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로 들어선 소은정이 바로 경비원에게 분부했다.“저 여자 들어오지 않게 잘 감시해요.”멀여져 가는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안진이 픽 웃었다.‘재밌어... 소은정... 화끈한 성격이 상당히 마음에 든단 말이야. 박수혁만 아니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미소를 거둔 안진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차량의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곧이어 무표정한 전동하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내가 말했죠? 은정 씨 건드리지 말라고.”하지만 안진은 어깨를 으쓱했다.“그쪽이 시키는대로 했는데 태한그룹은 우리 두 사람 열애설 밖에 인정 안 했어요. 결혼 얘기는 아직 없다고요.”하지만 전동하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괜히 다른 사람까지 엮지 마요.”그제야 안진의 눈동자에 초조함이 살짝 스쳤다.“협박도 해보고 회유도 해보고 다 했는데도 안 넘어오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요. 박봉원이 진짜 죽기라도 하면 난 마지막 카드를 잃는 거라고요.”이에 전동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실렸다.“그래서요? 그것도 그쪽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럼 다른 카드를 찾아보든가요.”말을 마친 전동하는 안진의 답을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떠버렸다....한편 소은정은 건물 앞에서 안진과의 만남 때문에 오전 내내 기분이 다운된 상태였다.부장들의 보고도 듣는둥 마는둥 하던 그때, 진동 모드로 해놓은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나 그 사람이랑 잤어.”‘하, 이런 TMI...’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축하해.’한편, 시간을 돌려 오늘 아침 무렵.한유라가 무거운 눈꺼풀을 떴을 때 마주한 건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얼굴이었다.결혼한 지 3일째, 함께 자는 게 너무나 당연한 사이임에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이상한 사이.옷섶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곱게 잠든 심강열을 가만히 바라보며 한유라는 어젯밤 있었던 일들의 퍼즐을 맞추었다.‘출장을 간다던 사람이 클럽에 나타났고 내가 담배를 피웠고 키스를 했고... 내가
그 말에 흠칫하던 한유라가 애써 평정심을 되찾았다.‘질투? 웃기고 있네.’“그럴 리가. 어쨌든 그쪽이 먼저 말 놨으니까 나도 놓...는다? 괜찮지?”혼자 너무 흥분한 것 같은 기분에 한유라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아무리 부부라지만 우리가 서로 질투할 사이는 아니잖아? 너답지 않게 왜 이래.’심강열의 눈치를 힐끗 살피던 한유라는 살짝 구겨진 그의 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발견하고 얼굴을 붉혔다.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인 심강열도 어색한 기침을 뱉어냈다.“옷... 갈아입고 올게.”“나도 갈아입고 싶은데... 아직 짐 정리가 덜 돼서...”한유라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여기가 우리 신혼집인가 보네.’옷장 앞에 선 심강열이 자기한테는 작지만 한유라에게는 클 것 같은 셔츠를 들고 한참을 망설이기 시작했다.하지만 그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시선 한자락에 한유라의 긴 다리가 눈에 띄었다.어딘가 응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유라의 모습에 심강열이 고개를 갸웃했다.“샌님처럼 생겨선... 은근히 이런 거 좋아하나봐요?”심강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손에서 셔츠를 낚아챈 한유라가 혀를 내밀었다.“기다려요. 나 금방 갈아입고 올게요.”잠시 후 기다리란 말 한 마디에 착한 강아지처럼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던 심강열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조금은 큰 그의 셔츠를 입고 난 한유라 때문이었다.허벅지를 겨우 아슬아슬하게 덮고 있는 셔츠가 다 벗은 몸보다 더 에로틱하게 느껴졌다.나름 정신줄을 붙잡고 고개를 휙 돌렸지만 그의 이성은 점점 더 아득히 먼 곳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남자는 시각에 예민한 동물이라더니... 하, 이렇게 내가 동물이라는 걸 느끼게 될 줄은 몰랐네.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였어.’한편, 원하는 리액션을 얻어낸 한유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한 발 앞으로 다가간 그녀의 귓가에 우렁찬 그의 심장박동이 들리는 듯했다.아무 일도 없었지만 하룻밤을 함께 해서일까?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던 묘한 벽은 어느
한유라가 취했을 때 심강열은 남자로서의 마지막 매너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며칠 전 갓 결혼한 한유라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하지만 지금은...한유라는 이미 정신을 차렸고 두 사람은 이미 부부다. 그에겐 이 감정을 참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잠시 후, 침대에 멍하니 누운 한유라는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심강열... 그렇게 거친 면도 있는 사람이었어? 내가 아직 술이 덜 깬 건가? 우리 지금 한 거 맞지?’이때 아직도 직성이 덜 풀린 건지 심강열의 손이 다시 스멀스멀 다가와 그녀의 탄탄한 허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하... 뭐야? 늦게 배운 도둑질 뭐 이런 거야? 부처처럼 생겨선 완전... 변태잖아.’“우웅우웅...”이때 때마침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한유라는 있는 힘껏 심강열을 밀어냈다.“전화... 오잖아.’두 사람만의 시간이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심강열이 일어섰다.“... 네, 알겠습니다.”평소와 다름없이 통화를 마친 심강열이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 누운 채 잠이 든 한유라의 모습이 보였다.여전히 살짝 붉은 뺨과 아슬아슬하게 한유라를 덮은 이불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백옥 같은 몸.순간 심강열은 다시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지금까지 여자와 관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은 건 처음이라 심강열도 나름 당황스러웠다.자신만은 남들과 다르다며, 성욕 따위 이성으로 충분히 누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과거는 그저 진정한 쾌락을 맛보지 못한 자의 편협한 생각일 뿐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곱게 잠 든 한유라를 깨우고 싶지 않았던 심강열이 조심스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얼굴을 가린 잔머리를 넘겨준 심강열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오늘은 진짜 출장가야 해. 3일 뒤에 봐.”한편 잠결에 그 목소리를 들은 한유라는 눈을 더 질끈 감았다.‘알겠으니까 얼른 가라.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 죽겠으니까...’관계를 가지자마
이에 조희찬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아, 곧 이사하실 거란 말씀 들었습니다. 이건 제 번호입니다.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조 비서의 명함을 건네받은 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필요하면 연락드릴게요.”특별히 그녀를 위해 비서까지 남겨두고 혼자 출장길에 오른 심강열을 생각하자니 달콤함은 동시에 왠지 모를 미안함이 샘솟았다.‘이럴 줄 알았으면... 잘가라고 인사라도 할걸.’“그럼 편히 쉬십시오, 사모님.”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한유라는 오피스텔로 돌아가 짐 정리를 시작했다.이 많은 짐 어떻게 옮기나 싶었던 생각과 달리 조 비서의 도움 덕분에 이사는 걱정보다 너무나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며칠 뒤. 입찰회 초대장을 받은 소은정은 최근 한유라의 회사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임을 발견하고 그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회장 앞에서 한유라를 기다리던 소은정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어딘지 모르게 빛나는 얼굴이 그녀가 생각보다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각자의 목적을 가진 채 입찰회가 시작되고 한유라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토지 가격은 어느새 20억까지 치솟았다.한유라가 생각하고 있는 마지막 마지노선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한유라는 자신의 마지막 상대를 돌아보았다.하지만 다음 순간 고개를 홱 돌린 한유라의 호흡이 조금 거칠어지자 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누군데?”“민하준 그 사람 전 와이프.”소은정의 질문에 대답한 한유라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아니, 근데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지?”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내가 요즘 들었는데... 민하준 그 사람 워낙 안 좋게 이혼하면서 양쪽 다 원기가 심하게 상했다네. 민하준은 와이프 덕에 얻은 인맥을 전부 잃었고 지채영? 저 여자도 능력있는 경영인을 잃었지. 요즘은 지채영이 직접 일선에 나서는 모양이지만 뭐, 효과는 미미해. 아무리 인맥이 좋으면 뭐해? 어차피 다들 이익으로 움직이는
소은정이 다른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한유라는 조용히 파일 하나를 지채영에게 건넸다.잠시 후, 한유라가 차에 타려던 그때 득달같이 쫓아온 지채영이 파일을 그녀에게 던졌다.“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이딴 식으로 사람 모욕하면 재밌어요?”방금 전 그녀가 건넨 파일임을 확인한 한유라가 픽 웃었다.“착각하지 마요. 이 프로젝트 따내고 싶어 했잖아요.”“하, 그래서요? 입찰회에서 내가 졌고 패배 인정해요. 그러니까 나한테 자비를 베푸는 척 이딴 종이쪼가리 내밀지 말아요.”방금 전 한유라가 건넨 파일에는 18억의 가격으로 방금 전 토지를 지채영에게 매매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25억에 산 당을 18억에 넘기는 것.산수 정도만 할 줄 알아도 이 거래는 한유라에게 유리할 것이 없었지만 한유라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었다.“나 자선사업가 아니에요. 그냥... 생각보다 이익 공간이 크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쪽한테는 이 프로젝트가 꽤 중요하잖아요.”한유라의 말에 지채영의 몸이 흠칫 떨려왔다.‘그런다고 내가 고맙다고 인사라도 할 줄 알아? 웃기지 마.’“그런다고 내가 당신을 용서할 줄 알아요?”한유라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그쪽 용서 같은 거 필요없어요. 난 잘못한 거 없으니까. 하지만... 그쪽이라고 뭘 잘못했겠어요. 우리 두 사람 다 남자 잘못 만난 탓이죠 뭐. 그래서 이젠 당신이 밉지 않아요. 하지만 난 진심으로 몰랐어요. 민하준 그 자식이 유부남이었던 거. 당신은 나한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민하준 그 자식한테 화를 냈어야 했다고요. 하, 됐네요.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그쪽은 내가 밉죠?”피식 웃던 한유라가 지채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민하준 그 자식이 왜 당신을 떠났는지 알아요? 나 때문에? 내가 죽을만큼 좋아서? 아니요. 이제 당신이 가진 것들로는 그 더러운 욕망을 채우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에요. 그 자식은 죽도록 이기적이니까 앞으로도 아주 잘 먹고 잘 살 거예요. 지금 회사 힘들다면서요. 이건 그
한참을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지채영이 바닥에 떨어진 파일을 비서에게 건넸다.“이건 기쁨의 눈물인데? 우리... 다시 일어설 수 있어.”양도 계약서를 확인하던 비서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올랐다.“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가격이네요. 다행이에요!”고개를 끄덕인 지채영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나도 알아. 이걸 받으면 안 된다는 걸. 이걸 받으면 난 더 이상 한유라를 내 맘대로 욕할 수 없겠지. 도움 받은 주제에 내가 무슨 염치로...’하지만 지채영은 알고 있었다. 설령 이 도움을 받지 않았다 해도 그녀에게 한유라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걸.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김현숙의 딸.평생 모자랄 것 하나 없이 살아온 여자.그런 여자가 뭐가 부족해서 유부남을 만날까?한유라도 속은 것이라는 걸 지채영도 알고 있었다.그저 불장난만은 아닌 것 같은 민하준의 모습에 왠지 불안했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행패도 부렸지만 민하준은 결국 그녀를 떠나버렸다.지채영은 마지막으로 민하준과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유라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걘 아무 잘못 없다고.”그리고 지채영은 이 결혼의 첫 시작을 다시 떠올렸다.강요에 가까운 결혼, 지채영은 민하준의 몸을 취했고 민하준은 지채영의 인맥을 이용했다. 결혼이 아닌 거래에 가까운 사이, 그래서 민하준은 당연하다는 듯 밖으로 나돌았다.그리고 지채영도 웬만큼 한눈 감아주곤 했었는데... 한유라는 그녀에게 너무나 강력한 라이벌이었다.그나마 민하준을 묶어둘 수 있었던 가문의 힘.하지만 한유라는 그녀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가진 여자였다.‘무서웠어. 당신이 날 버리고 그 여자한테 가버릴까 봐.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알았을지도 몰라. 당신이 날 떠날 거란 걸. 결국 난 혼자가 되어버릴 거란 걸.’깔끔한 재산분할, 앞으로도 그녀의 가문을 지지하겠다는 약속, 지채영의 집안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으니 당연히 제안에 응했고 양쪽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지채영은 결국 이혼서류에 사인을 할 수밖에
그렇게 매정하게 버려진 지채영은 어떻게든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고 민하준은 그저 그런 그녀를 지켜볼 뿐이었다.설상가상으로 회사를 지탱하던 엘리트 직원들까지 전부 민하준과 함께 떠나버리고 이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한달 안에 파산 신청을 해야 할 정도로 그룹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상황이었다.다들 그래도 부부로 살았던 정이 있으니 그녀가 이렇게 무너지는 걸 보고 있지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지채영은 알고 있었다.‘민하준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야. 오히려 쌤통이라며 박수나 안 치면 다행이지.’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위기속에서 지채영을 지탱하기 위해선 증오의 상대가 필요했고 그 화살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한유라에게로 향했다.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헤어졌을 줄이야.그녀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그 두 사람이 헤어지면 속이라도 시원할 줄 알았는데 통쾌하긴커녕 기분은 더 더럽기만 했다.설령 두 사람이 헤어졌다 해도 민하준과의 사이는 다시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독립하고 승승장구하는 민하준과 달리 그녀는 점점 구렁텅이에 빠져가고 있다.두 사람의 인연을 이어줄 아이 하나 없이 헤어졌으니 이제 그녀는 민하준에게 아무런 이용가치 없는 전 와이프, 겨우 이 정도라는 걸 다시 뼛속깊이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방금 전 한유라가 파일을 건넸을 때, 지채영은 너무나 비참했다.도움을 줘야 할 상대로 비춰졌다는 사실이 비참했고 그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비참했다.하지만 또 우습게도 한유라에게 고맙기도 했다.‘인정하긴 싫지만... 당신... 민하준보다 훨씬 더 근사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더 좋은 남자 만나.’한편, 인사를 마치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던 소은정은 이 광경을 전부 목격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자신의 차에 탄 소은정이 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후회 안 하겠어? 이 프로젝트 단기적으로 보면 이익 공간이 크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충분히 괜찮은 프로젝트야. 아줌마가 아시면 또 한바탕 하실 거
“그래. 내가 데리러갈게. 지금 갈 거니까 기다려.”하지만 그의 말을 끊은 한유라가 쿨하게 응했다.통화를 마친 심강열이 다른 이사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다들 먼저 퇴근하세요. 전 아내가 데리러오기로 했습니다.”“네? 와이프요?”“대표님, 뻥치지 마세요. 갑자기 웬 와이프예요?”“그냥 저희랑 같이 가시죠?”이사들의 반응에 심강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평소에 내가 너무 편하게 대했나... 내가 어디가 어때서? 평생 노총각으로 늙을 상으로 보이나? 그리고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심강열이 이를 악물었다.“좋습니다. 그럼 퇴근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죠. 아내가 오면 직접 물어보면 되겠네요.”심강열의 말에 깔깔 웃던 이사들은 퇴근도 마다하고 정말 공항에서 함께 기다리기 시작했다.평소 이사들과의 사이가 꽤 좋은 심강열이라 기다리는 사이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그럼에도 이사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객관적인 조건만 보면 완벽함에도 항상 이성에게 철벽을 치는 심강열의 모습 때문에 한때 회사에서는 대표님이 게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었다.그 뒤로 오래 사귀던 여자친구가 500억을 받고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모두 심강열의 박복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시간은 흐르고 흘러 15분, 30분, 1시간...초조해진 심강열이 한유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이때 이사들 중 한 명이 다시 그의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했다.“사모님 혹시 오시다 길이라도 잃어버리신 건 아니겠죠?”“아니, 벌써 1시간이나 지났어요.”“대표님. 요즘은 비혼이 대세예요. 솔로가 창피한 것도 아니고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세요?”“에이. 설마 대표님이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시겠어? 사정이 있겠지. 좀 더 기다려보자.”이사들의 질문에도 심강열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시간은 또 흘러 2시간째.이사들이 하나둘씩 일어서기 시작했다.“대표님, 와이프한테서 전화가 와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