렸다.“이 레스토랑이 개업해서부터 유라가 오고 싶어 했거든. 그래서 수저만 얹어 놓았어.”소은정이 자리에 앉아 잠시 침묵했다.“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고나서 이제 볼 수
소은정은 선생님의 태도를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선생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교실의 문을 열며 말했다.“새봄아, 엄마가 데리러 왔어.”새봄이가 고개를 돌렸다. 작은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재빨리 달려와 엄마에게 안기는 새봄이었다.“엄마!”소은정은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녹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이 사랑스러운 딸에게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소은정이 새봄이를 품에 안자 새봄이가 엄마에게 입을 맞추고는 목을 끌어안으며 칭얼거렸다.“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소은정은 마음 한편이 찌릿해났다. 그동안 딸에게 신경을 못써준 것이 너무 미안했다. 어린아이들은 변화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아마 엄마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차가워졌다는 걸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봄이는 전혀 원망하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녀는 새봄이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자신이 전동하를 대신해 두배로 사랑을 줄 것이라고 다짐했다.“딸, 오늘 너무 속상했지? 엄마도 할아버지도 다 옆에 없고 혼자 낯선 환경에서 얼마나 힘들었어. 앞으로는 엄마랑 잘 지내보자.”회사에 데리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이 헛기침을 하더니 새봄이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지혁이랑 다른 친구들이 선생님 사무실에 있는데 새봄이 먼저 오빠들이랑 놀고 있을래?”새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소은정의 품에서 벗어나 옆방으로 갔다. 소은정은 몹시 아쉬웠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마침 잘 오셨어요. 할 말이 있었거든요.”“말씀하세요 선생님.”“오늘 새봄이가 친구를 여섯 명이나 때려서 울렸어요... 그중 다섯 명은 지혁이가 잘 달래서 새봄이를 용서해 줬는데 한 친구가 유독 심하게 맞아서 어쩔 수 없이 학부모님께 알려드렸거든요...”소은정은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은 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걸까? 여섯 명을 때
소은정은 새봄이를 한번 노려보고는 문준서를 향해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너도 이리 와, 도련님한테 사과해.” 새봄이가 사과를 할리가 없었다. “난 사과 안 해, 잘못한 거 없어, 날 괴롭힌 사람을 도와줬으니까 내 원수야!” 문준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사과 안 해! 새봄이를 괴롭혔으니 날 괴롭힌 거나 마찬가지야.”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이미 두 아이를 한참 설득한 후였기 때문이었다. “새봄이, 너...” 준서는 새봄이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새봄이만 설득하면 됐다. 근데 그때 새봄이가 바닥에 앉더니 울며 소은정의 다리에 매달렸다. “사과 안 해, 아빠 보고 혼내 달라고 할 거야! 쟤 잘못이야, 아빠가 나 지켜준댔어!” 소은정이 움찔했다. 약점이 찔려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박시준도 이쪽으로 다가와 새봄이의 손을 잡아주려 했지만 문준서에게 밀려나갔다. “사과하기 싫다면 됐어요, 제 잘못이에요.” 박시준이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새봄이의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이 일을 계기로 새봄이와 친구가 되진 않을까 기대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일이 대충 수습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새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박시준은 긴장한 얼굴로 박수혁을 바라봤다. “아빠...” 박수혁은 그런 그를 차갑게 쳐다보기만 했다. 눈빛에 책망의 뜻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박시준은 그 뜻을 읽지 못했다. 소은정은 새봄이를 안아 들고 박시준과 선생님을 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올게요.” 그녀는 새봄이를 안고 사무실을 떠나 옆의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새봄이를 내려놓고 따뜻하게 눈물을 닦아줬다. “엄마가 새봄이 한 테 화를 내려던 게 아니야,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큰소리로 울고불고하면 안 돼. 아빠가 그렇게 가르쳐주지 않았어?” 멈출 줄 모르고 울기만 하던 새봄이가 순식간에 울음을 그쳤다. 소은정이 눈물을 닦아줬다. “엄마, 나 아빠가 보고 싶어.
소은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소은정은 이 친척은 없는 셈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성문은 박수혁도 따라 나오는 걸 보고 약간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박시준이 소은정의 차에 탔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박수혁은 차에 타지 않았다. 아니었으면 그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도 안 계시는 마당에 박수혁에게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소은정과 가까이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뻔한 목적을 소은정이 눈치 못 챘을까? “햄버거 가게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차 안에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넘쳐났다. 소은정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박수혁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같이 따라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햄버거 가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먼저 가게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가게를 통째로 빌린 것 같았다. 이 시간대면 한창 가게에 사람이 많을 텐데 아무도 없었다. 소은정은 놀랐지만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기만 했다. “엄마, 나 쇼핑도 하고 싶어.” 가게 옆에 바로 대형 쇼핑몰이 있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새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정은 소지혁과 함께 주문을 하러 갔고 새봄이와 문준서 그리고 박시준은 같이 놀고 있었다. 박수혁은 밖에 나가 통화를 하고 들어오는 듯했다. 그는 소은정의 뒷모습을 보자 저도 몰래 미소를 지었다. 새봄이와 문준서는 피규어 가게 앞에서 피규어에 푹 빠져있었다. 박수혁이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가지고 싶어?” 새봄이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골라, 아저씨가 사줄 게.” 새봄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사줄 거예요.” 박수혁이 침묵했다. “아저씨가 시준이 대신 사주는 거야. 오늘 새봄이 기분 나쁘게 한 건 시준이 잘못이니까. 그러니까 골라.” 새봄이는 그제야 기뻐하며 문준서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울트라맨 피규어를
문준서의 말을 듣고 박시준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긴장한 얼굴로 불안해하며 새봄이를 쳐다봤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그는 지나간 일들을 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았고 자신은 반항할 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신경 써주지 않았다. 그 잊지 못할 생일파티 날 새봄이는 물에 빠졌다. 박시준은 엄마가 자신에게 어떤 짓을 시켰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이용해 남을 해치는 엄마보다 자신을 무시하고 미워하는 아빠가 훨씬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시준은 고통스러웠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몹시 불안해했다. 그는 긴장해하며 손을 꼼지락댈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문준서는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건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와 친구로 지내기 싫었다. 소은정은 통화를 마치고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문이 닫히지 않은 걸 보고 별생각 없이 문을 닫아버리고는 박시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도련님, 이만 가볼 게요.” 박시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소은정은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박수혁을 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이만 가볼 게. 병원 가서 검사해 보고 이상 있으면 우리 비서님한테 연락해 줘.” 그녀는 더 이상 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 멀리 안 나갈 게.” 박수혁은 좀 더 같이 있고 싶었으나 좀 전에 소은정의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회사로 돌아가봐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아 계획대로 하지 않았다. 소은정은 전동하 사건으로 인해 타격 받은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밝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 또한 문제였다. 이토록 강한 사람이니 어느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할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소은정은 최성문더러 회사 쪽에 자신을 내려주고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소은정이 차에서 내릴 때까지도 아이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