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마침 하연과 상혁 쪽으로 불빛이 비춰졌는데 두 사람은 길가의 눈부신 풍경이 다름없었다.상혁은 하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말했다. “내기는 일단 다음에 하는 거로 하고 두고 보자고.” 이 순간 서준의 차량이 길가로 들어오고 있었고 모든 걸 봐 버린 그는 안색이 어두워진 채 이를 악물었다. 이때 동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한명준이 나와 다투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이에 동후는 서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젠 내가 아니더라도 한명준일 가능성도 없어.” 하연은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충분히 그녀를 지켜줄 능력도 가진 남자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시련을 겪은 적 없던 서준은 차에 앉아 눈가를 문질렀고 방금 이현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모든 걸 포기했다고 해서 네가 진 빛을 그냥 두겠다는 건 아니야.” “뭐라고?”“내가 내 신분을 이용하여 하연과 결혼했으면 아껴줬어야지. 하연을 속상하게 만들어? 그 빚은 반드시 기억하고 있다가 갚게 만들 거야.” 이에 서준은 한 마디 반박도 하지 못했는데 전부 사실이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내일 임모연을 B시에서 벗어나게 할 거야.” 이 말에 동후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여기에 남긴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희 쪽에 임모연을 B시에서 빼낼 인맥은 없어요.” “오늘 밤 자리 한 번 마련해. 그 윗분을 만나야 해. 잘 구슬리면 가능할 지도 몰라. 임모연에게 새로운 신분을 줘야 해.” ... 차 안, 기사는 운전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뒷좌석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오늘 밤 떠난다고요? 왜 이렇게 갑자기요? 3일 후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연이 놀란 듯 한쪽 구석에 자리했고 상혁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DL그룹에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가봐야 해.”“부남준 그 사람 때문인가요?” 이에 상혁은 담배 한 갑을 주머니에서 꺼냈지만 차마 필 수는 없었다. “비슷해.” 그러자 하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고 비록 아쉽긴 했지만 일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모연은 코트로 몸을 꽉 감싼 채 차에 앉아 있었다. 며칠 연속 술을 마셨던 모연은 오늘은 마시지 않아 어쩌다 정신이 멀쩡했고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꼭 떠나야 하는 거야?” “저희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임모연 씨가 여기 있으면 모두에게 피해가 간다고 말입니다.” “일단 경찰에 잡혀 모든 죄목이 더해지면 수십 년을 선고받기엔 충분할 겁니다. 그러니 임모연 씨, 지금 떠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날은 아직 이른 새벽이었고 거리에는 모연의 차량 밖에 없었으며 비 속에서 폭풍 질주하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백미러에 갑자기 검은색 차량이 나타났고 모연의 차를 뒤따르고 있었다. 이에 모연이 경계하 듯 말했다. “누가 따라붙었어! 경찰이야?” 이에 운전기사가 핸들을 돌리며 대답했다. “일단 최선을 다해 따돌려 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운전기술이 꽤 좋았지만 결국 뒤에서 따라오던 차량을 따돌리진 못했고 심지어 추월을 당해 모연이 찬 타는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에 기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분명 한 대표님께서는 막으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 하셨는데!” 모연의 낯빛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때 눈앞의 검은색 차량에서는 건장한 남자가 한 명 내렸고 뚜벅뚜벅 걸어와 차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뭘 하려는 거죠?” 기사가 덜덜 떨며 물었다. “전 경찰이 아닙니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피터가 말을 이어갔다. “차 뒷좌석 문을 열어주십시오. 저희 대표님께서 임모연 씨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 모연은 몸이 얼어버린 채 두 눈만 껌뻑였는데 피터가 바로 뒷좌석으로 들어와 앉으며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누굽니까?” “임모연 씨, 여기서 떠나고 싶다면 전화 받으세요.” 모연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상대방은 이미 그녀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었기에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이었다.“여보세요?” 모연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이날 온 하루 하연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때 진미화가 다가와 말했다. “최 사장님, 최하성 씨께서 사장님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저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하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진미화의 전화를 받았는데 하성의 얼굴이 핸드폰 화면에 비춰졌다. [하연, 전화도 안 받고 뭐하는 거야? 걱정 했잖아!] “핸드폰 배터리가 나갔어요. 하성 오빠, 무슨 일인데요?” 하연이 아무렇게나 변명했다. [하경이 형이 휴가 나왔는데 B시에 너 만나러 온대. 저녁에 밥이나 한끼 먹어.] 이 말에 하연이 기뻐하며 대답했다.“하경 오빠 안 본지도 오래됐는데 잘 됐네요. 몇 시에 도착한대요? 제가 레스토랑 예약해 놓을게요.” [그럼 내가 하경이 형 마중 갈 사람 안배해 놓을게.] 이때 하연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하성이 물었다. [안색이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러자 하연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무 일도 없다고 했고 부랴부랴 전화를 끊었다. 당시 하연은 이름도 모르는 남자를 위해 B시에 왔고 얼렁뚱땅 서준과 결혼하여 가족 전체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남자가 결국은 서준이 아니었다는 걸 알면 하연의 오빠들은 더욱 화를 낼 게 분명했다. 이에 하연은 정신이 완전히 혼미했고 이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다.저녁이 되어 하연과 하성, 그리고 하경 세 사람은 B시에서 유명한 중식당에 모였다.그러나 하성의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에 특별히 룸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이때 하연이 룸의 문을 열고 들어왔고 하경이 음식을 짚고 있었는데 하성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그거 맛있어요. 저도 좀 주세요.” “너 매니저가 이렇게 막 먹어도 신경 안 써?” “이것 좀 먹는다고 안 죽어요. 그리고 지금 매니저가 없잖아요.” 가흔이 하성의 곁에 앉아 있었고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눈길을 보냈는데 하성이 고개를 돌리더니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하연?” 이때 하연이 웃으며 들어와 말했다.“매니
그러자 하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문을 열었는데 그는 평소 술과 담배에 손을 잘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바로 방향을 바꾸고 포기를 해야지. 이 세상에는 그것 말고도 견지할 수 있는 게 꽤 많을 테니까.” 하경은 매우 이성적이었다. 그러자 하연은 하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 일로 오랜 시간이 지체되어 물거품이 되어 버렸는데 아쉽지 않을까요?” “오히려 기뻐해야지. 그런 것들이 기억 속에 박혀 있다면 계속 생각날 거고 아쉬워질 텐데 물거품이 되면 적어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있잖아. 아니야?” 하경은 손에 든 라이터를 만지작거렸고 말투는 매우 담담했는데 그의 성격상 이런 허무맹랑한 것들로 단 한번도 고민한 적 없는 것처럼 보였다.하경의 말을 들은 하연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오히려 마음은 탁 트인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하연은 지금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거라면 두 사람은 처음부터 인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은 모두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매 한 걸음마다 다 그 의미가 있을 거야.” 이에 하연은 담배를 끄며 대답했다. “하경 오빠, 예리한데?” “하지만 난 언젠가 오빠가 무언가에 얽매이면 어떤 모습일지 보고싶네요.” 그러자 하경이 실소하며 말했다. “너무 나쁜 거 아니야? 이렇게 위로를 잘 해줬는데 내가 망신당하는 꼴이 보고싶어?” “에이, 설마요.” 이때 하성이 다시 문을 열고 돌아왔다.“둘이 무슨 말 하고 있었어요? 분위기가 이상한데요?” “우리가 다 오빠 같은 줄 알아요?” 하연이 외투를 챙겨 입으며 입을 열었다. “가흔이 데려다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하성은 자리에 풀썩 앉으며 허무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이들이 볼까 봐 혼자 갔어.” 가흔은 아직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인이 하성이라는 걸 밝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만약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녀에게도 엄청난 영향이 미칠 게 뻔했다.“아직 헤쳐나야 할 길이 멀었네요.”
F국은 현재 오후였고 커다란 회의실 안에 9명의 이사들이 모여 있었는데 고위층 간부들도 거의 다 모여 있었다. 상혁이 회의실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고 그가 회의실 안을 바라보니 이미 남준도 돌아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때 남준을 상혁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상혁은 가장 중심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입원해 있던 거 아니었어? 보아하니 큰 문제는 아니었나 보지?” 그러자 맨 앞에 앉아 있던 남준은 깁스를 한 팔을 흔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전 일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서요.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지난 몇 년 간 형님이 없을 때 전 단 한번도 회의에 빠진 적 없어요.” “때문에 비록 다치긴 했지만 이미 F국에 돌아오기도 했고 혹시 형님이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회의를 이어가야 하니까요.” 남준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적나라하게 야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상혁은 남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서류를 펼치며 화제를 돌렸다.’“여러분,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바로 회의 시작합시다.” 이때 한 이사가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부 대표님, 국외에서 돌아오신 겁니까?” 그러자 상혁은 서류를 펼치던 손을 잠깐 멈추었고 옆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 순간 연지가 상혁의 뒤로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전 대표님의 일정에 대해 누설한 적 없습니다.” 이에 상혁은 담담히 대답했다. “네, 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계속 물고 늘어졌다. “현재 DL그룹이 B시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이 사람은 상혁이 B시에 갔다는 것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었는데 이에 상혁은 옷소매를 정리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일을 잠깐 처리해야 해서요.” “부디 귀국하여 FL그룹 일을 처리한 게 아니길 바랍니다. 부 대표님, 정력을 두 곳에 분산키면 곤란합니다.” “안 그러면 DL그룹을 대표님께 맡기고 있는 저희들이 불안하지 않겠어요?” 하연을 언급하지 않는
이에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그리고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남준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 건넸다. “하연이는 최씨 가문의 귀한 자식이고 네 동생이기도 해. 앞으로 기회가 되면 너도 보게 될 거야.” “네, 알고 있어요. 지난번에 본 적 있는데 확실히 다른 여자들과는 분위기부터 다르더라고요. 형님이 복을 받으신거네요.” 남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여인을 위해 일을 잠시 미루는 것도 충분히 그만한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이 말에 상혁은 실눈을 떴다. “너 남준에게 고마워해야 해. 요 며칠 줄곤 남준이가 이사진들을 진정시켜 주었으니 말이야. 안 그랬으면 그들은 진작 내 사무실까지 찾아왔을 거야.” “한 그룹의 대표가 말도 없이 회사에서 일주일이나 사라지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 부동건이 상혁을 꾸짖었다. “네, 확실히 남준에게 감사해야죠.” 상혁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인정했다. “그래도 그룹 내 여러 일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황 비서는 남겨두고 갔습니다.” “너야말로 이 회사의 대표야. 사업 기획안과 자금 출자 같은 건 네 서명이 없으면 어떻게 진행시킬 건데?” 이때 부동건은 약간 화가 난 듯했고 순간 먹물이 상혁의 손등에 튀었다. 한쪽에 있던 남준이 이 틈을 타 말했다. “아버지, 너무 화내지 마세요. 형님이 이렇게 돌아온 거면 됐죠. 앞으로 그룹 일은 여전히 형님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그래. WA그룹과의 그 프로젝트에 대한 건 이미 들었어. 이미 남준이가 모든 책임을 지기로 했고 너 대신 B시에 가서 일을 처리할 거야.” 이 말에 상혁은 갈고 있던 먹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네? 남준이가 이렇게까지 발 벗고 나서다니 형으로서 제가 조금 미안해지는데요?” 그러자 남준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원래도 제 잘못이었는데요, 뭘. 아버지께서 이미 저를 혼내셨고 제가 직접 B시에 가는 것도 별 것 아니예요. 전 다만 형님이 저를 미워하지 않길 바랄 뿐인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이 판은 내가 스스로를 위해 설계한 거라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되는 거야.” 상혁은 눈가의 혈자리를 누르며 대답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부 회장님도 대표님이 최하연 씨를 만나는 건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는데요?” 표정이 어두워진 상혁은 대답하지 않았고 화제를 돌렸다. “아버지는 이미 부남준 녀석을 지지하기 시작했어.” “아마 그 녀석이 B시에서 다시 돌아올 때쯤이면 이번 프로젝트는 그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관건적인 디딤돌이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리 DL그룹의 의사진에 자리가 하나 더 늘어날지도 모르지.” 이 말에 연지가 깜짝 놀랐다. “설마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는 말인가요?” “하지만 부남준 녀석은 아직 잘 몰라. 내가 B시에 가 있는 것과 지금처럼 DL그룹에 남아있는 것의 차이를 말이지.” “내가 여기 남아있는 한 부남진이 그런 기회를 얻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F국은 이미 깊은 밤이 되었고 상혁은 회사에서 나와 조진숙에게로 향했다. 이때 상혁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한 시종이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도련님, 돌아오셨군요!” 그러자 상혁은 검지를 입에 대고 조용하라는 손짓을 했고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 “어머니는요?” “거실에 계십니다. 지금 하연 아가씨와 영상통화 중입니다.” 상혁이 거실로 향하자 바로 전화기 너머의 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숙 이모, 제가 여러 가지 영양제들을 샀는데 다 피부 미용에 좋은 것들이예요. 내일 보낼 테니 꼭 챙겨 드셔야 해요.] 영상 속의 하연은 민낯이었고 편하게 똥머리를 묶고 있는 것이 아주 깔끔하고 귀여웠다. 이에 조진숙은 미소를 띄며 매우 좋아했다. “그래, 그래. 하연이 네가 보낸 거면 당연히 먹어야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 [연말이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아요. 이제 시간 좀 나면 꼭 찾아 뵈러 갈게요.] 그런데 조진숙이 대답을 하기 전에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난? 난 보러 안 올래?” 이에
이에 조진숙이 대답했다. “상혁아, 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나도 어쩔 수 없어. 그가 우리의 결혼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생겼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미워. 밤낮없이 너무 미워 죽겠어.” “너무 미운 나머지 전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 적도 있어. 너만 아니었다면 난 진작에 부동건 그 양반과는 연을 끊었을 거야.” 조진숙은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수년 간 이어져온 이 겉치레뿐인 관계가 얼마나 힘든 지 상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조진숙의 손을 잡으며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은 늘 포기하게 되는구나. 현재 FL그룹도 관리 못하고 있고 하연의 곁에 있어주지도 못하니 말이야.” 조진숙은 상혁을 바라보며 죄책감 어린 말을 내뱉았다. 요 몇 년간 상혁이 사업이든 연애 쪽이든 어느 한쪽 쉬운 게 없었다는 건 조진숙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때 상혁은 아까 회사에서 부동건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감정이 굳건하면 굳이 매일 얼굴을 볼 필요는 없으니 괜찮아요.” 상혁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하연은 절대 그렇게 마음이 쉽게 변할 사람도 아니고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상혁은 샤워를 하고 난 뒤 하연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B시는 아직 낮이었고 차 안에 있던 하연이 전화를 받았다. [저녁 먹었어요?] “웅, 아까 회사에서 먹었어.” 상혁은 화면 속의 하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디 가는 거야?” [밖에 일정이 있어서요.] 하연이 대답하며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방금 한 화장인데 어때요? 예뻐요?] “예뻐, 아주 생기 있어 보여.” 상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때의 하연은 감정에 아무런 기복이 없었는데 메시지로 보내온 그 영상을 전혀 본 적 없는 사람 같았고 이 사실에 대해 상혁에게 말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얼른 자요