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소은정 별로지? 그 잘난 척하는 얼굴만 보면 토 나온다니까. 하, 누가 졸부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돈 있으면 다야? 하늘아, 내 말 맞지?”하지만 고개를 든 김하늘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부러우면 그냥 부럽다고 해. 뒤에서 까는 게 더 없어 보이니까.”교실 입구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소은정과 김하늘이 친해졌고 그때부터 김하늘, 한유라, 소은정 세 사람은 어딜 가나 함께였다.우리 덕분에 하늘이도 많이 밝아졌지... 아니야. 그때도 조용하긴 했지만 하늘이는 항상 당당했어. 그래서 항상 그렇게 강할 줄 알았는데...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한 기억을 회상하며 소은정이 눈을 감았다.참고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어느새 동이 트고 밝은 햇살이 창문을 투과해 소독수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에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추가해 주었다.소은정과 한유라는 중환자실 문에 달린 작은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역시 밤새 눈 한 번 못 붙인 소은해는 김하늘의 손을 꼭 잡은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각상처럼 자세 한 번 안 바꾸는 모습에 소은정이 중얼거렸다.“오빠... 진짜 하늘이 많이 좋아하나 보네.”“하늘이도 깨어나면 기뻐할 거야. 하늘이도 은해 오빠 많이 좋아하니까.”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이 눈을 껌벅였다.“너도 알고 있었어?”“얘 좀 봐? 두 사람 고등학교 때 사귄 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하늘이가 진짜 많이 좋아해었지. 그런데 갑자기 헤어지더라고. 그 뒤로는 거의 연락도 안 하는 모양이고.”한유라의 설명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난 정말 몰랐단 말이야...“오빠는 미련 남았는지 몰라도 하늘이는 아니야. 하늘이는 오빠 좋아 안 해.”“누가 그래?”한유라가 고개를 돌렸다.“하늘이 은해 오빠 좋아해. 며칠 전에도 나랑 술 마시다가 취했는지 ‘소은해, 어떻게 하면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더라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도 좋아한다는 뜻이잖아.”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은 더 의아해졌다.그럼 왜 소은해의 구애에
김하늘이 목이 마른 듯 얼굴을 찡그리자 소은정이 물컵에 빨대를 꽂아 건넸다.마음을 졸이던 한유라는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내가 정말 너 때문에 제 명에 못 산다.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김하늘은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역시 눈시울이 붉어진 소은정이 대답했다.“기억 안 나? 너 방에서 뛰어내렸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 우리 못 믿어? 우리가 끝까지 네 억울함 풀어줬을 텐데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선택을 해?”소은정의 설명에 김하늘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뛰어내려? 그게 무슨 소리야.”당황한 김하늘이 손으로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손가락 끝에서 붕대의 감촉이 느껴졌다.당황한 얼굴의 김하늘이 해명을 이어갔다.“나... 정말 뛰어내리려고 한 적 없어.”엉엉 울던 한유라 역시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김하늘을 바라보았다.미간을 찌푸린 김하늘이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그냥 창가에 앉아서 바람 좀 쐬고 있었어. 그러다 배고파서 뭐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서 휘청했고...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나...”그제야 투신자살 소동의 진실을 알게 된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어지러워서 쓰러진 거였구나... 운이 나쁘게 밖으로 떨어진 거고...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안 그럼 억울해서 어쩔 뻔했어.황당한 이유에 눈물이 쏙 들어간 한유라가 벌떡 일어섰다.“배고프지? 내가 식사 준비해 달라고 할게.”“나도 배고프니까 좀 많이 달라고 부탁해.”자연스레 김하늘의 곁에 앉은 소은정의 말에 한유라가 친구를 노려보았다.쟤는 가끔씩 보면 저렇게 눈치가 없다니까.“너도 같이 가!”의아해 하던 소은정은 소은해와 김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다 벌떡 일어섰다.“아, 그래. 같이 가.”한유라와 소은정이 병실을 나서고 소은해는 아무 말없이 김하늘을 바라보았다.이유야 어찌 되었든간에 다시는 김하늘을 혼자 두고 싶지 않은 소은해였다.밤새 그녀의 곁을 지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헤어진 연인에게 잠시나마 마음이 약해졌던 것? 아니면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었던 것?서재에 스스로를 가둔 김하늘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출구 없는 터널을 지나는 듯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비록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런 노출 사진이 인터넷에 유출되었다니.앞으로 어떻게 사람들 앞에 서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오빠...”훌쩍이던 김하늘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이 더렵혀진 그녀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으니까.맑은 눈물이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내렸다.그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선 소은해는 병상에 누운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었다.김하늘의 손을 토닥이던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 지난 일이야. 그냥 기분 나쁜 꿈 한 번 꾼 거라고 생각해. 이제 괜찮아.”소은해의 따뜻한 위로에 꾹꾹 눌렀던 감정들이 와르르 쏟아지는지 김하늘은 더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아픈데 이렇게 울어도 괜찮은 건가?’걱정이 앞섰지만 소은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괜찮다고 그녀를 달래는 것뿐이었다.간호사들이 무슨 일인지 들여다 볼 정도로 한참 동안 오열하던 김하늘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소은해가 인터넷 기사와 그녀를 응원하는 댓글을 보여주었고 그제야 정말 악몽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나는 기분이었다.창백한 안색의 김하늘이 힘없이 눈을 감았다.사과... 사과를 받으면 정말 모든 게 끝나는 걸까? 그날 받았던 상처들이 전부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난 아직도 이렇게 아픈데...김하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소은해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말없이 김하늘의 손에 끼워주었다.손가락에 닿는 금속 특유의 차가운 느낌에 김하늘의 손이 흠칫 떨렸다.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김하늘의 시야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소은해의 모습이 들어왔다. 소은해가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에 살짝 키스했다.“하늘아, 난 5년 전 너랑 헤어진 그날부터 쭉 후회했어. 지금까지 말이야. 하늘아, 어쩌면
소은해의 고백을 듣는 순간, 바로 생각난 대답은 거절이었다.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버린 그녀를 불쌍히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그런 사진이 인터넷에 다 퍼져버렸어. 내가 무슨 염치로 오빠랑 사귀고 결혼을 해... 천하의 소은해가 나 같은 여자랑 결혼한다고 해봐.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앞에서는 별말 없겠지만 돌아서면 얼마나 비웃겠어... 오빠가 얼마나 소문, 이미지에 민감한데. 내가 오빠 인생에 오점이 되고 싶지 않아.’소은해의 질문에 김하늘은 하염없이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거절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겉으로는 내뱉지 못했다.욕심이 났다.평생 짝사랑했던 사람의 고백...누구나 다 바라는 상황일 것이다.게다가 불안하다면 결혼까지도 할 수 있다니...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지났다.짝사랑이란 그 무엇보다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소은해를 원망해 본 적은 없었다.마음이 흔들린 건 그녀이니 그 감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니까.이제 그 남자가 그녀를 좋다고 말한다.머리로는 거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이기심이 자꾸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혼란스러운 그녀의 마음을 아는 걸까?소은해가 김하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지금 당장 대답 바라는 거 아니야. 입원해 있는 동안 충분히 고민해 봐.”한참을 울던 김하늘도 감정을 추슬렀다.‘그래.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는 거야...”그리고 다음 순간 떨리는 소은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하늘아... 제발 나 좀 봐주면 안 돼? 나 혼자 남겨두지 마...”소은해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지고 그 모습에 김하늘은 눈을 질끈 감았다.창백한 얼굴을 돌린 김하늘이 화제를 돌렸다.“오빠, 나 머리 아파.”“아, 어. 그래.”김하늘의 말에 부랴부랴 일어선 소은해가 의사를 부르기 위해 병실을 달려나갔다
솔직히 지금의 소은해는 촬영팀의 수고고 뭐고 그런 것 따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작품에서 최상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것까지가 배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으니까.‘홍보는 너무 귀찮단 말이야... 그런데 하늘이랑 은정이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잠시 고민하던 소은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여동생을 향해 진지하게 분부했다.“하늘이 잘 지켜보고 있어. 옆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말고.”소은정 역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소은해는 마지막으로 김하늘의 손을 잡아준 뒤에야 자리를 떴다.그가 떠나는 걸 확인한 한유라가 얼굴을 움켜쥐었다.“은해 오빠 왜 저렇게 느끼해졌어? 나 막 소름 돋으려고 그래.”그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우리 오빠 원래 저런 사람이야. 밖에서 안 그런 척 하는 거지 사실은 얼마나 자상하고 애교도 많은데. 그렇지, 하늘아?”한유라와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김하늘을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소은정을 괜히 흘겨본 김하늘이 말했다.“그걸 왜 나한테 물어?”사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인정할 순 없었다.소은정은 또각또각 걸어가 김하늘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소은해가 껍찔을 다 깎아놓은 사과를 조심스럽게 잘라 포크로 찍은 뒤 김하늘에게 건넸다.“하늘아,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 수습 방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어. 이제 네가 억울하다는 것도 다 밝혀졌고 인터넷에 너에 관한 댓글도 거의 다 지워졌어.”“고마워...”창백한 얼굴의 김하늘이 미소를 지었다.만약 소은정이 집안 세력까지 이용해 여론을 누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사람들의 질타와 부정적인 시선속에서 살아가야 했을 것이라는 걸 김하늘도 잘 알고 있었다.어쩌면 정말 자기 의지대로 뛰어내렸을 수도...“하늘아, 그거 알아? 사건 터지고 바로 윤지섭 그 자식한테 갔는데 오빠가 그 자식을 이미 죽사발을 만들어 놨더라. 16층에서 던져버릴 생각이던데?”목이 메어오는 느낌에 소은정이 말끝을 흐렸다.
한유라의 진심어린 말에 소은정도 고개를 들었다.소은정과 시선이 마주친 한유라는 잔뜩 붉어진 눈시울로 싱긋 웃어 보였다.한동안 병실에는 김하늘의 훌쩍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내가 뭐라고... 가슴이 너무 아파. 아파서 죽을 것 같아…죽음 같은 정적을 깬 건 바로 소은정의 휴대폰 벨소리였다.소은해의 영상 통화 초대였다.“얼른 하늘이 좀 보여줘.”“...”하, 난 이제 아예 투명인간 취급이네.소은정이 휴대폰을 김하늘에게 건네자 김하늘은 눈물을 닦고 깊은 한숨까지 내쉬었다.한유라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축해 침대에 앉혔다.휴대폰을 든 김하늘의 시야에 완벽하게 세팅된 소은해의 모습이 들어왔다.아침까지 초췌했던 모습과 달리 지금 그의 모습은 누구나 다 아는 소은해의 얼굴이었다.‘오빠는 진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 하느님의 편애를 받는 사람이라는 게 그런 사람인 걸까?’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김하늘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던 소은해가 물었다.“왜 눈이 빨개? 혹시 머리 아파? 은정이한테 의사쌤 부르라고 해!”오버스러운 소은해의 반응에 피식 웃던 김하늘이 고개를 저었다.그 모습에 소은해가 다급하게 그녀를 말렸다.“머리 그렇게 흔들지 마. 너 지금 다쳤다고.”소은해의 말에 김하늘이 흠칫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녀를 걱정하는 소은해의 모습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무언가가 상처투성이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고 소은정에게 휴대폰을 던지듯 넘긴 김하늘은 이불로 얼굴을 덮어버렸다.“끊어.”짧게 말한 소은정은 바로 영상 통화를 끊어버렸다.잠시 후, 휴대폰을 확인하던 소은정은 김하늘에 관한 기사와 사진들이 거의 내려간 걸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페이지를 새로 고침한 뒤 가장 첫줄에 뜨는 기사 타이틀을 발견한 소은정의 눈이 커다래졌다.“소은해, 영화 시사회에서 갑자기 사라져?”‘으아... 결국 사고쳤네.’한편, 역
멋쩍은 얼굴의 소은해가 헛기침을 했다.“너희 둘만 있으니까 걱정되니까 그렇지. 그리고 기사는 오늘 시사회니까 당연히 뜨는 거지.”하여간 핑계는.“그래. 오빠가 직접 지키고 있어. 두 방해꾼은 이만 나가볼게!”소은정이 웃으며 일어서고 한유라도 그 뒤를 따랐다.“네, 방해꾼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윽, 창피해.’김하늘은 빨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이불을 홱 뒤집어 썼다.‘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사람 마음 흔들리게... 그래. 유라 말이 맞아. 나도 한 번만 이기적으로 살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야...’한편, 소은정과 한유라가 병원을 나서고 익숙한 차량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차에서 내린 전동하가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역시 환하게 웃던 소은정이 쪼르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눈이 더 예쁘게 휘어졌다.‘몇 시간 못 본 것뿐인데 좀 보고 싶었어...’항상 시크하던 소은정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한유라의 눈이 커다래졌다.뒤늦게 또각또각 다가온 한유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 굳이 내 앞에서까지 이래야 해?”그제야 전동하의 품에서 벗어난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가자. 집까지 데려다줄게.”‘하, 눈치는 있네.’“아, 유라 씨. 저기도 유라 씨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요.”고개를 돌린 전동하가 바로 옆에 주차된 흰색 마샬라티를 힐끗 바라보았다.순간 한유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누군데 저러지?’소은정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고 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만나고 싶지 않으면 우리랑 가요.”한유라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됐어요. 따로 볼일도 있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있고 싶지 않네요.”말을 마친 한유라가 또각또각 마샬라티를 향해 걸어갔다.고개를 끄덕인 전동하가 소은정을 위해 차문을 열어주고 싱긋 웃은 소은정이 차안으로 들어갔다.“가죠.”전동하가 기사에게 말하고 소은정이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누군데 그
전동하가 매력적인 목소리로 위로를 시작했다.“기분 풀어요. 차라리 은해 씨한테 줄 선물이나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선물이요?”“하늘 씨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선물은 해야죠.”갑작스러운 스킨쉽에 소은정의 얼굴도 달아올랐다.“글쎄요. 아직은 잘 몰라요...”“이번 일을 계기로 분명 달라질 거예요.”전동하의 미소에 소은정이 의심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내기 할래요?”“어떻게요?”소은정의 몸을 돌려 시선을 마주친 전동하가 말했다.“은정 씨가 지면 직접 요리해 주는 거예요. 어때요?”“그게 다예요?”너무 쉬운 조건이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그러고 보니까... 나 요리 잘 못했지? 게다가 동하 씨한테는 저번에 아팠을 때 흰죽 끓여준 거 말곤 제대로 된 요리는 한 번도 안 했네.”“그래요.”소은정 역시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져봤자 겨우 식사 한 끼 직접 대접하는 것이니 어려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내기는 무조건 그녀의 승리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소은해가 몇 개월을 쫓아다녔는데도 꿈쩍도 않던 김하늘이다.이렇게 쉽게 마음이 바뀐다고?‘아니야. 하늘이는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이야. 그렇게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진 않을 거야.’“일단 좀 자요. 그 동안 난 요리 좀 해놓을게요.”전동하가 소은정의 잔머리를 귀뒤로 넘겨주고 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녁쯤에는 깨워줘요. 다시 병원도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소은정은 나른한 하품과 함께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밤새 마음을 졸였던 탓일까? 침대에 눕자마자 피곤함이 밀려들고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소은정이 다시 눈을 뜬 건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 때문이었다.비몽사몽인 와중에도 배는 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주방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에 소은정이 흠칫했다.‘설마 아직도 요리 중인가?’궁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