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상혁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것은 마치 부씨 가문의 복잡한 관계를 은근히 비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연은 더 이상 대응하고 싶지 않았고, 지쳐가는 마음을 느꼈다.상혁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거친 손길로 하연을 자신의 품속으로 확 끌어안으며, 날카롭게 말했다.“그러면 한창명에게 물어보지 그래? 그 사람이 너를 위해 자신의 앞날을 포기할 수 있는지. 설령 그렇다 해도, 끝까지 널 지킬 수 있을 것 같아?”하연은 창피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미 말했잖아요! 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요! 당신만 아니었으면, 애초에 이런 곤경에 빠지지도 않았을 거예요!”“그래서 후회해?” 상혁이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밀착시키며 낮게 속삭였다. “너와 나 사이, 단지 몇 년간의 얽힘이 아니라, 그 전부터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거잖아. 네가 지우고 싶다고 해서 지워질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지.”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얽히자, 하연은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상혁은 마치 거대한 산처럼 하연을 압도하며 밀어붙였다.“나와 헤어지고 싶다면, 먼저 이 모든 걸 정리해.”하연은 상혁이 하는 말에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내가 헤어진다는 말을 꺼낸 건 그저 내 순간적인 감정이었을 뿐인데, 지금 이 나쁜 놈은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고 있어!!’ “먼저 나를 놓아줘요. 밖에 사람도...” 그녀는 상혁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바깥에서 오가는 발소리와 대화 소리, 이 모든 상황은 더욱 긴장감 넘치고 금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상혁은 하연의 머리를 꼭 붙잡고, 일부러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떨어져 있는 동안, 난 네가 너무 그리웠어. 넌 나를 그리워하지 않았어?”하연은 억지로 침착하게 말했다. “안 그리웠어요!”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상혁은 더욱 강하게 하연을 끌어안았고, 두 사람은 옷 너머로 서로의 뜨거운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다시 대답해. 그리웠어, 안 그리웠어?”하연은 다리 사이에 느껴지는 상혁의
밖에 있는 여자들은 ‘그런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화장을 고치고 다시 자리를 향해 나섰다.하연은 상혁이 이곳에서 이렇게 대담하게 행동할 줄 몰랐기에 몸을 지탱할 힘도 없이 그의 품에 기댄 채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쉬어 있었다.상혁은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속삭였다. “왜 울어? 여긴 집이 아니야, 소리 내면 안 돼.”하연의 집이나 상혁의 집에서는 공간이 넓어 목소리가 새어나갈 걱정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상혁은 하연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녀가 목이 쉬어가며 간절하게 애원하고, 때론 투정 부리는 그 목소리를.상혁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밖에 나가면 주경미 사모님에게 뭐라고 말할 거야?”하연은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당신이 화장실에서 여자랑 바람피웠다고 말할 거예요.”상혁은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묻는다. “네 이름도 같이?”하연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큰소리치고 싶다면 해봐요.”상혁은 하연의 힘없는 반응에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기 시작했다. “한창명은 너에게 맞지 않아, 연아. 한서준이 널 끌어들인 건, 내가 반드시 뼈저리게 후회하게 할 거야. 그리고 왕진을 찾았어, 병원에서 자기 딸과 함께 있어. 시간 될 때 한 번 들러봐.”그는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획된 상태였음을 밝혔다.하연은 상혁의 주도면밀함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하연의 머릿속이 하얘지고, 몸도 덩달아 흔들렸다. 상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간신히 제압했다.바로 그때, 밖에서 식당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사장님, 여기 계세요? 주경미 사모님께서 찾으십니다.”하연은 화장실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자, 상혁이 재촉했다. “대답해.”하연은 온 힘을 다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금방 나가요.”하지만, 상혁의 손길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하연은 간신히 신음을 참았다.식당 직원은 다시 한번 말했다. “주경미 사
상혁도 그 분위기를 감지한 듯, 고개를 돌려 하연을 바라보았다.말은 없었지만, 하연은 상혁이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한 검사장님, 안녕하세요.”하연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상혁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은 망설임 없이 단호했다.한창명도 손을 내밀며 맞잡았다. “하연 씨, 아니 최 사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요즘 명성이 대단하던데요.”그의 말투는 공적이었는데, 하연은 곁에 서 있는 이현오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한 검사장님께서도 저를 알고 계시다니, 영광입니다.”이현오는 하연의 시선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주경미가 대화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유, 창명아, 여자랑 얘기할 때도 일에 관한 말을 하다니, 어서 들어와 앉거라.”주경미는 부상혁보다 한창명을 더 좋아한다.하연은 한창명을 처음 보았지만, 그의 이름은 여러 번 들어보았다. 한창명은 정직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유명했다. 하연이 실제로 마주한 한창명은 소문 그대로였다. 단정하고 성실한 모습, 부상혁의 온화함보다는 진지함과 엄격함이 더 두드러지는 사람이었다.한창명은 하연에게 사과하며 차를 따랐다.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최 사장님께 차를 올리겠습니다.”한창명도 하연을 처음 대면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그녀는 현실에서 훨씬 생기 넘쳤다. 주경미는 이 둘을 잘 엮기 위해, 옆에서 휴게실을 열어놓고 가벼운 게임을 제안하며 분위기를 풀어갔다. 하연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의미심장하게 한창명의 곁에 있는 이현오를 바라보았다. “이 늦은 시간에 비서까지 대동하셨군요. 업무가 있으셨나요?”한창명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현오를 힐끗 보았다. “오기 전에 일이 좀 있었는데, 지금은 다 처리됐습니다.”“이 비서, 먼저 돌아가도 돼.”이현오는 긴장한 얼굴로 하연을 보며 다시 한번 당부했다. “검사장님, 몸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너무 무리하지
하연은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이 일 뒤에 이런 사정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아까 보니까, 최 사장님과 부 대표님의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 같던데요?” 한창명은 약간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사를 엿볼 생각이 없었지만, 이번 사건이 끝나지 않은 듯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부상혁과 최하연이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연을 만나기로 했다.하연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한창명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왜 웃으시죠?” “한 검사장님, 정말 예리하시네요. 좀 더 일찍 뵐걸 그랬어요. 지난번에 한 검사장님을 만났다면, 그렇게 당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무슨 뜻이죠?”“너무 분명하게 말하면 재미없잖아요. 한 검사장님은 수사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한 번 해보시죠? 제가 제공한 정보가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하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검사장님, 주경미 사모님께 저는 먼저 가보겠다고 전해주세요. 다음 만남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하연은 긴 복도를 따라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때, 모퉁이에서 한 인물이 나타났고, 떨리는 목소리가 뒤따라왔다.“최 사장님...”이현오였는데, 아예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이현오의 영리한 얼굴은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최 사장님, 지난번 일은 제가 선을 넘었습니다. 술을 마셔서 정신이 없었을 뿐입니다. 사과드리러 왔어요. 최 사장님, 넓은 마음으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하연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 비서님, 그때는 무섭지 않으셨나 보네요. 이제 와서 사과하는 건,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그날 손이현이 없었다면, 하연이는 정말 큰일이 났을 것이다.이현오는 처음 B시에 왔기에 최하연의 신분을 몰랐고, 그녀가 한창명과 직접적으로 얽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현오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적당한 기회를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현오는 손을 비비
상혁의 얼굴은 물처럼 차분했다. 그는 하연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조용히 차 문을 열며 말했다. “타.”하연은 국세청 직원 김은석이 데려다줬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녀는 보는 눈이 많은 상황에서 계속 상혁과 대치할 수 없어 말없이 차에 올랐다. 운전기사는 칸막이를 올려 모든 소리를 차단했다.“방금 이현오가 왜 널 찾았어?” 상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연은 시선을 허공에 두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 “별거 아니에요.”“이현오가 널 보는 눈빛이 이상했어. 내가 조사할까, 아니면 네가 직접 말할래?” 상혁은 이미 그 상황을 눈치챘지만, 많은 사람 앞이라 참았던 것이다.하연은 상혁이 조사하면 모르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뒷좌석에 기대며 대답했다. “한창명이 나한테 좋은 인상을 받았나 봐요. 그래서 이 비서에게 다음에 만날 시간을 잡으라고 한 거죠.”말이 끝나자마자 하연의 팔에 통증이 느껴졌다. 상혁이 하연을 강하게 당겨 품에 안았고, 강제로 그녀의 다리를 벌려 무릎 위에 앉혔다.상혁은 하연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했다. “거짓말.”“부 대표님께서 저와 다른 남자의 만남을 허락하신 거잖아요. 제 매력에 대해선 인정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집착과 고집이 숨겨져 있었다. “말했잖아, 한창명은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상혁은 등을 기대며 다리를 흔들었다. “이현오는 이미 밖에 나와 있었어. 한참을 서성이다가 갔지. 그런데 한창명이 보냈다고?” 하연은 상혁이 처음부터 떠나지 않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거짓말이 들통난 하연은 할 수 없이 설명했다. “서태진의 약점을 잡기 위해서 이현오에게 접근했었어요. 이현오의 사무실에서 이현오가 나를 추행하려 했고요. 아까 와서 그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빌더군요.”하연은 일부러 부남준의 존재를 생략했는데, 설명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무심하게 말했
하연은 밤새 바쁘게 일을 하고 나서 정말 피곤했다.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안내로 집에 들어서자마자, 창가에 서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최하경을 보았다.“하경 오빠?”하경은 하연의 목소리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상혁이가 너를 데려다줬어?”차의 불빛이 밝았기 때문에 하경은 이미 모든 것을 다 보았다.하연은 발끝을 바라보며 약간 어색하게 말했다. “나와 상혁 오빠의 사이가 좀 복잡해졌어요.”하경은 하연 앞으로 다가가 동생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며 무겁게 말했다. “복잡해진 건 너희가 아니야. 상혁이가 복잡해진 거지. 상혁이 너에게 한 가지를 숨겼다면, 앞으로도 더 많은 걸 숨길 수 있어. 잘 생각해서 계속할지 말지 결정해.”하경이 상혁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의외였던 하연은 물었다. “오빠,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하경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며칠 전 하연과 헤어진 후 바로 호텔로 가 상혁을 찾아갔던 일을 떠올렸다.그때, 하경은 책상에 손을 짚고 상혁을 몰아붙였다. “네가 내 프로그램을 해킹했다는 게 말이 돼? 솔직히 말해, 해킹한 사람이 너 맞아?”상혁은 전혀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경아, 나도 전에 컴퓨터공학 전공했었잖아.”“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너는 이미 전공을 바꿨고, 당시 네 실력으로는 지금 내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건 불가능했을 텐데, 어떻게 한 거야?”하경은 강하게 몰아붙였다. 상혁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에 좌절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경쟁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이렇게 부족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취미로 가끔 연구했어. 하경아, 진정해.”상혁은 업무가 바쁜 듯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하경은 상혁이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상혁아, 우리는 오랜 친구였고, 학창 시절부터 친형제 같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별로 없네. 너는 너무 많은 일들을
마침 한가했던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같이 봐요.”하성은 바로 하연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최하성의 연예계 친구였고, 하성은 촬영장을 방문한다는 명목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차가 촬영장 입구에 멈추자, 하성과 하연은 기자들이 촬영장 안으로 미친 듯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았다.한서영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손에는 여행 가방을 질질 끌며 몹시 초라해 보였다. “당신들이 나를 해고할 순 없어! 나는 드라마의 서브 여자 주인공이야! 촬영도 거의 끝나가는데! 이건 계약 위반이야!”“그런 추문이 터진 건 당신 잘못이지. 우리가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 얼른 나가! 당장!”스태프들은 한서영을 강제로 밖으로 밀어냈다.기자들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한서영 씨, 온라인에 올라온 영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정말 어떤 재벌가의 애인이에요? 그 영상도 그 재벌가와 관계가 있었던 건가요?”“한서영 씨! 한서영 씨!”“꺼지라고!” 서영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비명을 질렀다. “다 거짓말이야! 나는 연예인이야.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하지만 그 영상은...”서영은 격분하여 기자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한마디만 더 하면 네 입을 찢어버릴 거야!”기자는 비명을 질렀다. “어머! 한서영 씨가 폭행했어요!”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하연과 하성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기회를 줘도 어리석은 여자는 그걸 잡지 못해.”서영이 몰락하고 이방규가 모습을 감춘 지금, 서영이 맞이한 이 비참한 결말은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속이 시원해진 하성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웃음소리는 서영의 주의를 끌었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최하연?!!”“너구나! 네가 그 영상을 퍼뜨린 거야... 감히 여기까지 오다니!”서영은 소리치며 달려들려 했지만, 보디가드가 그녀를 제지했다. 서영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이야?”[사장님,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이현오가 사고를 당했어요.]하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젯밤에도 봤던 사람이 갑자기 사고를 당했다고?’그녀는 바로 상혁을 떠올렸다.태훈은 하연에게 영상을 하나 보냈다.영상 속은 어두운 밤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진 번화한 거리, 바의 간판들이 고층 건물에 걸려 반짝였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촬영자는 원래 야경을 찍고 있었지만, 갑자기 아래에서 차량의 굉음이 들려왔다.차에서 내린 이현오는 단정한 차림이었고, 조용히 회관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발에 차인 그는 회관에서 튕겨 나와 도로에 세차게 떨어졌다. 이현오를 향해 다가오는 것은 얼굴을 가린 대여섯명의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조직폭력배였다. 이현오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당신들, 누구야!”두 명의 남자가 이현오를 붙잡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현오를 사정없이 때리고 발로 찼다. 이현오의 비명이 거리 전체에 메아리쳤지만, 그를 폭행하는 자들은 조금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도로에는 피가 낭자했다.그 누구도 이현오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마지막에 이현오는 울부짖을 힘도 남지 않은 채, 도로에 쓰러져 기진맥진했다. 그는 두 손을 들어보려 했지만, 힘이 없었다. “너희들... 너희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촬영자는 공포에 질려 손을 떨고 있었다. 영상이 끝나기 직전, 하연은 거리의 끝에서 익숙한 차를 포착했다.그것은 애스턴마틴이었고, 차창 안에서 희미하지만 붉게 빛나는 담뱃불이 보였다.태훈은 하연이 영상을 다 본 것을 확인하고서야 서둘러 말했다. [원래 뉴스에 나갈 예정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차단됐어요. 아마도 이현오의 신분이 민감한 사항이라 그럴 겁니다.]“그럼 이 영상은 어디서 난 거야?”[비록 공개되진 않았지만, 내부 사람들 사이에선 다 퍼졌어요. 모두가 한창명 검사장님의 비서가 맞았다는 걸 알고 있는 셈이죠.] 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