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소울 칵테일은 외진 곳이 아닌 도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방규의 비서가 이렇게 보고한 이유는 손님이 정말 적어서, 때로는 하루 종일 다섯명도 드나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개업 당시의 활기도, 인기 있는 사람의 마케팅도 없어서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도심 한가운데에서 고립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소울 칵테일의 서쪽에는 멀지 않은 인공호수가 있었는데, 곧 해가 질 무렵이어서 석양이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방금 손님을 만난 상혁이 창가에 서자, 강성훈이 들어와 찻잔을 정리하며 물었다.“부 대표님, 차를 좀 더 드릴까요?” 고개를 돌린 상혁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성이 뭡니까?” “강 씨입니다. 편하게 성훈이라고 불러주세요.”성훈은 단정한 얼굴의 소유자였으나, 눈빛이 매우 예리했다. “차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같지는 않은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하는 건 잘하시나 봅니다.” 고개를 숙인 성훈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부 대표님, 아닙니다. 저는 학벌도 좋지 않고, 큰 뜻도 없어요. 부 대표님 같은 분들이 하시는 일은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차나 찻잎은 단순하고 깔끔하지만, 사람은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법이죠.” 상혁은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부 대표님은 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셨어요.” “뭐라고요?”“언제나 당당하신 부 대표님께서 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신 건, 조금 성급하셨던 것 같네요.성훈이 한 마디 더 덧붙였다.상혁은 한쪽의 노트북을 느릿느릿 닫고 창문 앞에 반쯤 기대었다.“저는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직원이라면 제가 여기서 일하는 모습을 궁금해하고, 주시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그쪽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죠. 아주 침착한 게... 평범한 사람과는 달라요.” 성훈은 다기를 꽉 쥐었지만, 어떠한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부 대표님, 칭찬이 과하십니다. 그런 과한 평가는 조금 부담스럽네요.” 이때, 문밖에서 어떤
이현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사실, 부 대표님의 일을 제게 보고할 필요는 없습니다.”상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물고기가 먹이를 먹는 것을 주시했다.“후에 HT그룹이 조사받기 시작하자, 이 사건이 발각될까 두려웠던 그 도시계획국장이 저에게 협력하자고 하더군요.” 이현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설마... 그까짓 협력 따위로 십여 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원래 없었던 것처럼 둔갑했다는 겁니까?” “HT그룹의 한서준 대표는 좋은 분이셨어요. 그 사람들이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충분한 배상금을 지불했거든요.” 이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그래요?” 상혁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 사장님은 참 정의로운 것 같네요. HT그룹과 같은 기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업이라면, 어떤 기업이라도 싫어합니다.”이현이 한마디 한마디 대답했다. “그럼 HT그룹이 무너지기를 바라겠네요?” 탐색적인 질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현이 조금 긴장을 풀며 말했다.“그건 부 대표님께서 하실 일이지,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이 말을 마친 상혁이 옆에 있는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현의 곁을 지나려던 찰나, 멈춰선 그가 말했다.“내일 또 오겠습니다.” 어둡고 좁은 복도를 가로지르는 상혁의 그림자는 경쾌하고 가벼워서 안개처럼 떠 있는 듯했다. 황연지가 상혁의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훈이 빠른 걸음으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아까 부 대표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룸으로 들어선 이현이 조금 전까지 상혁이 있던 위치로 걸어갔다.“HT그룹이 무너지길 원하냐고 물었어.” 성훈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설마, 진짜 신분을 알아낸 걸까요?” 이현은 상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탐색이 아닐 거라는 짙은 의심이 들었다.“이수애는 요즘 어때?” “예전처럼 먹고 마시고 놀면서 사모님 놀이나 하고 있어요. 한서준도 마음
“비밀도 좀 있어야죠.”미소를 짓는 상혁은 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아크로리버파크로 돌아가기 전, 하연은 조진숙이 좋아하는 요리를 포장하기 위해 식당에 갔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상혁이 말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스스로 주문할 줄도 아시는 분이니까.”“그거랑 이게 어떻게 똑같아요. 제 마음이 담겨야 음식을 먹는 진숙 이모도 기쁠 거예요.”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싼 상혁이 가볍게 몇 번 두드렸다.“딸로서의 효심이야, 아니면 미래의 며느리로서의 효심이야?” 하연은 이미 그의 농담에 면역이 되었다.“당연히 딸이죠.” “미래의 며느리라는 정체성에는 자신 없다는 거야?” “그건 오빠가 하기에 달린 거죠.”옆으로 몸을 돌린 하연은 그의 턱을 움켜쥐고 약간 유혹했다.“부 대표님이 얼마만큼의 성의를 가졌는지, 얼마나 많은 혼수를 가지고 장가를 올 건지 봐야 하니까요.”여자는 본래 강한 매력을 지닌 존재라서 의도적으로 유혹하는 표정을 지으면, 사람의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 법이었다. 상혁이 움츠러들던 하연의 손가락을 붙잡았다.“원하는 대로 줄게.”상혁의 눈빛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고, 하연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뜨거워졌다.“농담이에요.” “나는 농담하는 거 아니야.”상혁이 그녀의 귓가에 얕고 뜨거운 숨결을 내쉬었다.“줄게, 뭐든.” 입술을 오므린 하연의 마음은 꿀처럼 달콤해졌다.‘상혁 오빠가 곁에 있으면 모든 게 다 좋아 보여.’ 두 사람이 아크로리버파크에 다다르자, 이제 막 돌아온 조진숙이 기세등등하게 차에서 내리며 피곤하다고 소리쳤다. “이수애 여사라고 했던가? 돈을 아주 흥청망청 쓰더구나. 하마터면 도시의 모든 가게를 돌아다닐 뻔했어. 내일은 없는 것처럼 돈을 쓰더라니까?”하연이 포장한 음식을 꺼내며 미소를 지었다.“고생하셨어요, 진숙 이모, 직접 나서신 거예요?” 조진숙이 손을 내저었다.“그 여자가 나를 본 적 있어서 직접 나설 수는 없겠더구나. 그래서 친구한테 부탁을
그 사람들은 앞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는데, 모두 헤드셋을 끼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매우 집중하고 있었다. 이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훈을 불렀다. “어서 이리 와. 손님들을 푸대접하지 말고.”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귀라도 먹은 겁니까? 당장 나가세요!”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람은 성격이 매우 거친 사람이었다. 그가 노호하며 말했다. 이현이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이게 저희의 예의입니다. 여러분이 필요 없다 한들, 저희는 여쭤봐야 하는 법이죠.” “남의 말을 못 알아먹는 거야, 뭐야?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당장 꺼지라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곧 인내심이 바닥날 것 같았기에, 이현과 성훈을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이현이 갑자기 백핸드로 그를 밀었고, 빠르고 간결한 힘으로 그를 소파에 눌러 제압했다.“성훈아! 당장 노트북 전원을 뽑아!”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울부짖었다.“아, X발!” 하지만 그들도 만만치 않았는데, 재빨리 일어나 노트북을 끄고, 성훈의 행동을 저지한 것이었다.“이런 쪼끄마한 곳에 숨은 고수가 있을 줄이야!” 이 말을 마친 사람들이 잇달아 찻잔을 깨뜨리며 성훈과 싸움을 벌였다.“역시 무술자였군!”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곧바로 일어나 이현을 땅에 내던졌고, 주먹을 내리꽂았다. 하지만 이현이 몸을 굴려 피하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과 어떤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왜 날 괴롭히려는 겁니까?”이현이 약간 숨을 헐떡였다.“잘못은 당신들이 했잖아요. 감히 손님들의 사생활을 엿보다니... 이 문제가 터진다면 나는 망하고 말 거라고요!” 날카로운 이현의 눈빛은 모든 것을 간파하는 듯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침을 뱉었다.“너 같은 자식한테 발각될 줄이야. 이제 몸을 사릴 필요도 없겠군!” 순식간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룸이 주먹질로 난장판이 되었다. 이현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많은 상대의 잔인한 공격을 버텨내기에는 무리였다. 성훈이 저항하며 외쳤다.“사장
이 사람들이 한 짓은 목숨을 바친 것이지만, 부상을 당할지언정 감옥에 갇혀 자유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형사님, 말다툼을 좀 했는데, 오해하신 모양이네요!”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이현을 풀어주며 두 손을 들었다. “말다툼이요? 피가 다 터졌는데 말다툼이라고요? 패싸움이겠죠!”하연은 이현의 손에 묻은 피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저 사람들이 자기 손에 있는 것이 가짜 총이라는 것을 알아차릴까 봐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손이 땀투성이가 된 그녀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당장 나와서 일렬종대로 서세요!” 그 사람들을 주저했지만, 총에 두려움을 느끼고 룸에서 나왔고, 삐뚤삐뚤하게 서 있었다. 룸에 있던 성훈이 급히 이현을 일으켜 세웠다.“괜찮으세요, 사장님?” 하연이 재빨리 걸어가서 총으로 그들을 가리켰다.“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휴지 몇 장을 뽑아 피를 닦았다.“불법 도청이에요.”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이어폰이 놓여 있었다. 이 말을 들은 하연이 자신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질책했다. “경찰에 신고할 줄도 모르세요? 왜 이런 일에 직접 나서신 건데요? 목숨을 걸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녀의 눈총과 초조함은 진심이 담긴 것이었기에 이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경찰에 신고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최 형사님이 제때 오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하연은 더욱 화가 났다.‘아직도 농담이 나오나?’ “당신들, 대체 뭘 도청한 겁니까?”하연이 큰 소리로 물었다. 이현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최 형사님, 지금은 그걸 물어볼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 상황이 어느 정도 통제된 것을 본 하연은 그들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지원 동료들이 곧 도착할 거니까 순순히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을 거예요. 혹시라도 도망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감당하셔야 할 겁니다!” 이 말을 마친 하연은 쪼그리고 앉아 이현의 상처를 살펴보았다.“어디를 다친 거예요
방금 경찰에게 잡혀간 사람들은 상혁의 전속 룸에 도청기를 설치했는데, 그의 대화 내용을 도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만, 기민한 이현이 이토록 빨리 그들의 계략을 발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들은 불법 도청에 대한 모든 것을 자백했다. 경찰관은 그들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고 대답할 뿐이었다.“저희가 귀신한테 홀렸나 봐요. DL 그룹의 정보를 팔아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그만...” 상혁이 무관심하게 입을 열었다.“모두 일상적인 이야기였고, 아무런 정보도 없었습니다.”이 사건은 나호중을 놀라게 했는데, 상혁의 저명한 신분 외에도, 그와 대화를 나눈 사람이 고위 간부로, 직위가 낮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던 찰나, 상대가 말했다.“나 서장님, 나 서장님의 관할구역은 그다지 안전한 곳이 아니군요. 친구와 나누는 대화도 도청될 우려가 있으니까요.” 나호중은 부끄러워 얼른 사과했다.“단속을 강화하겠습니다.”비록 세무서와 FL 그룹 이사 간의 비공식적인 대화는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경찰이 확인한 결과, 그들의 컴퓨터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오늘은 일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삼촌의 따님이 얼마 전에 막 18세 생일을 맞았다고 들었는데, 제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기 때문이에요.” 전파를 타고 들리는 상혁의 목소리는 맑고 온화했다. “상혁아, 뭐 이런 걸 다... 너무 귀중해서 받을 수 없을 것 같구나.’ “귀중한 물건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규정은 준수해야 하니까요.” 이 말을 끝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경찰 직원은 도대체 어떤 선물이기에 규정에 맞다는 것인지 검사할 수 없었다. 상대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냐하면 몇십 분 전, 여기까지 말한 상혁이 몸을 숙여 탁자 아래에 있던 두 개의 도청기를 꺼내서 부숴버린 장면이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이게 뭐야
옛날얘기를 언급하자, 이현이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나른한 모습을 보였다. “다 지난간 일이잖아요.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서장님이 신경 쓰실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나호중이 이현을 살펴보았다.당시 활기 넘치던 남자아이는 이미 성숙하고 듬직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모처럼 당시의 기질을 엿볼 수 있었던 나호중이 한숨을 내쉬었다.“참 아쉬웠지. 너는 그때 팀에서 가장 용감하고 전도유망한 사람이었어. 근데 지금 꼴을 좀 봐라. 옛날에 네가 데리고 있던 양한빈도 팀장이 되었는데, 넌...” 이 말은 못이 되어 귀에 박히는 듯했다. 이현이 몸을 일으켰다.“됐습니다, 나 서장님. 저를 좀 보세요.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까? 잘 먹고 잘 마시잖아요. 예전보다 못하다고 할 것도 없어요.”나호중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장실을 나서면 긴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막 출동에서 돌아온 듯한 경찰들이 보였다. 그들의 몸은 깨끗하지 않지만, 모두 의기양양하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현은 복도에 서서 한참이나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나호중이 한 말이 번뜩였고, 그의 표정도 옅어져만 갔다. 시선을 거둔 그가 한 줄기의 그림자로 시선을 옮겼다. 한 여자가 문 앞에 반쯤 엎드려 안쪽 상황을 자세히 살피려 했다. 들킬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민첩하고 교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현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번졌다. 마주 오던 양한빈이 그에게 인사하려 했지만, 그는 검지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그 여자의 뒤로 다가가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깜짝 놀란 하연은 온몸이 거의 튀어 오를 뻔했다. “어떻게 손 선생님이...”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뭘 그렇게 봐요?” “상혁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요.”그녀는 잘못을 저지르고 벌서는 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현이 안쪽을 힐끗 바라보았는데, 상혁은 진술서 아래에 서명하고 있었다. “제 설명이 필요
“타.”상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지는 잠시 혼란스러웠다.‘나한테 하는 말이 맞는 걸까?’“부 대표님?” “최하연.”상혁이 이름을 불렀다.그는 ‘최하연’이라고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정말 화가 나지 않는 이상. “누가 말한 거 아니에요? 기사님도 들으셨어요?”하연이 옆에 있는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땀을 뻘뻘 흘리던 운전기사는 웃음을 짜낼 수 없었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이십니다.” “그럼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오빠는 항상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걸 좋아하니까 오빠의 마음에 맞춰 줘야죠.” 하연이 안전벨트를 맸다.남자는 갈고리를 숨긴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방금 나호중한테 정의로운 행동을 한 최하연에게 상을 수여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언제나 정의로운 분이시잖아?” 하연이 목을 곧추세우며 말했다.“그럼 사람이 다친 걸 보고도 가만히 있어요? 나는 누구와 같은 냉혈한이 아니에요.” “나는 그까짓 상처로 죽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잠시 침묵하던 하연이 웅얼거리며 말했다.“와, 속 좁은 것 좀 봐. 이 정도 일로 화를 낸다고?” “여전히 초등학생처럼 일을 해결하려는 건가?”하연은 어렸을 때 정말 유치한 사람이었기에, 누군가 자신을 화나게 하면 그 사람과 함께 앉지 않았다. 상혁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하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뒤로 와.”상혁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하연은 정말 화가 나지 않았을뿐더러, 그가 기분을 풀어주려 하자, 재빨리 안전벨트를 풀고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과하세요.”“내가 무슨 사과를 해?”상혁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날 내버려뒀잖아요.” 마침내 차량에 시동이 걸리고, 한숨을 돌린 운전기사가 가림막을 올렸다. “내 손이 그렇게 베었어도, 그 정도로 걱정하진 않았을 거잖아.”상혁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며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오빠는 내 남자 친구잖아요. 다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