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이 목이 마른 듯 얼굴을 찡그리자 소은정이 물컵에 빨대를 꽂아 건넸다.마음을 졸이던 한유라는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내가 정말 너 때문에 제 명에 못 산다.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김하늘은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역시 눈시울이 붉어진 소은정이 대답했다.“기억 안 나? 너 방에서 뛰어내렸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 우리 못 믿어? 우리가 끝까지 네 억울함 풀어줬을 텐데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선택을 해?”소은정의 설명에 김하늘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뛰어내려? 그게 무슨 소리야.”당황한 김하늘이 손으로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손가락 끝에서 붕대의 감촉이 느껴졌다.당황한 얼굴의 김하늘이 해명을 이어갔다.“나... 정말 뛰어내리려고 한 적 없어.”엉엉 울던 한유라 역시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김하늘을 바라보았다.미간을 찌푸린 김하늘이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그냥 창가에 앉아서 바람 좀 쐬고 있었어. 그러다 배고파서 뭐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서 휘청했고...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나...”그제야 투신자살 소동의 진실을 알게 된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어지러워서 쓰러진 거였구나... 운이 나쁘게 밖으로 떨어진 거고...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안 그럼 억울해서 어쩔 뻔했어.황당한 이유에 눈물이 쏙 들어간 한유라가 벌떡 일어섰다.“배고프지? 내가 식사 준비해 달라고 할게.”“나도 배고프니까 좀 많이 달라고 부탁해.”자연스레 김하늘의 곁에 앉은 소은정의 말에 한유라가 친구를 노려보았다.쟤는 가끔씩 보면 저렇게 눈치가 없다니까.“너도 같이 가!”의아해 하던 소은정은 소은해와 김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다 벌떡 일어섰다.“아, 그래. 같이 가.”한유라와 소은정이 병실을 나서고 소은해는 아무 말없이 김하늘을 바라보았다.이유야 어찌 되었든간에 다시는 김하늘을 혼자 두고 싶지 않은 소은해였다.밤새 그녀의 곁을 지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헤어진 연인에게 잠시나마 마음이 약해졌던 것? 아니면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었던 것?서재에 스스로를 가둔 김하늘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출구 없는 터널을 지나는 듯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비록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런 노출 사진이 인터넷에 유출되었다니.앞으로 어떻게 사람들 앞에 서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오빠...”훌쩍이던 김하늘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이 더렵혀진 그녀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으니까.맑은 눈물이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내렸다.그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선 소은해는 병상에 누운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었다.김하늘의 손을 토닥이던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 지난 일이야. 그냥 기분 나쁜 꿈 한 번 꾼 거라고 생각해. 이제 괜찮아.”소은해의 따뜻한 위로에 꾹꾹 눌렀던 감정들이 와르르 쏟아지는지 김하늘은 더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아픈데 이렇게 울어도 괜찮은 건가?’걱정이 앞섰지만 소은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괜찮다고 그녀를 달래는 것뿐이었다.간호사들이 무슨 일인지 들여다 볼 정도로 한참 동안 오열하던 김하늘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소은해가 인터넷 기사와 그녀를 응원하는 댓글을 보여주었고 그제야 정말 악몽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나는 기분이었다.창백한 안색의 김하늘이 힘없이 눈을 감았다.사과... 사과를 받으면 정말 모든 게 끝나는 걸까? 그날 받았던 상처들이 전부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난 아직도 이렇게 아픈데...김하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소은해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말없이 김하늘의 손에 끼워주었다.손가락에 닿는 금속 특유의 차가운 느낌에 김하늘의 손이 흠칫 떨렸다.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김하늘의 시야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소은해의 모습이 들어왔다. 소은해가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에 살짝 키스했다.“하늘아, 난 5년 전 너랑 헤어진 그날부터 쭉 후회했어. 지금까지 말이야. 하늘아, 어쩌면
소은해의 고백을 듣는 순간, 바로 생각난 대답은 거절이었다.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버린 그녀를 불쌍히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그런 사진이 인터넷에 다 퍼져버렸어. 내가 무슨 염치로 오빠랑 사귀고 결혼을 해... 천하의 소은해가 나 같은 여자랑 결혼한다고 해봐.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앞에서는 별말 없겠지만 돌아서면 얼마나 비웃겠어... 오빠가 얼마나 소문, 이미지에 민감한데. 내가 오빠 인생에 오점이 되고 싶지 않아.’소은해의 질문에 김하늘은 하염없이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거절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겉으로는 내뱉지 못했다.욕심이 났다.평생 짝사랑했던 사람의 고백...누구나 다 바라는 상황일 것이다.게다가 불안하다면 결혼까지도 할 수 있다니...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지났다.짝사랑이란 그 무엇보다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소은해를 원망해 본 적은 없었다.마음이 흔들린 건 그녀이니 그 감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니까.이제 그 남자가 그녀를 좋다고 말한다.머리로는 거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이기심이 자꾸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혼란스러운 그녀의 마음을 아는 걸까?소은해가 김하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지금 당장 대답 바라는 거 아니야. 입원해 있는 동안 충분히 고민해 봐.”한참을 울던 김하늘도 감정을 추슬렀다.‘그래.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는 거야...”그리고 다음 순간 떨리는 소은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하늘아... 제발 나 좀 봐주면 안 돼? 나 혼자 남겨두지 마...”소은해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지고 그 모습에 김하늘은 눈을 질끈 감았다.창백한 얼굴을 돌린 김하늘이 화제를 돌렸다.“오빠, 나 머리 아파.”“아, 어. 그래.”김하늘의 말에 부랴부랴 일어선 소은해가 의사를 부르기 위해 병실을 달려나갔다
솔직히 지금의 소은해는 촬영팀의 수고고 뭐고 그런 것 따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작품에서 최상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것까지가 배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으니까.‘홍보는 너무 귀찮단 말이야... 그런데 하늘이랑 은정이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잠시 고민하던 소은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여동생을 향해 진지하게 분부했다.“하늘이 잘 지켜보고 있어. 옆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말고.”소은정 역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소은해는 마지막으로 김하늘의 손을 잡아준 뒤에야 자리를 떴다.그가 떠나는 걸 확인한 한유라가 얼굴을 움켜쥐었다.“은해 오빠 왜 저렇게 느끼해졌어? 나 막 소름 돋으려고 그래.”그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우리 오빠 원래 저런 사람이야. 밖에서 안 그런 척 하는 거지 사실은 얼마나 자상하고 애교도 많은데. 그렇지, 하늘아?”한유라와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김하늘을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소은정을 괜히 흘겨본 김하늘이 말했다.“그걸 왜 나한테 물어?”사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인정할 순 없었다.소은정은 또각또각 걸어가 김하늘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소은해가 껍찔을 다 깎아놓은 사과를 조심스럽게 잘라 포크로 찍은 뒤 김하늘에게 건넸다.“하늘아,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 수습 방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어. 이제 네가 억울하다는 것도 다 밝혀졌고 인터넷에 너에 관한 댓글도 거의 다 지워졌어.”“고마워...”창백한 얼굴의 김하늘이 미소를 지었다.만약 소은정이 집안 세력까지 이용해 여론을 누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사람들의 질타와 부정적인 시선속에서 살아가야 했을 것이라는 걸 김하늘도 잘 알고 있었다.어쩌면 정말 자기 의지대로 뛰어내렸을 수도...“하늘아, 그거 알아? 사건 터지고 바로 윤지섭 그 자식한테 갔는데 오빠가 그 자식을 이미 죽사발을 만들어 놨더라. 16층에서 던져버릴 생각이던데?”목이 메어오는 느낌에 소은정이 말끝을 흐렸다.
한유라의 진심어린 말에 소은정도 고개를 들었다.소은정과 시선이 마주친 한유라는 잔뜩 붉어진 눈시울로 싱긋 웃어 보였다.한동안 병실에는 김하늘의 훌쩍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내가 뭐라고... 가슴이 너무 아파. 아파서 죽을 것 같아…죽음 같은 정적을 깬 건 바로 소은정의 휴대폰 벨소리였다.소은해의 영상 통화 초대였다.“얼른 하늘이 좀 보여줘.”“...”하, 난 이제 아예 투명인간 취급이네.소은정이 휴대폰을 김하늘에게 건네자 김하늘은 눈물을 닦고 깊은 한숨까지 내쉬었다.한유라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축해 침대에 앉혔다.휴대폰을 든 김하늘의 시야에 완벽하게 세팅된 소은해의 모습이 들어왔다.아침까지 초췌했던 모습과 달리 지금 그의 모습은 누구나 다 아는 소은해의 얼굴이었다.‘오빠는 진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 하느님의 편애를 받는 사람이라는 게 그런 사람인 걸까?’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김하늘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던 소은해가 물었다.“왜 눈이 빨개? 혹시 머리 아파? 은정이한테 의사쌤 부르라고 해!”오버스러운 소은해의 반응에 피식 웃던 김하늘이 고개를 저었다.그 모습에 소은해가 다급하게 그녀를 말렸다.“머리 그렇게 흔들지 마. 너 지금 다쳤다고.”소은해의 말에 김하늘이 흠칫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녀를 걱정하는 소은해의 모습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무언가가 상처투성이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고 소은정에게 휴대폰을 던지듯 넘긴 김하늘은 이불로 얼굴을 덮어버렸다.“끊어.”짧게 말한 소은정은 바로 영상 통화를 끊어버렸다.잠시 후, 휴대폰을 확인하던 소은정은 김하늘에 관한 기사와 사진들이 거의 내려간 걸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페이지를 새로 고침한 뒤 가장 첫줄에 뜨는 기사 타이틀을 발견한 소은정의 눈이 커다래졌다.“소은해, 영화 시사회에서 갑자기 사라져?”‘으아... 결국 사고쳤네.’한편, 역
멋쩍은 얼굴의 소은해가 헛기침을 했다.“너희 둘만 있으니까 걱정되니까 그렇지. 그리고 기사는 오늘 시사회니까 당연히 뜨는 거지.”하여간 핑계는.“그래. 오빠가 직접 지키고 있어. 두 방해꾼은 이만 나가볼게!”소은정이 웃으며 일어서고 한유라도 그 뒤를 따랐다.“네, 방해꾼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윽, 창피해.’김하늘은 빨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이불을 홱 뒤집어 썼다.‘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사람 마음 흔들리게... 그래. 유라 말이 맞아. 나도 한 번만 이기적으로 살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야...’한편, 소은정과 한유라가 병원을 나서고 익숙한 차량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차에서 내린 전동하가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역시 환하게 웃던 소은정이 쪼르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눈이 더 예쁘게 휘어졌다.‘몇 시간 못 본 것뿐인데 좀 보고 싶었어...’항상 시크하던 소은정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한유라의 눈이 커다래졌다.뒤늦게 또각또각 다가온 한유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 굳이 내 앞에서까지 이래야 해?”그제야 전동하의 품에서 벗어난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가자. 집까지 데려다줄게.”‘하, 눈치는 있네.’“아, 유라 씨. 저기도 유라 씨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요.”고개를 돌린 전동하가 바로 옆에 주차된 흰색 마샬라티를 힐끗 바라보았다.순간 한유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누군데 저러지?’소은정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고 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만나고 싶지 않으면 우리랑 가요.”한유라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됐어요. 따로 볼일도 있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있고 싶지 않네요.”말을 마친 한유라가 또각또각 마샬라티를 향해 걸어갔다.고개를 끄덕인 전동하가 소은정을 위해 차문을 열어주고 싱긋 웃은 소은정이 차안으로 들어갔다.“가죠.”전동하가 기사에게 말하고 소은정이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누군데 그
전동하가 매력적인 목소리로 위로를 시작했다.“기분 풀어요. 차라리 은해 씨한테 줄 선물이나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선물이요?”“하늘 씨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선물은 해야죠.”갑작스러운 스킨쉽에 소은정의 얼굴도 달아올랐다.“글쎄요. 아직은 잘 몰라요...”“이번 일을 계기로 분명 달라질 거예요.”전동하의 미소에 소은정이 의심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내기 할래요?”“어떻게요?”소은정의 몸을 돌려 시선을 마주친 전동하가 말했다.“은정 씨가 지면 직접 요리해 주는 거예요. 어때요?”“그게 다예요?”너무 쉬운 조건이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그러고 보니까... 나 요리 잘 못했지? 게다가 동하 씨한테는 저번에 아팠을 때 흰죽 끓여준 거 말곤 제대로 된 요리는 한 번도 안 했네.”“그래요.”소은정 역시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져봤자 겨우 식사 한 끼 직접 대접하는 것이니 어려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내기는 무조건 그녀의 승리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소은해가 몇 개월을 쫓아다녔는데도 꿈쩍도 않던 김하늘이다.이렇게 쉽게 마음이 바뀐다고?‘아니야. 하늘이는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이야. 그렇게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진 않을 거야.’“일단 좀 자요. 그 동안 난 요리 좀 해놓을게요.”전동하가 소은정의 잔머리를 귀뒤로 넘겨주고 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녁쯤에는 깨워줘요. 다시 병원도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소은정은 나른한 하품과 함께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밤새 마음을 졸였던 탓일까? 침대에 눕자마자 피곤함이 밀려들고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소은정이 다시 눈을 뜬 건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 때문이었다.비몽사몽인 와중에도 배는 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주방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에 소은정이 흠칫했다.‘설마 아직도 요리 중인가?’궁금한
충격적인 기사 제목에 소은정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기사를 클릭해 보니 늦은 오후쯤, 소은해가 김하늘을 조심스럽게 부축하며 병원을 나오는 사진이 떡 하니 걸려있었다.사진 속 두 사람 모두 선글라스도 마스크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사진만 봐도 소은해의 조심스러움과 사랑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고 김하늘은 표정은 차가웠지만 손은 소은해의 팔 위에 자연스럽게 걸치고 있었다.그리고 열애기사가 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두 사람의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링 때문이었다.국민 배우의 열애설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팬카페는 서버가 다운될 지경이었다.“은해 오빠가 결혼이라고? 헐, 난 지금까지 오빠 게이인 줄 알았잖아.”“역시 김하늘이랑 사귈 줄 알았어. 오빠, 팬들은 어쩌고 연애라뇨!”“어쩐지 김하늘에 관한 기사가 너무 빨리 내려갔다 했어. 소은해가 뒤에서 손 쓴 거네.”“그 사진은 뭐야? 은해 오빠 지금 꽃뱀한테 당하는 거 아니야?”“뭘 제대로 알고 말하시지. 경찰 조사 내용 못 봤어? 윤지섭 걔가 죽일 놈이라고!”“오빠만 행복하면 돼! 오빠 응원할게요!”“소은해는 평소에 시크한 이미지 아니었나? 저렇게 자상한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오래 살고 볼 일이야...”소은정은 놀라서 커다래진 눈으로 댓글을 일일이 읽어보았다.응원 댓글도 있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댓글들도 있지만 소은해는 워낙 다른 사람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니 괜찮을 테고 김하늘도 소은해와 함께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선 걸 보면...‘두 사람 정말 사귀는 게 맞나 보네?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야?’식탁 위에 음식들을 내려놓은 전동하가 말했다.“일단 먹고 봐요.”소은정이 쪼르르 식탁 앞으로 달려갔다.“정말 사귄다고요? 동하 씨, 진짜 신기 같은 거 있는 건 아니죠?”잠 들기 전 한 내기의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올 거라곤 생각지 못한 소은정이었다.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소은정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풉, 귀여워.’“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