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소은정은 이 친척은 없는 셈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성문은 박수혁도 따라 나오는 걸 보고 약간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박시준이 소은정의 차에 탔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박수혁은 차에 타지 않았다. 아니었으면 그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도 안 계시는 마당에 박수혁에게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소은정과 가까이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뻔한 목적을 소은정이 눈치 못 챘을까? “햄버거 가게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차 안에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넘쳐났다. 소은정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박수혁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같이 따라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햄버거 가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먼저 가게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가게를 통째로 빌린 것 같았다. 이 시간대면 한창 가게에 사람이 많을 텐데 아무도 없었다. 소은정은 놀랐지만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기만 했다. “엄마, 나 쇼핑도 하고 싶어.” 가게 옆에 바로 대형 쇼핑몰이 있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새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정은 소지혁과 함께 주문을 하러 갔고 새봄이와 문준서 그리고 박시준은 같이 놀고 있었다. 박수혁은 밖에 나가 통화를 하고 들어오는 듯했다. 그는 소은정의 뒷모습을 보자 저도 몰래 미소를 지었다. 새봄이와 문준서는 피규어 가게 앞에서 피규어에 푹 빠져있었다. 박수혁이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가지고 싶어?” 새봄이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골라, 아저씨가 사줄 게.” 새봄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사줄 거예요.” 박수혁이 침묵했다. “아저씨가 시준이 대신 사주는 거야. 오늘 새봄이 기분 나쁘게 한 건 시준이 잘못이니까. 그러니까 골라.” 새봄이는 그제야 기뻐하며 문준서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울트라맨 피규어를
문준서의 말을 듣고 박시준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긴장한 얼굴로 불안해하며 새봄이를 쳐다봤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그는 지나간 일들을 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았고 자신은 반항할 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신경 써주지 않았다. 그 잊지 못할 생일파티 날 새봄이는 물에 빠졌다. 박시준은 엄마가 자신에게 어떤 짓을 시켰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이용해 남을 해치는 엄마보다 자신을 무시하고 미워하는 아빠가 훨씬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시준은 고통스러웠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몹시 불안해했다. 그는 긴장해하며 손을 꼼지락댈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문준서는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건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와 친구로 지내기 싫었다. 소은정은 통화를 마치고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문이 닫히지 않은 걸 보고 별생각 없이 문을 닫아버리고는 박시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도련님, 이만 가볼 게요.” 박시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소은정은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박수혁을 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이만 가볼 게. 병원 가서 검사해 보고 이상 있으면 우리 비서님한테 연락해 줘.” 그녀는 더 이상 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 멀리 안 나갈 게.” 박수혁은 좀 더 같이 있고 싶었으나 좀 전에 소은정의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회사로 돌아가봐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아 계획대로 하지 않았다. 소은정은 전동하 사건으로 인해 타격 받은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밝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 또한 문제였다. 이토록 강한 사람이니 어느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할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소은정은 최성문더러 회사 쪽에 자신을 내려주고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소은정이 차에서 내릴 때까지도 아이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서자
그들에겐 돈도 있고 사랑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자란 게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낭비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고마워요, 주무세요 아빠.” 소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정은 그를 부축했다. 전에 수술을 받은 후로 몸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걸을 때도 지팡이가 필요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자책했다. 혼자 슬픔에 잠겨 주위 사람들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너무도 빨리 나이 드셨고 기억 속의 그 영원히 거대할 것 같은 뒷모습도 이젠 볼 수 없었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더 강해져야 했다. 한 남자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됐다. 전동하가 죽었건 살았건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나가야 했다. 방으로 모시려는데 소찬식이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너 들어가는 거 보고 나도 들어 갈게. 요즘 밤마다 무슨 소리가 들려서 잠이 잘 안 온다며. 난 조금 있다가 잘게. 누가 밖에서 돌아다니는 건 아닌지 확인도 좀 하고.” 소은정은 울컥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빠를 끌어안으며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빠, 죄송해요...” 수없이 많이 자신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새봄이에게 여러 번 구원을 받았었다. 하지만 아빠가 자신을 구원해 줬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분명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건 아빠일 텐데 말이다. 소은정이 고통스러워할 때 소찬식은 같은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전동하 때문에 힘들어서 소은정은 다른 누구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때 소찬식의 마음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속상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사랑을 어째서 하나도 보지 못했을까? 소찬식은 가슴 아파하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울지 마, 넌 내 소중한 딸이잖아. 엄마랑 약속했어. 널 꼭 잘 지켜주기로. 네가 힘들어할 때마다 너네 엄마한테 미안해. 엄마가 옆에 있었더라면 너랑 얘기도 많이 하고 위로도 잘해줬을 텐데. 아빠는 어떻게 말을 꺼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고통은
마침 집사님이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은정이 내려오는 걸 보고 황급히 손을 저으며 불렀다. “빨리 식사하세요. 아침 겸 점심으로 드시면 되겠네요.” “괜찮아요, 회사에 처리해야 될 일이 생겨서요.” 그때 소찬식이 큰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낚시를 하고 온듯했다. “먹고 가, 조금 늦는다고 큰일 생기지 않아. 그리고 지금 떠나도 어차피 늦어. 네 오빠가 나한테까지 전화했더라.” “제 탓은 아니죠. 폰이 배터리가 없었어요. 아침에 절 깨워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집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이 깨우지 말라고 하셨어요. 어제 많이 피곤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도련님은 일찍 퇴근하셔서 주무셨는데 어떻게 그걸 알겠어요.” 집사님의 말을 듣자 소은정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맞아요.” 식탁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가득 차려진 걸 보자 소은정은 가방을 내려놓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준서랑 새봄이는 등교했어요?” 소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데려다 줬어. 어제 학교에서 애들한테 괴롭힘 당했다며?” 소찬식이 인상을 찌푸렸다. “걔네들 학부모 좀 만나야겠어.” 소찬식은 그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지 꼭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은정은 입안에 있는 음식물을 삼키지도 못한 채 소찬식을 바라봤다. “됐어요, 아빠.” 누구한테 들은 건지는 몰라도 전달이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뭐가 됐다는 거야,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괴롭혔다는데. 준서는 그렇다 쳐도 새봄이는 세 살 밖에 안 됐어. 작고 여린 애를 괴롭혔다는 게 말이 돼? 당장 가서 따져야겠어.” 소은정은 밥을 몇 술 뜨더니 말했다. “아빠, 새봄이가 괴롭힘 당한 게 아니라... 새봄이가 친구를 때렸어요.” 소찬식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말도 안 돼, 고작 몇 살이라고! 준서보다 한참 작아!” 소은정이 한숨을 쉬었다. “어제 학교에도 갔다 왔어요. 여섯 명을 때렸대요. 그
소은정은 파일을 열어보았다. 전동하의 이름이 한편에 쓰여있었다. 익숙한 필체였다.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다시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소은정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필을 들고 머뭇거렸다. 윤이한이 말했다. “사모님, 서명을 하셔야 전대표님의 모든 걸 연임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수속을 밟기 편하고요. 그리고 대표님께서 새봄아가씨와 마이크를 위해서 기금을 준비해 두셨는데 마이크 쪽은 성인이 돼야 수령하실 수 있고 새봄아가씨는 아무 때나 수령 가능하십니다. 국외의 사업들은 관리인의 서명이 필요한데 사모님께서 서명을 안 하시면 다 방치해 둘 수밖에 없어요...” 윤이한 쪽도 상황이 매우 난처했다. 장례식을 하지 않은 건 전동하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어서였다. 그들은 전동하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기를 바랐다. 소은정이 침묵하고 있으니 윤이한도 간섭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익과 관련된 부분들은 꼭 정확히 계산해야 했다. 모두 대표님이 사모님에게 남기고 간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소은정은 몇 초 망설이더니 결국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비서님, 혹시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이미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은 예정대로 진행해 주시고요 필요 없는 사업들은 굳이 이어 나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윤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름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전동하의 사업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까지 퍼져 있어 생각보다 더욱 범위가 크고 복잡했다. 관리를 진행하는 핵심 인물이 없다면 밑에서 어떤 수작을 부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는 5년도 안 돼서 망하는 길로 갈 것이다. 하지만 소은정은 달랐다. 사업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부잣집 사모님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소은정은 프로페셔널한 관리인이었고 그녀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훌륭했다. 그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실업하는 길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네, 빠른 시일 내로 처리하겠습니다. 전대표님 명의하의 재산에 대해서도 최대한 빨리 처리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소은정이
소은해는 지금 소은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소찬식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나 소찬식을 설득해야만 했다. 소찬식은 자신에게 딱 달라 붙어있는 소은해는 어이없는 눈길로 쳐다봤다. 한시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로 집사님과 소은정까지 웃음 지었다. 소은호는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셋째는 30년이 되도록 버릇이 고쳐지지 않네요.” “하늘이 거둬줬으니 망정이지 장가도 못 갈 뻔했어.” 소은해는 가짜 울음이라도 터뜨릴 생각이었다. 근데 그때 소은정이 다행히도 소은해를 놓아줬다. “됐어요, 사고나 안치면 다행이지. 셋째 오빠가 절 보호하겠어요?” 모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는 또다시 편안해졌고 그저 소은해만이 원망스러운 눈길로 소은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변명하고 싶었으나 혹여나 그들의 꾐에 넘어가기라도 할 가봐 소은해는 말을 아꼈다. 그때 소은호가 말했다. “그럼 연준 씨랑 갔다 와. 윤이한 씨도 같이 가면 더 좋고. 내가 알기로는 전동하 쪽이… 그쪽에서 많은 사업을 확장했다고 들었어. 혹시 인맥을 동원해야 할 일이 생길수도 있잖아.” 그는 소은정 앞에서 전동하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 침묵을 지키며 소은정을 바라봤다.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씨랑 연락해 볼게요.” 모두들 소은정의 표정에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 돌렸다. 소은호는 동생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실 소은정을 보낸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는 소은정이 바빠서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면 했고 또 숨 돌릴 시간도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이 기회를 소은정에게 넘긴 것이었다. 과거는 잊고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았으면 했다. 앞으로 출국까지는 보름가량 남아있었다. 소은정은 그동안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일들을 책임자에게 인수인계하고 국외 연구항목과 관련된 자료들을 준비해야 했다. 소은호는 주동적으로 소은
다음날, 소은정마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고위급 간부들과 식사를 하는데 조용히 이 일이 사실인지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었다. 소은정은 인터넷에 퍼져있는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났다. 소은해의 평소 성격이라면 당장 나서서 해결해야 될텐데 해명하지 않은 걸 보면 뭔가 신경 써야 할 다른 요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진에 찍혀 있는 여자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꽁꽁 가리긴 했지만 누가 봐도 김하늘인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하늘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은정이?” “하늘아, 촬영 중이야?” “나 촬영팀이랑 같이 있어.” “혹시 언터넷에 퍼져있는 기사 봤어?” “알아. 걱정 마, 나도 다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그래, 오빠가 아무런 대응이 없더라고. 그냥 침묵으로 일관할 건가 봐. 혹시 너도 불편한 일 생기면 이쪽으로 와서 잠시 숨어있어.” “괜찮아, 촬영도 막바지 단계야. 지금 자리를 떠나지 못해요. 이 일이 끝나면 다시 얘기할게.” “그래, 조심하고.” 김하늘의 목소리에 별 이상이 없는 걸 듣자 소은정은 마음이 놓였다. 친구로서 하늘에게 소은해를 위해 당장 나서서 해명해 달라고 요구할 순 없었다. 그리고 가족으로서 하늘도 챙겨야 했으니 지금으로선 소은해가 조금 억울할 수 있지만 그냥 두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기사를 볼 때마다 화가 났다. “돈만 많으면 단가? 이런 사람들은 죽여버려야 돼.” “소은해는 돈이 그렇게 많다 해도 언제 한번 기부하는 꼴을 못 봤어. 다른 아이돌들은 몇억씩 기부하는데. 돈을 다 여자 꼬시는데 썼나?” “듣기로는 촬영팀들도 이제 익숙할 정도래.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정말 실망이다. 빨리 해명해.” “사실 확인도 안 됐는데 다들 너무 단정 짓는 거 아님?” “전에 무슨 스태프랑 잘되고 있다 하지 않았어? 근데 이제 그 기사 찾을 수도 없네.” ... 소은정이 댓글을 읽고 있는데 우연
언론은 잠시나마 잠잠해졌다. 하지만 소은해와 함께 있던 두 여성에 관한 소문은 아직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금세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누군가가 촬영팀의 촬영시간과 지점 그리고 호텔위치까지 알아보고 당시 현장에 있던 배우들에게 묻기까지 했다. 놀랍게도 헛소문을 퍼뜨리며 소은해와 확실히 썸을 타고 있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순간에 SC그룹의 해명 또한 잊히고 분위기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소은해의 sns계정에 오랜만에 게시물이 업로드 됐는데 그가 직접 올린 것이 아니라 김하늘이 그의 계정을 사용해서 업로드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과 당시 촬영팀의 사원증 사진이었다. 김하늘은 스태프 입장이었기에 잠깐 나갔다 들어올 때조차 사원증이 필요했다. 서로 다 아는 사이였지만 보안유지가 필요한 곳이니 사원증이 필수였다. 기사 사진에서 보였던 옷차림을 하고 있는 김하늘 사진이 보였다. 모두 소은해가 찍어준 사진이었다. 이 사진들이 업로드 되자 소은해의 명성을 이용해 유명세를 타려 하던 두 여성의 속셈도 드러났다. 김하늘의 이런 행동을 소은해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누명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소은해는 아직도 기자들에게 화가 나 호텔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호텔밖으로 한걸음도 나설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소은해는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얘기해...” 상대방이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얘기했다. “짐 정리하고 나와. 밑에서 기다릴게.” 소은해가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하늘아, 촬영 중인 거 아니었어? 잠시만, 기사를 본 거야? 일단 모습 드러내지 말고 좀 잠잠해지면 다시 보자.” “헛소리하지 말고 내려와. 기다리고 있으니까.” 김하늘이 재촉했다. 소은해는 바로 창문 쪽으로 뛰어가 내려다봤다. 아직도 기자들이 즐비했다. 만약 김하늘이 나타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하늘아...” 소은해가 망설였다. “나 3분 뒤면 호텔 도착해. 시간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