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아이, 그런 말은 하지 마...” 왕진은 눈물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왕정은 갑자기 기침하더니 입가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연은 깜짝 놀라 손으로 피를 받으며 외쳤다. “정아!!”무대 앞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상혁은 바로 일어나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지시했다. “길을 트고, 119를 불러야 해!”한창명은 눈살을 찌푸리며,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하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고,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지만 전혀 주저하지 않고 피를 받아내고 있었다. 이 순간, 그도 하연의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졌다.“이걸 쓰세요.” 한창명은 바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하연은 누구의 것인지 따질 겨를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피를 닦으며 지혈을 시도했다.왕정은 곧바로 응급차로 이송되었는데, 응급차에는 가족만 동승할 수 있었다. 하연은 왕진 모녀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숨을 고르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괜찮을까요?”상혁은 하연의 흔들리는 몸을 붙잡았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은 하연도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의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괜찮을 거야.”하연의 긴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녀는 힘이 빠진 듯 상혁의 품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한창명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옆에 있던 방송국의 한 고위층 인사가 웃으며 말했다. “최 사장님도 참... 저렇게 위독한 사람을 이런 자리에 데리고 오다니, 한 검사장님도 놀라셨겠어요.”한창명은 바로 굳은 얼굴로 말했다. “위독한 사람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아, 아닙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한 검사장님...” 한창명은 하연을 한 번 더 흘끗 쳐다본 후, 결국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걸그룹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뛰어난 춤과 노래 실력으로 수많은 팬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왕정은 10시간의 긴 수술 끝에 결국 숨을 거두었다.깊은 밤, 하
하연과 이현은 조문객들 뒤편에 서 있었고, 주변은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이현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분위기를 완화하려는 듯했다.여러 일을 겪은 하연은 더 이상 이현이 낯선 사람이 아닌,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요. 저와 상혁 오빠는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인연이에요.”이현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선 신중한 편이라 더 이상 묻지 않았다.“축하해요.”“손이현 씨.” 그가 고개를 약간 돌린 순간, 하연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그를 불렀다. 이현은 그녀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네?”그때, 계속 침목하고 있던 왕진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여기 왜 왔어?”그곳에는 한서영이 있었다. 그녀는 온통 검은빛으로 물든 장례식을 향해 새빨간 옷을 입고, 요염한 화장을 한 채 당당하게 다가오고 있었다.“아주머니, 따님이 떠났다고 해서 특별히 향이라도 하나 올리러 왔는데, 그렇게 나오실 거예요?” 왕진은 분노로 몸을 떨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부축했다.“나가! 넌 여기서 환영받지 못해!”하지만 서영은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무덤 앞으로 다가갔다. “참 예쁜 얼굴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마비된 걸까? 하긴, 이제라도 떠나서 다행이야. 자신도 괴롭고, 남까지 힘들게 한 삶이었으니까.” 이 말을 들은 하연은 당장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이현이 그녀를 단번에 붙잡았다. “지금 하연 씨가 나서는 건 좋지 않아요.”“근데 한서영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지금 당장 나가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경찰을 부를 거야!” 왕진은 분노로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아주머니, 왜 이렇게 손님 대접을 못 하셔? 우리 엄마의 자금 지원이 없었으면, 당신 딸이 목숨 연장할 돈을 구할 수 있었을까? 우린 같은 길을 걸었는데, 이제 와서 나를 미워하는 거야?”서영은 비웃으며 웃음을 터뜨렸고, 숨이 찰 정도로 웃었다. “아주머니가 했던 일들, 사람들 앞에서 다 까
하연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한서영이 대낮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난동을 부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한서영의 동작은 너무 빨랐다. 손이현이 즉시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만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서영은 그대로 하연에게 덮쳐 넘어뜨렸고, 칼을 든 손을 잔혹하게 휘둘렀다. 주위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하연은 즉각 머리를 돌려 가까스로 피했다.“한서영! 너 정말 미쳤구나!”하연은 서영의 손을 필사적으로 제압하려 했지만, 서영의 눈은 이미 피로 물들었고, 끝장을 보기 전까지는 포기할 기세가 아니었다.“내 인생은 망했어. 너도 나랑 같이 무덤에 들어가. 너희 집안도 우리 집안과 같이 무너져야 해!”서영은 몇 번이나 칼을 휘둘렀지만, 하연은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하연은 무릎을 끌어올려 서영의 하반신을 강타했고, 곧바로 몸을 돌려 서영 위에 올라탔다.“한서영!” 하연은 소리치며 서영의 뺨을 세게 때렸다. “네 오빠는 이미 감옥에 들어갔어. 너도 그렇게 되고 싶어?”“지금 안 들어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서영은 칼을 단단히 쥔 채, 주변 사람들을 경계했다. “이 모든 건 다 너 때문이야!”“왕씨 가문이 사람을 보냈어. 그 사람들은 우리를 망치고 우리 집안을 완전히 접수하려고 하지. 이것도 네가 꾸민 거 아니야?” 서영은 냉소를 지으며 갑자기 몸을 풀었다. “애초에 우리 오빠가 너를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 호랑이 새끼를 우리 집에 들인 거야. 내가 널 저주한 게 아니라, 너는 원래부터 재앙이었어!” 서영은 말을 끝내며 하연을 향해 침을 뱉었다.옷이 이미 엉망이 된 것을 본 하연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왕씨 가문의 책임자로부터 답이 오지는 않았지만, 한서영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그 집안의 책임자가 이미 한씨 가문을 처리할 준비를 끝마쳤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절박한 한서영이 이렇게 미쳐가고 있는 거야.’“한씨 가문의 몰락은 최하연 씨 때문이 아니야.”이현은 서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쉽게 그
하연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그런 일들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날 위해서 다른 일을 좀 해줘야겠어.” “무슨 일이죠?”“손이현에 대해 조사해봐. 그 사람의 모든 정보를 다 알아내 줘, 전부 다.”하연은 강조했다. 이에 정태훈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손이현 사장님요? 갑자기 왜 그분을 조사하려고 하시는 거죠?”요즘 일어난 사건들은 모두 손이현과 관련이 있었다. 원래 하연과는 아무 상관도 없던 사람이 이렇게 여러 사건에 관여하고 있었다.“학비도 기부금으로 충당해야 했던 고아가 어떻게 별장을 소유하고,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는지 궁금하네. 나도 좀 배워야 할 것 같아.”태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후, 추가 정보를 전했다. “이미 승진하신 전 지방검찰청 검사장, 정태산 검사장님께서 곧 B시에 오실 예정입니다. HD그룹 방문 일정이 잡혀 있고, 송 대표님과의 만남 가능성도 매우 큽니다. 그 사이에 약 30분 정도 시간이 생길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 최 사장님께서 송 대표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정태산 검사장님은 언제 오신대?”“모레입니다.”하연은 일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녀는 목의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상혁 오빠에게는 특히.”하연은 상혁이 자신을 걱정하는 걸 원하지 않았고,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황연지가 했던 말이 가슴 깊이 박혔기 때문이다. 사실 하연도 자신이 상혁에게 너무나 큰 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태훈은 약간 민망해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최 사장님의 비서예요, 부 대표님의 비서가 아니잖아요.”하연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 꽤 많은 걸 말했잖아.”묘지를 떠난 후, 이현은 곧바로 가게로 향했다. 거기에는 양한빈이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손 사장님, 도대체 무슨 일인데 전화로 말하지 않고 직접 보자고 한 거예요? 저도 바쁜 몸이라고요.” 양한빈이 농담을 던졌다.“한서영이 악
[창명이는 시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야. 내 학생 중에서도 창명이는 가장 규칙을 잘 지키고, 본분을 넘지 않는 애라고.]전화기 너머로 정태산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저는요?”[너? 너는 말로는 듣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엉뚱하게 행동하지. 거의 내 머리 위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나?]만약 조진숙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정태산은 사실 부상혁의 이런 행동을 참지 않았을 것이다. 상업에 종사하는 자가 정치에까지 간섭하며, B시의 두 거물을 몰락시켰다는 건 너무나도 지나친 일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여기까지 해도 충분했다. 더 이상 도울 수 있는 점이 없었다.상혁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정태산이 가장 아끼던 학생은 부상혁도, 한창명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은 모습을 감춘 정태산의 자랑스러운 제자였다.전화를 끊자, 황연지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오늘의 업무를 보고한 후,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부 회장님께서 다시 DL그룹을 장악하신 이후, 부남준이 자주 드나들며 사실상 실권을 쥐고 있는 듯합니다. 이사회에서도 부남준에게 극진히 예를 갖추고 있습니다.”“모두...” 연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말해.” 상혁이 다그쳤다.“모두들 대표님이 완전히 총애를 잃고, DL그룹에서의 지위도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 대표님을 지지하던 이사들마저도 지금은 흔들리며 저한테 상황을 물어보고 있습니다.”연지는 상혁이 FL그룹 일에 몰두하느라 DL그룹에서의 입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넌 뭐라고 대답했지?”“DL그룹의 구매팀과 재무팀은 여전히 저희 편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 대표님께서 DL그룹을 포기하실 생각이 없으니, 조금만 더 버티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부 회장님께서 화가 나 계시지만, 일이 끝나면 곧 돌아가실 거라고 말했습니다.”상혁이 눈을 들었다. 연지는 긴장하며 몸을 떨었다.“그게 내 지시였나?”“아닙니다...” 연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
“제가 할 일이 아니라니요? 겨우 꽃에 물을 줬을 뿐이에요.” 하연은 물 호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분명히 여름날의 시원함을 즐기는 듯, 물을 직접 자기 다리에 뿌렸다.물방울이 하연의 종아리를 따라 흘러내리며 잔디에 떨어졌다.상혁은 그 광경을 보고 목이 잠기는 듯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하연 쪽으로 걸어갔다.“대표님이 돌아오셨네요.” 가정부가 외쳤다.하연은 바로 물을 끄고, 물을 튀긴 손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 “언제 왔어요?”상혁은 여름 저녁 햇살 속에서 흰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어 더욱 눈에 띄었다. 그의 얼굴은 빛에 반짝이며 한층 더 매력적이었다.그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하연의 손에서 물 호스를 빼앗으며 말했다. “네 이름이 이제 ‘꽃연’이야.”하연은 잠시 멍해졌다. “무슨 소리예요?”“꽃에 물 주는 거 아니었어? 온몸이 다 젖었잖아.” 상혁은 그녀의 흠뻑 젖은 가슴을 흘끗 보며 말했다. 그곳은 이미 희미하게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하연은 순간 얼굴이 붉어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꽃연? 그거 꽤 귀엽네요. 정원이 이렇게 큰데, 우리 배나무 하나 심어요. 내년 봄에는 눈처럼 하얀 꽃을 볼 수 있을 거예요.”상혁은 물 호스를 높은 곳에 걸어 두었다. 하연은 그의 뒤를 쫓으며 말했다. “게다가 배도 먹을 수 있잖아요.”그녀의 생각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상혁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농업실습 수업은 들은 적 있나?”하연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때는 수학 성적이 워낙 나빴던 탓에 보충수업에 남아야 했고, 실습수업에는 참석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오빠도 알잖아요. 나는 물리도 항상 꼴찌였어요.”상혁은 그 시절을 기억하며 웃었다. “맞아, 여름에 나무를 심으면 봄에 심은 것보다 안 자라.” “그래도 해봐야죠.” 하연은 질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상혁은 그녀의 목에 붙은 반창고를 보고 얼굴빛이 변했다.“목은 왜 그래?”하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조진숙은 상혁에게 등을 진 채, 어항 속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미묘한 어조로 말했다. “너, 아주 바쁜 사람이 되었더구나. 나를 만나려고 일정까지 조율해야 하다니.” 상혁은 표정을 거두고, 다른 어항의 먹이를 찾아 조진숙에게 건네며 말했다. “저 바쁘지 않아요.”“정말?” 조진숙은 분명히 화가 나 있었는데, 날카로운 어투로 말하며 상혁을 흘겨보았다. “FL그룹에서 잘나간다고 하던데, 그쪽 일에만 온 마음을 쏟는다고 들었어.”“황 비서가 그러던가요?”“누가 말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그게 사실이냐는 거지!”상혁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는 차가워졌다.“네, 맞아요.”“맞아?” 조진숙은 화가 치밀어 올라 상혁이 건네준 어항 먹이를 단번에 쳐내며 바닥에 떨어뜨렸다. “너, 얼마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니? DL그룹에서 잠시 물러날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네가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고는 안 했잖아. 그런데 지금 이 꼴이 뭐니?”상혁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가슴은 들썩였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제가 DL그룹으로 돌아가지 않은 걸 탓하시네요.”“최소한 뭔가 행동은 보여줘야지!”“무슨 행동이요, 아버지에게 가서 사과하란 말씀이신가요?”두 사람은 마주 서서 대치했다. 조진숙은 아들을 한동안 응시한 후 말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거니? 나는 B시에 와서 송혜선과 정면으로 맞섰어. 송혜선의 행동은 원래 내가 무시할 만한 거였고, 신경 쓸 가치도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부남준은 야망이 커. 이렇게 두면 DL그룹은 결국 부남준의 것이 될 거야.”이때, 하연이 계단에서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다가 두 사람의 언쟁을 듣고 멈칫했다.“진숙 이모...”조진숙은 하연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여전히 상혁을 향해 경고했다.“이제 너도 꽤 성장했구나. 네 회사를 차려서 잘나간다지만, FL그룹이 아무리 잘돼도 DL그룹의 손가락 하나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 같니? 부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이름, DL그룹의 이사라는
그날 하연은 상혁과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상혁 역시 DL그룹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았다. 서로 간에 묘한 침묵 속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며칠 후, 정태산이 B시에 도착했고, 공식적인 행사를 마친 뒤 비로소 개인 일정이 시작되었다.상혁은 고요한 정취가 흐르는 수연정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국악 공연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으로, 그의 방문 소식을 들은 주인은 특별히 유명한 명창을 초대해 무대에 올렸다. 지금 상혁은 정자에 서서 푸르른 여름 풍경을 배경으로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고고한 양반가의 우아한 도련님을 떠올리게 했다.황연지는 그곳에 도착해 상혁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가가며 말했다.“부 대표님, 우희서 씨가 도착했습니다.”연지 옆에 서 있는 우희서는 수수한 옷차림으로,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도 여전히 단정한 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얼굴에는 은근한 매력이 감돌고 있었다.“부 대표님.” 희서가 인사했다.상혁은 호수에 핀 한 송이 연꽃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지난달에‘NIGHT'에서 10억을 벌어들여 1위를 했다고?”희서는 솔직하게 보고했다. “B시에는 재벌 2세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저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부남준이 좋아했어?”“제 지위로는 아직 부남준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남희가 중간에서 처리했습니다. 남희는 다음 주에 부남준이 돌아오면 저를 부남준과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NIGHT’은 단순한 클럽이 아니었다. 클럽이란 돈만 있으면 부유층이나 연예인이 쉽게 열 수 있는 곳이지만, ‘NIGHT’ 같은 최고급 클럽은 엄청난 인맥과 자본 없이는 성립할 수 없었다. 한때 ‘NIGHT’은 단속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 안에는 유능한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모두 남희의 지휘에 따랐다. 그리고 그 남희 위에는 바로 부남준이 있었다.우희서는 저번 단속 이후, 부상혁이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스파이’로서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